011 강해지고 싶거든 목숨을 걸어라(1)
주현태의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수라 길드가 모종의 실험을 했고, 그 실험을 통해 강력해진 던전에 태하가 선두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수라 길드가 우리를 빨래질한 거다?”
“길라잡이가 아니라 실험용 쥐로 생각한 겁니다.”
“이런 개새끼들!”
함께 얘기를 들은 용팔도 충격이 컸다.
결국엔 쉘터에서 일했던 모든 사람들이 언데드에게 쓸려 간 것은 아수라의 빌어먹을 실험 때문이었다는 게 되기 때문이다.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인간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죠?!”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겠죠.”
“빌어먹을 놈들!”
“그래서 저희 천리안에서 이 사건을 심도 있게 조사하려는 겁니다. 하여 우리 천리안에서는 당신들 두 사람에게 의뢰를 하려고 합니다.”
주현태는 태하에게 의뢰서를 건네주었다.
의뢰서 안에는 던전의 이상 현상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던전의 이상 현상이 아수라 길드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천리안은 그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수라 길드를 법의 심판에 맡기겠다는 건가요?”
“그게 순리 아니겠습니까?”
“흠!”
법이라는 테두리는 너무 느슨한 경향이 있다.
비각성 길드의 랭커 80%가 사망한 사건이었지만, 아수라 길드는 잘해 봐야 과실치사 정도의 벌을 받게 될 게 분명했다.
그들은 누가 뭐래도 돈이 많은 갑(甲)이니까.
‘그냥 이대로는 못 끝내지!’
태하는 절대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아수라 길드는 물론이고 그와 협력 관계에 있는 모두를 씹어 먹겠노라 다짐했다.
물론, 지금 당장 그들을 씹어 먹을 수 있는 힘은 없었다.
‘100층까지 가는 것도 좋다 이거야. 하지만 복수를 빼놓을 수는 없지. 일단 강해지는 거다!’
***
탑을 자유롭게 누비는 태하와 용팔.
특훈의 진가가 발휘되고 있었다.
“좌측!”
“오케이!”
척하면 척이라고 손발이 딱딱 맞는다.
[액티브 스킬: 파트너 태그]
[합동 공격 시 공격력 증가: 35%]
퍼어억!
그야말로 추풍낙엽, 태하와 용팔이 지나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몬스터의 시체가 즐비했다.
이것이 바로 파트너 태그라는 스킬의 진가였다.
“내가 정면, 용팔 씨가 측면!”
“확인했어요!”
탑의 수호자가 방패를 바벨 원판과 스트랩의 형태로 만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장비 동기화: 스트랩과 사용자가 신경 다발로 연결됩니다]
[원판의 크기와 모양을 선택하십시오]
스트랩에 원판을 연결하면 가공할 만한 무기가 된다.
게다가 스트랩을 감은 채 원판을 잡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바벨 원판과 스트랩의 진짜 용도였던 것이다.
게다가 스트랩은 이제 태하의 신체 일부가 되었다.
쉬이익!
퍼억!
“끄웨에엑!”
“손맛 좋고!”
줄을 왼쪽으로 당기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당기면 오른쪽으로 자유자재로 방향 전환이 가능했기에 마치 바벨이 살아서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바벨은 크기 조절도 가능해서 용도에 따라서 최대 직경 4m까지 커질 수 있고 가장자리 부분의 모양도 칼날이나 톱니로 바꿀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콤팩트하게 등에 매달거나 가슴에 매달면 갑옷 대용으로 쓸 수도 있었다.
이제 막 9층을 정리한 태하와 용팔이 10층으로 향했다.
시계를 확인하니 클리어 타임이 50분도 채 안 되었다.
신기록이었다.
‘허어, 1층에서 9층까지 클리어 타임이 고작 한 시간이 안 된다고?’
황당할 정도로 클리어 타임이 줄었다.
그간 수련으로 증가한 능력이 새삼 체감되는 순간이다.
“오케이, 마무리!”
“아주 그레이트하네요!”
짜악! 짜자자작!
하이파이브를 하는 손에도 쫄깃쫄깃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렇게 10층에 올라서니 오우거와 트롤이 두 사람을 반긴다.
-쿠오오오오!
“……잠깐, 오우거가 나온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아 참, 오우거에 대해 설명하는 걸 깜빡했네.”
“네에……?!”
“하지만 크기를 봐요. 우리가 연습했던 상대와 얼추 비슷하지 않아요?”
“아니, 그야…….”
10층에서 번번이 미끄러지긴 했어도 태하는 오우거와 수백 번이나 싸워 본 사람이다.
오우거라면 아주 징글징글하다.
허나 오늘은 조금 다를 것이었다.
“강해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알죠?”
“……후우! 좋아요, 갑시다!”
쿠그그극!
바벨을 직경 3m 크기로 변형시킨 후에 방패처럼 굳게 잡았다.
이제는 긴장의 끈을 바짝 당길 차례.
“곧 오우거가 몰려들 겁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는 게 좋아요!”
“……몰려든다고요? 1마리가 아니었어요?”
비각성 헌터가 11층을 못 올라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우거 몇 마리면 그럭저럭 상대해 볼 만한데, 여기선 그 숫자가 족히 100마리는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트롤이 뒤섞여 혼란스럽게 하기에 어지간해서는 죽이기도 쉽지 않다.
무식하게 생긴 돌도끼를 휘두르는 오우거.
쐐에에엥!
돌도끼를 휘두르는 속도는 생각 외로 엄청나게 빨라서 피하기도 어렵다.
직격타로 가해질 압력만 무려 30톤.
북극곰의 앞발 펀치가 3톤이니, 그 10배에 달하는 충격이었다.
이걸 직격탄으로 맞아야 하는 탱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10층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비각성으로 버텼던 태하는 그야말로 용자 중의 용자였던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까앙!
태하는 방패로 오우거의 공격을 막아 냈다.
충격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쿠오……?
“이 새끼야, 이젠 타격 저항이 생겼지롱!”
이제는 오우거의 공격이 간지러울 정도가 되었다.
태하는 힘껏 도움닫기를 했다.
파앗!
“이게 바로 스쿼트의 위력이다!”
그리고 묵직하게 뻗은 주먹으로 오우거에게 죽빵의 신세계를 선사했다.
슈웅, 콰아앙!
태하의 플라이 펀치를 맞은 오우거는 그 즉시 턱이 박살 나서 거품을 물고 쓰러져 버렸다.
-꼬르르르…….
마치 인간 포탄이라도 날아온 것 같은 상황.
죽빵 한 방에 그 육중한 턱이 돌아가자, 오우거들이 화들짝 놀랐다.
-크오오?!
“놀라긴 아직 이른데?”
바닥에 떨어진 돌도끼를 양손으로 들어 올린 태하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도대체 저걸로 뭘 어쩌려는 것인가 싶은데, 태하가 오우거의 망치를 해머던지기 하듯 붕붕 돌리기 시작했다.
붕! 붕! 붕!
“너희들이 나를 때렸을 때, 내가 이런 느낌이었어! 알아?!”
대가리만으로도 중형차만 한 돌도끼를 풀스윙으로 휘두르자 오우거는 그걸 알면서도 피하지 못했다.
쿠우웅, 푸하아악!
일격에 오우거의 머리가 호두처럼 박살 나 버렸다.
용팔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누가 오우거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레이트하네! 역시 헌터님이야!”
태하는 이미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나 오우거 군단도 그저 속절없이 당하지만은 않았다.
“……오우거가 다시 움직여요! 그리고 뒤에서 또 몰려옵니다!”
“여전히 징글징글한 놈들이네요.”
태하는 항상 이쯤에서 고비를 맞았다.
트롤은 자체회복능력이 있기에 딜이 분산되는 순간, 어그로 핑퐁이 일어나듯 오우거도 트롤도 잡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용팔 씨가 트롤만 좀 상대해 줘요. 그사이 내가 오우거를 쓸어버릴게요.”
“알겠어요!”
호흡을 가다듬고 시위에 활을 먹이는 용팔.
쿠웅, 쿠웅!
숱한 연습이 있었다.
오늘 이날을 위해 얼마나 눈물을 훔치며 살아왔던가.
용팔은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트롤을 노렸다.
“후웁……!”
호흡을 조절하자, 코어가 확장되면서 근육의 결이 살아났다.
태하의 펀치만큼이나 강력한 용팔의 화살.
화살은 트롤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피융!
바로 그때였다.
화살에 가속도가 붙더니 이내 트롤의 두개골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끼이이잉, 팟!
푸하아아악!
사방에 새빨간 선혈이 낭자했다.
뇌수와 함께 쏟아지는 트롤의 피의 분수를 뚫는 목소리가 있었다.
“……뭐해요, 계속 쏘지 않고!”
“한나 씨?! 언제 여기까지…….”
전투를 이어 나가는 태하의 고개가 갸웃갸웃 움직였다.
도대체 그녀가 언제 여기까지 따라온 것일까.
“트롤은 한 번에 숨통을 끊어내지 않으면 다시 회복되는 거 몰라요?! 어서 빨리!”
후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지 간에 일단 태하는 스트랩을 마치 타잔처럼 타고 다니면서 오우거들에게 공평한 죽빵을 한 대씩 선사해 주었다.
스트랩은 길이 조절뿐만 아니라 태하의 신체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강화는 물론이고 형태의 변화까지 가능했던 것이다.
콰앙!
태하가 워낙 기민한 데다 오우거에 비해 한참이나 작아서 그를 잡으려다가 뒤엉켜 셀프 탈곡을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퍼억!
-……쿠오오!
-쿠오?!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느라 순식간에 피떡이 되기도 했다.
태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날면서 바벨로 오우거의 급소만 노렸다.
“허업!”
단 일격에 인대가 끊어져 고꾸라지고 마는 오우거.
[바벨의 모양을 변경합니다]
바벨은 둥근 칼날의 모양으로 변했다.
태하는 쓰러진 오우거의 머리를 바벨로 쳐서 경동맥을 끊어 버렸다.
푸하아아악!
바벨로 머리를 치고 주먹으로 오우거의 강냉이를 털어 내는 태하의 모습은 흡사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와 같았다.
그렇게 풍년을 맞은 농부처럼 전장을 종횡무진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우거는 계속해서 밀려든다.
“……끝도 없군!”
허나 그러던 어느 순간, 오우거의 웨이브가 멈추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일행.
그러나 태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온다……!”
바로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엄청난 파공성.
쐐에에에엥!
거의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었지만 묵직한 공격에 태하는 크게 뒤로 밀려났다.
콰아앙!
“……크윽! 뭐야, 전보다 강력해졌잖아?”
태하도 10층 돌파를 거의 목전에 둔 적이 있다.
당연히 이놈도 알고 있었다.
허나 공격의 강도 자체가 달랐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타격 저항이 높아졌을 텐데?’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한나가 답을 주었다.
“스턴 마법이에요!”
“……마법?”
이윽고 드러나는 놈의 실루엣.
순간, 태하의 동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끄오오오오……!
무려 아파트 10층 높이의 그레이트 오우거가 그들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한나와 용팔은 기겁하고 말았다.
“……이게 바로 보스?!”
“말했잖아요. 그런 놈이 있다고.”
“하지만 스턴 마법을 쓴다고는…….”
“그러게요. 나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원래는 안 그랬었는데.”
상황이 변했다.
태하는 고민이 되었다.
‘설마하니 스턴 마법을 쓰는 오우거가 있었을 줄이야. 이걸 어쩐다?’
스턴 마법에 당하게 되면 경직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순간은 무방비에 놓이게 된다.
이를 타개할만한 뾰족한 수가 필요했다.
태하는 한나에게 조언을 구했다.
“한나 씨, 그럼 이놈에게 타격 저항 같은 것도 있어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잠시 고민하던 태하가 방패를 접었다.
“별수 없지. 두 사람이 잔몹 좀 처리해 줘요.”
“……어쩌시려고요?”
“별수 없죠. 일대일로 맞짱을 뜨는 수밖에.”
“……맨손으로 보스와 맞짱을 뜬다고요?”
“어차피 방법은 그것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