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득근득근, 헬창 퀘스트(2)
운동 100일 차.
[아이템 착용 조건]
[힘: 201/100]
[민첩: 310/100]
[착용 조건을 초과하여 충족하셨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시에 스킬 보너스를 받습니다]
태하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활은 잘 당겨져요?”
“……흑흑, 네! 감사합니다! 그레이트한 헌터님 덕분에 제가 사람이 됐네요!”
“이제 드디어 우리도 메이저로 올라가는 겁니다!”
“오오!”
“액셀 한번 제대로 밟아 봅시다!”
“옙!”
드디어 때가 되었다.
두 사람은 얼른 운동을 끝내고 여의도 코어 거래소로 향했다.
레이드를 준비하는 데 쓸 경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코어 거래소에서는 현물 및 아이템 거래는 물론이고 선물이나 옵션과 같은 시장도 형성되어 있다.
당일 시가에 따라서 가격이 변동되는데, 금이나 유가처럼 국제코어시장의 영향을 받게 된다.
태하는 코어도 팔고 코인도 살 겸 거래소의 코어 딜러를 찾아갔다.
딜러 부스 앞에는 세계 7대 바벨탑 및 코어 거래소의 연동시세가 차트에 기재되어 있었고, 그 아래는 샌드타워에서 나오는 코인 및 샌드 시세도 나와 있었다.
[코어 딜러 조선엽]
“코어 좀 팔려고요.”
“등급을 스캔하겠습니다.”
그는 태하의 가방을 스캐너에 넣었다.
[코어 총량: 4,187개]
[FF급 코어 총량: 365개]
[F급 코어 총량: 120개]
[E급 코어 총량: 31개]
[마이너스 코어 총량: 3,671개]
[총 거래 가능 개수: 516개]
태하의 눈이 실망으로 가득 찼다.
대다수가 마이너스 코어였기 때문이다.
“마이너스라는 게…….”
“혹시 언데드 잡으셨나요?”
“네, 그러긴 했는데요.”
“죄송하지만 마이너스 코어는 매입이 불가능합니다.”
“쩝! 별수 없죠. 나머지 코어만 팔게요.”
“그럼 516개를 전량 매각하시겠어요? 대금은 대략 6천쯤 입금이 되겠네요.”
“6천이요?!”
“요즘 코어가 많이 올랐어요. 조금 더 쳐 드리고 싶지만, 사정이 그만큼 안 되는 걸 좀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코어 500개에 6,000만 원이면 거의 10배로 뛴 시세다.
코어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럼 E급 코인 1개 주시고 나머지는 돈으로 주실 수 있나요?”
“E급 코인 하나, 나머지는 현금으로요? 잔금 5,600만 원 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거래 감사합니다!”
던전에 입장하는 데 필요한 코인 1개와 입금 명세서를 받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딜러가 물었다.
“혹시 연락처 하나 남겨 주실 수 있나요?”
“왜 그러시죠?”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잘하면 마이너스 코어에 대한 호재가 뜰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호재라니요?”
“호재 뜨면 말씀드릴 테니, 만약 거래하실 거면 저랑 하시죠.”
딜러는 태하에게 슬그머니 한 장의 A4 용지를 건넸다.
이게 바로 증권가 찌라시라는 것인 모양이었다.
찌라시의 내용은 이러했다.
-마이너스 코어에 대한 연구: 초전도 성질의 발견
“초전도?”
“팔지 말고 가지고 계세요. 조만간 크게 오를 겁니다.”
***
쿠웅! 쿠웅!
강원도의 한적한 산골이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포탄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지만, 이것은 인간이 주먹으로 내는 소리였다.
“좀처럼 위력이 늘지 않네.”
근력과 민첩의 밸런스를 잡았지만, 이것만으로 29층 돌파가 가능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10층을 돌파하는 것조차도 아직은 의심해 봐야 하지 않나 싶었다.
뭔가 타개책이 필요했다.
태하는 조바심이 났다.
“젠장, 뭔가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건가?”
이곳은 태하의 선친이 생전에 기거했던 강원도 정선의 시골 마을이다.
절벽을 쿵쿵 때려 댄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으나, 던전 진입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가속도의 문제 아닐까요?”
“……가속도요?”
태하가 일격필살을 준비한다면 용팔은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방패 뒤에 숨어서 탱커가 골라 주는 적만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용팔은 궁수로서 이해하는 타격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강하게 후려친다고 주먹을 뻗기만 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펀치를 낼 수 없어요. 흐름을 타야 한다고 배웠어요.”
“흐름을 탄다! 혹시 용팔 씨, 복싱도 배웠어요?”
“아니요. 양궁부에서 배웠죠. 화살도 가속도를 따르기 마련이니까요.”
“아아……!”
힘만 준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태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근육을 시위라고 생각하고 주먹을 화살이라고 생각한다면……?’
보현 관장은 태하에게 몇 번이고 강조했었다.
근육의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운동의 기본이고, 그 텐션의 끝에는 탄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탄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작을 보완해야 할까?’
깊은 생각에 빠져들던 태하의 사고를 전환시키는 것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섬유.
‘아니 잠깐. 근육 전체가 아니라 근원섬유 자체를 강화시키면 어떻게 되는 거야?’
강화는 고립 상태에서도 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고립을 넘어서 해부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다시 한번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 상태에서 이뤄지는 강화스킬에, 지금의 구상을 적용해보았다.
근육운동을 할 때 신체에 느껴지는 통증은 근원섬유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근원섬유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것이 가닥가닥 나눠진다고 그려보았다.
[강화: 근원섬유가 강화됩니다]
‘오옷!’
쿠그그극!
근원섬유가 강화되면서 신체의 강도, 그리고 탄력의 한계가 늘어났다.
태하의 주먹이 다시 절벽을 두드렸다.
쐐에에엥!
이번에는 늘어난 탄력과 함께 신체의 회전 속도에 가속도가 붙어서 주먹에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일어났다.
이윽고 표적에 펀치가 꽂히자!
콰아아앙!
“……됐다.”
***
던전 진입 열흘 전.
일대일, 일대 다수를 노리는 포메이션이 완성되었다.
이제는 그것을 몸에 익히고 무심결에서 툭툭 튀어나오도록 연습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태하는 동네 바위산에 있는 돌덩이에 머리와 몸통, 팔다리를 그려 넣었다.
“……윌슨?”
“적어도 이 정도 크기로 연습을 해야 10층에서 버틸 수 있어요.”
“10층이 그렇게 대단해요?”
“그럼요. 대단하죠. 뭐, 아수라 같은 놈들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요.”
아마 지금의 전투력이라면 과거의 10층쯤이야 가볍게 클리어 가능했을 것이다.
허나 최근에는 몬스터가 강화되었다.
그 이유를 태하가 알 수는 없으나 10층을 돌파하려면 적어도 예전의 2배 이상의 전투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둘이서 뚫어야 합니다. 비각성자들은 보통 7~8인이 파티를 이뤄서 사냥해요. 허나, 그래도 10층은 도저히 클리어가 불가능하죠.”
“흠! 그럼 우리 둘이선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태하는 용팔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척 봐도 그의 몸매는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락부락해져 있었다.
“그 몸이면 가능합니다.”
“아무리 근육이 발달했어도…….”
“가능해요. 근육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죠?”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근육에 길이 있는 겁니다. 스스로의 근육을 믿으세요.”
강력함의 원천, 근육을 믿는 것보다 확실한 건 없다.
태하는 포메이션을 이렇게 설명했다.
“10층은 우리의 역할을 정확하게 나눠야 합니다. 원딜, 근딜, 탱커, 이렇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다수, 맨투맨, 이렇게요.”
“맨투맨?”
“용팔 씨는 제가 왜 이렇게까지 일대일에 집착한다고 생각하세요?”
“그야…… 근딜 탱커가 목표라서?”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보스를 상대하기 위함입니다.”
“아아, 보스!”
“보스는 원래 다수가 잡죠. 하지만 우리는 단 2명이잖아요. 그러니 당신이 잔몹을 처리할 때 내가 일대일로 보스를 잡는 겁니다. 원터치를 쪼개든 개싸움을 하든 일단 내가 보스를 처리하고, 용팔 씨가 잔챙이를 잡아야 승산이 있어요.”
지금까지 수많은 전략 전술을 시도해 보았다.
허나 그때마다 태하는 번번이 실패하였고 보스는 넘을 수 없는 산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태하가 10층을 돌파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10층을 뚫잖아요? 그럼 우리는 29층까지 문제없이 올라갈 수도 있어요.”
“아하! 보스를 상대하는 방식은 거의 다 비슷비슷할 테니까요?”
“맞아요. 던전에는 수많은 메타와 레이드의 빌드업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변하지 않죠. 보스와 잔챙이들, 이 조합이 절대적이라는 것이죠.”
만약 던전의 고인물을 지수로 표현한다면 태하는 단연 대한민국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15년 동안 쉬지 않고 던전에 도전했으니 말이다.
“저, 고인물이라는 소리 많이 들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자고로 이 바닥에선 고인물이 최고 아닙니까?”
***
“……얼마요?”
“5,431만 원이요.”
예전에 언데드에게 두들겨 맞아서 장비가 망가졌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스마트워치와 이계 방사선 저항 장치의 파괴가 너무나도 큰 타격이었다.
이계 방사선이라는 것은 바벨탑 입구와 층과 층의 입구에 흐르는 정체불명의 방사선인데, 이것에 장기간 피폭되면 높은 확률로 백혈병과 같은 심각한 병을 얻게 된다.
장비 가격만 인당 2,700만 원 상당. 만약 코어를 매각하지 못했더라면 생활비도 안 나올 판이었다.
“헌터님, 이걸 사고 나면 우리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판인데요.”
“흠.”
헌터상점의 점원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하! 사정이 정 그렇다면 제가 150만 원 빼 드릴게요.”
“그래도 괜찮아요?”
“대신 멤버십 가입하시고 SNS에 광고 좀 띄워 주시면 됩니다.”
“오호? 그리 어렵지는 않네요.”
“그렇죠? 그리고 나중에 광고 통해서 저희 상점으로 유입되는 고객님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포인트를 쌓으실 수도 있어요. 그럼 공짜로 장비도 구매 가능하십니다!”
“우와, 그런 제도가 다 있었어요?”
“모르셨어요? 요즘은 이렇게 인맥으로 포인트 쌓아서 장비 마련합니다. 아시다시피 던전에서 쓰는 장비가 좀 비싸야지요.”
던전에서는 일반적인 합성섬유는 제 역할을 못 한다.
몬스터에게 몇 번 맞으면 그 즉시 넝마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탄소섬유와 같은 특수 섬유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다.
“음! 그래요. 비싸긴 하죠. 비각성 헌터가 그것 때문에 밥을 굶잖아요.”
“그래서 저희 헌터상점에서는 멤버십과 광고 제도를 도입한 거죠! 어때요? 홍보만 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어렵지는 않네요.”
그 자리에서 멤버십 가입을 해 놓고 장비를 수령했다.
이제 막 가입을 했다고 헌터상점에서는 장비도 좋은 것으로 주었다.
장비를 맞추고 나오는 길.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의뢰를 받아서 올라갑시다.”
“의뢰요?”
“헌터협회에서 의뢰 매칭 시스템을 운용해요.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의뢰는 죄다 수령을 하자고요.”
“그럼 던전 29층까지는 언제 올라가고요?”
“어차피 한 번에 29층까지 올라가는 건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2인 파티잖아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맞아요. 게다가 생활비도 좀 넉넉하게 벌고요.”
“……소고기도 먹을 수 있어요? 그레이트하게?”
“물론이죠!”
“콜!”
태하는 헌터협회의 의뢰 매칭 시스템을 통해 몇 개의 의뢰를 수임했다.
-오우거의 힘줄 10: 수임 보상 600만 원
-만티코어의 가죽 20: 수임 보상 1,200만 원
대부분은 스탠더드 코어를 모으는 일이었지만, 만티코어나 오우거의 부산물을 모으는 임무도 있었다.
“임무의 난도가 좀 높은 것도 있는데요?”
“언제까지 초급 임무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려운 것도 서서히 해 줘야죠.”
“점진적 과부하?”
“그렇죠!”
이제 남은 건 목표한 곳까지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큰 꿈에 부푼 채 헌터협회를 나서는 두 사람의 앞을 한 남자가 다가와 앞을 막아섰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명함을 건네는 남자.
거기에는 천리안 기획공조과 주현태라고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