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근손실은 곧 죽음이다(2)
태하는 난감한 표정으로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근육으로 흥한 자, 근육으로 망하는 건가? 젠장, 타격 저항이 마이너스면 스치는 족족 사망각일 텐데. 이를 어쩌나?’
동료들은 불안한 듯 태하에게 물었다.
“괜찮은 거죠?”
“으음…….”
“헌터님?”
“좋아요. 아까처럼 진형을 잘 갖춘 상태에서 달려갑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3층으로 빠져나가는 겁니다.”
문제는 과연 3층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태하는 이를 악물었다.
‘내장 파열이 되었을 때도 던전에 올랐다. 까짓것, 뒈지기밖에 더 하겠냐?’
태하의 인생에 유턴이라는 단어는 운전할 때밖에는 없었다.
오로지 전진, 그것만이 태하에게는 진리였다.
“그런데 3층에 몬스터가 없으리란 보장이 있을까요?”
“없죠. 하지만 저길 좀 보세요.”
그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두 사람.
태하가 가리킨 곳에는 화이트홀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저게 우리를 집어삼킨다고 생각해 봐요.”
“……일단 튀죠!”
공포감은 때론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좋은 원동력이 되곤 한다.
태하가 선두에 섰고, 바로 뒤에 한나, 용팔 순으로 진형이 갖춰졌다.
이들은 누가 알려 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전투에 최적화된 진형을 맞췄다.
이는 어쩌면 인간이 가진 본능과도 직결되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이 세 사람은 합이 참으로 잘 맞는다는 소리였다.
-끄어어어어……!
-크하아아악……!
“옵니다!”
어깨가 탈골되었든 내장이 쏟아져 나왔든 간에 좀비는 고통이나 공포를 상실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전력 질주하는 좀비, 그리고 그와 맞먹는 속도의 스켈레톤.
“죽어라!”
빠각!
아까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허나 파괴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아하! 타격 저항이 줄었지만, 완력은 아직 그대로인 거구나!’
그렇다면 이 악물고 뚫고 나간다면 승산은 있다는 소리였다.
태하는 보이는 족족 좀비와 스켈레톤을 쳐 죽였다.
허나 태하의 이러한 전투 방식은 언제나 피해를 동반한다.
퍼억!
“크헉!”
골통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잘못하면 입 밖으로 내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러나 태하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뻗었다.
“죽어라!”
빠가각!
-크웨에에엑!
주먹을 뻗는 즉시 날아드는 십 수 대의 몰매, 태하는 그것을 마이너스 타격 저항인 상태로 두들겨 맞을 수밖에는 없었다.
우득!
스마트워치가 태하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늑골에 금이 갔습니다! 어서 병원으로 가세요!]
‘……병원에 갈 수 있어야 가지!’
갈비뼈에 금이 간 상태로 조금 더 두들겨 맞으면 아예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늑골골절은 자칫 폐를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는 부상이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태하는 안 다친 쪽 팔을 내저었다.
퍼억!
-끄웩…….
확실히 파괴력이 줄어들었다.
“허억, 허억……!”
“괜찮아요……?”
“……늑골에 금이 간 것 같아요.”
“뭐, 뭐라고요?!”
“체력이 떨어져서 그래요. 하필이면 근 손실이…….”
“……근 손실이요?”
이를 어쩌면 좋냐고 난리를 떠는 용팔, 그리고 만감이 교차한다는 듯 태하를 바라보는 한나.
태하는 결단을 내렸다.
“……돌파해 봅시다.”
태하의 결단에 한나는 빽 하고 소리쳤다.
“지, 지금 이 상황에서 돌파라니요! 죽을지도 몰라요!”
“그냥 앞으로 쭉 밀고 나가는 겁니다.”
“아프다면서요. 그 몸으로 무슨…….”
“더 아프기 전에 가야 해요. 늑골에 금이 가긴 했지만, 근력은 그대로입니다.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3층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정 안되면 중간에 벽을 무너뜨리고 좀 쉬면 괜찮겠죠.”
결국, 또다시 정면 돌파를 선택한 태하의 결정에 한나는 이를 악물었다.
“……못 살아! 죽어도 난 몰라요.”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는 버려요. 일단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생각해요.”
극한의 상황임에도 태하는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
아드레날린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태하의 신체가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 단단히 돌파 자세를 잡았다.
“……자, 그럼 갑니다! 내 뒤에 바짝 붙어서 있는 힘껏 나를 밀어줘요! 알겠죠?!”
“넵!”
“갑시다!”
태하는 그야말로 정글의 덤불을 헤치며 나가는 탐험가처럼 언데드들을 밀어내며 빠르게 전진했다.
허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몽둥이질에 온몸이 넝마가 될 지경이었다.
퍼억!
[좌측 노뼈와 자뼈가 골절되었습니다!]
빠각!
[빗장뼈가 골절되었습니다!]
“크으으으윽!”
“……이러다가 죽겠어요!”
“안 죽어요! 일단 달리라니까요?!”
정말 이러다간 온몸의 뼈가 다 부러질 판이었다.
치지직!
[스마트워치 연동 장비 및 이상 방사선 저항 장치가 파괴되었습니다!]
“……젠장, 장비까지 망가졌네.”
“내가 못 살아! 지금 장비가 중요해요?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바로 그때였다.
[스킬: 점진적 과부하]
[철은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듯, 강인함의 그릇도 시련에 의해 강해집니다]
[신체에 지속적인 타격이 가해짐으로 타격에 대한 점진적 과부하가 적용되었습니다]
‘……뭐라고?’
[파생 스킬을 획득합니다]
[파생 스킬: 점진적 과부하 - 좀비의 맷집]
[신체 손상률이 60%를 넘어서면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스킬이 적용되기 무섭게 태하의 뼈가 붙더니, 이내 빠졌던 근육이 다시 불어나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극!
“허억!”
“……왜 그래요?”
“이젠 좀 괜찮아져서요.”
“네……?”
“봐요, 근육의 결이 살아 있잖아요.”
마른 땅에 물을 부은 듯 다시 살아난 근육.
태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것을 두고 근육이 보우하사라고 하는 모양이로군!’
마침내 바로 눈앞에 3층의 입구가 보였다.
“다 왔어요!”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정말로?”
“몰라요! 일단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얼른 들어갑시다!”
태하는 마지막 좀비의 머리통을 해머링으로 후려갈겼다.
빠각!
아까의 타격감이 그대로 살아나며 사방으로 검은색 선혈이 흩날렸다.
태하는 동료들을 3층 입구로 밀어 넣었다.
“자, 어서!”
“넵!”
두 사람이 입구로 들어간 후, 태하도 거의 동시에 입구로 들어섰다.
그러곤 주먹으로 던전의 입구를 한 방 크게 후려쳤다.
쿠우우웅……!
그러자 언데드들이 입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쿵쿵쿵쿵!
“아, 아니, 그나저나 저렇게 입구를 막으면 다음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던전 관리국에서 알아서 뚫어 주겠죠.”
“그나저나 상처는 좀 어때요?”
전신이 상처투성이였다.
한나는 속상하다는 듯, 머리를 묶은 손수건으로 태하의 피를 닦아 주었다.
“……못 살아, 정말. 나는 세상에서 누가 아픈 게 제일 싫어요. 알아요?”
“음. 그래서 아까 그렇게 저희한테 도망가라고 우겼던 겁니까?”
“몰라요, 아무튼 그렇다고요…….”
사연 깊은 눈동자다. 태하는 그리 생각했다.
아무튼, 이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어휴,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나저나 3층에는 과연 언데드가 얼마나 있을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언데드의 비명이 들려온다.
허나 불행 중 다행으로 숫자는 많지 않은 것 같았다.
-끄어어어……!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아요. 최대 열 마리?”
“음, 그 정도쯤이야.”
어느새 몬스터 열 마리는 별것 아닌 게 되어 버렸다.
그 얘기를 들으니 새삼 사지를 뚫고 나왔다는 것이 절감되었다.
태하는 저 열 마리를 마지막으로 이제는 휴식을 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가면 맥주 한잔해야지. 시원한 생맥주로.”
“나도!”
“자, 그럼 갑시다!”
3층은 어느새 암운이 내려앉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었다.
한나는 동료들이 앞을 잘 볼 수 있도록 금색의 구체를 만들어 냈다.
끼이이잉……!
그러자 사방이 밝아졌다.
이윽고 보이는 기이한 광경.
“……무덤?”
“3층에 저런 것도 있었나?”
암운이 깔린 3층의 중심에서 좀비 열 마리가 주먹으로 뭔가를 계속 치대고 있었다.
어느새 주먹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저것은 무덤이 확실해 보였다.
아니면 무언가를 묻어 두겠다는 의지인 것 같기도 했다.
“……아프겠는데.”
“어차피 이지가 없는 놈들이잖아요?”
태하는 놈들을 향해 쇄도했다.
부웅!
강력한 태하의 라이트훅에 한나가 중력을 부여했다.
그러자 무려 두 배로 늘어난 운동에너지가 좀비 무리를 강타했다.
쿠우우웅!
묵직한 타격음, 마치 지상에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쿠웨에에엑!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날아간 좀비.
태하는 차례대로 놈들의 골통을 부숴 버렸다.
퍽퍽퍽!
“머리를 깨부수는 것이 제일 빨라요!”
“……사람같이 생겼는데.”
“못 살아, 정말! 그럼 당신이 대신 죽을래요?!”
한나는 용팔의 허리춤에 있던 화살을 뽑아 좀비들의 눈을 꿰뚫었다.
그녀의 저돌적인 모습에 용팔도 하는 수 없이 누워 있는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 버렸다.
“……아슬아슬했네.”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건가요?!”
“그런 셈이네요.”
태하는 좀비가 다지고 있던 작은 탑을 발로 뻥 차 버렸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것에 대한 기쁨의 세리머니였다.
“살았다!”
퍼억!
헌데 발에 닿는 느낌이 뭔가 좀 이상했다.
흙으로 다져진 탑 안에는 마치 서판을 조각낸 듯한 파편처럼 생긴 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발에 닿자마자 마치 끈끈이처럼 달라붙어 버렸다.
“어, 어어……?!”
“돌이 달라붙었어?!”
도무지 의미를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가득한 파편.
허나 누군가는 이 돌의 정체를 알고 있는 듯했다.
[바벨의 흑막이 흥미롭게 웃습니다]
‘흑막이 웃어?’
[바벨의 흑막이 당신에게 아이템을 귀속시켰습니다]
[아이템이 귀속됩니다]
꿀렁……!
정체불명의 까만 돌이 태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느껴지는 엄청난 청량감과 짜릿함.
‘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
태하와 용팔은 이 황당한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난감해했다.
그리고 유난히도 침착한 한 사람.
“……어쩌죠?!”
“글쎄요.”
한나는 거의 표정이 없어진 채로 태하를 바라보았다.
“괜찮은 거 맞겠죠?”
“그야 모르죠.”
“태하 씨,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그걸 한나 씨가 어떻게 알아요?”
“그야…….”
세 사람이 우왕좌왕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이봐요, 살아 있어요?!”
“……사람?”
“천리안의 구조대입니다! 괜찮아요?!”
세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드디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든 것이었다.
바로 그때, 태하의 귓가에 뜻밖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끝도 없이 들려오는 메시지.
[아이템 카운터: 650]
[아이템 카운터: 651]
‘……뭐야, 이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아이템.
아까 스켈레톤 메이지를 해치웠을 때와 비슷했지만, 그 규모가 달랐다.
[몬스터 3,671마리를 해치우셨습니다]
[추후 레벨업 보상이 이어집니다]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결국 5층 위로는 도대체 언데드가 얼마나 많다는 거야?’
그리고 나타나는 뜻밖의 메시지.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
암운 속 바벨탑 3층에서 태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상당히 놀란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설마하니 여기서 골드를 보게 될 줄이야!”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근육을 타고 흐르는 순백의 기운들. 그것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보인다는 성좌의 징표였다.
허나 놀라운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니, 잠깐! 저건……?”
순백의 기운과 함께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강력한 검은 그림자.
종류는 다르지만, 이 또한 성좌의 징표였다.
“성좌가 둘이라고? 그게 가능한 건가?!”
그녀는 이내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팟!
[증거는?]
그 신호에 답한 사람은 다시 신호를 되돌려 보냈다.
[모험자의 몸속에 있습니다]
이윽고 눈을 뜬 그녀.
“……뭐?! 몸속에 있다고?”
크게 놀랐지만, 그녀는 이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증거를 지켜라. 그리고 사령술사를 찾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