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근손실은 곧 죽음이다(1)
거의 30분쯤 걸었을 때였다.
저 멀리에서 해골바가지들이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언데드가 여기도 있네?”
“……헌터님, 저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
“저기요! 언데드 사이에 작은 체구의 여자가 있잖아요!”
거의 100m는 될 법한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언데드의 틈바구니 그 작은 공간 사이로 사람을 본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뭐야, 몽골 사람인가? 눈이 엄청 좋네.’
눈썰미가 좋은 것인지 단순히 시력이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매의 눈을 가진 것만은 확실했다.
“갑시다!”
“넵!”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 지나치는 건 태하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언데드는 이제부터 태하에게 있어선 복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태하는 둔근과 아킬레스건을 강화시켰다.
그러자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탄력이 생겨났다.
쐐에에엥!
바람을 가르는 태하의 엄청난 쇄도, 레벨업을 열 번이나 한 결과였다.
150마리의 언데드를 해치웠을 때 레벨업을 해서 스킬 레벨이 엄청나게 상승했던 것이다.
탄성을 그대로 살린 태하의 펀치가 좀비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콰앙!
언데드는 그 자리에서 머리통이 뜯겨서 날아가 버렸다.
이윽고 쏟아져 내리는 검붉은 피의 분수.
푸하아아악!
-끄어어……?
“유감이지만 두 번 죽어 줘야겠어!”
언데드가 일제히 태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쯤, 남자가 어느새 태하의 뒤까지 바짝 따라와 있었다.
“허억, 허억! 되게 빠르시네요.”
“……벌써 따라왔어요? 최소 50m 이상의 거리인데?”
남자는 자기가 달려 놓고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라? 정말이네.”
벌써부터 동료 보너스가 제법 짭짤한 모양이다.
이제 위험에 빠진 여인을 지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태하를 극구 말렸다.
“도망쳐요! 어차피 나랑 엮이면 다 죽어요!”
“죽는다고요?”
“네, 어서요!”
허나 이미 태하는 여기 있는 언데드를 쓸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태하는 여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단 좀비의 대가리부터 박살 내고 봤다.
빠각!
해머링으로 머리를 쥐어패자, 좀비의 눈알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크헥……!
“이걸로 두 놈!”
오로지 완력으로 두개골을 부숴 버린 태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향해 무식하고 투박하게 주먹을 내저었다.
붕붕……!
언뜻 보면 혼자서 섀도복싱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구잡이식 주먹질이었지만, 언데드는 그 한 방, 한 방에 여지없이 걸려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빠각, 푸하아악!
주먹 한 방에 사방으로 퍼지는 분수들.
“세 놈, 네 놈, 다섯 놈…….”
그야말로 추풍낙엽이 따로 없었다.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사람이 아닌가?”
그런 태하의 뒤를 따르는 남자도 나름대로 분발하고 있었다.
피융, 퍼억!
-끄헤에에엑!
“어라? 그거 쓸 수 있는 거였어요?”
“저도 쏠 줄은 알아요! 다만…….”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활을 쏴 보긴 했나 보네.’
허나 사정은 묻지 않았다. 이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태하는 일단 그를 칭찬하며 독려했다.
“아무튼, 굿입니다!”
“헤헤, 정말요?!”
장족의 발전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도망치기 바빴던 사람이 어쨌거나 싸움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실제로 몬스터를 해치웠다는 건 분명 놀랄 만한 일이 아니던가.
[경험치 10%가 상승합니다]
[보너스 경험치로 10%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역시 경험치가 2배로 늘어났다.
태하는 쫄 궁수를 키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성장하면 대단하겠는데?’
탑을 내려가면 일단 헬스장부터 등록시키고 볼 참이었다.
잠시 후, 태하는 어느새 여자가 서 있는 곳까지 당도했다.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웅장한 그의 대흉근 사이로 흘러내리는 언데드들의 검은 피.
태하는 그녀에게 물었다.
“각성자입니까?”
“네……?”
“각성이요. 혹시 하셨어요?”
“그게…….”
“뭐, 아무튼 좋습니다. 일단 이곳을 함께 빠져나가는 것으로 하죠.”
워낙 탈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여자는 그 위용에 압도될 수밖에는 없었다.
허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저는 빛과 중력을 다룰 수 있어요. 중력은 저의 근력과 체중에 비례해서 다룰 수 있죠.”
“체중이라……. 그럼 한 50~60kg 정도 들 수 있겠네요?”
여자가 찢어 죽일 듯이 태하를 째려보았다.
“……46kg이요! 그리고 근력에도 비례한다니까요?”
“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제가 여자 몸무게는 잘 몰라서.”
“아무튼, 지금이라도 먼저 가요. 1층까지 다 같이 갈 수는 없어요.”
“뭐, 언데드 때문에요? 또 나오면 작살내면…….”
태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100마리가 넘는 언데드가 다시 땅을 파헤치며 일어났다.
스스스스……!
음산한 분위기, 그리고 번쩍이는 안광까지. 사람의 내장을 파먹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돋보이는 등장이었다.
“……쉽지 않겠네.”
“내가 못 살아! 나 하나 죽고 끝날 일을, 괜히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해서는…….”
별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이 험한 언데드 소굴에 한 사람만 덩그러니 놓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태하는 오히려 슬그머니 웃었다.
“누가 그럽디다. 강해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무, 뭐라고요……?”
“아무튼, 갑시다! 내가 앞장설 테니까 다들 바짝 붙어서 잘 따라와요!”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허나 그 시련을 이겨 낼 때 인간은 비로소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태하는 일단 일선에 있는 5마리의 좀비들부터 팼다.
빠각!
우선 좀비의 골통이 빠개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때 맞춰서 날아드는 화살.
피융!
-끄웩!
“으, 으으……!”
아까보다 완력이 늘기는 했으나 여전히 팔이 발발 떨릴 정도였다.
확실히 완력은 약한데 조준하는 집중력이 상당히 좋았다.
이렇게 팔이 발발 떨리는 와중에도 적을 완벽하게 맞힐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태하는 머리를 썼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한나요!”
“한나 씨, 저 남자의 활시위에 중력을 걸어 주실 수 있어요?”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덜 들게 해 줄 수는 있죠.”
“좋아요!”
이번에는 태하가 남자를 불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남자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이제야 통성명을 하네요. 용팔이입니다! 참고로 엄마 성을 따라서 윤 씨예요!”
“네, 용팔 씨! 한나 씨가 활시위를 가볍게 해 주면 계속 활을 쏘세요. 우리에게 유리한 포지션을 만들어야 합니다. 할 수 있겠어요?”
“……한번 해 볼게요!”
강해지려면 목숨을 걸라던 태하의 말에 용팔도 어떻게 해서든 한 사람 몫을 다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키헤에에엑!
다시 달려드는 언데드.
태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언데드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 냈다.
까가가가가강!
확실히 아까보다 몸이 단단해져서 그런지 언데드의 압력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일단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어억!
-끄웨에엑!
여지없는 일격필살에 유명을 달리하는 언데드들.
그런 태하를 바라보며 한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A급, 아니 S급에 가까운 헌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한마디에 용팔은 웃으면서 답했다.
“헤헤, 이건 비밀인데 말입니다. 헌터님은 F급이래요!”
“뭐라고요……?”
태하는 여전히 거침없이 길을 뚫어내고 있었다.
태하의 뒤에서는 여지없이 화살이 날아든다.
피융!
-크헤에엑!
화살이 날아간 쪽은 태하의 좌측이었다.
“좌측이 비었어요!”
“……고맙습니다!”
확실히 사람은 적은데 몬스터가 많으니 비는 공간이 많았다.
허나 이 긴급 편성된 파티는 호흡이 상당히 좋았다.
‘아까보다 화살이 훨씬 더 날카롭다. 으음, 이 조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태하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이대로 진형을 유지하면서 5층을 나서려는 것이었다.
“거의 다 왔어요! 다들 힘내요!”
“네!”
“그리고 최대한 화살을 아낍시다. 내가 최대한 공격을 막아 낼 테니까 확실히 서포트해주세요! 만약 시야에 위험한 것이 보이면 제 어깨를 두드리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해 봅시다!”
합이 좋았고,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어 주는 능력이 있었다.
태하는 꽤나 괜찮은 팀이라고 생각했다.
“갑시다!”
-키헤에에엑!
사방에서 언데드가 다시 달려든다.
태하는 몰려드는 놈들을 쳐 냈고, 용팔은 태하의 빈 곳을 정확하게 방어하며 위험신호를 주었다.
턱!
태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용팔.
“오른쪽이 비어 있어요!”
“오케이!”
퍼억!
용팔의 시야는 상당히 날카로웠다.
다만, 태하의 민첩이 문제였다.
“이번에는 하단입니다!”
“하단……?”
서걱!
공격을 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하지 못했다.
게다가 타격 저항이 생기긴 했지만 베는 공격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서슬 퍼런 날붙이가 태하의 정강이 측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 이놈의 페널티!”
“헌터님!”
“……깜빡했네, 제 이름은 정태하입니다. 아무튼, 난 괜찮아요.”
아무리 합이 좋아도 세 사람이 백 언데드의 손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나 태하에게는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방법이 있었다.
‘아니, 잠깐. 부여라는 능력, 지금 사용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신체 내부의 섬유를 강화시킬 수 있다면, 용팔의 중추신경계를 강화해서 한시적이긴 해도 초인적인 힘을 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부여!’
[스킬을 사용합니다]
[부여: 대상을 선택해 주세요]
[사람은 체온을 나눌 때 더욱 강력해집니다]
용팔은 여전히 태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태하는 그 즉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용팔 씨의 중추신경을 강화시키자!’
용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억!”
“지금 당신의 중추신경이 강화되었어요! 기껏해야 5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우리가 이 던전을 빠져나갈 정도는 될 겁니다!”
용팔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날아드는 적의 칼질을 활대로 막아 냈다.
까앙!
“……반사 신경이 상승한 것 같아요!”
“바로 그겁니다! 자, 이제 그걸 최대한 살려서 이곳을 나가는 겁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찾아내는 능력.
어쩌면 태하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능력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간신히 5층을 빠져나왔지만,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끄어어어어!
“……언데드가 또 있네.”
“못 살아, 정말! 나랑 엮이면 다 죽는다니까요?”
“빌어먹을, 던전이 갑자기 미쳤나?”
순간, 한나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태하는 보지 못했다.
그의 머리에는 오로지 던전을 나가는 것, 그리고 언데드를 해치우는 것밖에는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5층으로 다시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고…….”
“안 돼요!”
“……?”
“저길 좀 봐요.”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우우웅……!
5층과 4층을 연결하는 입구가 일순간 일렁이더니 공간의 왜곡 현상이 생겨난 것이었다.
“……뭐야, 이게?”
“화이트홀!”
뉴스에서 한참 떠들어 댔던 화이트홀이 이들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태하는 본능적으로 이곳을 통과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시다. 여기 있다간 우리, 다 죽어요.”
“하지만 이대론 체력이…….”
“최소한 여기보다는 나을 겁니다.”
일단 이곳을 떠야 한다는 건 확실했다.
문제는, 인간에게는 체력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극심한 체력 손실로 근 손실이 생겼습니다]
[타격 저항이 감소합니다]
“하아……. 좆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