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헬창 투게더(2)
서울 강북의 삼흥컨벤션센터.
컨벤션센터 대회의장에는 ‘바벨탑 안전보장 기획’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천리안의 기획공조과장 주현태가 계획의 전반적인 진행에 대해 설명했다.
“……최종 계획안은 1층의 스타팅 캠프를 보수하고 2층까지 세이프존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나 참, 황당해서. 바벨탑에 세이프존이라니. 차라리 던전에 센트럴파크를 짓겠다고 하시죠? 그 비싼 돈 처받고 한다는 생각이 기껏 이겁니까?”
아수라 길드의 국내 랭킹 3위 텔레키네시스 능력자 현동석이 천리안의 기획공조과장 주현태를 마치 잘 말린 먹태처럼 신랄하게 씹어 댔다.
국제헌터협회에서 만든 명실상부 최고 권위의 천리안을 이렇게 대놓고 깔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동석과 같은 ‘괴물’들이 즐비한 아수라 길드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최근 화이트홀 현상으로 인해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안전성을 부여하고자 이와 같은 기획을 출범시킨 겁니다. 단순히 쉴 곳을 만들자는 취지는 아닙니다.”
현동석이 아무리 씹어 대도 주현태의 입장은 굳건했다.
그런 그에게 국내 길드 랭킹 4위의 ‘현무단’ 관계자 윤시혁이 물었다.
“다 좋습니다. 다 좋은데, 도대체 오크가 판을 치는 2층에서 어떻게 공사를 하겠다는 겁니까? 이건 단순히 스타팅 캠프를 구축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바벨탑은 차량이나 화기의 조달이 불가능하다.
입구 자체가 물리학을 뛰어넘는 미상의 에너지 포털로 이뤄져 있는 데다, 그 내부의 공간도 불안전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시도했었지만, 차량은 사라지고 화기는 폭발하는 등 도저히 반입할 수가 없었다.
“끽해야 스마트워치 같은 전자기기 몇 개 들어갈 수 있는 바벨탑에서 쉘터를 짓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정확히는 코어 기반 전자제품이겠지요. 아무튼, 쉘터라도 없다면 앞으로 코어 수급은 어렵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국내 길드 랭킹 2위의 ‘한라’ 소속 레이드마스터 하동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인류의 새로운 에너지원인 ‘코어’를 수급하는 전문가를 일컫는 레이드마스터는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인재다.
길드의 ‘택티션’이자 국가 에너지 사업의 리더가 바로 이들인 것이다.
그런 하동윤의 발언은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인류에게 가장 많은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코어 등급이 뭔 줄 아십니까? 바로 F등급군입니다. 이 F등급군은 에너지의 발생량이 적기는 해도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비각성자들에게도 헌터 면허를 발급해서 이를 집중적으로 수급했던 것이죠. 1층부터 3층까지만 오르내려도 수급에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음.”
“허나 화이트홀이 빈번하게 생성되면서 이제는 일반인이 1층을 돌파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1층의 고블린은 과거 걸어 다니는 보너스로 쳐줬죠. 하지만 이제는 그 개체 하나가 가지고 있는 완력이나 맷집이 어지간한 오크 전사와 비슷할 정도입니다.”
“……오크 전사는 5층에 서식하는 몬스터인데요?”
“네, 맞습니다. 고블린이 화이트홀 현상으로 인해 그만큼 강력해진 것이죠.”
“그럼 몬스터들에게 5배의 전투력 증가가 있었다고요?”
“모두가 그런 것인지, 1층부터 3층까지만 그런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투력 강화는 확실한 것 같더군요.”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하동윤을 쳐다보았다.
특히나 윤시혁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아니, 그럼 아수라 길드가 비각성 랭커들을 먼저 보낸 건 뭡니까?”
“길라잡이는 관행과 같은 겁니다만?”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랭커 집단 80%를 투입시켜요? 하필이면 지금 이때에?”
“…….”
그 오만하던 아수라 길드가 말이 없어졌다.
아마도 그들은 이번 화이트홀 사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수라가 침묵하자, 각 길드의 시선이 첨예하게 갈렸다.
주현태는 잠시 싸늘해진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로 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하시죠.”
휴식이 선언되자 회의실에 모였던 헌터들이 제각기 흩어졌다.
천리안도 그제야 한숨 돌리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주현태는 부하들과 행사장 뒤편에 있는 전용 휴게실로 향했다.
기획공조과 일원들이 주현태에게 물었다.
“……아수라 길드 놈들, 뭔가 있어요. 쉘터 구축에 지나치게 네거티브한 것도 그렇고요.”
“저 새끼들,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뭘 말입니까?”
“던전의 몬스터 레벨이 상승된 거. 그런데 얼마나 강해졌는지 감을 못 잡으니까 블랙하운드 같은 비각성 랭커들을 실험용 쥐로 삼은 거지.”
“허어!”
“기다려 봐. 왕거니 하나 올라올 거야. 황금성녀에게 의뢰를 해 놨거든.”
“……황금성녀요? 금성탑에서 황유나의 독단 행동을 허락했을 리가 없잖습니까?”
“황유나의 개인적 일탈 행위라고 생각하면 편할 걸세. 그녀는 탑에서 찾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수사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의뢰를 성사시켰지.”
“아아……!”
주현태가 주먹에 힘을 꽉 주었다.
“……아수라, 저 새끼들에게 뭔가 구린 데가 있어. 그게 뭔지 한번 캐보자고.”
***
마법인지 조명탄인지 모를 무언가를 알아보러 가는 길.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다가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신원 미상의 남자가 태하를 따르고 있었다.
“……랭커죠, 그렇죠?! 이런 그레이트한 탱킹은 랭커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해요! 그렇죠?!”
“으음! 랭커는 아닌데요.”
“아하, 그럼 절대 방어형 탱커?! 무슨 특수한 튜닉 같은 걸 사용하시나요?!”
“아니요. 모든 게 다 근육 덕분이죠.”
“네, 근육이요? 에이, 무슨 그런 농담을.”
당연히 믿지 못할 말이다.
무슨 근육을 키운다고 탱킹이 좋아지겠는가.
“확실히 몸이 좀 그레이트한 것 같기는 한데……. 뭐, 그건 그렇고, 혹시 아수라 길드의 길드원이신가요?”
“그건 아니고. 아무튼, 이제부터는 각자 갈 길 갑시다.”
태하는 아직 누군가를 지켜 줄 처지가 아니다.
괜히 이상한 여지를 주었다가 아까운 목숨 하나 날릴 수는 없지 않은가.
허나 이 남자는 눈치가 빨랐다.
“헌터님!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제가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사인을…….”
“요즘은 연예인보다 헌터가 더 그레이트하잖아요! 사인 좀 해 주세요!”
“저 말이죠, 전혀 안 그레이트합니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그럼 이만.”
“……저, 그럼 이번 층까지만이라도 동행하게 해 주세요.”
그제야 태하는 찬찬히 남자를 살폈다.
165cm의 다소 작은 키에 왜소한 몸집, 피부는 하얗고 광이 잔뜩 났다.
던전과는 아예 상극인 관상.
다만 눈빛 하나는 정말 초롱초롱했다.
태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우, 좋습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번 층까지만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던전이랑은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남자가 도대체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왔어요?”
“스타팅 캠프의 보안업체 하청으로 들어왔는데, 캠프가 무너져서 그만…….”
“……캠프가 무너져요?”
지금까지 스타팅 캠프가 무너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비록 허술하게 생기긴 했어도 피그마 무리 정도는 막아 낼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아까 본 언데드 무리였다면 스타팅 캠프가 짓밟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생존자는요?”
“……없어요.”
“그럼 당신은?”
“운이 좋았어요. 저는 하청업체 알바라서 식사 배달이나 해 주면 되거든요. 몬스터가 습격했을 때 취사장에 있었는데, 창문으로 얼핏 보니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그 틈을 타서 도망쳤죠…….”
말을 하는 내내 남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남자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무서웠어요. 캠프 가드 중에 제가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는데 지켜 주지 못했어요. 킁! 캠프에 들어간다고 엄마가 비싼 활에 장비까지 사 주셨는데도 써 보지도 못했다고요. 훌쩍!”
“그래요, 약하다는 건 무척이나 서러운 일이죠.”
“서럽죠……. 하지만 헌터님은 공감하기 어렵겠네요. A급 헌터는 강하잖아요.”
“A급이요?”
“헌터님 말이에요.”
각성자 중에서 탑에 오르는 상위권 탱커는 A급으로 분류된다.
파티를 구성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직업군은 탱커과 힐러였기 때문이다.
만약 능력이 출중하다면 S급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시네요. 저는 F급입니다만.”
“……F급이요?”
“네. F급입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기에 태하는 F급임을 당당히 밝혔다.
남자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에이, 거짓말!”
“허어. 진짠데.”
“F급 헌터가 무슨 스켈레톤한테 얻어맞고도 멀쩡해요? 일반인 같았으면 벌써 병원에 실려 갔을 거라고요.”
“그게 말입니다…….”
“그래요, 그래요! 알겠어요. F등급이라고 칠게요.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음.”
“헌터님은 참 겸손하시기도 하네요! 아, 부럽다! 나도 그레이트한 F등급이 되어 보고 싶다!”
도무지 말할 틈을 주지 않는 사람이다.
태하는 요즘 보현 관장 말고는 사람을 통 안 만나서 그런지 이런 인싸가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황금빛 조명탄, 혹은 마법 구체가 발사된 곳을 찾아 계속해서 걸었다.
남자는 그런 그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헌터님은 안 나가세요?”
“나가다니요?”
“던전이요. 나갈 때가 된 것 같아서요.”
“돈 아깝게 던전을 왜 나갑니까?”
“허어, 지금 이 상황에 던전을 안 나가신다고요?”
“최소 11층까지는 올라갔다가 내려가야지요.”
“……역시 그레이트 인자강은 다른 건가?”
그는 태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허나 그러다가 혼자서 뭔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무릎을 쳤다.
“아하! 그랬지! F등급 헌터님은 그레이트하시니까!”
“네? 뭐가요?”
“아니, 아니에요!”
“아무튼, 내려가고 싶으면 가세요. 저는 계속 가야 해서요.”
“가, 같이 가요! 저, 이제부터 헌터님 쫄 할래요!”
“쫄이요?”
“제가 힐 능력은 없지만 쫄법사 뺨치게 서포트 할 수 있다고요!”
가끔은 이렇게 고등급 헌터들 사이에 섞여서 자잘하게 힐링 마법이나 걸어 주거나 메디테이션 오러 같은 것을 걸어 주며 레벨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태하는 쓰게 웃었다.
“음, 미안하지만 필요 없는데요.”
“……쫄이 필요 없으시다고요? 그럼 짐꾼은요?”
“그것도 좀…….”
“쫄 격수는?!”
“……유감입니다.”
어쩔 수 없다.
레이드는 애들 장난이 아니지 않던가.
태하는 실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에게 물었다.
“아까 제가 약한 거 이해 못 한다고 하셨죠?”
“네, 그랬죠…….”
“아닙니다. 저, 충분히 약합니다. 몰라서 그러시는데, 저 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사실 말만 탱커지, 하층에서 노는 고인물일 뿐이라고요. 그러니 괜히 저를 따라왔다가는 아까운 목숨만 버릴 겁니다.”
이제는 자신감 있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괜히 헛바람만 키웠다가 나중에 저 사람이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태하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바로 그때, 남자가 빽 하고 소리쳤다.
“……나도 강해지고 싶어요!”
“뭐라고요?”
“그래요, 이 활도 사실 장식품에 지나지 않아요! 젠장,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던전에서 걸뽀 취급이나 당하고 싶지 않다고요!”
진심이 느껴졌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강해지고 싶었던 태하만큼이나 이 남자 역시 그토록 강함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감동한 자가 있었으니…….
[탑의 수호자가 동료의 의지에 감동했습니다]
[파생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패시브: 인연의 사슬 - 원 플러스 원!]
[당신이 지정한 대상을 동료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면 동료 지정 상한이 늘어납니다]
[동료1에 대한 보너스: 스킬 레벨, 경험치 획득 +100%]
[동료의 레벨이 상승하면 보너스도 상승합니다]
‘……파생 스킬이라니?’
[‘원 플러스 원!’에 대한 보너스]
[파트너에게 스킬 ‘점진적 과부하’ 및 ‘기회의 창’이 일부 적용됩니다]
[파트너가 득근하면 당신도 함께 득근합니다]
[단, 파트너가 근 손실을 입으면 본인도 근 손실을 입습니다]
[강해지고 싶으면 목숨을 거십시오. 그리고 동료와 그 생사고락을 함께하십시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파생 스킬이 생성되다니, 태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허나 이게 포기할 수 없는 스킬이라는 게 문제였다.
‘……풀액셀 타이밍이 하필 지금 오나? 젠장, 그래도 2배는 못 참지!’
태하는 별수 없이 입장을 바꾸었다.
“……갑시다, 그럼.”
“오오, 그레이트!”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강해지려면 목숨을 거세요.”
“목숨을 걸라고요?”
“이제부터는 목숨을 걸고 풀액셀 밟는 겁니다. 할 수 있어요?”
남자는 거침없이 답했다.
“네!”
“좋습니다. 같이 헬창이 되어 봅시다.”
“……헬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