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헬창 투게더(1)
-그르르르!
단숨에 5층까지 오른 태하를 갑옷을 입은 무식한 멧돼지 인간, 바로 오크 전사가 가로막았다.
덩치는 태하의 약 2배 이상, 완력으로 따진다면 성인 남성의 4배 이상이었다.
이런 괴물들이 즐비한 곳에서 태하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오크들이 어디서 단체로 PT를 받나? 왜 이렇게 벌크업이 되어 있어?”
1층에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몬스터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덩치가 상당히 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이렇게 단시간 내에 커졌다니, 운동 루틴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허나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일단 돌격이다.
태하는 바닥의 돌멩이를 발로 차서 오크 전사의 눈에 명중시켰다.
따악!
-그르으으으!
“간다!”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동시에 그대로 오크 전사의 미간을 향해 니킥을 날렸다.
[대퇴사두가 강화됩니다]
[둔근이 강화됩니다]
빠각!
이제는 집중 고립이 아주 자유로웠다.
온몸을 조각조각 나눠서 따로 힘을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해당 부위를 고립하여 강화시키는 엄청난 효율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다만 아주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부웅!
눈으로는 분명하게 보이는 공격.
허나 그걸 피하는 순발력이 모자란다는 느낌이 든다.
빠각!
-크헤헤!
“크윽, 젠장.”
[민첩성: -7%]
[순발력이 감소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다지 큰 타격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만약 위기의 순간에 페널티 때문에 공격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면?
“젠장, 스킬에 붙은 마이너스 때문에 몰매를 맞을 수도 있겠는데?”
일단 눈앞의 몬스터를 때려잡는 게 우선이다.
허나 문제는 또 있었다.
-크웩……!
단말마의 비명, 허나 오크 전사는 아직 살아 있었다.
“……젠장, 역시 딜이 부족해.”
그는 니킥을 연거푸 날렸다.
일타, 이타, 삼타.
심지어는 초당 두 대의 속도로 10초 내내 니킥을 갈겨야 오크 전사의 골통을 부술 수 있었다.
퍼버버벅!
푸하아아악!
그제야 분수처럼 터지는 붉은 선지, 그것은 마치 물풍선이 터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을 보는 태하의 머리에 찰나의 번뜩임이 내려앉았다.
“……풍선!”
순간, 태하의 뇌리에 보현 관장의 한마디가 스친 것이었다.
‘코어의 근육을 호흡으로 부풀리면 무게는 호흡으로 밀어낼 수 있어. 마치 풍선처럼 말이야.’
태하는 코어에 힘을 바짝 주었다.
“흐으으읍!”
한껏 숨을 삼키자 온몸의 미토콘드리아가 폭발적으로 강화되었다.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사용하여 ATP라는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이를 통해 신경계에 원활하게 신호 전달이 이뤄지는 것인데, 태하는 그것이 강화된 신체 기관에 직접 전달되어 신체의 통상 효율의 4배에 달하는 힘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빠각!
하이킥 한 방에 오크 전사의 두개골이 함몰되어 버렸다.
-끄웨에에엑…….
“오오! 된다!”
관장은 항상 코어를 강조하곤 했었다.
단순히 심미적으로 좋아서가 아니라 모든 운동에는 코어가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가르침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몬스터를 때려잡는 레이드에서조차도 말이다.
“근육 만세! 헬창 포에버!”
태하는 근육이 곧 진리라는 것을 점점 절감하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레벨업하셨습니다]
[F골드 - 레벨 2로 변경됩니다]
“벌써 레벨업인가?”
보통은 탑을 서너 번은 들락거려야 레벨업을 한다고 했는데, 태하는 듣던 것보다는 훨씬 레벨업이 빨랐다.
즉, 성장이 3배 정도 빠르다는 뜻이었다.
[스킬 레벨이 각각 1레벨씩 상승합니다]
[레벨업 보상: 신체 능력 상승 - 5% 영구 증가]
아무리 죽을 똥을 쌌어도 보상은 달콤했다.
이대로면 스킬로 받은 페널티를 일부 복구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계속되는 보상에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스킬 ‘인연의 사슬’에 의하여 보상치가 상승합니다]
[스킬 레벨이 각각 2레벨씩 상승합니다]
[레벨 2 달성으로 새로운 시드 액티브 스킬을 취득하셨습니다]
“오오……!”
[스킬: 부여]
[타인이나 생명체에게 ‘강화’ 스킬을 한시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단, 신경 물질로 이뤄져 있거나 신체 대사가 이뤄지는 대상에게만 적용이 가능합니다]
첫 사냥치고는 정말 쏠쏠하기 그지없었다.
***
한바탕 사냥이 끝나고 태하는 그대로 자리를 잡아 식사를 했다.
식사는 평소와 같이 닭가슴살에 채소, 그리고 현미와 고구마를 곁들인 보디빌딩 식단이었다.
“……치킨이다, 이건 치킨이다…….”
그나마 닭가슴살을 치킨이라고 최면을 걸면 좀 나을까 싶었다.
물론, 그런다고 맛이 나아지진 않는다.
“여전히 텁텁하네. 자괴감 들게 하지 말고 그냥 먹을걸.”
점심에는 연어와 고등어로 된 식단이다.
그나마 닭가슴살보다는 먹을 만해도 몬스터 피비린내와 섞이면 그야말로 최악의 식단이 될 것이었다.
허나 그렇게 먹는 게 고역스러워도 참고 견뎌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득근이야말로 태하를 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었으니까.
식사를 마치고 입가심으로 닭가슴살 육포를 씹고 있는데.
우두두두두……!
어디선가 땅이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누가 말이라도 타고 다니나?”
던전 내부에는 내연기관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돈이 마빡에 튀는 금수저들은 말을 타고 다니기도 했다.
허나 그렇다곤 해도 그게 말처럼 흔한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질겅질겅 닭가슴살 육포를 씹고 있던 태하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낌이 별로 좋지 않은데?”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던전 6층 입구 부근에서 뭔가 조명탄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이상하네? 던전에는 화기를 들고 올 수 없는 것 아니었나?”
몬스터에게 총질이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화기가 던전의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폭발하는 사례가 워낙에 많아서 쏴 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건 조명탄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마법……인가?”
그렇지 않고선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았다.
잠시 멍해져 있던 태하에게 전해지는 더욱 또렷한 진동, 그리고 이내 밝혀지는 진동의 정체.
-끄어어어어……!
“언데드?!”
일전의 레이드에서 보았던 언데드들의 향연이 지금 이곳 5층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언데드의 숫자는 대략 150~200마리 남짓.
태하는 질겅질겅 씹던 닭가슴살을 꿀꺽 삼켰다.
“에잇, 밥 먹고 바로 움직이면 근 손실 나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10층에서 당했던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눈앞에 오지 않았던가.
우득!
꽉 말아 쥔 주먹을 내려다봤다.
가진 것이라곤 두 주먹뿐이지만 태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복수다, 이 썩어 빠진 시체 새끼들아.”
전력 질주하며 달려오는 언데드들을 향해 태하는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언데드의 무리 앞에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도주 중인 남자가 있었다.
“으아아아아!! 살려 주세요!”
“사람……?!”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띈 좀비의 목을 부러뜨렸다.
퍽!
푸하아아악!
사방으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그러자 어그로가 끌린 언데드들이 남자를 추격하다 말고 태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끄워어어어!
“그래 봤자 해골바가지지!”
곧이어 다른 먹잇감을 찾아 엘보스핀을 때려 박았다.
[광배근이 강화됩니다]
태하에게 광배근은 힘의 원천이다.
광배근만큼은 자신이 있었고, 실제로 탄력을 실어서 때리는 엘보스핀의 강력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빠가각!
“역시, 근육이 짱이지!”
역시 강력한 근육만 한 것이 없다.
다만, 그 후폭풍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게 문제랄까.
-끄어어억!
퍽!
해골바가지로 홈런을 쳤지만, 그 즉시 언데드들의 반격이 이어졌다.
퍼버버버벅!
한 대 때렸을 뿐인데 무려 십 수 대나 되는 몰매를 맞으니, 이 어찌 공평한 싸움이라 하겠는가.
“……이런 치사한 새끼들!”
맞는 건 그렇게 아프지 않은데 몽둥이가 만들어 내는 충격은 이겨 낼 수가 없었다.
마치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기라도 한 듯,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순간, 태하의 눈에 저 멀리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바가지가 수정구를 매만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태하는 저놈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 새끼, 네가 대가리로구나!”
대장을 발견하긴 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태하의 옆구리를 날붙이 같은 것으로 찔러 대기까지 했다.
푸욱, 푸욱!
“크윽! 씨부랄 새끼들, 치사하게 쪽수로 밀어붙이다니!”
바로 그때, 태하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딩동!
[파생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파생 스킬?”
[패시브: 인연의 사슬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인생의 쓴맛을 모르는 자는 인생의 단맛도 알지 못합니다]
“어라? 어디서 본 것 같은…….”
[당신의 인생이 굴곡질 때마다 바벨의 흑막은 흥미로워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지독한 긴장감이 유발되고 있습니다]
[바벨의 흑막이 당신에게 몰입했습니다]
[흑막의 보너스: 5분간 신경 물질의 활성화를 통해 오감, 그리고 육감이 발달합니다]
[흑막의 보너스 - 남은 시간: 04:59……]
도대체 이 스킬을 내려 주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언제 기회가 된다면 얼굴 한번 보며 따지고 싶은 태하였다.
“……어휴, 내가 진짜 스킬이 좋아서 참는다!”
오감이 발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모든 신체 능력이 일제히 상승한다는 뜻이다.
부우우웅…….
방금까지만 해도 어지럽게 날아들던 해골바가지들의 몽둥이질이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마치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듯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주변의 모든 것들. 그중에서도 태하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뒈져라!”
빠각!
우람한 태하의 팔뚝이 좀비의 죽빵을 후려갈기자, 놈이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사방으로 혈액을 분사해 댔다.
그 틈을 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아킬레스건을 강화합니다]
100m 선수들은 일반인들보다 아킬레스건이 강화되어 있다.
아킬레스건이 수축했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용수철처럼 강력한 힘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이 능력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인간은 빠른 주력을 갖게 된다.
타앙!
마치 총알이 발사된 듯이 진격하는 태하.
쐐에에에엥!
무려 후폭풍이 생겨날 정도의 도약.
민첩성 페널티를 받았음에도 이 정도였다.
태하는 주먹으로 놈의 얼굴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근육 불패!”
콰앙!
그러자 놀랍게도 주변에 권풍이 일어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이 놈을 압도했다.
-크헤에엑!
그야말로 로켓 펀치가 따로 없었다.
스스로 주먹질을 하고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뜰 정도였다.
하나 놀라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그는 당장 놈에게서 수정구를 빼앗은 후, 그것을 발로 밟을 작정으로 바닥에 내팽개쳐 버렸다.
쿠웅!
그러나 놀랍게도 이 유리 수정은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공처럼 튀어 올랐다.
이윽고 태하의 배낭으로 흡수되는 수정구.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뭐지?”
수정구가 회수되자, 마법사 스켈레톤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언데드 무리가 일거에 파괴되었다.
푸하아악!
그 자리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죽어 가는 언데드들.
그리고 이어지는 메시지들이 있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아이템 카운터: 149]
[아이템 카운터: 150]
‘……뭐야, 이거?’
아이템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150마리를 모두 죽였다는 것이 인정되는 듯, 태하의 경험치는 금세 상승해 버렸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계속해서 레벨도 상승한다.
“……개꿀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