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기회의 창(2)
이른 아침부터 동네 헬스장에서 악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가슴, 가슴으로 밀란 말이야!”
“으으윽……!”
“컴온, 집중해! GO-RIP에서 GO를 빼면 바로 Rest In Peace야! 잊지 마라! 고립은 생명이다!”
“RIP이 그런 뜻이었어요……?”
“헤이, 맨! 태하, 호흡! 호흡에 신경 써!”
보디빌딩과 파워리프팅의 가장 큰 차이는 ‘고립’이다.
보현 관장이 고립을 얼마나 강조하면 티셔츠에도 ‘GO-RIP’이라고 쓰여 있을까.
무조건 무거운 쇳덩이만 든다고 근육이 커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로지 한 부위만을 따로 고립시켜서 운동시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근섬유의 손상에서 얻어지는 근 비대가 바로 근 성장의 원리인 것이다.
“허억, 허억! 플렛 덤벨프레스가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는데…….”
“타점을 못 찾아서 그래.”
“흐음…….”
초보자, 심지어는 중급자들까지도 가슴 운동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타깃 부위로의 정확한 자극 전달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격에 빗대면 조준선 정렬 및 클리크 수정이 잘 안 되었다고나 할까.
“자, 가슴을 봐. 망치로 한 대 맞은 것처럼 중앙 부위만 푹 꺼져 있잖아. 하지만 상대적으로 상부는 잘 발달되어 가는 느낌이지.”
“어라? 정말 그러네요.”
“가슴 운동을 하면 가슴이 움직여야 해. 그런데 자네는 근본적으로 그게 안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움직인다……?”
솔직히 태하는 가슴으로 덤벨을 밀라는 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건 마치 서울대 다니는 학생이 ‘예습 복습을 잘했더니 서울대에 붙었어요!’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보현 관장은 그런 태하에게 결정적인 가르침을 주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자. 가슴에 힘을 줄 때 어떻게 주지?”
“흉곽은 열고 어깨를 쫙 펼쳐서 팔을 뒤로 보낸다는 느낌으로…….”
“아니, 평소에 보디체크는 꾸준히 할 거 아니야.”
태하는 팔을 가슴 쪽으로 최대한 모아 주었다.
마치 쥐어짠다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결국, 답은 뭐다? 각도다!”
“각도요?”
“팔이 벌어지면 각도가 죽어 버려. 이두가 가슴에서 멀어지는 거지. 한마디로 쥐어짜 낼 수가 없어.”
“아하!”
“어떤 운동이든 다 똑같아. 바가 몸에서 멀어지면 힘이 빠지고 각도가 너무 넓으면 자극이 오지 않지.”
생각해 보면 벽을 손으로 민다고 가정했을 때, 팔을 활짝 벌려서 밀지는 않는다.
그러면 힘이 빠질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이 간단한 진리를 잊고 있었다니!’
관장은 대흉근이 웅장해진 태하에게 한 가지 팁을 더 주었다.
“무게는 호흡으로 밀어 버려! 내가 항상 강조하지? 코어를 단련하라고. 코어는 모든 운동의 원천이야. 코어의 근육을 호흡으로 부풀리면 무게는 호흡으로 밀어낼 수 있어. 마치 풍선처럼 말이야.”
“……풍선!”
흔히 헬스는 구력과 상관이 있는 운동이라고들 한다.
태하는 그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다음 세트에서 태하는 보현 관장의 말처럼 온 무게를 가슴에 얹고 견갑과 팔이 하나로 묶인 듯, 위아래로 수직 운동을 했다.
‘코어를 풍선처럼……!’
어깨에 힘이 빠진 듯, 온 무게가 전부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자극이 찾아왔다.
콰직!
‘……느낌 죽이네. 이것이 바로 진짜 고립이라는 건가!’
고립의 노하우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것이 바로, 운동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완전한 정석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액티브 스킬 ‘변형’의 하위 스킬이 해금됩니다]
[변형 Vol.2]
[액티브 스킬 2-2가 대흉근에 장착됩니다]
[액티브 스킬 2-2에 대한 보너스]
[지구력 +2%]
[액티브 스킬 2-2에 대한 마이너스]
[민첩 -4%]
순간, 태하의 가슴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무게에 저항하면서 근육을 쭉 늘여주자, 엄청난 강도의 미세 손상이 생겨났다.
이러한 미세 손상 속에서 태하는 완벽한 단백동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근육의 성장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아홉, 열!”
쿠웅!
바닥에 65kg짜리 덤벨을 집어 던지는 태하.
[스킬 ‘기회의 창’에 대한 영향으로 ‘변형 Vol.2’가 성장합니다]
[변형 Vol.2: Lv.2]
[근육에 대한 타격치 상승: +2]
보현 관장은 태하의 근육이 움직이는 결만 보고도 그가 어떻게 운동했는지 금방 알아챘다.
“호우우우! 중간에 몇 번 삑사리가 나기는 했는데, 얼추 제대로 된 고립이로군! 결이 살아 움직이잖아! 아주 만족스러워!”
“이대로 쭉 밀어 볼게요!”
“오케이! bcaa 한 잔 빨고 다시 운동하자고!”
잠시 쉬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보다 훨씬 더 가슴에 자극이 많이 느껴진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파생 스킬을 습득하셨습니다]
[액티브 스킬: 강화 - 집중 고립]
‘집중 고립?’
[신체 중 어느 특정 부위만 따로 집중시켜 고립합니다]
[집중 고립을 연계할 수도 있습니다]
‘……집중 고립을 연계한다?’
운동이 끝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선 태하에게 보현 관장이 물었다.
“태하야, 혹시 무슨 스택 같은 걸 돌리니?”
“스택이요?”
“케미컬 말이야. 아나볼릭이라든지 성장호르몬이라든지…….”
“아하, 스테로이드요?”
“그래. 네 몸 말이야. 어지간한 지역 대회 아마추어 선수 정도는 되는 것 같거든? 그런 몸은 사실 단기간에 만들기 힘들어.”
지금 태하는 정말이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단단한 갑옷으로 중무장을 했다고나 할까?
이런 몸이 단기간에 나오는 건 사실상 무리가 있는 일이긴 했다.
태하는 관장이 오해할까 봐 얼른 답을 해 주었다.
“허이, 참. 관장님도. 제가 스테로이드 꽂을 돈이 어디 있어요?”
“그럼…….”
“실은 제가 각성을 했는데 말입니다…….”
대충 아나볼릭 상태가 유지되며 신경 강화에 대한 특전이 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그러자 보현 관장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오마이갓! 헬스 신이 보우하셨네!”
“허어, 헬스에도 신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이럴 게 아니라 이번에 헬스 매거진에서 보충제 서포터즈를 기획한다는데, 너도 한번 지원해 보자! 보충제, 도시락을 평생 무료로 준다고 하더라.”
“밥을 공짜로 준대요?”
“그럼!”
“그렇다면야 당장 해야죠! 할게요, 관장님!”
“오케이, 좋았어!”
그렇게까지 큰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헬스에도 분명히 돈이라는 게 들긴 한다.
게다가 집중적으로 근육의 사이즈를 계속해서 늘리자면 보충제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그걸 커버해 준다니, 태하로선 땡큐였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행잉 레그레이즈 10세트!”
“넵! 코어는 소중하니까!”
“오케이 베이비! 코어는 소중하니까!”
관장은 모든 힘이 코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레그레이즈나 플랭크 같은 코어 강화 운동을 반드시 시키곤 했다.
이윽고 운동이 끝나기 30분 전에 보충제를 마셔 주었다.
[패시브: 기회의 창]
[올바른 비료의 사용은 밭을 비옥하게 하듯, 올바른 보충제 섭취 타이밍은 강인함의 그릇을 넓히는 지름길입니다. 탑의 수호자가 절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단백질의 흡수율이 100%로 증가합니다]
‘좋았어!’
몸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태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스킬을 얻었으니 한번 써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한번 해 볼까? 그 집중 고립이라는 거.”
지금까지 태하는 보현 관장에게 철저한 근육의 고립을 배웠다.
만약 집중 고립이 연계의 관점에서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느티나무에 잽을 치는 태하.
타악!
잽은 스트레이트 펀치와는 다르게 주먹을 가볍게 던진다는 생각으로 치는 공격이다.
이때 어깨와 팔, 가슴, 손목, 주먹 등 잽에 필요한 근육만 따로 단련되면 놀라운 결과가 벌어진다.
[스킬: 집중 고립 Lv.1]
[신체의 에너지 전달 사이클을 고립 부위에 집중시킵니다]
[고립 시 집중도 상승력: 35%]
[타격 효율 상승도: +115%]
촤락, 콰앙!
마치 채찍으로 나무를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다.
잽 한 방에 후폭풍이 느껴질 정도였다.
“……엄청난 위력이다!”
어떤 동작을 할 때 온몸 전체에 힘이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필요한 근육들이 적재적소에 움직여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뺄 때는 빼 주고 넣어 줄 때는 넣어 주는 스킬, 그것이 바로 진정한 파이터의 미덕인 것이다.
태하는 그런 면에서 엄청난 특전을 받게 된 셈이었다.
그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좋아, 풀액셀 한번 밟아 보자!”
***
운동 시작 100일 차.
태하는 100일을 기념으로 바벨탑에 올랐다.
-키헤헤헤!
구름처럼 모여든 고블린이 태하를 반긴다.
1 대 50의 싸움, 만약 사람과 사람이 이런 비율로 싸웠다면 이건 명백한 다구리다.
비열한 웃음과 함께 손바닥에 방망이를 올려놓고 탁탁 두드리는 고블린을 노려보며 태하는 스텟부터 확인해보았다.
“흠, 보자.”
[힘: 411(+5.99%)]
[민첩: 81(-4.8%)]
[체력: 50]
힘 스텟 1이면 대략 무게 1kg을 들 수 있고 민첩 1이면 서전트 점프를 0.05m 뛸 수 있으며 체력 1이면 라이프 수치 10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태하의 1rm은 411인 셈이다.
“고블린 정도면 적당하겠지?”
고블린은 바벨탑에선 임프, 코볼트와 함께 3대 잡몹으로 불리는 최약체 몬스터다.
허나 떼로 몰려다니면서 숫자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일대 다수의 싸움은 던전에서는 신물이 날 정도로 흔하게 겪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앞으로의 전투법을 구상하기엔 고블린보다 좋은 상대도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액셀 한번 시원하게 밟아 보자!”
상당히 빠른 쇄도, 고블린들은 태하의 잔상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부웅!
오늘따라 몽둥이질이 제법 매섭다.
허나 태하는 허무할 정도로 고블린의 공격을 쉽게 흘려 버렸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체 능력이 일반인에 비해 족히 2배는 상승한 태하를 고블린과 같은 잡몹이 때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쭈, 너희들도 헬스 끊었냐? 어째 저번보다는 좀 빨라진 것 같은데.”
-키헤?
느낌 탓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고블린의 덩치도 저번보다는 제법 커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허나 그래 봤자 고블린은 고블린이다.
“가슴이랑 등은 이래서 키우는 거지!”
순간, 태하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했다.
마치 돌덩이처럼 단단해진 태하의 근육, 그것이 뼈를 꽉 물고 단단해져서 마치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철근골조 건축물과 같이 어마어마한 강도를 만들어 냈다.
그런 신체에 전달되는 스킬.
[강화: 공격 행위 전반에 필요한 근육들을 강화합니다]
[펀치 압력: 3.2ton]
쿠우웅!
마치 단단한 옹벽에 고블린 대가리를 내려찍은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태하의 주먹이 고블린의 안면에 꽂혔고 놈의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 사방으로 녹색 강냉이의 향연을 연출해 냈다.
“……좋은데? 힘이 확실히 좋아졌어!”
근성장의 결과가 명확하게 보였다.
보통은 근육의 사이즈를 키우면 스피드는 다소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태하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근육량은 2배 이상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스피드와 반사 신경은 2.5배 이상 빨라졌다.
주먹 한 방에 이어서 바로 이어지는 라이트스트레이트 펀치.
빠각!
“이걸로 두 놈!”
-크헤엑!
고블린들이 깜짝 놀라서 태하를 쳐다본다.
무슨 곰탱이처럼 몸을 불려선 움직이는 건, 물 찬 제비와 같았으니 말이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고블린이 죽는 족족 아이템이 떨어진다.
이 아이템은 태하의 배낭으로 직접 들어가게 되어 있다.
던전에서 사냥을 하다 보면 바닥에 코인이나 골드, 혹은 아이템이나 코어 같은 것이 떨어지게 된다.
샌드타워에서 종종 발견되는 이 배낭이 그것을 마치 자석처럼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앗싸, 득템!”
주먹질은 이 정도면 준수했다.
이번에는 하이라이트인 맷집을 시험해 볼 차례였다.
태하는 두 팔을 벌렸다.
“자, 때려라!”
-키헤헤헤……?
약간 주춤거리는 고블린들.
그러나 용기를 낸 고블린 한 마리가 태하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음……!”
-키헤? 키헤헤헤!
고블린들은 때려도 가만히 있는 태하를 미친놈이라고 비웃으며 몽둥이찜질을 시작했다.
빠각!
“……어흑! 좀 아픈데?”
타격 저항이 생겼다고 했는데 분명히 아팠다.
혹시나 해서 한 대 더 맞아 보았지만 그래도 아팠다.
빠가각!
“제, 제기랄.”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바로 수축의 부재.
“아하! 수축을 해야 타격 저항이 생기는 거구나!”
모든 길은 근육에 있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근육을 수축시킨 채 두들겨 맞아 보았다.
퉁퉁퉁퉁!
타격이 1도 들어오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강화 스킬까지 적용된다면?
“드디어 알아냈다!”
고블린을 정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일일이 주먹으로 고블린을 정리했다.
빠각!
“이놈아, 해머컬이다!”
-끄웨엑!
“나도 한다면 하는 남자라 이거야!”
다만, 모든 공격이 단일 딜이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략 30분이 걸려 고블린을 정리했다.
“다 좋은데, 뭐랄까, 딜이 좀 부족하달까?”
이것은 모든 탱커들이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방어력에 집중하니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허나 이제부터는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태하. 그렇다면 전투법을 바꿀 때가 온 것이다.
태하는 생각했다.
탱커와 근딜, 그 2개를 합칠 수 있다면……?
“탱킹과 원터치. 그래, 그거다! 그럼 탱딜로 진화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