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화 (1/197)

프롤로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스킬을 하나 얻었다.

그런데 이 스킬, 어쩐지 심상치가 않다.

뭐랄까, 신박한 아나볼릭이라고 해야 할까.

001 각성, 아나볼릭(1)

사고였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 그리고 파도와도 같았던 괴물들.

“……대장, 숨 좀 쉬어 봐!”

“제기랄! 응급 키트 가져와! 빨리!”

“이런 썩을! 언제부터 10층에 언데드들이 출몰한 건데?!”

던전의 유려한 불빛들이 눈앞에서 바스러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야는 흐릿했고 피떡이 되어 버린 몸뚱어리는 도저히 움직일 기미조차 없었다.

“쿨럭!”

푹 꺼져 버린 흉곽이 들썩일 때마다 울컥 피가 차올라 숨 쉬는 것조차 쉽지가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이 가까워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허무하다.’

사거리의 점멸 신호처럼 깜빡거리는 의식 저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던전의 입구.

[11층]

인간의 한계라는 저곳을 넘기 위해서 무려 15년이나 달려왔다.

허나 태하는 매번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재능 없는 흙수저 새끼는 죽어도 안 된다 이거야?’

몸을 만들면 될까 싶어서 죽어라 운동도 했고,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대학에서 연구도 해 봤다.

그런데도 던전은 여전히 각성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아수라 길드가 20층을 돌파했대.”

“……이런 빌어먹을. 우리는 10층에서 해골바가지들한테 실컷 다구리 맞는 동안 그놈들만 노났다고?”

6명의 동료들이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리가 태하의 귓전까지 들린다.

당연한 일이다.

누구라도 던전 돌파를 위한 미끼는 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젠장, 그나저나 갑자기 웬 언데드지?”

“저 아수라 새끼들 말이야. 언데드 웨이브가 터질 줄 알고 우리를 하청으로 끌어온 거 아니야?”

“잠깐. 그럼 우리는 그저 고기 방패였단 말이 되잖아?”

오늘 하청으로 들어온 사람들만 100명이 넘는다.

어쩐지 길라잡이치고는 너무 규모가 크다 싶었더니, 기어이 이런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항상 이런 식이었어. 씨부랄 새끼들, 잔챙이 하청이 뒈지거나 말거나 저놈들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지.’

이윽고 몸에 힘이 쭈욱 빠지기 시작했다.

한계가 온 게 분명했다.

“아아아…….”

“대장, 안 돼! 정신줄 놓지 마!”

절로 이가 갈린다.

열다섯 살 때부터 배곯아 가며 악착같이 버텼던 게 너무 아까워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도대체 그깟 재능이 뭐라고.

그 한 끗 차이로 천당과 지옥이 나뉜다는 건 너무나도 억울한 일 아니던가?

‘하다못해 나무꾼한테도 은도끼 금도끼 주는 산신령이 나타났는데, 나처럼 평생 X밥으로 살아온 억울한 인생에게는 그런 것도 없는 거야? 그런 거야?’

어떤 새끼들은 각성 신이 보우하사 저렇게 온갖 질서를 유린하며 살아도 던전에서 탑티어 찍으며 살아간다.

인생은 정말 운빨존망겜인 것일까?

“쿨럭! ……나도 좀 강해져 보자! 젠자아앙!”

“대, 대장?”

강함에 대한 집착, 혹은 발악. 그런 것이 폭발했다.

바로 그때.

팟.

주변이 멈추었다.

공기의 흐름, 동료들의 표정, 심지어는 시간마저도 멈춘 것 같았다.

이윽고 태하의 앞에 나타난 흰색 두루마리와 검은색 두루마리.

[탑의 수호자가 당신의 간절한 염원에 성원을 보냅니다]

[바벨의 흑막이 당신의 간절한 염원에 넌지시 관심을 보입니다]

‘……진짜 산신령 같은 게 있었나?!’

태하는 마치 뭔가에 이끌리듯이 흰색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탑의 수호자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성좌의 후원으로 인해 각성이 시작됩니다]

‘각성?!’

컴퓨터 부팅 화면, 혹은 CMOS 화면처럼 문자 같은 것이 쭉 나열되기 시작했다.

마치 특정 명령어를 입력하면 실행되는 컴퓨터의 메커니즘처럼 말이다.

[성향 및 스킬이 결정되었습니다]

[특성: 점진적 과부하]

[모든 길은 근육 안에 있습니다]

[신체는 꾸준한 점진적 과부하에 의해 단련됩니다]

[각성 보너스: 기회의 창(패시브), 인연의 사슬(패시브)]

[등급 판정: F골드]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태하도 드디어 각성이라는 걸 했다.

‘……꿈인가, 이거?’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바벨의 흑막이 탑의 수호자에게 숟가락을 얹습니다]

[파생 스킬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잠깐 사이 필름이 끊어졌다.

던전에서의 기억이 흐릿해서 머릿속이 텅텅 빈 것 같았다.

“쿨럭, 쿨럭!”

태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서울태산병원 흉부외과 병동이었다.

귓가에는 연신 이명이 맴돌았고, 팔다리는 감각이 약간 무딘 것이 무슨 마취를 해 놓은 것 같았다.

‘헛!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마 수술을 받았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깡그리 뜯어고쳐야 했을 거다.

스켈레톤, 좀비 등에게 무려 10분 동안이나 무참히 난도질을 당했으니 말이다.

잠시 후, 귓전을 긁어 대던 이명이 사라졌다.

-……다음 소식입니다. 한국의 아수라 길드가 세계 최초로 100층 돌파에 도전했으나, 70층에서 3인 사망 후 퇴각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화이트홀’ 현상, 즉 공간의 이상 현상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또한, 몬스터가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는 ‘이상 리젠’, 혹은 아종의 탄생, 돌연변이 등을 원인으로 고려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한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뉴스.

‘……쌤통이다. 개자식들.’

천하의 싸가지 없는 아수라 길드가 패배했다는 것에 약간의 고소함이 느껴졌다.

이윽고 태하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대한헌터협회 전문 병원 서울태산병원]

분명히 보이는 천장의 병원 로고.

‘허 참, 이놈의 목숨은 참 질기기도 하지.’

헌터협회 지정 병원인 서울태산병원.

태하는 이제 이곳이라면 아주 신물이 났다.

아마 이 병원 자동문 정도는 태하가 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태산병원 단골이었던 것이다.

“……땡땡아.”

“대장……!”

팀 ‘블랙하운드’의 힐러이자 간호사관학교 출신의 유능한 인재.

간호사관학교 출신으로선 최초의 헌터가 되었지만, 초월자 집단에는 속하지 못한 불운의 여인 하희란이다.

촉촉하게 젖은 희란의 눈동자,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팔을 잡는 태하.

“……거의 저승사자랑 하이파이브할 뻔했다. 젠장, 죽는 줄 알았어.”

희란의 눈망울이 희미하게 떨렸다.

나름대로 기분 좀 풀어 준다고 농담을 건넸건만, 희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태하가 무슨 장난을 쳐도 다 받아 주던 그녀가 오늘은 확실히 달랐다.

“……지금 농담이 나와요?”

“하하,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인생 풀액셀 한번 밟아 봐야 되는데, 액셀 밟기도 전에 죽을 뻔했어. 그치?”

희란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를 앙다문 것이 오늘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태하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쪽팔리게 다구리나 씹히다니. 그나저나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야?”

“대장, 기억 안 나요?”

“뭐가?”

“여기까지 자기 발로 걸어왔잖아.”

“……내가?”

태하는 어제의 치열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다가 불현듯 기억의 말미에 있었던 그 사건을 떠올렸다.

‘각성을 시작합니다.’

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무릎을 치는 태하.

단편적이지만 각성했던 때가 떠오른 것이었다.

“허어!”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나, 각성한 것 같아!”

헌터는 각성자와 비각성자로 나뉜다.

각성자는 탑을 10층 이상 오를 수 있지만, 비각성자는 죽음을 넘나드는 훈련을 해도 11층은 절대 넘을 수 없다.

때문에 각성자 헌터는 그 존재만으로도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 대우를 받게 된다.

한마디로 각성은 헌터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로또나 다름이 없다는 소리였다.

태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가방에서 스마트워치를 꺼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각성이라니, 진짜 각성을 한 거예요?”

“그런 것 같다니까?! 해 보자, 지금!”

“뭘요?”

“각성자 테스트!”

바벨탑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부산물로 인해 인류의 과학은 한 단계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냈다.

특히나 몬스터의 에너지 원천이자 일종의 광석인 ‘코어’는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화석연료를 대신하며 코어 자체에 내장된 에너지로 발전기 없이도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반도체 소재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 주었으며 회로과학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그런 코어로 만들어진 스마트워치는 과거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로 신경삭(神經索)을 연결합니다. 지금부터는 코어 운영체로부터 신체 정보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네.”

[정밀 진단 및 신체 구조 점검을 시작합니다]

요즘은 별의별 게 다 신경삭으로 연결되어서 피검사나 방사능 장비 없이도 5분이면 정밀 진단이 가능했다.

[진단 중입니다……]

“좋은 능력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이제 우리도 11층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라고!”

잘하면 자신을 빨래질해 버린 아수라 길드를 발라 버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태하의 눈이 반짝거렸다.

잠시 후 나오는 결과물.

[각성 유무: 유]

“오오!”

일단 각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놀람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그 결과는…….

[등급 판정: F골드]

“……F?”

[주요 능력 및 성향 키워드: 점진적 과부하]

[특이 사항 및 스킬 분포: 패시브, 버프]

이게 뭔 개똥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SSS급부터 FFF까지 등급이 부여되는 것이 각성이다.

그런데 등급이 F라니?

게다가 각성의 키워드가 점진적 과부하라는 것에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뭔 쌉소리야?”

“……아아!”

“점진적 과부하를 도대체 어디에 쓰라는 거지?”

각성을 해도 능력이 폐급이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게 이 바닥 현실이다.

헌데 헬창들이 몸 키울 때나 쓰는 말이 각성에서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장…….”

“……이제는 하다 하다 하늘까지 날 엿 먹이네?”

살면서 행운이라는 걸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태하에게 이제는 하늘까지 대놓고 멕이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앉아 있던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똑.

이내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회진 중입니다. 뭘 그렇게 멍하니 계세요?”

“……선생님 오셨군요.”

누군가 했더니 태하의 주치의 정만수였다.

그는 침대에 있는 작은 스크린에서 환자의 상태를 알려 주는 ‘바이털 미터’를 살폈다.

[환자 성명: 정태하]

[상태: 흥분, 좌절]

“좌절이라니요. 환자분, 지금 그 던전에서 나온 팀들이 어떤 줄 아세요? 80%가 사망입니다.”

“……사망이요?”

“비각성 상위 랭커 10위 안에 있던 길드들이 전부 사라졌다네요.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 해도 정말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의사는 차트에서 몇 가지를 체크한 후, 그것을 바이털 미터에 입력했다.

그러면서 의사는 태하에게 은근히 경고했다.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이제 레이드는 그만두세요. 이대로는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그럼 전 이제 뭘 먹고 삽니까?”

진심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인데 이제 와서 다른 직업을 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의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정 그러시다면 샌드타워에 취직하시든가요.”

“알바까지 합쳐 광부 인생 15년입니다. 아직 인생 풀액셀도 안 밟아 봤는데 도중하차를 하라고요?”

태하는 애초에 이런 성격으로 태어났다.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목숨이 끊어져도 말이다.

“인생은 안전 운전이 최고입니다.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몰라요?”

“……글쎄요.”

“아무튼, 의사로서 더 이상의 레이드는 허락 못 합니다. 다시는 치료 안 해 줄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이제껏 정성껏 태하를 돌봐 준 사람으로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정만수는 바이털 미터에서 ‘퇴원’을 클릭했다.

[퇴원 수속에 들어갑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이제 그만 좀 오세요.”

침상에서 일어나 묵묵히 짐을 챙기는 태하를 희란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대장, 괜찮아요……?”

“……아직 액셀은 밟아 보지도 않았다니까? 인생 뭐 있다고. 여기서 뭉개고 있을 수는 없지.”

“미쳤어? 그러다가 진짜로 죽는다고요!”

“헌터가 던전에서 도중하차를 하잖아? 그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냥 숨만 쉬는 거지. 그게 좀비랑 다를 게 뭐야?”

희란이 이를 악물었다.

뭔가 결심한 듯한 눈빛이 사나워졌다.

“……선택해.”

“뭘?”

“여기서 그만두든지, 아니면 나랑 완전히 남남으로 갈라서든지.”

충격적이었다.

던전에서 함께했던 8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지, 진심이야?”

“응……. 우리 형부가 을지로에서 피부과를 개원했대. 거기로 갈 거야.”

“…….”

“같이 병원에서 일하자. 거기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

떨리는 태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희란의 눈동자도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희란의 눈동자는 불그스름했다.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라, 그럼. 잡지 않을게.”

“……진심이야?”

“잘 살아라. 이제 나랑 대장 놀이하던 시절 따윈 잊어버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