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6화.아마겟돈 (277/278)

아마겟돈

"으하하하!"

 넓은 방 안에서 알몸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크게 웃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한 방 한쪽 벽에는 반경 3미터는 넘어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고 테두리에는 시꺼먼 그을음이 남아 있었다.

 "다시 한 번. 파(破)!"

 기합성과 함께 그의 전신으로부터 강력한 파동이 일렁이기 무섭게 벽 쪽을 향해 밀려갔다. 사내의 몸에서 홀러나온 파동은 짧은 사이에 서로 겹치더니 벽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는 엄청난 크기로 커져 있었는데 벽에 닿는 순간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터져버렸다.

 꽈앙!

 족히 10센티미터가 넘는 강철 벽에는 또다시 직경 3미터에 달하는 구멍이 나 있었다.

 "흐흐흐흐."

 사내는 즐거움을 주체할 수 없다는 둣 웃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완벽한 초인으로 탄생했다. 이제 남은 것은 능력을 최고조로 올리는 일뿐. 이제 세상은 나를 비롯한 초인들에게 경배할 것이다.

 젊은 사내는 성한 벽 쪽에 나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흰 가운을 입은 중년 남자가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의 주변에는 갖가지 정밀기계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프로모터, 대공을 축하드립니다! 최상의 수치가 나왓습니다."

 "후후후. 자네들도 수고했네."

 젊은 남자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반응하며 중년 남자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옷을 받았다.

 고무처럼 강력한 강력을 가진 근육들과 강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강도의 뼈 그리고 날아갈 듯 상쾌한 머릿속, 주의만 기울이면 방문 밖의 상황까지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은 죽기만을 기다리던 늙은이의 그것과 너무나 달랐기에 얼음보다 더 차가웠던 천성까지 바뀐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 것 같군. 이제까지의 시술과는 완전히 달랐어."

 "다른 분들도 그런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하지만 프로모터의 능력은 가히 발군입니다."

 "후후후."

 프로모터라 불린 젊은 사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옷을 다 입고는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수치를 확인했다.

 "지금 쓰신 진공파는 프로모터께서 가진 잠재력의 7퍼센트를 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짧은 수련으로 이 정도까지 발현하셨으니 앞으로 몇 달만 더 지나면 손가락 하나로 산 하나는 날려 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커험. 몇 달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을 거야, 연구소장. 그런데 다른 이들의 상태는 어떤가?"

 젊은 남자는 입꼬리를 올린 채 물었다. 

 "두 번째로 진행한 초인 프로젝트 역시 대성공입니다. 생명력 전이 대법을 시술받은 15명 중 13명이 초인이 되었습니다. 이쉽게도 두 분은 이미 세포가 괴사하던 중이라 실패 했습니다."

 "아, 그 욕심 많은 늙은이들이라면 상관없네. 진작 죽었어야 하는 놈들이 욕심은 많아서 명줄을 잡고 있었을 뿐이야. 그래, 필요한 조치는 취하고 있겠지?"

 "네. 새로운 육체에 적용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사후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끝난 분들은 이능자들로부터 전이 받은 초능력을 발현시키는 수련을 하고 계십니다."

 "허허허! 다행이군. 충성 서약은 확실하게 각인시켰겠지?"

 "네. 절대 배신할 수 없을 겁니다. 프로모터에게 반항한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극도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물론 그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뇌세포가 전부 파괴되도록 만들었으니까요."

 "흐흐흐. 첫 번째부터 그 각인 작업을 해야 했었는데 좀 아쉽군. 아무튼 앞으로 세상은 우리 글로리 가이아가 지배할 거야."

 "경하 드립니다!"

 두 사람은 마치 황제와 그 신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1차 프로젝트에 성공한 나머지 여섯 명은 어떻게 지내나?"

 "그 여섯 분은 프로모터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이능을 발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로렌 부인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물에 대한 이능을 얻었습니다."

 "클클클! 그녀라면 그 정도의 능력은 얻었겠지. 명색이 HG의 골든 퀸이고 내 오랜 경쟁자이자 동업자이며 내 아이의 모친이니 말이야."

 말을 들어 보면 자신의 부인이기도 하지만 프로모터의 말은 너무나 사무적이었다. 하지만 유일한 자식인 다크 프린스를 떠을리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CG의 프로모터이며 어머니는 GG의 골든퀸이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다크 프린스는 양쪽 세력을 하나로 만들 소중한 존재였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부모의 유전자들 중 우성유전자들만을 물려받은 아들은 감정이 메마른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어 그의 사후에는 지금처럼 암중이 아니라 밝은 곳으로 나와 세상을 지배할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후후! 다행이군. 실험체들은 모자라지 않았나?"

 "한 분당 오르그 백 마리, 하르크 세 마리 그리고 이능자 다섯 명이 필요했지만 충분하게 준비를 했기에 3차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는 데는 다행히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4차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더 많은 변종 생물들과 이능자들이 필요합니다."

 "변종 생물이라면 밖에 널렸으니 문제가 없을 테고 이능자들은 조직에서 양성하는 놈들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어쨌거나 뉴 휴먼 프로젝트를 통해 인공수정체들이 이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확률이 높으니 이능자들의 생식세포를 채취해서 당장 인공수정 프로젝트를 시행해."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대법을 펼치기 전에 생식세포를 추출해 두었습니다."

 "난 앞으로 열 가지의 이능을 더 가질 생각이니까 능력이나 상태가 가장 좋은 놈들로 준비해 놓도록 해. 그리고 프로젝트로 인해 생명력 전이 시술의 안정성이 검증되었으니 3차에는 소장도 참가하도록 해."

 프로모터의 말에 소장의 얼굴이 환해지며 눈이 커졌다. 이런 배려를 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우리 초인들의 외계 환경에 대한 적응도 검사 결과는 나왔나?"

 "네.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배리어 밖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한 달 정도면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는것으로 각종 수치들이 나왔습니다."

 "후후후. 멋진 일이군. 이제 드디어 내가 활동할 무대가 넓어지는군."

 그렇게 두 사람이 화기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한창 기분이 좋았는데 방해를 받아서 그랬을까 잔뜩 인상을 쓴 프로모터였다.

 -오르그들의 습격입니다.

 데드 벙커를 관할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보고에 프로모터의 얼굴이 굳었다. 그간에도 계속 오르그들의 습격이 이어졌지만 이렇게 벙커 전체에 경보가 울린 적은 없었던 것이다.

 "설마 벙커의 방어막이 뚫린 건가?"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입자포의 포격에도 불구하고 놈들이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어 이 상태라면 방어 막이 뚫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1차 방어선은 이미 무너졌고 2차 방어선도 15분 후면 무너질 기능성이 큽니다.

 5만 명으로 이루어진 1차 방어선이 무너지다니. 프로모터와 소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비록 변종 생물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는 소형 입자포만 갖추고 있지만 개개인의 무력이 오르그를 넘어서는 특수대원들이다. 게다가 15만으로 구성된 2선까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니 이게 무슨 일 이란말인가?

 프로모터와 소장은 서둘러 지휘부로 향했다. 병커 내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며 경보 상황에 재빠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지하 10층의 지휘실에 도착한 프로모터와 소장은 한창 바삐 움직이는 수하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으며 거대한 화면부터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수십 대의 카메라를 통해 병커 외부 상황을 보여 주는 분할 화면이 떠 있었다.

 화면에는 벙커를 향해 전 방위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오르그들이 보이고 있었는데 놈들은 입자포들의 연속 포격에 먼지처럼 부서지면서도 무식하게 돌진하고 있었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입자포지만 입자가속에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놈들에게 돌진할 기회를 주고 있었다.

 약 1만 명의 방어군이 곳곳에 건설된 엄폐물 뒤에 숨어 오르그들을 막고 있었지만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오르그들의 진격을 막기에는 큰 힘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병기라고 해 봐야 입자건이 다였기에 큰 타격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프로모터의 차가운 말에 지휘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벙커의 외곽 5킬로미터 반경에는 20만 명을 헤아리는 특수군들이 캡슐 기지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은 최근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GG와 HG의 무력 조직으로 평시에는 비욘드에 접속해 다크 프린스의 일을 돕는 한편 오르그들의 습격이 있을 때는 밖으로 출동해서 놈들을 타격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 그게……."

 부소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아무래도 뭔가 큰 사단이 발생한 모양이다.

 "무슨 일이지?"

 "비욘드에서 큰 전투가 벌어져 다크 프린스께서 캡술 기지의 대원들을 급하게 소환하셨습니다."

 "뭐야?"

 프로모터의 팽팽한 피부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그쪽도 전투 상황에 돌입한 터라 로그아웃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제야 1차 방어선이 뚫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차 방어선은 아예 가동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캡슐 기지가 재대로 가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깟 게임이 뭐라고! 이 미친 새끼들! 당장 죽고 출동하라고해."

 프로모터 역시 잠시 비욘드를 풀레이 해 본 적이 있었다. 전투 상황이 발동되면 죽기 전에는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특별한 상황을 대비해서 밖에서 강제로 로그아웃시키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Nyd: "비욘드를 플레이를"이라고 써있길래 고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수뇌부들은 뇌사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지……."

 "뭐라고? 그럼 동화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프로모터는 이제야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그, 그게…… 다크 프린스께서 최상의 상태로 전투에 참가하라고 하셔서……."

 꽈앙!

 "빌어먹을!"

 책상을 주먹으로 후려친 프로모터는 욕설을 내뱉었다. 산산조각이 난 책상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려 지휘실 인원들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아무도 움직이거나 아픈 티를 내지 못했다.

 "그놈이 나 모르게 조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용인했지만 오리온 전단의 지휘권을 이렇게 남용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이제 그놈은 내 자식이 아니야!"

 프로모터는 아들을 향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깟 조직이야 초인이 된 자신과 핵심 수하들의 능력 그리고 모처에 숨겨둔 자원과 자금을 동원하면 얼마 걸리지 않아 다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을 훈련시켜야 겨우 양성할 수 있는 특수군을 빼앗긴 것은 그에게도 엄청난 피해였다. 그때 또다시 경고음이 들려왔다.

 -2차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벙커 배리어를 발동합니다. 벙커를 관할하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말과 함께 2차 경보가 을렸다. 거대한 화면 한 귀퉁이에는 악귀처럼 날뛰는 오르그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육당하는 특수대원들의 모습이 보이고있었다. 소형 입자포로는 끝없이 밀려드는 오르그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곧 벙커의 담장을 따라 에너지 배리어가 생성되었다.

 "배리어 가동 시간은 어떻게 되나?"

  족히 100년이 넘게 연구를 해 왔지만 배리어에 대한 기술력은 세 초월자들이 만든 배리어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벙커 지상과 지하에 있는 2개의 발전소로는 일정한 시간밖에 운용할 수 없는것이다.

 "충격이 없으면 132시간 56분 동안 가동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둥안은 벙커 내부로의 전력 공급이 최소한으로 제한됩니다."

 "빌어먹을!"

 배리어를 가동했지만 이쪽도 입자포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다크 프린스가 제대로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벙커 외부를 비추는 화면은 온통 오르그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저런 상황이라면 배리어가 사라지는 순간 지상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병커 폭파와 탈출 준비를 하도록!"

 "네."

 배리어의 소멸 직전까지 다크 프린스를 지원하기 위해 비욘드에 접속한 대원들이 복귀하지 못한다면 지하도로를 통해 가까운 유니온으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생명력 전이 시술은 성공을 했기에 굳이 많은 것을 옮길 필요도 없었다.

 '모두끝이지.'

 최악의 상황이 오면 모든 인원은 필수적인 기계들과 자료들을 가지고 다른 기지나 유니온으로 피한 다음 벙커 지하 깊숙한 곳에 묻어 둔 핵폭탄을 터트릴 것이다. 그럼 이 정도 숫자는 병커와 함께 말끔하게 날아갈 것이다.

 "급보, 급보입니다!"

 비상 상황인 터라 프로모터와 소장 외에는 입도 꿈쩍할 수 없는 지휘실이지만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서 유니넷에 접속해 일상적인 정보를 검색하고 있던 한 인물이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뭐야!"

 소장의 일그러진 얼굴이 두려워서일까 소리를 지른 그 요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몸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완전히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뭐냐고, 이 새끼야?"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른 소장의 말에 정신을 차린 그 요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유, 유니온들이…… 뒤집어졌습니다. 소요 아니, 반란이 일어났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동안 강력한 자장 유동 때문에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던 통신망이 가동되었는데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빅 유니온들은 물론이고 전 유니온에 걸쳐 하나의 문건이 공개가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방위군들도 동참해서 구노불들의 사무실과 저택을 공격하고 있답니다."

 "뭐야?"

 프로모터와 소장은 물론 대다수의 요원들이 가까운 책상에 놓인 태블릿 PC나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홀로그램 PC에 접속 했다. 그러자 '신세계 협약'이라는 제목의 문건과 함께 현재 유니온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히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의 사태에 대한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헉!"

 신세계 협약을 주도했던 주역 중 하나였던 프로모터의 손가락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눈은 여전히 흘로그램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빠르게 업데이트가 되는 기사들은 일반 주민들에 의해 작성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신세계 협약을 통해 세 초월자를 제거하고 유니온의 권력을 사기로 거머쥔 구노블들을 개탄하고 분노하는 한편 그동안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 혁명에 동참하자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럴 수가!"

 GPC 중 일부와 언더시티 그리고 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쌓고 있는 지도자들이 마치 준비라도 한 것처럼 발 빠르게 음직였다. 방위군과 유니온 관료 조직을 장악한 그들은 분노해서 거리로 뛰쳐나온 주민들을 이끌어 구노볼들의 저택이나 시설들을 공격하는 한편 폭동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주민들을 조종하며 유니온을 장악하고 있었다.

 '설마 이 모든 일이?'

 너무나 공교롭게도 프로모터가 두려워하는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이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두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모든 사건들을 암중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냐? 누가 있어 우리 노블들의 아성을 이렇게 뿌리째 흔들 수 있단 말이냐?'

 세차게 밀어불이던 가즈 로드 측의 공세가 멈추었다. 새벽부터 시작해서 한낮이 되도록 줄기차게 이어진 공격에 수많은 사상자가 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휴식을 취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흑마법진의 마력장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과 마수들이 낭패한 꼴로 외성에 가까운 곳으로 물러났다. 사제들의 버프에도 불구하고 흑마력장 안에서는 본인이 가진 실력의 8할 정도만 쓸 수 있기에 적지 않은 피해를 본 것이다.

 마나와 별개로 마수의 힘까지 사용할 수 있는 산악 부족 전사들의 상태가 그나마 가장 좋았다. 여기까지 동행한 용병들 중에도 사상자가 2할에 가까운 상태이니 얼마나 격렬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나마 이쪽에도 신전 측에서 지원을 해 주었기에 사망자가 적어 가슴 한쪽을 쓸어내렸다.

 줄기차게 공중에서 마력장에 충격을 주었던 미노와 수니도 잠시 쉬기로 했다. 마력장의 존재로 인해 다른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연속된 공격에 녀석들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하룬과 타파족이 길들인 마수들은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 버렸다.

 빠르게 식사를 하고 잠깐 지위부에 들른 하룬은 가즈 로드 측의 피해가 2할에 가깝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심지어 이방인들은 반나절의 전투로 인해 2할이 사망했고 3할은 포션에도 불구하고 며칠 정도는 움직일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이제 내가 움직일 차례군.'

 하룬은 고문들과 함께 흑마법진을 깨뜨릴 방법을 여러 가지를 모색하다가 미노와 수니가 공중에서 흑마법진이 만든 마력장에 충격을 주었던 것을 생각하며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타니엘라 경, 마력장의 발현 형태는 주로 어떤 모양입니까?"

 "일반적으론 계란을 옆으로 눕힌 형태입니다."

 "강도는요?"

 "옆면이 가장 두꺼우니 당연히 그쪽이 가장 강하지요."

 "그렇다면 미노와 수니가 가했던 공격이 효과적이겠군요."

 "그렇지요. 마력장의 위와 아래가 가장 얇으니까요."

 "그럼 동시에 위와 아래에 충격을 준다면 더 효과적이겠지요?"

 "당연하지요. 하지만……."

 타니엘라의 말에 눈을 빛낸 하론은 더 이상 타니엘라의 말을 듣지 않고 바로 한쪽에 대기하고 있는 네 정령에게 달려 갔다. 네 정령은 얼마 전에 또 한 번 각성을 한 후 인간체로 현신했다.

 "라이피, 지반을 움직일 수 있겠어?"

 라이피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반 역시 중첩된 흑 마법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마력장이 강력하긴 하지만 매개체가 되는 마나석들은 지반에 묻힌 상태니까 네가 지반을 흔든다면 분명히 영향을 받을거야."

 "자신은 없지만 친구가 그렇게 말한다면 한번 시도는 해 볼게."

 인간체가 아니라 정령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라이피는 흔쾌히 하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 기분 나쁜 기운 때문에 친구가 고민하는 것을 보는 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피가 순간적으로 사라지자 하룬은 펠과 세 정령을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마력장에 충격을 가해 보자. 펠, 미노의 등 위로 이동하자!"

 "알았어, 형!"

 피육!

 펠은 하룬과 세 정령과 함께 순간적으로 미노의 등 위로 이동했다.

 꾸우오오!

 미노와 수니가 반가움의 을음을 터트리며 그를 환영했다.

 -이번에는 같이해 보자!

 -좋아, 친구!

 -나도 준비됐어!

 미노와 수니는 순식간에 마력장으로부터 수백 미터 상공으로 치솟아 을라갔다. 그리고 머리를 아래로 하고 맹렬하게 날개짓을 했다.

 쇄애액!

 공기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엄청난 압력이 다가왔지만 '나르스의 날개' 를 활성화시킨 하룬은 어느새 검 한 자루를 빼들고 블러드 에센스를 주입했다.

 일렁이는 마력장이 손에 잡힐 듯 가끼이 다가온 순간 나이아가 양손에 쥐고 있던 작은 워터 볼을 던졌다. 그리고 위신느의 양손에서도 손톱 크기의 작은 원드 커터가 날아갔고 피닉스의 손에서도 작고 빨간 공이 날아갔다.

 그 크기는 작아졌지만 파괴력만큼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정령 마법이었다.

 타앗!

 날개를 접고 아래로 쏜살같이 떨어져 내리던 미노와 수니가 어느 순간 날개를 펼쳐 하강 속도를 줄이는 한편 쫙 벌린

 발톱을 아래로 하고 하나로 모으는 순간 하룬은 기합성과 함께 맹렬한 속도로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난 검을 휘둘렀다.

 -지금이야, 라이피!

 쿠우우웅! 꽈아앙!

 세상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엄청난 반탄력에 튕기듯 위로 향했던 하룬이 나르스의 날개로 체공하는 순간 아래쪽이 시야에 들어왔다. 검은 파도처럼 일렁이는 그 모습대로였지만 마력장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하게 일렁이는 마력장의 구멍을 통해 물결치듯 심하게 흔들리는 지반이 보였는데 얼마나 거세게 흔들리는지 흑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던 마나석들까지 지반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성공할 수 있어!'

 하룬은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이번에는 동일한 부위를 연속해서 공격해 보자! 미노와 수니부터 시작해!"

 하룬의 말에 따라 미노가 순간적으로 높이 올라간 후 구멍이 났다가 다시 막히고 있는 부위를 향해 최대 속도로 하강했다.

 꽈아앙!

 다음은 수니였다. 그녀는 이미 깨어진 엷은 구멍의 옆을 향해 발톱을 내리찍었다.

 나이아와 피닉스 그리고 위신느가 던진 작은 구술들은 구멍 옆을 향해 줄을 이어 날아갔다.

 꽈과과강! 꽈아앙! 꽝! 꽝!

 "극강의 혼!"

 하룬은 닿는 것은 무조건 부수어 버리는 극강의 혼에 블러드 에센스를 가득 주입해서 날렸다.

 쩌어어억! (Nyd: 쩌어어엉은 뭔가 이상하죠?)

 드디어 분지를 감싸고 있었던 거대한 흑마력장 전체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다시 한 번 더! 아까 약해졌던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하룬의 말에 모두가 힘을 내어 다시 한 번 전력을 집중했다.

 쩌저정! 쩌억! (여기도 쩌엉보다는 쩌억이..)

 드디어 균열이 빠르게 전체로 퍼졌다.

 중첩된 흑마법진은 공중으로 마나가 흩어져 버리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위와 아래에서 가해진 막대한 충격을 받아 강력한 진동 속에서 부서지려고 했다.

 "마력장이 깨진다! 피해랏!"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다크 프린스의 증폭 마법으로 경고를 하는 순간 마력이 이리저리 일그러지더니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고오오오!

 한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높고 두꺼운 내성의 벽은 먼지처럼 쓰러졌고 그 안쪽에 건설되어 있었던 많은 방어 시설들이 모조리 부서지고 만 것이다. 성한 것이라고는 검게 변한 제법 큰 공간안에 들어있던 몇 개의 건물밖에 없었다. (Nyd: 스러졌고를 쓰러졌고로 바꾸기는 했는데 사라졌고도 괜찮은거 같네요..)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생명들도 사라졌다. 흑마법장의 중심이 분지 안쪽에 있었기에 그 피해는 다크니스에 편중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피해가 컸던 것은 흑마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던 마수들과 언데드들이었다.

 "마수들이 도망친다!"

 "언데드들이 가루가 되고 있어!"

 이제까지 서로 물고 뜯으며 참혹한 살육전을 벌이고 있었던 마수들이 일제히 꼬리를 말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흑마력으로 유지되던 언데드들도 강력한 흑마력의 유동으로 인해 균형이 깨어지자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룬은 미노의 등에 내려앉은 채 아그레시아에게 통신을 했다.

 -흑마법진이 깨진 거라면 지금 공격할까요?

 -피해 정도는 어떻습니까?

 마력장의 붕괴된 여파는 이쪽에도 미치는 것을 확인했었다.

 -심하지는 않아요 멀리 날려간 것에 불과해요 북쪽은 럼프족들이 완전히 장악했고 내성 가까이 진군한 상태에요.

 역시 럼프족이다. 그 험준한 산을 타고 내려온 것만도 힘들 텐데 다른 세 방향은 아직 외성을 완전히 넘지 못했는데 그들만이 내성 가까이 진군한 것이다.

 '이 전투가 끝나고 나면 럼프족들도 이 세상에 당당하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을 거야.'

 -다른 곳은요?

 -엘프들의 철시 공격이 위력적이라 세 방향 모두 외성을 넘기 직전이에요. 데스 필드까지 사라졌으니 이제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럼 당장 공격하세요. 다만 다크 프린스가 새로운 마력장을 펼친 것 갈으니 중심부는 조심해야 해요 전 너무 힘들어서 전권에서 이탈해야 할 것 같아요.

 -알았어요 나중에 어떻게 흑마법진을 깼는지 꼭 알려 줘요.

  아그레사아와의 통신이 끝나자마자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와 고함이 잠시 정적에 싸였던 분지 안을 뒤흔들었다.

 '이곳에는 나보다 더 강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그들에게 맡기자! 이곳보다 현실이 더 급해!'

 자신이 이곳 비욘드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난 것이다. 이곳에는 딜런이나 후버론 등 자신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니 마지막을 멋있게 마무리할 것이다. 이제 아마겟돈 작전의 마지막은 현실에서 장식해야 한다.

 혹시 몰라 대원들에게 남기는 편지를 아그레시아에게 맡겨 두었다. 하룬은 영능 대화를 통해 지상에 머물고 있는 아슈인에게 미리 이야기한 대로 행동해 줄 것을 당부하고 펠의 도움을 받아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중앙 기지로 돌아온 하룬은 기지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아즈만에게 물었다.

 "벨과 아리는?"

 "이미 벙커 가까이에 건설한 전진기지에 가 있습니다. 마스터가 귀환하면 바로 그쪽으로 와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그쪽 상황은 어때?"

 "오르그들이 벙커의 방어선을 모두 뚫은 상태입니다. 벙커 측에서 배리어를 발동시켰습니다."

 "알았어. 서둘러야겠군."

 그때 갑자기 머릿속으로 벨의 다급한 소리가 전해졌다.

 -오빠, 나왔으면 빨리 이쪽으로 와. 아마겟돈 작전을 개시해야 해.

 -알았어. 바로 갈게.

 하룬은 바로 지하로 향했다.

 전진기지는 아리가 건설한 곳으로 벙커와는 5킬로미터 떨어진 지하 700미터 지점에 있었다. 단층으로 어마어마한 공간을 가진 기지 내에는 돌풍 시티의 특수대는 물론이고 각 유니온의 군부에서 비밀리에 양성한 특수군 5,000명과 언더 시티들이 파견해 준 특작대 2,400명이 며칠째 대기하고 있었다.

 지하 도로를 통해 전진기지에 도착한 하룬은 태가사남매의 마중을 받아 바로 지휘실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대장님!"

 그가 도착하자 벨과 아리가 반가운 얼굴로 반겼는데 그녀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지휘실안에 있었다. 벨과 아리는 사람들 때문에 격식을 차려 행동했다.

 "이분이 바로 돌풍 용병대의 하룬대장이에요. 오빠, 이분들은 유니온들과 언더시티들에서 아마겟돈 작전을 위해 파견을 나오신 지휘관들이셔."

 하룬과 파견 지휘관들은 상황이 급박한 터라 짧게 인사를 나누었고 구면인 오랑과도 눈인사만 더할 뿐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착석해서 위성을 이용한 전투 상황에 대한 벨의 브리핑을 들었다.

 "현재 70만이 조금 넘는 오르그들은 배리어 주변을 에워 싸고 있어요. 배리어의 가동 시간은 약 130시간 남짓일 것으로 사료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그쪽에서도 지금쯤은 유니온의 소식을 들었을 테니 다급한 상황일 거예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벙커에서 유니온으로 이어지는 지하 도로 근처에서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어요. 우리는 오르그들이 지상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저들이 건설한 지하 도로를 통해 안으로 진입해야 해요."

 작전의 요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다만 벙커 내부에 어떤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지 확실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진입하는 것이 위험할 뿐이다.

 "벼리와 연락은 해봤어?"

 "네, 대장님. 지금 벙커 내부는 파이널 경보가 발동된 상황으로 모든 내부 인원이 무기를 소지하고 정해진 위치에서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해왔어요."

 "벙커 내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했어?"

 "네. 여기를보십시오."

 벨이 홀로그램 화면을 띄웠다. 그 화면에는 지하 52층으로 이루어진 벙커의 내부가 개략적으로 나타나 있었다.

 "내부에 잠입한 우리 대원들도 움직이지 못하는 관계로 각 층에 어떤 병력이 어떻게 배치되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어요. 다만 벙커안에는 약 5,000명의 수비군과 2,000명의 작업 인원 그리고 2만의 여유 인력이 있어요. 최근 들어온 인물들의 호위를 위해 따라온 인원도 약 7,000명 정도 되고요."

 "무기는?"

 "대형 입자포들은 지상에 주로 배치가 되어 있으며 지하에는 소형 입자포들이 지하 도로와 인접한 통로에 배치되어 있어요."

 "우리 측 입자포의 위력은 어느 정도지?

 "쏘우 과학청장께서 개량한 소형 입자포의 경우 10미터 두께의 강철판을 관통할 수 있어요."

 "그럼 병커 외부 벽의 재질과 강도는 어떻지? 입자포로 뚫을 수있겠어?"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 벙커를 감싸고 있는 벽은 파밀튬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입자포로는 뚫기 힘들어요. 아시다시피 파밀튬은 강철의 백배의 강도를 가진 금속으로 진도 9.5의 지진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충격 흡수력은 물론 강력한 방어력과 복원력까지 가지고 있어요."

 벨의 보고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같은 무게로 순금보다 열 배 더 가치가 있는 파밀튬으로 그 큰 벙커를 다 감싸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세상의 부를 모조리 가진 자들만이 부릴 수 있는 엄청난 사치였다.

 "그럼 진입할 수 있는 곳은 놈들의 지하 도로와 연결된 통로뿐인 건가?"

 "네. 하지만 그곳의 방어가 허술할 리가 없으니 그게 문제에요."

 벨의 말대로 지상을 빼면 유일한 출입문이니 방어 태세는 엄청날 것이다. 설령 진입할 수 있다고 해도 희생은 클 것 이다.

 "다른 취약 구역은 전혀 없나? 이를테면 통풍구와 같은 곳 말이야."

 "통풍구는 지상쪽에나 있고 배수구는 많이 있지만 직경이 너무 작아서…… 아!"

 벨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홀로그램 화면을 검색하더니 한곳을 확대해서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이곳은 발전에 사용된 용수를 흘려보내는 배수구예요. 이 배수구 역시 파밀튬으로 만들어졌지만 직경은 0.7미터에 달할 정도로 커요. 다만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2,000도가 넘는 뜨겁고 오염된 물이 문제예요."

 "좋아! 그럼 그곳을 통해 안으로 진입하기로 하지. 뜨거운 오염수 문제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도록 할게. 그럼 세부 작전사항을 의논해봅시다."

 진입 문제가 해결이 되자 지지부진했던 작전 회의는 빨라 졌다. 벨과 아리는 시크릿 대원들을 지휘해서 놈들의 지하 통로를 봉쇄하기로 했다. 이미 개량형 소형 입자포 30문을 가지고 온 시크릿 팀은 유사시에는 지하 통로를 통째로 무너 뜨릴 작정이었다.

 벙커 내부는 유니온들이 요구한 대로 각자 구역을 정하고 그 구역 안에 있는 연구 인력과 자료 그리고 실험 결과물을 파견의 대가로 정했다. 그 바람에 생각보다 파견군들이 적극적으로 작전에 임하고 있었다."

 "오르그들이 나중에 진입할 것을 고려해서 아깝겠지만 그곳 시설물들과 물건들은 모조리 파괴해야만 합니다."

 연구 인력들이야 수뇌부들을 제외하고는 어쨌거나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연구에 참여했을 테니 문제가 없지만 연구 시설물들이나 자료들이 오르그들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오르그들의 지능이 인간에 필적할 정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지하 3층에 있는 배수구까지는 아리와 시크릿 팀원들이 드릴리언으로 길을 냈다.

 "이건 엄청나군."

 배수구를 통해 흘러나온 고온의 열수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지하 수로를 따라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드릴리언으로 넓은 공간이 생기자 그곳은 금방 열수로 가득 차 버렸지만 곧 바닥의 균열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로 인해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배수구 근처에 하룬이 홀로 접근했다. 그가 입은 특수 방어구는 열기를 어느 정도까지는 감당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려고, 오빠?"

 이미 지하 통로 근처에 도착해서 뇌파 동조를 통해 그의 오감을 공유한 벨이 물었다. 하룬이 자신하기는 했지만 그녀로서는 배수구를 통해 안으로 진입할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궁금했던 것이다.

 -잘 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야.

 하룬은 불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불렀다.

 -뭐야, 이 귀여운 에들은?

 다른 이들은 정령의 존재를 보거나 감지하지 못했지만 벨은 단숨에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지금은 그냥 정령이라고 알고 있어.

 하룬은 시간이 없는 터라 바로 녀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 비욘드에서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 비록 이 친구들의 능력은 나이아와 피닉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사이 능력이 높아진 나이와 파이는 그의 생각대로 수막으로 그의 몸을 감쌌고 열기를 차단시켜 주었다.

 섭씨 2,000도가 넘는 열수가 지속적으로 흘러나가서 그런지 배수구에 대한 경계는 전혀 없었다. 하룬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불구불 이어진 배수구 밖으로 빠져니왔다. 배수구는 발전 시설 내부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 뻔해서 중간에 구멍을 뚫고 밖으로 나왔는데 운 좋게도 아무도 없었다.

 "우이, 근처를 정찰해줘."

 소환된 우이는 하룬의 지시에 좋아하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정찰 결과 발전소는 가동을 하고 있었지만 운용하는 인력은 채 10명도 되지 않았고 경비 인력은 전혀 없었다. 이곳으로 누군가 침투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룬은 우이로부터 발전소 내부에 대한 정보를 듣고는 바로 주조종실로 향했다. 일단 발전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래야 배리어도 사라질 것이고 배수구로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 는것이다.

 똑! 똑!

 "누구야?"

 굳게 잠긴 주조종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신경질이 가득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룬은 아무런 응답도 없이 더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에잇! 어떤 덜떨어진 놈이야!"

 욕설과 함께 문이 열렸다.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열린 문틈으로 방만한 자세로 두 곳에 모여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순수한 기술자인 것 같았다.

 "무, 뭐야?"

 "비켜!"

 하룬의 손끝이 당황한 기술자의 목을 가격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내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간 하룬은 기술자의 몸을 안은 채 안쪽으로 달려갔다.

 빠악! 뻐억! 퍽! 퍽!

 몇 번의 격타음과 함께 실내에 있던 기술자들이 모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아즈만 발전을 멈출 방법을 알려 줘.

 하룬은 바로 아즈만에게 연락을 해서 눈에 보이는 영상을 태블릿 PC로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방법을 알려주는 대로 기기들을 조작해서 발전을 멈추었다.

 "됐다! 놈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해."

 하룬이 기지 밖으로 연락을 하자 대산이 지휘하는 특수대가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왔다.

 "자. 갑시다!"

 하룬과 특수대의 목표는 지하 1충에 마련된 벙커 지휘실 이었다. 기장 많은 수비군이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한편 암중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 있을 것이다.

 연합군은 하룬과 돌풍 용병대의 활약으로 흑마법진이 깨진 후 파죽지세로 내성으로 진입했다.

 이미 내성 안에서는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연합군보다 한참 앞서 내성에 진입한 럼프족들이 마수와 함께 다크니스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에는 흑마법진의 붕괴로 인해 상당한 희생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20만을 육박하는 전력이 남아 있었다. 그 때문에 전투는 격렬했지만 연합군과 산악 연합이 가세하자 빠르게 정리가 되어갔다.

 그것도 잠시 흑마법사들이 데스 나이트와 데스 메지션들을 소환해 내자 전황은 다시 한 번 뒤집혔다. 내성 안에는 그 사이 다크 프린스가 설치한 흑마법진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었기에 언데드들의 위력은 엄청났던 것이다. (Nyd: 제 생각에는 "가동하고"보다는 "가동되고"가 맞는 것 같네요.)

 하지만 뒤에서 따라오던 신관들과 성기사들이 합류하면서 전황은 다시 바뀌었다.

 마지막 전투를 고려한 신전들이 본전 깊숙한 곳에 봉인했던 성물들까지 꺼낸 덕분에 신관들의 신성 마법은 고위급 흑마법사들이 소환한 데스 나이트와 데스 매지션 들의 동작을 굼뜨게 만들었고 결국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언데드들은 모두 사라졌다.

 해가 넘어가려고 할 즈음에는 대부분의 전투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넓은 내성의 구역 중 7층 높이의 거대한 지구라트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합군의 손에 들어왔던 것이다.

 다크니스 측은 언데드와 마수들 대부분을 잃었고 흑전사들 역시 거의 전멸했다. 이제 남은 전력은 흑기사들과 흑마법사들을 중심으로 한 5만여 명에 불과했다.

 연합군 측도 20만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절반 이상은 이방인이었고 나머지의 절반 정도는 용병 연합과 산악 연합에서 발생했다. 가즈 로드와 세 제국의 추가 지원군 에서도 5만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무튼 금방이라도 끝이 날 것 같았던 전투였지만 데스필드가 펼쳐진 한 구역은 도저히 진입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에서 패퇴한 흑기사들이 데스 필드의 가장자리에 섰고 데스 나이트들이 안쪽에 위치해서 흑마법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위협적인 것은 수백 명의 흑기사들의 마나를 전이 받고 있는 다크 프린스였다. 그는 수하의 마나를 전이 받아 데스 필드 전체에 걸쳐 자신의 마력장을 펼쳐 놓고 연합군 측이 안으로 진입하는 즉시 정혈을 홉수하는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간간이 위협적인 공격 마법을 펼치는 신기를 보였다. 마법 한 방에 수백 명씩이 죽아 나갈 정도였기 때문에 연합군 측도 더 이상은 진군할 수 없었다.

 "저 간악한 놈이 갈수록 더 정교하게 마법을 구사하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더블 캐스팅도 엄청난데 트리플 캐스팅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 죽이지 않는다면 마계를 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본인이 마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그레시아와 후버론은 진정으로 다크 프린스가 두려웠다.

 지금의 능력도 두렵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력해지고 있는 마법 실력은 더욱 두려웠다. 자신들도 천재라고 불렸지만 다크 프린스의 능력은 천재 그 이상이었다.

 정혈을 홉수당한 사람은 즉시 언데드가 되어 연합군을 공격하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포위를 한 상태로 날아오는 적들의 공격을 막기만 하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익스퍼트 최상급 정도의 실력자는 되어야 데스 필드에 진입하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자연히 전투는 멈추고 말았다.

 "저걸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그러게요. 이건 완전히 마왕이나 마찬가지예요."

 지휘부의 아그레시아는 후버론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모여든 연합군의 수뇌부는 숙의를 거듭했지만 당장 데스 필드를 해체할 방법이 없었다. 곧 어둠이 찾아오면 흑마법의 특성상 위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기껏 구축한 포위망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하늘을 보는 수뇌부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었다.

 "티노 부대장, 그리고 딜런 경,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연합군 수뇌부는 하룬이 흑마법진을 깨기 위해 깊은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떠났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티노와 딜런이 이 자리에 대신 참석한 것이다.

 일말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티노와 딜런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룬이라면 기상천외한 방법을 떠올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머리로는 아무것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다들 시장하실 테니 잠시 시간을 가진 후에 다시 모이기로 하지요. 그때까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으면 좋겠어요."

 아그래시아는 할 수 없이 휴식을 가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휴식은 물론 저녁 식사도 해야 했다. 그 어떤 피해가 있더라도 다크 프린스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이런 전력을 동원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ㅡ꼭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레안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딜런은 그녀가 원하는 답변을 쉽게 해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간절한 표정에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런 딜런이었지만 회의 내내 진짜 그 이야기를 해야 히는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그런 딜런의 모습이 이상했는지 아그레시아가 관심을 가졌다. 잠깐의 휴식 끝에 모인 연합군 수뇌부였지만 다크 프린스의 마법을 상대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회의 분위기는 답답하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세요, 딜런 경?"

 "아, 아닙니다."

 "말씀을 해보세요."

 "그게……."

 딜런은 눈을 질끈 감고 이레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 었다. 그녀가 그러길 원한다는 이야기는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듣던 아그래시아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흑기사의 마나와 신성력은 상극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군요. 시험해 볼 여지는 충분해요. 오보츠 사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그레시아는 빛의 신전에서 파견된 성기사단 단장인 오보츠에게 물었다.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오보츠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야 일의 심각성을 깨달은 신전 연합의 인사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문제는 다크 프린스의 마나에 어느 정도의 균열을 일으킬 만한 신성력을 가진 인사는 각 신전의 최고위 사제들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향후 세 제국의 미래는 물론이고 대록 전체 아니, 역사적으로 마왕의 강림을 막는 위대한 전투로 기억될 거예요. 고귀한 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총사로서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

 총사는 물론이고 연합군의 수뇌부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는 신전 연합의 사제들을 향해 간절한 눈길을 보냈다. 처음으로 해결책이 나왔으며 이론적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세 제국의 수많은 생령(生靈)들을 위해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그레시아는 급기야 사제들을 향해 무릎까지 꿇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그레시아를 외면한 채 딱딱한 가면을 쓰고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설마 신을 위해 언제고 목숨을 바치겠다던 사제분이 자기의 한 목숨을 지키려고 이렇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 역시 부탁드리오."

 전통적으로 신전 측과는 불가원 불가근의 입장을 취해 왔던 마탑 연합의 수장인 후버론도 기꺼이 무릎을 끓었다.

 하지만 사제들은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그들의 무반응은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무릎을 끓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사제들을 향해 분노의 눈길을 던지던 오보츠가 나섰다. 하지만 아쉽게도 성기사단 단장인 그는 그 정도의 신성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다크 프린스의 마나에 영향력을 줄 정도의 신성력은 대주교급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습니다. 곧 어둠이 깔릴 겁니다."

 후버론이 그렇게 재촉을 해도 그들은 마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석상으로 변해 있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요."

 남들보다 더 간절하게 사제들이 나서기를 바랐던 딜런이 긴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보아하니 고귀한 분들일수록 자신의 목숨이 아끼운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레안 대원의 봉인이라도 풀어 주십시오. 무려 한 교단의 성녀이셨던 분입니다. 신분이나 자리를 구별하지 않고 언제나 아낌없이 신성력을 베풀었던 그분께서 자신이 하겠다고 자청했었습니다."

 "정말인가요? 이레안 성녀가 돌풍 용병대원이란 말이?"

 아그레시아는 대경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봉인이 풀리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크 프린스를 제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오! 이런 영광스러운 일이! 봉인을 푸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장 모시고 오세요."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말하는 후버론도 흥분한 얼굴이었다. 후여곡절 끝에 봉인을 푼 이레안 성녀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데스 필드로 걸어 들어갔다. 모든 사정을 전해 들은 연합들은 눈물을 홀리거나 기도를 올리며 그녀가 가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다.

 데스 필드로 들어서는 순간 그녀의 몸에서는 더할 수 없이 신성한 빛무리가 수백, 수천 갈래로 갈라져 지구라트 위에 있는 다크 프린스에게로 흡수되었다.

 어느새 갈아입은 사제복이 헐렁해질 정도로 빠르게 정혈이 흡수당한 성녀 이레안의 몸은 미라처럼 변했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모두에게 진정한 신의 사도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고 있었다.

 "으아악!"

 성녀 이레안의 몸은 사제복과 함께 가루로 변해 사라졌지만 그녀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지구라트 위에 자리를 잡고 마나 전이를 받고 있던 다크 프린스는 피를 토하며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흑마력으로 전이되는 일반적인 정혈이 아니라 혹마법사에게는 상극인 신성력이, 그것도 감히 그 양을 헤아릴 수 없는 신성력이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것이다.

 "커억!"

 "크악!"

 다크 프린스의 마나가 폭주하자 그에게 마력 전이를 하고 있던 흑기사들이 마나 역류로 인해 비명과 함께 쓰러지기 시작했다.

 "데스필드가사라졌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데스필드는 어느새 해제되고 말았다.

 "이때다! 성녀의 고귀한 회생을 생각하라! 모두 총공격!"

 아그레시아의 명령이 떨어지자 성녀의 헌신에 감동을 받은 연합군과 산악 부족들은 피로와 공포를 잊어버리고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마탑 연합과 돌풍 마탑이 준비하고 있던 대규모 마법 공격도 그들과 함께했다.

 슈욱! 슈우욱!

 차례대로 발사되는 휴대용 입자포탄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지휘부가 있는 곳이라서 가장 많은 수비군이 몰려 있었지만 그 많은 적이 가루로 변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기다! 일제 발사!"

 지휘실을 찾은 하룬의 명령에 돌풍 시티 특수대는 일제히 입자포를 날렸다. 파밀륨이라면 모르겠지만 내부까지 그런 재료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지휘부는 세 번에 걸친 일제 포격으로 완전히 가루로 변해 버렸다.

 휴대용 입자포들이 완전히 고철이 될 때까지 난사를 했으니 그 안에 있던 자들이 모두 죽였을 것은 당연하겠지만 하룬은 절대 방심하지 못했다. 초월자들을 무력화시킨 인간들이 바로 구노블들이다. 그들의 잔머리와 생존 능력은 지금까지도 살이 남은 바퀴벌레에 못지않았던 것이다.

 '놈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지울 것을.'

 각종 시설들과 기계들은 물론이고 파밀륨으로 만들어진 외벽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날려 보낸 것이 조금은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특수대도 적잖은 희생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적들이 예견할 수 없는 루트로 침투해서 빠르게 진입해서 작전을 펼쳤기에 망정이지 적들이 조금이라도 상황을 짐작했다면 이렇게 큰 전과를 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수대원들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지상과의 연결로를 지키도록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파괴되지 않은 곳까지 꼼꼼하게 수색하도록 지시한 하룬은 혹시나 있을 비밀통로를 찾고 있었다.

 -끼야악! 오빠, 이쪽이야!

 갑자기 들려온 벨의 뇌파에 놀란 하론은 서들러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후욱! 갑자기 문이 개방되고 적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놀라서 그랬어.

 -지금 상황은?

 -잘 모르겠어. 입자포를 가동해서 포격을 하는 중이야. 오빠는?

 -지휘부가 있는 지하 1층은 정리를 했는데 수괴들의 행방은 알 수가 없어.

 -그래? 아! 잠깐만.

 잠시 정적이 홀렸다. 하룬도 이젠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변 상황을 파악해 가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피해가 크구나.'

 자신들은 쏘우가 개량한 휴대용 입자포를 가진 덕에 압도적인 전력으로 적들이 그 어떤 대응을 하기도 전에 분쇄시켰 지만 다른 층들은 사정이 달랐다. 연구 인력과 잡역부들까지 무기를 들고 대항했기 때문에 양쪽의 사상자들은 엄청났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나 지하 1충에서 지상부로 연결되는 구역을 말고 있는 특수대가 작전 구역을 확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더구나 벨과 아리가 있는 지하 통로는 적의 수괴들이 있을지 모른다.

 '지휘부가 사라진 것을 알려야 할까?'

 이럴 때 증폭 마법을 쓰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내려가던 하룬은 아리의 의념을 들을 수 있었다.

 -오빠, 지하 22층이 이상해요. 네이비원 유니온 특수군이 전멸한 것 같아요.

 -뭐라고?

 아리는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유니은과 언더시티에서 파견된 이들 일부에게 생체형 웜을 주입해 놓았다. 작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자세히 말해 봐.

 -생채형 웜을 통해 작전이 시작된 것까지는 파악했는떼 지금 보니 연결이 끊겨 있었어요. 그 부대에는 모두 10기를 주입했는데 한꺼번에 연결이 끊겼어요.

 -연결이?

 생체형 원은 사체 속에서도 일정 시간 동안 활동을 지속한다. 사체가 굳고 육체의 모든 조직이 활동을 멈추어야만 생체형 웜도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입자포에 당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하지만 입자포가 아니더라도 몸이 폭사했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기지 내부에 입자포가 배치되었을 가능성이야 당연히 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더구나 특수군들은 입자포격에 대비해서 분산해서 작전을 수행한다. 또한 그들이 입고 있는 슈트 중에 일부는 에너지 장을 형성해서 짧은 순간이나마 거의 모든 공격을 감당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다.

 생각은 여전히 하면서도 하룬의 몸은 바람처럼 빠르게 계단을 날아 내려갔다.

 마침내 22층에 도착한 하룬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의 비상등불 빛에 잠시 보인 실내는 짓이겨진 정체불명의 물건 몇 개를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룬은 순간적으로 파비원 특수군이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맞는 것인지 의심했다. 아리가 잘못 안 것은 아닌지 말이다.

 쿠웅!

 강철 문은 저절로 닫혔고 시야는 순식간에 어둠으로 가득 찼다. 아무래도 적응을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길았다.

 안으로 몇 걸음 걸어 들어간 하룬은 혹시 몰라 특수군을 호출했다.

 "하룬 대장입니다. 파비원 특수군은 대답하시오." 소리가 공명하는 것을 보면 아까 잠깐 본 것처럼 텅 빈 공간임이 틀림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뭔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휘익!

 까앙!

 허리를 눕혀 등이 바닥에 닿을 듯 정체불명의 암기를 피한 하룬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의 눈에 흐릿한 인영 몇개가 들어왔다.

 "하룬?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구나. 네가 이 일의 배후냐?"

 젊은 목소리.

 안력을 집중하자 실내의 인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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