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5화.타지 분지의 혈투 (276/278)

 타지 분지의 혈투

연합군은 속속 타르 분지의 외곽에 집결하고 있었다. 하지만 첫 전투는 개인 혹은 소규모 무리를 이루어 이곳에 온 이방인로 인해 시작되었다.

고대 던전에 대한 탐욕에 이성을 잃은 이방인들은 가즈 로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총공세까지 참을 인내심이 없었다.

"아악!"

"너, 너무 세!"

무질서하게 분지로 몰려갔던 이방인들의 비명이 사방을 진동시켰다. 중첩된 흑마법진에 의해 생성된 마력장은 이방인들의 능력을 하락시켰고 평소와는 큰 차이가 나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속절없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출진!"

보다 못한 가즈 로드 측이 분지로 진군을 시작햇다. 이대로 두면 동료인 이방인들이 몰살을 당할 판이었다. 그것도 적의 주력이 아닌 언데드와 마수에 의해서 말이다.

척! 척! 척!

가로 20명, 세로 5명씩으로 구성된 직사각형의 진형 수천개가 나란히 오와 열을 지어 보폭을 맞춰 진군하기 시작했다. 길게 띠를 이룬 진형의 길이는 무려 10킬로에 달할정도였고 그들의 진군으로 인해 마른 분지의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왔다.

타르 분지의 북쪽은 가파른 경사와 험준한 산들과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삼면은 평지였다. 가즈 로드를 비롯한 연합군은 세 방면에서 동시에 진군했다.

퉁! 퉁! 퉁!

선두에 선 병사들이 거의 전신을 가릴 정도로 큰 방패의 안쪽을 건틀릿을 낀 손으로 두들기며 진군을 시작했다. 이방인들에게서 유래된 합금으로 만들어진 방패들은 가볍지만 견고했다.

끄아앙!

몸놀림이 빠른 마수들이 병사들을 향해 덮쳐 왔다.

크애앵!

마수의 발톱은 강력한 마력을 머금고 있어서 공격받은 곳이 우그러들기는 했지만 깨지지 않는 방패로 몸을 가리고 가까이 붙어 서로의 등을 맞대고 진군하는 병사들의 행렬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푸욱! 푸욱!

3열이 마치 하나처럼 붙은 선두의 병사들 사이로 긴 창이 튀어나와 마수들을 찔렀다. 창끝이 밝게 빛나는 것이 마나가 주입된 것이다. 마수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갔다.

"됐어! 진군! 진군하라!"

진군을 알리는 북소리와 함께 지휘관들의 명령이 떨어지자 빽빽한 열을 지어 병사들이 힘차게 전진했고 진형 안쪽에 있던 기사들은 그뒤에 창을 들고 마수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나자 마수들과 언데드들에 학살을 당하고 있던 이방인들이 명령에 따라 간격을 벌린 병사들 사이로 후퇴했고 다시 제 형태로 돌아간 가즈 로드가 진군했다. 기사들 사이에는 성기사들이 끼어 있었는데 그들이 잡고 있는 창은 신성력으로 인해 밝게 빛나며 언데드들의 머리를 노렸다.

꽈앙!

"아아악!"

"진형을 유지해라! 밀리면 죽는다!"

마수들 사이에 끼어있던 프로즐리들의 엄청난 힘에 의해 열이 무너질 때도 있었지만 지휘관들의 독려와 예비병력이 즉시 빈틈을 메웠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었다. 그렇게 서전은 다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수들과 언데드들은 뒤로 밀리고는 있었지만 광기에 젖어 끊임없이 병사들과 이방인들 사이로 뛰어들었고 피해는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에 단단했던 진형은 어느새 툭하면 깨지기 일쑤였고 죽은 병사들이 좀비로 변해 중간에서 동료들을 공격하는 일이 생겼기에 진군 속도가 느려졌다. 그 바람에 사제들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거의 몸을 붙이고 전진하는 중이라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고 1시간여가 흘렀을 때 가즈 로드와 이방인들은 거대한 외성이 보이는 곳까지 진군할 수 있었다. 그들의 뒤쪽으로는 양측에서 발생한 사체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지휘부가 바로 외성 공략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짧은 시간, 우려하던 적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흑마법진 때문에 검게 보이는 하늘이 일순 새까맣게 변해 버린 것이다.

" 적의 공격이다!"

흑마법 계열의 공격 마법은 그리 많지 않다. 흑마법의 특성상 직접적인 공격은 흑마력을 공명시킨 다크 애로우나 다크 스피어 그리고 포이즌 계열과 언데드들이 일반적이었다.

당장 지금 날아오는 다크 애로우나 실제 화살들의 끝은 흑녹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독이 있다! 마법사들은 즉시 실드를 펼쳐라!"

지휘부에서 떨어진 명령에 따라 기사들 사이에 끼어 있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실드 마법을 펼쳤다. 그러자 수천 개의 실드가 중첩되면서 거대한 실드로 변ㅇ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적들의 공격을 막았다.

마법 공격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전황은 근접전에 이어 원거리전으로 비화되었다. 한쪽은 계속해서 화살과 마법 공격을 퍼부었고 다른 한쪽은 계속해서 실드를 펼쳐 그 공격을 막아 내는 방식으로 전투가 이어 진 것이다.

티잉! 티잉! 팅!

원래 화살은 물론이고 다크 애로우나 다크 스피어가 실드에 부딪히면서 퉁겨지거나 소멸해야 정상인데 개중에는 아무런 소음도 없이 실드를 파고드는 것들이 있었다. 흑기사나 골든 기사가 마력을 주입해서 날린 특별한 화살들이 실드를 뚫고 안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컥!"

"끄아악!"

기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실드 마법을 펼치고 있던 마법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나가 가득 담긴 특별한 화살들은 마법 공격 사이에 몸을 숨기고 목표물들을 정확하게 타격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바짝 붙어 있긴 했지만 화살 공격은 은밀하고 무척이나 빨랐다.

" 데스 필드다!"

"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

갑자기 연합군 측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이제야 이 분지 전체에서 단순한 흑마법진이 아닌 데스 필드가 펼쳐진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방인을 제외한 사망자들이 좀비가 되어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연합군 측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사기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동요가 커지고 있었다.

' 이대로라면 희생이 커진다!'

아그레시아를 비롯한 지휘부는 안타까운 얼굴로 전황을 살폈다. 이렇게 원격 공격만 받다 보면 적들의 전력은 온전한 데 반해 자신들의 피해는 가랑비에 옷 젖는 거서럼 늘어날 것이다.

이럴 때 마법사들이 공격 마법을 날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일반 병사들을 위해 범위가 넓은 실드를 거의 쉼 없이 펼치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들은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적들은 이미 이 넓은 분지에 몇 개나 되는지 모를 흑마법진을 중첩해서 데스 필드를 펼쳐 놀았기에 자신들에 비해 지치지 않는 상태였다.

' 신전 연합은 뭘 하고 있지?'

문득 뒤를 돌아본 아그레시아는 사제들이 성기사의 보호를 받으며 시체들에 성수를 뿌리며 기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데스 필드에 들어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 적의 주구가 되는 이들이 훨씬 줄어들었다.

' 그나마 사제들이 있어 다행이야!"

안타까운 것은 마법사들 상당수가 실드 마법을 펼치고 있어 흑마법진의 흔적을 찾아내고 부수는 일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 알릴 수는 없는 일.

"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우리에게는 사제들이 있다. 마탑연합에서도 흑마법진을 깨트리고 있으니 곧 자신의 능력을 온전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총사 아그레시아가 음성 증폭 마법으로 직접 상황을 알리자 얇아지던 실드가 다시 두꺼워졌다.

어떻게든 수세에 몰린 전황을 돌리고 싶었지만 현재로써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흑마법진이 약해지기만 바랄 뿐이다.

다행하게도 적들이 처음보다는 지쳤는지 마법 공격은 간격을 두고 가해졌다. 갈수록 간격이 길어지는 것을 보면 다크니스 측 흑마법사들도 지친 모양이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을 때 드디어 적의 공세는 산발적으로 변했다.

당연하게도 가즈 로드 측의 전력과 사기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시 공격을 멈추었을 때 일반 전사들이 거대한 돌들과 통나무들을 날라 오기 시작했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임시 방벽을 쌓기 위함이였다.

그들은 기민하게 움직여 통나무와 돌 들을 이용해서 방책을 세우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조되기는 했지만 물리적인 타격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긴 방책이 완성되었다.

분지 남쪽을 가로지르는 약 10킬로미터의 방책이 완성되고 병사들이 방책과 붙어 참호를 파자 잠시나마 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방인들도 참호를 파는 데 동참했기에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수뇌부 회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모든 전력이 집중되기 전에 전투를 치른 탓에 피해가 적지 않았지만 어쨋든 외성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진군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외성만 넘는다면 개인전과 난전에 강한 이방인들이 성 안팎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 이제 외성을 넘는 것이 남았군요."

" 그렇습니다. 하지만 외성을 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아직 데스 필드도 해체하지 못했습니다."

아그레시아의 말에 후버론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데스 필드로 변해 버린 성 밖에는 60만이 넘는 언데드와 마수들이 포진을 하고 있었다. 적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그 일부만이 자신들을 막았기에 여기까지 진군한 수 있었지 모두 다 달려들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외성까지의 거리는 약 5킬로미더.

능력을 다운시키고 사자를 언데드로 만드는 데스 필드는 여전하고 그 안에는 언데드들과 마수들이 가득하다.

언데드와 마수 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전력이기는 해도 이곳을 포함해 외성 밖 전체가 아직도 데스 필드이기 때문에 특별한 작전이 아니라면 정작 적들은 만나 보지도 못한 채 그놈들과 양패구상을 할 상황인 것이다.

다른 전장처럼 말이 있다면 그나마 기병들과 기사들을 이용할 수 있을 테지만 이곳은 험준한 데빌 산맥의 한가운데, 말은 당연히 없다. 적들 중에 일부가 오히려 마수들을 조련해서 타고 다니기 때문에 이쪽에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 일단 지휘권부터 통일을 해야 합니다."

후버론의 말이 맞다. 오늘만 해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인 이방인들로 인해 다급하게 작전에 돌입했던 것이다. 현재와 같이 느슨한 지휘 체제로는 다크니스를 상대할 수 없다.

후버론의 조언을 받아 이방인 대표들을 만난 아그레시아는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외성을 넘기 전까지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그들의 지휘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급격히 좋아지지는 않았다.

시험 삼아 몇 번 움직여 봤지만 데스 필드의 악명과 언데드와 마수 들의 전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얼마나 강화가 되었는지 일반 언데드들의 경우 병사들의 수준이 올라 있었고 마수들의 경우도 기사들이나 4서클 이상의 마법 공격이 아니면 상대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별 소득 없이 사흘이 흐른 후 가즈 로드의 수뇌부는 막 분지에 도착한 하룬을 초대했다.

이방인들이 합세한 만큼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붙일 생각만 했을 때는 하룬을 위시한 용병들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간 하룬이 보여 왔던 신충귀몰한 작전이 필요했다.

' 뭐야?'

제대로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부르니 불만이 차올랐지만 오는 동안 들었던 전황을 생각하자, 그들의 다급한 마음도 이해는 갔다.

하룬은 이곳에 오기 바로 직전에 진수의 시크릿 팀이 벌인 일을 보고받았다.

' 드디어 내일이 시작이다!'

하룬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 손으로 누르며 연합군 수뇌부가 있는 본부로 향했다.

" 그동안 피해가 많았습니다. 도대체 산악 연합은 언제 나설 겁니까, 하룬 대장?"

" 산악 연합이나 돌풍 용병대가 이끄는 용병들은 오늘에야 도착을 했으니 내일 새벽에 총공세를 취하기로 하지요."

그간 지지부진했던 전투로 인해 잔뜩 스트레스가 쌓인 파블로는 하룬에게 산악 연합을 언급했지만 그의 대답을 들으면서 기억나는 것이 있어 얼굴을 붉혔다. 애초 총공세는 내일모레에 하기로 했던 것인데 연합군 측이 서둘렀던 것이다.

" 자, 모두 지도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하룬은 막사 한쪽에 걸려 있던 대형 지도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 적들의 전력은 외성 밖에 포진한 언데드와 마수 60만, 외성 벽을 중심으로 한 10만 그리고 내성 벽을 중심으로 한 25만입니다. 그간 많은 피해를 보긴 했지만 적들이 이방인이라 부활이 가능했고 또한 초토화 작전으로 인해 이곳으로 피한 골든 로드의 세력이 10만으로 가세했습니다. 다음은 적들의 포진 현황입니다. 외성 밖의 현황은‥‥‥."

하룬은 위신느가 정찰해 온 결과를 지도 위에 장소를 짚으며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 으음."

연합군 수뇌부들은 그간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혔지만 아직도 100만에 육박하는 적의 전력에 침중한 얼굴이 되었다.

"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전력은 가즈 로드 40만, 이방인 길드 연합 14만, 산악 연합 22만, 럼프족 17만, 엘프족 4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풍 용병대가 지휘하는 용병 5만입니다."

" 오오! 생각보다 더 많군요."

아그레시아가 밝아진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숫자로는 적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하룬을 따라온 산악 연합의 수뇌부들과 엘프들에게 잠깐 집중되었다.

" 작전 개요를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두 번의 기회는 없습니다. 만약 내일의 전투에서 우리가 밀린다면 이방인들은 한동안 전투에 소극적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전력은 물론 사기까지 떨어지게 되어 장기전으로 가게 되는데 그건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장기전이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다. 적들은 부활이 가능한 존재인 데다가 사체로 언데드를 만들 수 있는 만큼 장기전은 연합군 측에 불리했다.

하룬은 수뇌부들이 모두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 같자 본격적으로 구상했던 작전을 설명했다.

" 일단 외성 밖에 포진한 언데드와 마수 들은 우리 돌풍 용병대가 처리하겠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한 숫자의 마수들이 자신들의 편을 공격할 겁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흑마법진이 흔들릴 겁니다. 마탑 연합의 마법사들께서는 돌풍 마탑의 마법사들과 합류해서 진형이 드러날 때 흑마법진을 해체하십시오. 용병들은 그런 마법사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릭 ㅗ연합군은 정문과 서문 쪽을 공격하십시오. 산악 연합에서는 동문 쪽을 맡을 겁니다. 세 방향의 후위에서 엘프 궁사들이 철시로 공격을 보조할 겁니다.

그 말에 연합군 측은 얼굴이 밝아졌다.

마수와 언데드의 걱정을 하지 않고 거의 50만에 달하는 대군을 두 방향한 공격한다면 적들을 깨부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 그럼 럼프족은?"

" 럼프족은 적당한 시기가 되면 분지 북쪽의 산 사면을 타고 내려와 공격할 겁니다. 그리고 적들이 혼란스러워지면 돌풍 마탑에서 분지 전체에 펼쳐진 중첩 흑마법진을 깨부술테니 다음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여야 합니다. 일단 큰 그림은 이렇습니다. 세부적인 작전은 여러분들이 의논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말한 하룬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 반드시 한 번에 끝장을 내야 해!'

내일 아침에는 현실에서도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다.

그동안 암무가 제공한 정보로 데드 벙커를 공격했던 오르그들이 간 보는 것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대규모 공격에 나설 예정인 것이다.

또한 현실 세계에서도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위대한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 시간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해!'

오르그들의 공격이 데드 벙커의 방어 막을 세차게 흔들기 위해서는 캡슐 기지의 적들만큼은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 그동안 모은 정보로 판단한 다크 프린스의 성격이 맞아야 할 텐데."

드디어 짙은 어둠에 잠겨 있던 타르 분지도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전투준비를 마친 연합군 측은 축축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빠르게 뜨거워지는 투기를 억눌렀다.

하룬은 수많은 대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방책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

스르르.

붉은 안개는 곧 넓은 외성 밖 초우너 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붉은 연기는 외성 밖에 절반 정도까지 퍼질 수 있었다.

다행하게도 그 범위는 절반 이상의 마수들과 언데드들이 포진한 곳까지 덮을 정도는 되었다.

하룬은 정신을 집중해서 의념을 단단하게 세워 블러드 에센스를 통해 넓게 퍼트렸다.

-뒤를 보라! 자유롭게 살아가던 너희들의 영혼을 속박하고 부려 온 자들을 보라! 옆을 보라! 놈들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죽은 자들이 너희들의 곁에서 썩은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들의 살에 이빨을 박고 뜨거운 피를 마셔라!

정신력이 강해진 덕분에 하룬의 의념은 안개처럼 퍼진 블러드 에셍스의 장(場) 안으로 퍼져 나갔다. 블러드 에센스는 의념을 받아들여 마수들의 영혼에 채워진 족쇄를 풀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한다면 너희들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기분 나쁜 기운을 몸에 품고 있는 자들은 너희들을 속박한 자들이며 그들의 하수인도 너희들의 적이다. 물어뜯어라! 갈기갈기 찢어 버려라! 뼈를 부수고 뜨거운 피를 삼켜라! 그리하면 너희들의 영혼은 자유와 평안을 얻을 것이다!

새벽 해가 떠오르는 시간 방책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하룬의의념이 급격히 강해지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붉은 색의 기운이 마치 호수의 물결처럼 앞쪽으로 향해 발산되고 있었다.

크아앙!

우우워워!

마나에 민감한 마수들 중 일부가 거친 피어를 내기 시작했다. 분노와 광기에 젖은 피어는 마치 전염병처럼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자신과 동족에게 상처를 입힌 적을 쳐다보는 듯 외성 쪽을 향하는 마수들의 눈이 화염처럼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거친 마수들의 숨격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상행동을 보이기는 일부 언데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블러드 에센스의 범위에 있는 좀비와 스켈레톤 들 중 제법 많은 수가 비척거리며 외성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들의 숫자는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엄청난 숫자였다. 그러자 당장에 적 진영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뿌우우! 뿌우!

피이익! 삑! 삐이익! 삑! 삑!

언데드와 마수 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간파한 흑마법사들이 급하게 뿔고둥과 피리로 제어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삼분의 일 가까이는 자신들 쪽을 향해 광기에 찬 살벌한 눈빛을 던지며 걸쭉한 침을 힐리고 있었다.

-어둠의 아이들아, 가라! 너희들을 막는 것들은 모두 적이다! 마음껏 물어뜯고 부숴 버려라!

블러드 에센스와 동조하는 의념의 파동이 어느 순간 최고조에 달하자 언데드와 마수 들 상당수가 일제히 성을 향해 달렸다. 놈들은 자신들을 막아서는 다른 마수들이나 언데드를 덮쳤다.

" 언데드와 마수 들 중 일부가 미쳤다! 어서 제압해!"

" 서둘러!"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마수들과 언데드들을 제어해 온 흑마법사들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마법을 펼치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양측 사이에 있는 넓은 지역은 마수들과 마수들, 마수들과 언데드들 간의 살벌한 전투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 성을 향해 머리를 돌린 존재는 모두 우리 아군이다. 전원 돌격!"

와아아!

아그레시아의 공격 명령을 받은 가즈 로드의 병력과 이방인들이 일시에 미리 무너뜨린 방책 사이로 뛰어나갔다.

" 산악 연합의 용맹한 전사들이여! 우리의 가족들을 학살하고 삶터를 빼앗은 간악한 자들에게 복수를 해라!"

바툰 현자의 말이 떨어지자 산악 연합의 22만 대군은 동문을 향해 물 밀듯이 달려갔다.

단숨에 전장으로 뛰어든 그들은, 같은 마수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을 하는 마수들이 자신들 편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적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구르릉. 구르릉.

그때 새벽하늘을 가리고 있었던 두꺼운 흑마법장이 거세게 흔들렸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미노와 수니가 흑마력장을 찢어 버릴 듯 발톱으로 공격을 한 것이다. 마법장이 흔들리자 바닥에 많은 장소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이때다! 마법사들은 흑마법진을 해제하라!"

후버론의 고함이 울려 퍼지자 용병들의 호위를 받는 마법사들이 각기 맡은 구역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흑마법진이 충격을 받으면서 드러난 포스트에서 마나석을 제거할 것이다.

이제 방책 위에 있는 것은 하룬 일행뿐이였다. 엘프들은 물론 사제들과 성기사들까지 전장으로 향한 것이다.

" 언데드들 중에서도 동료를 공격하는 녀석들이 있어요!"

방책에 올라온 대원들 중 1명이 놀라 소리쳤다. 그러자 대원들의 눈길은 언데드들로 향했는데 놀랍게도 사분의 일 가량의 언데드가 다른 언데드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 어, 어떻게 한 겁니까, 대장님?"

아슈인이 그렇게 물었지만 하룬은 명상에 빠진 것처럼 앉아 있었다.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블러드 에센스였지만 이번에는 과도하게 발출을 했는지 알몸이 된 것처럼 허전에서 하룬은 한동안 풀었던 블러드 에센스를 끌어들이는 데 집중해야만 했다.

" 도대체 대장님은 뭘 어떻게 한 거야?"

" 그러게. 저 붉은 안개는 왜 대장님의 몸으로 모여드는 거지?"

대원들은 하룬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 붉은 안개를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하룬은 블러드 에센스를 모두 회수한 후에야 아슈인 고문의 질문을 다시 받았다.

"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발몬으로 인해 쓸 수 있게 된 블러드 에센스가 마수들만 아니라 언데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추측만 할 뿐이였다.

60만에 달하는 마수와 언데드 중 20만 정도가 머리를 반대로 돌리자 상황은 가즈 로드와 이방인들에게 완전히 유리하게 돌아갔다. 느닷없는 상황에 적들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서 뒤따르고 있는 엘프 궁사들은 마수와 언데드 사이에 은신하고 있던 흑마법사들을 요격하고 있었다.

엘프 궁사들과 돌풍 용병대의 궁병대가 날리는 철시는 마나와 신성력을 머금고 있어, 그것에 맞는 마수들과 언데드들은 속속 쓰러지고 있었다.

" 이제 우리도 북쪽으로 이동합시다. 펠, 준비해!"

" 알았어, 형."

남은 것은 하룬을 위시한 30명뿐. 그간 비약적으로 올라간 펠의 능력으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내성 중심부에 있는 7층 규모의 지구라트 최상층에 있는 집무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다크 프린스는 기이한 감각에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성에 커다란 비상 신호음이 울리더니 곧바로 총참모장이자 비서인 시린이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 로드, 적들의 공격이에요."

공격이야 지난 사흘 내내 있었지만 지금의 시린 목소리는 정말로 다급하게 들렸다.

" 어느 정도인데?"

" 그게 외성이 무너질 것 같아요."

" 뭐라고? 마수들과 언데드들이 놈들을 막지 못했단 말이냐?"

믿을 수 없는 말에 다크 프린스의 얼굴이 굳는 순간 건물은 물론 주변 대기까지 요란하게 흔들렸다.

이건 몇 겹이나 중첩된 흑마법진이 생성해 낸 마력장이 강한 충격에 진동을 하는 것이다. 적들 중 8서클 대마법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운석 소환같이 실전된 고대 마법이 아니라면 직접적으로 이 정도 충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은 없다.

우우우웅.

중첩된 흑마력진의 심장부 역할을 하고 있던 문양과 그 문양을 이루고 있는 마나석들이 거세게 흔들렸다.

" 데스 필드가 해체되고 있어!"

자신의 흑마력으로 분지 전체에 감각장을 깔아 둔 다크 프린스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모은 마나석을 모두 동원해서 스무 겹이 넘게 흑마법진을 중첩시켜 만든 데스 필드가 해체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어어엉! 쩌엉!

지구라트 건들까지 흔들릴 정보의 강력한 진동이 발생했다.

" 설마 공중?"

당장 창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본 시린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튀어나왔다.

" 저놈들! 돌풍이에요! 그때 나타났던 버처리비크가 다시 나타나서 마력장의 상층부를 타격하고 있어요."

다크 프린스는 돌풍이라는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래도 데스 필드가 해체된 것이 돌풍 용병대가 한 짓인 모양인다.

자신이 아는 한 그런 역량을 지닌 놈들은 돌풍 용병대가 유일했다.

' 대장의 복수를 하려는 거군. 얼마든지 와라! 모조리 다 언데드로 만들어 줄 테니까.'

이 정도로 깨질 흑마법진이 아니다. 외성이야 넓었기 때문에 쉽게 해체되었는지 모르지만 내성 쪽은 마나석들이 더 좁은 간격으로 배열되어 메테오 정도의 마법이 아니라면 깰 수 없다.

" 각 문의 상황은 어때?"

" 남문이 가장 위험해요! 소드 마스터로 추정되는 강자들만 서른 명이 넘어요."

" 대기하고 있던 전력을 모조리 남쪽으로 돌려라! 당장 현실의 캡슐 기지에 있는 자들을 소집해라!"

빠르게 밖으로 나가 다크 프린스의 명령을 전한 시린이 돌아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소집할까요?"

" 그쪽 상황은 어떻지?"

" 현실 시간으로 1시간 전에 알아본 바로는 데드 벙커로 향했던 오르그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잠시 후퇴한 상태라고 들었어요. 캡슐 기지의 오리온 전단원들도 기지로 복귀한 상태일 거에요."

요즘 오르그들은 연일 데드 벙커를 공격하고 있었다. 물론 매번 엄청난 피해를 입고 퇴각하는 일이 반복되기는 하지만 그 일로 인해서 그의 직속 수하들까지 접속하는 데 영향을 받고 있었다.

" 그럼 모두 다 불러!"

캡슐 기지에 근무하고 있는 오리온 6개 전단의 인원은 무려 15만에 달한다. 그간 조직에서 공을 들여 레벨을 올린 그들의 경지는 익스퍼트 중금 이상으로 소드 마스터만 해도 50명이 넘는다. 그들이 모두 접속한다면 가즈 로드 정도는 우습다.

삑! 삑! 삑! 삑! 삑!

갑자기 책상 위에 놓인 통신기를 통해 1급 비상 신호음이 울렸다.

" 로드 집무실이다. 무슨 일이냐?"

시린이 잽싸게 움직여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N1 포스트입니다. 몬스터들이 공격해오 오고 있습니다.

N1이라면 외서 북문에 있는 정찰 포스트였다.

"뭐라고? 몬스터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분지의 북쪽은 엄청난 경사의 험준한 산들이 자리하고 있다. 마수들은 물론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의 험준한 지형을 가진 산들이라 자신들도 그쪽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에 뿔이 난 오크들입니다.그리고‥‥‥ 마, 마수들입니다. 마수들도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아아악!

통신은 비명과 함께 끊어졌다.

'오크들과 마수들이 왜?'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연속해서 들어오는 통신의 내용은 마수들의 반란을 보고하고 있었다.

'어디서 뭐가 잘못된 거지/ 오크들이 인간 편에 섰을 리는 없는데. 그리고 설마 우리 말고도 마수들의 영혼을 제압하는 자들이 또 있단 말인가?'

마수의 영혼을 제압하는 흑마법이 잘못될 리는 없다. 그랬다면 이전에 이미 문제가 발생했을 테니까.

다크 프린스는 산악 부족들 중 일부가 마수들을 길들여 가족처럼 산다는 보고를 얼핏 떠올렸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험준한 산을 마주 보고 있는 북문 쪽은 방어 병력이 다른 곳에 비해 현저히 부족했다.

" 당장 베텔 전단을 북쪽으로 보내! 나머지 전단들도 접속하는 대로 그쪽으로 보내고."

불안했다. 믿고 있었던 마수들과 언데드들 중 일부가 미쳐 자신들을 공격하고 내내 찜찜했던 돌풍 용병대가 결국 적들에게 가세했다. 그리고 언데드의 재료이자 각종 흑마법의 실험체였던 산악 부족들이 독기를 품고 급습을 해 왔다.

'젠장!'

이미 데드 벙커에서 은밀하게 진행하던 재생 연구의 자료는 충분히 확보해서 현실로 보냈다. 이 비욘드에 더 이상 있을 이유는 없었다.

순수석을 찾으러 간 놈들은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혼돈의 땅에 들어선다는 연락을 받은 얼마 후 모두 죽어 버린 것이다. 그곳으로 파견했던 특전단은 대부분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일부는 죽음의 충격으로 인해 캡슐과 함께 폭발했다.

소드 마스터 2명과 6서클 마법사 3명이 1개 전단 병력을 이끌고 갔는데도 언젠가부터 연락이 끊겨 버렸다.

아마도 전명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흉험한 곳이라면 자신이 직접 간다 해도 순수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제부터는 현실에서 전 세계를 지배할 힘을 길러야만 할 때이다. 거기에 초인이 되었다는 부모와 그 추종 세력을 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더 재미있어! 그리고 이런 상황은 더욱 짜릿하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상대는 강력한 힘과 지모를 가지고 있다. 아마 이번 전투로 승패는 확실하게 갈릴 것이다.

' 만약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난 현실에서는 물론 이곳 비욘드의 세상에서도 신이 되겠지!'

자신에게 경배하는 수천만 아니, 수억의 개미와 같은 하찮은 존재들을 떠올리자 다크 프린스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떠올랐다. 제대로 웃어 본 적이 없어 미소 역시 어색하기만 했다.

' 흥분된다! 섹스 따위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이 흥분과 쾌감이라니!'

이전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강렬하고 짜릿한 쾌감이 그의 피를 뜨겁게 달고 있다.

' 이곳에서 끝을 봐야지!'

이곳의 흑마법사 생활은 현실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좋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쥘 수 있는 현실과 달리 이곳은 자신의 능력보다 더 뛰어난 이들도 존재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

다크 프린스는 일단 지금 상황에 충실하기로 했다. 다급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시린의 얼굴과 이제는 연속해서 들어오는 비상 통신이 그의 피를 뜨겁게 달구었다. 무미건조했던 현실과 달리 이곳 비욘드는 그에게 특별한 흥분과 함께 살맛이 넘치는 세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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