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4화.진수의 복수 (275/278)

 진수의 복수

 데빌 산맥 북쪽에 위치한 에인 성은 파이린 제국 방향의 이방인들이 타르 분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어 최근 엄청난 인 파가 경유하는 곳이 되었다.

 내성과 외성 사이의 한 구역에는 여관과 식당을 겸한 3층 짜리 목조건물들이 줄지어 지어져 있었고 가판이 가능한 구 역도 있어 타르 분지가 목적지가 아닌 상인이나 생산직 계열의 이방인들도 많았다.

 주로 에인족들이 거주하는 내성은 이방인들의 출입이 금지 되었지만 숙박 시설은 물론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었기에 이방인들이 불편한 점은 전혀 없었다.

 에인족 칸들과 탄들은 하룬에게 언질을 받은 대로 문화적 충격을 고려하여 외부인들의 내성 출입을 금지하는 대신 건물과 땅 시용료와 상품 판매에 대한 세금을 징수하기로 했기 때문에 파이린 제국에서 들어온 상인들과 전사들 그리고 이방인들은 큰 불만이 없었다.

 해가 중천에 뜬 시간 내성 벽과 붙어 지어진 부활소에서 몇 사람이 나왔다.

 "와! 이곳도 많이 변했네."

 몇 개월 전만 해도 밭이었던 구역이 별 특색이 없이 동일한 모양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몇 개의 거리를 형성할 정도로 달라졌기에 진수와 그 친구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네."

 "하하하. 이게 다 우리 덕분이라고."

 "맞아. 그렇지."

 진수와 친구들은 자신들이 갖은 위험을 헤쳐 가며 뚫은 루트가 아레스에 의해 알려지면서 그 루트의 중간에 있는 이곳 에인 성이 이방인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글로리 가이아와 휴먼 가드를 제외한 이방인들 중에서는 타르 분지에 가장 먼저 입성했던 진수와 친구들은 다크니스 본단의 경계병들에게 노출이 되는 바람에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결국 죽었고 미리 지정한 부활 장소인 이곳 에인 성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진수와 친구들은 뿌듯한 얼굴로 외부인 구역을 구경했다.

 먼저 내성의 문과 연결된 거대한 광장은 4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휴식을 즐기거나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수 많은 가판대와 흥정하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외성 쪽으로 뻗어 있는 세 거리 중 하나는 상가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부족한 보급품들을 사들였다. 가판에 비해 비싸 기는 하지만 믿을 수 있었고 그들이 타르 분지까지 가면서 모은 아이템들을 쉽고 빠르게 처분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거리는 공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타르 분지로 향하는 외부인들이 대부분 전사들이거나 마법사들이 기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여행 장비들을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공방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진수와 친구들은 이곳에서 급할 때 쓸 수 있는 단검과 같은 무기들을 구입하고 자신들의 무기를 수리했다. 그리고 향한 곳은 숙박 시설들이 늘어선 숙박거리였다. 돌풍 용병대원임을 밝히면 내성으로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지만 대우는 어떨지 몰라도 사실 시설은 이곳이 더 좋을 것이다.

 여관 1층의 식당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흘러나왔고 안에서는 떠들썩한 대화가 흘러나온다. 한눈에도 이방인임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무리를 이루어 오가는 거리는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진수 일행이 막 한 여관을 지나치고 있을 때였다. 여관의 창으로부터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있었다.

 퍽!

 "뭐야?"

 얼굴과 상체에 소스로 버무린 야채를 뒤집어쓴 서린이 음식물이 날아온 곳으로 성난 눈길을 던졌다.

 그곳에는 창이 활짝 열려 있었고 몇 사람이 그의 꼴을 보며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어이, 떨거지들! 그 꼴을 하고 겁도 없이 이곳에 오다니 미친 거 아니야?"

 "클클클! 구걸을 하려면 황도로 기야지, 왜 이곳을 온 거야? 혹시 다크니스나 마수에 구걸을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캇! 캇! 캇! 네 말이 맞다."

 음식물을 뒤집어쓴 서린과 친구들이 향하는 곳에는 태양과 달이 나란히 새겨진 방어구를 입은 자들이 벌겋게 달은 얼굴로 그들을 보며 말장난을 하고 있었다.

 '파라오 길드? 왜 저들이?'

 방어구의 어깨와 가슴에 새겨진 문양은 분명히 그들이 파라오 길드원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파라오 길드는 막대한 자금과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어 한때는 데빌 산맥의 성을 차지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가진 대형 길드였다.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한 서린의 눈이 스산하게 빛나는 순간 진수가 빠르게 움직여 막 검을 뽑아 돌려는 그를 말렸다.

 "경동하지 마. 그냥 지나가자!"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건이 벌어지면 공연히 주목을 받게 된다. 그들이 하는 일의 특성상 정체가 공개되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서린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질끈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더니 말없이 얼굴과 머리를 더럽힌 음식 찌꺼기와 소스를 닦아 냈다.

 "잘참았어. 가자!"

 진수가 그의 어깨를 몇 번 치고는 앞으로 나섰다. 굳이 이런 자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빨리 숙소를 잡아 쉬고 싶었다. 친구들이 이를 악문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들의 걸음은 채 열 보도 이어지지 않아 멈추었다.

 "어이, 쓰레기!"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다.

 순간 진수의 몸이 멈추더니 격렬하게 떨렸다. 천천히 돌아서는 그의 눈에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재수없는 얼굴이 보였다.

 "강. 혜. 리."

 "호호! 개처럼 혓바닥으로 내 신발을 핥던 천한 놈이 여긴 웬일이야?"

 강혜리는 예전의 그때처럼 패밀리들을 잔뜩 거느리고 있었다. 아마도 서린을 희롱한 짓도 그녀의 사주에 의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하도 많이 죽여서 다신 비욘드에는 접속하지 않을 줄 알았더니 내 경고가 약했던 모양이야? 그런 거지꼴을 하고도 잘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거지 근성은 그대로인 것 같 지만. 호호호!"

 생긴 것으로만 보자면 미인의 전형인 강혜리지만 위로 치솟은 눈꼬리와 눈에서 흘러나오는 악기(惡氣)가 미모를 가리고 있다. 물론 그건 아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두근! 두근! 쿵! 쿠웅!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얼마나 그리던 순간이던가. 이 넓은 비욘드의 세상에서 이렇게 원수를 맞닥뜨리다니. 진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매를 뒤틀어 작은 미소 조각을 만들었다.

 "호호호! 내 발바닥을 할았던 것이 그렇게 좋았나?"

 강혜리는 진수가 보이는 뜻밖의 반응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자신에게 당한 자들은 거의 모두가 주눅이 들어 설설 기는 모습을 보이거나 개중에 대가 센 자돌만이 증오를 표출 하는데 엷은 미소를 짓는 진수의 반응은 그 둘 중 어느 곳에 도 속하지 않았던 것이다.

 "큭! 큭! 누군가 했더니 변태 짓을 좋아하는 미친년이잖아!"

 진수의 입에서 나온 말에 강혜리의 얼굴이 얼음으로 변해 버렸다.

 '감히!'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모욕적인 욕설에 얼음으로 변한 강혜리의 얼굴이 산산조각으로 깨지려고 했다.

 "더럽고 천한 놈! 당장 사과해라!"

 묵직한 목소리에 강혜리가 환하게 웃었다. 그 목소리는 몇 년 동안 공을 들이고 있는 파라오 길드의 길드장 이두빈의 것이다. 그렇게 애교를 부리고 여우 짓을 해 왔어도 무뚝뚝 한 반응만 보이던 그가 자신이 모욕 받은 것에 나섰다.

 "하루에도 몇 놈을 갈아치우는 갈보에, 남을 괴롭히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변태를 편드는 걸 보면 비슷한 종자인가 보군. 지금이면 타르 분지에서 대회전이 벌어지고 있을 텐데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 아직도 여기에서 계집 같지도 않은 년과 노닥거리며 빌빌대고 있는 것을 보니, 돈과 권력으로 레벨을 높인 겁쟁이 같은데 ……. 너 혹시 개보다 더 더러운 피를 가지고 있다는 구노블 새끼나냐?"

 진수의 차가운 말에 강혜리는 물론이고 이두빈의 얼굴까지 하얗게 변했다.

 친구들은 놀라 진수를 멍하니 보았다.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만 보였던 진수였기에 마치 딴사람이 된 듯 생경했고 지금 한 발언의 무게가 무척이나 무거웠던 것이다. 어쨌건 강혜리를 편든 놈은 노블이 아닌가?

 하지만 진수의 얼굴은 아무런 불안감도 떠을라 있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 벨을 통해 전해 들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혁명의 시작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한단 말씀이야!'

 챙!

 "으드득! 다시 한 번 지껄여 봐, 이 새끼야!"

 당장 이두빈의 곁에 있던 자가 검을 빼 들었다.

 "사내건 계집이건 철들 무렵부터 시작해서 수시로 상대를 바꾸며 섹스에 탐닉하는 노블 새끼들의 피가 더러운 것 사실이지. 같은 동급생으로 하여금 제 발을 핥게 만들면서 자지러지던 변태 같은 저년이나 그런 년을 감싸는 저 새끼나 어느 종자의 씨인지 알 게 뭐야? 막말로 이름만 부부지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것들이 노블인데. 안 그래?"

 "이익!"

 검을 빼 들었던 자는 이를 악물었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에 당장 검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진수가 한 말은 유니온의 모든 주민들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가문의 적자이거나 후계자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지도자 교육이라는 걸 받기 때문에 비교적 그럴 일이 별로 없지만 대부분의 노블들은 평생 섹스와 알코을 그리고 각종 도락을 즐기며 흥청망청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성관계에 대한 터부가 거의 없는 상태로 방관된 노블들은 수시로 상대를 바꾸어 가며 성 그 자체를 즐겼고 사생아를 양산해 왔던 것이다. 우습게도 노블들은 일반 주민들보다 자식에 대한 애정이 현저히 약했다.

 자신의 힘으로 노불 자리에 오른 신노블들이나 조금 다를까 구노블들의 추악한 행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비루먹을 개새끼가 감히 어디서!"

 강혜리의 패밀리 중 하나가 거칠게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 들었다. 검 전체가 오러에 휩싸인 것을 보니 익스퍼트 초급은 넘긴 모양이다.

 "타앗!"

 시크릿 팀원들 중 무력을 담당하는 서린의 손이 기합성과 함께 허리로 향하는 순간 검광이 번뜩였다.

 "커억!"

 순식간에 진수에게 검을 날려 온 자의 심장 부위에 서린의 검이 꽂혔다.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또 어떻게 검을 내지른 것인지 제대로 본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쾌검이었다.

 "이 새끼들이!"

 강혜리의 우측에 있던 여검사가 욕설과 함께 검을 빼 들었다.

 슈아앙.

 순식간에 검첨에서 검사가 쑥 솟아을랐다. 완연한 익스퍼트 중급 실력을 가졌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기세 좋게 나선 여검사의 눈이 서린의 옆에 있던 수도가 양손 검을 상단으로 을린 순간 가늘어졌다.

 "상급?"

 그의 바스타드 소드는 푸른 오러로 코팅되어 있었고 검신은 50센티나 늘어나 있었다. 그의 검은 막는 것은 뭐든지 베어 버리겠다는 기세가 담겨 있어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수도의 경지는 상급 익스퍼트였다. 진수와 친구들은 정식으로 시크릿 대원이 된 후 몇 차례에 걸쳐 하룬으로부터 스킬북과 순정석을 전해 받았고 위험천만한 길을 걸으며 실전 경험을 쌓아 빠르게 실력을 올렸다.

 "후후후! 그 정도의 실력으로 노블들을 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보지?"

 인물 보정으로 조각과 같은 얼굴을 가진 이두빈이 나섰다. 눈에서 시퍼런 독기가 홀러나오는 것을 보면 끝장을 보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를 따라 수십 명이 마치 파도처럼 움직 였다.

 "실력을 보니 평범한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느 길드 소속이냐?"

 익스퍼트 상급이라면 공식적으로는 전체 유저 중 1만 명 이내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 길드원이 아니라면 도저히 을릴 수 없는 레밸이다.

 강혜리나 자신의 신분을 뻔히 알면서도 노골적으로 모욕을 할 수 있는 자라면 그만한 배경을 지녔을 것이 틀림없다.

 '뭐, 아닐 수도 있겠지.'

 그나마 침대에서는 좀 쓸만하지만 머릿속은 팅 빈 무뇌충 같은 년에게 당한 복수심 때문에 광분하는 놈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나 분노 외에는 아무런 동요도 느낄 수 없는 일행의 태도를 보면 예사로운 놈들은 아니다.

 "그러는 네놈은?"

 이두빈은 이곳이 아무리 가상현실 세계라지만 노블인 자신과 맞먹으려고 드는 무례하고 천한 자들의 태도에 울컥했다.

 "내가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이두빈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강혜리에게 당한 것을 보면 코원 출신이라는 것인데 코원 유니온의 아홉 원로원 가문 중 '황금의 이가(李家)의 후계자인 자신을 모를 리가 없다. 그가 액수를 짐작할 수 없는 엄청난 자금을 바욘드로 끌어들여 만든 파라오 길드는 길드 순위 30위권 안에는 항상 꼽히는 대형 길드다.

 "후후! 내가 알아야 할 정도로 대단한가?"

 "이 죽일 놈! 내가 바로 파라오 길드의 길드장 칼리츠다!"

 "그래? 난 돌풍용병대원인데."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제기랄!'

 장차 자신과 결혼할 강혜리를 건드린 놈들이다. 물론 강혜리가 제정신이 박힌 여자가 아니라는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지만 약혼녀의 앞에서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성질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당장 놈들을 갈아 마시고 싶었지만 거대 길드의 길드장이니만큼 이미지 관리를 해야만 한다. 칼리츠는 자신의 팔을 당기는 강혜리의 독살 맞은 시선을 보고는 거의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많은 이들 앞에서 끝장을 내 주지.'

 작정을 한 칼리츠는 먼저 간을 보기로 했다.

 "하하하! 돌풍 용병대라고?"

 "그래!"

 진수의 대답에 칼리츠는 한쪽 입매를 치켜 올렸다.

 "돌풍이 유명하니까 이젠 개나 소나 다 돌풍 용병대라네."

 사실 돌풍 용병대라는 이름을 가진 용병대는 벌써 수십 개가 넘는다. 물론 그 앞에 '헬'이라든가 '마쉬의'와 같은 수식어가 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들은 보통의 경우에는 그 수식어를 떼고 자신들을 돌풍 용병대라고 불렀다.

 "좋아! 그럼 길드전을 신청하지. 양쪽 다 이방인으로 백 대 백, 어때? 한 명도 남김없이 다 죽을 때까지."

 칼리츠는 혹시 몰라 자격을 이방인으로 한정했다. 돌풍 용병대의 강력함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상태였기에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풍 용병대에도 이방인 대원들이 있다는 말은 알려졌지만 그 숫자는 극히 소수라고 했다.

 난데없는 길드전이라는 말에 진수가 눈을 껌벅였다. 길드전은 길드끼리 성립하는 거 아니었나? 하지만 그의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쌍방의 합의와 참관인만 있으면 어떤 단체든 조건을 걸고 대결을 벌이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길드전에 참가한 백 명에 한해서는 착용하고 있는 모든 아이템 전부를 내놓기, 어때? 왜, 자신없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오해라도 한 것일까? 비열하게 눈웃음을 짓고 있는 칼리츠가 더욱 도발한다.

 '이런 것이 가능한 걸까?'

 길드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진수다. 비욘드를 시작하고 하룬을 만난 후에는 던전을 찾아가 오지를 헤매고 다녔으니 이런 정보에도 무지하다. 진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칼리츠의 제안에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진수의 모습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한 강혜리와 칼리츠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을랐다.

 "호호호! 그거 재미있겠다. 그럼 난 거기에 1만 골드를 걸게."

 강혜리가 이제야 분이 조금 풀린다는 듯 칼리츠의 팔장을 끼며 눈웃음을 쳤다.

 진수는 이를 갈았다.

 "거기에 강혜리와 핵심 패밀리 열 명이 포함된다는 것과 길드전에서 패하면 강혜리와 그 패밀리들이 사흘 동안 이곳 에인 성을 기어 다니며 잘못했다고 빌겠다는 추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수락하지."

 생각이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입 밖으로 진수의 마음속에 있던 말이 튀어나왔다.

 "호오! 그럼 너와 떨거지들은? 같은 조건이면 되겠나?"

 "콜! 판돈을 좀 더 을리도록 하지. 10만 골드 어때?"

 그간에 자신이 던전에서 벌어들인 돈이야 얼마 안 되지만 안 받겠다는데도 하룬이 챙겨 준 돈을 합하면 그 정도는 된다. 돈이야 부족함이 없는 노블들이라지만 실권을 가진 놈들도 아니고 아직도 도락에 빠져 있는 젊은 놈들이니 그 정도면 엄청난 손실이 될 것이다.

 과연 진수의 생각대로 10만 골드라는 액수에 칼리츠의 눈매가 살짝 뒤틀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들이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그럼 심판부터 구해야겠군."

 "그거 우리가하지."

 칼리츠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 말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칼리츠를 비롯한 사람들의 눈이 그를 보자마자 휘둥그레지는 것을 보면 꽤 거물인 모양이다.

 "파로츠?"

 "길드 연합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 나와 내 길드원들이 참관원이 되도륙하지"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검사는 회색 방어구를 입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와이번 가죽인 것 같았다. 그가 착용한 아이템들은 한눈에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엄청난 것들이었고 그것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도였다.

 어느 곳에 있어도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기도를 가진 파로츠는 이방인 길드 중 실력이나 규모로 공히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길드인 '토르'의 부길드장이었다.

 "왜?"

 칼리츠는 파로츠가 왜 이런 일에 나서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방인 길드 중 상당수가 타르 분지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곳에 토르 길드의 수뇌부 중 1명이 머무르고 있는 줄은 몰랐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갑자기 사정이 생겨 타르 분지에도 못 갔는데 잘됐다. 그리고 너희들이 상대하려는 자들이 아무래도 허접쓰레기처럼 보이지는 않거든."

 '제길!'

 맞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길드전이야 자원이 많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놈들 가운데 상급 익스퍼트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만 했다.

 그 정도 실력자가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솔로 플레이를 하는 유저가 혼자 힘으로 이 정도 레벨과 실력을 을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나 디름없다. 그 뒷배가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던 것이다.

 "좋아. 장소는 광장에서 하기로 하고 시간은 언제가 좋나?"

 딱딱하게 굳었지만 불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진수의 목소리에 왠지 불안해진 칼리츠는 시간을 끌면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1시간 후, 어때?"

 그 정도라면 놈들의 역량을 잴 수 있다. 거대 길드에 속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으로 을 것이다. 광장 한쪽에 있는 워프 센터는 10분에 한 번씩 가동할 수 있지만 비용이 비싸 평범한 자들은 감히 이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좋아. 그럼 1시간 후에 광장에서 보지."

 진수는 그 말과 함께 광장 쪽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광장으로 향하는데 여관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인해 거리가 가득 찰 정도였다.

 "달링, 믿어도 돼지?"

 "믿어!"

 색기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강혜리의 물음에 칼리츠는 표정 관리를 하며 자신감을 담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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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돌풍 용병대일까?"

 "에이! 저 행색을 봐라. 돌풍 용병대 특유의 방어구가 아니잖아."

 "하긴. 행색만 봐서는 어디 오지에서 고생만 하다 온 것 같네."

 "거기에 요샌 돌풍이란 이름을 넣은 길드나 용병대가 하나둘이 아니잖아."

 "그렇기는 하네. 하지만 저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진 것 같은데. 분위기도 차분하고."

 "그래.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코원 유니온 출신으로는 세 번째로 큰 길드와 붙게 되었는데도 저렇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정도면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안 될거야."

 진수 일행의 뒤를 따르는 유저들은 저마다 이번 길드전을 예상하며 관심을 보였다.

 '흐흐흐! 아주 박살을 내주마.'

 멍청한 칼리츠로 인해 강혜리를 부숴 버릴 기회를 얻게 된 진수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심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곳 에인 성은 유저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돌풍 용병대의 안방이나 마찬가지이다.

 '에인족은 돌풍 용병대의 주축이지.'

 참관을 맡기로 한 토르 길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광장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중심 구역 밖에는 줄이 쳐져 출입을 금했고 그 양쪽에 대형 막사를 설치해서 길드전의 당사자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파로츠에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게임 방송사 관계자들은 익숙한 솜씨로 광장 이곳저곳과 내성 벽까지 카메라맨들을 배치하는 등 촬영 준비를 했다.

 고대 마법서가 봉인된 타르 분지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면서 한동안 사라진 길드전이,비록 제한된 형태지만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유저들은 흥분했고 동행 취재를 하고 있던 게임 방송사들은 호재를 잡는 듯 판을 키웠다.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나타난 칼리츠와 강혜리는 예상보다 판이 커지자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며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제길! 이래서야.'

 아직 적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인 터라 칼리츠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렇게 판이 커진 상황에선 쓸 수 있는 패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모계(謨計)나 암살 혹은 독계는 아예 쓸 엄두도 낼 수가 없다.

 잠시 후 부길드장 중 1명인 카세인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어때?"

 "드나드는 자들이 아예 없습니다. 너무 조용합니다."

 카세인은 칼리츠의 명령에 따라 적의 동태를 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동태라기에는 너무나 조용한 터라 불안해서 중간에 보고를 하러 들어온 것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약속 시간이 되려면 아직 30분이 남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

 "호호호 뻥이 센 놈들이에요. 예전에도 무한 척살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내 앞에서 사내인 척한 놈이라고요."

 '미친년!'

 강혜리가 종종 벌이는 짓은 보고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유저들을 모욕하고 심하면 몇 날 며칠을 괴롭히곤 하는 강혜리의 변태 짓을 익히 알고 있는 칼리츠는 가문 간의 약속이 아니었다면 눈길도 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놈이 난 놈이지.'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패밀리가 될 자격이 있다. 자신의 곁에 대가 센 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고 나서는 그럴 만한 인물을 찾고 있었다.

 "노블들에게 이렇게 도전을 한 상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합니까?"

 어느새 막사 안으로 들어온 기자의 질문에 강혜리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쓰레기 같은 작자들이죠. 저들 중 한 명은 현실에서 아는 자인데 학창시절부터 워낙 지질한 놈이었어요. 능력도 없으면서 감히 노블의 권위에 반항하는 등 정신이 썩은 작자여서 현실에서도 몇 번 손을 봐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천한 놈도 이 게임을 하더군요. 잘 봐주려고 했지만 여전히 하는짓이 밉상이라 한 번은 스무 번 이상 무한 척살을 한적도 있었지요."

 '미……친년!'

 칼리츠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는 행동이야 어떻든 이미지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노볼 자제들에게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지만 강혜리는 거침없이 자신이 한 짓을 밝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혼은 다시 고려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저 정도로 머리가 빈 여자라면 아무라 자신에게 필요한 배경을 가지고 있더라도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렇게 밝힌다고 공공연하게 노불들을 욕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자각도 없다면 곤란하다.

 "그럼 오늘 볼만하겠군요."

 "호호. 기대하세요. 감히 노블들에게 대항하는 자들이 어떤 꼴이 되는지 똑똑히 보여 줄 테니까요."

 급기야 거기까지 인터뷰가 진행되자 칼리츠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배리어 축소 이후 안 그래도 사회 분위기가 불안하고 노블들에 대한 인식도 바닥을 기고 있는데 이년은 아예 불을 지르고 있었다.

 "그럼 이 생사투를 기대하겠습니다."

 기자는 그 말을 남기고 카메라맨과 함께 방송 준비가 한참인 광장으로 돌아갔다.

 "두빈 씨, 나 잘했지요?"

 칼리츠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 그래도 아버지가 코원 유니온의 GPC 핵심 간부인 강혜리 덕분에 스페셜 캡슐까지 얻었으니 화낼 필요는 없었다.

 "자, 이젠 우리도 가서 준비해야지?"

 "호호호. 두빈 씨나 부하들은 손 하나 끼닥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저런 허접한 자들은 우리 패밀리만으로도 간단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빨리 끝내고 파티나 하러 가요. 오늘 저녁에 김가(金家)에서 파티를 연대요."

 일반 주민들은 평생 한 번도 구경할 수 없는 갖가지 진귀한 음식들은 물론 마약과 알코을이 무한정 공급되는 파티는 노블 자제들의 놀이터이자 결혼 적령기에 든 자들에게는 자신의 배우자를 찾는 자리이고 기혼자들에게는 불륜의 상대를 찾는 곳이다.

 자신도 누구 못지않게 쾌락을 즐기는 칼리츠지만 강혜리를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도 개차반인 여자가 밝히기까지 하니 그 말로가 정말 궁금했다.

 '필시 알코을이나 마약 중독에 몇 개의 성병까지 걸려 골골대다가 서른 전에 죽겠지.'

 그렇게 죽을 때까지만 비위를 맞추면 그 엄청난 재산과 세습되는 직위가 넘어을 테니 지금 당장은 한심해 보여도 참는 수밖에 없다.

 마침내 정해진 시간이 되었다.

 "푸훗! 저놈들 그렇게 있는 척하더니 결국 그 인원으로 우리랑 불으려는 모양이네."

 강혜리의 말대로 놈들이 있는 막사로 가는 자들은 없었다. 그들의 막사 뒤편은 출입이 봉쇄된 산악 부족의 거주지인 내성 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아까의 그 인원 그대로일 것이다.

 "뭐, 아무렴 어때? 이 기회에 레벨 좀 높다고 같잖게 대우를 원하는 벌레 같은 놈들에게 따끔하게 경고를 주면 되는 거지."

 "호호호! 맞아요.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라고요"

 칼리츠의 말에 강혜리가 교소를 터트리며 교태를 부렸다.

 두둥! 두둥!

 참관을 맡은 토르 길드가 양측의 대표를 소환했다. 심판은 총 5명으로 토르 길드는 물론이고 다른 길드에서도 자원했기에 충분했다.

 "상대편이 모두 죽을 때까지 결투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결투 방식은 아무 제한이 없습니다. 단지 정해진 결투 공간만 벗어나지 않으면 됩니다."

 미리 양측이 결의한 내용을 큰 소리로 외쳐 모두에게 알리는 심판의 말에 칼리츠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칼리츠를 보는 진수의 눈이 묘하게 반짝였다. 흥분한 칼리츠는 보지 못했지만 심판은 진수가 입은 방어구가 아까완 달라졌음을 확인하고 강렬한 흥분을 느꼈다. 그것을 알지 못한 칼리츠의 눈빛이 스산해졌다.

 '잔인하게 발라주지! 다시는 개기지 못하도록.'

 마침 게임 방송사까지 와서 촬영을 하고 있으니 이참에 레벨이 높다고 감히 현실의 신분마저 가끔 망각하는 천한 놈들에게 경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방어 마법진 발동!"

 주심판의 말에 미리 설치해 둔 방어 마법진이 발동했다. 웬만한 타격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투명한 방어 막이 원형으로 생성되어 결투 공간을 뒤덮었다. 양측은 그 안에서 마지막 1명이 죽을 때까지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이게 된다.

 "먼저 파라오 길드와 가디스혜리 패밀리부터 입장하시오!"

 둥둥둥! 둥둥둥!

 투기를 끌어 올리는 북소리가 을리자 파라오 길드 측의 막사문이 젖혀지며 1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만만치 않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전사들과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름을 도용하는 자들은 완전히 박살 내 버려라!"

 "내 골드 전부 다 걸었으니 제대로 해라!"

 어느 틈에 도박판까지 열린 모양이다. 비록 노블이 이끄는 길드라서 큰 인기는 없었지만 인지도는 높은 편이고 길드원들이 돈을 보고 모여든 자들이기는 해도 실력이 뛰어난 터라 그들을 지지하는 관객들이 대다수였다.

 파라오 길드원 80명과 가디스혜리 패밀리 20명이 모두 입장하고 미리 약정한 금액을 수령한 심판은 홍미로운 눈빛으 로 진수를 보며 돌풍 용병대의 입장을 외쳤다.

 그러자 막사 문을 통해 아까 시비가 불었던 7명의 대원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왔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그 뒤쪽에 고정되었다. 모두들 돌풍 용병대 측 막사로 들어 가는 이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헉!"

 "미친!"

 "끄윽! 저, 정말이었어!"

 관객들의 입에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너무도 유명한 돌풍 용병대 특유의 회색 마수 가죽 방어구를 입은 이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방어구 중 외투의 가슴 어름과 어깨에 새겨진 돌풍을 형상화한 특유의 문양을 본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이, 이익! 설마 진짜일 줄이야.'

 칼리츠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강혜리와 악연을 맺은 허접한 보더러 따위가 진짜 돌풍 용병대원일 거라고는 단 한 점의 의심도 하지 않았는데 진짜였던 것이다.

 아직 다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뿜어내는 투기와 살기에 피부가 따갑고 심장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한눈에도 자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자들이 분명했다.

 "이건 말도 안돼!"

 칼리츠가 소리를 치며 심판을 보았다. 하지만 심판은 양측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빌어먹을!'

 자신도 안다. 지금에 와서 저 천한 놈들이 진짜 돌풍 용병대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해도 자산이 먼저 제안한 생사투를 물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저들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는 오히려 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유사 돌풍 용병대라고 오해를 한 것에 있었다.

 어느덧 돌풍 용병대원들이 모두 나왔다. 그중에 대다수는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두려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수뇌부로 짐작되는 10여 명은 도무지 기도 조차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것으로 생사투의 조건은 갖추어졌습니다. 앞으로 5분 동안 작전을 짤 시간을 가진 후 북소리를 신호로 결투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심판은 그렇게 말하고는 유유히 방어 마법진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 어떻게 해요?"

 진수와 그 친구들이 진짜 돌풍 용병대원들이란 사실에 당황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린 강혜리가 칼리츠에게 물었다.

 "에이,씨팔! 이게 다 네년 때문이야. 저리 비켜!"

 칼리츠는 거칠게 강혜리를 밀어내고는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칼리츠,왜 이래요?"

 강혜리가 애절하게 그를 불렀지만 칼리츠는 그녀를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자신과 핵심 패밀리들부터 챙겨야만 했다. 칼리츠는 수하들 중에서 일부를 모아 속삭였다.

 "당장 동화율부터 내려! 잘못하면 뇌사할수 있어."

 칼리츠와 핵심 패밀리들은 강혜리를 이용해서 스패설 캡슐 20개를 얻어 냈다. 그 때문에 레벨을 을리고 실력을 발휘 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퍙소처럼 동화율을 최대로 올리는 것은 위험했다.

 "길드장, 그래도 우린 명색이 익스트림 유저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돌풍 용병대의 실력이 어떤지는 소문만 무성하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검사로 익스퍼트 중급에 오른 측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칼리츠의 오그라든 심장이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갔다. 충분히 일리가 있었던 것이다. 저들 중에는 유명세를 떨치는 이가 1명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들풍 용병대원들이라지만 이방인 실력은 거기서 거기지. 어떻게 근처에 있던 동료들을 불러 모은 모양인데 이렇게 기가 죽을 이유는 없잖아.'

 이 자리에 모습을 보인 돌풍 용병대원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인상이 험악해서 그렇지 대부분은 자신들처럼 젊어 보였다. 아무리 유명세를 떨친다고는 해도 자신들처럼 특별한 캡슐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 레벨에서 밀릴 일은 없어 보였다.

 "하긴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아무리 돌풍 용병대라고는 해도 현지인도 아니니 우리보다 강할 리는 없겠지. 좋아! 동화율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한다."

 양측 모두 작전 시간에 작전 같은 건 관심이 없었다. 돌풍 용병대는 미리 이야기가 되었는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파라오 길드와 가디스혜리 연합은 두 무리로 나뉘어 결투를 준비했다.

 철옹은 오랜만에 비욘드에 접속한 것에 기분이 좋았다.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이렇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으니 연신 함박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진수가 다가와 물었다.

 "저놈들도 무슨 작전을 짜고 나왔을까요?"

 어느새 철옹의 주변으로 모여든 팀장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적을 살폈지만 그런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인원 배치가 너무 방만하고 무질서했던 것이다.

 "아닌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우리 이름에 겁을 좀 먹은 것 갈았는데 어느새 노블 특유의 대책 없는 오만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봐선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이제 방위청 4대 대장이 된 사예가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역시 재수 없는 새끼들이야.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자고."

 로수는 처리를 하지 못하고 두고 온 서류를 떠올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왔는데 완전히 쓰레기들밖에 없잖아.'

 사냥터 몇 곳을 독점하고 몰아주기를 하며 레벨만 잔똑 올린 티가 팍팍 나는 저런 놈들과 상대를 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크릿 1팀의 요청을 받고 요새 쌓인 스트레스나 풀 생각으로 비욘드에 접속한 로수는 이제 빨리 돌아갈 생각밖에 없었다.

 "네, 청장님."

 "대장님의 명예와 용병대의 이름이 걸려 있으니 저런 놈들을 상대하면서 경미한 부상이라도 입는 자가 있으면 특별 훈련을 각오해야 할 거야."

 로수의 말에 상대를 보곤 풀어져 있던 대원들의 분위기가 다시 변했다. 특별 훈련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이 자연스럽게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비욘드에서의 실전은 물론이고 현실의 훈련은 그야말로 살벌했던 것이다.

 두웅! 두웅! 두웅!

 세 번의 북소리가 올려 퍼지자 수많은 카메라 렌즈들과 관 객돌의 눈은 생사부의 장본인들에게 향했다. (Nyd: 책에 표기된 "세 번을" >> "세 번의"로 바꾸는게 자연스러울 것 같아 바꿉니다.)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곧바로 상대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돌풍 측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났다.

 "아함브라트스 타욤이브트 게힘알라스부스……."

 돌풍 측 후미에 있던 3명의 마법사들이 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스페셜 팀인 사이키스트의 조장인 레이스와 나인 그리고 이두였다. 그들은 이동 마법진을 통해 수시로 돌풍 용병대의 본부가 있는 아카 성을 오가면서 고문들에게 주술을 배웠던 것이다.

 곧 주술이 효과를 일으켰다. 돌풍 대원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오른 것이다. 대원들의 귀에는 주술의 효과로 인해 능력치의 20퍼센트가 10분 동안 상승된다는 내용의 안내음이 들렸다.

 "공격!"

 로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10명이 한 조가 된 돌풍 대원들이 상대 진영으로 몸을 날렸다.

 "쳐라!"

 칼리츠의 고함이 울리자 사제들의 축복을 받아 일시적으로 능력이 오른 60여 명의 전사들이 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워낙 가까운 거리에 포진했던 터라 양 진영의 전사들은 상대를 만날 수 있었다.

 차앙! 차앙!

 처음에는 검기를 일으키지 않고 격돌했기에 사방에는 요란한 금속성이 울렸다. 익스퍼트 중급이라야 채 20분도 유지하지 못하는 검기를 사용하면 얼마나 걸리지 모르는 이런 생사투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역시 이방인 길드 중에서도 수위에 속하는 실력과 규모를 가진 파라오 길드답게 전혀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칼리츠가 혹시 몰라서 이 생사투에 참가하는 자들에게 최고 등급의 아이템들을 착용하게 만든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검과 검이 부딪히자 곧 전장에는 피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죽을 때야 빛 가루만 남지만 전투 도중에는 실제 몸처럼 상처를 입는 것이다.

 관객들은 침을 삼키며 살벌한 생사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돌풍이라는 이름값을 하는지 엄청난 아이템발의 파라오 길드 측을 근소하게나마 밀어불이고 있었다.

 꽈앙! 꽈앙!

 "저게 뭐야!"

 관객들은 돌풍 측 마법사들이 생성한 매직 미사일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특히 마법사들은 입까지 떡 벌리고 있었다. 보통에 비해 세 배 정도 큰 매직 미사일들이 마치 명령을 기다리듯 한 기씩 늘어나며 허공에 나란히 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마법이 저래?"

 "넌 소문도 못 들었냐? 저게 바로 새로 마탑 연합에 들어 간신생 돌풍 마탑이 자랑하는 공명 마법이라는 거야."

 누군가 그 마법의 정체를 아는 이가 이야기를 하자 대번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그러자 말을 한 유저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마저 말을이었다.

 "공명 마법은 주술을 수인으로 바꾸어 마법과 공조시켜 그 공격력을 증폭시키는 거래. 마법을 발동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배 반이 더 걸리고 정신력이 강해야 하지만 그 위력은 세 배나 되기 때문에 아카 성으로 자유 마법사들이나 유저 마법사들이 그 마법을 배우러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와아! 엄청나네."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공명 마법은 정신력이 강하고 인내력이 높아야만 배울 자격이 주어지만 주술처럼 범위 마법 에 특화되어 있어 사제들이 펼치는 버프나 축복보다 더 효과가 높아서 제대로만 배운다면 엄청난 전력이 된대."

 "이건 마법계의 혁명이나 마찬가지네."

  그들이 익힌 마법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매직 미사일의 크기도 그렇지만 이미 주문이 완료되었음에도 아직 대기 상태에 있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레벨의 마법사들은 돌풍 측 마법사들이 양손으로 수인을 맺는 것을 주시했다. 비욘드의 마법은 주문으로만 발동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손으로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파라오 측 마법사들이 날린 마법 공격은 5명의 검사들이 검기를 끌어 올려 부수거나 베고 있었다.

 검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파이어 볼이 있었고 불덩어리는 마나 배열이 흩어지자 작은 소음과 함께 소멸되었다.

 대부분 검사인 관객들은 돌풍 대원들이 합격진을 이용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러 직업군의 파티원들과 함께 합공을 하는 것은 다들 경험을 해 보았지만 돌풍 측이 사용하는 합격진은 검사들끼리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력이 아주 대단했다.

 돌풍 측은 3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역할 분담은 물론 공격과 수비가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개인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돌풍을 상대하고 있는 파라오 측 검사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방패를 든 검사가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방패와 자신의 검을 휘둘러 적의 공격을 막는 사이에 다른 2명도 엄청난 빠르기로 움직이며 상대의 요혈을 노렸다. 그들 2명의 검은 정교하고 빠른 찌르기에 특화되어 있었다.

 "합격 스킬이 따로 있었던 걸까?"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돌풍측이 새로 개발했든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익스퍼트 중급이라면 유저들 중에서는 최고수에 들어간다. 그런 그들을 거의 같은 급이거나 초급인 둘풍 대원들이 절묘한 합격술을 이용해서 하나 둘씩 쓰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칼리츠는 전황을 보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눈에 보이는 경지는 분명 자신들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은 불리해지고 있었다. 특히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쾌속한 움직임을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크윽!"

 또 한 길드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곧 빛 모래로 변해 사라지는 사체. 칼리츠는 잘못하면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처음 생각대로 동화율을 줄였어야 했는데 그대로 놔둔 것이다.

 버프와 치료를 위해 동원한 10명의 사제는 이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적들의 날카로운 검 끝은 요혈만을 노렸고 한 조를 이룬 3명 중 둘의 연속 공격이 가해지기 때문에 한 번 당하면 무조건 사망이었다.

 10명의 마법사들 역시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양 세력이 난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빌어먹을! 너희들도 출전해라!"

 칼리츠는 결국 자신을 지키던 패밀리들 중 둘을 남기고 모두 출전시켰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강혜리도 머리가 빈 것은 아닌지 남은 회우들을 모두 내보냈다.

 "이 천한 놈의 새끼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손을 쓸 틈도 없었다. 대장급들이 출전을 했지만 삼 인 일 조로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공격과 수비를 하는 돌풍 측의 합격진은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크악!"

 결국은 익스퍼트 중급 실력을 가진 대장급도 당해 내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죽고 말았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동화율이라도 줄여 놓는 것인데 큰일이다. 최악의 경우 뇌사까지 빠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일단 전투 상황에서는 로그아웃이 안되니 동화율을 건드릴 수가 없다.

 "사제들은 최대한 버프를 걸어 줘! 마법사들은 대인 마법을 펼치도록 해! 우리도 가자!"

 이렇게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대인 마법을 펼치면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오지만 불리한 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다. 이미 강혜리 측 마법사는 피아를 가리지 않는 마법 공격을 퍼붓고 있는 중이다.

 칼리츠가 검기를 끌어 올리고 참전하는 순간이었다. 이제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상대 진영의 뒤쪽에서 변화가 감지되었다.

 "와아아!"

 "드디어 날아간다!"

 관객들의 환호성을 들은 칼리츠의 몸이 멈추었다. 그의 눈이 향한 곳엔 아까부터 경계하던 기이한 미사일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던 거대한 미사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

 자신들이 피아를 가리지 않는 마법 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을 눈치챘는지 상대 역시 같은 작전으로 나온 것이다. 언뜻 보아도 수백 발은 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미사일들이 날아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최대한 많이 해치우는 수밖에.'

 자신의 호위들은 이미 익스퍼트 중급을 훌쩍 뛰어넘는 실력이다. 자신 역시 아이템발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의 능력은 한동안 쓸 수 있다.

 최대한 저 미사일을 피하면서 적들을 해치우는 것이 이 전투의 관건이 되리라고 생각한 칼리츠는 잠시 멈추었던 발에 힘을 주었다.

 투앙! 꽈앙!

 모두들 막바지라고 생각했는지 마나를 쥐어짜서 검기를 생성시키는 바람에 전장에는 금속성이 아닌 폭음이 연속해서 을리고 있었다.

 칼리츠는 두 호위와 함께 막 길드원의 머리와 심장에 검을 찔렀다 거두어들이고 있는 돌풍 대원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검은 검기로 인해 어느새 한 배 반 이상 늘어나 있었지만 놀랍게도 상대는 자신들의 검을 맞받아 냈다.

 투앙! 터엉!

 '이런!'

 칼리츠는 무엇이든 잘라 버리는 검기를 끌어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검을 받아치고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은 상대들에 크게 놀랐다. 검신에만 검기를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검은 뱀처럼 영활하게 휘어지며 자신들의 검격을 비스듬히 받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단순한 검술 스킬을 펼치는 것이 아니야!'

 칼리츠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현실에서도 통하는 진짜 검술이다. 유저들이 흔히 발휘하는 액티브 스킬이 아니라 몸으로 오랫동안 수련한, 패시브 스킬인 것이다. (Nyd: "온몸이" >> "온몸에" 바꾸는게 맞겠죠?)

 '이자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칼리츠가 놀라 자신도 모르게 주춤한 순간 갑자기 한꺼번에 끔찍한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끄억!"

 "으으으…… 컥!"

 "살려 줘!"

 "허억! 저렇게 거대한 것이 유도 기능까지 갖춘 매직 미사일이었어?"

 돌풍 측 마법사들이 날린 것은 단순한 미사일이 아니 었다. 미사일들은 이성을 가진 것처럼 돌풍 대원들을 피해 자신들만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엄청나게 빠른 돌풍 측의 움직임으로 인해 전투에 전념을 하고 있던 파라오 길드 측은 배후 혹은 공중에서 가해지는 매직 미사일에 직격당해 죽어 가고 있었다.

 개중에는 검기를 끌어 올려 매직 미사일을 베는 길드원들 도 있었지만 그런다고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 매직 미사일들의 크기와 위력이 너무 강력해 검기를 사용해서 베는 데도 불구하고 폭발이 일어나 그 파편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었다.

 "헉! 정말 매직 미사일이었어!"

 3서클이 되면서부터 쓸 수 있는 매직 미사일이지만 목표를 설정하고 유도하는 데 지속적인 마나를 유지하려면 마나는 물론 심력이 소모되기에 유저 출신의 일반 마법사들은 효율적으로 쓸 수 없는 것이 매직 미사일이다.

 꽈앙! 꽈앙!

 수백여 발의 매직 미사일 공격은 그야말로 파라오 길드 측에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순간적으로 전투가 멈출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이어졌다. 자욱한 먼지가 피어났지만 마법진에 의해 공기 유동이 거의 없는 바람에 한동안 전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사방에서 탄성이 흘러 나왔다.

 "대단해!"

 "끝장이다! 뭐 저런 마법이 다 있어?"

 "소름 끼치는 공격이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벌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은 아예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성한 땅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바닥에는 수많은 구덩이들이 생겨나 있었고 엉망이 된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역시돌풍 용병대로군."

 "그러게. 이방인 대원들의 실력이 이런데 현지 대원들은 얼마나 강할까?"

 관객들은 충격적인 장면에 놀라 제대로 함성도 지르지 못했다. 마법장 끝까지 밀린 대여섯 명을 제외한 모든 파라오 길드원들은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이 짓눌린 끔찍한 꼴로 죽고 만 것이다.

 이번에 출전한 상급 길드원들은 대부분 검기로 마법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가졌지만 일반적인 매직 미사일과 달리 끝까지 마력을 유지하고 있는 돌풍 측의 매직 미사일은 베어지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갔다.

 "헛! 어떻게 이런 일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칼리츠의 눈이 찢어 질 듯 커져 있었다. 단 한 번의 마법 공격에 유저들 중 최고 라고 자부하던 길드원들이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만 것이다.

 칼리츠는 이를 악물었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이번 일의 원흉인 강혜리를 포함해서 겨우 6명만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칼리츠의 두 호위는 자신과 함께 겨우 몸을 뺐지만 버프를 걸어 주느라고 지친 사제들은 메직 미사일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10명의 마법사들 중 2명만이 살아남았다.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돌풍 길드원들의 숫자를 보니 줄지 않았다. 유저들 중에서는 거의 최고라 여기고 있었던 자부심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저년 때문에 파라오 길드는 이제 완전 허접이 되고 말 았어.'

 이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인지 벌벌 떨고 있는 강혜리를 보는 칼리츠의 눈은 차가웠다. 그녀 때문에 자신의 꼴이 처참하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등한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발려 버렸으니 이제 파라오 길드의 명성은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거대한 매직 미사일에 죽은 놈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듣기로는 동화율을을 최대로 올린 상태에서 사망하면 엄청난 데미지를 입는다던데.

 그런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이들의 선두는 바로 진수였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일대일 대결을 원하는지 진수가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사체들은 빛 가루로 변해 사라졌지만 검에 묻은 피는 변하지 않는다. 검의 가운데 있는 혈조와 손잡이까지 피로 흥건한 것을 보니 한두 명을 상대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누가 먼저 할래?"

 감히 천한 보더러 따위가 노볼에게 할 수 있는 말과 태도는 아니었지만 칼리츠는 강혜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비를 건 것은 강혜리이니 그녀가 책임을 져야만 한다.

 "강혜리, 검을 들어라!"

 "이드드……."

 피를 봐서인지 기질이 판이하게 바뀌어 으르렁거리는 진수의 말에 강혜리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검을 쥐어. 그때처럼 날 뱀굴에 박아놓고 심심할 때마다 검으로 찌르고 베어 봐. 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만으로 날 붙잡아 로그아웃도 안 되게 상황에 빠뜨려 놓고 며칠에 걸쳐서 날 조금씩 말려 죽이고도 모자라 패밀리를 시켜 부활 장소에서 몇 번이나 척살을 하던 강혜리는 어디 갔나?"

 "미, 미안해! 그때는 내…… 정신이 아니었어."

 진수의 살벌한 기세에 눌린 강혜리가 결국 사과를 했다. 그녀의 말은 마법장을 뚫고 관객들에게 모두 들렸다.

 "뭐야,저 시벌년! 고작 그딴 이유로 사람을 그 꼴로 만들었어. 노블이면 다야!"

 "노블들이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뭐. 그래도 저 친구, 대단하네. 나중에 보복은 생각하지 않나?"

 "무슨 걱정이야. 돌풍 용병대는 유니온이 아니라 바깥에 따로 기지가 있다는데. 돌풍 기지라고,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던데."

 "내가 저 친구처럼 돌풍 용병대원이라면 나도 저렇게 한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노블이 별거야. 부모 잘 만난 것을 제외하고 우리랑 다른 것이 뭐 있어?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다면 당연히 발라 버려야지."

 "맞아! 말만 노블이지 능력도 없어서 저 나이까지 맡은 일도 없이 비욘드나 접속하는 저런 싸가지없는 것들은 다 죽여 버려야 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관객들 중 코원 유니은 출신들은 노블 출신의 강혜리가 한 짓에 분노하는 한편 진수의 행동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넌 사람 죽여 놓고 미안하다면 끝인가 보지? 그런 거야?"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 더러운 새끼야! 우리와 같은 노블들 덕분에 변종 생물이나 오염된 환경을 걱정하지 않고 살면서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해? 당장 죽고 싶어?"

 "미친년! 어떻게 너 같은 년이 노블인지 모르겠다. 아니, 아니지. 노블치고 제대로 인성을 가진 연놈들은 없으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넌 비욘드 홈피도 안 가 봤냐? 신세계 협약이라고 너희 노블들이 에인션트 컴퓨터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룬 성과를 날로 삼켜 버린 음모가 다 드러 났어. 너희들 노블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음모를 꾸며 배리어를 만들어 휴먼들에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 세 에이션트 컴퓨터를 망가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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