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화.마지막을 향해 굴러가는 수레바퀴 (274/278)

마지막을 향해 굴러가는 수레바퀴

"특급입니다."

"정말인가?"

"시청률 1위는 당연한 것이고 적어도 30퍼센트는 자신 합니다."

유한 피디는 아레스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레스가 저리도 자신 있어 하니, 사실일 것이다. 비록 금전 문제 때문에 정식 기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간 아레스지만 그가 이제까지 터트린 기사들을 보면 하나같이 엄청났다.

"소스는 여전히 돌풍인가?"

"그렇습니다. 제국 정보 길드와 타이푼 정보 길드에서 이미 진위를 확인한 상태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쪽에서 나온 정보는 확실합니다."

유한 피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스의 말대로 돌풍은 용병대임에도 불구하고 비욘드의 그 어느 정보 길드보다 더 귀중한 정보들을 입수하고 있었다. 더구나 신생 정보 길드인 타이푼 길드의 확인까지 받았다니 기사는 확실했다.

"독점으로 해 주게."

"아시겠지만 그쪽에서 나오는 정보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응하는 고료만 보장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내가 책임지지. 예전 조건처럼 시청률을 기준으로 지급하도록 하지."

독점으로 아레스가 가진 정보를 방영할 수 있다면 게임 방송사 중 최고의 자리를 굳히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유한 피디는 흥분한 얼굴로 아레스의 의견을 수용했다.

'하하! 이젠 제대로 결혼할 수 있겠어.'

배우자가 될 이에게는 능력자이고 싶은 것은 만고의 진리. 아레스는 이 기사로 벌어들이게 될 돈도 돈이지만 최초 기사 제공자의 명성에 크게 만족했다.

정식 기자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온 것에 대해 애인은 많이 실망한 눈치지만 이번 기사가 방영되고 나면 자신에 대해 다른 시선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초른 형에게는 살짝 이야기해야겠지?'

안그럼 엄청 삐칠 것이다. 매그럼이 돌풍 기지로 이주하고 부모와 함꼐 기지로 들어간 후 초른은 다른 파트너와 일을 하고 있지만 무척 고전하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대장님은 어떻게 이런 정보들을 쑥쑥 물어 오는거야? 아무튼 정말 대단하다니까!'

아레스의 기사는 그렇게 게임 방송사를 통해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 바람은 순식간에 태풍이 되어 비욘드 플레이어들과 비욘드의 주민들을 강타했다. 그뿐 아니라 그 태풍은 이방인의 대형 길드들만이 참여하고 있었던 데빌 산맥의 대 다크니스 대열에 수많은 이방인들을 동참시켰다.

그 태풍의 발원지는 그동안 특급 기사들만을 독점적으로 보도해 온 프리랜서 기자 그룹의 대표인 아레스와 친구들이었는데, 취재원은 그 이름도 유명한 돌풍 용병대와 제국 정보길드 그리고 신생 길드지만 빠르게 성장해서 유저들 중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타이푼 정보 길드였다.

-다크니스의 본단이 위치한 타르 분지에 고대 시대의 던전들이있다. 그던전들 중에는 다크문 마탑과 수련의 관이라는 던전이 있는데, 그곳에는 고대 문명이 남긴 아이템들은 물론이고 전직과 상관없이 배울 수 있는 검술서들과 마법서들이 가득하다. 그중에는 기후조절 마법이나 대기 조성 마법 그리고 차원 이동 마법과 같은 어마어마한 마법들도 있다고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험할 뿐 아니라 언데드 군단과 테이밍된 마수들을 거느린 다크니스는 물론이고 무서운 마수들이 들끓고 있어 최하 100레벨은 되어야 도전할 수 있다.

-타르 분지로 가는 길이 표시된 지도는 타이푼 길드와 제국 정보 길드가 비밀리에 판매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길을 돌풍 용병대의 시크릿 대원들이 개척한 것으로, 안전하면서도 빠르다고 한다. 그 경로에는 산악 부족들이 점거한 성들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여행자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들은 물론이고 안내인까지 고용할 수 있다고 한다.

-곧 가즈 로드 측에서 타르 분지를 공략하기 위해 나설 것이다.

대형 길드에 소속되지 않았다면, 가즈 로드 측에 합류해서 다크니스를 처리하는데 공을 세운다면 공적에 따라 던전에 입장할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한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본 타르 분지의 모습과 던전들 그리고 다크니스의 본부로 추정되는 건물들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정보의 정확성을 담보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돌풍 용병대의 시크릿 대원들이 이정보를 입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방인들에게는 충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타이푼 길드와 제국 정보 길드가 팔고 있는 고가의 데빌 산맥 지도는 시크릿 대원들인 진수 일행이 에인족 전사들의 안내와 호위를 받으며 탐사해서 작성한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을 헤낸 진수 일행은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면서도 그들이 받는 보수 이상의 엄청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타르 분지에 대한 정보는 이방인들은 물론이고 비욘드 주민들까지 흥분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고대 시대에서 유래한 던전의 가치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한량없는 욕망을 끌어내게 만드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이미 동시 접속자가 천만 명이 넘는 이방인들이다. 그들중 상위로 분류되는 약 10퍼센트의 유저들은 레벨 100을 넘긴 상태였고 그들 중 상당수는 4서클 마법사 혹은 익스퍼트급의 전사 계열이었다.

그들은 안 그래도 적당한 사냥감을 찾아 데빌 산맥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이번 소식으로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형 길드들은 실력자들을 선별, 연합하여 타르 분지로 향했는데 그들은 산악 부족들이 건설하거나 차지한 성들을 경유하는 길을 선택했다. 산악 부족들이 건설하거나 차지한 성들을 경유하는 길을 선택했다. 산악 부족들의 성에는 워프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이동이 빨랐던 것이다.

비싸고 인원 제한이 있는 마법진을 이용하기 어려운 소형길드의 유저들이나 개인 유저들은 가즈 로드에 합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가즈 로드는 다른 방면을 포기하고 마치 화살을 쏘듯 일직선으로 타르 분지로 직행하는 노선을 택해 진군 하고 있었다.

그전략은 일견 위험해 보였다. 다른 성들에 주둔하고 있는 다크니스의 세력이 포위를 하거나 후미를 칠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룬은 이번 작전의 승패는 속도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최대의 전력을 집중시켜 타르 분지로 행군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은 10만 명 선이었던 가즈 로드 측 군세는 성을 함락시킬 때마다 늘어나더니 작전 개시 이주일이 지나자 30만을 훌쩍 넘겼고 그 압도적인 군세로 큰 희생 없이 적을 몰살시키고 있었다.

신관들의 대규모 가세로 인해 전투에서 비롯된 부상을 말끔히 치유할 수 있었고, 행군의 피로마저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되는 마탑의 포션 때문에 느끼지 못하자 점점 더 행군은 빨라지고 있었다.

당황한 다크니스 측은 연합군으로부터 빼앗은 성들에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가즈 로드의 진군로에 병령을 재집결시켰지만 가즈 로드는 잠시 진군을 멈추고 병력을 분산시켜 나머지 성들을 공략했다. 최소한의 인원만이 배치된 성들을 공략하는 것은 어린애 팔 비트는 것처럼 쉬웠기에 단숨에 전세는 역전 되어 버렸다.

가즈 로드가 차지한 성들에는 산악 부족들의 성들처럼 워프 마법진이 설치되었고 속속 지원군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가즈 로드는 이제까지 밀리고 있던 전황을 단숨에 극복하고 속속 적의 성들을 빼앗고 있었다.

세제국의 몬스터 헌터들과 트레저헌터들도 타르 분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거의 데빌 산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뿐 아니라 한몫 잡으려는 자유 기사들과 은퇴 기사들도 모여들고 있어 순식간에 데빌 산맥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데빌 산맥으로 모여든 이방인들과 비욘드 주민들의 숫자는 물경 100만을 헤아렸고 가즈 로드 쪽에 합류한 이들만 해도 40만명을 훌쩍 넘겨 연합군의 작전 반경은 더욱 넓어지고 작전 수행 능력도 크게 올라갔다.

하룬은 처음에는 가즈 로드와 함게 움직였지만 열흘이 지난 후부터는 아카 성으로 이동해서 타르 분지에 대한 정보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츠루트 요새에 남아 있는 뫼비우스로부터 급한 통신을 받았다.

"누구라고?"

-페론이라고 했습니다.

하룬은 깜짝 놀랐다. 너무나 뜻밖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페론은 파이오니어 사도회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갑자기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었다.

"지금 어디에 있지?"

-마츠루트 요새에 있는 '뿌리 여관'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알았어.바로 가지."

하룬은 뫼비우스와 통신을 끊은 후 대원들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을 하고 펠의 힘을 빌려 마츠루트 요새 인근으로 향했다.

"와아! 지난번보다 더 번화해진 것 같아."

탄성을 지르는 펠의 말대로 요새 밖에까지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규모는 물론이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숫자로 보더라도 마츠루트 요새는 엄청나게 커진 상태였다.

"사람 구경은 천천히 하고 일단 가자."

"알았어,형."

말은 그러면서도 주위를 향하는 펠의 눈에는 강렬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소멸위기를 잘 극복한 펠의 능력은 한층 더 올라가면서 감성 또한 무척이나 풍부해져 지금은 그 나이 또래와 비슷한 감정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페론이 기다린다는 '뿌리 여관'은 내성 안쪽에 있는 큰 저택을 사들여 개보수를 한 덕분에 귀족들이나 돈이 많은 상인들이 주로 묵는 곳이었다.

종업원에게 페론의 이름을 꺼낸 하룬은 친절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형,난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순서석의 기운을 흡수할게."

"그래라."

펠은 나이아를 비롯한 네 정령의 놀라운 발전속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공간 이동을 제외한 다른 능력에서 펠과 네정령의 능력은 비등한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펠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하룬은 혼자 페론이 있다는 객사로 향했다. 

"정민 아니, 정말 하룬 대장이군."

객사 밖에 나와 있던 페론은 하룬을 보고 잠시 놀란 눈빛을 던졌다.

'역시 살아 있었군.'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고 확신을 했었다. 다크 프린스의 출현과 함께 실각한 페론은 간간이 하룬의 이름을 듣기는 했지만 누군가 사칭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초토화 작전을 통해 널리 알려지자 그때 만났던 하룬이 살아 있음을 깨닫고 그를 찾은 것이다.

"그간 잘 지냈어?"

"응. 덕분에."

페론은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편하게 그를 대했다.

하룬은 페론이 왜 자신을 만나고자 했는지, 파이오니어 사도회의 그간 활동이 궁금햇지만 그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만나자고 한 쪽은 페론이니 기다리는 편이 좋다.

"돌풍 용병대의 주도로 골든 로드의 태반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정말 대단했어."

"별말을. 그런데 예전에 내게 말했던 일은 잘되고 있어?"

"아! 그거? 후후. 유감스럽게도 별 진전이 없어. 세 초월자님의 서브체들도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제기랄! 여러 차례 확인해 본 결과 우리가 입수한 고대 마법서는 불완전한 것이었어."

그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예전과는 달리 폐론의 얼굴은 자신감이 사리지고 쓸쓸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계속 추진은 할 생각이야?"

"당연하지. 우리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생각이거든. 설사 GPC의 의도대로 되어 지구의 기후나 환경이 개선이 된다고 하더라도 지구의 문명은 우리에게 맞지 않아. 우리는 이곳 세상에서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고 싶어."

이미 능력자로 인정받아 그 어린 나이에 세 조직의 상층부에 포진해 있는 그들이 현실과 뭐가 맞지 않는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파이오니어 사도회는 여전히 이쪽 세상에서의 삶을 꿈꾸고 있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일레인이나 혜련처럼 자신이 직접 현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처럼 피해 버릴 수도 있다.

"아, 먼저 동료들을 소개할게."

혼자 온 것이 아닌 모양이다.

객사 안으로 들어가니 큰 응 접실에 2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페론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하룬을 향해 호기심 짙은 눈길을 던지는 두 여자는 모두 인공수정체 출신인듯 나이가 엇비슷하다.

"이쪽은 내가 말했던 정민 아니, 돌풍 용병대의 하룬 대장. 그리고 이쪽은 우리 파이오니어 사도회의 사라와 벨라야. 사라는 휴먼 가드에 속해있고 벨라는 GPC에 소속되어 있지."

사라는 일레인과 유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벨라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소드 마스터 초급은 되어 보였다. 블러드 에센스를 쓸 수 있게된 후 초감각을 완성한 하룬의 눈에 그 둘이 각성을 최소한 한차례는 한 것처럼 보였다.

'호오! 대단한 친구들이군.'

그들 2명은 현실은 물론이고 이곳 비욘드에서 상당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암중에서 지배하는 세 세력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에 올라 있는 이들은 하룬처럼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들이었던 것이다.

인사가 끝나자 페론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룬 대장은 바쁠 테니 돌리지 않고 애기하지. 우리는 타르 분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타르 분지라면?"

그걸 왜 자신에게 묻는단 말인가?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페론은 다크니스의 일원이 아니던가? 다크 프린스가 등장하면서 제리코처럼 숙청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그곳에 대한 정보는 더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차원 이동 마법에 대한 자료를 더 얻어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의 난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버렸어. 다크 프린스가 비욘드로 오면서 조직 장악력을 키우기 위해 기존에 존재했던 메라크 특전단은 해체되었고 난 현실의 한직으로 쫓겨났어. 그래서 한동안은 이곳에 오지도 못했거든, 나랑 사정이 비슷한 HG의 사라 역시 오래전에 타르 분지에 들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극히 폐쇄적인 장소여서 당시 상위 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 볼 수 있었던 장소는 극히 제한적이었어."

그런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때 포러스가 네 스승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설마 다크문 마탑도 들어가 보지 못했을 거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랬지. 그때 너와 함께 실종된 포러스 대마법사로부터 마법을 전수받았으니까. 하지만 난 다크문 마탑이나 수련의 관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어. 그곳은 예전에 비욘드의 조직을 관리했던 통령이나 지금의 다크 프린스의 최측근이나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거든."

이제야 이들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럼 그곳에 직접 갈 생각인 거야?"

"응. 운이좋게도 글로리 가이아나 휴먼 가드의 최상층 인사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자리를 비웠거든. 골든 로드가 무너지고 타르 분지로 사람들이 몰리니 그 와중에 들어가보려고. 다크 프린스측에 걸리지 않을 자신은 있어."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포러스의 기억에는 차원 이동 마법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 너희들이 나와 같은 인공수정체들이니 특별히 알려주지. 그런데 사실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또 한 가지가 있어."

"응? 두 가지나 된다고?"

세 사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는 실존이 증명되지 않은 고대 마법서를 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실제로 가능한 방법이야. 내가 하는 부탁을 들어준다면 타르 분지로 가는 지름길은 물론이고 시간을 기약하기는 힘들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너희들을 확실한 방법을 통해 이 비욘드의 세상으로 이동 시켜 주지."

혼돈의 땅에서 돌아온 후 펠은 시간이 날 때마다 밖에 머무르는 대신 예전처럼 하룬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하룬은 느낄 수 없지만 그의 몸에는 순수석이 들어 있었다.

'내 몸 자체가 순수석이나 다름 없다니 언젠가는 정령왕의 경지에 오르겠지.'

펠의 말에 의하면 그날이 머지 않았다. 발몬이 말하길 자신이 순수석을 얻었다고 했지만 녀석이 아니었으면 그런 사실도 모를 뻔했다.

"으음."

못 믿겠다는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하룬은 표정 한번 바뀌지 않았다.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시선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이다.

"사실이네.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룬 대장은 그렇게 확신하고 있어."

사라의 말에 다른 2명의 눈빛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사라는 해가에 속하는 해수련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능력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라도 들어줄 용의가 있어."

다른 2명과 일일이 눈을 마주친 페론의 말이었다.

"좋아. 대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이 서류를 봐."

하룬은 일레인에게도 보여주었던 신세계 협약의 내용이 담긴 복사본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갑자기 내민 서류에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그들 3명은 내용을 읽고는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세상에!"

"이걸 어떻게……?"

지금은 세 조직에서 상당한 위치까지 올라간 그들이지만 그들 역시 노블들이 주도하는 세상 때문에 많은 피해를 받으며 살아왔다.

아니, 능력이 과하기에 노블들이나 세 조직의 상층부에 대한 불만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 부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 보니 이세상으로 오려고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곧 이 내용이 세상에 퍼질 거야. 이제까지 부당한 대우와 착취를 당하며 살아온 일반 주민들이 볼기를 하게 되겠지. 어쩌면 방위군들까지 그 봉기에 가세할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너의들이 속해 있는 조직의 상층부 인물들과 구노블의 세력은 드러난 것보다 감추어진 것이 더많아서 완전한 혁명을 이룰 수 없을 거야. 너희들은 어차피 그곳 세상에는 미련이 없는 사람들이니, 각자의 조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혁명의 주도 세력에 제공했으면 좋겟어. 혁명에 동참에 도와주면 더 좋고."

다크 프린스와 골든 레이디의 출현 이후 한직으로 내몰리기는 했지만 그들 셋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조직에 들어와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승승장구해 왔기에 조직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을 꿰고 있으리라.

'열심히 뛰고 있는 일레인과 제리코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조직의 정보는 반드시 필요하단 말이야.'

최근 하룬은 매일 하는 뇌파 통신을 통해 일레인과 제리코 그리고 세류로부터 정보가 부족하다는 불평을 꽤 많이 들어왔다. 대업에 끌어들일 인재들에 대한 정보나 기존 조직원들중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판단 근거가 부족했던 것이다.

"……너무 엄청난 일이라 당장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 이게 사실이라면 혁명은 반드시 일어나게 될 거야. 그래야 하고. 하지만 일반 주민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혁명을 성공 시킬수 없는데……."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오랫동안 세상을 지배해 온 노블들이다. 유니온 내외부에 걸쳐 수업이 건설해 놓은 비밀 기지들이며 소속 인원마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력 조직들의 규모와 숫자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언더시티들과 신노불들 그리고 너희들이 속한 조직들에서도 상당수가 이미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혁명을 준비하고 있어."

"으으음."

페론은 침음성을 흘렸다.

하룬을 바라보는 3명은 이런 엄청난 일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강력한 충격과 함께 서늘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세상이(본문에선 세상에) 뒤질힐 거야!'

근거 없는 권리로 100년 이상 주민들을 지배해 온 노블들이다. 그동안 많은 무력 조직들을 비밀리에 만들고 규모를 키워 왔지만 주민들이 하꺼번에 봉기를 하면 막을 수가 없다. 헤아릴 수 없는 피가 흐르겠지만 대를 이어 뺏기기만 했던 주민들의 분노는 노블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 정보를 내가 빼돌리면 어쩌려고."

"하고 싶으면 해. 하지만 현실에 아무런 미련도 없는 너희들이라면 그런 영양가 없는 짓은 귀찮아서라도 안 할 거 같은데."

사실 이들에게 이 중요한 서류를 열람시킨 것은 도박에 가까운 짓이다. 하지만 이들의 정보가 없다면 노블들과 그 속에 숨어 잇는 암중의 세력을 제대로 부수는 건 불가능하다. GPC의 경우는 덜하지만 글로리 가이아와 휴먼가드의 경우에는 정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룬은 한번에 두 세력의 핵심을 제대로 없애지 못하면 이번 계획은 실패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두 세력이 가지고 있는 기술력이 없으면 유니온은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20년이나 30년밖에 버티지 못하는 배리어 문제가 있다.

-의도적으로 연구를 막아서 그렇지, 우리는 저력을가지고 있어요. 이제까지 일부에게만 개방했던 과학 지식과 기술을 만인에게 개방하고 기회를 준다면 배리어를 유지하는 발전 기술 정도는 복원할 수 잇을 거예요. 난 우리 스스로의 능력을 믿어요.

혜련의 말이 떠올랐다.

초월자들의 힘이 다했기에 지금의 기형적인 문명이 멸망한다면 또다시 지구에 인간의 문명이 번성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기형적인 문명의 원인을 제거하고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인류는 새로운 기회를 거머잡을 수 잇을 것이다.

자신만 해도 그렇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력자로 분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능력까지 가지게 되지 않았는가. 인간의 능력은 각성하지 못해서 알지 못하고 잇지만 세 번째 DNA 가닥을 선조들보다 쉽게 생성시킬 수 있는 인공수정체 출신 휴먼들의 숫자가 무려 3만명이 넘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기의 순간에 잠재력을 드러낼지 모른다. 

그사이 페론을 비롯한 3명은 눈빛으로 혹은 귀엣말로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하룬은 너무 엄청난 일이기에 쉽게 결론이 내려질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결론은 빠르게 내려졌다.

"후유! 넌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정말 대단한 형제였어. 그동안 우리가 속한 세 세력이 암중에서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뒤에 너와 같은 존재들이 숨어 있다는 건 전려 몰랐어, 정말 충격적이야!"

그렇게 말하는 페론이나 사라 그리고 벨라의 눈에는 순수한 감탄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소속된 단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그보다 더한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좋아. 미련이 없는 세상이긴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발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한 속 거들지. 대신 약속을 지켜 줘."

"물론이지."

한 형제나 다름없는 하룬과 3명의 사도는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다.

하룬은 시간을 내어 오랜만에 현실로 나왔지만 돌풍 시티로 가지는 않았다.

하룬은 태가사남매를 대동하고 연인인 아리가 새로 뚫어놓은 지하 도로를 통해 유니온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유니온들의 경우는 일레인이 일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코원 유니온의 경우 자신의 출신지이니 바쁘기는 해도 직접 나선 것이다.

몇 번 와 본적이 있어 익숙하게 안내를 하는 태가사남매를 따라 은밀하게 움직인 하룬은 신 B구역의 유흥거리 구석에 있는 작은 바 앞에 도착했다.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터라 영업을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바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땅! 땅! 땅!

태룡이 문 위에 걸린 작은 종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몇 번이나 더 종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자 몇 번이나 더 종을 두드린 끝에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들러 주세요."

"이곳에서 약속이 있습니다. 암호는 '혁명'입니다."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주인인 듯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흰 두건과 요리사복을 입은 상태로 문을 열었다. 음식 냄새가 풍기는 것이 요리를 하다가 황급히 나온 모양이다.

"다른 분들은?"

"이미 도착해 계십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 하룬 일행은 작은 테이블 5개와 엉덩이만 간신히 붙일 수 있는 작은 의자들이 있는 홀을 가로질러 주방 안쪽으로 향했고 주방의 한쪽 끝에 있는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으로 들어가자 대기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고 그곳에서 태가사남매는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만만치 않은 기세를 풍기는 몇 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상대의 호위인 모양이다.

태가사남매를 그곳에 두고 대기실을 지나 또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좁고 허름한 바와는 달리 넉넉한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미 네 무리의 선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가 늦었군요. 미안합니다."

하룬이 미안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아니요, 우리도 이제 막 도착했어요."

이미 안면이 있는 파랑 부녀가 손사래를 쳤다. 하긴 아직 약속 시간은 넉넉히 남았다. 양쪽 다 마음이 급했기에 서두른 것이다.

"반갑습니다. 제가 이 자리를 주선한 하룬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다 알고 있겠지만 행정원을 책임지고 있는 해마루라고 하오."

"해수련이라고 해요."

먼저 해가 부녀가 자신들을 소개했다.

"세일 그룹을 운영하는 부여일입니다."

"세명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부여설이에요."

세류 부녀도 자신들을 소개했다. 부여일의 무뚝뚝한 소개를 듣던 하룬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이번 만남에 앞서 세류 부녀를 만났던 하룬은 그날의 기억을 잠시 떠올렷다.

"흥! 얼굴도 그렇고 삐쩍 마른 몸도 그렇고 볼 것도 하나도 없는 이런 사내놈이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어 우리 딸을 차 버린 거야?"

첫 만남부터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냈던 부여일이었다.

물론 만남이 끝날 때는 여러모로 태도가 급변했지만 말이다.

"능력이 있는 자는 여러 배우자를 가져도 되네. 사실 사랑이야 2년이 유효기간인 거고 그 후에는 같이 살아가야 할 가족이나 다름없게 바뀌니까 말이야. 배우자들이 모두 할 일이 있으면 질투도 그리 크지 않다네. 다시 잘 생각해 보게. 우리 딸이 나이가 좀 있어서 그렇지 능력으로 보나 미모로 보나 일등 신붓감일세."

"아이, 아빠는!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고요. 저와 하룬은 친구예요, 친구!"

"이것아! 친구처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부부가 얼마나 좋은 관계인 줄 아냐? 더구나 이런 대업을 홀로 기획하고 펼쳐 나갈 수 잇는 남자는 거의 없다. 네가 질투만 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친구를 잡아! 저 친구의 약혼자와도 담판을 짓고."

"아빠! 정말 창피해서 미치겠어!"

그날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내심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시원호라고 합니다. 대장님은 발트랑으로 알고 계시는 것이 편할 겁니다."

사 원로의 양자이자 비욘드의 아리수 길드장인 발트랑도 있었다.

"코원 유니온의 자하에서 살고 잇는 파랑이라고 합니다."

"전 언더시티 특작대 대장 오랑입니다."

언더시티의 시장인 파랑 부녀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에 크게 어색함을 느끼지는 않고 잇었다. 대신 왜 이자리에 모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하룬을 주시했다.

"제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 자리를 주선했으니 이야기를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하룬은 벨이 신경을 쓴 덕분에 말쑥한 모습이었다. 푸른면도 자국과 깊고 강렬한 눈빛 그리고 무심해 보이는 표정이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주인이 찻주전자를 가져와 모두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찻물을 따르고 물러나자 해마루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의례적인 인사를 해 왔다.

"늦었지만 돌풍 시티의 출범을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실종이 되엇다고 들었는데 사실이 아닌가 보오?"

인접한 유니온의 행정원장이니 그정도의 정보력은 있었다.

"할 일이 있어 좀 오래 자리를 비웠더니 그런 이야기가 나왔나 봅니다."

"혹시 시장 직위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조직 편성 시기에 실종을 가장하고 자리를 비운 거요?"

해마루는 하룬이 뭔가 의도하는 것이 있어 실종을 가장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앗다. 그들 부녀는 예전에 아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듯 하룬 역시 그 마음을 읽을 수 없기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된 거지요. 그리고 돌풍 시티는 제 소유가 아닙니다. 그곳에 정착한 주민들의 것이지요. 기반 시설을 발견하고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하룬의 말에 참석자들은 일제히 눈을 빛냈다. 하룬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는데 소유권을 포기하다니.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해가 부녀의 눈빛이 세차게 흔들렸다. 해가에 전승되는 특이한 능력으로 다른 이들처럼 확실하게 마음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낀 것이다.

"하하하.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로군."

돌풍 시티의 출범과 그 활동 그리고 하룬의 실종 건을 주제로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잇는 와중에 준비된 음식이 들어왔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서로에게 득이 되는 거래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후 자리가 정리되자 해마루가 먼저 용건을 꺼냈다.

"꼭 내가 들어야 하는 중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네만."

"그렇습니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개인적인 대화를 더 나누어야 했지만 해마루가 급한 모양이니 굳이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엇다. 자신 역시 이곳 현실은 물론 비욘드에서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유니온을 지배해 온 세력들은 물론 암주에서 세상을 지배하던 글로리 가이아와 휴먼가드를 한 번에 제거할 수 잇는 엄청난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뭐라고?"

"무,그게 무슨 소리죠?"

이미 그 정보를 알고 잇는 세류 부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마루는 그간 아리를 통해 돌풍 기지와는 몇 차례 비공식 적인 거래를 해 왔다.

배리어 바깥세상이 오르그들에 완전히 장악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돌풍 용병대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희귀 광석들은 물론 천연 약재와 몇 가지 기계류 들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무시할 수 없는 거래 상대가 되었다.

이제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우두머리가 직접 만나할 중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이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그저 안면을 트거나 거래 규모를 늘리자는 이야기로 생각했을 뿐 이 정도로 놀랄 내용일 줄은 몰랐다.

해마루 부녀와 파랑 부녀 그리고 발트랑은 눈을 빛내며 하룬을 주시했다.

그들중 가장 열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해마루 측이었다.

"하룬 대장이 한 말이 저,정말인가?"

해가는 몇 대를 이어 행정원의 수장을 역임해 온 코원 유니온의 노블 가문이긴 하지만 초대 노블, 즉 구노블 가문이 아니라 신노블에 속한다. 때문에 구노블 가문에 비하면 재력이나 권력에서 크게 떨어진다.

"확실합니다. 단지 그 전에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얘기하게."

해마루는 긴장이 되는지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GPC의 보안은 어느 정도입니까?"

하룬의 물을에 해마루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접혔다. 아까 한 소리도 잇고 보안을 확인하는 것으로 보아 예사로운 주제는 아니다.

'이건 엄청나게 큰 그림이다!'

"좋은 편은 아니네. 세 조직 간에는 무수히 스파이가 잠입해 있으며 이중,삼중 스파이들도 많으니까."

해마루는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영재교육과 많은 행정 경험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를 간파하는 가문의 능력을 가진 그의 감이 이자리에서는 재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원래 GPC는 글로리 가이아와 휴먼 가드에 속하지 않는 일부 노블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막강한 재력을 일구었거나 유니온의 공직이나 의회에 진출하여 자수성가를하여 신노블로 불리는 이들과 힘을 합쳐 만든 단체다.

신노블들 역시 노블이기에 세습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구노블들과는 달리 머리가 깬 편이다. 그들은 일반 주민과 구노블 사이에 있는 이들이기에 양측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아즈만은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을 했다. 신세계 협약의 전말이 폭로되면 유니온들은 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큰 혼란이 올 것이기에 현재 노블들에 대체할지도 세력을 찾아 그들로 하여금 성난 군중들의 힘을 이끌게 해야만 했다.

"차라리 뒤엎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룬이 그렇게 물었을 때 벨과 아리 그리고 아즈만은 모두 반대했다.

"어느 사회건 지도 세력과 체제를 유지할 행정조직은 존재해야 해요. 역사적으로 완전한 민주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어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체제는 보편타당한 저의가 통용되는 민주사회예요. 물론 노력과 재능에 따라 신분 이동의 기회가 보장이 된 그런 사회지요."

"유니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군중들의 분노가 폭발하면 장기적으로 볼때 현 체제보다 인간들에게는 더욱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과도기가 필요해요."

"저도 가은 생각이에요, 마스터. 지금 유니온들을 장악하고 있는 노블들의 힘은 단순히 재력이나 권력뿐만이 아니에요. 그들은 유니온을 지탱하는 기술력까지 손에 넣고 있어요. 그런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완전히 제거해선 안 돼요. 일단은 신노블들 중에서 비교적 진보적인 사상을 사진 인사들을 찾아 유니온의 권력을 차지하게 만들어야 해요. 그런 다음 민의를 한데 모으고 시간을 들여 보편 타당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지요."

성질같아서는 다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하고 싶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자리에 나온 것이다.

"원장님께서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사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본인이나 후손이 부정한 일을 저지르거나 재능이나 노력이 부족한 경우 그 사회에 의해 언제라도 추락할 수 잇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물음에 해마루는 잠시 답변을 하지 않고 하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노블들이 장악하고 있는 유니온의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말하는 진의를 재 보려는 듯 말이다.

"음.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하면 난 앞으로 유니온이 그런 사회로 변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있네. 부모를 잘 만나서 호의호식을 할 수는 있지.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을 하는 거니까. 하지만 현재의 유니온처럼 능력이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네. 특히 구노블들이 장악하고 내놓지 않는 사법 분야는 아주 잘못되어 있네. 특정 대상에게는 항상 면죄부를 주는 사법부는 이 사회에 필요하지 않으니까."

일단 말을 하기 시작하자 해마루는 평소의 지론을 꽤 긴 시간을 들여 밝혔는데 코원 유니온의 신노블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내린 아즈만의 판단대로 그는 3대 동안 행정원을 장악해 온 노블답지 않게 비교적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좋아!'

결정은 내려졌다. 앞으로 코원 유니온은 해마루를 중심으로 한 인사들이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지금의 사고를 유지할지는 의문이지만 이미 행정 분야를 장악하고 잇는 해가의 힘이라면 앞으로 일어날 극도의 혼란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발트랑 씨에게 묻지요. 제가 말한 정보가 세상에 공개되고 유니온에서 혁명이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군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그,그건……."

하룬의 물음이 뜻밖이었던지 발트랑은 잠시 복잡한 얼굴을 햇지만 이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된 세상으로의 혁명이라면 군부가 제일 먼저 앞장을 서겠습니다."

"사 원로는 GPC에 속한 분이지만 지금은 데드 벙커로 갔다고 들었습니다. 소속을 버리고 두 암중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하룬의 말에 해가 부녀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해 왔던 사 원로의 동선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입니다. 양부는 얼마 전에 극비리에 수하들을 대동하고 사라졌습니다. 저 역시 그곳으로 갔을 거라고 추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자세한 내용까지 밝힐 수는 없지만 양부는 뱀처럼 차갑고 여우처럼 간사하고 늑대처럼 음흉한 분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군부에서 양부의 영향력을 제거해 왔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초대한 것입니다. 그럼 당신이 새로운 군부 세력을 대표한다고 믿고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기존 세력을 일소하고 세상을 개혁시킬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저는 GPC의 일원이며 유사시 세상의 변혁에 앞장을 설 겁니다."

이미 오래전에 뜻을 세운 발트랑의 결심은 확고했다.

세류 부녀와 파랑 부녀는 굳이 물어볼 것도 없었던 터라 하룬은 바로 품속에서 준비한 자료들을 꺼냈다. 물론 사본이었다.

세류 부녀를 제외한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자신들의 앞에 놓인 서류 봉투를 집어들었다.

"신세계 협약?"

혼잣말처럼 서류의 제목을 읽은 해마루가 다시말을 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사이에 그의 얼굴은 변화무쌍했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의 충격을 받고 있었다.

"오! 맙소사!"

마침내 서류를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는 해마루의 입에서 억눌린 비명과 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경악성을 토해 내며 다양하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이게 사실인가?"

"이런 가공할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 정말입니까?"

그 모습을 보던 세류 부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 역시 처음 저 서류를 읽고는 저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으니 말이다.

"확실합니다."

하룬은 묵직한 어조로 확인해 주었다.

해마루 역시 확인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읽는 순간 서류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했으니 말이다. 뒤쪽에 첨부되어 있는 사인과 문장은 진본이었다. 그건 행정원을 관할해온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어떻게 이런 서류를 찾아냈나?"

이 정도의 서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미 음모가 성공하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굳이 이런 서류가 존재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권한을 손에 넣은 구노블들이다. 소각하지 않고 보존해 왔다는 것이 더 미스터리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유니온들을 이끌고 있는 인사들 중에서 해 원장을 비롯해서 여러분들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의 명단입니다. 행정원과 군부를 비롯한 각 부서는 물론이고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GPC에 소속된 분들이지만 일부는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명단을 활용하실지 여부는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하룬은 또 다른 서류를 해마루와 부여일에게 넘겨주었다.

하룬이 내미는 서류를 집는 해마루와 부여일의 손가락이 급기야 떨리기 시작했다. 서류에 있는 인명록은 벨과 아즈만은 물론 비욘드를 기반으로 짧은 시간에 전 세계적인 정보라인을 창설하고 키워 온 뫼비우스와 그 길드원들이 게임을 제쳐두고 밤낮없이 일한 결과였다.

꿀꺽!

해마루는 침을 삼키며 서류를 확인했다. 내용을 확인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것을 보면 그도 익히 알며 친한 사이인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을 이용하면 확실하게 유니온을 정리할 수 있다!'

성공을 한다면 구노블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혁명의 주체로서 망강한 권한과 명예를 얻을 수 있다. 하룬이 한 말대로 무력을 지닌 군부가 가세하고 관료들 상당수가 합류한다면 큰 피해나 혼란 없이 구노블들과 암중 세력들을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서류를 확인한 해마루는 격렬한 마음이 동요를 다스리겠다는듯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그의 눈에서는 화염이 용광로처럼 타올랐다.

"하룬 대장이 원하는게 무엇인가?"

"최소한의 피를 통한 혁명이 제가 원하는 겁니다."

해마루는 최소한의 피를 통한 혁명이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중대한 정보를 내놓고도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없다는 건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다른 건 없나?"

어쩌면 당연한 의심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보내온 뫼비우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술을 잔뜩 먹고 벨에게 통신을 해서 그것을 사용하면 단숨에 신노블이 되거나 그도 아니라면 대대손손 누릴 수 있는 재화를 제대로 챙길 수 있었는데 하룬의 뜻 때문에 내놓았다고 한탄을 했단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물건이 바로 이 서류였다.

"노블 자리는 줘도 가질 생각이 없습니다. 제 노력이 아니라 확률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연과 우연이 겹처 얻게된 정보일 뿐입니다. 용병으로 컸고 용병으로 자리를 잡은 저에게는 그런 자리를 유지할 능력도 없습니다. 물론 종말시대에나 존재했다는 성인의 품성도 없고요. 전 다만 현재의 유니온처럼 능력의 유무와 혈통에 따라 평생의 삶이 정해지는 그런 희망 없는 사회를 무너뜨리고 절대 다수가 행복해하는 그런 세상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해마루는 하룬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한참 동안 그를 응시했다가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룬 대장은 이해할 수 없는 휴먼이로군. 돌풍 시티의 시장직을 포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건가?"

"그렇습니다. 세상은 혼자서 혹은 일부의 힘으로 끌어 나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능력도 없지만 설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세상이 더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룬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뜨거운눈으로 응시하며 그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룬은 분명히 자신이 챙겨야 마땅할 권리까지 포기해가면서 절대다수가 행복해할 세상을 바라고 있었다.

"알고 있겠지만 유니온 간에는 지하 도로가 연결이 되어있네. 우리 코원 유니온에서 순조롭게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른 유니온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손을 써 놓으셨는가?"

이제 하룬을 완전히 받아들였는지 해마루는 살짝 말을 높였다.

"지금 다른 유니온들에서도 이런 자리들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거사 일에 대해서는 제 의견에 따라 주셔야 겠습니다."

이미 일레인과 제리코 그리고 십오 사도회의 인사들이 앞장서서 많은 동지들을 규합하고 있었다.

하룬은 특히 여동생이 된 일레인을 믿었다.

그녀의 능력은 그 짧은 시간에 제국의 기틀을(본문에선 기틀은) 세우고 1,000년 동안 이어 온 정치체제를 큰 잡음 없이 바꿀 정도로 뛰어났다. 만약 암중 세력이 사라진다면 언젠가는 그녀가 전 세계를 이끄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하하하! 역시! 좋소. 하룬 대장의 말에 따르리다. 대신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해 주시오. 원래 이런 일은 시간이 생명이오."

"명심하지요. 아!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분위기상 숨겨 두었던 대가를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혁명이 벌어지는 것과 동시에 데드 벙커를 칠 생각입니다. 최소한의 병력이 필요합니다."

"데드 벙커를 말이오?"

이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데드 벙커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잇었다. 그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무자비한 생체 실험은 물론 최근 구노블의 상당수를 끌어들인 중요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곳의 방어는……?"

"빅 유니온들과 언더 시티들이 보유한 특수군 그리고 우리 돌풍 용병대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그곳을 없애지 않는다면 혁명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다. 사실 이자리에 있는 이들이 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고는 확신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구노블의 상당수가 데드 벙커로 가서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엇다.

"좋소, 하룬 대장이 원하는 대로 하겠소."

"특수군들에 더해 사이키스트 부대와 입자포를 지원하겠습니다."

"우리 언더 시티 역시 특작대를 파견하겠습니다."

"우리는 병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이런 자리에 술이 빠지면 안 되지. 밤을 새워도 부족할 테니 최소한 건배로 목이라도 축이면서 세부 사항을 의논해 봅시다."

일의 성패를 떠나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고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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