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하룬과 초토화 작전
하룬의 연락을 받은 펠은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해 왔다.
"형!"
"펠! 어? 그런데 너 갑자기 더 커진 것 같네. 어떻게 된거야?"
안 본 사이 펠은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키도 그렇고 몸집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얼굴의 젖살도 사라져 완전히 소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헤헤! 순수석의 파편을 통해 부상에서 회복한 것은 물론 또 한 번 각성을 햇지. 이제는 연속해서 공간 이동을 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능력이 올라갔어."
"그랬구나. 다행이다. 그럼 이제는 형이 사는 세계로의 공간 이동도 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직 힘들어. 그런데 형, 뭔가 변한 거 같은데."
"그래?"
"응.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형의 몸에서 느껴져."
역시 에센셜 정령이라서 그런지 금방 알아차리는 펠이다.
하룬은 펠에게 혼돈의 땅에서 만난 기연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와아! 그럼 형이 발몬의 힘과 순수석을 가지게 된 거네?"
"그렇지. 하지만 순수석의 기운은 나도 잘 모르겠어."
"분명히 거대하고 순수한 힘이 형 몸에 간직되어 있다는걸 느낄 수 있어. 이 정도 힘이라면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각성할 수 있을 거 같아."
펠은 당장이라도 인간체를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얼굴 이었다.
"지금은 네가 없으면 안 돼! 조금만 더 기다려."
"히잉."
펠은 아쉬운 얼굴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인정받는게 기분이 좋은 듯 곧 실실거리며 웃었다.
"자, 이제부터는 빨리 움직여야 해. 일단 코엠 성으로 가자!"
"오케이!"
펠은 하룬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코엠 성은 활기에 넘쳐 있었다. 스페셜 포스가 자리를 잡은 이후 그들을 선망하는 용병들과 여행자들이 즐겨 찾기도 했지만 마츠루트 요새와 가까운 거리에 있고 더구나 워프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어 이방인들이 많이 찾았다.
"펠, 요즘은 뭔가 변화가 있어?"
"응. 한동안 가즈 로드를 비롯한 연합군 측이 우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 양상이 바뀌었어. 다크니스 쪽의 인원이 늘면서 빠르게 밀리고 있는 양상이 되어 버렸어."
"인원이 늘었다고?"
"응. 마수들의 숫자도 두 배로 늘었고 언데드의 숫자도 세배 가까이 늘어났거든. 거기에 상급 언데드인 다크 나이트와 다크 매지션 들이 등장하면서 연합군이 맥을 못 추고 있어.
"그래?"
그짧은 사이에 전황이 이렇게 급변할 줄은 몰랐다.
"다크 나이트와 다크 매지션 들의 출현으로 지난번에 일어났던 일단의 연쇄 습격 사건의 배후가 다크니스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어. 세 제국은 물론 습격을 당했거나 조상들의 묘지를 훼손당한 가문에서 이를 갈고 있어."
'그럼 조직 개편이 거의 마무리된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하기에 한동안 방어에만 주력하던 다크니스 측이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룬은 펠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익숙한 건물로 향했다.
세류가 특별히 배려해서 내준 돌풍 영병대의 건물은 성내에서 가장 큰 건물들 중 하나이며 코엠 성을 안전하게 만드는 안전판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대장님!"
입구에 도착하자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산악 부족 출신의 대원이 하룬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며 경례를 했다. 그러더니 바로 통신기를 눌렀고 몇 마디의 통신이 끝나자 곧 용병대 수뇌부들이 모두 달려 나왔다.
"대장님!"
"하하하! 모두 잘 있었습니까?"
밝게 웃는 하룬은 팀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간의 출동에 지쳤던 대원들의 얼굴에 안도와 반가움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아슈인을 통해 하룬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반가움이 더욱 컸다.
하룬과 대원들은 대회의장으로 향했다.
티노가 잠시 휴식을 권했지만 하룬은 굳이 쉴 이유가 없었기에 바로 회의를 지시했던 것이다.
사회를 본 것은 레미였다. 돌풍 용병대의 정보 분야를 맡은 그녀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들을 접하며 관록이 느껴질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레미는 그동안 하룬의 부재중 일어났던 일들과 돌풍 용병대의 활동을 보고 했다. 다행하게도 아슈인 고문과 연락한 이후엔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룬은 보고를 듣고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돌풍 용병대는 내적 외적으로 모두 크게 성장했던 것이다.
'이젠 정말로 용병대가 아니라 용병단으로 바꾸어야 할때가 왔구나.'
전투단의 경우 총대원수가 이미 3,000명을 넘긴 상태였다.
선배들의 활약을 동경한 세 산악 부족의 전사들은 자신들에게까지 전해진 수련 검식을 열심히 수련했다. 쓸데없는 희생을 고려하여 돌풍 용병대원의 자격을 오러를 쓸 수 있는자로 한정했지만 빠르게 대원의 숫자가 늘고 있었다.
전사장 출신 대원들의 경우 전투단 고문들의 집중적인 지도와 펠이 제공한 순정석으로 인해 속속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 덕분에 용병대 전체는 물론 스페셜 포스 팀의 전력도 크게 강화되었다.
특이한 것은 산악 부족 출신을 제외하고도 전직 기사였던 실력자들이 속속 입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소드 마스터에 오른 12명이 새로 대원이 되었고 익스퍼트 급만 해도 300명에 육박하는 숫자였다.
그것은 용병대의 수련 시스템이 다른 용병대나 기사단보다 훨씬 효율이 좋다고 알려진 덕분이라고 했다. 딜런을 시작으로 마샤인과 일룸 같은 고위급 기사들이 돌풍 용병대에 들어간 직후 경지가 올라갔으며 그 대우도 엄청나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후 전직 기사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방인 대원들도 그 숫자가 300명을 육박했다. 겨루 일행이 자신과 인연이 있는 군 출신들을 만나 권유하기도 했지만 돌풍 용병대의 소문을 들은 이방인들 중 더 높은 경지를 염원하는 이들이 고수의 가르침을 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오기도 했던 것이다.
티노는 겨루를 이방인 부대의 임시 수장으로 임명하고 입대부터 수련에 이르는 거의 모든 업무를 책임지게 했다. 겨루와 방커는 군 경험이 있기에 서로 힘을 합쳐 그 많은 업무를 열성적으로 처리했고 고문들의 도움을 받아 이방인 대원들을 제대로 수련시키고 있었다.
도네이스는 마리를 조수로 삼아 400명 규모의 궁수대를 조련하는 임무를 맡았다. 궁수대로 편입된 대원들은 평소에는 궁수의 역할을 맡다가 유사시에는 전투에 참여하는 능력을 보유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돌풍 마탑도 엄청나게 성장했다.
공식적으로 마탑 연합에 속하게 된 돌풍 마탑은 그동안 대형 마탑들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던 마법사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우수한 인적 자원들을 쉽게 충원할 수 있었다. 또한 산악 부족 출신의 주술사들도 속속 마탑에 드렁왔고 이제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힌 공명 마법을 익히고 있었다.
모든 보고를 들은 하룬은 크게 기뻐했다.
"보고 잘 들었습니다. 제가 없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훌륭하게 용병대를 이끌어 주신 부대장님 이하 여러 고문님들 그리고 다른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대원들은 하룬의 말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들 역시 자세한 보고를 들으며 스스로의 위치를 돌아보게 되어 기꺼운 표정들이었다.
"다음은 상인 연합이 의뢰한 고스트 건에 대한사항입니다."
레미는 스페셜 포스가 해 온 그간의 활동과 더불어 파악한 고스트의 거점들을 보고했다. 역시 처음의 예상대로 놈들의 거점은 대부분 헤로파 상단과 관계가 있었다. 대부분 도시나 성 외곽의 뒷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수고가 많았네요. 스페셜 포스 팀들에게 각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하룬은 스페셜 포스 팀원들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자신의 부재에도 스페셜 포스는 흔들리지 않고 작전을 수행해 왔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고스트를 삼분의 이 정도로 괴멸시킬 수 있었다. 희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노와 수니의 기동성과 용병의 정신으로 무장된 스페셜 포스는 현격한 전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하룬의 진정이 담긴 인사에 스페셜 포스 팀원들은 뿌듯한 얼굴이 되었다.
"딜런 경, 초토화 작전 준비는 어떻습니까?"
하룬의 시선이 딜런으로 향했다.
"이미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입니다. 안 그래도 펠의 말을 듣고 내일모레까지는 대장님이 도착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 했습니다."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초토화 작전은 고스트의 거점과 그 배후인 골든 로드의 거점인 헤로파 상단 지부를 한꺼번에 들이치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스트의 뿌리를 뽑아 버리는 작전이다.
이 작전을 위해서 스페셜 포스 1팀과 2팀은 잠시 활동을 멈추고 이 작전에 투입되었다. 선금으로 받은 돈의 거의 전부인 3,000만 골드가 뿌려졌고 의뢰에 응한 5만여 명의 중급 이상인 용병들이 은밀하게 각처에 결집한 상태였다.
상단 연합은 처음에는 고스트의 처리만 의뢰할 예정이었지만 돌풍 용병대의 능력과 위상을 확인하고 배후까지 처리해 주는 조건으로 1억 골드의 의뢰를 추가한 것이었다.
이번일은 많은 실력자들과 심지어는 세 제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중급 이상의 용병들 거의 전부가 달려들어야 하는 대규모의 일이기에 그 정도는 받아야 했다.
"제국과 상인 연합 측은 어떻습니까?"
"세 제국 측도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놈들이 언데드의 재료로 범죄자들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치안이 안정되어 그쪽 전력이 충분해졌습니다. 상인 연합의 경우 벌써부터 최고의 기사들을 고용하여 이를 갈고 있습니다."
다행이다. 이 일을 책임진 티노는 물론이고 딜런을 비롯한 ㅅ페셜 포스 팀원들이 열심히 뛰어 준 덕분에 모든 준비가 착실하게 끝난 것이다.
"물론 정보 차단은 확실하겠지요?"
"네. 고용한 용병들에게는 상단 호위 건으로 고용하는 것으로 알렸습니다. 수뇌부가 아니면 모두들 그렇게 알고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세상에는 더 이상 상행을 미룰 수 없어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상행을 재개하는 것으로 알려질 것이다.
아직도 고스트가 준동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동시에 상행들이 이루어져야 피해를 줄일 수 있기에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수많은 도시나 영지에서 상행이 출발하며, 그 일을 위해 수많은 용병들과 기사단을 포함한 병력이 수행한다고 알려 지는 것이 이 초토화 작전의 예비 조건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틀 후 당장 작전을 시행하겠습니다."
하룬의 말에 대원들의 눈빛이 뜨거워졌다.
'일레인, 조금만 더 기다려!'
-일레인, 나 왔다!
-오빠, 빨리 구해 줘.
이미 회의를 마치고 바로 연락을 주고받은 터라 일레인도 하룬이 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기다려 왔던 일이 다가오자 조바심이 생겼다.
-조금만 더 기다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암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골목 건너편에 있는 한 건물에 은신한 하룬은 일레인이 무사한 것을 뇌파 통신으로 확인한후 목표를 흝어 보았다.
일레인이 있는 곳은 암시장의 끝에 있는 노예 경매장이었다.
평소에는 경매장으로 활용되지만 특별한 날 밤에는 어둠의 검투장으로 활용되는데, 그곳 지하 5층에 일레인이 갇혀 있는 것이다. 그 건물 곳곳에는 그동안 상단을공격하고 탈취한 각종 물품들이 적치되어 있었다.
하룬은 한 줄기 바람이 창을 통해 들어와 자신의 몸을 휘감자 눈을 빛냈다.
-하룬, 다녀왔어. 쪼옥!
정령체로 소환된 위신느는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와 하룬의 품에 안기며 뽀뽀를 했다.
-일레인이 있는 곳은 파악했어?
-응. 좌측으로 여섯번째 건물 지하에 혼자 갇혀 있어.
-건물들에 숨어 있는 인원들은 파악했니?
-응.
-그럼 지도에다 표시를 해 줘.
위신느는 방 안 탁자에 펼쳐진 지도에 적들의 위치와 숫자를 표시해 주었다.
-왼쪽으로 네번째 건물과 여섯 번째 건물 그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째 건물과 마지막 건물에 빛나는 검을 쓸 수 있는 자들이 셋씩 있어. 그리고 기분이 나쁜 냄새를 풍기는 자들은...............,
위신느 덕분에 적들의 전력을 쉽고 정확하게 파악한 하룬은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다행하게도 자신이 맡을 경매장 건물을 제외한 다른 곳에는 소드 마스터나 그에 준하는 마법사는 없었던 것이다. 경매장 건물이 골든 로드의 본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중요시설임은 확실했다.
'소드 마스터 네 명과 6서클 마법사가 두 명이라.'
골든 로드가 보유한 소드 마스터들은 대부분 초급 경지였지만 숫자가 넷이나 되니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6처클 마법사들이야 네정령이 맡으면 되니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블러드 에센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겁내지 말자!'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맡은 이곳은 소드마스터의 무력을 가진 것은 자신뿐이라 조금 신경이 쓰였었다.
그런 하룬의 불안감을 느낀 나이아가 그의 등을 안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하룬은 잘할 수 있어요. 제가 도울게요.
나이아의 체향과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느껴지자 긴장했던 하룬의 얼굴이 풀어졌다. 가슴을 어루만지는 나이아의 부드러운 손길에 긴장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 내게는 대원들뿐 아니라 세상의 그 누구보다 은밀하고 강력한 동료들이 있어.'
하룬은 그 짧은 사이에 순수석의 기운을 흡수하여 소드 마스터에 비견되는 능력을 갖게 된 네 졍령을 생각하곤 금방 굳은 얼굴을 풀 수있었다.
네 정령은 다시 인간체로 현신하기를 원했지만 하룬은 한동안은 정령체로 지내라고 부탁했다. 고위급 마법사가 아니면 제대로 감지할 수 없는 정령체가 그에게는 더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딸랑딸랑!
하룬이 창 안쪽에 매달린 줄을 당기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의 돌풍 용병대원들을 책임진 에인족 출신 조장 1명과 특급 용병 둘 그리고 기사2명과 마법사 1명이었다. 파이트 용병단의 두 대장과 마법사는 고용이 된 것이고 기사 둘은 이곳 에버튼 시의 방위를 맡고 있는 방위기사단 단장과 부단장이다.
사람들의 얼굴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의 초토화 작전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 준 것이 30분 전이었다. 상행을 호위하는 임무라 생각하고 준비를했던 그들로서는 정말 난데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자, 지도를 봐 주십시오."
하룬은 이미 안면을 익힌 상태이기에 바로 적을의 배치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작전 내용을 상세하게 지시했다.
"시간 여유를 주면 놈들이 범행 증거를 소각하거나 빼돌릴 수 있으니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적들을 요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대장님은 혼자 움직이실 겁니까?"
에버튼 시의 방위기사단 단장인 쉬펀이 물었다.
돌풍 용병대에 귀족이자 고위급 출신인 딜런과 마샤인 그리고 일룸이 있다는 사실이 이미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터라 그의 언행은 직속 상관을 대하는 것과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돌풍 용병대원들은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 기사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아닙니다. 상급 정령사 넷이 저를 보조할 겁니다."
"오오! 상급.....상급 정령사가 넷씩이나!"
잔뜩 긴장을 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룬의 무위야 소문으로는 그리 높지 않다고 알려졌지만 상급 정령사 넷은 전력이 가세할 거라고 생각하자 너무 든든 했던 것이다.
"빨리 끝나면 다른 곳도 돕도록 하겠습니다. 나중에 당황 할지도 모르니 우리 편에 있는 정령사의 존재는 미리 알려 두십시오."
"알겟습니다. 상급 정령사가 네 명이나 가세한다면 틀림없이 이번 작전은 성공할 겁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나름대로 전문가들입니다."
책임자들은 이제 완전히 불안감을 떨쳐 낼 수 있었다.
돌풍 용병대의 하룬 대장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겠지만 암시장 전체에 걸쳐 깔려 있는 적들의 위치는 물론이고 건물의 구조 그리고 적들의 구체적인 무력까지 파악해 놓았다.
각기 상이한 전력의 연합임을 고려해서 구역별로 책임을 지도록 했으니 불상사는 없을 것이다.
"저는 경매장으로 가겠습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하지 말고 바로 연락 주십시오. 그럼 작전 구역 상공에 마나 간섭장이 펼쳐지는 순간 공격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두 건투를 빕니다."
이미 돌풍 마탑의 마법사들이 암시장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행여 적들이 공간 이동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암시장의 상공 전체에 넓게 마나 간섭장을 펼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텔레포트 스크롤이나 마법진에 의한 공간 이동은 무산될 것이다.
'반드시 한 번에 끝내야 해!'
이번 초토화 작전을 위해 세 제국에 걸쳐 300개가 넘는 성이나 도시에서 용병들이 몰려들었고 해당 도시나 성의 기사단이 소집되었다.
그중에는 바람잡이를 위해 하급 용병들이 모인 곳들도 있었지만 목표가 된 장소에는 중급 이상의 용병들과 그 지역의 은퇴한 기사 혹은 전사의 전당에 속한 인원들이 도시의 치안 병력에 합류했다.
이 작전을 위해 티노를 비롯한 용병대 수뇌부들은 타이푼정보 길드와 제국 정보 길드를 메신저로 삼아 세 제국의 치안 책임자들과 용병 연합의 수뇌부와 수시로 연락을 해야만했다.
골든 로드 측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전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책임자들 외에는 이번 초토화 작전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모르도록 보안에 최선을 다했다.
책임자들이 밖으로 나가 황당해할 자신들의 수하들에게 작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사이 하룬은 네 정령을 모두 불러냈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경매장 건물을 맡아야 해."
"후후! 짜릿한데. 드디어 내가 활약할 때가 되었군."
라이피는 물론이고 다른 세 정령도 기대가 되는지 잔뜩 흥분한 얼굴이었다.
"가자! 위신느, 부탁해!"
"호호. 맡겨만 주라고."
위신느의 등에서 얇은 막이 솟아나왔다. 마치 망토처럼 넓게 펼쳐진 막을 손에 쥐자 위신느가 넓은 창밖을 새처럼 날아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가니 이제 막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다.
날갯짓도 없는 고요한 비행이지만 위신느는 순식간에 고공으로 올라가서 저 멀리 보이는 경매장 건물로 날아갔다.
날아가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암시장 근처의 높은 건물 위에 자리를 잡고 않은 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마법진을 이용해서 넓은 범위의 마나 간섭장을 펼칠 것이다.
경매장 건물은 근처에서 가장 규모가 컷다. 지하 7층에 지상 3층의 건물로 한때 검투가 유행했던 시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지금은 헤로파 상단의 소유가 되어 불법적인 검투와 인신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어 버렸다.
경매장 건물 옥상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하룬과 네 정령은 마나 간섭장이 펼쳐질 때를 기다리며 무장을 점검했다. 하룬은 새로 마련한 비수들을 점검했고 네 정령은 눈을 감고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지지지징!
대기가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일정 구역의 상공에 퍼져 있는 마나를 강제로 뒤틀어 버리는 마나 유동이 일어난 것이다.
"너희들은 지상층을 정리해! 난 지하로 내려가 볼 테니까."
하룬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네 졍령은 각자 특기를 발휘 하여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제 지상은 네 정령이 맡을 것이니 하룬은 바로 지하로 내려가면 된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하룬은 몸은 마치 바람처럼 빨랐다.
외부로 향하는 문은 닫혀 있었지만 곤한 잠에 빠져 있을 새벽 시간인 터라 계단은 텅 비어 있었다.
"누구냐?"
처음으로 그의 움직임을 간파한 것은 예상대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경비하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룬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먼저 받아야 했던 것은 살아 있는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는 비수들이었다.
"컥!"
"큭!"
골든 로드의 거점이기에 나름 신경을 썼지만 기껏해야 익스퍼트 초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실력으로는 벼락처럼 빠르게 쏘아 오는 하룬의 비수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채 무기를 챙기기도 전에 목이나 이마에 비수를 박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위신느의 정찰에 의하면 지하 1층의 안족에는 소드 마스터로 추정되는 자들이 4명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 일레인의 안전부터 확보한 다음에나 상대할 생각이었다.
하룬은 굳이 검을 꺼내 들 필요도 없었다. 새벽 시간에 경계를 하는 자들은 대부분 졸고 있다가 위층에서 들린 소음에 막 깬 상태 였던것이다.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데 벽에 건 마법등의 그늘을 통해 날아오는 비수를 막을 실력은 없었다.
하룬은 계단 주변에 배치된 병력을 비수로 처리하며 빠르게 지하 5층으로 내려갔다. 5층에는 적어도 50개는 되어 보이는 감옥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마법등도 없어 캄캄했다. 하지만 마수의 힘을 활성화시킨 덕분에 달빛에 비친 것처럼 그안을 볼 수 있는 하룬이다.
'원래 검투사들을 가둬 놓던 곳이군.'
감옥들은 대부분 잔뜩 녹슨 철창이 잇었지만 구석에 있는 몇 개의 방은 빛조차 들어갈 수 없게 강철로 막아 둔 상태였다. 하룬은 기감을 통해 가장 마지막에 있는 방에 누군가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바로 달려갔다.
평범한 비수 한자루를 꺼내 든 하룬은 마나를 주입했다.
순식간에 솟아오른 순흑색 오러 블레이드는 가볍게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강철 문을 종잇장처럼찢어 큰 구멍을 만들었다.
쿠웅!
커다란 원혀으로 잘린 강철문은 하룬의 손바닥이 닿자 바깥쪽으로 달려 나왔고 큰 소음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일레인, 오빠가 왔다!"
"오, 오빠? 하룬 오빠!"
기대와 설렘 그리고 일말의 불안감으로 가늘게 떨고 있던 이레인이 구석에서 몸을 일으켜 날듯이 달려왔다.
"정말 와 주었네, 오빠!"
"고생했다!"
"아니, 아니야! 지금이라도 와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터라 얼굴이며 행색은 엉망이었지만 하룬을 올려다보는 일레인의 눈은 샛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자식!'
그동안 떨어져 있는 사이에도 몇 차례나 뇌파로 대화를 나누어서 그럴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체온과 함께 짙어진 남매의 정을 느끼고 있다가 위층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음을 감지하곤 눈을 마주했다.
"볼 수 있겠어?"
"당연하지. 초감각을 완성했다니까."
"널 구하려고 단숨에 이곳까지 내려온 터라 이제부터 놈들을 상대해야 하니까 조금 떨어져서 따라와. 오빠가 어떤사람인지 똑똑하게 보여 줄께."
"후훗! 알았어. 일레인의 오빠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정말 기대가 돼."
자신을 믿은 여동생이 뒤에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전에는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치기란 생각에 내심 창피하기도 했지만 다행이도 적들이 아래로 물밀 듯이 내려오고 있었다.
블러드 에센스를 활성화시킨 후 굳이 문신의 힘을 쓰지 않아도 초감각에 버금가는 기감을 소유하게 된 하룬에게 제대로 앞도 볼 수 없는 적들은 한 끼 식사거리도 되지 않았다.
하룬은 이미 전신의 감각을 최고조로 개방한 상태여서 건물전체에 걸쳐 그의 감각장이 펼쳐진 상태였다.
슈욱!슈욱!
블러드 에센스가 주입된 비수들이 날아갈 때마다 건물 곳곳에서 억눌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대는 뭔가 날아온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피하려했지만, 하룬의 전신을 가득 채운 블러드 에센스는 비수와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 하룬이 손발처럼 자유로이 조종하기에 피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20여 명이 쓰러지자 더 이상 내려오는 자들이 없었다.
"최고야!"
엄지를 들어 보이는 일레인에게 싱긋 웃어 준 하룬은 계단쪽으로 걸어가며 다시 비수들을 연속으로 던졌다.
휘리릭!휘익!
비수가 작은 소음과 함께 계단으로 꺾여 모습을 감추었다.
비록 직접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감각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것처럼 훤하게 계단 위쪽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혼돈의 땅에서 발몬을 만나고 나서 달라진 능력 중 하나였다.
하룬의 등에 붙을 정도로 따라온 일레인이, 비수들이 살아있는 것처럼움직이는 것을 보며 놀라 뱉는 입김을 느낄수 있었다
:큭!"
다시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비명들. 하지만 얼마 후 그 비명은 금속성과 함께 갑자기 끊겨 버렸다. 그리고 바로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인물 4명이 하룬의 감각 속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나타났군.'
지하 1층에 있던 실력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느새 계단 주위가 환해졌다. 마법등을 가져와 근처를 밝히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10명인가? 아니, 그 뒤로 몇십 명이 더 오는군. 그런데 소드 마스터들은 모두 이리로 왔네. 이족이만만해 보인 걸까? 아니면 일레인이 중요해서일까?'
네 정령이 움직이는 것도 그의 감각장 안에서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네 정령은 각기 자신 있는 마법을 펼치며 건물 내에 있는 적들을 빠르게 처리하고 있었다. 마법을 쓰면서 캐스팅도 없고, 딜레이도 필요하지 않으니 감히 상대할자들이 없었다.
'한번 시험해 보자!'
이제 통제할 수 있게 된 블러드 에센스의 힘은 어떤 위력을 보일 것인가? 벨이 했듯 자신도 의식을 분리하여 개개의 비수들을 조정할 수 있을까?
하룬은 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번에 죽다 살아나면서 발몬이 전해 준 블러드 에센스를 얻고 난 후 자신의 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한 상태였다.
'만약 의식을 분리해서 비수들을 조정할 수 있다면 거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하룬은 비도지존의 유물 네 자루를 포함해 총 열 자루의 비수를 한꺼번에 던졌다. 블리츠 대거는 여전히 뇌전력과 연결이 된상태지만 나머지 아홉 자루의 비수들은 블러드 에센스가 주입된 상태였다.
쉬이이!
가는 소성과 함께 날아간 비수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계단 위를 향해 방향을 틀었고 각기 다른 상대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 갔다.
하룬은 끈끈한 블러드 에센스가 그와 비수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고 있나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검을 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블러드 에센스의 양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화악!
하룬이 중간에 블러드 에센스의 밀도를 순간적으로 높이자 비수들이 순흑색으로 변하는 것과 동시에 그 크기가순식간에 세 배로 늘어났다. 거리를 격한 상태에서, 그것도 날아가는 도중에 오러 블레이드가 형성된 것이다.
"크악!"
"ㅋㄱ!"
까앙!까앙!
역시 예상대로였다. 강한 존재감을 가진 4명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갑자기 검만큼이나 커진 비수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눈에 들어온 순간 갑자기 커지며 벼락처럼 덮쳐 왔으니 익스퍼트 정도의 실력으로는 쳐 낼 수도 없었다. 다만 4명의소드 마스터만이 기민한 움직임으로 힘겹게 비수들을 피하거나 받아칠 수 있을 뿐이었다.
"조심해라!"
간신이 비수를 피하거나쳐서 바닥에 떨어뜨린 소드 마스터들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켜 암습 다음에 가해질 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블러드 에센스로 하룬과 연결이 되어있는 비수들은 단순한 금속 무기가 아니었다. 비수를 피하거나 쳐 내고 튕겨지는 것을 보며 잠시 방심하는 순간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네 소드 마스터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까앙!깡!깡!깡!
츠즈즈즈
화르르.
"무, 뭐야! 웬 전격이! 커억!"
"엇! 뜨거워!"
"내 마나를 빨아들여! 아악! 악마! 악마다!"
"커억!"
일반 비수라면 힘겹더라도 쳐 낼 수 있었겠지만 블리츠 대거와 화염의 단검, 극강의 혼 그리고 어둠의 비수는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고 있었고 손에 쥔 상태가 아니라 자유로운 궤도를 그릴 수 있기에 몇 차례의 공방 끝에 결국 놈들의 몸통까지 파고들었다.
블리츠 대거를 맞은 상대는 쳐 내는 순간 검을 통해 전해진 노출이 되어 순식간에 몸이 마비되었다가 비수들을 막지 못했고, 화염의 단검을 맞은 소드 마스터는 고열의 화염에 휩싸여 몸부림을 치다가 새까만 재가 되고 말았다.
다른 두 소드 마스터는 더 처참한 꼴을 당했다. 극강의 혼은 상대의 몸을 파고드는 순간 강력한 폭팔을 일으켰고 그는 몸이 산산조각이 나 죽고 말았다. 마지막 상대는 은밀하게 바닥을 따라 날아갔던 어둠의 비수를 감지하지 못한 채 결국 정혈이 빨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른 여섯 자루의 비수들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상대의 요혈을 파고들었다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곤 스르르 빠져나와다른 상대를 찾았다.
상대는 보이지도 않는데 허공에 둥둥 떠 날아오는 오러 블레이드로 인해 소드 마스터들이 전멸하고 나자 나머지는 겁을 먹고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비수들은 그들을 두고 보지 않았다.
결국 이곳에 모인 골든 나이트들은 열 자루의 비수에 의해 전멸하고 말았다.
'최고다!
상대들이 비록 소드 마스터 초급의 실력이라지만 직접 검을 맞댄 것도 아니고 거리를 격한 채 비수로 처리할 수 있다니.
자신도 모르게 흥이 난 하룬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발을 멈추고 비수들을 더 위쪽으로 날려 보냈다.
지하 4층과3층은 이미 비어 있었지만 2층과 1층에는 아직도 꽤 많은 적들이 있었다. 순흑색의 오러 블레이드로 변한 비수 한 자루는 각 층에 있는 마법등과 횃불 들을 우선적으로 깨거나 부수었고 나머지 비수들은 어둠 속에서 당황한 적들의 숨통을 끊기 시작했다.
'멋진걸!'
마치 자신이 10명으로 분화해서 각자 한 자루의 비수가 된것 같았다.
발몬을 통해 애초에 미요스가 가지고 있었던 블러드 에센스를 이어받긴 했지만 시험해 볼 기회가 없어서 몰랐다. 이렇게 의식을 10개로 분리할 수 있고 각각의 비수를 개별적으로 조종할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생각해 보니 정신력만 강했다면 이전에도 충분히 이렇게 비도술을 펼칠수있었다. 마수의 힘 중에서도 뇌전력이나 암흑의 마나처럼 끈끈하게 금속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비도지존이 소드 마스터를 비수로 상대했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비도술을 펼쳤던 모양이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비수들이 하룬에게 돌아와 암기대에 스스로 꽂혔다. 더 이상은 할 일이 없다는 듯 말이다.
"다 끝났군!"
네 정령이 맡은 지상 층에서도 더 이상 적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었다.
"앗!"
뒤에서 일레인이 지른 경호성이 분리되었던 의식이 하나로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오빠, 비수들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초감각을 완성했다고 하더니 하룬만큼은 아니어도 이 건물 지하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어렴풋이는 알게 된 모양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방금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비수들을 보았으니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후후! 나중에 알려줄께. 일단 나가자. 이 건물은 이미 정리가 됐어."
"휴우! 오빠가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 있는 줄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일레인은 진정으로 놀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1층으로 올라온 하룬과 일레인은 거의 100여명을 상대하고도 아무런 전투의 흔적이 없는 네 정령과 만났다.
"모두들 수고했어! 다른 곳도 좀 도와줄래?"
녀석들이 모습을 보이는 순간 감각을 확장했던 하룬은 아직도 암시장 곳곳에서 전투가 이어지고 있지만 승기를 잡은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호호! 알았어."
"맡겨만 달라고, 친구."
"걱정 말아요, 하룬"
"안 그래도 몸이 풀리다가 말았는데 잘됐다."
네 정령은 하룬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암시장 거리로 날듯이 달려갔다.
"어! 누구야,오빠?"
휘둥그레진 눈을 보니 네 정령이 품고 있는 엄청난 정령력을 느낀 모양이다. 보통 사람은 네 정령의 존재를 감지할 수없지만 초감각을 완성시킨 그녀에게는 보이는 모양이다.
"내 친구들. 상급 정령들이야."
"와아!세상에!상급 정령들이 넷이나?"
하룬이 정령사라는 사실은 알고 알고 있지만 상급 정령을 넷이나 소환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일레인은 입을 떡 벌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동생이자 네 동생이 되는 펠 녀석은 최상급 정령사라고."
일레인은 펠 이야기를 듣더니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자, 이제 전리품을 챙겨 볼까?"
하룬은 행색이 엉망인 일레인을 위해 방어구 외투를 꺼내 입혀 주고는 비밀 금고가 있는 장소를 향해 가볍게 걸음을 뗐다. 그 위치는 위신느를 통해 이미 알아 둔 것이다.
이날 하룬은 총 10번을 공간이동하며 숨겨진 고스트와 헤로파 상단의 거점을 공격했다.
초토화 작전은 성공이었다.
은밀하게 암시장이나 뒷골목에 숨어 있던 150여 개의 헤로파 상단 지부들은 물론 그 안에 숨겨져 있었던 고스트의 포스트들도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간 스페셜 포스의 활약 때문에 절반으로 줄었던 고스트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멸했다. 평민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온갖 나쁜 짓에 깊게 관여해 왔던 헤로파 상단 역시 정보가 샌 몇 곳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 작전에 동원된 이들 중에서도 1만에 가까운 사상자들이 발생했지만 미리 펠을 비롯한 정령들이 모아 온 구체적인 정보를 토대로 상대보다 두 배의 전력을 도원했기에 그피해는 최소한이었다.
헤로파 상단에서 나온 서류를 통해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자행해 온 각종 범죄들을 입증할 수 있었고 작전의 와중에 세상을 좀먹는 범죄자들 상당수를 사회에서 격리할 수있었기에 세 제국으 ㅣ입장에서도 앓던 이가 바진 것 같았다.
이번 작전에서 치료 사제들과 마법사들을 대동하고 후미를 지켰던 상인 연합은 작전이 끝나는 대로 재바르게 움직여 놈들의 은밀한 창고를 확보했고 그 안에서 헤로파 상단이 은닉하고 있었던 금괴와 같은 재화들과 그들이 취급하던 엄청난 물량의 각종 물품을 발견했다.
상인 연합이 그동안 은밀하게 이루어진 피해 상황 보고를 통해 얻은 돈과 상품들을 상단와 초토화 작전에 활약한 각 주체들에 골고루 분배 하자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발하게 상행위가 재개되었다.
어마어마한 돈과 물품이 한꺼번에 풀리자 마비된 경제로 인해 고통받던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고 세 제국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각 도시나 성의 치안 병력들에도 많은 대가가 주어졌기에 재정이 탄탄해졌던 것이다.
초토화 과정에서 돋보인 활약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용병 연합 소속의 용병들이었다. 등급이 높은 용병들이고 돌품용병대가 죽음으로 세상에 알린 용병의 정신에 크게 공감했던 터라 그들은 연합측에서 사전에 신신당부한 대로 전리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물론 고스트를 비롯한 골든 로드의 포스트에 있던 전리품은 용병들이 차지했다. 하룬과 펠의 경우에는 극비리에 숨어있는 비밀 금고들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은밀하게 전리품을 챙겼지만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는없었다.
이번의 대규모 작전을 통해 용병들의 위상은 무척이나 달라졌다. 용병 연합이 출범해서 이미지 진작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했음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번 작전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용병의 덕목이 정직, 믿음, 약속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심어 줄 수 있었다.
용병들을 믿지 못했던 상인들의 고용이 이어졌고 세 제국 역시 그간에 미루어 놓았던 몬스터 소탕과 같은 일에 용병들을 적절한 대가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상인 연합은 잔금과 함께 세부 계약에 의해 정해진 대로 전리품들 중에서 10퍼센트를 돌풍용병대에 지불했다. 말이 10퍼센트이고 그것들이 물품이여서 그렇지, 환가하면 어마어마한 자금이 돌품 용병대로 들어온 것이다.
돌풍 용병대는 무려 5,000만 골드를 상회하는 경비를 제외하고라도 감히 상상하기 힘든 거금을 한번의 의뢰로 벌어 들였다. 더구나 확보한 전리품까지 합하면 10대 상단에 버금가는 자금을 가진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