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4화.발몬의 후예 (265/278)

 발몬의 후예

'다됐다!’

자연의 마나에 비해 부족했던 이듬의 마나가 이듬의 비수 와 블리츠 대거로 인해 많이 늘어난 덕분에 다시 평형 상태 를 이루자 하룬은 마나 오션이 터질 것 같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몸 내부에서 외계로 주의를 돌린 하룬은 네 정령이 모여서 전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이번 전투를 통해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정확하게 자각하고 효율적인 전투 방식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룬은 자이언트 오우거와 싸우던 럼프족 전사들에게 관 심을 돌렸다. 

'어! 뭐하는 거지?’

럼프족 전사들이 죽은 자이언트 오우거들의 사체 주변에 둘러앉아 경건한 얼굴로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주술을 펼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맞는 모양이다. 자이언 트 오우거의 사체에서 붉은 연기가 조금씩 흘러나와 럼프족 전사들의 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저건?’

하룬의 눈이커졌다.

‘블러드 에센스!’

그랬다. 한동안 하룬에게 고민을 안겨 주었던 현상이 럼프족 전사들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와 다른 점은 럼프족 전사들이 의도적으로 블러드 에센스를 흡수한다는 점이었다.

하룬은 샤키의 눈을 활성화시켜 럼프족 전사들을 살폈고 곧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치료는 물론 몸 상태가 급속하게 좋아지고 있어!’

블러드 에센스를 흡수한 럼프족 전사들 중 부상자들은 빠 르게 상처가 치료되었고, 지쳤던 전사들은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어느새 모든 럼프족 전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 들의 사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하룬은 수장으로 짐작되는 10명의 전사가 조심스럽게 자 신 쪽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지만 정작 그는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용하는 검은색 오러가 블러드 에센스 와 관련이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했기에 찌를 수 있었던 자이언트 오 우거의 가죽이었지만 놈들은 검은색 오러가 주입된 검에 많은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어디 한 번 해볼까?’

하룬은 블러드 에센스가 주입된 자리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문신에 주의를 집중했다. I

'내게로 오라!’

문신을 활성화시키자 곧 넓은 범위에 흩어져 있던 자이언 트 오우거의 사체와 그 파편에서 붉은색 연기가 뭉클거리며 흘러나와 하룬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예전에는 엷은 붉은색이었지만 지금은 검붉을 정도로 짙 은 색상의 연기는 서로 먼저 흡수되겠다는 듯 회오리 치며 하룬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흡수된 정혈은 상반신 전체로 확장된 문신 속으로 스며들었다. 딱히 몸에 어떤 변화를 느낄 수 없어 더욱 이상했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현상이 아닌 터라 그냥 지켜볼 뿐이었다.

정혈의 흡수가 끝나자 참혹한 주검들은 바짝 마른 미라로 변했고 이어 가루로 부서져 바람과 함께 사방으로 날아갔다.

'내가 완전히 괴물이 된 느낌이군.’ 하룬은 쓴웃음과 함께 몸 내부를 관조하던 상태에서 벗어 나 외계로 눈길을 돌렸다.

"어?”

100명이 훨씬 넘는 럼프족 전사들이 그를 향해 엎드려 있었다. 두 손 두 발은 물론 머리까지 땅에 대는 극경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스러워 이리저리 살피던 하룬은 가장 앞에 있는 전사 앞으로 다가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파탄이시여!”

파탄이라면 산악 부족들이 쓰는 용어였다. 탄과 칸의 우두머리로 한 일족의 대표자를 파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룬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단어에 깜짝 놀랐다.

"일어나시오. 전 그대들의 파탄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 럼프족의 파탄만이 그렇게 진한 블러드  에센스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골치 아프게 됐다.

자신은 단지 소진된 마나를 채우려고 했을 뿐인데 블러드  에센스가 활성화된 모양이다.

“허어! 이거 원! 일단 일어나십시오. 영문을 모르기도 하 지만 보기가 불편합니다.”

하룬이 직접 몸을 낮추어 그의 손을 잡아 일어나게 하며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자 결국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보니

아까 자이언트 오우거 한 마리를 혼자서 상대하던 전사였다. 다른 전사들에 비해 뿔이 하나가 더 많았기에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다른 럼프족 전시들도 조심스럽게 몸 을 일으키며 이쪽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는데 그들의 눈빛에는 강렬한 흥분과 기쁨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하룬은 그들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전 하룬이라고 합니다.”

"전 무슈라고 합니다. 럼프족 베루인 마을의 대전사장입니다.”

무슈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비견되는 검은색 오러를 무기에 마나를 주입해서 자이언트 오우거를 홀로 상대했던 전사였다.

'고문들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하군. ’

무슈의 오러 사용 능력이나 검술 그리고 새처럼 빠르고 자유롭게 허공에서 움직이던 몸놀림을 생각하면 다른 산악부족들의 대전사보다 상위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이 지역이 베루인 마을의 영역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교대를 하기 위해서 가던 중이었습니다. 저희 본부는 이곳과 약 천 걸음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하룬은 그 대답을 통해 이들이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대와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대라면?”

"저희 럼프족들은 시조신이신 발몬 님의 유지를 받들어 마수들이 후크란 산맥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박아 왔습니다.”

또다시 익숙한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러고 보니 럼프족들도 산악 부족과 같은 유지를 받은 모양이다.

'허 참. 순진한 건지 아니면 어리석은 건지 모르겠네.’

일이백 년도 아니고 무려 수천 년이다. 아무리 신으로 받드는 선조의 유훈이라고 해도 이 척박한 산속에서 최소한으로 생활하면서 그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유지를 지키고 있었다니.

‘개인적으로 정말 불쌍하군.’

마수가 세상 밖으로 나간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지만 세상 사람들은 산악 부족이나 럼프족이 자신들을 지켜 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지 않은가.

"후크란 산맥에 흩어져 사는 우리 일족의 23개 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전사들을 파견해 몬스터 랜드와의 접경 지역에 주둔하며 몬스터들과 마수들이 산맥으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인원수가 좀 적은 것 같은데.”

확실히 그런 면이 있었다. 상대가 비록 최상급 몬스터인 자이언트 오우거이기는 했어도 무슈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무력한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저희는 4지역을 담당하는 정기 순찰대입니다. 본부 인원 까지 합하면 총 2,300명의 전사가 이곳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그곳으로 유인하려고 했습니다. “

“아!”

하룬은 자세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성급하게 생각했던 것 이 미안했다. 이들은 아마도 아무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황 에서 자이언트 오우거를 본부로 끌고 가지 않으려고 이곳에서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하룬이 잠시 질문을 멈추자 이번에는 무슈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파탄께서는 어느 곳으로 향하고 계시는 중 이셨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파탄이 아닙니다. 저는 돌풍 용병 대의 대장으로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혼돈의 땅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룬은 파탄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지만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혹시나 그에게 혼돈의 땅에 대한 작은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혼돈의 땅요?”

예상하지 않던 단어가 나와서 그럴까? 무슈의 눈이 찢어 질 듯 커졌다. 

“그곳에 대해 아시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무,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혼돈의 땅은 발몬 선조께서 마왕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부인들과 함께 은거를 한 곳입니다.”

“정말입니까?”

하룬은 혼돈의 땅이 발몬과 관련이 있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산악 부족들은 발몬이 대지의 심연으로 들어갔다고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지의 심연이 바로 혼돈의 땅?’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신화에 조우해 버렸다. "우리 아샤테께서는 그 당시 출산이 임박했기에 발몬 님을 따라가지 못했지요.” “아샤테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슈는 호기심을 드러내는 하룬의 태도에 고무된 듯 흥분한 얼굴로 간단하게 럼프족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예전에 들은 대로 이들의 역사는 발몬의 시대까지 올라갔다. 그 시대의 이들 부족은 전형적인 모계사회였다. 부족장이자 제사장인 아샤테는 왕의 강림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일족 의 고향인 후크란 산맥 깊숙한 곳으로부터 전사들을 이끌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가 발몬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긴박한 전장이긴 하지만 발군의 능력과 지도력을 발휘한 

발몬은 잘생긴 외모와 강력한 카리스마로 여러 여인들의 구애를 받았다. 원래 죽음을 앞두면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이 최고조로 발휘되는 법이다. 발몬 역시 여인들의 구애를 거절 하지 않았고 여러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아샤테는 출산이 임박했기에 혼돈의 땅으로 따라갈 수 없었지만 언제나 발몬이 현세하기를 기다렸다.

발몬과 아샤테의 자손은 대대로 부족장이었지만 어느 순 간 순혈이 사라져, 발몬으로부터 이어받은 블러드 에센스가 자신에게 적합한 인물을 찾으면 그 인물을 부족장으로 추대하는 전통이 이어졌다고 했다.

“블러드 에센스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네?파탄께서는이미……”

무슈는 블러드 에센스를 흡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하룬이 그렇게 묻자 당황한 눈치였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설명을 했다.

"정확하게는 저희도 잘 모롭니다. 다만 선조들이 말씀하 시길 블러드 에센스는 마나 이전의 마나, 즉 마나의 기본이 되는 순수한 마나라고 했습니다.”

비욘드 게임의 설정에 의하면 마나는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물질 혹은 기초 에너지라고 한다. 그런데 블러드 에센스 는 그런 마나를 만드는 가장 순수한 최소 단위의 마나라니.

무슈는 아직 의혹이 남아 있는 히룬의 표정을 읽고 더 설 명을 하고 싶었지만 아는 것이 없는지 그 이상은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사들 모두가 블러드 에센스를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원래 럼프족이 가진 힘이었던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블러드 에센스는 이계에서 이곳으로 넘어 온 발몬께서 가지고 온 힘이라고 합니다. 그 힘이 사랑하는 아샤테를 통해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승되어 온 것이고요.”

"그런데 블러드 에센스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데 왜 저에게 파탄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그건 파탄께서 가지신 블러드 에센스의 양과 순도가 저 회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족의 칸과 탄이라고 할지 라도 극히 일부의 블러드 에센스만을 축적하고 시용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그 색깔도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엷고요. 하지만 파탄의 그것은 검게 보일 정도로 진했으며 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양을 빨아들이셨습니다. 그 것이 파탄의 중거입니다.”

거기까지 말을 한 무슈는 뭔가 생각이 난 듯 하룬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저희 때문에 본부 쪽에서 연락 이 왔습니다. 걱정하고 있을 테니 이쪽 상황을 대충 알려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런 징후도 없었는데 무슨 연락이라도 온 것일까? 

“그러십시오.”

무슈는 자리를 잡고 앉더니 양손 검지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살짝 누른 상태에서 눈을 감았다.

지이이잉!

그를 중심으로 강렬한 파동이 발생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무슈를 중심으로 일정한 폭으로 공기가 흔들리는 것이 뇌 파의 일종으로 보였다. 하룬이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듯했다. 비록 그 의미를 읽을 수는 없지만 대기를 매질로 삼아 퍼지는 진파는 분명 무슈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피곤한 얼굴이 되어 눈을 뜬 무슈는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부 쪽은 물론 파견대 대장의 자격으로 일족들의 수장 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엄청난 블러드 에센스를 이어 받은 파탄께서 드디어 나타나셨으니 이곳으로 오라고 말입니다.”

"혹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블러드 에센스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파탄의 증거라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전 럼프족도 아니고 바깥세상 사람도 아닙니다.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이방인입니다.”

"그렇습니까? 세상에!” 하룬은 자신이 무슈가 생각하는 파탄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려는 의도였지만 이방인 이라는 소리에 그는 더욱더 감탄하고 있었다.

무슈는 영문을 모르는 하룬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추가로 해 주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설들이 그것이었다.

ㅡ 언젠가 내 힘을 이어받을 이가 이계에서 건너올 것이니 그 존재를 믿고 따르라. 그는 불완전한 힘을 가진 나와 달 리 완벽한 힘을 갖추게 될 것이니 그를 따르면 영원한 번영을 누리리라.

ㅡ 내 후계자는 블러드 에센스를 사용할 것이다. 블러드 에센스는 나와 나의 후예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니 의심하지 말지어다.

ㅡ 블러드 에센스는 그의 전신을 감추리라. 그는 의식의 도중에 나타나 내 징표를 얻을 것이며 그때 만나지 못한다면 혼돈의 땅으로 향하는 곳에서 홀연히 다시 나타나리라.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무슈가 왜 자신을 파탄으로 여 기는지 알 수 있었다. 꾸며 낸 것이 아니라면 공교롭게도 하룬과 여러 면에서 일치되는 점들이 있었다.

“그럼 제가...?"

“그렇습니다.”

하룬은 이제야 예전 럼프족과의 처음 만났을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을 추격하던 럼프족 전사들이 막 텔레포트를 하기 직전에 자신을 향해 절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안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그게 그런 이유였다니.

자신이 럼프족을 오크의 일종으로 오해하고 죽인 것도 모자라 가죽까지 벗겨 간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하룬은 이제 상황을 이해했지만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출신이 전혀 다른 이방인이 그대들 럼프일족의 파탄일 리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건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선조들이 후대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틀린 것이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오크처럼 미개하게 사는 우리지만, 한때는 인간들보다 더 번성 을 누렸습니다. 선조들이 전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며 소중하게 간직해야만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발몬 신의 선택을 받았느냐는 것일 뿐 다른 것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블러드 에센스가 단순한 오크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오크를 우리 부족의 지도자로 여길 겁니다. 더구나 우리에게 전해진 전설에 따르면 하룬님은 발몬께서 그랬듯 다른 세상에서 오신 분이니 우리 일족에 

새로운 삶을 열어 주실 지도자가 맞습니다. “

무슈의 말에는 그 무엇으로도 설득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 이 담겨 있었다. 하룬은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는 순간 그 사실을 알수있었다.

이어진 무슈의 말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구전으로 여러 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발몬이 왔던 세상에 서 다른 존재가 다시와 발몬의 힘을 물려받을 때가 되면 일 족이 세상에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대대손손 번영을 누리게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영락없는 신화인데 말이지.’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말할 수 없으니 재차 부인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할 일이 많은 사람입니다. “ 

"하십시오. 저희 파견대가 봉행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할 일들은 혼돈의 땅뿐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서 할 일들도 있습니다.”

바깥세상에선 럼프족을 오크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그들 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것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뿔이나 외모는……”

“외모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깥사람들에 비해 좀 우락부락하긴 하지만 데빌 산맥에 거주하는 산악 부족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기는 했다. 문신을 덕지덕지 새긴 산악 부족에 비하면 오히려 더 인간다워 보이니 말이다.

“우리 부족의 가장 큰 특징인 뿔은 잘 벗겨지지 않는 특수 한 투구로 가리면 됩니다. 이미 오래전 부터 전사장 후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수행을 위해 일부러 경험을 쌓으러 세 상에 나가기 때문에 그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 럼프족 전사장들은 대대로 용병 생활을 통해 바깥 문물을 경험해 왔습니다.”

그랬던가? 하긴 이들의 용모에서 뿔을 가린다면 다소 개 성이 강하긴 하지만 인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공용어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용병으로 행세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난감한 일이다.

들어 보니 벌써 후크란 산맥 곳곳에 흩어져 사는 일족의 탄들에게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전사장과 제사장을 겸하고 있는 무슈는 하룬이 사용하는 뇌파 통신과 비슷한 방법으로 원거리에서도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일단은 본부로 가시지요.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열흘 정도만 기다리면 탄들과 칸들이 모두 모일 겁니다.”

이렇게 원하지도 않는데 럼프족 대부족장 자리에 앉을 수 

는 없다. 더구나 열흘이나 이곳에 머물 시간이 없었다.

"유감스럽지만 전 급한 의뢰 때문에 혼돈의 땅으로 들어 가야합니다.”

"아! 그런 거라면……."

무슈는 혼돈의 땅 이야기를 듣자 전보다 더 강한 눈빛을 보이며 뭔가를 생각했다.

"그럼 그곳까지 수행하겠습니다. 혼돈의 땅까지 가려면 몬스터들이 들끓는 광대한 초원 지대를 지나야 하는데 우리는 그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파탄과 네 분만으로는 위험할 뿐 아니라 몬스터들을 상대하다가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그건……”

거절을 하려던 하룬은 시일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말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렇게 되면 거부할 수가 없는데.’

미노와 수니가 혼돈의 땅으로 향하던 다크니스의 무리를 본 것이 게임 시간으로 아주 오래전이다. 어쩌면 벌써 순수석을 손에 넣었는지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렇다고 한창 대원들과 함께 고스트 잔당을 정리하고 있 는 미노와 수니를 이곳으로 오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펠은 한 번 가 봤거나 좌표를 알아야만 공간 이동이 가능하니 애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떡하지?’

조력자가 있으면 일이 쉬워지는데 굳이 거절을 해야 할까 싶었다.

"저희 전사들이 비록 자이언트 오우거와 같은 크라운 급 몬스터들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몬스터들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땅으로 향 하는 파탄의 앞길을 치워 놓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하긴 가공할 힘을 가진 자이언트 오우거에게도 굴하지 않 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강한 근성이나 놈들의 하체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공격한 검술을 보면 그럴 실력은 될 것이다. 일반 전사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만나 본 산악부족 전사 들로 치면 소전사장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마음은 급한데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이들 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았지만 이들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하룬이다.

"급히 가셔야 할 것 같은데 길을 열겠습니다. 뭐하느냐? 모두들 준비해라!'

 "넷!'

무슈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상자들을 제외한 전시들은 일 사불란하게 행군 대형을 갖추었다. 빠르고 익숙하게 다이아몬드 형태의 진형을 갖춘 럼프족 전사들이 진군할 준비를  마쳤다.

'허, 참!’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더 이상 뺄 수도 없었다.

'어차피 일족의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야 뭐가 결정되어도 될 테니 편하게 마음먹고 이들에게 도움을 받자.’

하룬은 나중에 혼돈의 땅에서 나오는 대로 이들과 헤어질 생각을 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본부에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무슈는 아까처럼 뇌파를 이용해서 연락을 취했다.

"연락했습니다. 우리가 맡은 지역은 다른 순찰대가 범위를 넓혀 대신 맡아주기로 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연락을 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더 이상할말이 없었다.

무슈는 하룬이 마음을 바꿀까 두려운지 바로 진군을 명령 했다. 네 정령의 힘을 믿기는 하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도가자!”

하룬은 쉬고 있던 네 정령을 이끌고 전사들의 진군에 발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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