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2화.해후 (263/278)

 해후

 하룬은 아즈만의 마지막 말이 좀 걸렸지만 이내 벨을 떠올리며 공중에 떠 있던 몸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델이 하룬의 전신 신경과 연결된 전자기파를 해제해 주었다.

 - 마스터, 이제는 괜찮으신 거죠?

 생각도 못하고 있따가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걱정 어린 델의 목소리에 하룬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캡슐로만 기능하던 델이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어떤 상태였다가 회복했는지 떠올렸다.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델이었다.

 - 하하하! 델이 걱정해 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어.

 사실은 펠이 자신을 살려 준 거지만, 그동안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떤 델의 걱정이 느껴졌기에 그렇게 대답을 한 하룬이다.

 - 벨과 아리가 아니었으면 큰일이 일어날 뻔했어요.

 -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 사실은 제가 보유하고 있는 영양 성분들이 부족해서 동화 현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든요. 아바타는 회복하고 있는데 정작 마스터의 상태는 아무런 호전도 되지 않아서 벨과 아즈만이 많이 걱정했어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리와 대산 노인 일행 그리고 암무 일행으로부터 구한 약재를 통해 부족한 영양 성분을 보충하고서야 동화가 제대로 이루어졌어요. 만약 시간이 더 늦었떠라면 마스터는 돌아가셨을지도 몰라요.

 이미 벨로부터 대충의 상황에 대해선 들은 바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를 쓴줄은 몰랐다.

 '모두에게 정말 고맙구나.'

 가슴이 뭉클해졌따. 현실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더욱 울컥해졌다. 

 '이제야 내가 제대로 사는 것 같네.'

 휴먼이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다. 정을 주고받으며 얽히고설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인 삶인 것이다.

 -고마워, 델. 델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죽을 뻔했네.

 -아니에요. 벨과 아리 그리고 아즈만이 많이 걱정하고 고생했어요.

 - 그래, 그 셋에게도 무척 고마워. 하지만 델은 나와 함께 모든 것을 같이 겪고 느끼는 존재잖아. 누구보다 날 걱정하고 있는 줄 아니까 더 미안해!

 - 아니, 아니에요. 저야 마스터 덕분에 인간만이 향유하는 갖가지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된걸요.

 그래서일까. 델의 말에도 전에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스며들어 있었따. 

 그때 캡슐 뚜껑이 울리며 소음이 들렸다.

쾅! 쾅! 쾅!

 -벨이에요.

 -하하하. 녀석이 엄청 걱정을 한 모양이군. 지금 내 상태는 어때?

 -정상이에요. 뇌 혈류량과 속도가 크게 개선이 되었어요. 특히 뇌신경세포의 활성도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높아졌고요.

 이번 일로 인해 정신력이 강해진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좋은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다행이네. 그럼 커버 좀 열어 줄래? 벨이 부수기 전에 말이야.

머리가 좋아진 건 사실인가 보다. 자신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델이 한 말이니 확실할 것이다.

 "오빠!"

 역시 벨이다. 캡슐 내부 공간이 축소되며 커버가 올라가자 눈이 빨갛게 변한 벨이 가장 먼저 보였다.

 "벨아!"

 "괜찮아? 괜찮은거야?"

 "그래. 네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다. 고마워!"

 하룬이 캡슐 밖으로 나가자 평소에는 힘차게 안기던 벨이 조심스럽게 그의 주변을 돌면서 상태를 살펴보았다. 벨의 눈에 어린 불안감과 걱정을 느낀 하룬은 가슴이 울컥했다. 오빠가 되어서 매번 이렇게 걱정을 시키다니 오빠 자격이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은 걱정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괜찮다니까, 이젠 완전하게 회복했어."

 "히잉!"

 하룬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꼼꼼하게 살피고 확인한 벨은 마침내 눈물을 줄줄 흘리며 품에 안겼다.

 "고맙고 미안해. 걱정 많이 했지?"

 "흑! 흑! 이번에는 정말 잘못되는 줄 알았단 말이야. 히끅!"

 하룬은 자신이 한심하고 벨에게 너무 미안해서 품에 안긴 녀석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달랬다. 자신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불안했던 모양이다. 자신에 대한 벨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하룬의 눈가도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본격적인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데드 벙커 쪽은 어때?"

 자신의 의식을 잃고 있었던 기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봐 마음이 조급했다.

 "개략적인 내용은 실험체들의 생명력을 흡수해서 대상의 육체를 재구성하는 거라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벼리 오빠 말에 의하면 임상 실험은 성공적이래."

 "성공적이라고?"

 "응. 최근 다른 유니온에서 코원 유니온으로 많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유입되고 있어."

 "흠. 그럼 두 조직의 상층부 인물들인가?"

 유니온 간의 이동은 유니온 상층부의 인물들이 아니면 불가능하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 것 같아. 실험 경과를 주시하고 있던 이들이 모여들고 있는 듯해. 최근에는 다른 세력들까지 끈을 대서 시술받으려고 하는 거겠지. 코원 유니온의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사 원로까지 그쪽으로 움직였어."

 제기랄이다. 오래 끌어왔기에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임상 실험이 성공했다면 본격적으로 시술에 들어갈 것이다. 시간이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좋은 기회인지도 몰라."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글로리 가이아와 휴먼 가드 그리고 유니온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데드 벙커로 몰려들었으니 이 기회를 이용하면 혁명을 일으키는 일이 보다 쉬워질 거 같거든."

 맞는 말이다. 다른 곳에 소재한 데드 벙커들 역시 모든 인력을 코원 유니온 인근에 있는 데드 벙커로 이동 시켰기에 그곳만 해결한다면 나머지는 시간을 들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데드 벙커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어?"

 하룬은 벨이 오랫동안 정찰을 위해 그 근처에 사이보그 매나 들쥐 혹은 거대 지렁이 등을 운용하고 있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즈만 언니의 생각대로 데드 벙커 주위에 건설된 6개의 기지를 찾아냈어."

 "6개나 된다고?"

 기지 규머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돌풍 기지를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전력이 추가된 것이다.

 "응. 하지만 그중 1선에 위치한 4개는 캡슐 기지야 그리고 2선에 위치한 2개는 각기 25,000명 규모의 특수군이 주둔하고 있고."

 "1선과 2선은 뭐고, 캡슐 기지는 뭐야?"

 "1선은 데드벙커와 2킬로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고 2선은 500미터 떨어져 있어. 그리고 캡슐 기지는 게임 캡슐을 비치하고 있는 기지야."

 "그럼 캡슐 기지에 주둔하는 자들은 비욘드를 플레이하는 건가?"

 "응. 평소에는 비욘드를 플레이하다가 유사시에는 데드벙커를 방어하는 용도로 건설된 기지들이야."

 하룬은 벨의 설명을 듣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크니스의 주력인 오리온이다!'

 제국 정보 길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다크 프린스의 친위 세력인 오리온의 숫자는 13만에서 15만 사이였다. 아마 2선에 있는 자들은 전에 다크니스의 주축이었던 자들일 것이다..

 "숫자는?"

 "각각 2만 면에서 3만 명 규모야."

 하룬의 예상이 맞았다. 숫자도 엇비슷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평소에는 비욘드를 플레이하다가 데드 벙커에 이상이 생기면 출동하는 전력일 것이다.

 "그럼 총인원이 얼마야?"

 "족히 20만은 넘을 거야. 벙커의 수비군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고."

 "엄청나군!"

 정말 엄청난 전력이다. 유니온 특수군의 실력을 가진 20만명이라면 웬만한 유니온은 하루 안쪽에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적들의 숨겨진 전력까지 파악했으니 다행이다. 하마터면 데드 벙커에 접근도 하기 전에 박살이 날 뻔했다.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겠군.'

 "오르그 쪽은 어때?"

 지난번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 실험을 위해서는 생명력이 강하고 세포 재생력이 뛰어난 오르그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꽤 많은 오르그들이 납치되는 바람에 많은 부족들이 범인들을 찾으려고 연맹까지 결성했어."

 "그건 좋은 일이네. 제대로 이용할 수 있겠어."

 "응. 오르그들의 복수심은 엄청나게 강하니까 제대로 불만 지르면 활활 타오를 거야."

 "그들과의 관계는 어때?"

 "오르그들과의 거래를 책임진 암무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 하고 있어. 거의 모든 부족과 거래를 하고 있고 교역량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어."

 "그럼 중개무역인가?"

 "응. 오르그 쪽은 암무가, 이너들 쪽은 해란 언니가 맡고 있어."

 비욘드에 푹 빠져 사는 줄 알았던 해란이 돌풍 시티에 와서는 중책을 맡았다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 녀석의 감각이라면 그 일이 제격일지도 모르지.'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세란과 바란 형님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응. 세란 언니는 중대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바란오빠는 공방 거리의 책임자야."

 어쟀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돌풍기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소식에 기분이 좋았다.

 "하던 이야기, 마저 할게. 해란 언니는 세류 언니가 경영하는 기업은 물론이고 행정원을 장악하고 있는 해가와도 정기적으로 대규모 거래를 하고 있어. 그리고 언더 시티 쪽에서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고. 아리 언니가 하고 있는 일이 마루리되면 거래선을 다른 유니온으로 확대할 생각이야."

 이건 기분 좋은 일이다. 중개무역이 활성화되면 게임을 통하거나 용병 일이 아니더라도 돌풍 기지가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다.

 "좋아. 암무로 하여금 그들과 지금처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면서 기회를 보자."

 "알았어."

 이제 계쇡은 완성되어 가고 있다. 톱니바퀴처럼 아귀를 잘맞추어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비록 그 과실에는 전혀 욕심이 없는 하룬이지만 휴먼들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에, 과거에는 느낄수 없었던 보람과 자긍심을 느끼고 있었다.

 할 일이 너무 많았지만 힘은 전혀 들지 않았다. 기대와 설렘이 활력을 주고 있었다.

 "다른 일은?"

 "글로리아 가이아 측에서 몇 번 공격을 해 왔어."

 "뭐라고? 얼마나? 피해는 없었어? 기지는 괜찮은 거지?"

 빌어먹을 글로리 가이아 놈들! 감히 자신이 쓰러진 사이에 기습을 해 오다니. 안 그래도 비욘드에서 다크 프린스에게 일격을 당해 죽다가 겨우 살아난 하룬의 속에서 불길이 솟아 올랐다.

 "응. 괜찮아. 쏘우 조장덕분에 신무기도 충분히 보유해서 방어 체계는 이미 완성되었거든. 하지만 방어를 하는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좀 발생했어."

 "어, 얼마나?"

 묻는 하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이제까지 현실이건 비욘드에서건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죽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처음과 두 번째 습격은 부상자들만 발생했는데 세 번째공격은 규모도 컸고 숫자가 많아서 우리 측에서 54명의 사망자가 나왔어."

 "젠장!"

 하룬은 입술을 깨물며 피가 맺히도록 주먹을 힘껏 쥐었다.

 "왜 갑자기 그런거지?"

 "아즈만 언니가 내놓은 분석으로는 글로리 가이아의 상층부가 지난번에 있었던 코원 유니온의 임페리얼 컴퍼니 폭발사건으로 인해 혹시라도 우리가 데드벙커를 공격하지 않을까 우려를 해서 그런 거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도 일리가 있는 거 같아."

 "제길!"

 그럴 수도 있었다. 데드 벙커에서 신약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놈들 입장에서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돌풍 기지가그들의 배척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으니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좋은 점도 있었어."

 "좋은 점이라고?"

 적의 공격을 받아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는데 좋은 점이 생겼다니 그건 또 뭔지 모르겠다.

 "사실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그간 주민들이 출신별로 갈라져 있었는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분열의 원인이 사라져 버렸어."

 들어 보니 그럴 법도 했다.무리의 위기는 내부 결속력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 때문에 일부러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들도 역사에선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덕분에 시티 출범이 빨라졌어."

 "시티?"

 "응. 그동안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3,000여 명이 더 합류해서 기지를 운영하기가 힘들었거든. 그래서 기지를 시티로 개칭하고 조직 체제를 정비했어."

 "잘했네. 조직 체제는 어떻게 되는데?"

 "여기 있어."

 벨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다는 듯 조직도를 내밀었다.

 독풍 시티의 조직은 시장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 사법부, 군부의 3부 체제였다.

 "유니온에서처럼 입법부는 아직 필요가 없어 행정부에서 관할하기로 했어."

 하긴 시티 단위에서 굳이 단원이나 양원의 입법부를 운영 할 필요는 없다.

 행정부 조직도를 보니 인망이 높은 황박사가 시장의 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시장의 밑에는 내무청, 외교청, 농산청, 경제청, 무역청, 게임청, 교육청, 직업청, 의무청, 과학청, 방위청이 있었고 알 만한 이들이 그 자리를 맡고 있었다.

 영흥 마을 원로 출신인 해담이 내무청장이었고 쏘우가 과학청장, 혜련은 의무청장, 로수가 방위청장, 미드레가 게임청장, 보라가 경제청장이었다.

 외교청장인 도문과 직업청장인 바인, 농산청장인 가루의 경우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특이 사항으로는 무역청장의 경우 아직 공석으로 부청장인 암무와 해란이 업무를 나누어서 하고 있었다.

 사법부는 노블 출신으로 유니온에서 오랜동안 재판관으로 일해 왔다가 은퇴를 하고 이곳으로 이주해 온 하상연이라는 인물이 수장이었고 군부는 철웅을 수장으로 3군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사법부는 아직 인성을 하는 중이고 군부는 인원 충원은 못했지만 지휘관 선까지는 이미 편성이 완료되었어."

 조직도를 보니 군부의 경우 1군을 총 1,000명으로 하여 3군으로 편성되었고 각 군은 100명을 1대로 하여 총 10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조직도에는 그 숫자가 명기되지 않아 숫자는 알 수 없었지만 특수군의 형태로 사이키스트 부대와 정찰 부대 그리고 입자포 부대와 시크릿 부대가 따로 있었다.

 하룬은 군 조직도에서 생경한 이름과 친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수로란 인물은 어디 출신이지? 어! 매그럼도 있네."

 "매그럼은 오빠와 아는 사이라고 하던데."

 "맞아. 게임에서 인연을 맺었지."

 "매그럼은 비욘드에서 GM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고, 군전략 총감이신 수로는 매그럼의 아버지이셔, 코원 유니온의 방위청에서 전략 참모로 오랫동안 근무했어."

 매그럼의 양부가 방위청의 간부로 근무한다는 사실은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런 직위로 근무했던 건 몰랐었다.

 "그분 덕분에 세 차례에 걸친 적들의 내습을 훌륭하게 막을 수 있었어. 처음에는 군부에서도 좀 우려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능력을 인정하고 있어."

 "종은 인재가 들어와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겨루 일행은 어때?"

 그들이 돌풍기지로 이주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까지만 들었던 하룬이다. 그들은 항창 비욘드에서 다른 돌풍 용병대원들과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것이다.

 "치료는 끝났어. 다들 정신력이 강하고 육체 기능도 뛰어 났기 때문에 치료는 성공적이었거든. 치료가 끝난 후 시크릿 부대로 배속되었어."

 "시크릿 부대?"

 "응. 그 오빠들과 마리 언니는 비욘드의 돌풍 용병대와 현실의 군부를 연결하는 고리거든. 아직까지 특별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연결 고리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럼 진수 형과 그 친구들도?"

 "그 오빠들도 당연히 시크릿 부대원들이지. 비욘드의 용병대원이잖아."

 "그렇구나."

 이제야 군 편제가 대충 이해가 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너와 아리는?"

 자신이야 워낙 하는 일이 없었지만 벨과 아리는 돌풍기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나와 언니는 몇 사람과 함께 시장 직속의 시정 운영위원이 되었어. 시정에서 대한 각종 정책들을 입안하고 그 처리 과정을 감독하는 한편 독자적인 조직을 운용할 수 있어."

 "그래, 잘됐네."

 그런 거라면 이전까지 해왔던 참모 역할과 비슷한 것 같았다. 벨과 아리의 능력은 일개 청에 묶어 두기에는 아까웠다. 대부분을 감충 상태의 능력만으로도 이미 기지의 핵심 실세가 되어 있는 그녀들이다.

 "오빠도 직책이 있어."

 "직책이라고? 난 그런 것 맡고 싶지 않은데."

 하룬은 직책이라는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용병대를 운영하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에도 분명히 없었는데 무슨 직책일까?'

 "명예 시장이야. 평생직이고 매 5년마다 선출되는 시장의 권한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으며, 유사시 군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어."

 "에엥? 그게 말이 돼?"

 이름은 명예 시장이었지만 그 권한은 실로 막강했다. 군의 통제권은 물론 현 시장의 권한까지 제한할 수 있다니.

 "나와 언니가 반대를 했지만 시티 출범 위원회가 그렇게 결정했어. 아무리 오빠가 고사를 해도 이 기지를 발견하고 엄청난 사비를 들여 발전시킨 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데 할말이 없더라고."

 "참 내."

 하룬은 자유롭게 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을 생각하곤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튼 이제야 기지 아니, 시티가 제대로 돌아갈 테니 마음이 편했다.

 하룬은 자리란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능력이야 올리면 되지만 하룬에게는 근본적으로 시정과 같은 골치 아픈일에 대한 열정은 없었다.

 "너와 아리가 구체적으로 맡은 일은 뭐야?"

 "난 정보 분야를 맡았어. 한시적이긴 하지만 아직 군부 조직이 정비된 것이 아니라서 유사시에는 군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아리 언니는 당분간 지하 도로를 건설하는 일을 책임지기로 했어."

 아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보고 싶다!'

 하룬은 자신이 아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각할 수 있 었다.

 "그래. 아리의 일은 어느 정도나 진행된 거야?"

 "이미 용광로 마을과 사이언스 마을, 코원 언더시티 그리고 오르그 거주지 인근까지의 도로망은 정비된 상태야. 지금은 다른 유니온들과의 연결 도로를 정비하고 있어. 오빠가 깨어난 것을 알렸으니까 지금 한창 오고 있을 거야."

 잘된 일이다. 변종생물들의 위협이 증가되고 있는 만큼 아우터들의 안전과 돌풍 기지의 발전을 위해 장차 용광로 마을이나 사이언스 마을을 흡수할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콰앙!

 그 순간 지하와 연결된 문이 부서지며 그 사이로 아리가 그를 부르며 뛰어 들어왔다.

 쿠웅!

얼마나 격정에 휩싸였는지 아리는 하룬의 품에 박치기를 하듯 뛰어들었다.

 "아……리!"

 "흑! 흑!"

 아리는 하룬의 품에 안긴 채 울음을 터트렸다. 그간의 마음 고생이 무도 담겨 있는 울음소리는 이제 겨우 진정된 벨의 눈물까지 끌어냈다. 벨 역시 그의 등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후우!'

 하룬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아리를 안고 아까 벨에게 했듯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려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리가 머리카락까지 눈물에 젖은 채 얼굴을 드러냈다. 하룬의 목에 두른 팔에도 힘이 빠졌다.

 "히잉! 이렇게 걱정을 시키다니 나빠요!"

 "미안해, 아리야."

 아리는 아직도 눈물에 젖은 얼굴로 하룬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꽉 쥐더니 몇 번 그의 가슴을 세게 쳤다.

 "악!"

 이런 상황이 너무 난처했던 하룬은 짐짓 맞은 가슴을 두손으로 감싸며 아픈 척을 했다.

 "어머! 어떡해? 미, 미안해요, 오빠!"

 아직도 젖은 얼굴을 한 아리가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해했다.

 "칫! 이 나쁜 오빠! 아프지도 않으면서 아픈 척을 하네."

 등을 축축하게 만들고 있었던 벨이 얼굴을 떼며 투덜거렸다. 보아하니 녀석은 하룬이 엄살을 피우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에도 불구하고 아리는 당황한 얼굴로 자신이 때린 가슴 부위를 쓰다듬으며 미안해했다.

 "언니, 오빠가 엄살을 피운 거라고."

 "하지만…… 오빠는 그런 짓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하룬이 엄살을 피우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진지하다 못해 재미가 없는 부류인 것이다. 벨이나 아리 둘 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벨도 미안한 기색을 했다.

 "후후후! 아니야. 내가 두 사람에게 마음고생을 시킨 것이 너무 미안해서 조금 과하게 반응한 거야. 아무렴 내가 아리의 그 작은 주먹질에 아파할까."

 "쳇! 그럴 줄 알았다고."

 "헤에!"

 하룬의 말에 벨은 입술을 내밀고 투덜거렸지만 아리는 화가 나거나 삐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언니는 화도 안 나? 이제까지 그렇게 걱정을 하게 만들어 놓고 일어나선 태연히 장난이나 치는데."

 "으응. 그렇긴 한데 난 오빠가 이렇게 장난을 칠 정도로 바뀐 것이 더 좋아."

 "호옹. 그러고 보니 나쁜 변화는 아니네. 우리 진지남이 드디어 바뀌려나?"

 그녀들의 말대로 하룬의 감정 폭은 보통 사람들만큼 확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각성으로 인한 결과 중 하나였다.

 "응. 그랬으면 좋겟어. 오빠는 다 좋은데 너무 재미가 없거든. 평생 같이 살려면 너무 심심할 거 같았는데……."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운 소리를 끝까지 하는 아리다.

 "헤헤헤. 그것도 그러네 자고로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성상은 능력이 있으면서도 편하고 유머 있는 남자니까."

 잘생긴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남녀가 만나 만남을 지속하려면 외모가 마음에 들어야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이 학문이니 기술 혹은 재물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상대방을 매혹시키는 다양한 매력에 대한 것이든 말이다.

 '능력이 있으면서 편하고 유머 있는 남자라. 하긴 지금까지의 난 내가 생각해도 유머와는 철벽을 쌓고 살았으니까.'

 하룬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신의 단점을 떠올렸고 자신이 정말 달라졌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작가가 말하길 유머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고 했었다.

 하룬은 벨과 아리는 물론 아즈만까지 끌어들여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전과는 달리 풍부해진 감정과 여유를 가지고 오랜만의 만남을 즐겼다.

 '이게 행복이구나.'

 하룬은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명예도 권력도 아니었어. 돈도 아니었고.'

 애정 결핍으로 불행했던 하룬에게는 다른 휴먼들이 일반적으로 꿈꾸는 것들이 목표가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날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어. 나머지들은 부가적인 것들일 뿐이야.'

 이제야 자신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하룬이지만 나중을 위해 지금은 할 일을 해야만 했기에 서둘러 바욘드로 돌아왔다. 그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비욘드의 일부터 해결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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