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DNA 가닥의 비밀
다시 살아난 하룬은 주변의 경물이 중간에 영혼만 깨어날
때 보았던 것과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크 프린스와의 혈투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린 옷과 방어
구를 새 것으로 갈아입은 하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
이 있었다.
'어, 그런데 이건 뭐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단겸은 검신과 자루 무두가 갖가지 보
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보석들을 어떻게 결합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아! 마지막 순간 뭔가 내 몸에 박혔었는데 이거였구나!'
하룬은 이미 한 번 깨어났던 터라 주변에 대한 관심은 없
었기에 보석으로 된 단검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보석 단검은 다순히 몸에 박힌 것에 더해 전신의 마나
를 불안하게 만들었기에 더 관심이 갔다.
"정보!"
오랜만에 게임의 명령어를 쓰니 어색한 생각이 들었다. 하
지만 그것도 잠시 눈앞에 떠오른 정보창을 보고 얼굴색이 몇
번이나 변했다.
극강의 혼
등급 : 유니크
내용 : 고 드워프 신장 알크켄이 다이아몬드와 수정 등 총 52가지의
보석을 비법으로 결합시켜 만든 단검이다. 보석의 반정령이 들
어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의식을 치르면 주인의 의지대로 움직
인다.
옵션1 : 힘+3,체력+5,집중+5
옵션2 : 목표의 원소 구성 자체를 파괴시키며 폭발을 일으켜 무엇이든
산산조각을 내 버린다.
"이, 이게 내 손에 이렇게 들어오다니!"
하룬은 격동에 차서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인지하지 못
하고 한참 동안 극강의 혼을 살폈다. 이제는 거의 포기했었
던 비도지존의 다섯 번째 유물을 이런 방식으로 얻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고 보니 바툰 현자의 말이 틀렸군.'
자신이 입수한 비도지존의 유물을 확인한 하룬은 제작 연
대나 제작자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암기 벨트와 화염의 단겸, 블리츠 대거 그리고 황혼의 킨드
잘은 모두 고대 라 제국의 명장인 부루마프의 후예가 제작했
지만 이 극강의 혼은 제작 연대나 제작자가 달랐던 것이다.
혹시나 싶어 어둠의 비수를 꺼내 정보를 확인했지만 아쉽
게도 여전히 아무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룬은 이
어둠의 비수가 비도지존의 유물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
'이제 총 다섯 자루를 찾았네. 비도지존의 마지막 유물인
대지의 숨결은 과연 어떤 아이템일까? 뭐, 나중엔 알 수 있
겠지.'
지금 그런 것들을 고민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녀석아, 네가 날 죽일 뻔했던 것은 아냐?"
하룬은 마치 단검이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다정하게 쓰
다듬으며 속삭였다. 자신의 몸에 박혔던 아이템이라서 그런
지 기존의 비수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위이이잉.
'어라!'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웅웅거리는 극강의 혼이었다.
'정말 반정령이 이속에 깃든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바툰 형자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나와 봐!"
호기심에 몇 번이나 반정령을 불러 보았지만 몇 번 진동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예상한 반응은 없었다.
"일단 네 친구들과 함께 있어. 이제 마지막 친구를 찾아
줄 테니까."
하룬은 극강의 혼을 암기 벨트에 꽂았다.
지지징.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기쁜 것일까? 극강의 혼이 다시 강
하게 진동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왜 이래? 반가워서 그런가?'
블리츠 대거를 비롯한 다른 네 자루의 유물도 함께 진동을
일으켰다.
하룬은 뭐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실망스
럽게도 진동 이외의 변화는 없었다. 다만 마음이 든든한 정
도랄까.
'그나저나 이 녀석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하룬의 시선이 향한 것은 어둠의 비수였다. 상대의 힘을
흡수하는 능력을 가진 어둠의 비수는 블리츠 대거에 못지않
은 강력한 무기였다.
'이 녀석이 흡수하는 것은 정혈精血과는 조금 다른 것 같
은데.......'
정보창을 열어도 아무 내용도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었다.
다시 태어난 기념으로 극강의 혼을 손에 넣은 하룬은 이곳
이 어디인지 다시 한 번 떠올리며 복수를 다집했다.
"기다려라, 다크 프린스!"
다음에 만나게 되면 제대로 자신의 힘을 보여 주리라.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하룬은 이곳이 어딘지 알기 위해 펠
을 소환했다. 하지만 펠은 아직도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는
지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렇다면.'
하룬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리운
이름들을 불렀다.
"나이아, 위시는, 라이피, 피닉스, 나와!"
스륵!
하룬이 이름을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 나타나는
4개의 형체!
"하룬!"
"친구!"
"하룬!"
"친구!"
나타난 것은 이전처럼 인간 같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령들이 아니라 하룬과 똑같은 인간의 향기를 뿜어내는 네
정령들이다. 그들은 하룬을 부르며 그의 몸을 안았다. 하룬
도 두 팔을 벌려 그들을 안았다.
나이아는 품에, 위신느는 등에 얼굴을 댔고 라이피와 피닉
스는 각각 긔의 옆구리를 안았다.
'아직 완전한 인간체는 아니군.'
하룬은 서로 겹치는 몸의 부위가 섞여 그 영상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조금은 아쉬웠다. 이들도 펠처럼 인간체로 진화했
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모두 고생했어! 모습들도 많이 달라졌네."
"호호! 이게 모두 하룬 덕분이에요. 순수석의 파편이 아니
었다면 아직도 각성하지 못했을 거예요."
진한 물빛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나이아의 함박웃음은 순
수하고 천진하면서도 묘한 색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젠 내가 하룬을 아프게 한 자들을 모두 박살 내 줄게.
나만 믿어!"
목덜미를 간질이는 위신느의 말에 고개를 돌려보내 이제
는 그의 눈까지 키가 큰 위신느가 특유의 바람 향기를 풍기
며 그에게 따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젠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기대하라고."
"후후후! 나 역시 이제는 자신 있어. 정령왕이 소환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힘을 합하면 소멸시킬 수 있다고."
이전에는 근육질의 전사처럼 보였던 라이피는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깊어진 눈빛은 물론 장중한 기도가 흘러나오는
라이피에게는 다른 정령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무게감이
전해졌다.
가장 뜨거운 불꽃이 백색이라고 했던가? 피닉스의 머리카
락은 밝게 빛나는 백색이었지만 눈동자 속에는 화염이 이글
거렸고 보기만 해도 오그라드는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넷 모두 이전에 비해서 몇 단계 이상 능력이 올라간 모양
이다. 전에는 그들의 능력시 손에 잡힐 듯 감지할 수 있었지
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닉스의 말대로 이들
넷이라면 정령왕과 비등할 정도로 큰 성장을 이룬 것이 분명
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누구 알아?"
"헤헤! 내가 알아, 이곳은 후크란 산맥 최남단이야."
전에도 세상을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위신느가 다행히
이곳을 알고 있었다.
"위신느, 이곳이 어딘지 알아?"
"당연히 알자. 이곳은 후크란 산맥의 최남단에 있는 태고
의 숲이야."
혹시나 싶어 물었는데 위신느는 이곳을 잘 알고 있었다.
후크란 산맥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과
는 꽤 많은 인연이 있는 곳이 아닌가.
머릿속으로 이곳의 위치를 떠올리던 하룬의 눈에 정광이
번뜩였다.
"그럼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혼돈의 땅인 건가?"
"응. 몬스터 랜드를 지나면 바로 혼돈의 땅이야. 혼돈의
땅을 둘러싸고있는 넓은 지역을 몬스터 랜드라고 불러."
위신느는 혼돈의 땅도 알고 있었다.
"가 본 적이 있는 거야?"
"응, 다른 정령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때 가 본
적이 있어."
"그곳은 어떤 곳이지?"
혼돈의 땅은 인간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마나가 뒤엉켜 있는 고시야. 다른 곳들은 마나가 성질별
로 결합하고 배척하는 등 안정을 이룬 상태지만 그곳은 무수
한 성질의 마나가 불안정한 상태로 퍼져 있는 곳이라 생물들
은 살 수 없는 곳이지. 나도 안쪽으로는 들어가 보지 못했어."
'혼돈이라는 것이 마나 이야기였구나.'
"위험한 곳이라는 뜻이야?"
"굉장히. 외곽 지역이라고는 해도 원래부터 그곳에 적응
하고 살아온 생명체가 아니면 그곳의 대기조차 감당할 수 없
을 정도로 위험해. 그곳에는 아무리 강한 마수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아마 신계나 마계의 존재들도 그곳에는 함
부로 들어갈 수 없을 거야."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제 세밀한 감정 표현까지 가능
할 정도로 각성한 위신느는 두려운 듯 몸을 잘게떨기까지
하며 말을 이었다.
"그곳 외곽에 사는 생명체들은 하나같이 위험해. 그 생물
들은 혼돈의 땅으로 들어오는 다른 존대들을 용납하지 않아.
워낙 척박하고 위험한 환경에 적응해서 오랫동안 살아온 터
라 그 능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거든. 그곳에도 정
령이 있는데 그 정령들마저 다른 곳과 달라. 정령계에는 없
는 다양한 정령들이 있는데, 능력은 상급 정령에 버금갈 정
도로 엄청나."
위신느는 얼굴을 찡그리며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능력이 일천할 때 아주 잠깐 들른 곳이라서 그런지 그 안에
어떤 생명체들이 존재하는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왜 거길 묻는데? 혹시 그곳에 가야 하는 거야?"
"응. 그곳에서 구해야 할 물건이 있어."
하룬의 말에 위신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술이며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는 뭔가 따져 보는 것 같은데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이미 완벽하진 않지만
인간체를 가진 상태이기에 제법 성숙한 모습이었지만 그 표
정만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좋아. 같이 가자. 하룬의 능력도 엄청나게 높아졌고 우리
넷도 각성을 했으니 위험하기는 하지만 괜찮을 거야."
"그래. 너희들과 함께라면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괜찮
을 거야."
하룬의 말에 네 정령은 뿌듯한 얼굴이 되어 미소를 지었
다. 오랫동안 각성을 하느라 만나지 못했떤 운명의 동반자가
자신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깊은 충실감을 경험하는 것
이다. 다른 정령이라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생소한 감정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럼 말만 해. 우린 준비가 되었으니까."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비록 펠은 없지만 녀석과는 조금 다
르게 정을 쌓아 온 네 친구들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좋아, 같이 가자! 그런데 지금 당자은 할 일이 있으니까
볼일부터 보고 돌아올게."
"호호. 빨리 갔다 와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네 정령은 하룬이 이방인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
은 아쉽게도 하룬이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세상까지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잘 다녀와, 친구. 우리는 우리가 쓸 수 있는 힘을 시험하
고 있을게."
남성체라서 그런지 그렇게 말해주는 라이피가 아주 든든
하게 여겨졌다.
"그럼 다녀올게."
일단 급한 것은 현실이었따. 자신 때문에 노심초사를 했을
벨과 아리를 생각하자 망설이지 않고 바로 로그아웃을 했다.
하룬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 그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아
즈만이었다.
-마스터!
-아! 아즈만, 오랜만이야.
반가움이 가득한 아즈만의 환대에 하룬은 진짜 현실에 돌
아온 느낌을 받았다.
'언제 이렇게 아즈만이 감정이 풍부해졌지?'
마치 눈물을 글썽이며 반기는 듯이 느껴졌던 것이다.
-모두들 마스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고마워, 모두들.
명색이 마스터가 되어 가지고 이렇게 걱정을 시키다니. 하
룬은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강해졌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했다.
-기지는 어때? 아, 그건 벨에게 물어보면 되겠다.
아즈만이 벨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테지만 그래도
녀석에게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
로 돌아와서 아즈만과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눈 것을 알면
삐칠지도 몰랐다.
-그런데 물어볼 것들이 많아. 내가 이상한 경험을 했거든.
하룬은 그렇게 서두를 꺼내고 재생 과정 중에 있었던 기억
의 희귀와 그 과정의 끝에서 경험했던 이상한 일들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마침내 각성을 하셨군요! 마스터의 뇌세포들이 급격하게
활성화되는 등 그런 징후들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감히 스캔
을 할 수 없어 확인을 못 했어요.
아즈만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심하게 떨렸다. 그녀가 얼마
나 기뻐하는지 생생하게 느길 수 있었다.
-각성이라니? 내가 각성을 했다고?
-네, 마스터. 마스터게서는 세 번째 DNA 가닥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유전정보를 발현시키는 데 성공하셨어요.
세 번째 DNA 가닥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휴먼은 물론이고 모든 동물의 DNA는 이중나선 구조를 가
지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가방 끈이 짧은 하룬도 익히 알고
있었다.
-현재 마스터께서는 다른 휴먼들과는 달리 삼중으로 된
DNA 구조를 가지고 계세요.
-엉? 설마 날 때부터 그랬다고?
그랬다면 유니온에서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능력 유무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는 필수이니 말이다.
-그건 아니고 마더 가이아의 안배가 있었고 마스터께서
비욘드의 세계에 접속하는 동안 스스로의 의지로 만든 변화
였어요.
아즈만은 언제 하룬이 세 번째 DNA 가닥을 만들었는지
알려 주었다.
첫 번째는 철갑 스네이크와 싸우다가 살아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고요의 땅에서였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라고
했다.
이 세 경우의 공통점은 죽다가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일련의 각성 과정을 통해 보통 휴먼들과
는 다른 유전자 구조를 가지게 되었단 말이네.
-네, 마스터.
-그럼 세 번째 DNA 가닥엔 어떤 의미가 담긴 거지?
-먼저 마스터가 아셔야 하는 것이 있어요.
-뭔데?
-현재의 휴먼들은 아득한 초 고대에 존재했던 인간종들로
부터 연원하는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기는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
으로는 고대에 존재하던 인간들과 종말 시대에 연원하는 휴
먼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마스터께서 적절한 보안 등급이 될 때 말
씀드리겠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종들은 진화로 인해 탄생한
것이 아니에요. 즉 원래부터 이 지구에 존했다는 말이지요.
점점 더 믿기 힘든 말이 아즈만에게서 흘러나왔다. 아즈만
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론이 맞는 것이다.
-정보 등급?
-마스터의 각성 정도에 따라서 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는
정보가 정해져 있거든요. 현재 마스터의 정보 등급은 S-3등
급이요.
정보 등급에 대한 자세한 것을 알고 싶어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럼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다른 행성에서 건너온 존재 정도로 이해할 테니 본론으로 넘
어가자, 아즈만.
-네, 마스터도 아시다시피 염색체 내에 존재하는 DNA는
이중나선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네 가지 종류의 당의 결합과
그 길이에 따라 일정한 유전정보를 RNA로 전사시켜 결국 리
보소옴으로 하여금 특정한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만들게 하
지요.
그 정도 상식은 하룬도 알고 있다. DNA가 인산과 당 그리
고 네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염기인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사이토신(C)의 결합에 따라 다양한 유전
정보를 표출된다.
이 네 염기의 결합과 길이에 따라 휴먼처럼 고등한 생물의
수많은 형질들까지도 빠짐없이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유전 현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염기의 결합이에요. 아
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사이토신과 결합을 하는데, 가끔 아
데닌의 자리에 구아닌에 들어오거나 사이토신의 자리에 티민
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 짝에 해당하는 염기도 바뀌게 되지
요. 그럼 본래의 유전정보와는 다른 새로운 성질의 정보가 탄
생하는데 그게 바로 돌연변이에요.
어쩐지 돌연번이라는 단어가 크게 느껴졌다.
-모든 생물 종은 강력한 위협을 느끼거나 감당하기 힘든
스테레스를 받는 환경이 되면 돌연변이는 현상이 현격하게 높
아지죠. 그럴 경우 돌연변이는 대게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
는 형질의 발현으로 발생합니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모든 생물들은 돌연변이 현상을 이
용하여 수시로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 왔던 것
이다.
하룬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 그게 맞는
지 여부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즈만의 설명을 잠자코 듣기
만 했다.
-이중나선 구조의 DNA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후대에
번할 수 있지만 삼중나선 구조가 된다면 돌연변이 확률이 크
게 증가할 뿐 아니라 새로 획득한 유전정보를 더 쉽고 빠르게
후대에 전할 수 있어요.
-그거야 당연하지.
-삼중나선 구조의 비밀은 단순히 돌연변이와 관련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에요. 일단 그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알려 드
릴 내용이 있어요.
아리는 이제야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주 아득한 초 고대에 지구에는 삼중나선 구조의 DNA
를 가진 인간종들이 나타난 적이 몇 번 있었어요. 아우리스인
과 메갈로스인, 도리아스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에요. 각기 다
른 항성계의 이주민드로붙어 유래한 그들은 현재의 휴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수준의 문명은 물론 초인적인 육체와
힘 그리고 높은 수준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수
천 년이 넘는 수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살아간느 동안 몇 차례
의 각성을 통해 새로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얻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살아갔어요.
실로 엄청난 이야기였다. 아득한 고대에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인간들이 살았다니 말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번영
을 누리며 살았따니 쉽게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의심했던 몇 가지는 확실하게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오파츠를 통해 초 고대에도 고도의 문명을 가
진 인간들이 존재했었다는 것은 가설이 아니라 사실인 거구
나. 그런데 성장에 필요한 것이 각성이라고?'
하룬은 각성이란 단어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각성이란 본
래 가지고 있었던 것을 어떤 계기로 발견하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닌가.
-그들은 종말 시대에도 이르지 못했던 엄청난 수준의 과
학 문명은 물론 높은 정신 능력을 이용한 정신문명까지 이룩
했어요. 그들 중 일부는 최고 수준의 각성을 통해 전생까지
알고 있었으며 그렇게 다양한 전생의 경험을 통해 생로병사
에 대해 현재의 휴먼들과는 달리 초연할 수 있었고, 고등한
정신 능력으로 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아갈 수 있었어요.
하룬은 지구에 그런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실존했다는 것
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아득한 전설을 듣는 기분이었다.
-지구의 존재했던 인간종 중에서는 유일하게 오랜 시간
동안 안정과 평화를 구가했던 그들이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피하지는 못했어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쟁 같은 것을 말하는 거야?
-네. 인간종에게 있어서 전쟁은 피할수 없는 운명이지요.
하지만 다른 원인들도 많았어요. 갑자기 궤도를 바꾼 소행성
과의 충동이나 극이도. 지축 이동과같은 일은 그들의 능력으
로도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위험이었어요.
-안타까운 일이네.
-네. 하지만 그들이 이룩한 것들은 모든 생물의 DNA에
남아 있어요.
-모든 생물의 DNA에?
믿을 수가 없었다. 초인들이 이룩한 고도의 문명에 대한
지식들이 모든 생물의 DNA에 담겨 있다니.
-모든 생물의 DNA에는 그 생물종 특유의 형질에 대한 정
보가 저장되어 후대로 전승되는데, 평소에는 사용되지 않는
수많은 정보들이 있어요. 그것들을 종말 시대의 과학자들은
불필요한 쓰레기 정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은 그 불필
요하다고 생각한 정보들이 바로 초고대의 인간들이 후대로
전한 것들로 파편의 형태로 흩어져 있는 거였어요.
-그럼 기본적으로 모든 생물들은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네, 다른 것은 종 특유의 형질이 우성으로 발현되어 특정
한 육체적 외양이나 지적 능력을 발현하게 된다는 거지요. 양
은 양일 수밖에 없으며 돼지는 돼지일 수밖에 없도록 말이죠.
-그런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아즈만의 이야
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었다.
-지구에 존재하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몇 번이나
멸종을 했어요.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멸종되었던
생물이 재출현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아즈만의 말은 그것이 세 번째 DNA 가닥 때문
이라는 거야?
-네, 마스터. 생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상황이 되
면 특별한 개체의 세포에서 세 번째 DNA 가닥이 생성되어 기
존의 이증나선 구조를 가지고 있는 DNA와 결합하여 보통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빈도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데 그결과, 그 생물은 같은 생물종과는 확연하게 다른 능력
이나 외양을 가지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렇게 새로 획득한
능력은 후대로 전할 수 있고요.
-그럼 설마 인간이 돼지나 소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탄
생할 수도 있다는 건가?
바퀴벌레와 같은 곤충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해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비약이긴 하지만 그
게 사실이에요. 물론 그런 경우에도 완벽히 다른 종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요.
'오, 맙소사!'
이성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감성적으로는 절
대로 인정하기 싫었다. 돼지에서 인간종이 탄생했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다른 동물에서 새로운 인간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적게
는 수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이 걸려요. 그 과정 중에는 동물
과 인간의 특징을 같이 가지고 있는 종족이 나타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늑대 이간이나 돼지 인간 혹은 유원인이에요.
문든 비욘드 때문에 읽었던 종말 시대의 환타지 소설에 나
오는 수인족獸人族이 떠올랐다.
-동물의 유전자로부터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을 선진先進
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존재했던 늑대 인간이나 설인雪人
이라고 불린 에티는 종말 시대까지 살아남았어요. 물론 반대
의 과정도 일어나요. 그것을 후진後進과정이라고 부르는데 인
간의 몸에서 수인족獸人族이 탄생하는 경우도 바로 그 과정의
증거지요.
그 말을 듣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럼 종말 시대의 신화 내용들 중 일부는 사실이었던 건
가?'
종말 시대에서도 고대에 속하는 시대에 존재했다고 알려
진 황제 복희는 범희 형상을 하고 있었고, 여황제 여화는 뱀
의 몸을 가진 여인이었다.
코원 유니온의 위치에 존재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신화
에도 그 조상의 곰이 인간으로 변한 여인이라고 했었다.
또한 다른 신화를 보면 동물의 몸과 인간의 몸을 동시에
가진 반인반수의 존재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럼 그런 존재들이 단순히 토템의 대상이 아니라 구전으
로 내려오는 자신들의 선조라서 신봉했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추론이 비약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인간이 가장 발달한 생명체인 거야?
-네, 맞아요.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 중 가장 적응력이
강하고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서 완성에 가까운 존재지요. 선
진 과정의 끝은 인간이랍니다.
하룬은 아즈만의 그 말에 자신이 인간이라는 데 상당한 자
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오르그는 어떤 존재지?
-오르그의 기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후진 과정과 배리
어 밖의 환경에 적응하려는 돌연변이가 맞물려 인간에서 탄
생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 실험의 결과에 의한 거지요.
-문제는 그 세 번째 DNA 가닥이군. 그게 돌연변이를 촉
진해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형질을 만들어 내거나 좀 더
효율적으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종의 생물을 만들
어 내는 거였어.
-네, 맞아요.
믿을 수 없기는 하지만 묘하게도 아즈만의 설명은 설득력
이 있었다.
-그럼 세 번째 DNA 가닥이 내 몸에 생성되어 있단 말이
지? 혹시 내 경우에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건가?
-마스터의 경우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삼중나선 구조로 결합되어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환경에 직
면해서 그것을 극복하게 되면 새로운 우성 형질을 발현하게
되는 거지요.
-그게 좋은 건가?
하룬은 뭔가 불안해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당연히 좋지요. 일례로 이미 마스터의 피부는 배리어 밖
의 환경에 적응해서 오르그들의 그것처럼 변해 있는 걸요.그
리고 그 피부에 대한 유전자는 후대에도 발현될 수 있도록 우
성이 되어 있어요.
처음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지만 자신의 경우까지 들
어 설명해 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휴먼들의 경우 배리어 밖에서는 체 30분을 견디지 못
하지만 하룬의 경우는 지금 상태로는 아주 오랫동안 생활해
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게 다 삼중나선 구조의 효과였다니.
-그럼 삼중나선 구조의 DNA가 돌연변이를 높은 빈도로
활성화시킨다는 점 외에 다른 비밀은 뭐야?
-세 번째 DNA 가닥이 생성되어 DNA가 삼중나선 구조를
가지게 되면 돌연변이를 발생시키는 것 말고도 특별한 일이
벌어져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DNA에는 지금까지 지구상
에 존재했던 인간종들이 획득한 갖가지 육체적 능력과 다양
하고 깊은 지식들이 들어 있어요. 그런 육체적 능력이나 지식
들이, 깨달음이나 적응의 형태로 발현이 되는 거지요.
-그럼 발명가들의 발명은?
-종말 시대에 이루어졌던 발명은, 대부분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었던 거지요. 아득한 고대에 존재했던 선대의 인간종
이 획득한 지식을 다시 발견한 것에 불과해요.
-으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없었다.
-그럼 세번째 DNA 가닥은 어떤 경우에 만들어지는 거지?
-세 번째 DNA 가닥은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생성될 수
있어요. 강한 의지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많은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희생하는 경우, 특별한 정신력을 가지고 태어
난 이가 이를 갈고닦아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게 만든 경우,
특별한 기감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의 몸에는 어느 순간 세 번
째 DNA 가닥이 만들어져 아득한 고대로부터 연원하는 새로
운 육체적 능력을 얻거나 지식을 깨달음의 형태로 알게 되는
거지요. 인간종의 문명은 그 흐름이 유사하기 때문에 일부 정
신 능력자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도
하지요. 그래서 종말 시대의 일부 초능력 연구자들은 DNA 속
에 숨겨진 정보를 아카식 레코드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네.
-그리고 세 번째 DNA 가닥은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
지고 있는데,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의 정신 능력
이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는 점이에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 주인의 상태에 따라 결합이 되
었다가 풀리기도 한다는 거군.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마스터의 경우에는 평소에도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 다른 거지요.
'에고! 머리야.'
죽다가 살아난 후에 머리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하
룬이지만 역시나 뭔가 깊이 들어가지 골치가 아팠다. 이건
머리가 좋고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관심과 열정의 문제인
것 같다.
-하지만 죽을 위기를 극복한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텐데
왜 유독 내 경우에는 DNA가 삼중나선 구조가 된거지?
-핵심을 찾으셨네요.
아즈만은 감탄한 듯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스터께서 쉽게 세 번째 DNA 가닥을 생성시킬 수 있었
던 이유는 마더 가이아의 개입 덕분이에요. 그분과 마더 이레
아는 많은 인공수정체들에게 은밀하게 손을 써 두셨어요.
-어떻게 개입을 했다는 거지?
-아무리 초월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인위적으로 세 번째
DNA 가닥을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세
번째 DNA 가닥이 생성되는 조건 상황에 보다 민감하게 만들
수는 있지요. 또한 강인한 정신력이라든가 아니면 감정 기복
이 거의 없는 성격을 통해 위기를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도
록 만드는 거지요.
-그럼 내 사회성 결여된 무심한 성격이......?
-저는 그 점이 마더 가이아의 개입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
각해요. 사회성이 없으면 받은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해소하
기 힘들지요. 그 경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일 확률이 높아져
요. 또한 감정이 풍부하면 아무래도 위기를 극복하는 데 곤란
하니까요. 마더 가이아와 마더 이레아는 오염되고 위험한 외
계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종의 탄생의 위해
감정 부분에 해당하는 유전정보를 어느 정도 조작하셨을 거
예요.
-......
하룬은 그 어떤 말도 할수가 없었다.
'단순한 인공수정도 아니고 유전자 통제까지 당했단 말
인가?'
아즈만이 추측이라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하룬은 자신의
탄생에 대한 배경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분노를 위
시해서 형용하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떠올
랐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즈만은 하룬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
라도 하는 듯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 벨이 오고 있어요.
벨이 자신이 현실로 돌아온 것을 알고 돌풍 기지에서 중앙
기지로 오는 모양이다.
'나중에 생각하자!'
확실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고 자신 역시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기에 하룬은 그 문제를 쉽게 미룰 수 있었다. 물론
무심한 그의 성격도 한몫했지만.
-그럼 우리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아즈만, 많은 것
들을 알려 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마스터는 제 모든 것이랍니다.
아즈만은 묘한 감정이 담긴 말을 남기고 연결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