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0화. 펠의 각성 (251/278)

 펠의 각성 

"산책 좀 하고 오겠습니다."

"가이 가시죠."

일찌감치 성을 벗어나려고 했더니 역시나 딜런이 따라붙었다.

이럴 때는 뭔가 다른 일이 더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상책이다. 하룬이 은밀한 일을 처리할 때는 늘 혼자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뇨. 머리가 복잡해서 잠시 생각 좀 하려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뭔가 일이 생기면 통신기로 바로 연락하십시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것까지는 말릴 수가 없었다. 딜런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마츠루트 요새는 후퇴한 가즈 로드 특 병력들과 날로 늘어나는 이방인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수시로 사건 사고가 나고 있었다.

딜런의 걱정스러운 눈을 뒤로하고 요새를 벗어난 하룬은 매신저 워킹을 펼치며 요새 주변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사색을 하려면 가볍게 움직이면서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던 것이다.

요새 주변은 가즈 로드가 집결하고 주둔하기 위해서 나무를 모두 베어 버렸기 때문에 지형의 굴곡이 조금 심하기는했지만 시야가 뚫려 있어 걷기에 나쁘지 않았다.

'고스트가 골든 로드의 특수 조직인 것은 확실한데 어떻게 처리를 한다?'

하룬은 상인 연합의 대표인 펄세크란의 의뢰를 받아들일 생각을 굳혔다. 동풍 상단에도 엄청난 피해가 난 이상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분명히 돌풍 상단의 뒤에 돌풍 용병대가 잇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차별적인 살상과 강도짓을 한 자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상행을 알고 습격을 한 걸까?'

잠시 생각을 해 보니 의외로 해답이 쉽게 나왔다. 골든딜이 장악한 헤로파 상단은 지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니 제국 정보 길드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잇을 터였다. 그러니 어디에서 상행이 출발하고 어디를 경유하는지 모를 리가 없다.

'문제는 그자들의 행사가 신출귀몰하다는 점이야.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세 제국은 기사단까지 동원했고 함정까지 파면서 고스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피할 경우는 피했고 한번 습격을 하면 사라지기까지 채 10분이 넘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니 놈들을 쫓는 자들은 그야말로 환장을 할 노릇인 것이다.

'뭔가 특별한 이동 수단이 있는 건 확실한데…….'

하룬의 추측이 맞는다면 골든 로드는 다크니스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일 터니 놈들이 보유한 고대 마법까지 손에 넣었을 것이다. 그중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수의 인원이 텔레포트할 마법 수단이 있을 것이다.

'함정을 파야 하나?'

현재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상행에 포함되어 같이 이동을 하면서 고스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 현재로써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는 짧은 시간에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없다는 거지.'

몇 번은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놈들도 몸을 사릴 것이고 그 후에는 또다시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다.

'더구나 놈들의 무력이 장난이 아니니…….'

소드 마스터가 포함된 호위대까지 전멸했다니 일단 놈들에게 2명 이상의 소드 마스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또한 거의 동일한 시간대에 세 곳이 동시에 습격을 받은 적도 있다니 적어도 세 조 이상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아니, 세 제국을 무대로 수백 수천 건을 저질렀으니 적어도 스무 개 이상의 조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각 도시나 영지 병력과의 연계는 어떨까?'

잠시 그 방안을 생각하던 하룬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는 이미 사용해 봤을 것이다.

하룬은 새벽부터 해가 하늘 높이 뜰 때까지 메신져 워킹 스킬을 펼치며 생각을 했지만 특별한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무래도 대원들과 상의를 해 봐야겠군.'

하룬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오랜만에 스킬을 써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하네.'

하룬이 멈춘 곳은 요새와 꽤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련을 한 지도 꽤 오래되는 것 같다. 아무해도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 보니 신경 쓸 일이 많아진 것이다.

'내가 이래서 그런 자리엔 앉기 싫었다니까.'

현실이건 여기건 상황은 자신에게 앞장을 서라고 하지만 하룬은 그게 싫었다. 자신은 성장 과정이 남달라서 그런지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싫었다. 무리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자유를 누리면서 필요할 때는 뒤에서 말없이 도움을 주는 것이 그의 성격에 꼭 맞았다.

마왕의 눈도 그렇고 자신이 가진 것들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상황이라 수련을 위한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지만 상황은 그로 하여금 재미없는 일을 하게끔 만들었다.

하룬이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요새 정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형!

-…….

하룬은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뙤약볕이 내리쬘 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형, 형, 나 펠이야!

-아! 왜?

펠이 먼저 의념을 보내오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해냈어! 드디어 해냈다고!

-뭘?

-드디어 각성을 했다고!

-정말? 당장 나와 봐!

하룬은 펠을 소환했다.

"어디?"

외모부터 살펴보았다.

"키가 조금 컸네. 얼굴도 조금은 갸름해졌고."

각성을 했다고 보기에는 큰 변화가 아니었기에 흥분했던 마음이 빠르게 식었다.

"정말 각성을 한 거야?"

"응. 형이 구해 준 순수석의 파편 덕분이야."

순수석의 파편이라면 현자인 바툰이 선물로 준 것이다. 받은 지 이제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그사이 그 힘을 흡수했다니 정말로 놀랍다.

"순수석의 마나를 모두 흡수한 거야?"

"라니, 한 10분의 1 정도."

그 정도로 녀석이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각성을 이끌어 냈다니 순수석이야말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마왕의 파편을 모두 소진한 다크니스가 혼돈의 땅으로 파견대를 보냈을 것이다.

"그래, 어떤 힘을 쓸 수 있는데?"

"일단 이제부터 난 이 모습으로 현신한 채 지낼 수 있게 되었어."

"완전한 인간체인 거야?"

"응, 형아. 형이랑 똑같이 먹고 자고 싸는 완벽한 인간체야. 물론 원할 때는 언제든 정령체로 바꿀 수도 있지만."

"와아! 정말 축하해!"

"헤헤헤! 너무 신 나!"

그건 정말 다행이다. 하룬은 펠이 얼마나 물질계에서 지내고 싶어 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녀석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녀석의 외모에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이상했다. 성정도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자신이 경험한 각성과는 좀 다른 듯했다.

하룬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것을 본 펠은 그가 자신의 말을 의심한다고 생각했는지 입술을 앞으로 쭉 밀어내며 인상을 썼다.

"우씨! 정말이라니까. 이제는 내내 밖에 나와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최상급 정령의 힘을 쓸 수 있다니까."

"그래?"

'최상급 정령의 능력이면 어느 정도지?'

알지 못하니 자연히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하룬이다.

펠은 아무래도 하룬이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느껴지자 화가 났다.

"잘 보라고. 토네이도!"

녀석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뙤약볕으로 인해 일렁이던 아지랑이가 순식간에 열풍으로 바뀌더니 돌기 시작했다. 작은 토네이도는 근처의 대기를 빠르게 흡수하며 몸집을 키웠고 금세 엄청난 규모의 토네이도로 변했다.

토네이도는 조금 멀리 떨어진 암석 지대로 향했는데 그곳은 요새를 짓기 위한 석재를 공급하던 채석장이 있었다. 지금은 버려졌지만 아직도 다양한 크기의 바위들이 근처에 널려 있었다.

휘이익! 휘리릭!

빠바박! 빠바박!

토네이도는 무섭게 회전을 하며 채석장을 지나쳤는데 그 많은 바위들이 보이는 것도 잠시, 토네이도가 산의 경사면을 스치고 지나갔다.

"헙!"

하룬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바위들을 파내던 산의 한 경사면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토네이도 속에서 회전하고 있던 바위들이 산의 한 경사면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붉은 속살을 드러낸 경사면에는 거대한 바위도, 아름드리나무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저 정도면 소드 마스터도 제대로 피할 수 없다!'

물론 소드 마스터라면 토네이도를 피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제대로 그 범위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어때?"

뻐기는 듯 어깨를 들썩이는 펠이다.

"대단하다! 근데 일반적인 정령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반정령을 포함한 우리 에센셜 정령은 정령계의 정령을 소환할 수도 있지만 이미지로 떠올리는 대로 원하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어. 형도 그렇잖아."

'하긴.'

하룬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친구가 된 존재들은 물질계에 존재하는 정령들이기에 정령계의 정령들과는 그 힘을 발휘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나저나 이제는 우리 펠이 형보다 더 셀지도 모르겠네."

"헤헤! 그 정도는 아니야. 아직 내 힘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인걸. 앞으로 어떻게 사용할지 부단히 수련을 해야 해."

"축하해, 펠. 이젠 형이랑 같이 다녀도 되겠다. 그 정도 능력은 되는 거지?"

"그럼 당연하지. 그래서 무지 좋아!"

녀석이 각성을 하고 싶어 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물질계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녀석은 실감이 나는지 깡충거리며 하룬 주위를 뛰어다녔다.

'후후! 저러는 걸 보면 영락없이 애라니까.'

동생으로 삼겠다고 오래전에 작정을 해서인지 지금의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은 하룬이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가만! 최상급 정령에 해당하는 힘 말고도 공간 이동에 대한 능력까지 얻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하룬은 자신의 발로 대지를 밟으며 물질계의 느낌을 생생하게 즐기는 펠을 잠시 보다가 녀석이 가까이 왔을 때 궁금한 것을 물었다.

"펠, 그때 말했던 공간 이동에 대한 능력은 어떻게 된거야?"

"응. 그거, 이젠 가능해. 차원이나 계를 넘어갈 수는 없지만 좌표나 이미지만 있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어."

"이미지?"

"좌표가 있으면 당연히 가능하고 일반 마법처럼 좌표를 알지 못해도 같이 이동하는 사람이 떠올리는 장소에 대한 영상이나 많이 알려진 지명 등의 약간의 단서만으로도 가능해. 지금 내 능력으로는 한 번에 10명까지는 같이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어. 물론 한 번 더 각성을 한다면 형이 사는 세계까지 갈 수 있고."

그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텔레포트나 워프처럼 마법진을 그리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기동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좌표가 없이도 가능하다니 더욱더 대단하다.

"이제 좀 실감이 나는구나. 정말 축하한다, 펠."

"헤헤! 이젠 정말 형이랑 같이 다닐 수 있게 되었어."

펠은 정말로 신이 나는지 시뻘개진 얼굴로 깡충거리며 하룬 곁을 뛰어다니며 좋아하고 있었다.

'정말 잘됐어!'

하룬도 펠의 각성이 기뻤다. 녀석이야 자신과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 자신의 능력이 높아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걸 떠나 하나의 인격체로서 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하룬은 기쁨에 겨워 팔짝거리는 펠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눈빛을 밝혔다.

'호오! 이건 정말 멋진 계획인걸.'

다크니스는 물론 제국들을 제멋대로 유린하고 있는 고스트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갈겨 줄 적절한 계획이 떠올랐다. 그만큼 펠의 각성은 절묘한 때 이루어진 것이다.

"하하하! 네가 아주 복덩이다!"

"헤헤! 내가 좀 그래."

어느새 하룬의 얼굴에도 펠의 얼굴만큼 커다란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일단 네 공간 이동 능력을 시험해 보자."

"좋아. 어디든지."

펠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던 하룬은 코엠성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세류를 만날 일이 있었던 것이다.

하룬은 통신기를 작동시켰다.

-하룬? 하룬이구나!

"하하하. 오랜만이네."

-바쁜 사람이 어쩐 일이야?

"보고 싶어서."

-하룬이 농담을 다 하고 웬일이래? 그리고 그런 농담 자꾸 하면 나 진짜로 생각하니까 자제하라고.

"하하! 농담 아닌데. 그런데 지금 코엠성에 있는 거야?"

-응.

"좌표 좀 불러 봐."

-진짜 지금 오려고?

세류는 하룬이 방문한다는 말에 무척이나 기뻐하며 바로 코엠섬의 중앙 광장의 좌표를 불러 주었다.

"코엠성이라고. 좋아! 가자, 형!"

"어떻게 하면 되는데?"

"내 손만 잡으라고."

하룬은 펠의 말대로 손을 잡았다.

휘리링!

갑자기 펠의 몸이 빛나더니 눈앞이 휘황해지고 자신의 몸이 기체로 변한 듯 무게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강렬한 흡입력으로 끌어당기는 빛으로 가득한 통로로 들어가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쿠웅! 쿠웅!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하룬은 자신이 요새와는 다른 한 성의 중앙 광장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펠은 자신의 손을 잡은 상태에서 거의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헤헤! 도……착했어!"

어지간히 힘이 들었던지 그 말을 하고는 눈을 감는 펠의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 쓰는 힘에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쓰러지는 펠의 작은 몸을 안은 하룬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코엠성의 전경을 둘러보았다.

코엠성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산악 부족의 성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었고 코엠성에서 용병들과 마법사들을 대대적으로 모집하고 있기에 마츠루트 요새 다음으로 사람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펠처험 어린아이는 절대적으로 드물었기에 어린아이을 안은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은 꽤 많았지만 적대적이거나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펠을 안은 하룬은 광장 한쪽의 큰 건물에 경비병들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성주가 계신 곳이오. 물러나시오."

역시 생각대로였다.

"돌풍 용병대의 하룬이라고 합니다. 세류 길드장에게 통보해 주시겠소?"

"헉! 정말이군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병은 언제 그를 본 적이 있었는지 잠시 살피더니 하룬임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안으로 달려갔다.

곧 세류가 달려 나왔다.

"어서 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

하룬을 반기는 세류는 뭔가 걱정거리가 많은 듯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룬은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하는 그녀의 얼굴은 진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집무실로 들어간 하룬은 한쪽에 있는 카우치에 펠을 누이고 세류와 가벼운 포옹으로 오랜만의 해후를 나누었다.

"얘는 누구야?"

"내 동생. 이름은 펠이야. 사정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맡겼는데 일이 생겨 이제는 내가 직접 데리고 다니려고."

"헤! 거짓말! 이렇게 예쁜 아이가 동생이라고?"

"이거 왜 이래? 나도 어릴 때 고생만 하지 않았으면 꽃미남이 되었을 거라고."

"피이! 그래도 그렇게 정색을 하니까 내가 봐주지. 아무튼 이 아이 정말 너무 귀엽다."

세류는 한 번에 너무 많은 힘을 써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펠을 보며 연방 감탄했다. 그렇게 잠시 펠에게 관심을 주던 세류가 하룬을 창가 쪽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정말 무슨 일이야?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건 아닌 줄 아니니까 흰소리는 하지 말고."

"지난번에 내가 물었던 것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서."

하룬의 말에 세류가 얼굴을 굳혔다. 마치 피하고 싶었던 것을 마주한 것처럼 불편한 얼굴이었다.

"그건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내가 품고 있는 대의大意에는 충분히 공감을 하지만 문제는 실행력이잖아. 게다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하룬과 네가 같은 목표를 품고 있다고는 해도 나와는 거리가 있고."

"아니, 같아!"

하룬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녀에게는 진실을 털어놓기로 했다. 명색이 친구라면서 그런 것까지 숨기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같다고? 뭐가?"

"내가 바로 그 하룬이라고."

"……."

하룬의 말에 세류는 큰 눈을 부릅뜨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가 한 말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일까?

"나 사실 너와 똑같은 이방인이야."

"마, 말도 안 돼! 너…… 여기 주민이잖아!"

알로 꺼낼 문제가 아니엇지만 하룬이 유저들과는 성기를 포함한 완전한 육체라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항이다.

"아니야.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나 너와 같은 유저가 맞아."

"정말? 정말이야? 그럼 지난번에 만난 것이 바로 너였다고?"

"응."

그러고 보니 이마와 얼굴 대부분을 드러낸 하룬의 외모는 지난번 현실에서 만난 그와 비슷했다. 외모 보정을 생각하면 동일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룬은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진 세류를 말없이 지켜만 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휴우!"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세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하던 눈빛이 맑아진 것을 보니 뭔가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좋아! 믿지. 믿지 못하면 친구 자격도 없으니까. 하지만 언제고 그 사정이란 거 꼭 말해 줘야 해."

세류는 하룬이 자신과 같은 유저라는 사실에 마음이 떨렸다. 어설픈 사랑을 한 후 얻은 첫 친구가 다른 세상의 주민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살고 잇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흥분되고 좋았다.

"알았어. 이해해 주어서 고마워!"

친구란 이름으로 궁금한 점들이 엄청날 텐데도 받아들이는 세류가 고마웠다.

"정말 마음을 정한 거야?"

"그래. 휴먼의 자유로운 의지를 억압하고 특별한 자들에의해 조종되는 세상은 나도 끔찍하니까."

"어려운 선택을 해 주어서 고맙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이미 노블이라고 불리는 기득권층에 합류한 세류였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지금 당장 뭘 하라는 건 아니야. 이제부터 같이 의논하면서 할 일을 결정하면 되니까.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은 어느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논의를 거쳐 다수가 행복한 그런 곳이니까."

세류는 힘든 결정을 한 만큼 불안감도 컸지만 하룬의 말에 적잖이 마음이 풀렸다. 하룬의 독단이 아니라 그 뜻에 동감한 사람들이 논의를 해서 앞으로 할 일을 결정한다는 말에 하룬이 꿈꾸는 세상의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하룬과 세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장차 꿈꾸는 세산의 청사진부터 시작해서 세상을 암중에 장악한 세 세력을 상대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사이 펠은 기운을 차렸다. 세류는 잠시 펠의 사랑스러움에 매료되어 녀석과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지금은 하룬과의 이야기가 중요했기에 사람을 불러 펠에게 길드 건물과 코엠성을 안내하도록 했다.

세류는 현실에서 오르그들이 생산한 식량 자원들과 천연약품들 그리고 아우터들의 생산품을 구입하는 한편 돌풍과 아우터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들을 구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예힘을 비롯해서 자신들과 뜻을 함께할 동지들을 찾고 규합하는 중요한 일을 맡기로 했다. 재력과 인맥 등 그녀가 가진 능력이라면 머지않아 많은 동조자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룬은 앞으로 고스트를 상대할 팀의 본부를 코엠성으로 하여 안전을 도모하는 한편 앞으로 돌풍 용병대 전력의 상당부분을 이곳에 주둔하기로 약속했다.

여유가 있다면 세류와 개인적인 이야기며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어비스 용병단도 만나야 했지만 지금은 펠의 공간 이동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온 것이니 다음을 기약하고 서둘러 요새로 귀환하기로 했다.

코엠성을 방문했던 하룬이 펠과 함께 마츠루트 요새의 숙소에 도착하자 대원들은 모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님!"

잠시 요새 밖을 나갔다 온 것에 불과하지만 티노는 걱정을 했었는지 애가 닳은 얼굴로 그를 반겼다.

"그런데 그 꼬마는 누굽니까?"

"난 펠, 하룬 형아 동생이에요."

펠은 하룬이 대답하기에 앞서 자신을 소개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오밀조밀한 눈 코 입이 만들어 내는 외모는 그야말로 극미極美에 가까웠고 피부도 뽀얀 것이 광채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 대장님에게 이런 사랑스러운 동생이 있었어요? 펠이라고 했니?"

또래가 없어 무척 심심해하던 레미가 덥석 펠을 끌어안으며 하룬에게 물었다.

"맞아. 대장님에게는 벨이라는 여동생과 펠이라는 남동생이 있어."

어제 하룬으로부터 가족 관계를 들었던 딜런도 흥미로운 눈빛으로 레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는 펠을 보며 대답했다.

"세상에. 우리 대장님에게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잘생긴 동생이 있었을까?"

"허험. 레미,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숙소에 들어오면서부터 제대로 말을 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던 하룬이 부러 성이 난 척을 했지만 레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 외모에 있어서는 차이가 좀 많이 나기는 하네요. 이리 오렴. 어쩜 이렇게 예쁠까? 나도 너처럼 사랑스러운 남자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도 그래요. 평범한 우리 대장에게 저런 동생이 잇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요."

펠이 하룬의 손을 붙잡고 들어올 때부터 눈을 반짝였던 도네이스가 레미의 품에서 막 벗어난 펠을 끌어안았다.

"허어, 참!"

하룬도 자신이 잘생긴 편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펠과 이렇게 비교과 되니 허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펠은 저 나이에 벌써 성숙한 여인들의 품에서 여체를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이 있다고 하시더니 동생을 데려오려고 하셨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도네이스가 한 아들 이야기에 조금은 씁쓸한 얼굴이 된 티노가 하룬에게 물었다.

"그동안 아는 친구에게 펠을 맡겨 두었는데 사정이 좀 안 좋아져 더 이상은 못 맡기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겁니다."

"그런데 펠도 정령사입니까?"

유심히 펠을 지켜보던 타니엘라의 눈빛이 번뜩였다. 역시 7서클에 오른 대마도사인지라 정령의 향기를 맡았던 것이다.

"네. 정령술로만 따지면 저보다 윗줄입니다. 또 다른 능력도 있지만 같이 동행해도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하룬의 말에 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하룬이 중급 정령사로 알고 있는 대원들은 그보다 높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도대체 몇 살이기에?"

하룬도 펠의 나이는 모른다. 아마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아득한 초고대부터 존재했으니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열 살이에요!"

하룬이 주저하는 사이에 도네이스의 품을 겨우 벗어난 펠이 소리쳤다. 자신의 나이를 묻는 질문을 들은 모양이다.

"열 살에 상급 정령사라니! 엘프도 아니고 도대체가 대장님의 가족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니, 대장님은 모르겠지만 펠의 외모를 보면 엘프의 피가 섞인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그런가? 맞아! 저 정도 미모면 엘프의 피가 섞인 것이 분명해."

타니엘라와 미루스는 알아서 하룬의 가계家系를 각색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여인의 품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펠은 딜런과 티노의 앞으로 향했다.

"헤헤! 딜런 경, 반가워요. 형에게 듣건 것처럼 정말 멋있네요. 티노 부대장님이시죠? 툭하면 밖으로 도는 형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형이 늘 고마워하더라고요. 앞으로 저도 잘 부탁드려요. 타니엘라 경이시네요. 정말 이야기에서 나오는 대마법사처럼 인자라고 멋있게 생기셨어요. 미루스 경이시네요.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도네이스 누나는 정말 형에게 들은 것처럼 현숙하군요. 빨리 조카를 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안 될까요? 레미 누나는 딱 내 타입이야. 내가 클 때까지 애인 만들지 말고 기다려 주면 안 될까?"

펠은 무서운 사교성으로 기존 대원들과 거리를 좁혔다. 하룬이 소개를 하기도 전에 대원들을 모두 알아보고 친근하게 인사를 하니 대원들도 처음에는 어리벙벙하다가 이내 녀석의 친근함에 미소를 짓고 말았다.

펠은 거기에서 그치치 않고 산악 부족 출신 고문들에게도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었다. 대장에게 이렇게 어린 남동생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고문들은 손자뻘인 펠이 친근하게 다가와 인가를 하자 어쩔 줄 모르고 좋아했다.

그래도 펠을 가장 반긴 것은 두 여자였다.

"어머! 어머! 너무 귀여워!"

"어떳해?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여자들은 처음 보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펠에게 껌뻑 넘어갔다. 녀석이 가진 사랑스럽고 귀여운 얼굴과 애교 그리고 이전부터 알아 왔던 것처럼 친숙하게 하는 행동에 아무런 거리감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칫! 네가 크려면 아직도 한참인데 나더러 기다리라고. 그러지 말고 그냥 내 동생 해라."

레미의 반짝이는 눈빛을 본 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불안한 예상처럼 그의 몸이 레미의 품에 꽉 안겼다.

"아악! 제발 풀어 줘. 수, 숨을 못 쉬겠어!"

"호호! 너무 귀여워!"

펠은 레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두 팔을 버둥겨렷지만 그녀는 한동안 풀어 줄 생각을 안 했다. 버둥거리는 것조차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정말 친동생입니까?"

"처음 보는데도 아주 오래전부터 봐 왔던 것 같군요."

딜런을 포함한 고문들은 손자를 보는 것처럼 펠을 마음에 들어 했다. 처음 만나는 데도 이전부터 하룬을 통해 자신들을 알았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그 행동이 열 살의 나이에 꼭 맞으니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하십니다, 대장."

"네?"

"이런 동생이 있다는 걸 비밀로 하다니요. 얘길 들어 보면 우리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말을 해 준 모양인데 우린 딜런을 제외하고는 전혀 모르고 있었잖습니까."

"그, 그건."

딜런을 비롯한 대원들은 어제에 이어 연이어 크게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늘 신비에 차있던 대장의 비밀이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아 어느 면에서는 크게 기뻐하고 있었다.

다른 네 정령과는 달리 하룬의 오감을 통해 모든 경험을 공유한 펠이기에 모든 대원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하룬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당장 대원들의 마스코트가 되어 버렸다.

펠은 특유의 친화력과 수다로 조용하기만 했던 용병대의 분위기를 단번에 시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원들은 그런 변화를 무척 반갑게 받아들였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밝은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펠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운 점심시간을 보낸 후 하룬은 대원들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다 함께 의논해야 할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하룬은 전날 받았던 의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레미를 통해 현재 데빌 산맥과 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들었던 고문들은 의뢰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전 두 의뢰를 모두 받아들일 작정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무히가 아닐까요?"

평소에는 하룬의 말에 절대로 토를 달지 않던 딜런이 우려를 표명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용병대의 능력이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특히 고스트에 대한 건은 우리 용병대가 단독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어렵습니다. 저들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의뢰를 받아들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티노마저 반대를 했다.

"여러분들이 우려하는 건 잘 알겠습니다. 일단 제 말을 먼저 들어 보시지요."

하룬은 대원들에게 골든 로드와 고스트의 정체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풀어 놓았다. 추측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는 하지만 하룬의 판단력을 굳게 믿는 대원들은 심하게 놀라기는 했지만 그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룬이 자신만만해하자 대원들의 우려도 한풀 꺾였다.

"사실 이벨린과는 특별한 방법으로 안부를 확인했습니다. 다만 그녀가 갇혀 있는 장소를 본인도 알지 못하기에 아직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두 가지 의뢰 중 하나는 장소만 알면 당장이라도 작전이 가능하니 대원들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고스트의 경우 놈들을 전담할 특별한 팀을 꾸릴 생각입니다."

"특별한 팀이라면 어떤 겁니까?"

"소수 정예로 놈들을 상대할 생각입니다."

하룬은 잔뜩 기대하고 있는 아슈인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을 했다.

"제국 정보 길드와 타이푼 정보 길드에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고스트는 최소 10명에서 최대 20명의 인원입니다. 그중 소드 마스터는 최소 1명 이상이고 마법사도 6서클 이상이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따라서 그들을 상대할 팀은 소드 마스터 2명 이상, 6서클 마도사 2명 이상으로 구성할 겁니다. 물론 저와 펠은 당연히 들어갈 거고요."

당장 아슈인이 나섰다.

"아닙니다. 이제까지 크게 한 일이 없으니 이번에는 제가 힘을 써 보겠습니다."

"어허! 다들 이번에는 내게 양보하시게. 내 이번에 익힌 공명 마법을 제대로 시험해 볼 참이니까."

금세 회의장은 시끄러워졌다. 다들 자신이 팀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동은 어떻게 할 겁니까? 놈들이 어느 곳에서 습격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처리를 했다가는 그 의뢰를 해결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역시 타니엘라와 딜런이다. 두 사람은 다른 고문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사이에 의뢰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던 것이다.

"그 상행이 있는 위치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할 방법이 있습니다."

"네?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타니엘라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네. 가능합니다. 그리고 제가 예상하기론 고스트는 최대 50개의 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모두를 처리하는 건 어렵겠지만 놈들이 제대로 반응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처리를 하고 나머지는 놈들의 근거지를 찾아 일시에 쓸어버릴 참입니다."

"그, 그게 가능하다면……."

걱정하던 대원들의 얼굴이 한결 풀렸다.

"그럼 고스트를 상대할 팀을 하나 더 늘리면 어떨까요? 어차피 미노와 수니의 능력이라면 공중에서 상행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으니 한 팀을 더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요."

타니엘라의 의견에 다들 좋은 생각이라며 반겼다. 이 자리에 있는 대원들은 모두 작전에서 빠질 생각이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고스트를 상대할 팀의 이름은 스페셜 포스라 칭하고 두 팀을 두겠습니다. 한 팀은 상인들이 보낸 신호에 의해 움직이고 다른 한 팀은 미노와 수니를 타고 직접 상행을 미행하여 적들을 상대하기로 하겠습니다."

즉흥적인 결정이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이 나온 것이다. 다만 걱정은 두 팀으로 고스트를 상대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그때 밖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펠과 딜런의 눈길이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니 하룬과 거의 동시에 느낀 모양이다.

"손님이 온 모양이군요. 자세한 것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티노 부대장, 고스트 건 때문에 상인 연합에서 오신 손님이니 알아서 잘 이야기하세요."

"알겠습니다."

티노는 예전처럼 당황해하지 않았다. 그의 침착한 얼굴에서는 이제 명실공히 돌풍 용병대의 부대장으로서의 관록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손님은 상인 연합의 펄세크란만이 아니었다. 파이린 제국의 정보국장이 후로트 역시 같이 왔던 것이다. 그들이 각기 3명의 호위대와 함께 방문했다.

하룬은 펄세이란을 티노 부대장에게 따로 접견하도록 하고 후로트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어제 폐하께 보고를 드렸더니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돌풍 용병대가 움직일 테니 곧 황녀 전하가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시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어제완 달리 덕담부터 늘어놓는 후로트였다.

"믿으십시오. 밝힐 수는 없지만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하룬은 거래를 위해서는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지만 황제의 부정父情과 후로트의 마음을 고려해서 약간의 정보를 공개했다.

"정말입니까? 벌써 전하를 찾은 겁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후로트였다.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비선을 통해 의심이 가는 단체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들의 행사를 주시하던 이들로부터 최근의 정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 어느 놈들입니까? 그런 무도한 짓을 한 자들이 대체 어떤 놈들입니까?"

하룬의 말을 들은 후로트는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아직은 추측이기에 원래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벨린 전하를 생각하는 충심을 생각해서 말씀드리지요. 사실 그들은 골든 로드라는 단체입니다. 이벨린 전하처럼 이방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단체로……."

하룬은 미리 결심한 대로 골든 로드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털어놓았다.

다크니스에 쏠려 있는 세 제국의 관심을 분산시킴과 동시에 앞으로 골든 로드의 행보를 제한할 필요성을 강하게 인지한 하룬은 고스트의 뒤에 그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하룬의 말을 들은 후로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하룬이 말해 준 이야기와 자신이 가진 정보와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그의 눈빛이 아주 강렬해졌다. 뭔가를 깨달은 모양이다.

"하룬 대장의 추측이 실로 명쾌합니다. 어쩐지 큰 그림조차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두 가지 정보를 끼워 맞추자 실종자들의 뭊제와 상계에 대한 내용이 명확하게 파악되는군요. 역시 들은 대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군요. 감탄했습니다."

후로트는 크게 감명을 받은 얼굴이었다.

"별 말씀을요. 이 모든 정보가 다 돈입니다."

"저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돌풍 용병대의 의뢰는 비쌀 수밖에 없다는 점을요. 사실 저 역시 정보를 다루고 있지만 이 정도 정보라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겁니다. 그 점은 이미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후로트는 하룬의 지인들이 알고 있는 대로 하룬이 아주 특별한 정보 조직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정보비를 지불하고 정보를 얻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제 말씀드린 대로 폐하계서는 이번 의뢰에 대해서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시겠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는 것이 잇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다른 의외와는 달리 귀한 분의 안전이 달려 있으니 이번 일의 대가는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십시오. 다만 폐하계서는 이 일에 한해서 어느 시티건 해당 기사단과 전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한시적으로 하룬 대장에게 내렸습니다. 이미 공문을 통해 제국의 전 시티로 통보되었으니 언제라도 원하시는 병력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그 권한을 상징하는 완드입니다."

후로트는 품속에서 팔뚝에 차는 완드를 하나 내놓았는데 무척이나 고풍스러운 문양과 함께 '황제 친림' 이라는 글과 그걸 증명하는 황제의 인印이 새겨져 있었다.

'호오! 엄청나군!'

하룬은 거절하지 않고 완드를 받았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황실의 보고에서 찾은 것들입니다. 이전의 의뢰를 통해 하룬이 정령석이나 마나석에 큰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폐하께서 선수금 형태로 내리신 겁니다."

후로트가 내민 주머니는 마법주머니로 일부 밖으로 나온것들은 하룬이 그토록 좋아하는 정령석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최상급 마나석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섞여 있었다.

"이런!"

하룬은 정말 많이 놀랐다. 황제가 이 정도로 신경을 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만큼 이벨린을 생각하는 각별한 마음을 알 수 있어 놀라는 한편 마음이 찡했다.

"폐하께서는 이벨린 전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짐작하지 못하겠군요. 반드시 전하를 건강한 몸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반드시 그래 주십시오. 이벨린 전하께서는 단순한 황녀가 아니라 제국의 초석을 닦은 분이고 파이린 제국의 신민을 신분의 귀천이 아니라 능력과 노력을 기반으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신 분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후로트와 하룬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련재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후로트는 제국 정보 길드에 비해 손색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국의 정보국을 이끄는 인물로 하룬의 식견을 존중했고 그에게 몇 가지 사안에 대한 판단을 듣기 원했다.

황가의 방계傍系 출신인 후로트는 제국 정보 길드와는 관련이 없었다. 정보국의 인물 대부분이 제국 정보 길드의 전신 충신이기에 아직 조직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이 분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정보 분석과 판단에 있어서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런 그에게 하룬의 정보 분석과 판단은 일종의 교과서나 마찬가지였다. 누구도 그에게 그런 지식을 알려 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이 자리를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펄세크란과 티노 간의 협상이 끝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나중에 기회가 되는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하룬 대장."

"그러지요. 전하의 일은 우리에게 맡겨 두십시오."

"믿겠습니다. 하면 다음에 볼 때는 더 좋은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후로트와 펄세크란 일행이 물러간 후 티노가 싱글거리며 하룬의 방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의 요청이 있을 때 상인 연합이 보유하고 있는 소드 마스터와 마도사 급의 마법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1억 골드를 받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한은 석 달입니다."

"1억 골드요?"

하룬은 액수를 듣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엄청난 금액은 감정 변화가 별로 없는 하룬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그들이 먼저 제안한 겁니다."

"그, 그렇군요."

하긴 이방인들이 출현하기 전에는 수대 혹은 수십 대를 이어 가며 구 테론 제국의 상계를 나눠서 장악했던 10대 상단이 주축이 된 상단 연합이니 어쩌면 큰돈이 아닐 수도 있다.

드디어 억 단위의 의뢰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이다. 유사 이래 이 정도의 금액이 걸린 의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하룬이나 티노의 반응은 생각보다는 덤덤했다. 두 사람 모두 힘겨운 삶을 경험했고 지금도 화려한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기에 이렇게 큰돈의 가치가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흠. 기한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 정도면 잘 협상했군요."

사실 기한이 너무 촉박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하룬은 그보다 훨씬 더 빨리 이 의뢰를 끝낼 생각이었다. 빨리 혼돈의 땅으로 가야만 했다. 펠의 각성을 통해 순수석의 가치를 알게 된 하룬의 마음은 급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쪽에서도 의뢰 수행 과정의 확인을 위해 소드 마스터 1명을 파견하겠다고 합니다."

"그거라면 우리 측에서 반길 일이지요."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모르지만 소드 마스터가 온다면야 반길 일이다.

그렇게 유사 이래 가장 큰 의뢰 두 건이 동시에 수임되었다.

"일단 의뢰 대금에 대해서는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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