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현자 바툰
바툰이 기거한다는 호수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노약자들까지 포함되었기에 산 두개를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나마 노약자라도 엄청난 육체적 능력을 가진 타파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룬일행은 묵묵히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미노와 수니를 타고 갔으면 지척일 터이지만 자신들만 그럴 수는 없어 녀석들에게 근처에서 지내고 있으라 하고 타파족과 같이 움직였다.
여신의 배꼽이라는 별명을 가진 툴람 호수는 거대했다.아스라이 보이는 건더편을 생각하면 작은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호수 군데군데에는 엄청난 크기의 뗏목들이 떠 있었는데 그 위에는 갈대로 만든 목조건물들이 조밀하게 붙어 있었다.
'수상 가옥이군'
과연 마수들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일 것이다.마수들 중에 물과 친한 놈들은 별로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일만 아니라면 흥미와 호기심으로 편하게 바라보았을 광경이다.은빛으로 부서지는 잔잔한 호수 이곳저곳에 자리한 수상 가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그 사이를 작은 배들이 오가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거나 물고기와 야채를 비롯한 식량을 가득 담고 물물교환을 하고 있었다.
그 수상 가옥들 중 상당수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호숫가 한편에는 벌목된 흔적이 여실하게 보였고 계속 벌목이 되고 있었다.
선착장으로 생각되는 곳부터 시작해서 꽤 넓은 지역에는 무수한 천막들이 세워져 있었고 한창 식사를 준비하는지 다들 밖에 나와 있었다.
근처의 산악 부족들이 모두 몰려드는 곳인 만큼 다양한 생김새와 다양한 복색을 한 이들이 호숫가에 모여 있었는데 주거용으로 쓸 뗏목이 완성되어 자신들에게 배정되는 순서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타라스는 호숫가에 있던 누군가와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이내 뗏목 하나를 건네받았다
30명은 족히 탈 수 있는 거대한 뗏목에는 노잡이로 보이는 전사 2명이 이미 타고 있었다.
하룬 일행은 타라스의 권유대로 뗏목 위에 올랐고 터질 것 같은 근육의 힘으로 능숙하게 노를 젓는 두 전사 덕분에 금방 호수 중심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저곳이랍니다."
타라스의 손끝에는 타고 온 뗏목 열개 정도를 붙여서 만든 공간위에 직사각형의 오두막이 있었다.그래도 존경받는 인물이 거처하는 곳이라 갈대 대신 나무로 만든 모양이다.
거대한 뗏목 위로 자리를 옮긴 하룬 일행은 먼저 안으로 들어간 타라스를 기다렸다.곧 문이 열리며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오!아슈인 포머칸!"
"알킨 대전사!"
에버그린에서 나온 이들인지 고문들은 안에서 나온 이들을 금방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아슈인은 여러명과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을 하룬 앞으로 데리고 왔다.
"이분이 우리 돌풍대를 이끌고 계시는 하룬 대장님이오.대장님 이쪽은 타파족 대전사들이고 이쪽은 벨로족과 아슈람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입니다."
아슈인이 소개한 이들은 하나같이 그 기도가 예사롭지 않은 이들이었다.하룬을 만나기 전에 아슈인이 그랬듯 보는이들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위엄과 묵직한 무게감을 뿌리고 있었다.
"돌풍 용병대 대장 하룬입니다.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타파족 대전사 알킨입니다."
"벨로족 포머칸인 투링입니다."
"아슈람의 아들인 베랑이라고합니다."
일단 인사는 간단하게 이루어졌다.다만 타라스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있는지 하룬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일렁이고 있었다.생각보다 너무 어린 나이라서 그런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안으로 듭시다 바툰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곳에서는 알킨이 가장 연장자인 듯 하룬 일행을 안으로 안내했다.
실내는 좀 어두웠다. 창문이 있긴 했지만 그 크기가 작았기에 채광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하룬은 안쪽에 작고 왜소한 노인 1명이 좌식 의자에 앉아 그를 쳐다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룬은 그 노인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돌풍 용병대를 이끌고 있는 하룬이라고 합니다.위대한 바툰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바툰은 아무말 없이 그에게 다가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바툰 가까이 가던 하룬은 그의 입에 치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움푹 들어간 입이며 뼈에 가죽을 씌워 놓은 형상의 바툰은 어린아이처럼 맑은 눈빛이 아니었으면 미라라고 의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연을 홀로 걷는 외로운 자로군."
"네?"
바툰이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그에게 쏠렸다.
"두 개의 세상을 사는 자 반인반기의 숙명을 타고 태어난 자 암흑의 은혜를 받은자 족히 만년을 이끌 종마이되 영원한 국외자"(와 명언이네 ..한자 일부러 안썼어요)
여전히 알 숭 없는 소리를 내뱉고 있는 바툰이다.흐리멍텅했던 그의 눈에서 광채가 흘러나오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의 몸이 꼿꼿하게 세워진 것을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에게 하시는 말씁입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바툰의 시선을 하룬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고정이 되어 있었으니까
"발몬의 후예를 이런 때 만나다니 질긴 목숨을 이어 온 보람이 있군."
바툰의 입에서 발몬이라는 이름까지 언급되자 사람들의 얼굴이 심각해지며 하룬에게 시선이 쏠렸다.
하룬의 눈이 갸름해졌다.
'두 개의 세상을 사는 자라는 건 맞는 소리인데 반인반기의 숙명이란 무슨 소리지?암흑의 은혜는 더욱더 모르겠고 종마는 또 뭐고 영원한 국외자라 더구나 발몬이라면 이들이 믿는 신이 아닌가.'
산악 부족들에게 더 없는 존경을 받고 있는 현자가 자신을 보고 한 말이니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일단 인사가 먼저였다.
"전설의 영웅을 뵙게 되어 가슴이 뛰는군요 이분들은 저희 용병대의 고문들과 간부들입니다.
"아카족 포머칸ㄴ이며 지금은 돌풍 용병대 마법단 고문으로 있는 아슈인이라고 합니다.바툰 님을 이렇게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인족 포머칸이며 지금은 돌풍 용병대의 마법단 고문으로 있는 알슈트입니다.마수대란의 영우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룬의 소개에 이어 대원들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끌끌끌!모두 반갑네 바툰이라는 하찮은 늙인이일세"
바툰은 해맑은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하룬과 대원들은 이어 바툰과 함께 있던 벨로족과 아슈람족 그리고 타파족의 수장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대원들은 처음 대한 사람들은 돌풍 용병대우너 중 상당수가 타 산악 부족의 대전사와 포머칸 출신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다.
일족의 수장들은 대대로 전승되는 지식과 지혜를 물려받았고 또 산맥 밖의 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용병이 어떤 존재들이며 또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자존심 강하고 세상과 제대로 화합하지 못하는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일개 용병대에 들어갔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물을 수도 없기에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후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현자 바툰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일족의 자랑인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에버그린을 떠나 용병대에 들어간 건가?"
현자 바툰의 물음에 아슈인이 공손하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 주었다.하룬과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그가 세 부족의 어떤 일을 해 주 었으며 자신들의 왜 용병이 되었는지 말이다.
"클클!아카족과 에인족 그리고 부르카족은 운이 무척 좋았군 어려운 시기에 귀인과 제대로 인연을 맺었어"
바툰의 말에 다른 부족 사람들은 하룬으 ㅣ능력에 크게 감탄하는 한편 그간 자신들의 경우 부족민 상당수가 마수들과 다크니스에 의해 심각한 피해를 받았는데 이들 세 부족은 하룬 덕분에 무사한 것에 부러워했다.
한순간 바툰의 눈이 반짝였다.
"베랑!알킨!"
"네 말씀하십시오"
"하명하십시오"
바툰의 부름에 타파족의 알킨 대전사와 또 다른 당당한 체구의 장년인이 무릎걸음으로 움직여 그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아슈람과 타파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도 오늘 이 시간부로 돌풍 용병대에 가입해라!"
"네에?"
뜻밖의 말에 놀란 일칸과 베랑은 평소라면 감히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존귀한 어른에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얼굴을 마주하는 불경을 저질렀다.
"하룬 대장은 비록 우리 산악 부족의 피를 이어받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발몬의 후예다 이제까지 나타났던 그 어느 후계자보다 더 발몬과 가까운 존재지 하룬 대장은 거대한 산맥과 선조들이 우리에게 채운 족쇄를 풀어 줄 존재다.
"......"
알킨과 베랑은 현기가 흘러나오는 바툰의 말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말을 잊었다.알킨은 뭔가 깊이 생각을 하는 눈치였고 베랑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신,신탁입니까?"
"그건 아니다 오로지 내눈으로 보고 내린 판단이다."
현자 바툰의 말에 베랑의 눈이 흔들렸다.그런 베랑을 보는 바툰의 눈은 자에로웠다.
"네가 대전사가 되기 전에 늘 하던 말이 있었지 이제 산악 부족들도 데빌 산맥을 벗어나 풍요로운 바깥세상에서 살아야 한다고 수천 년 동안 마수들이 산맥을 벗어나는 것을 막으라는 선조들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 헐벗고 열악한 삶을 사는 건 너무나 부당하다고 왜 산악 부족ㅁ나이 대를 이어 가면서 제대로 된 대가나 바깥세상의 인간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하면서 힘겹게 살아야 하냐고 생각이 나나?"
"네 납니다."
바툰과 베랑의 대화를 들어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산악 부족들이 적지 않아 보였다.하긴 하룬이 그들의 입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 생각은 아직도 바뀌지 않은 겐가?"
"네 여전히 같습니다."
베랑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킨도 같은 생각인지 베랑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따.
"하룬 대장은 비록 용병이라는 신분이지만 내 생각으로는 바깥세상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것이다.또한 아카족을 비롯한 세 부족이 그를 만나 벌써 새로운 삶을 살수 있는 기반을 얻었다.그 정도의 능력이라면 타파와 아슈람의 미래를 맡기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알킨과 베랑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그들이 비록 일족을 대변할 수 있는 위치이긴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아무리 일족들은 물론 다른 산악 부족들까지 추앙하는 바툰의 말이라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어떻게 믿고 따르란 말인가.
하지만 바툰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바툰의 시선은 이미 하룬으로 향해 있었다.
"몇 개까지 쓸 수 있는가?"
하룬은 바툰의 물음이 의미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문신이 새겨진 얼굴과 귀 그리고 목과 손등을 훑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열세 개까지 가능합니다."
"과연!"
바툰의 주름살이 큰 파랑을 일으켰다.쭈글쭈글한 주름살로 인해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대신 주름살의 흔들림이 바툰이 격동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알킨이 두 사람을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깊은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다.
"겔겔겔!오로지 육체적인 힘을 숭상해 온 타파족은 오래전에 잃어버렸지만 발몬께서 우리에게 남긴 힘들 중
하룬 대장이 쓸 수 있는 숫자를 말하는 게다."
"네에?그럼?"
알킨 역시 바툰과 하룬이 말하는 것을 알아챘다.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비도지존을 끝으로 적어도 천 년 안쪽으로 열개 이상의 힘을 쓸 수 있는 조상들은 없었다."
바툰의 말에 알킨과 베랑은 물론 장내에 있는 산악 부족들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하룬을 쳐다보았는데 순수한 감탄이 가득 담겨 있었다.마수대란을 막아 낸 위대한 현자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실례가 되겠지만 옷을 벗어 그 증표를 보여 주겠나?"
증표라는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룬은 방어구와 암기벨트를 벗었다.속옷 차림이 된 하룬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본 바툰과 사람들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폭사되었다.
하룬의 온몸에 새겨진 문신의 숫자는 총 스무 개,그중 열세 개는 문양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았지만 활성화된 것을 알려 주듯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고,나머지 일곱개는 처음보다는 작아지긴 했지만 아무런 빛도 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일족에서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기에 마수의 힘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으면 애초에 문신조차 새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역시!"
몇 번이나 거듭 감탄사를 내뱉던 현자는 잠시 눈을 감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뿌연 연기 속을 뚫어 보매,무수한 시간이 흐른 후 내가 남긴 비술을 모두 쓰는 자가 나올 것이다.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없어 내가 다시 꿈을 청하니,그 존재는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나온 자이며 내 형상을 닮았더라,나는 불완전하여 너희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없지만 훗날 나타날 그 존재의 그늘에 들어 그를 완성시키면 그로써 너희들의 피로와 희생은 완전히 끝나리라!그는 나의 힘을 이어받은 자이되 여성의 자궁에서 태어난 나와는 달리 기계에서 태어나리라!그는 하늘과 대지의 힘을 모두 이어받을 것이며 암흑의 힘까지 소유한 완벽한 자이니 너희들은 그의 품에서 평안을 취할 수 있으리라!"
묘한 운윤에 맞추어 나온 바툰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폈다.
산악 부족 출신이 아닌 하룬과 몇 사람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동안 그 자세로 알수 없는 기이한 운율의 말을 되뇌고 있었다.
"어르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룬은 궁금증을 억제하지 못하고 바툰에게 물었다.
"클!클!자네에 대한 이야기일세,마왕을 봉인시켰으나 죽음에 가까운 극심한 부상을 입은 발몬께서 심연의 대지로 가시기 전에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지,부족마다 조금은 다른 내용으로 전승되지만 공통적인 것은 후대에 자신의 힘을 이어받은 자가 나타나 천형처럼 마수와 싸우며 살아야만 하는 우리산악 부족들의 힘겨운 운명을 바꾸어 줄 거라는 내용일세"
하룬은 바툰의 말을 들었지만 그게 왜 자신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었다.예전에 라티카 칸으로부터 비슷한 말을 들은적이 있었지만 단진 문신에 담긴 힘을 많이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발몬이 예지한 존재가 자신이라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 그 존재가 저라는 걸 믿을 수 없습니다."
"흘흘! 의심하지 말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 대해 알게 될 테니까.그나저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네를 보니 안심이 되는군 앞으로 잘 부탁하네 아슈람족과 타파족은 성심을 다해 자네를 따를 걸세 부디 저 세 부족처럼 잘 보살펴 주시게 특히 타파족은 타고난 육체적 능력과 마수를 다루는 능력에 과신해서 언젠가부터 문신의 술을 쓸 수 없는 신세가 되었기에 고향을 떠날 때 가장 많이 희생자가 나왔네."
바툰은 알킨과 베랑의 대답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일이 다 처리된 것처럼 부탁까지 했다.
하룬은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자신이 발몬이 산악 부족들에게 예견한 인물이니 무조건 따르라는 것 같은데 자신은 이야기를 들어도 인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제가 그런 대단한 존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민망한 기분입니다.과분한 말씀에 감히 말씀드리면 저는 세력을 원하지 않습니다.저와 인연을 맺은 세 부족이 이제까지 살아왔던 척박하고 헐벗은 삶에서 벗어나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그렇기에 아슈람족과 타파족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을 용병대에 받아 달라고 한 걸세.자네가 우리 산악 부족들을 이용해서 뭔가를 이루려고 한다든가 강력한 권력을 쥐려고 한다면 내가 나서서 말렸을 걸세 하지만 자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권좌에 앉기보다는 그 옆에 서 있기를 좋아하는 그런 성품을 가지고 있네 자네라면 세상사를 알지 못하고 세상사에 무지한 두 부복이 나아갈 바를 잘 인내해 주리라고 생각하네."
"아무리 발몬께서 남긴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해도 태생이 외지인인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말씀이니 말씀이니 거두어 주십시오 현자께서 원하는 일은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러우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허허허!아직도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에 대해서 제대로 자각을 하지 못했군 하긴 그게 오히려 더 믿을 수 있는 요소이긴 하지"
더욱 모를 소리를 하는 바툰이다.
하룬은 더 이상 무슨 소리로 이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야할지 알 수 없어 난처하기만 했다.그런 하룬을 보던 바툰의 주름진 얼굴이 씰룩였다.
"내 하룬 대장과 단둘이 할 말이 있으니 잠시 자리를 피해주게나!"
사람들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티노를 위시한 대원들이 하룬을 쳐다보았다.
끄덕!
대원들도 아무 말 없이 다른 부족 사람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혹시 비도지존의 유물을 얻었나?"
"네."
바툰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마도 암기 벨트를 보고 추측하지 않았을까
하룬은 바툰이 비도지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내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것을 물어보았다.
"비도지존이 남기신 유물들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알고 있네 암기 벨트와 여섯 자루의 비수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고 드워프들이 생명의 은인인 발몬을 위해 만들었다고 하네."
비도들을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니 어떻게 금속이 수천 년아니 그 이상을 아무런 손상도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하룬은 그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지만 비도지존이 존재한 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도 드워프들은 금속 제련이나 합금 제조 등 금속을 다루는 데 있어서는 인간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장인들이지만,고 드워프들은 에고를 가진 무기들을 수없이 만들어 낼 정도로 뛰어난 장인들이었고 하네"
거듭되는 바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쉽게 믿기지 않는 하룬이지만 어쨋든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는 점만은 인정했다.그들이 아니라면 최소 천 년 동안 이렇게 원형을 유지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비도지존의 유물이 모두 여섯 자루라면 아직 두개가 부족하다 지금이야 많이 엷어졌지만 비욘드 초기에는 비도지존의 유물에 집중했었던 하룬이다.
"그 각각에 대해서도 아시는 겁니까?"
"몇 개나 얻었나?"
"모두 네 자루입니다."
하룬은 암기 벨트에서 비수들을 꺼내 바툰에게 직접 보여주었다.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비수들을 쓰다듬었다.마치 어린 자식들을 돌보는 듯 따듯하게 부드러운 손짓이었다.
"이 모두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걸 혹시 아나?"
"네?정령이 깃들어 있다고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하룬의 눈이 커졌다.정령이 깃들어 있다면 명색이 정령사인 하룬이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그는 그동안 한 번도 이 비수들로부터 정령의 향기를 느낀 적이 없었다.
"아!정확하게 말하면 반정령이라고 할 수 있지"
반정령
일전에 헤르쉬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정령계에 존재하는 정령이 아니라 물질계에서 자연 발생하는 정령으로 펠과 비슷한 존재였다.
"반정령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얼굴이군"
"네 특정한 기운을 품은 곳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마나가 쌓이고 모종의 일을 기화로 각성을 해서 태어나는 존재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에센셜 정령이라고 부른다고도 하더군요."
"맟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네 정령계의 정령과는 달리 반정령은 대부분 다른 곳에 비해 마나가 쉽게 고밀도로 모이는곳에서 탄생을 하지 하지만 일부는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하는 물질들에서 태어나기도 하네.에센셜 정령은 반정령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존재들로 각성을 통해 진화를 하며 최종까지 진화하면 능력이 정령왕 급에 이를 수 있다고 하네"
하룬은 이제야 에센셜 정령과 반정령의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럼 이 비수들은?"
"그렇다네 이 비수들에게 깃들어 있는 반정령들은 나중에 이 비수에 깃든 것이 아니라 원래 그 비수의 원형이 되는 물질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네 이 비수의 경우 뇌전에 수시로 노출이 되는 철광석에서 태어난 정령이 깃들어 있지 따라서 뇌전의 힘과 철의 힘을 가지고 있네."
바툰은 만져 보는 것만으로 블리츠 대거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 이 비수들은?"
"그렇다네 이 비수들에게 깃들어 있는 반정령들은 나중에 이 비수에 깃든 것이 아니라 원래 그 비수의 원형이 되는 물질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네 이 비수의 경우 뇌전에 수시로 노출이 되는 철광석에서 태어난 정령이 깃들어 있지 따라서 뇌전의 힘과 철의 힘을 가지고 있네."
바툰은 만져 보는 것만으로 블리츠 대거를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령의 향기는 맡을 수가 없었는데....."
"내가 정령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정령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고 해서 정령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지"
그런가?그건 잘 모르겠다.하긴 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녀석에게서 정령의 향기를 맡은 적이 없는 것 같다.어쩌면 정령계의 정령만이 향기를 풍기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다른 두 비수의 이름이나 외관 혹은 특징을 아시나요?"
한동안 잊고 있었던 비수에 대한 열정이 속아오른 하룬이 물었다.
"알고 있네 하나는 극강의 혼이라고 불리는 보석 비수고 또 하나는 대지의 숨결이라는 이름의 황토색 비수라네."
"극강의 혼?"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그 어느 금속으로도 상처를 낼 수 없는 가장 강한 보석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네 대지의 숨결은 겉으로 보기에는 진흙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회복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사악한 것들을 정화하는 힘을 가졌다고 하더군."
"혹시 그 소재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바툰은 뭔가 아는 것 같았다.다른 비수들에 비해 자신에게 없는 두 자루의 비수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타파족과 아슈람족에 전해지는 지혜의 실에 담긴 내용으로는 아득한 옛날 마왕을 비롯한 마계의 존재들에게 거의 멸족할 위기에 빠졌엇던 고 드워프들과 고 엘프들이 발몬의 은혜를 갚기 위해 힘을 합쳤다고 하네 그들은 세상을 떠돌며 수백 년 동안 반정령이 깃든 순수한 물질들을 찾았고 그들이 가진 모든 힘을 기울여 그 여섯 자루의 비수를 만들었다고 하네 자네에게 없는 두 비수는 오래전 우리 산악 부족들이 아직 타르 분지에 살 때 2명의 용사들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괴수들을 죽이기 위해 가지고 떠났다고 하네."
괴수라는 말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맞아!'
지금 소지하고 있는 네 자루의 비수들은 세상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괴수들의 몸에서 찾았다.
"전승되는 이야기로 추측컨대 비수들은 자아를 가진 반정령이 깃들어 있으며 인간의 무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사악하고 흉포한 마수나 괴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네.전설에 의하면 임무를 완수한 여섯 자루의 비수들을 모두 모아 그 속에 깃든 정령들을 깨우면 대지의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발몬의 신전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하네."
"발몬의 신전요?"
"그렇다네 일반적인 신전이 아니라 심각한 부상을 입고 대지의 여신 미요스를 비롯한 부인들과 마지막으로 은거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라네 그곳에 들어가는 자는 발몬과 그 부인들이 남긴 힘을 온전히 전해 받을 수 있으며 그 힘은 마왕이나 천신에 비견될 정도라고 하네."
"그렇군요."
전설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하룬은 큰 흥미를 느꼈다.
비록 발몬의 신전까지는 믿을 수 없었지만 반정령이라는 존재들이 비수에 깃들어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어쩌면 게임 모드로 게임 패턴을 변경하면 히든 퀘스트 창이 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까 절 처음 보시고 한 말씀이 궁금합니다."
"클!클! 내 신비한 척을 좀 했더니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군 나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네 발몬의 후계자에 대한 전설을 인용한 것뿐일세."
"네에?'
"우리 산악 부족들에게 전승되어 온 발몬의 말씀이 있다네 그중 세상의 혼란기에 나타날 자신의 후계자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내가 말한 것이 그 내용일세 사실 나 역시 그 내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모르네."
"그렇군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하룬은 현자를 만난 김에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을 알고 싶었다.그중 하나가 바로 럼프족들에게서 받은 모종의 힘이었다 그 정체가 뭔지 내내 궁금했던 것이다.
"대답을 구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뭔가?"
"사실은....."
하룬은 오크족으로 오해를 했었던 럼프족과 얽힌 일과 그들의 의식을 지켜보다가 우연하게도 자신이 흡수한 정체불명의 힘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흐음 그럼 발몬의 말씀이 맞는군 그런데 지금은 뿔이 없는 것 같은데."
바툰의 말에 하룬은 투구를 벗고 잠시 집중을 한 후 의지를 끌어 올렸다.그러자 큰 뿔들이 머리 위로 솟아올랐고 하룬의 형상은 그야말로 마왕처럼 변했다.
"오오!과연!조절할 수 있는 건가?"
"네 쉽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조절할 수 있습니다.다만 이상한 현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룬은 제 모습으로 돌아가서 다시 투구를 쓴 후 혈무현상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흠 자네가 죽인 상대의 몸에서 붉은 안개가 솟아나와 자네에게 흡수된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전에는 조절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겨우 그럭저럭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바툰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자신의 기억을 뒤지고 있었다.그러다가 결국 생각이 났는지 눈을 빛냈다.
"아마도 자네가 흡수한 것은 발몬께서 남기신 블러드 에센스일 걸세"
"블러드 에센스라면?"
"오래전 초인들이 살던 시절에는 자신이 평생 동안 연성한 힘을 일정한 형태로 가공해서 후대에 남기는 일이 가능했다고 하네 당연히 발몬께서도 그런 능력을 가지셨을 것이네 내가 알기론 럼프족은 데벨 산맥에 정착한 우리와는 달리 마지막까지 발몬을 모셨었네 럼프족의 여왕이 바로 발몬의 아내 중 1명이었지그 때문에 그들은 발몬의 피를 일부이었고 발몬의 형상 중 일부를 이어받았네 머리 위의 뿔이 바로 그 증거지"
"아!"
"사실 그 뿔은 우리 산악 부족의 문신처럼 특별한 힘을 담은 일종의 그릇이라고 하네 물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시간의 흐름에 그 힘을 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지만 그들은 발몬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종족이니 또 다른 힘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네"
분노하면 생기는 뿔에 발몬으로부터 전해진 모종의 힘이 깃들어 있다니 놀랄 일이다.
"전설에 따르면 발몬께서는 싸우면서 죽은 상대의 정혈을 흡수했기에 쉽게 지치지 않았다고 하네."
"정혈을요?"
"전설에 따르면 그러하네 발몬께서 마왕군과 싸우면서 자신이 죽인 마물들의 정혈들을 흡수해서 지치는 법이 거의 없었다고 하지"
그런 거라면 불안해할 이유가 없었다.역시 물어보길 잘한것 같다.
'메신저 스킬과 비슷하구나.'
움직이면서 계속 대지로부터 마나를 흡수하는 메신저 스킬이나 자신이 죽인 상대의 정혈을 빨아들여 힘을 보충하는 블러드 에센스는 큰 차이가 없었다.
"자네 말을 들어 보면 럼프족에 내려오던 발몬 님의 블러드 에센스가 자네를 선택한 것 같네 잘은 모르겠지만 블러드 에센스는 약간의 자아가 있어 가장 적합한 대상을 선택한다고 하네."
그런 거라면 충분히 이야기가 된다.왜 자신을 선택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 말고도 블러드 에센스에는 여러 가지 공능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전 주인의 능력을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네.물론 충분한 각성을 통해 블러드 에센스를 자신의 힘으로 녹여 내야 하지만 말이야."
'각성이라고?'
지금까지 한 번도 블러드 에센스에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문신처럼 자신의 몸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온몸 전체로 그 크기가 커졌지만 특별히 의식을 하거나 그 힘을 쓴 적이없는 것 같다.
'마왕의 눈도 그렇지.'
화염 지대에서 얻은 마왕의 눈 역시 자신이 흡수를 했지만 아직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물론 작정하고 알아보려고 한 적도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자네에게 발몬의 유지가 이어졌음이 더 확실해졌으니 우리 산악 부족을 잘 이끌어주게."
"그건....."
부담감이 가득한 하룬의 눈을 쳐다본 바툰은 자애롭게 웃었다.
"두 부족은 결국 내 결정을 따를 걸세 그들에게는 난데없는 이야기일수 있지만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걸 곧 깨달을 테지 마수대란 정도는 상대도 되지 않는 상황임을 깨닫는 순간 자네가 그 유일한 해답이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네."
"과분한 평가라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아무튼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야만 하네 발몬의 후계자가 우리를 외면하면 우리 산악 부족의 미래는 아무 곳에도 없네"
뿌듯한 얼굴로 하룬의 대답을 듣던 바툰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무척이나 낡은 가죽 주머니가 그것이었는데 그는 뒤집어 손바닥에 내용물을 쏟아 내었다.
손바닥에 놓인 것은 검푸른 색깔의 돌 네 개와 투명에 가까운 구슬 한 개였는데.그 크기는 고양이 눈알 정도였다.
바툰은 하룬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것들은 대체 뭡니까?"
"이 검푸른 것들은 최상급 마수들의 마정석이네 알고있겠찌만 마수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당되는 마수들의 마정석 가루로 문신을 그려야 하네 물론 등급이 높은 마수의 마정석일수록 더 효율이 높지 이것들은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부족들이 오래전부터 대를 이어 가며 구한 것들로 후대에 전한 것들이네"
"그걸 왜 저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이상 이 최상급 마수의 마정석을 사용할 능력을 가진 전사가 산악 부족 중에는 없다네 최상급 마수들의 마정석을 흡수하려면 그에 합당한 육체적 정신적 자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이가 나오질 않았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신이 그런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알 수 없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네가 활성화시킨 힘들은 하급에서 중급에 이르는 마수들의 힘이지 나머지 일곱 개의 힘은 상급과 최상급에 해당하는 마수들의 것인데 그걸 활성화시키지 못하는 원인은 아직 자격이 안되어서일 수도 있지만 필요하 마정석의 마나를 흡수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네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생각될 때 한번 시험해 보게"
"이런 귀한 물건을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룬의 말에 바툰의 눈이 웃었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 나 역시 두개의 세상을 사는 자들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네 그렇게 기다리던 이방인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세상에 나가기도 했네 하지만 이방인들은 너무나 약해서 이 최상급이 아니라 하급 마정석의 힘도 끌어내는 것은 물론 그 마나조차 흡수하지 못했지 하지만 자네는 다르네 우리 산악 부족의 전사는 아니지만 깊은 관계를 맺고 있고 우리를 위해 가진 힘을 아끼지 않아 왔지 자네는 자격이 충분하네."
하룬을 바라보는 바툰의 눈은 간절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럼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
"부디 그 힘들을 제대로 발현시켜 산악 부족들을 위협하는 자들을 단죄하고 미개한 우리 산악 부족들을 잘 이끌어 주게."
"잘 알겠습니다."
하룬은 결연한 얼굴로 바툰이 건네주는 마정석들을 받았다.
"그런데 이건?"
하룬은 자신의 손에 옮겨 온 것들 중 네 개의 마정석이 아닌 투명에 가까운 돌에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에는 투명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안쪽에 기이한 문양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엄청나다!'
바툰의 손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막상 자신의 손에 잡힌 투명한 돌에서는 측량하기 힘든 엄청난 마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주 오랜 옛날 드래곤들이 살아 잇던 시절에 은둔으로 유명한 가이엘족에서 위대한 용사가 출혔했네."
'또 전설인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듣는 것마다 전설이고 신화였다.
"신마 대전의 와중에 큰 부상을 입은 드래곤이 있었네.소멸 직전까지 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그 블랙 드래곤이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봉인된 마계의 문이 있는 혼돈의 땅이었지 블랙 드래곤 갈레크레록은 자는 동안 마계의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마기에 침습되어 마성에 젖어 버렸지 깨어난 갈레크레록은 마법사로 유희하던 중 흑마법에 매료되어 다크문 마탑을 세웠고 유흐의 마지막에는 완전히 마성이 빠져 버렸네.놈은 발몬께서 봉인한 마계의 문을 다시 열어 더 이상 드래곤들이 남아 있지 않는 세상을 절멸시키려고 했다네"
바툰은 이빨이 하나도 없는 입으로 기이한 운율에 맞추어 대화를 하듯 전설을 노래하고 있었다.
"신계에서 전하는 신탁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상의 모든 아인종들은 각기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자들을 모아 갈레크레록과 그 권속들을 상대하기로 했지 그때 우리 산악 부족들은 아인종의 일족으로 가이엘족의 용사를 수장으로 수많은 전사들과 칸들을 보냈네 각 아인종을 대표하는 12명의 용사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세를 이끌고 혼돈의 땅으로 향했다네 독물들이 들끓고 시시각각 바뀌는 기후와 험난한 지형을 뚫고 데빌 산맥을 넘어 혼돈의 땅으로 진군한 아인종 연합군은,수많은 언데드들과 마수들로 인해 무수한 희생을 치렀지 마계의 문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을 때는 그 많던 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겨우 수백 명만이 살아남았다네."
과연 전설이다 싶다.현실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찌 남은 숫자는 겨우 수백에 불과했지만 하나같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이어서 처참한 전투 끝에 연합군은 갈레크레록의 권속들인 마수들과 언데드들은 결국 모두 처리할 수 있었네 하지만 마계의 문을 여는 데 미쳐 있던 갈레크레록이 나타나 날뛰자 12명의 용사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하나 둘 죽어 갔지 12명의 용사들은 죽을힘을 다해 갈레크레록을 상대했고 다행하게도 놈을 죽일 수 있었네.그래도 놈은 마계의 문을 일부 여는 데 성공했기에 그 틈으로 마계의 마기가 흘러나와 하이엘프는 그들이 고이 간직하고 있던 순수석을 결계에 끼워 넣었다네 순수석은 마기를 정화시켜 순수한 마나로 바꾸었기에 마기는 한동안 흘러나오지 않았지 세상은 그 이후 오랫동안 평화를 누렸다네 하지만 순수석이 마기에 오염되어 그 정화 능력이 악화되자 다시 마기는 흘러나왔고 세상은 또 다시 분쟁에 휩싸였지 아인종들은 서로 패권을 다투었고 인간이 최종 승자가 되었네."
아주 흥미로운 전설이기는 하지만 뭔가가 빠져 있다.그걸 눈치챈 것일까 바툰의 말이 이어졌따.
"갈레크레록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가이엘족의 위대한 용사는 자신의 팔과 다리 하나를 던져 정령사인 하이엘프를 구해 주었다네.그 하이엘프는 그 보답으로 용사에게 순수석의 파편을 하나 주었는데 그게 바로 이것이라네"
"저,정말 이것이 순수석이란 말입니까?"
"전설에 따르면 그러하네 순수한 마나가 고밀도로 능축되어 만들어진 이 순수석의 파편이 마기를 비롯해서 사악한 기운을 정화하고 흡수하는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네 우리 선조들 중 그 누구도 이 순수석이 간직하고 있는 순수한 마나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지 못했네."
"이런 엄청난 보물을 왜 저에게?"
"이 순수석의 파편이 자네를 부르고 있네 자네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자네를 향해 가려고 내게 신호를 보내왔네."
'어떻게 그런 일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바툰의 눈빛은 맑고 깨긋했다.한 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았따.
"받게 이 순수석의 파편은 자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지혜가 이야기를 하고 있네."
"감사합니다!"
하룬은 무거운 마음으로 순수석의 파편을 받았다.부담스럽게는 했지만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게 생각하자!'
아무 조건 없이 이런 귀중한 물건을 주었으니 자신도 이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해 줄 생각이다.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세 부족만 챙기지 말고 나머지 산악 부족들도 좀 챙겨 주게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소원해졌지만 산악 부족들은 한 형제나 마찬가지이네 선조들의 유훈을 지키느라 제대로 된 삶도 살지 못하고 살았으니 자네가 길을 열어 주면 좋겠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지금까지도 해 오던 일이다.챙겨야 할 인원이 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일이니 권하지 않아도 할 참인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허허허!후계자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할일없이 늙어버린 상황에서 비전을 잃은 부족들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약해져 걱정을 했었는데 이제야 안심을 할 수 있겠군.내 부름에 응한 부족들이 모두 모이게 되면 그때 다시 자네를 부르겠네."
"기다리겠습니다."
하룬의 대답에 바툰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시 사람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자 바툰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난 이제 늙었소 내 이름으로는 여러분을 모으는 것밖에는 할 수 없소."
"그렇지 않습니다."
몇 사람은 바툰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지만 대부분은 인정했다.바툰은 거동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노쇠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맞는 법! 이번 시대에는 내 대신 하룬 대장이 내 역할을 하게 될 것이오 본인이 고사를 하고 그 마음이 확고해서 연합의 지도자 자리를 맡길 수는 없지만 하룬 대장은 발몬의 후예이니 간악한 자들과의 전투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오 마수대란에서도 나타났듯 우리 산악 부족은 타르 분지를 벗어난 후 너무 오래 흩어져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합칠 수 없소 하지만 하룬 대장은 발몬께서 남긴 힘을 열세 개나 사용할 수 있으니 모든 산악부족의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오."
"......"
그 말에 좌중은 조용했다.
눈으로 직접 보았고 현자로서 명망이 높은 바툰이 인정을 했다.두 살마이 독대를 하는 동안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어느 정도는 하룬을 인정할 수 있었다.다행히 본인이 앞으로 탄생할 연합의 수장을 고사했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난 하룬 대장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우리 전사들과 칸들의 힘을 모아 적들을 처단하기를 바라지만 그건 내 의견일뿐 나머지는 다른 부족들이 모이면 상의를 하도록 합시다. 앞으로 한 달 후에 이곳에서 대부족회의가 개최될 테니 그동안 많이 고민해 보길 바라오."
"알겠습니다"
어차피 산악 부족의 연합은 필수적이다.
각 부족의 수장들은 하룬에게 깊은 눈빛을 던졌다.과연 바툰 현자의 말대로 바깥세상에서 온 그가 자신들이 당연한 이 큰 위기를 벗어나게 할 능력이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