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정세
보라가 나간 후 벨도 하던 일을 위해 집무실을 떠나자 하룬은 사색에 잠겼다.
'그정도의 많은 시력자들을 갖추고 있는 이방인들이 다수 포함된 세력이라면?'
길드 단위의 이방인들을 떠올려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숫자는 어떨지 몰르지만 이방인들의 실력은 아직 미흡하다. 이방인들은 비욘드의 주민들에 비해 ㅊ음에는 레벨 업이 빠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동일한 정도로 극히 어려워 진다.
있다면 세력과 자금력을 이용해서......
"휴먼 가드? 그래 그들이야!"
GG는 그럴 여유가 없다. 또 GPC는 대부분 다크니스와 적대하는 길드와 관련이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휴먼 가드였다. 하룬은 그들이 다크니스와 합류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세력이 GG와 비등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게 전부일 리가 없다.
'설마 이 두 세력이 손을 잡은 걸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간 하룬이 두 세력을 대상으로 추측하던 것이 사실 쪽과 가까워지고 있다.
'정보가 필요해!'
하룬은 일단 GG에 있는 제리코에게 뇌파 통신을 보냈다.
-제리코, 제리코!
-대장님!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처음 하는 통신이라서그런지 제리코는 무척 반갑게 하룬을 불렀다.
-잘 지내고 있지?
-네. 대장님이 걱정해 준 덕분에 무사히 잘 보냈습니다.
충격적인 패전을 하고 돌아간 제리코는 심한 책망과 함께 한동안 아무 보직도 없는 대기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겨우 다시 조직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나마 새롭게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대기 기간이 짧았습니다. 지금은 본부에서 보급을 맡았습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현실에서 동료를 규합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어 뜻깊게 보냈습니다.
비욘드에 접속할 수 없었던 제리코는 현실에서 활발하게 움직여 벌써 100명에 달하는 동지들을 규합했다고 보고했다.
-대장님, 그런데 빅뉴스가 있습니다.
-빅뉴스?
-네.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조직의 최고위층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래? 어떤자여?
하룬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GG는 다른 두 조직과 마찬가리로 일반인들은 아직도 그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베일에 가려 있는 비밀 조직이다. 거기에 수뇌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름 대신 다크 프린스라는 칭호를 가지고 비욘드에 먼저 모습을 보였습니다. 최고 원뢰회의에서 내려보낸 공문에 의하면 차기 로드라고 했습니다.
-차기 로드라고? GG에는 그런 직책은 없잖아?
-그렇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이 많았습니다. 이후 알려진 바에 의하면 조직의 수뇌부들이 최고 원로회의의 의장을 로드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GG를 비롯한 세 거대 집단의 수장은 개인이 아니라 원로라고 부르는 여러 명의 집단 지도체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크 프린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 인물이 차기 로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왜 모습을 드러낸 거지?
이제까지의 행보를 보면 안전 때문인지 아니면 점조직의 특성 때문인지느 ㄴ몰라도수뇌급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의아해졌던 것이다.
-우리도 뜻밖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드 마스터들과 마도사 급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과 연합군 그리고 산악 부족들에게 밀리는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조직을 정비하고 감추었던 예비 전력을 끌어내 밀리던 전황을 일시에 뒤집었스빈다.
-전황을 뒤집어?
하룬이 현실로 돌아올 때의 판단으로는 아무리 다크니스의 저항이 거세도 본거지를 제외한 나머지 성들은 다 뺏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무엇보다도 이방인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다크 프린스는 그간의 전투로 절반 혹은 삼분의 일로 전력이 감소한 전투단들을 3개로 통합하고, 자신의 친위대를 비롯한 예비 전투단 10개와 마수 군단 그리고 강화 언데드 군단을 앞장 세워 파죽지세로 빼앗겼던 성들을 탕환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하루은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언제 니타난 거야?
-현실 시간으로는 4일, 게임 시간으로 12일 정도 되었습니ㅏㄷ. 어데에 숨겨 놓았었는지 모를 5만의 친위대와 소드 유저 급의 무력을 가진 약 15만의 강화 언데드와 10만 마리의 마수가 포함된 전력을 충원해서 지금은 거의 40만에 달하는 전력으로 이미 6개의 성을 수복했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마법 실력을 보이며 10만이 넘는 이방인들과 3만의 연합군을 학살했습니다.
기함을 할 일이다.
하룬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30만이라니! 어디서 갑자기 그런 엄청난 전략이 뛰어나온간 말인가? 5만의 친위대는 그렇다고 치자, 소드 유저 급 실력을 가진 15만의 강화 언데드라니, 화장을 하는 산악 부족들이 그 많은 사체를 남겼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그 의문을 푸는 것은 아중이다. 더급하게 확인할 사항이 있다.
-혹시 산악 부족이 거주하는 성들이 어떻게 되었느지 아나?
-아직 그쪽은 목표가 아닙니다. 다크 프린스가 이끄는 어둠의 군대는 세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는데 연합군과 이방인들이 주로 몰려 있는 데빌 산맥의 동쪽과 남쪽이 주전장입니다. 그쪽의 성들이 광산을 끼고 있어 아무래도 주목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아무래도 이곳 일이 빠르게 처리하고 비욘드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아리와 꿀처럼 딜콤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욘드의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 한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뭔데?
-캡술의 인공지능 컴퓨터를 이용한 감시가 사라졌습니다.
-그래? 감사를 포기할 놈들이 아닐 텐데.
-그게 은밀하게 알아보니 그럴 만한 사정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캡슐의 인공지능 컴퓨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이 일을 총활해 왔던 슈퍼 양자 컴퓨터가 유저들의 대규모 뇌사 사태와 더불어 뭔가 큰 타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는 조직의 업무가 페이퍼 보고서나 공문이 자주 활용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이제는 비욘드에서도 원활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하지만 조심해야 해.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비욘드의 하룬 대장과도 뇌파를 이용해서 통신이 가능한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 형님에게 시도해 보라고 할게.
-네. 호출이 들어왔습니다. 또 무시할 수 없는 지원 요청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저 접속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 수고하고 다시 연락하자.
하룬은 제리코와의 통신을 마무리하고 생각에 잠겻다.
'뭔가 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느낌이야!
데드 벙커 쪽에서는 엄청난 신약이 개발되어 글로리 가이아의 수뇌부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으며 비욘드에서는 다크 프린스라는 새로운 보스가 등장해 가즈 로드와 이방인 길드를 깨부수고 있다. 그리고 제국쪽에서는 정체불명의 무리가 상단들을 대상으로 강도질을 하고 있다.
'분명 뭔가 있어!'
하루은 아지만과 벨에게 상활을 설명하고 비욘드에 접속할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비욘드의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곳에 돌풍 기지의 미래와도 연관된 중대한 사건이 기다로 있는 느낌이었다.
하룬은 비욘드에 접속하자마자 바로 메신저 패스트 스킬을 펼쳐 돌풍 용병대의 본질이 머물기로 한 에윰 성으로 달려갔다.
에윰 성은 이미 보호와 은신을 위한 결계가 처져 있어 육안으로는 초원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샤키의 눈은 활성화시킨 하룬에게는 선명하게 드러났다.
알고 있는 지식대로 외곽의 결계를 뚫고 들어가자 언제 세워졌는지 높이 7미터에 달하는 외성 벽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정도 높이라면 결계를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마수들도 제대로 올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전사들이 경계를 하고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누구...... 대장님이다!"
그를 발견하고 나팔을 불려던 전사가 그의 얼굴을 알아보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금방 전사장 하나가 넓은 성벽을 통해 달려왔다.
"대장님!"
"아! 호보노군."
몇 번 안면이 있는 예인족 전사장이었다. 하룬은 그동안 있었던 전투에서 늘 선봉을 맡아 용맹하게 돌격하곤 했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름이 생각나 불러 주었더니 무척이나 좋아했다.
"안 그래도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활짝 열린 성문 안으로 들어선 하룬은 호보노의 안내를 받아 빠르게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외성에서 내성까지의 땅은 구획별로 나뉘어 작물을 심거나 길들인 산양을 방목하고 있었다. 언제 심었는지 모르지만 무릎까지 자란 밀을 보니 조바심이 가라앉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농사와 목축을 하고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였다. 앞으로도 이들 산악 부족들이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약 3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한 하룬은 많은 사람들이 내성 문 근처에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나팔 신호를 통해 하룬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는지 용병대 수뇌부들이 모두 내성 밖까지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님!"
반갑게 인사를 하는 대원들을 보니 불안했던 마음이 모두 사라졌다. 딜런을 위시해서 보이지 않는 고문들도 몇 명 있었지만 표정들을 보아하니 별일은 없는 모양이다.
하룬은 대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고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돌풍 용병대느 ㄴ부족 연합의 배려를 받아 지구라트 4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회의장으로 사용하는 넓은 방으로 들어가자 한창 일을 하고 있던 부족 연합의 수뇌부가 찾아왔다.
"무사히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요증 데빌 산맥은 물론 곳곳이 무척 시끄러워 조금 걱정했습니다."
부족 연합의 수장이 된 호우돈의 말에는 진정이 담겨 있었다. 이들 역시 최근의 변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신 덕분에 별일 없이 볼 일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성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허허! 아직도 정신이 없지요. 그래도 추가로 주거 시설과 외성을 완성했기에 걱정을 조금 덜었습니다. 지금은 한창 경작지를 개간하는 중입니다. 대장님이 떠나신 이후에 약 3,000 명에 달하는 이주민이 들어왔지만, 비축하고 있는 물자도 충분하고 부족한 주거 공간은 내성벽 근처에 짓고 있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이전에 비해 좀 마른 얼굴이지만 호우돈을 비롯해서 부족 연합의 수뇌부들은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 안정이 되어 가는 모양이다.
"밖은 어떻습니까?"
대충은 아는 모양이지만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 모양인지 사람들의 시선이 하룬에게 쏠렸다.
"흐음, 좀 심각합니다. 다크 프린스라는 인물이 자신의 친위 세력과 함께 출현하면서 수많은 성들이 다크니스의 수중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도 다크 프린스와 그 친위대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7서클 흑마법사로 다크 필드라는 흑마법으로 수천 명을 몰살했고 신성력에 강력한 내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전사들에 육박하는 전력을 가진 무시무시한 언데드들과 마수들을 끌고 다닌다지요?"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다. 이들이 정보에 둔감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무척 강력한 전력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는 이쪽으로 향할 테니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저희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자손에게 대대손손 물려줄 안식처입니다. 우리 산악 부족은 아무리 강력한 적이 쳐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도망을 치거나 척박한 산중으로 숨지 않을 겁니다."
호우돈을 비롯한 부족 연합 수뇌부는 작심을 한 듯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마수를 상대하면서 수천 년에 걸쳐 데빌산맥에서 살아온 산악 부족 특유의 용앵함이 가감 없이 느껴졌다.
"하하하! 정말 믿음직하군요.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후퇴는 해야지요."
"허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이미 돌풍 고문단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성들 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와 유사시 출동에 대한 전략도 세웠고 또 조언을 받아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서 몇 가지 행동 방안을 세워 두었습니다."
"마음이 놓이는군요."
호우돈을 비롯해서 성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제대로 상황을 인식하고 또 적절한 준비 태새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하룬의 말이 끝나자 호우돈은 이제 용병대만의 이야기를 나눌 시간임을 눈치챘다.
"그럼 저희들은 이따 식사 때 다시 뵙겠습니다."
"네, 기대하겠습니다."
예윰 성의 수뇌부가 물러나자 하룬의 눈이 고문단의 바슈에게 향했다.
"바슈경, 워프 마법진을 다 설치한 겁니까?"
"네. 모두 완성했습니다. 또 마법진을 가동시킬 마법사들도 이미 배치가 끝났습니다."
다행이다 이번에 설치한 워프 마법진들이라면 유사시 10분안에 1,000 명을 이동시킬 수 있으니 초반에 급격하게 밀리지만 않는다면 성을 방비하는 것은 충분할 것이다.
"타니엘레 경을 비롯한 몇 명이 보이지 않는군요."
"타니엘라 경과 미루스 경을 비롯한 몇 명의 고문들은 지금 지하에 있는 연구실에서 강론과 마법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
"지도를요?"
"네. 각 부족에서 모인 칸들과 외부에서 찾아온 마법사들을 대상으로 우리 돌풍 마탑의 마법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포미칸인 바슈의 입에서 우리 돌품 마탑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제 고문들의 의견이 일치가 된 것 같다.
군소 마탑이나 유랑 마법사들로부터 연원하는 자유 마법사들은 제대로 된 지도를 받지 못해 오랫동안 실력이 정체되었으니 이제라도 제대로 된 지도를 받는다면 단기간 내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거둘 것이다.
아카 성에서 마법을 수련하고 잇는 마법단과 사이키스트까지 고려하면 돌풍 마탑의 인원은 이제 1,000 명에 육박하는 규모로 급성장했다.
"딜런 경을 비롯한 전사단 고문들도 안 보이네요."
"그들은 대원들과 각 부족에서 선발해서 보낸 전사들을 이끌고 성 밖의 붉은 머리 산으로 갔습니다. 실전 수련과 야수 사냥을 겸해서 일주일 일정으로 나갔는데, 내일이면 돌아 올 겁니다."
자신이 현실에 다녀오는 동안 이곳에 남은 대원들은 고문들부터 일반 대원에 이르기까지 돌풍 용병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의미가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실에서 마냥 논 것은 아니지만 왠지 미안할 정도였다.
저녁 식사 시간에 타니엘라를 비롯한 교수진과 반가 해후를 나눈 하룬은 은밀하게 성 밖으로 나가 미노와 수니를 불렀다. 녀석들은 이미 데빌 산맥에 대한 재정찰을 끝내고 근처에서 한가롭게 사냥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룬은 미노와 수니에게 동화하여 녀석들의 기억을 확인했다.
역시 다크 프린스의 무리로 보이는 대규모의 인원이 최근에 비행 기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엄청나군!'
말이 30만이지 세 갈래로 진군하는 다크니스의 위용은 녀석들의 기억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놈들은 기존 성들이 보유한 워프진을 활용해서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다행히 새로운 성의 출현과 같은 예외적인 일은 없었다. 다만 데빌 산맥의 동쪽과 이어진 몬스터 랜드 방향으로 이동하는 많은 행렬이 신경에 거슬렸다. 미노와 수니도 족히 1만명은 될 정도로 엄청난 행렬이 신기했는지 저공비행을 통해 그들이 다크니스 무리라는 것도 확인했다.
'도대체 왜 그 위험한 곳으로 가는 거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룬은 미오와 수니에게 적은 숫자라도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은 모두 기억해 놓으라고 부탁들 했는데, 하룬의 기억에 있는 데빌 산맥의 지도를 고려하자 그런 장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산악 부족들이 있었구나.'
산악 부족들은 대개 마을 단위로 생활을 하기에 그 장소들의 대부분은 산악 부족의 거주지가 확실했다.
하룬은 왠지 대륙인들보다 사악 부족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교역을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들 자체가 마음에 들어 같이 행동하고 있는 산악 부족들이다. 나머지 부족들도 이제까지의 척박하고 위험한 삶 대신 세 부족처럼 보다 안전하고 높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어쨌건 수천 년에 걸쳐 마수들의 발호를 막아 온 것은 그들이니까.'
대륙인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들은 선조들의 유훈에 따라 힘들고 위험한 삶을 살아왔으니, 이제는 조금 안락하고 안전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물러간 후 자신의 방에서 통신기를 꺼낸 하룬은 뫼비우스에게 여락을 취했지만 뭘 하는지 연락이 되질 않았다.
'이 자식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잠시 투덜거린 하룬은 헤르쉬에게도 통신을 보냈지만 그녀 역시 연락이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엄청난 상황이라는 건가?'
두 정보 조직의 수장들이 통신에 신경을 쓰지 못할 정도의 상황을 맞이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이 급해 당장이라도 미노와 수니를 타고 마츠루트 요새로 갈까도 싶었지만 아직 대원들을 모두 본 것도 아니어서 애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멜이나 불러 볼까?'
그러고 보니 본 지가 아주 오래되는 것 같다. 그가 어는 벨이라면 분명 엄청나게 투덜거리고 있을 것이다.
=펠, 펠 소환!
펠은 바로 소횐되었다.
"칫! 치잇! 뭐야, 형? 왜 이렇게 늦게 나타나? 어디 있는지 확인도 안 되고......"
역시나 입이 오리 주둥이처럼 삐죽하게 나온 벨이다.
"내 세계에 일이 있었어. 미안하다."
"치잇! 빨리 다음 각성을 해서 같이 가든지 해야지."
"각성을 하면 같이 갈 수는 있는 거야?"
"당연하지. 예전에는 다른 차원도 많이 여행했었는걸. 어렵지도 않아."
"빨리 그런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벨의 능력을 현실에서도 똑같이 쓸 수 있다면 하룬은 그 어느 것보다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벨이랑 아리 누나를 빨리 보고 싶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녀석은 한번 말해 준 벨과 아리의 존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녀석! 걱정하지마. 너라면 분명히 귀여워해 줄 테니까."
귀여운 짓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벨이다. 물론 그런 것조차 이번 미앙의 일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귀여운 용모의 펠이라면 틀림없이 벨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아! 빨리 보고 싶다. 형이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고 벨 누나와 아리 누나도 보고 싶어."
"하하!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누구?"
"미앙이라고 베링 엄청 예뻐하는 아이가 있어. 아마 미앙 이를 보면 너무 귀여워서 너도 반하고 말 걸."
하룬의 말에 펠의 눈이 반짝거렸다.
"헤헤! 정말 기대된다. 빨리 각성할 수 있도록 마정석이나 더 많이 모아 달라고, 형."
"알았다. 지금까지 모은 것은 다 정제한 거야?"
"그런 아니지만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젠 그 일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고."
"다른 정령들은 아직도 각성 중인 거야?"
"응. 나도 그렇고 그 녀석들도 그렇고 이제까지의 정령석과는 달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켐이 필요할 거 같아."
하룬은 그렇게 펠과 한참을 보낸 후에 녀석을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펠은 오랫만에 만나고도 금방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서운한 모양이었지만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는 쉴 시간이 없었다.
"정령석보다 더 강력한 아이템이라?"
현실에서 정령들을 얻었지만 이곳의 정령들과는 덜 성장한 상태라서 그런지 내 정령이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순수석을 찾아야겟어. 아! 순수석!'
하룬은 그 순간 몬스터 쪽으로 이동하던 다크니스의 영상을 떠올렸다.
'놈들은 틀림없이 순수석을 찾으러 혼돈의 땅으로 가고 있는 거야.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마왕의 파편은 이번에 나타난 다크 프린스의 친위대를 양성하는데 소모되었어. 그래서 이번에는 순수석을 노리는 거야!'
아무래도 자신도 빨리 혼돈의 땅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순수석은 놈들에게도 필요한 아이템이지만 자신도 정령들의 각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이곳 정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바로 출발하자!'
미노와 수니가 있으니 다크니스가 먼저 출발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혼돈의 땅은 이제까지 그 누구의 침범도 허락하지 않은 미지의 땅이다.
저녁에 타니엘라를 비롯한 고문들이 찾아와 잠시 담소를 나눈 후 잠을 청했지만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지구라트 옥상으로 올라가 마나 플로를 비롯해서 자신이 보유한 스킬들을 정성껏 수련했다.
다음 날 오후 늦게 행색이 엉망이 된 대원들이 성으로 돌아왔다. 몬스터들과 마수들을 상대로 일주일에 걸친 강도 높은 실전 수련을 마친 대원들은 지치고 힘든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아 이었다.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은 다들 웜가 이룬 것이 있음을 증명했고 질서 있게 걸어 들어오는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는 엄정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때문에 경작지에서 일하던 많은 처녀들이 넋을 읽고 그 행렬을 지켜봤다.
나팔 신호를 듣고 내성 앞까지 마중을 나간 하룬은 선두에서 귀환하는 딜런과 보벳을 볼 수 있었다. 나머지 고문들과 티노 부부는 후미에 위치해 있었다.
"대장님!"
"딜런 경! 보벳 경!"
티노 부부와 고문들은 하룬을 본 순간 빠르게 달려와 예를 표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딜런은 바가움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어제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연락을 하시지요."
"수련을 위해 나갔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그래, 효과는 있었습니까?"
"네, 거의 모든 대원들이 마나 오션을 생성시켰습니다. 이번 수련은 마나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실전 수련이었습니다."
"부대장 부부와 고문단 ㅇ르신들이 수고가 많으셨군요."
"하하! 아닙니다. 다 저희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사람들은 하룬의 말에 겸연쩍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뿌듯해하는 표정을 보니 태생이 전사인지라 칭찬에 무척이나 약한 이들이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성안으로 들어간 용병대는 식사와 휴식을 위해 해산을 했다. 하룬은 배식을 위해 줄 지어 선 이들 뒤에 섰다. 일주일 동안 용병대 수뇌부들이 의도적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붙인 덕분에 대원들의 눈빛은 아직도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룬은 1명씩 마주하며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숫자가 많아져서 이렇게 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간 같이하면서도 개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터라 이참에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 끝에 줄의 가장 앞쪽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마리를 비롯한 이방인 부조장들이 이제 곧 시작될 배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님!"
"축제는 잘 보냈나?"
"네? 아, 네!"
어떻게 현실의 이을 알고 있는지 놀란 얼굴이었지만 현실과 이곳의 하룬이 거의 동일인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 듯 놀란 표정을 풀었다.
"몸이 불편해서 제대로 축제도 즐기지 못했겠군. 그래, 치료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현실에서 보낸 시간은 꽤 많았지만 진작 기지로 옮겨온 이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어 미안하던 참이었다.
"끊어진 신경을 잇는 수술은 이미 받았고 지금은 신경 치료와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다행이군. 하룬이 많이 신경을 쓰고 있으니 자네들만 노력하면 곧 완치까지는 몰라도 움직이는 데는 무리가 없을거야."
자기의 이름을 남처럼 부르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이들은 자세한 상황을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두 분이 이렇게 신경을 써 주셔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들 감복한 얼굴이었다.
"그래, 결혼식은 어땠나?"
"식장까지 갈 수 없어 홀로그램 영상으로 봤는데 정말 부러웠어요. 이제까지는 사랑이나 결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결혼식을 보고 나니까, 저도 빨리 건강해져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졌어요."
대뜸 마리가 나서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그녀가 가장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다들 부러워했습니다. 더구나 파라다이스의 정경이 알려진 후에는 몸살을 앓았지요. 저희가 속한 전투조만 해도 이전까지는 수련에만 매진하던 대원들이. 이젠 시간을 내서 배우자를 찾으러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겨루의 말을 들은 하룬은 크게 만족했다. 그가 생각하는 삶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사랑이나 결혼 같은 것도 중요했따.
그렇게 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어색함을 해소한 하룬은 식사 후 회의를 소집했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부대장님, 그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모두에게 간략하게 정리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덕담으로 개회사를 대신한 하룬의 시선이 티노에게 향했다.
티노는 그간 용병배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고를 해 주었다.
"......고문들의 활약으로 인해 우리 세력은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세 부족에게 위탁받은 수련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 전사장들은 물론이고 일반 전사들의 실력도 상당히 올라간 상태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부대장."
티노에게 전반적인 상황을 보고받은 하룬은 이번에는 타니엘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마법담 고문들께서 수고가 많으셨다고요?"
"허헛! 그렇습니다."
타니엘라는 일전에 하룬에게서 받은 고대 마법서를 고문들과 함께 연구를 한 끝에 새로은 체계의 워프 마법진을 개발해냈다. 이마법진의 동력원은 펠이 정제한 순정석이었는데, 그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을 뿐 아니라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수도 최대 100 명으로 늘었고, 기다리는 시간도 채 1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진이었다.
마법단 고문들은 이제는 산악 부족들의 본거지가 된 각 성을 돌며 이워프 마법진을 설치했고 그 결과 무수한 이점들이 발생했다.
"그런데 요즘 데빌 산맥도 그렇고 세상이 많이 시끄럽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정보는 입수했습니까?"
하룬이 마지막으로 티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그부분은 레미를 불러 들으시지요. 고문님들과 의논을 해서 앞으로 정보 분야는 레미가 맡기로 했습니다."
비록 칸 후보이긴 하지만 지혜롭고 호기심이 많은 레미라면 그 일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이다. 물론 차후에 뫼비우스가 총괄하거나 그도 아니면 정보 분야에 특화된 인선이 필요하겠지만 그녀의 역량으로도 충분했다.
하긴 티노는 전반적인 용병대의 우용만으로도 업무가 과중한 편이다. 진작 정보 업무를 맡을 인선을 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미리 언질이 있었는지 티노는 나가자마자 바로 레미를 데리고 들어왔다.
레미는 수뇌부 회의에 처음 참석하는 터라 바짝 얼은 표정이었지만 왜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상기하고는 곧 신색을 회복했다.
"좋습니다. 고문단이 예비로 임명한 레미를 정식으로 정보조장으로 추인하겠습니다. 위하에 50명까지 편입할 수 있도록 조치할 테니, 상황에 맞게 천천히 보충해 가면서 앞으로 정보 분야에 신경을 써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장님."
레미는 하룬에게 확실하게 인정을 받자 의욕이 드러나는 얼굴로 모두 앞에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정보 분야를 맡은 후 처음으로 한 일은 우리 돌풍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뫼비우스와의 통신입니다."
하룬이 뫼비우스에게 정보 길드를 세우라고 지원한 것은 용병대 수뇌부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다.
"또 세류님과도 통신을 했고 돌풍 상단주와도 통신을 했습니다."
그간 한 일은 통신밖에 없었지만 현재 그녀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유일했다. 때문에 아무도 그녀가 한 일이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이미 고문단과 간부들에게는 전한 정보지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레미는 현재 가즈 로드가 새로운 적의 출현으로 심하게 타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세 제국 전역에서 벌어지느 ㄴ상단의 습격 사실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새로이 엄청난 전력을 이끌고 나타난 흑마법사는 다크 프린스라고 불리는데, 그 힘이 엄청나서 현재의 가즈 로드와 이방인 길드들은 적절하게 상대할 수 없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아마도 조만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상단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강도 사건으로, 막 안정되려는 제국들은 시막한 내정외 위기에 빠졌으며 데빌 산맥으로의 추가 지원이 어려워졌습니다. 뫼비우스의 정보 조직은 추가 지원이 없다면 석 달 안에 다크니스가 우리 지역을 제외한 데빌 산맥을 완전히 장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레미의 말에 간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난번에 대충 전해 들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악 부족들이 차지하고 있는 성들에도 크나큰 위험이 도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으로 볼 때 다크 프린스와 강도 사건의 주요자들은 같은 세력 혹은 연합 세력으로 보이며, 돌발적인 변수가 일어나지 않느 ㄴ한 데빌 산맥은 다크니스에 의해 장악되고, 세 제국은 상단달의 몰락으로 크나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본 용병대가 출자한 상단 역시 도산하고 말 겁니다."
생각보다 더 절망적인 예측은 회의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짝!짝!짝
하룬이 박수를 쳐서 사람들의 이목을 모았다.
"레미 조장, 수고했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십시오. 현 상황에 대해서는 잘 들었습니다. 물론 암담한 현실이긴 하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우린 돌풍 용병대 입니다. 우리느 ㄴ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하느 ㄴ많은 일들을 해결해 왔습니다. 이번 일도 우리가 힘을 합쳐 준비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렀다. 하룬의 말에는 묘한 힘이 깃들어 있어 자연스럽게 그의 말을 믿게 만들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더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언제 누가 쳐들어와도 물리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전 마츠루트 요새를 방문할 생각입니다. 생필움을 구하는 문제도 있고 자세한 정황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니 여러분들은 각 성의 전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딜런 경이요?"
"저야 이제 임무를 끝마쳤으니 특별히 할 일이 없잖습니까?"
하긴 실전 수련까지 끝났다. 이제부터 산악 부족 출신 간부들은 자기 부족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지만 기존 간부들은 거기에서 자유로웠던 것이다.
"게다가 히든 대원들을 타고 바람과 함께 하늘을 나는건, 검술을 수련하는 것 못지않게 자극적이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검술에 푹 빠져 사는 줄 알았더니 비행의 맛도 알았나보다. 머뭇거리던 티노 부부도 나섰따.
"저희도 가고 싶습니다."
"전 구할 물건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고문들 모두가 요즘 교육이나 자신의 수련에 여념이 없어 굳이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더니 은근히 좀이 쑤셨나 보다. 말은 안 해도 다들 따라나서고 싶은 얼굴이었따.
"그럼 딜런 경과 부대장 그리고......"
하룬이 요새로 갈 인원을 정하는 순간 한 사람이 그를 방해했다.
"대장님!"
"아! 아슈인 경, 말씀하십시오."
포머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며 평소에는 거의 나서는 법이 없는 아수인 고문이 나섰다.
"섭섭합니다."
"네?"
하룬은 아슈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벅였다.
"우리는 돌풍 대원이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편애를 하시는 게 아니라면 왜 원년 대원들만 데리고 가시는 겁니까?"
아슈인을 비롯한 간부들은 섭섭한 얼굴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던 하룬으로서는 뜻밖의 반응이었다.
"그러야...... 여러분들은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할 일은 크게 없습니다. 뭐 중요한 몇 가지 사안에 의사를 표명하긴 하지만 당대의 탄과 칸 들이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나이도 들었고 이미 현업에서 은퇴를 한 우리가 나서면 간섭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전대의 탄과 칸 출신들이 나서면 일족을 이끌어 가는데 명령 체계가 혼란스러워져, 나서고 싶어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허! 제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네요."
특별히 이 상황을 모면할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룬은 솔직하게 자신의 경솔한 판단을 인정했다.
"그럼 어떻게 한다? 딜런 경이나 부대장 부부와 같은 경우는 다른 볼일을 볼 예정인 절 대신해서, 그간에 안면을 익힌 이들을 상대로 업무를 봐야 하니 같이 가야 합ㄴ디ㅏ. 그렇게 하면 타고 갈 자리가 부족할 텐데......"
뭐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이미 같이 가자고 결정을 해 놓고 철회를 하기에느 비행에 들떠 있는 대원들의 기대 어린 눈들이 부담스럽다.
'탐승대를 확장할까?'
미노와 수니의 능력이라면 각각 5명은 더 때워도 크게 무리가 없었다. 녀석들은 이미 복용한 수정석으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번에 갔던 고문들은 이번에 빼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슈인의 말에 절반에 해당하는 고문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면 되겠군요."
당장 탑승대를 확장하는 건 무리다. 하룬의 말에 희비가 엇갈렸다.
"안 그래도 히든 대원을 탔던 경험을 가지고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눈꼴이 시었습니다."
"흐흐흐, 우리도 제대로 된 무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구나!"
이번에 가기로 결정된 고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기뻐했다. 그간 마츠루트 요새를 다녀왔던 고문들이 어지간히 자랑을 한 모양이다.
히든 대원을 타고 여행을 다녀온 일도 그렇지만 대전사 출신의 고문들은 한눈에도 명품임을 알아볼 수 있는 무기를 소지하게 된 동료들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원래는 다른 고문들을 위해 무기를 더 구입할 생각이었지만 무기라는 것이 본인에게 맞아야 하고 또 본인이 좋아야하기 때문에 나중을 기약했는데,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경지가 올라가 무기의 질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전사들에게 있어 무기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하룬은 휴식을 겸해 마나 플로를 운행하다가 통신기의 진동을 느꼈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뫼비우스나 헤르쉬가 이제야 연락을 한 모양이다.
통신을 받고 보니 헤르쉬였다.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아!
연락을 받지 않은 건 자신이면서 소리는 왜 지르는지 모르겠다.
-어제 연락했었는데 네가 못 받았잖아.
-아무튼. 내가 그사이에 몇 번이나 연락했었는데.
사실 그 점은 미안했다. 그래서 이제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 레미에게 통신을 전담하라고 지시할 생각이다.
-아무튼 미안하게 됐다. 그런데 요즘 난리가 났다면서?
-응. 아주 골치가 아파! 세 제국의 황실은 물론이고 상단들은 금방이라도 망할 위기에 빠졌어.
-그 일 때문에 좀 만나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어디야?
-세프 성이야.
들어 본적이 없는 지명이다.
-거긴 어디야?
-신 테론 제국의 무역 도시야. 지부가 아예 박살이 나 버려서 조사를 하러 왔는데, 건질게 전혀 없네.
제국 정보 길드까지 습격을 당하고 있을 줄은 정말 짐작도 못 했다. 정말 뭔가 엄청난 일들이 거대한 조직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상단들만 습격을 당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그랬는데 이틀 전부터는 정보 길드들을 비롯한 큰 세력들까지 공격을 당하고 있어. 심지어는 신전들까지 공공연하게 습격을 당하는 형편이라고. 그나마 마탑들은 대상에서 빠져 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야.
말이 나오질 않는다. 도대체 공격을 하는 자들이 어떤 놈들이기에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목표를 공격하는지 모르겠다.
'휴먼 가드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건가?'
이 정도 규모라면 아무리 휴먼 가드라고 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단서는 몇 가지가 있긴 한데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이방인들이 대거 끼어 있다는 것과 상당한 실력자들이 동원되었다는 건 알아냈지만 오리무중이야. 답답해 죽겠어!
제국 정보 길드의 수장이 이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 모두가 망연자실한 가운데 무력하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라니.
-거기에 가즈 로드의 수장인 이벨린 황녀는 행방불명이고......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이벨린 황녀가 갑자기 실종되었어. 가즈 로드는 물론이고 제국에서도 은밀하게 찾는 모양인데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자 우리 길드에게 의뢰를 해 왔거든.
의남매를 맺은 이벨린이다. 당차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이벨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몸이 덜덜 떨린다.
-각기 다른 출신의 연합 세력을 아우르고 대국을 주재할 수장이 갑자기 실종된 터라, 가즈 로드는 지금 다크 프린스라는 잡종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중이야. 답답하기도 하고 친구라면 혹시 무슨 단서라도 가지고 있나 싶어서 연락을 했어.
'아!'
제리코처럼 높은 정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벨린과는 뇌파 통신이 가능하다.
-나중에 연락하자!
-왜? 뭔가 방법이 있는 거지?
-나중에 알려 줄게.
-그럼 나 지금 마츠루트 요새로 갈 테니까 그리로 와. 안 그래도 가즈 로드의 수뇌부들이 그쪽에 집결하기로 했으니까.
-알았어!
하룬은 급하게 통신을 끊었다. 이벨린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을까봐 마음이 조급했다.
하룬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다행이 이능력을 가진 이벨린이라 뇌파 통신이 가능하다. 하룬은 딜런에게 호위를 부탁하고 방으로 들어가 정신을 집중했다.
-이벨린, 이벨린!
하룬의 머릿속에 이벨린의 영상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그녀의 이름을 강한 의지를 담아 되뇌기 시작했다. 그의 의지가 뇌파를 강하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동심원을 그리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파동은 공간적인 거리와 관계없이 비욘드의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벨린, 이벨린! 나 하룬이야!
간절한 의지가 담긴 뇌파가 계속해서 퍼져 나갔지만 이벨린은 생각한 만큼 빠르게 회답을 보내오지 않았다. 혹시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라서 뇌파 통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지만, 현실에 있는 벨과도 가능한 일이니 안 될 리가 없다.
'설마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겠지?'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다. 벨이나 아리처럼 오래 알아 온 것도 아닌데 이벨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안했다.
그러던 중 미약하지만 이벨린으로 추정되는 의념이 전해졌다.
-오, 오빠
-이벨린? 맞아?
-하악! 오빠, 하룬 오빠!
불안하게 흔들리는 의념의 파동으로 보아 뭔가 일이 생긴 것 같다. 게다가 이벨린의 의념에는 불안과 공포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래, 나야.
-무, 무서워요, 오빠!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이벨린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어디야?
-잘 모르겠어요.
뜻밖의 대답에 하룬의 눈이 커졌다. 하마터면 집중이 흔들려 뇌파 통신이 끊길 뻔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납치 당했어요. 깜깜하고 차가운 것으로 보아 밀폐된 공간 같은데, 이곳이 어딘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누, 누가?
하룬과 뇌파로나마 대화를 나누게 되자 급격히 진정되어 가는 이벨린과 달리 하룬의 감정 상태느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벨린은 자신에게 생긴 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최근 패악을 저지르던 산적과 마적들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 이상해서 조사를 하려고 황도로 돌아왔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이 황궁을 지키는 근위기사단은 물론이고 네 궁을 지키는 친위대를 해치우고, 수면약을 사용해 잠에 빠진 얼 납치했다?
-맞아요.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나서도 몇 번이나 워프를했어요. 그리고 이곳에 갇힌 지 벌써 보름이 넘었어요.
정말 황당한 일이다. 제국의 황녀가 납치를 당하다니, 세 제국의 정보를 한 손에 틀어잡고 있는 헤르쉬조차 이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차라리 로그아웃을 하지 그랬어?
-해 봤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이해가 가진 않지만 난 분명 이곳에 갇혀 있는데 다른 활동 중이라서 로그아웃을 할 수 없더라고요.
무슨 소리일까?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데 왕성하게 활동을 하는 것으로 서버가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까? 아니면 로그아웃을 할 수 없는 상황, 즉 전투중이라던가 그게 아니면 사망하기 전까지는 로그아웃이 되지 않는 특별한 지역에 있는 걸까?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추측할 수 없는 거야?
-네. 식사를 가져오거나 간단하게 청소를 하러 들어오는 여자가 있는데......아! 일반 시녀가 아니에요. 제 감이긴 하지만 틀림없이 나와 같은 유저일 거예요.
-같은 유저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네 레벨이 어떤지는 몰라도 근위기사들이나 친위기사들 그리고 황궁에 펼쳐진 마법진을 생각하면 보통내기들은 아닌데.
-맞아요. 소드 마스터는 물론이고 마법진의 수준을 고려하면 다른 제국의 특작대는 되어야 하는데......아!
-왜?
-그러고 보니 날 납치한 자들 중 일부는 우리 조직인 것 같아요. 아니, 틀림없어요. 절 지키던 친위대 중 일부가 내부에서 동조를 했어요.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납치가 될 리가 없어요.
그녀가 현재 제국의 황녀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실로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해 본 하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전에 한 말로 미루어 봤을 때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벨린은 아마도 조직의 행보에 반하는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캡슐에 내장된 인공지능 컴퓨터를 통해 그녀의 행동을 감찰하고 있던 그녀의 조직이 그 징후를 포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할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응, 오빠, 그때 오빠와 만난 후 저와 생각을 같이하는 그룹을 모으던 중이었거든요.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행동해서 포섭한 동지들이 믿을 만하하고 생각했지만 제 생각이 짧았나봐요. 지금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아! 기로틴이었어! 틀림없이!
이벨린은 하룬과 대화를 하다가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기로틴?
-그는 휴먼 가드 내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신진 세력의 지도자예요. 커컴버스라는 광산업체를 설립해서 20년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기업가로, 자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최고 위원이 되지 못하자 조직 수뇌부에 많은 불만을가지고 있는 자라서 접촉을 했었는데. 아!
이벨린은 자신을 탓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계이긴 하지만 그의 가문 역시 최고 위언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너무 경시했어요. 그가 대놓고 조직 수뇌부에 반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나와 같이 조직에 적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정말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하룬은 기로틴이나 휴먼 가드에 대한 상세한 사정을 모르기에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이벨린은 하루과의 대화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하자 막혀 있던 사고를 원활하게 풀고 있었다.
-참, 오빠가 놀랄 만한 소식이 있어요.
-뭔데?
-어, 어쩌면 휴먼 가드와 글로리 가이아의 수뇌부가 같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그중 일부만 같을 수도 있고요.
쿠웅!
뜻밖의 말에 하룬의 안색이 변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세상의 권력과 금력을 암중 지배하는 세 세력 중 둘이 하나일 수도 있다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대외적으로 알려진 최고 위원회의 은미한 행보를 살피다가 알아냈는데, 그들이 글로리 가이아의 수뇌부와 거의 똑같은 동선을 가지고 있었어요. 오빠와 헤어진 후 은밀하게 접촉한 글로리 가이아의 중간 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받은 정보를 보니, 두 조직의 수뇌부가 묘하게 비슷한 일정을 수행하고 있으며 비슷한 결정을 내리고 있더라고요. 가장 의심스러운 점은 나름 조직의 상층부에 있는 이들 조차도 수뇌부의 저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느 ㄴ점은 우리나 글로리 가이아나 동일하거든요, 어쩌면 휴먼 가드와 글로리 가이아는 하나의 머리를 가진 두 조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예상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긴 하지만요.
열을 내다가 마지막 결론에서는 자신이 없는 이벨린의 의념이지만 하룬은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기분이었다.
돌풍 기지를 공격한 알코르 전투단과 동행했던 휴먼 가드를 떠올린 하룬은 이벨린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신에 가깝게 믿게 되었다. 정보가 부족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외적으로는 적대적이라고 알려진 두 세력이 그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같은 노선을 걷는 것만 해도 그렇게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혹시 최근 휴먼 가드의 수뇌부가 어딜 가거나 대거 사라졌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니?
-그건 잘 모르겠어요, 왜요?
-아, 아니야. 걸리는 게 좀 있어서.
하룬은 자신이 너무 비약하는 것 같아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새각할 게 너무 많아, 오빠!
혼자 뭔가를 생각하던 이벨린이 하룬을 불렀다.
-응, 말해.
-지금 내가 갇힌 곳을 알게 되면 구하러 와 줄거지?
-당연하지.
미노와 수니라면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그녀가 갇힌 곳을 모른다는 것뿐.
-그럼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서 연락할게. 꼭 구해줘야 해. 지금은 머릿속이 엉망이라 생각이라는 걸 좀 해야 할 거 같아.
-알았어.
-그럼 오빠만 믿을게. 후후! 오빠와 연락이 되니까 너무 좋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고 무서워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젠 너무 든든해.
언제가부터 존대를 하지 않게 된 이벨린이다. 그만큼 편하게 그를 받아들인 것이리라. 하룬은 이벨린의 그런 변화가 싫지 않았다. 비록 같은 유전자를 가진 동생이지만 너무 똑똑해서 어떤 때에는 동생 같지 않은 벨과는 달리, 보호본능을 유발하게 만드는 이벨린은 또 다른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