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휴가와 다가오는 위험 (243/278)

휴가와 다가오는 위험

하룬은 밤까지 계속된 축제에 붙잡혀 있었지만 끝이 나고도 쉴 수 없었다.

"오빠, 벼리 오빠가 대단한 정보를 입수했대."

결혼 때문에 잠시 접속을 해제했던 사이 벼리가 남긴 신호를 보고 벼리의 뇌파에 동조를 했던 벨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달려와 막 샤워를 하고 좀 쉬려던 하룬을 붙잡았다.

"벼리가? 무슨 정보래?"

"데드 벙커의 연구진들이 드디어 소문만 무성하던 신약을 개발했대."

"신약?"

"그 내용은 확실하지 않지만 세포를 재생시켜 주는 신약이래. 불사까지는 아니라도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려 줄 뿐 아니라 죽기 전까지는 항상 20대의 육체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약이래."

"그게 가능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종말 시대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문명에서도 인간이 희구하던 목표다. 수많은 군주들이 그 허황된 꿈에 매달리다가 누구는 수은을 장복하다가 죽었고 누구는 스스로 미라가 되기도 했다.

"그것뿐 아니라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켜 오르그들처럼 오염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맨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바람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기적의 신약이래."

"믿을 수가 없군."

"나도 그렇기는 한데 지금 마지막 임상 실험을 하고 잇다니 어느 정도는 사실인 것 같아."

"그래서?"

사실 그런 약의 출련이 놀랍기는 하지만 하룬이 주시하는 것은 그런 신약이 아니다.

"최근 데드 벙커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대."

아마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글로리 가이아의 수뇌부들일 것이다. 데드 벙커를 만들었던 목표가 달성되자 그 신약을 먹기 위해 찾는 것이리라.

'좋은 기회야!'

지난번부터 GG의 수뇌부들이 데드 벙커를 찾는 것과 방어가 강화된 것이 이 일과 관련이 있었는지 모른다. 신약이 개발되었다는 보고에 찾은 것이리라.

"임상 실험은 언제 끝난대?"

"확실하지는 않아. 핵심 연구원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머지않아 GG의 수뇌부들이 데드 벙커에 다 모인다는 사실이야."

"그렇겠지!"

전부는 아니겠지만 소식을 접한 고위급들은 모두 모일 것이다. 그 정도의 신약이라면권력이나 재물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이제 진정한 기회가 다가오고 있어!'

점조직을 가진 글로리 가이아의 수뇌부만 몰살시킨다면 나머지는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휴먼 가드와 GPC가 남아 있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휴먼들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 GG만 혼란에 빠져도 유니온들은 좀 더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어쨌거나 이번 출행으로 오르그들을 이용할 방도를 찾아서 다행이다. 만역했던 전과는 달리 돌아가는 상황이 뭔가 구체적이고 실체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축제를 즐겨서일까?

기지를 오가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엷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인사를 나누는 말도 전보다 더 정겨웠고 아는 얼굴이 확 늘어났다. 이전까지는 같은 주민에 불과했던 관계가 이제는 가족과 같은 이웃으로 변해있었다.

축제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가슴이 새긴 아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교육을 받아들였고 성격도 더 밝아졌다.

성인식을 앞둔 아이들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진로를 고민할 수 있었다. 이곳 돌풍 기지에서는 하고자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수동적이었던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트래시 스트리트에서 짐승과 같은 생활을 했던 아이들의 변화가 가장 컸다. 평생 잊을 수 업슨 상처였기에 어른들에게 두려움을 가지고 모든 일에 움츠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축제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떤 어른도 그들이 내미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그들의 위험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비록 부모 형제는 없지만 이 기지의 어른 전체가 그들을 부모와 같은 따스함으로 보살펴 준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은 하루 만에 크게 달라졌던 것이다.

황 박사를 비롯한 교육조는 이런 변화에 고무되었고 이제까지 진행해옸던 새 가정 만들기에 더욱 진력할 수 있는 동기와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

기지 순찰에 나선 하룬과 벨도 이런 변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는 거지?"

"나도 놀라고 있어, 오빠. 축제란 것이 이렇게 큰 효과가 있는 줄 몰랐어."

"아무래도 정기적으로 축제를 해야겠네."

"좋은 생각이야!"

사회가 커지면 분명 이런 끈끈함도 엷어지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는 것이다.

하룬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쏘우의 연구조였다.

"어! 바쁘신 대장님이 어떻게 아침부터 이곳엘 다 오셨을까?"

쏘우는 축제를 즐려서인지 다크서클이 많이 없어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평소 바빠 얼굴도 거의 볼 수 없었던 하룬이 찾아온 것에 놀란 한편 무심한 그를 향해 까칠하게 반응했다.

"하하! 그래서 가장 먼저 들렀습니다."

"흐흠. 그렇다면야."

쏘우는 하룬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았다는 사실에 꼬인 마음을 풀었다.

"브리핑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아뇨. 일단 좀 둘러보고 싶군요."

둘러본다고 아는 것은 아니겠지만 연구조가 하고 있는 연구들을 알고 싶었다.

"절 따라오십시오."

바쁠 것이 분명한 쏘우가 안내를 자청했다.

인원이 대폭으로 중원된 연구조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려 20개가 넘었다. 그 절반이 무기에 대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하룬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것도 있었다.

"이건 화살이 아닙니까?"

"네. 하지만 활촉 부분을 획기적으로 개량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르그나 하르크 등의 변종 생물은 피부조직이 두껍고 충격을 사방으로 분산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가 담긴 도검류가 아닌 총기류는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대신에 절삭에 대해서는 좀 취약한 편이지요. 그래서 놈들을 상대할 때는 도검류가 효과적인 거고요. 하지만 놈들의 피부조직이 총기류에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충격을 분산시킨다고 하더라도 피부조직에 상처는 나지요. 이 화살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근거리라면 최소 활촉 정도는 박힐 겁니다."

그런당연하다. 변종 생물의 피부가 방어력이 강하다는 거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활촉 안에는 작은 칼날 수백 개가 들어 있습니ㅏㄷ. 일정량 이상의 충격을 받으며 뇌관이 폭발하면서 그 칼날들이 얇은 금속 촉을 뚫고 밖으로 비산하게 됩니다. 그럼 놈들의 몸은 작은 칼날에 의해 엉망이 되고 말 겁니다. 일단 이 화살촉이 효과가 있으면 일반 총탄까지 이 원리를 적용시킬 생각입니다."

"오오! 멋진 아이디어 입니다."

하룬은 진정으로 감탄했다. 어떻게 구현될지는 몰라도 그 시도는 정말 신선했고, 성공한다면 변종 생물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정말 무기에 관한 한 인간의 능력은 정말 뛰어나다.

무기류를 제외하고 가장 인상이 깊은 프로젝트는 배리어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엄청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발전기의 개발이 선행되어야만했다. 지금 쏘우는 아리와 공동으로 태양광 수소 발전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이 수소 발전기는 단순히 수소를 이용한 발전이 아니라 태양광발전 원리를 적절하게 결합한 발전기입니다. 지금은 실전되었지만 유니온들이 보유한 발전소의 발전 원리를 이용했습니다. 제대로 복원만 된다면 우리도 이 지하가 아니라 지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겁니다."

쏘우는 평생 바쳐서라도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고 했다. 오염된 환경에 적응할 수 없느 ㄴ육체를 가진 이상, 휴먼들이 지상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바로 배리어였고, 그 기술을 활용한 무기를 개발하면 변종 생물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형님,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소용없다는 건 잘 아시죠?"

"전 아직 건강합니다."

"의료조에 따로 지시를 할 테니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시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으로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기지에서 형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그래도 아리 참모만은 못 합니다. 내 살면서 나보다 더 뛰어난 인물은 본 적이 없지만, 아리 참모는 내가 두셋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쏘우는 아리와 함께 연구를 하면서 무척이나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아리의 칭찬을 듣자 하룬과 벨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대장님은 언제 결혼하실 겁니까? 우리 기지도 안주인이 정해져야 더 안정을 찾을 텐데 말이지요."

"무, 무슨소리를......."

"대장님이 우리 기지를 집으로 그리고 주민들을 가족으로 말했잖습니까? 그렇게 보면 대장님은 우리 가정의 아버지가 아닙니까? 자고로 가정은 어머니가 있어야 안정이 되는 법이니, 우리 기지가 안정이 되고 더 발전을 하려면 빨리 대장님이 결혼을 해야지요."

"그......건......"

하룬은 뜬금없는 쏘우의 말에 얼굴까지 붉히며 당혹해했지만 그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했다. 결국은 브리핑 받는 것까지 포기하고 도망치듯 연구조를 떠나야만 했다.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사랑은 식는다고들 합니다. 사랑을 하면 상처를 받는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용암처럼 들끓어도 숯불처럼 은은해도 결국 그 본질은 뜨거움이고 사랑입니다. 대장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기지의 든든한 아버지이며 마음의 지주입니다. 빨리 결혼하십시오."

끝까지 잔소리를 하느 ㄴ쏘우를 떨어뜨린 하룬은 아직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지 못했다.

"......크흠!"

옆에서 벨이 뭔가 조잘거리더니 헛기침을 했다.

"뭔데?"

"생각해 보니 쏘우 오빠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제 돌아다니면서 보니 다들 아리언니와 오빠가 언제 결혼할지 궁금해하고 있어. 혹시 내가 방해되는 거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

벨까지 이렇게 나오니 하룬은 할 말이 없었다. 당혹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달달한 것이 정말 이상했다.

아리는 축제가 끝나고 사흘이 지나서야 기지로 귀환했다.

그녀가 축제까지 참석하지 못하고 했던 일은 돌풍 기지로서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대한 것이었다.

그녀는 방사성물질의 축적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해초류를 잔뜩 채집해왔다. 효과가 확인되면 호수 한쪽에 양식할 요량이었다.

또 기지 주변의 지하 도로를 모두 조사하는 것도 무척 중요했다. 우니온은 물론 GG와 HG가 무질서하게 건설했던 지하 도로들을 조사하는 것은, 수시로 일어나는 지진과 사고로 인해 무척이나 위헌한 일이었지만, 기지 방어와 안전한 도로망을 찾던 돌풍 기지로서는 귀중한 정보인 것이다.

하룬으 ㄴ벨과 기지 수뇌부들의 양해를 받아 아리에게 약속했던 둘만의 휴가를 파라다이스에서 보낼 수 있었다.

"제대로 못 하면 일이서 해!"

허리에 양손을 얹고 위협을 하는 벨의 옆에느 언제부터인가 미앙이 꼭 달라붙어 있었다. 며칠이지만 적절한 영양분을 섭취한 미앙은 벨과 비슷하면서도 치명적인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알고나 이야기하는 건가?'

벨의 말을 들은 하룬과 아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공연히 얼굴만 붉혔다.

교육 시간이 아니면 항상 데리고 다니는 미앙이 아니었으면 벨이 이렇게 쉽게 하룬과 아리에게 시간을 주었을지 의문일 정도로, 벨과 미앙은 친자매 이상으로 친해진 것이다. 소장에게 중용을 받아 행정 체걔를 완성하는 업무에 푹 빠져있는 암무를 대신해서 미앙을 돌보는 벨이다.

"하아! 너무좋아!"

자신이 직접 감독해서 만든 곳이지만 이렇게 하룬과 단둘이 있게 되자 전혀 다른 장소로 보였다.

아리가 지휘하는 중앙 기지의 시크릿 대원들이 사용한 흔적을 말끔히 없앴지만 곳곳에는 달콤한 애정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투명한 배리어를 통해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춤을 추는 수초 사이로 헤엄치고 있는데, 손을 내밀면 바로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기지 근처에서 이식한 각종 나무들과 식물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풀 냄새와 맑고 청량한 공기는 숨 쉬는 것을 즐겁게 만들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열다섯 쌍의 신혼부부가 달콤한 허니문을 보낸 곳이라서 그러지 이렇게 둘이 있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간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오빠와 이렇게 단둘이 있어서 좋아!'

아리는 너무나 고맙게도 벨이 선선히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했다. 물론 벨의 관심을 끌어 준 미양에게도 고마웠다.

'나중에 만나면 언니가 많이 예뻐해 줄게.'

사실 늘 하룬의 곁을 떠나지 않던 벨에게 가끔 얄밉다는 감정을 느끼긴 했었다. 이성으로야 두 사람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에 지금까지 그런 마음을 조금도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종종 서운하기는 했었다.

기지가 안정되면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 일은 갈수록 늘어났고, 이젠 하룬이 게임에 접속하지 않ㅇ르 때조차 얼굴을 볼 수 없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도 예전에는 간간이 안아도 주고 애정 표현도 해 주던 하룬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러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며칠을 같이 보낼 수 있다니, 정말 꿈을 꾸는 것 같다. 팔짱을 끼고 한가롭게 풍광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을줄이야.

'오빠가 그동안 미안했었던 걸까? 이렇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자고 할 줄은 정말 몰랐어.'

파룬의 팔짱을 낀 아리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이곳을 만들 때에 남모르게 이런 순간을 기대하며 설렌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빨리 이곳을 단둘이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이제까지 보아 온 하룬은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차가운 남자였던 것이다. 벨이 원했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은 행여 거절당할할까 봐 두려워 그런 마음을 표시할 수없었는데 하룬이 먼저 제안할 줄은 정말 몰랐다.

'호호! 너무 행복해!'

"진작 이런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미안해."

가슴이 울컥했다. 하룬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을 아끼고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그 역시 벨과 기지의 일 때문에 표현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 자신을 아주 많이 생각해 옸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 아니에요. 오빠!"

그저 하룬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고 그를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아리다. 그래서 벨이 붙어 있엇도 마냥 행복했고, 바닷가 마을까지 직접 지하 도로를 건설하는 힘겨운 일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았다.

"앞으로 종종 이곳에 들르자!"

"헤헤!"

다정한 하룬의 말에 아리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헤실겨렸다. 지금의 아리는 차가우면서도 거침없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평소의 모습과는달리, 달콤한 초콜릿에 푹 빠지 ㄴ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 수영부터 할까?"

"응, 좋아요!"

"그럼 수양복 입으러 가자."

하룬은 제대로 수영을 해 본적이 없었기에 제일 먼저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하룬은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면서 투명 배리어를 통해 호수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며칠을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리는 행복했다.

호숫가의 진흙으로 구운 빨간 벽돌로 외관을 장식한 3층짜리 저택으로 들어간 하룬과 아리는 자신들이 며칠 동안 보낼 각자의 방으로 들었갔다.

"어? 없네."

미리 준비가 다 된 줄 알았더니 방에 있는 붙박이장에는 가운과 몇 개의 수건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미리 준비했어야 하는 건데.'

하긴 벨을 만난 후로는 항상 벨과 아리가 자신을 챙겨 왔기에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써 본적이 없다. 하룬은 이제야 벨과 아리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왔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하룬은 자신의 수영복을 들고 응접실에 서 있는 아리를 볼 수 있었다.

"헤헤! 잊어버리고 그만 내 방으로 가지고 갔어요."

"아......그, 그렇구나!"

하룬은 비키니를 입은 아리를 보고 그답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늘씬한 각선미에 볼륨과 균형미를 가진 아리는 그야말로 여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두웅! 둥!

갑자기 심장이 거세게 요동을 쳤다. 심장이 박동하느 소리가 귀에 들렸다. 눈을 돌리고 싶은데 돌릴 수가 없다. 아리의 수줍은 미소와 정감이 가득 어린 반짝이는 눈에서 형언할 수 없는 마력이 뿜어져 그를 마비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나 예뻐요?"

부끄럽지만 꼭 물어보고 싶었다. 물론 그 대답을 알고 있지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으응. 아......주 많이."

하룬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환하게 피어오르는 폭발적인 미소가 강렬한 향기를 발산하며 그를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벨과 자신의 앞이 아니면 거의 차갑거나 무표정했던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는 하룬의 모습이 아리는 너무 생경하다. 하지만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는 아리다.

행여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라도 들킬까봐 애써 진정을시켜 보지만 입술이 자꾸만 마른다.

"푸훗! 이상해요, 오빠!"

'부끄럽게 계속 쳐다보면 난 어쩌라고, 히잉!'

더 이상은 부끄러워서 안 될 것 같다.

아리는 멍하니 서 있는 하룬에게 다가가 수영복을 내밀었다.

"여기 수영복!"

"어엉."

수영복을 내밀자 겨우 정신을 차리는 하룬이지만 거의 붙듯이 가까워지 아리의 몸에서 짙은 향기가 느껴지자 순식간에 눈빛이 뜨거워졌다.

하룬의 손은 수영복 대신에 아리의 허리를 거칠게 끌어안았다. 다가온 하룬의 눈동자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가까워지자 아리는 말라 버린 입술을 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영은 어쩌고요?"

"사랑해!"

그건 아리가 바라던 최고의 대답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다.

"사랑해!"

"오......헙!"

강렬한 하룬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과 함께 그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지는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 아리는 눈을 감았다.

'나도 사랑해요!'

축축하면서도뜨거우 하룬의 입술이 닿는 순간 몸이 녹아들었다. 맞닿은 입술에서 시작된 열기는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지고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켜 버렸다. 자신의 몸 중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입술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신경조직이 마비된 대신 그 기능은 모두 입으로 쏠려 버린 듯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한 감각이 입에서 느껴졌다.

아리는 그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온 순간 본능적으로 맞이하며 두 팔을 올려 하룬의 목을 감았다. 허리르 ㄹ감았던 하룬의 팔에 힘이 들어가며 그녀의 몸이 들렸다. 아리는 붕 뜬 상태가 불안했는지 늘씬한 두 다리로 하룬의 허리를 감았고 두 사람은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린 채 입을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키스가 끝난 후 하룬이 속삭였다.

"지금, 아니면 밤에?"

"지금 당장."

수줍은 열꽃과 함께 강렬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아리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하룬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안은채 성큼성큼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슬립!"

7서클 대마법사인 포이온 백작이 이끄는 70여 명의 마법병단이 일제히 마법을 펼치자 천여 마리의 마수들이 잠에 빠져 들었다.

마수들의 기척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베이트라스 단장의 손이 올라가자 세인트빌 기사단 100명이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세인트빌 기사단은 비정규 기사단으로 테론 제국시절에는 침투, 정탐, 암살 등 미르 공작가의 은밀한 일을 처리해 왔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오러 광이 번뜩였다. 은밀하게 움직이며 휘두른 검에 잠이 든 마수들의 머리가 떨어져 나가거나 심장이 뚫리고 있었다.

다시 베이트라스 단장의 손이 올라가자 어둠의 숲에서 활약하던 레인저 기사단이 움직였다. 민첩하게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그들의 손에는 복합궁과 날렵한 철시가 들려 있었다.

레인저 기사단은 마수들을 처리하고 성벽 가까이에 멈춘 세인트빌 기사단의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경계병이 오가는 성벽과는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들이 부풀어 오른 팔근육에 복합궁의 활대가 반원으로 구부러졌다.

슉!슉!슉!

"커억!"

털썩!

"큭! 저......"

전문 궁사는 아니지만 어둠의 숲에서 10년 이상을 보낸 레인저 기사들의 활 솜씨는 정확해서 성벽 위를 오가며 경계를 서는 흑전사들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탁!

레인저 기사단의 뒤를 따라온 레인저 병사들이 급조했지만 단단한 사다리를 성벽 위에 걸쳤다.

"가자!"

세인트빌 기사단이 먼저 움직였다. 한 번의 도약으로 사다리의 중간을 밟고 성벽 위로 날아간 기사들은 성벽 중간에 위치한 초소를 들이닥쳐 쉬고 있는 흑전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적이다!"

"비상!비상!"

"카악!"

작전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고함과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흑전사들을 지휘하느 흑기사들이 몇 명 섞여 있었고 그들은 세인트빌 기사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성벽 가까이에 도착한 베이트라스 단장은 갈수록 적들의 실력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욕설을 내뱉었다.

"타앗!"

"아아악!"

"죽어랏!"

이전 같으면 벌써 정리가 되었어야 할 성벽 위에서는 아직도 간헐적으로 고함과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최소 익스피트 중급의 실력을 가진 세인트빌 기사들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들이 꽤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만만치 않을 것 같군요!"

어느새 셭으로 온 미리우테 백작의 말에 비이트라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안개 속을 둘러보았다. 눈에 기를 집중하자 흑마법진을 해체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마법 병단과 속속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가는 기사들이 보였다.

"우리도 올라갑시다!"

2군 3로의 수외부들은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땡!땡!땡!땡!

안개에 휩싸인 성안에는 연방 비상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적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정황이 눈에 들어왔다.

성 중앙에 위치한 거대하 ㄴ지구라트 건물 꼭대기에 있는 첨탑이 가동된 듯 보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테오 백작, 준비해주십시오."

마법 병단을 이끄는 테오 백작은 곧 10명의 동료 마법사와 함께 자리를 잡고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들을 황실에서 파견한 4명의 최상급 익스퍼트 기사들이 지켰다.

7서클 마법사 1명에 6서클 마법사 4명 그리고 5서클 마법사 5명이 연수해서 펼치는 마법이라야 지구라트 건물을 파괴할 수 있다.

"공격!"

성벽 위로 올라온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성안으로 뛰어내렸다. 비록 안개가 자욱했지만 가즈 로드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이미 수차례 전추를 겪은 노련한 병력이라 자신이 맡은 지역을 향해 달려갔다.

"다 쓸어버려라!"

지구라트를 비롯해서 성안 건물들에세 쏟아져 나온 다크니스 무리도 속속 성벽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차앙!채앵!

"죽어!"

"너나 뒈져!"

뽀족한 살기를 앞세운 양측이 부딪쳤다.

곧 성안 곳곳에는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무기 부딪히는 소리와 살상당한 이가 내뱉는 처절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미리 마법으로 생생히켜 놓은 자욱한 안개로 인해 시계는 5미터를 넘지 못하는 터라 거의 일대일로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베이트라스 단장은 몸을 짓누르던 음습한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러자 사제들에게 미리 받았던 각종 축복의 힘이 강하게 발동되었다.

"흑마법진이 깨졌다!"

우렁찬 그의 음성에 사방에서 드르키스 무리가 쓰러지거나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상대의 힘과 기량이 일시에 30퍼센트 이상 향상된 영향은 생각보다 커서 일시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가즈 로드 측 기사들의 검에 어린 검기가 쑤욱 늘어나며 상대의 갑주 사이를 가르고 찔렀다. 적의 폭발적인 움직임에 당황한 다크니스의 흑기사들과 흑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연쇄적으로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구라트에서 적의 수뇌부들이 속속 나오면서 전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토네이도!"

"윈드 업!"

지구라트에서 쏟아져 나온 흑마법사들이 마법을 펼치자성안을 휘감고 있었던 안개가 걷혔다.

"다크 핸드!"

"다크 에로우!"

흑마법사들이 대인 공격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5서클의 흑마법으로는 익스퍼트 급 기사들의 오러 소드를 효과적으로 공략하기는 힘들었다. 선봉에 선 가즈 로드 측 기사들의 검기는 머리통만큼 커진 검은 손들을 자르고 검은 화살들을 어렵지 않게 쳐 내고 있었다.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어느새 건물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은 궁사들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슈욱!숙!슈욱!

"크악!"

푸욱!푸욱!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흑마법사들.

공격 마법을 펼치던 흑마법사들이 황급히 흑기사들의 뒤로 물러나고 있었지만 화살은 쉴 새 없이 날아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두 번의 공성전을 통해 1,000야 먕의 희생자가 나서 이제는 4,000명 밖에 남지 않은 3로의 병력이지만, 얼추 3,000명으로보이는 적들을 절반 가까이 쓰러뜨린 상태였다. 적들도 강했지만 이쪽은 다크니스에 비해 전투 경험이 풍부할 뿐 아니라 난전에 무척 강하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다크니스의 성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일종의 시가전이라, 상대 흑마법사들의 공격 마법은 그다지 큰 효과가 없다. 더구나 돌풍 용병대의 조언을 받아들여 합류시킨 전문 궁수대의 활약으로 흑마법사들은 물론 호위로 인해 상대 상대 전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다.

'이전에 비해 강한 놈들이지만 추이는 비슷하군.'

다소 긴장을 했던 베이트라스와 수뇌부는 성 중앙의 지구라크를 향해 연방 미릴고 있는 다크니스 측을 보며 안심을 했다. 이제 대형 공격 마법만 터지면 전황은 유리한 극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그 때 베이트라스는 지구라트 4층에서 10명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헛! 저들은?'

새로 나타난 흑기사들이 뽑은 검에서 검은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나는 것을 본 순간 베이트라스를 비롯한 기사단 수뇌부들이 일제히 성안을 내달렸다.

'소드 마스터가 여섯이나 되다니!'

이전에 공격했던 성의 경우 많아 봐야 3명에 불과했던 소드 마스터가 이곳에는 두 배나 많았다. 5,000명 단위로 분리된 가즈 로드의 1개로의 경우 소드 만스터는 셋이다. 물론 초급도 있지만 그 지휘자는 중급 이상이기에, 초급이면서도 불완전한 소드 마스터가 셋인 다크니스를 효율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뭔가 달라!'

세 기사단장들이 날듯이 달려가는 동안에 맹렬하게 달려들던 가즈 로드의 선보잉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악!"

"크윽!"

선봉에 선 병사들이 오러 블레이드에 의해 무기와 함께 몸이 통째로 잘리고 있었다. 검기를 사용하는 기사들의 경우에도 오러 블레이드와 부딪힌 충격으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놈!"

베이트라스의 검에서 솟아오른 1미터의 오러 블레이드가 상대의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와 부딪쳤다.

꽈앙!

무기가 충돌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광음과 함께 주변에서 싸우고 있던 양측 병력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주르르.

충돌의 여파로 뒤로 세 걸음 정도 밀린 베이트라스의 입매기 비틀렸다. 상대의 오러 블레이드가 희미해졌다가 다시 생성되기를 반복한 걸 보았던 것이다. 전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기에 이 정도의 상대는 빠르게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발끝에 힘을 주는 순간 앞으로 쏘아 가는 베이트라스의 검에서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상대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 베이트라스의 오감이 불길한 신호를 보냈다. 옆구리 쪽이었다.

"타앗!"

나직한 기압성과 함께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은 음침하고 진득한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였다.

'흐읍!'

휘리릭!

베이트라스는 기겁을 해서 공중에서 몸을 뒤틀어 황급히 검의 궤도를 바꾸었다.

꽈앙!

전력을 다하지 못한 탓에 수 미터 밖으로 미린 베이트라스는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들을 맞이해야만 했다. 상대가 합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는 줄였어야 했는데'

아쉽지만 기습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대가 소드 마스터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오감을 가진 소드 마스터는 오로지 마나운용과 기량으로 상대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가지 로드의 세 소드 마스터는 6명의 흑기사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중급에 오른 베이트라스의 경우는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초급 실력인 두 기사단장들의 경우 이제까지의 전투 경험으로 같은 초급인 두 상대의 합공을 간신히 저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급조되었다고는 하더라도 소드 마스터의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는 사이에 가즈 로드 측 마법사들은 기사들의 보호 속에서 주문을 완성했다.

곧 성벽에서 10개에 달하는 거대한 불덩어리드링 솟아올라 지구라트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에 당하기만 할 다크니스가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 6명과 함께 나타난 흑마법사 4명이 바로 지구라트 전체를 감쌀 정도의 다크 실드를 펼쳤다.

"모두 실드를 쳐라!"

성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호위 기사들에 둘러싸여 마법을 간간이 날리던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다크 실드를 펼쳤다.

지이잉.

금방 지구라트 전체가 수십 겹의 검은 방어 막에 휩싸였다. 

이내 빠르게 날아온 거대한 불덩어리들이 그 검은 방어 막을 강타했다.

꽈아아앙!

엄청난 괴음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던 양측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충격의 여파로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거대한 마나가 충돌하며 발생한 충격파는 적아를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충격파가 얼마나 강했는지 성안 건물 위에 자리를 잡고 있던 궁사들마저 날아가 큰 피해를 보았다.

충격파에 휩쓸려 이리저리 쓰러진 양측의 시선이 일제히 지구라트를 향했다.

와아아!

다크니스 측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구라트는 무사했던 것이다. 보라색 광채에 휩싸인 첨탑도 건재했고, 다크 실드를 펼친 흑마법사들도 크게 피해를 본 기색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 빌어먹을!'

마나를 한 바퀴 돌려 몸 상태를 점검하던 베이트라스의 눈에 암울한 빛이 일렁였다. 이렇게 되면 지원군을 막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신의 이름으로 이루노니 어둠의 종들이여, 일어나라!"

검으색 구슬이 박힌 지팡이를 든 흑마법사의 주문에 성벽 바로 밑의 따잉 들썩이더니 좀비들과 스케레톤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말도 안 돼!"

햇빛이 있는 시간에 언데드가 모습을 보이다니!

가즈 로드의 마법사들은 너무 놀라 외우던 주문마저 멈춰버렸다. 하루느이 돌풍 용병대와 동행했던 마법사들을 통해 다크니스가 제련한 언데드들이 대낮에도출연한다는 사실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은 흑마법진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흑마법진도 해체된 상태였다.

'엇!'

성벽 쪽을 보던 베이트라스의 눈이 커졌다.

어정거리는 것이 정상이 ㄴ봄비가 민활한 동작으로 성벽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기 때무이다. 상점이 떨어쟈 나가고 송곳니가 튀어나온 좀비들은 검이나 도 같은 무기를 살아 있는 상태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축복 마법을 걸어 주느라고 뒤늦게 합휴한 사제들을 보호하고 있던 성기사들의 검이 좀비르 향해 날아갔지만 놈들은 쉽게 당하지 않고 재주를 넘어 피하거나 강력하게 무기를 마주 휘둘렀다.

신성력이 깃든 검과 부딪혔는데도 불구하고 좀비들은 거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홀리 파워!"

"디바인 라이트!"

사제들의 신성 마법이 더해졌지만 크게 소용이 없었다. 한번 부르르 떠는 것으로 신성력을 떨쳐 버린 좀비들은 분노했는지 거칠게 성기사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는데, 그 움직임이 기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좀비가 마나를 사용하는 거지?'

육체적인 능력으로 말도 되지 않는 기민하고 쾌속한 움직임과 공격을 본 베이트라스의 눈이 암울해졌다. 그런 그의 눈에 찢기거나 혜진 가족을 걸친 좀비들의 드러난 몸에 자리한 검은색 빛나는 문신들이 들어왔다.

좀비들과 달리 스켈레톤들은 성안 쪽을 향해 진곤하고 있었다.

파직!

뼈가 부러졌다.

"아악!"

스켈레톤에 검을 날렸던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옆구리 뼈가 부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스켈레톤은 빠르게 그 병사를 덮치며 그의 몸을 잡은 것이다. 옆에 있던 스켈레톤들이 가세했다. 졸지에 병사의 사지가 스켈레톤들에 의해 잡힌 것이다.

"살려......으아아악!"

병사의 사지가 생으로 뜯겨 나갔다. 엄청난 피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감당하기 힘든 공포를 퍼트렸다.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들이 사지를 입으로 가져가 씹기 시작했고 붉은 피와 살점들이 스켈레톤의 뼈 사이로 흘러내렸다.

'보통의 언데드가 아니다!'

이제까지 상대했던 언데드들도 강화된 것들이었는데 이것들은 몇 단계는 더 강화된 것 같았다.

솔직하게 두려웠다. 기사 급의 능력을 발휘하는 좀비들과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살기 어린 스켈레톤들의 요사하게 빛나는 검은 안광이 불안감을 끌어 올렸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본격적으로 언데드들이 활동하게 되면 이미 성안으로 진입한 자신들은 완전히 포위가 된 것이다.

"후......!"

후토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베이트라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자루의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를 보고 황습히 하나를 일으켜 오로 불레이드를 생성시켰다.

꽈앙! 꽝!

연쇄적으로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던 그의 몸이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사정없이 밀렸다.

"쿨럭!"

미처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한 공격이라 내장이 자리를 이탈했고 상당량의 마나가 마나 로드를 벗어났다. 다른데 정신을 팔았던 대가가 너무 컸다. 이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마나를 운용할 수 없었다.

피를 뱉으며 창졸간이지만 주위를 둘러본 베이트라스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두 기사단장 역시 2명씩 소드 마스터에게 강력한 합공을 받고 있었는데 아까와는 달리 연방 뒤로 밀리고 있었다.

파라락!

검은색 갑주를 입은 두 소드 마스터가 마치 악마의 혓바닥처럼 빠져나온 오러 블레이드를앞세우고 달려들었다. 두 놈의 움직임은 소드 마스터답게 바람처럼 빠르고 뱀의 그것처럼 민활했다.

베이트라스는 두 다리에 마나를 주입해서 상대들의 검을 피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반은 짧아지고 두께도 얇아진 자신에 비해 상태의 오러 블레이드는 변화가 없었다.

꽝앙! 꽝! 꽈앙! 꽝!

충돌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베이트라스의 오러블레이드가 짧아지면서 그 충돌음은 차차 작아졌다.

까앙! 까앙! 까앙!

짧은 시간에 수십 번이 넘는 검격을 감당했던 베이트라스의 오러 불레이드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고 푸른색 오러만이 겨우 검신을 감싸도 있었다.

베이트라스는 마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고 오러 소드로 적으리 오러 블레이드를 감당했다. 놈들 역시 수십 번이 넘는 충돌이 버거웠는지 오러 블레이드가 희미해졌다.

아직 살아남은 몇 명의 궁사가 날린 화살이 상대의 틈을 노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드 마스터답게 가볍게 검을 휘둘러 화살을 부러뜨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벌수 있었다.

"후아, 후욱!"

거칠게 숨을 내쉬던 베이트라스의 눈이 빠르게 주변을 훓었다.

어느새 그 많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시체로 변해 있었다. 수천구에 달하는 좀비와 스켈레톤 들이 후방에서 덮쳐오자 가운데 끼인 기사들과 병사들은 강렬한 살기에 잠식된 적들과 파상 공세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상벽 쪽을 바라본 베이트라스의 입이 벌어졌다.

사제들을 물론이고 마법사들과 성기사들에게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좀비들은 마법을 맞아도 금방 일어났고 검에 베여도 꿈쩍도 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흐흐흐! 강화 언데드의 위력이 대단하지?"

문득 들려온 음침한 목소리에 얼굴을 돌린 베이트라스는 언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젊은 흑마법사를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구라트의 첨탑을 감싸고 있던 보라색 광채는 사라졌고 그 옆쪽에는 100여 명의 흑기사들과 흑마법사들이 서 있었다.

'큰일이다!'

놈들의 워프 마법진을 부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우려하던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

"너, 넌 누구냐?"

"흐흐흐! 난 다크니스의 군주인 다크 프린스! 앞으로 세상은 내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다크 프린스?"

처음 듣느 이름에 베이트라스의 눈매가 좁아졌다.

"내 이름보다는다른 게 더 궁금하겠지. 내 현신을 제일 먼저 본 적이니 설명해주지. 저기 보이는 강화 언데드는 신성력이 큰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신성력을 대하면 강력한 분노를 느껴 버서커 상태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성기사들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거지. 또 마왕의 파편이 가지고 있던 흑마력의 영향으로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능력까지 장시간 쓸 수 있고 하루 이틀이면 소모된 마력을 보출할 수 있으니 아주 멋진 놈들이지."

"마왕의 파편?"

베이트라스는 강화라는 말을 통해 많은 걸 알 수 있었지만 마왕이라는 단어에 크게 놀라는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는 베이트라스와 오래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의 뒤쪽으로 지구라트의 첨탑이 다시 보라색 광채레 휩싸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워프가 진행되는 것이다.

"흐흐흐. 이제 지옥에 가서 다른 동료들을 기다려라. 금세 성지를 침범함 자들을 모두 그돗으로 보내 줄 테니까. 하하하! 처리해!"

그가 뒤로 물러서자 두 소드 마스터가 달려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제 상태를 회복한 두 소드 마스터의 검에는 처음과 같은 검은색 오러 블레이드가 생겨나 있었다.

"타앗!"

강한 기합과 함께 마나를 끌어 올린 베이트라스의 검첨에성 푸른색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오르다가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마나가 소진되고 만 것이다. 본래대로라면 계속해서 흡수되어야 할 마나였지만 마나 로드가 손상되고 큰 충격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의지를 분산했던 것이다.

파앗!

발가락에 힘을 주어 뒤로 튕기듯 날아가느 ㄴ베이트라스는 간신히 허리와 머리를 베어 오는 오러 블레이드는 피했지만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목을 향해 내리치는 오러 소드는 피할 수가 없었다.

"크윽!"

베이트라스는 다른 두 기사단장들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난자되는 것을 보았다. 산지사방으로 도망치는 수하들과 그들을 향애 마법과 무기를 난사하는 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개가 걷히자 프르렀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붉은 색의 바다로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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