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0화.귀환의 도중 (241/278)
  • 귀환의 도중

    -우이, 날 올려 줄 수 있겠어?

    -그건 어렵지 않아.

    토네이도와 연결된 것과는 다른 또 하나의 끈이 중단전에서 나와 하룬의 양 발바닥으로 향했다. 그 후 하룬의 발바닥 밑에는 작은 돌개바람이 생성되었고 먼지구름을 뚫고 하룬의 몸은 흔들림 없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상공에 부는 맞바람으로 인해 풀어 둔 외투가 펄럭이자 마치 날개처럼 보였다. 먼지바람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룬의 모습에 양쪽의 오르그와 휴먼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이에게 도움을 받아 하늘 높이 떠오른 하룬의 눈에 족히 수만은 될 엄청난 숫자의 오르그들이 들어왔다. 놈들은 비록 자장 토네이도로 인해 추격을 멈추었지만 언제라도 다시 추격을 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오르그들은 하룬의 존재에 놀라 고함을 지르는 등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건 반대편이 있던 휴먼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수 강을 향해 도망치던 휴먼들은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하룬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바람을 맞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을 만끽하던 하룬은 수만에 달하는 오르그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너무 많아! 그리고 혼란에 빠지긴 했지만 포기할 것 같지도 않고.’

    혼란에 빠졌던 오르그들이 다시 무리를 정비하고 있었다. 제법 지도력이 있는 지휘관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도망치던 휴먼들이 뭔가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대로라면 우이와 파이가 고생한 보람도 없이 다시 추격이 시작될 것이다.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각성한 우이와 파이의 힘으로 더 이상은 저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만큼 수천에 달하는 휴먼들이 무사히 도강하는 건 무리다. 

    하룬의 눈이 이쪽보다 고지대에 있는 용암지대를 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라이, 이 앞의 땅을 흔들어 줘. 가능하면 용암이 이쪽까지 흐르도록.

    -알았어, 친구.

    라이는 지체없이 움직였다. 하룬의 발바닥까지 이동한 라이의 한쪽 끝이 대지로 스며드는가 싶더니 하룬이 떠 있는 곳을 경계로 해서 북쪽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르,

    쿠르르릉.

    하룬이 떠 있는 곳을 경계로 시작된 대지의 요동은 굉음과 함께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하룬이 원한 대로 넓은 범위에서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마치 파도처럼 오르그들을 향해 밀려가는 대지의 요동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공포를 주고 있었다.

    요동치며 드러나는 속살에는 높은 용암지대에서 흘러나온 뜨겁고 붉은 용암이 증기와 함께 흐르기 시작했고, 즉시 주변 대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퇴각하랏!”

    “퇴각!”

    오르그들은 자신들을 항해 밀려오는 지진의 파도에 놀라 이제까지와는 달리 무질서하게 도망을 치고 있었다. 무엇이든지 삼켜 버리는 지진과 삼킨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용암은 용맹하기로 소문난 오르그 전사들에게도 더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정도면 나중에 쫓아오더라도 한동안 시간을 벌 수 있겠지?’ 

    하룬은 우이에게 부탁해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어느새 토네이도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굳이 토네이도가 없어도 오르그들은 정신없이 도망치기에 바빴다. 

    하룬은 상황을 잠시 주시하고는 휴먼들을 항해 달려갔다. 마음이 급해 메신저 패스트 스킬을 펼친 하룬의 몸은 마치 새처럼 멍청하게 사태를 바라보던 휴먼들에게 날아갔다. 

    막 휴먼들의 후미에 도착한 하룬은 뜻밖의 상황을 맞이했다. 휴먼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엎드려 그를 경배했던 것이다. 휴먼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위대한 퉁그리여!”

    “퉁그리여, 부디 자비를!”

    하룬은 휴먼들이 왜 오르그들이 사용하는 퉁그리란 용어를 자신에게 외치며 경배하는 지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선두쪽으로 향했다.

    휴먼들의 선두에는 청년들과 장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도망을 치다 보니 강건한 육체를 가진 이들이 맨 앞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하룬이 패스트 스킬을 거두고 평상시 걸음으로 그들에게 걸어가자 멍청하게 서 있던 휴먼들이 일제히 땅바닥에 엎드렸다.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보퉁이를 메거나 들고 있었는데 오랜 도피로 인해 더러워진 옷 밖으로 앙상하고 시꺼멓게 탄 탄력없는 살결이 드러나 있었다.

    ‘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절대 군주나 신이 된 듯이 느껴졌던 것이다. 바닥에 엎드린 휴먼들에게서는 절대적인 경배의 염念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터라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이의 능력을 이용해서 하늘로 떠올랐던 것을 보고 뭔가 다른 생각을 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보이는 극경의 태도가 기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왠지 불편했다.

    ‘휴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하룬은 얼굴 가리개를 위로 젖혀 올리고 선두 쪽에 있는 휴먼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난 돌풍 용병대의 대장 하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제법 큰 소리로 말했기에 못 들은 휴먼은 없을 텐데 한동안 그의 말에 화답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룬의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확인하는 이들은 여럿 있었다. 그 중 눈빛이 무척 맑은 중년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정말 동풍 용병대의 대장입니까?”

    그 사내는 돌풍 용병대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맞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서 이야기하지요.”

    하룬은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사내를 필두로 주변의 휴먼들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후드와 얼굴 가리개를 젖힌 하룬을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풀리고 있었다. 같은 휴먼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많이 가셨던 것이다. 

    “그럼 돌풍 기지에서 나오신 겁니까?”

    “네, 우리 돌풍 용병대의 본거지가 돌풍 기지입니다.”

    하룬의 입에서 돌풍 기지가 언급되자 그에게 다가오던 사람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중 아까 처음 말을 했던 중년인이 놀란 가운데 기쁜 기색을 띄며 하룬의 손을 붙잡았다.

    “정말 반갑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우린 오르그들을 피해 도망을 치던 중입니다. 우린....”

    “잠시만요, 아무래도 강은 건너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는게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강을 건너왔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 대원들이 걱정을 하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오르그들이 물러났지만 언제 쫓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아! 그렇군요. 대장님의 말슴을 따르겠습니다.”

    하룬의 말을 수긍한 사내는 죽었다가 살아난 표정이 되어 주변 휴먼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으세요! 여자들과 아이들부터 챙기고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그의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일제히 흩어지는 것을 보니 그가 이 무리의 수장인 것 같았다. 고생을 많이 한 듯 마르고 푸석푸석한 얼굴을 했지만 그 눈빛은 이제까지 만난 그 어느 누구보다 맑고 깊은 중년인은 하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전 임시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암무라고 합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 미리 강으로 가서 뗏목을 만들 나무들부터 준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출발할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이 길로 쭉 갈테니 곧장 따라오면 됩니다.”

    하룬은 그 말과 함께 메신저 패스트 스킬을 펼쳐 새처럼 날아 아리수 강으로 향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도강하려면 꽤 많은 뗏목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벼운 통나무가 꽤 많이 필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수 강가에 도착한 하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하게도 강가에는 버드나무 종류의 키 큰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오르그들의 영역에서는 보지 못했기에 걱정을 했던 것이다.

    하룬은 박살을 꺼내 들고 기를 주입시켰다. 비욘드에서야 소드 마스터에 이른 하룬이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그 정도는 안 되었다. 하지만 검기를 생성시켜 지름 50센티미터 정도의 나무를 자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룬은 기를 주입시켜 나무를 베고 가지를 다듬고 적당한 길이로 자르는 작업에 전념했다. 그가 신속하게 작업을 한 결과 휴먼들이 강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뗏목 10개분의 통나무들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뭘 도우면 될까요?”

    암무를 비롯해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하룬을 향해 다가왔다.

    “도강을 준비해 주십시오. 전 마저 작업을 마치도록 하지요.”

    하룬은 손바닥 길이의 나무토막을 비수로 양쪽이 날카롭게 만들었다. 기를 사용했기에 양날 못을 만드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아삳. 하룬의 주위에는 금방 양날 못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아까처럼 휘둥그레졌다. 비수를 쥔 손이 조금만 움직이면 나무토막이 금방 양날을 가진 나무못으로 변했던 것이다.

    하룬은 양날 못이 적당해지자 이번에는 통나무를 10개씩 모아 뗏목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했다. 양날 못의 중간을 쥔 하룬의 손에 힘이 가해지자 통나무의 한쪽에 못이 쑥쑥 박혔다. 그리고 다른 한쪽 역시 너무나 쉽게 통나무에 박혔다.

    그런 식으로 뗏목 10개가 금방 완성되었다. 그것을 들어 강으로 던진 하룬은 사람들에게 나무를 깎아 만든 노를 나누어 주었다.

    “갈수기라 강이 그렇게 깊지 않고 물살도 세지 않으니 조심만 하면 어렵지 않게 강을 건널 수 있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너무나 쉽게 뗏목을 완성하는 것도 그렇고 엄청난 무게를 가진 뗏목을 가볍게 들어 강가로 던지는 것에 경악한 암무지만, 지도자답게 금방 정신을 차리고 사람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렸다.

    ‘약자를 배려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군.’

    아까 여자들과 아이들이 뒤처진 것을 보고 조금은 실망했던 하룬이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약자가 처한 상황 때문에 불쾌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자와 아이들부터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들었다.

    휴먼들의 숫자는 얼추 3000명에 가까웠기에 하룬은 다시 뗏목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번에 10명 정도 건널 수 있었기에 도강에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하룬의 뗏목 20여개를 만들어 내자 도강은 점점 더 속력을 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소모한 끝에 도망자 무리는 모두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강을 건넌 휴먼들은 멀지 않은 작은 숲에서 식사를 겸해 휴식을 취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룬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없었을 겁니다.”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담담하게 감사에 화답한 하룬은 암무를 비롯한 무리의 수뇌부들의 안내를 받아 숲으로 갔다.

    “좀 드십시오!”

    이들이 대접을 한다고 꺼낸 것은 말라 딱딱해진 육포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과일이 전부였다. 따로 그릇도 없었고 도망치는 와중에 먼지까지 내려앉아 더러워진 음식이었지만 그래도 이들에게는 귀한 음식이었는지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목젖이 꿈틀거렸다.

    ‘에고! 이거 부담스러워서 목에 넘어갈지 모르겠네.’

    사실 그리 배도 고프지 않았다. 한 두끼 정도 건너 뛰는 것은 한동안 해왔던 생활이고 배가 고프다는 감각 역시 다른이들에 비해 심한 편도 아니다.

    “전 얼마 전에 식사를 해서 괜찮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음식이 너무 초라하지요?”

    “아닙니다. 입에 들어가면 모두 똑같은 음식입니다. 그런 것을 가리는 성격은 아닙니다.”

    암무는 하룬의 눈을 잠시 응시하더니 진심임을 확인한 듯 굳은 표정을 풀었다. 아마 무시를 받았거나 자신들이 초라하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럼 더 이상 권하지 않겠습니다. 자, 모두 식사합시다! 강을 건너왔으니 얼마 후면 우리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곳에도 숲이 있으니 먹을 것은 또 찾으면 되니까 일단 아껴 왔던 음식을 모두 먹어 버립시다. 그리고 힘을 내는 겁니다. 이제 강을 무사히 넘었고, 오르그들에게 더 이상 쫓기지 않아도 되니 맛있게 식사를 합시다!”

    암무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묘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군.’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기분을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맑은 눈빛도 그렇고 목소리에는 강한 설득력이 담겨 있어 능히 한 무리의 지도자가 되고도 남을 사람이다. 

    곧 사람들의 분위기는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들고 있던 보따리나 메고 있던 옹색한 배낭을 뒤져 아끼고 아꼈던 음식을 꺼냈다. 그래 봐야 암무가 하룬에게 내민 것처럼 말라붙은 육포 쪼가리나 과일이 전부였지만 꺼낸 음식을 가족과 친지에게 나누어 주는 손길에는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이게 전부인가 보네.’

    가족별로 혹은 친지들끼리 앉는 바람에 모두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눈에 들어오는 광경을 통해 안 사실은 이들이 마지막까지 아껴 온 음식이라고 해봐야 몇 번 우물거리다가 삼켜 버리면 끝일 정도로 적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도망을 쳤던 거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 행색으로 보아 무진 고생을 한 것만은 확실하다. 하나같이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에 피곤함과 고단함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이들을 바라보는 하룬의 눈이 촉촉해졌다.

    “전 잠시 산책을 좀 하겠습니다.”

    “아, 네.”

    암무는 말라붙은 육포를 입안에 넣고 침으로 녹여 가며 필사적으로 이빨을 움직익 있었다.

    “아빠, 나도 같이 가면 안돼?”

    그 때 암무의 곁에 있던 작은 동체가 입을 벌렸다. 먼지와 오물로 더러워진 가죽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있던 아이의 얼굴이 비로소 보였다.

    ‘귀엽네.’

    동그랗게 뜬 눈이 얼굴의 절반은 될 것 같다. 아빠를 닮아서인지 맑은 눈빛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를 가진 아이든 뼈에 살가죽을 씌워 놓은 듯한 몰골이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실례야?”

    육포를 씹느라고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암무에게 다시 물으면서도 시선은 하룬에게 향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당장이라도 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벨의 어린 시절이 있었다면 저러지 않았을까?

    “괜찮다면 이 오빠랑 강변을 구경할까?”

    “헤헤! 좋아요!”

    하룬의 말이 기뻤는지 바로 일어나 깡충거리는 소녀를 보며 하룬이 푸근한 미소를 떠올렸다.

    “괜찮으시면 잠시 데리고 가도 될까요?”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제게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군요. 저에게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은데요.”

    여동생 이야기를 꺼내자 불안해하던 암무의 얼굴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우리 미앙은 태어날때부터 몸이 좋지 않아 오래 걷지 못하는데도 오늘은 전에 없이 기분이 좋은 것 같네요. 원래 사람을 무척 가리는데 좀 뜻밖입니다. 아까 하룬님이 자신을 구해준 것을 알아서 그런 모양이네요.”

    그러고 보니 부모와 떨어져 뒤처지다가 넘어져 죽을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던 아이들 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하룬은 미앙을 데리고 강변으로 걸어갔다.

    툭!

    왼손에 뭔가 부딪히는 감촉에 눈을 돌려보니 미앙이 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왜?”

    “오빠, 손잡아도 돼요?”

    “응.”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미앙은 하룬에게도 특별한 경험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다소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하룬이기에 이런 경우는 각별하다. 굳이 찾자면 트래시 스트리트에서 만났던 스팟 정도가 전부였다.

    하룬은 미앙에게 왼손을 내밀엇다.

    “헤헤!”

    기쁜 듯 하룬의 손을 집는 미앙이지만 하룬의 손은 그녀의 손에 비해 너무나 컸다. 미앙은 하룬의 큰 손을 맞잡으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는 결국 약지를 꼭 잡았다. 뼈만 남은 작고 가녀린 손을 통해 온기가 느껴지자 하룬은 무의식중에 미소를 지었다.

    “배고프지 않아?”

    “미앙은 작아서 조금만 먹어도 돼요. 어른들은 많은 일을 해야 하니까 많이 먹어야 해요.”

    하룬은 그 말을 통해 미앙의 심성을 알 수 있었다. 천진해보이는 눈빛 속에는 어른들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었다. 이 나이라면 어른들의 상황이 어떻든 그저 자신의 배고픔밖에 생각하지 못할 텐데 이 꼬마는 참 속이 깊엇다. 강변까지는 좀 거리가 있지만 이야기를 하느라고 멈춰 서서 강물을 바라보는 하룬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미앙은 물고기 먹어본 적 있니?”

    하룬은 말을 꺼내 놓고 잠시 후회를 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물이나 물고기도 방사능에 어느정도 오염이 되어있을 테지만 미앙이 속한 무리의 행색으로 보아 유니온에서 사는 것 같지는 않았고, 이미 오랫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을 섭취해 왔을 것이다.

    “아니요, 맛있어요? 물고기는 그림으로밖에 본 적이 없어서...”

    “맛있을걸. 오빠가 잡아 줄까?”

    “정말요?”

    환하게 빛나는 미앙의 눈빛은 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상승시켜 주는 것 같았다.

    “기다려 봐.”

    하룬은 수정에게 의념을 보냈다.

    -나이야, 새로 사귄 친구가 배가 고픈 모양인데 네 힘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

    -정말 귀여운 꼬마네, 친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

    -이 정도의 거리도 괜찮다면 부탁할까?

    나이는 하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신의 일부를 기체처럼 풀어 밖으로 향했다. 기체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하룬의 몸과 연결이 된 수정은 50미터는 족히 떨어진 강물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앙이 놀랄 만한 일을 해냈다.

    툭! 툭! 투툭!

    팔뚝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마치 스스로의 의지로 그러는 것처럼 물에서 튀어나와 하룬과 미앙의 발 앞에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와아!”

    미앙의 큰 눈이 더욱 커지며 신기함과 놀람의 감정이 가득 담겼다.

    어느새 두 사람의 발 앞에는 물고기들이 수북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퍼드득! 퍼드득!

    난데없는 봉변을 당해 밖으로 나온 물고기들은 놀라 난리를 쳤지만 그들이 원하는 물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엇!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암무와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그를 위시한 사람들이 놀라 달려왔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물고기들이 스스로 물 밖으로, 그것도 50미터는 떨어진 곳까지 날아오는 것은 그야말로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광경이었던 것이다. 

    물고기들은 어느새 작은 산처럼 샇였다. 아직도 살아 있기에 사방으로 파닥거리며 움직이는 물고기들을 잡느라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숲 안쪽에서 단출한 식사를 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나오는 바람에 하룬과 미앙의 주변에는 몇 겹의 원이 생겨나 있었다. 하지만 두려운지 가까이 접근하지는 않았다.

    -이만하면 될 것 같아. 고마워, 나이.

    -후훗! 친구가 좋아해서 나도 기분이 좋아. 이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부탁해도 돼.

    강물 속으로 스며 들어갔던 나이의 일부는 다시 밖으로 나와 하룬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안 보이나 보군.’

    기체처럼 풀어진 나이의 일부가 하룬의 몸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람들은 전혀 의식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앙만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눈빛으로 하룬을 자꾸 쳐다보았다.

    ‘미앙이 이능력을 가진 모양이구나.’

    이능력자는 워낙 희귀한 존재라 미앙에게 더욱 신경이 쓰였다. 

    “자, 이제 재미있는 걸 해볼까?”

    언젠가 글로벌넷에서 보았던 종말 시대의 서바이벌 소설의 내용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룬은 근처에 있는 작은 관목의 가지를 꺾고 잎과 잔가지를 정리했다. 그러자 나뭇가지는 1미터 정도으 꼬챙이로 변했다.

    “일단 내장부터 빼내야 해. 안 그러면 무척 쓰거든.”

    암기대에서 비수 한자루를 꺼내 든 하룬은 물고기의 아가미에 손가락을 넣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는 배를 갈랐다. 그러곤 안에 손가락을 넣어 내장을 모두 긁어 낸 다음 아까 만들었던 꼬챙이를 아가미에 꿰었다.

    “이제 불에 적당히 구우면 돼.”

    마침 근처에는 뜨거운 햇볕에 누렇게 변한 마른 풀들과 죽은 관목이 보였다.

    “미앙아, 바싹 마른 풀들을 모아 주렴.”

    “네, 오빠!”

    미앙은 자신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쁜 듯 환하게 웃으며 근처에 굴러다니고 있는 마른 풀들을 조그마한 손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하룬은 구경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식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는 마른 관목을 비수로 잘라 정리했다.

    툭! 툭!

    가볍게 움직이는 손길에 사람 키 높이의 관목은 금세 쓸만한 장작과 부산물로 변해 있었다.

    미앙이 가슴 한가득 마른 풀을 모아왔을 때는 이미 그 모든 작업이 끝나있었다.

    “이제 잘 봐!”

    하룬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미앙을 보면서 다른 비수 한자루를 더 꺼내들었다. 그러곤 미앙이 모아온 마른 풀 뭉치 위에 두 비수를 빠르고 강하게 부딪혔다.

    까앙!

    화르르.

    충돌하는 순간 발생한 작은 불똥은 바싹 마른 풀에 옮겨 붙었고 이내 빠르게 타기 시작했다. 하룬은 그 위에 작은 나뭇가지를 던지고는 마른 풀들이 재가 되었을 때 좀 더 큰 나뭇가지들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제법 굵은 장작을 세모꼴로 세웠다.

    활활!

    죽은지 꽤 오래된 나무는 땡볕에 바싹 말라 있는 상태라 금세 타기 시작했고 불길은 더욱 커졌다.

    “이제 물고기를 구울 차례야.”

    하룬은 아가미를 꿴 꼬챙이를 불길 옆의 땅에 깊이 박았다. 그러자 열기에 물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다리다가 맛있는 냄새가 나면 방향을 바꾸어주고 조금 기다리다가 맛있게 먹으면 된단다.”

    “아! 너무 신기해요!”

    “후훗!”

    하룬은 똘망똘망한 눈망을로 자신이 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담아두고 있는 미앙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하룬은 자신을 둘러싼 몇 겹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두 제가 하는 걸 봤을 겁니다. 물고기는 충분하니 같은 방식으로 물고기를 구워서 드시면 됩니다.”

    와아아!

    지금은 하룬이 어떤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았는지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 생각대로 물고기가 방사능에 오염된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은 하룬의 허락이 떨어지자 당장에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목젖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암무는 사람들을 지휘해서 무리마다 적당한 수의 물고기를 나눠 주었다. 그러자 무리마다 역할을 나누고 힘을 합쳐 하룬이 한 방법을 따라 물고기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 물고기가 다 익었는지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하룬은 작은 나뭇가지로 속이 익었는지 확인하고는 미앙에게 꼬챙이를 넘겨주었다.

    “많이 먹으렴.”

    “오, 오빠는요?”

    역시 심성이 착한 미앙이다.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눈길은 다 익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고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하룬을 챙기는 것이다.

    “오빠는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아.”

    “그래도 오빠가 잡은 거니까 같이 드세요.”

    “그럴까?”

    하룬은 미앙의 성의를 봐서 그것까지는 거부하지 않았다. 물고기가 워낙 커서 미앙이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것이다. 방사성 물질도 그리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다시 꼬챙이를 받아 든 하룬은 근처의 나무에서 크고 둥근 잎을 따서 비수로 익은 물고기의 상을 조심스럽게 발라 담았다.

    “자 먹으렴.”

    “고맙습니다!”

    배꼽에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하는 미앙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인사를 하고는 그 작은 입안에 물고기 살을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작은 천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새 무리를 다 챙긴 암무가 다가와 감사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제가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퉁그리가 맞으셨군요. 놀랐습니다. 오르그들 중 일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줄 알았는데 우리 휴먼 중에도 퉁그리가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퉁그리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우르슘 부족에 동화되어 살고 있는 휴먼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왔나 보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탈출을 감행했지만 추격을 떨치지 못해서 몇날 며칠을 오르그들을 피해 도망치느라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이들과 여자들도 꽤 많지만 이끄는 사람들의 능력이 미천해서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습니다. 우릴 구해주신 것도 모자라 이렇게 제대로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배부터 채우도록 하지요.”

    “아! 그러겠습니다.”

    하룬이 아직 물고기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한 암무는 그제야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자신도 무척이나 배가 고플텐데 무리의 구성원부터 챙기는 것을 보면 뛰어난 지도자가 확실했다. 어린 미앙의 행동은 아마 아빠인 암무로부터 교육받은 것이리라.

    오랜만에 입과 배를 만족시키는 식사를 한 후 암무를 비롯한 무리의 수뇌부는 하룬과 자리를 같이했다.

    “여러분들이 오르그들에게 쫓기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네, 말씀드리지요.”

    암무 일행은 파람족의 노예로 지냈다고 했다. 우치의 말대로 오르그 부족들 중 최대의 숫자에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파람족은 폭급하고 잔인한 성정을 가지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자신들에게 반하는 부족이나 아우터들을 붙잡아 노예로 부려왔다.

    수렵과 목축을 주고하는 파람족은 전형적인 약탈 부족으로 그들에게 노예는 가축과 마찬가지로 재산의 일부였다. 다른 부족들은 휴먼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지혜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지만, 워낙 저능한 신체 조건을 가진 휴먼을 노예로 부리지는 않았다.

    앞서 이땅으로 들어온 수렵족들에 비해 뒤늦게 들어온 농경족들은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조금만 방치하면 곧잘 죽어버리는 휴먼들에게 그리 큰 가치를 두지 않았다. 휴먼들은 신기한 물건들은 잘 만들어내고 사용하지만, 햇볕 속에 하루 이틀만 몸을 노출해도 병에 걸려 죽어버릴 정도로 약한 종족이다. 파람족을 포함해서 오르그들에게 휴먼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가장 소중한 식량이나 축내는 약하디약한 이종족이었고, 그나마 손재주가 있고 세밀한 일을 잘하기에 휴먼들에게 일정한 물건을 받는 것으로 그 영역 안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휴먼 여성은 부족한 오르그 여성의 대용이 되기도 했는데 같은 아인종이라 드물기는 해도 임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6개월의 임신 기간에 한 번에 두셋의 쌍둥이를 출산하는 오르그 여성과는 달리, 휴먼 여성은 10개월의 임신 기간과 보통 1명의 아이를 낳는다고 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오르그 남성과 휴먼 여성 간에는 휴먼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믹스트라고 부르는데, 외모와 지능은 인간의 그것이지만 신체 조건은 오르그의 형질을 물려받아 높은 환경 적응력과 강한 신체 능력을 가지다. 다만 믹스트들의 경우 10년이면 다 성장하는 오르그들에 비해 성장기간이 더 오래 걸리기에 그 우월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암무는 믹스트였고 성인이 되면서부터 노예로 비참하게 사는 휴먼들과 믹스트들을 데리고 탈출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암무는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퉁그리의 개인 노예가 되었는데 그 자리를 바탕으로 오르그들의 세력 분포나 영역 그리고 근처 지형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함께 휴먼들과 믹스트틀에게 탈출을 설득했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며 지내는데 어느 날 파람족 전사 대부분이 공물 바치는 것을 거부한 다른 부족을 공격하러 본거지를 떠났다. 

    은연중에 믹스트와 휴먼들의 지도자가 된 암무와 그 친구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탈출을 감행했고 일단은 성공적이었다. 이틀이 지나도록 파람족은 이들의 탈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행운은 이틀의 여유가 다였다. 노예들이 탈출했다는 것을 알아낸 부족의 전사들은 추격을 시작했다. 암무가 이끄는 일행은 조사해 둔 지형이나 영역 등의 정보를 이용해서 추격을 피했지만 그것도 강을 얼마 앞두고 결국 따라잡힐 위기에 빠졌던 것이다.

    “미리 생각해 둔 곳은 있습니까?”

    “강을 건너 동쪽으로 움직이면 휴먼들이 안전한 방어 막 안에서 살고 있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나 받아 주는 곳이 아닌 줄 알지만, 그렇다고 오르그들 사이에서 노예로 지내며 온갖 고초를 겪은 우리를 내쫓을까 싶은 기대를 가지고 찾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도망을 치면서 합류한 일부 휴먼들에게 들어 보니, 최근에 필요가 없다고 100만에 달하는 휴먼을 밖으로 내쫓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민입니다. 사람들의 체력도 이제 바닥이고 먹을 식량도 떨어졌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휴먼끼리 도와도 시원치 않을 상황인데 유니온은 배리어를 축소하고 아우터들과의 거래를 봉쇄하는 등 극히 폐쇄적인 정책을 하고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우리 기지로 갑시다. 비록 좁기는 하지만 여러분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돌풍 기지는 규모가 작다고 들었습니다. ”

    거의 3000명에 달하는 자신의 무리를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여러분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룬의 말에 암무를 위시해서 하룬을 주목하고 있던 휴먼들의 얼굴이 일제히 밝아졌다.

    “돌풍 기지에 대해서는 저도 잡혀 온 아우터들에게 종종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력한 무력을 가진 호위대가 머무는 곳이라고요.”

    “다른 것은 몰라도 안전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물론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돌풍 기지의 모든 주민은 생사를 같이할 마음으로 모여 살고 있습니다.”

    “가겠습니다. 우리에겐 어디라도 가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난 분이 돌풍기지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받아 주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기지에 쓸모가 있는 주민이 되겠습니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은 돌풍 기지의 주민이 되었습니다. 긴장 풀지 말고 안전한 기지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울기 시작했다. 드디어 꿈에도 바라던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이다. 무려 30일에 걸친 힘겨운 대장정이 이제야 비로소 행복한 결말로 끝이 난 것이다. 

    이 때만해도 하룬은 암무나 그 일행이 가진 오르그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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