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와 파이
"이건 친구의 표시로 주는 거요."
오르그들의 회의에 참석한 하룬은 할알로부터 목걸이 하나를 선물 받았다. 재료는 알 수 없지만 염색한 실들을 꼬아서 만든 줄에 투박하게 세공된 푸른 돌이 매달린 목걸이였다. 푸른 돌이 손에 닿자 청량한 기운이 전해지며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룬의 놀란 눈을 지켜보던 할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푸른 돌은 북방의 흰머리 산 정상 부근에서 발견한 것으로 치료의 힘이 깃든 보물이오."
하룬은 사양을 하려고 했지만 목걸이는 이미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할을 비롯해서 수뇌부들의 목에는 선물 받은 목걸이와 비슷한 줄이 걸려 있었다.
"하마터면 힘들게 찾은 기름진 땅을 떠날 뻔했는데 퉁그리 덕분에 일족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소. 그래서 퉁그리에게 우르슘 부족 중 위대한 타루의 일원이라는 표식인 목걸이를 선물하는데 동의했소. 이 목걸이는 우리 부족의 수뇌부라는 걸 알려 주는 물건이니 멀리까지 상행을 하다가 휴먼들을 적대시하는 다른 부족들을 만났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요."
"고맙게 받겠습니다."
목걸이에 담긴 의미가 그러하다면 굳이 사양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는 나이와 라이를 만난 것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이들의 반응으로 보아 자신이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니 마음 편하게 받아도 될 듯했다.
"돌풍 용병대와 친구가 된 기념으로 우리가 데라고 있었던 휴먼들을 모두 넘겨주겠소. 그리고 앞으로 우리 영역을 침범한 휴먼들 역시 그대들이 찾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있겠소."
"감사합니다."
이곳에 온 소기의 목적은 물론이고 생각 이상의 선물을 받았다. 이제 척추 산맥에서 내려와 물길을 따라 남하하는 아우터들을 안전하게 기지로 데리고 올 수 있는 방책을 너무 쉽게 찾은 것이다.
하룬은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을 통해 자신이 물을 찾아준 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퉁그리의 동생이 요구한 것들도 모두 주겠소. 대신 약속한 대로 3개월에 한 번씩은 거래를 하도록 합시다. 그대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은 우리가 모두 구해 주겠소. 만약 그대들이 다른 부족들과 직접거래를 원한다면 안내와 소개를 위해서 우리 전사들을 동행시켜 주겠소."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돌풍 기지는 우르슘 부족과 친구로서 마음을 터놓고 지낼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벨이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뭔가 약속을 한 것 같았다. 뭘 언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내용이다. 일의 경과는 알 수 없지만 자신보다 지혜로운 벨이니 이 자리에서 모르는 티를 낼 수는 없다.
"하하하! 휴먼들과 친구가 된 것을 알면 다른 부족들이 많이 놀라겠지만 그대들의 능력을 알게 되면 모두 우리를 부러워하게 될 거요."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르그들이 이렇게 지혜롭고 신의가 있는 줄 알았다면 무조건 적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맞소. 우리 두 종족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많이 필요한 것 같소. 이참에 우리 부족이 나서서 휴먼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저 역시 다른 휴먼들에게 여러분들에 대한 진실을 알려 두 종족이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회의는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비록 종족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붖고한 것을 채울 수 있으니 적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회의가 파한 후 하룬 일행은 짐을 챙기는 사이에 우치가 하룬을 따로 초대했다. 아마 따로 할 은밀한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잠시 덕담을 나눈 후에 우치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하룬 대장, 세미롱이라는 약을 알고 있소?"
은밀한 이야기는 세미롱이라니. 하룬은 뜻밖의 질문에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세미롱요? 어떻게 그 약을 알고 계십니까?"
"이상한가 보군. 놀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약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 활용해왔소. 그 약은 외상 수술은 물론이고 우리 퉁그리들이 부족의 중요한 일의 향방이나 대책을 점칠 때 필요합니다.무엇보다도 퉁그리가 되기 위해서는 퉁과의 교감이 필요한데 그 세미롱이란 약이 그걸 쉽게 만들어 준다오."
세미롱은 장복하면 위험한 마약이지만 강력한 진통 효과와 환각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룬이 며칠 동안 지켜본 것에 따르면 오르그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퉁그리들은 사소한 일에도 점을 쳤다.
보통은 맹수의 뼈를 던져 그 배열을 보고 일의 성공 여부나 길흉을 점치는 방식이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명상처럼 보이는 것을 통해 점을 치기도 했다.
"또한 퉁그리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일정한 상태가 되어야만 하는데, 세미롱은 보통의 경우보다 무척 빠르게 그 상태로 만들어 줄 수 있소. 그래서 세미롱의 존재가 알려진 후 모든 부족들이 그걸 구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오."
"그럼 혹시 유니온을 공격한 이유가?"
"맞소. 모든 부족들이 그 약을 얻기 위해 전사들을 파현해서 유니온을 공격했소. 물론 지금은 강력해진 막 때문에 소용이 없어졌지만."
'퉁그리들은 종말 시대 초기에 존재했다는 무당이나 신관 혹은 사제와 비슷하구나.'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퉁그리가 되거나 능력을 발휘하려면 이들이 신으로 받들고 있는 퉁과의 교감이 필요한 것 같다. 종말 시대에도 존재했다는 무당처럼 신 내림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오감 중 쾌락에 관여하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고 강력한 환각 작용을 가진 세미롱은 퉁그리가 되려는 오르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휴먼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종교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미개한 오르그들은 초현실적인 능력을 보이는 퉁그리들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 이들이 그곳을 공격한 거구나.'
이제야 예전에 오르그들이 세미롱 생산 시설을 공격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미롱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만 휴먼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용해왔던 것이다.
"예전에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듣자하니 그 생산 시설이 오르그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하더군요."
"흐음. 역시 파람족이 그 일을 자행한 건가?"
우치는 뭔가를 아는 눈치였다.
"파람족이라면?"
"파람족은 가장 먼저 이 땅으로 남하한 부족이오. 부족민의 수가 30만이 넘어 이 땅에 정착한 일족들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가장 호전적인 부족이오. 이들은 가장 먼저 이 땅에 들어왔다는 명목으로 다른 부족에게 공물을 바치게 하며, 만약 거부하면 그들이 자랑하는 붉은 전사단을 동원해 여성을 제외하고는 몰살을 시킬 정도로 잔인한 자들이오. 또한 이들은 다른 부족들이 휴먼들을 일족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달리 노예로 만들어 무자비하게 부리고 있소. 우리 우르슘뿐 아니라 다른 부족들 모두 놈들에게 치를 떨고 있소."
"그렇게 악명을 떨치고 있다면 다른 부족들이 힘을 모아 상대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치는 하룬의 물음에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전사들의 기량이라면 그게 당연하지만 퉁그리들의 능력에서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오. 파람족의 퉁기리들은 전사들과는 달리 대규모의 지진이나 광풍 혹은 검은 비를 만들어 한순간에 수만 명의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소."
"그럼 그게?"
"맞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퉁그리들은 그 차이가 세미롱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소."
우치의 말을 모두 듣고 보니 정말 황당했다. 오르그들이 유니온을 공격한 진정한 이유가 악마의 약으로 알려진 세미롱과 얽혀 있다니 말이다.
'아! 그래서 오르그들이 F구역, 그럿도 트레시 스트리트와 같은 곳을 공격한 거구나.'
이제보니 오르그들의 침입에 관한 의문들이 풀렸다.
유니온에서는 오르그들이 침입하는 이유를 휴먼들을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세뇌해 왔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된 하룬은 오르그들이 휴먼 여자를 잡아 가기 위해서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만!'
순간 머릿속에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세미롱은 저희 역시 구할 수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이미 그 생산 공장이 파괴되었거든요."
"안타까운 일이오. 그 약만 있으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텐데."
우치는 크게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하룬의 다음 말에 눈이 커졌다.
"다만 최근에 그 공장을 대신해 세미롱을 생산하는 곳은 알고 있습니다. 아니, 곧 알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정말입니까?"
"네. 그곳에서 세미롱뿐 아니라 많은 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룬은 데드 벙커의 존재를 생각했다.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이 아니다. 벼리를 통해 전해진 정보에 의하면 그곳은 자체적으로 세미롱을 비롯한 많은 약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정말이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용병대가 그동안 조사한 것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곳은 휴먼들에게 데드 벙커로 알려져 있는데 이제까지 모은 정보에 의하면 그곳에서는 휴먼과 오르그 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동물들을 대상으로 각종 생체 실험을 진행되고 있으며 방버 시설이나 그 전력이 강력하다고 합니다."
생체 실험이란 말에 우치의 얼굴이 굳었다. 전대 파야를 역임했던 만큼 그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동족이 종종 실종되고 휴먼들 중에 그런 미친짓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리는 나도 들은 적이 있소. 정말 나쁜 휴먼들이군."
"맞습니다. 저와 같은 휴먼이기는 해도 반드시 없애야 할 자들입니다."
"우리가 처리해 주겠소. 그곳의 위치를 말해 주시오."
우치는 위치만 안다면 당장이라도 움직일 기세였다. 하지만 하룬은 아직 데드 벙커를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모든 오르그 부족들이 세미로을 보무이라 인식하고 있으니 이 사실을 잘 이용하면 제대로 데드 벙커를 부술 수 있다.'
드디어 오르그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은 하룬은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우리 용병대 역시 데드 벙커의 존재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있어서 정확한 위치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우리 역시 그들로 인해 많은 피해를 본 적이 있어 복수를 위해 그곳을 찾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그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그 위치를알게 된다면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겠소?"
"그러겠습니다. 우리 돌풍과 우르슘은 이미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수를 해야하고 우르슘은 그들로부터 얻어낼 물건이 있으니, 같이 상대를 하면 될 겁니다."
"맞소.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전사들의 피해도 적을 것이고 각자 원하는 바를 좀 더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이오."
우치는 하룬의 말에 크게 만족했다. 하룬 역시 오르그들을 활용할 최고의 패를 쥐게 된 것이다.
하룬 일행은 건너갈 때와는 달리 5개로 늘어난 뗏목으로 몇 시간에 걸쳐 강을 왕복하며 휴먼들과 짐을 날라야 했다.
200명이 넘는 휴먼들은 물론 우호 관계를 맺은 기념으로 우르슘 부족이 키우는 가축들과 작물들 그리고 트혼나무 묘목들까지 합하니 꽤 시간이 걸렸다.
무사히 휴먼들과 짐을 옮기자 하룬은 사람들에게 숲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뭐하려고?"
"할 일이 좀 있어."
벨은 무척 궁금한 눈치엿지만 그녀 역시 숲에서 할 일이 있기에 순순히 말을 들었다. 강과 접해 있는 숲의 동식물 표본을 채집해야 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잠시 머물러야 했던 것이다.
'가볼까?'
하룬은 욕심이 났다. 언제 다시 밖으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할 수 있다면 화정과 풍정까지 얻고 싶었던 것이다. 비욘드의 정령과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존재들을 친구로 할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배산 노인이 말한 곳이 하룬의 목적지다. 아리수 강 하류에 용암이 분출되는 곳이 있다고 했다. 풍정이야 자장풍이 불 때 도전하면 되지만 화정의 경우 고열의 불이 필요하다.
하룬은 일행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바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달려가도 되지만 지정에 비해 미약한 힘을 가진 수정을 키울 생각이었다.
푸악!
서늘한 물의 감각이 느껴지자 기분이 좋아졌다. 당장에 중단전에 머물러 있던 수정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 날 감싸줘!
-알았어!
들썩거리던 수정이 기체처럼 사방으로 퍼지더니 금방 몸 밖으로 빠져나와 하룬의 몸에 얇은 수막을 형성했다.
-숨도 쉴 수 있게 해 줄래.
보글보글!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전신을 감싼 얇은 수막에 작은 거품이 피어오르더니 피부호흡이 가능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코를 이용한 호릅을 하고 있지만 그것 역시 어렵지 않다. 전혀 숨이 가쁘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 가장!'
하룬이 손과 발을 부드럽게 움직이자 그의 몸이 물속임에도 불고하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멋진걸!'
마치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손과 발을 감싸고 있는 수막은 오리의 발처럼 물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추진력을 올려 주고 있었다.
차아악!
기분이 좋아진 하룬은 손과 발에 힘을 더 가하는 한편 몸을 뒤틀기도 하고 기까지 사용하면서 물속에서 어떻게 해야 빠르고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았다.
'하하하!'
하룬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만약 지금 그의 모습을 본다면 하룬을 아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 정도의 환한 모습이 되었다. 이렇게 뭔가를 재미있다고 느껴 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남들과는 달리 특별히 뭔가에 빠져 본 적이 없었던 하룬이지만 지금만큼은 기분이 최고였다.
-나이야, 너는 어때?
-나도 너무 좋아!
지정과느 달리 아직 자아체가 미발달한 나이지만 하룬의 감각과 감정을 고유하는 터라 엄청나게 즐거웠다. 그리고 하룬과 같이 보고 느끼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이제까지 아무런 감정도 감각도 무르고있었던 나이는 짧지만 강하고 자극적인 경험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분사를 해 볼까?
-하자!하자!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건데?
-일단 내가 하단전의 기로 하는 걸 잘 느껴봐.
하룬은 하단전의 기를 발다닥 중앙의 마나 스토리지로 이끌어 적당히 모은 다음 강하게 회전을 시키면서 밖으로 방출했다.
슈악!
순간 하룬의 몸이 화살처럼 앞으로 빠르게 쏘아졌다. 얼마나 빠른지 몸을 감싸고 있던 수막이 피부에 꼭 밀착될 정도였다.
-와아! 재미있어! 나도 할래!
-그래, 한번 해봐!
수정 나이는 중단전에서 따로 한 줄기의 분신을 발다닥 중앙까지 끌어내렸다. 그러곤 하룬이 보야 주었듯 강력하게 회전을 시키고는 적당한 시점에서 밖으로 발출시켰다.
슈욱!
하룬의 몸은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대기 속을 날아가는 탄환처럼 앞을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수막으로 몸을 감싼 하룬은 천천히 유영하던 물고기들을 머리로 뱍아 기절을 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엄청나구나!
-헤헤! 재미있어! 너무 재미있었!
나이는 재미가 들렸는지 쉴 새 없이 분신을 떼어 내서 분사를 했다. 강한 압력을 받는 것도, 아찔한 속도감도 너무나 즐거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수정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강하게 압축시켰다가 분출했던 수정의 일부는 이내 이전보다 더 큰 덩치가 되어 수막에 흡수되고 있었다.
하룬은 나이를 그대로 놔주고는 그 빠른 속도에서도 머리와 손발을 움직여 방향을 전화하는 것을 익히는 한편 손을 통해 기를 발출해 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아이가 별로 반응이 없는 하룬을 의식하고 분사를 멈추었을 때, 하룬은 물속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기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하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물속이 더 편하네.'
저항이라면 물속이 더 강할 텐데도 불구하고 나이의 존재로 인해 아무런 제한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대기 속에서 보다 더 훨씬 더 빠르고 정교하면서도 부드럽고 가벼운 움직임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룬이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이 몸을 통해 익힌 것들을 정리하는사이 감각을 통해 물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거기까지 온 건가?'
밖이라면 바이크를 타고도 한 시간 정도는 달려야 하는 거리인데 벌써 용암지대까지 다 온 것이다. 자세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나이가 분사를 연속해서 했던 덕분에 이렇게 빨리 오게 된 것이다.
수면 위로 올라가자 수막을 통해 열기가 전해졌다. 이근처가 확실하다.
-나이야, 이제 수막은 거두어도 돼!
-응. 다음에도 또 놀자!
-그래. 더 재미있게 놀자!
잠시에 불과하지만 자의로 어떤 행동을 하는 한편 하룬의 감각과 감정을 공유했던 덕분인지 나이의 의사 표현이 한결 높아진 것 같았다.
스르르.
하룬의 몸을 감싸고 있던 수막이 피부를 통해 안으로 스며들어가자 하룬은 익숙하게 손발을 놀려 강가로 올라갔다.
'뜨겁네!'
코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유황 냄새가 섞여 있어 매캐했고, 바닥은 물론 몸으로 열기가 느껴졌다. 안 그래도 한 낮에는 50도 가까이 올라가는데, 이곳은 열기까기 가세한 터라 어지간한 생물체는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푹 젖었던 방어구를 벗어 몇 번 털고 다시 입었다. 다른 소재라면 쭈글쭈글하게 변했을 테지만 하르크 가죽으로 만든 이 방어구느 물에 빠져도 그 속까지 젖는 것이 아니라 표피만이 젖는 터라 금방 원상으로 회복되었다.
'뜨겁긴 한데 조금 더 올라가 보자.'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움직여 보기로 결정한 하룬은 뜨거운 증기를 뿐어내고 있는 용암지대로 향했다. 무의식중에 매신저 스킬을 펼치는 하룬의 몸이 빠르게 북쪽으로 달려갔다.
강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이르자 열기가 비약적으로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용암지애의 초입에 도착한 것이다. 그 안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한 증기가 피어오르는 곳을 쳐다보는 하룬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파앗!퍼억!
불규칙적으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용암이 분출하는 소리일 것이다. 보통 용암은 화산이 터져 분출되지만 이곳은 화산이 아님에도 용암이 분출하는 지대였다. 분출한 용암은 수십 줄기로 나눠어 지반을 녹이며 사방으로 흘렀지만 지대가 낮아 계속 뻗어 나가지 못하고 서서히 식고 있었다.
훅!훅!
용암지대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하룬의 솜이 거칠어졌다. 코는 물론이고 허파를 비롯한 내장과 발바닥까지 뜨거운 열기에 익어 버리는 것 같다. 열기로 인해 땀이 소소아나오는 즉시 말라 버릴 정도의 열기에 하룬의 입술은 어느새 하얗게 탈색되고 있었다.
'더 이상은 무리야.'
참으려면 참을 수는 있지만 어차피 용암지대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자리를 찾으려던 하룬의 시야에 여러 줄기의 자장 토네이도가 들어왔다. 토네이도는 용암까지 삼키며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저기에 휩쓸리면 즉시 사망이군.'
드러난 곳은 곤란했다. 위와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흐물거리는 바닥의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았다가는 언제 아래로 꺼져 버릴지 모른다.
하룬은 조금 돌아다닌 끝에 다른 곳보다 높은 지역에 서있는 거대한 바위들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쪽에 있는 거대란 바위들 때움인지 그 사이의 땅은 비교적 단단한 편이었고 밖보다는 한결 시원한 느낌이었다.
편안한 자레로 앉은 하룬은 눈을 지그시 감고 감각을 최대로 열었다. 내장을 익혀 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 외에도 유황 냄새를 비롯한 여러 가지 냄새가 났고, 활발하게 움직이는대기의 움직임과 불규칙적인 용암의 분출로 인한 바닥의 진동까지 느껴졌다.
'내게 모습을 보여 봐!'
하룬은 열기의 근원을 향해 의식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의지를 강하게 뿜어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널 친구로 원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녹이는 너의 강력한 힘과 새롭게 만물을 탄생시키는 에너지를 가진 널 친구로 받아들이고 싶어! 이리와! 너와 함께하고 싶어!"
하룬의 간절한 의지가 전해진 것일까?
용암지대 중심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색으로 빛나는 작은 빛 가루들이 용암으로부터 솟아올랐다. 그 빛 가루들이 천천히 합치자 아주 작은 불꽃이 태어났다. 그러고는 조금씩 불꽃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하룬이 앉아 있는 곳을 향해 이제 막 생성된 자장 토네이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룬은 의지를 강하게 세운 상태여서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수정과 지정이 친구가 되었기에 확장된 감각 때문이었다.
'바람도 같이 움직이는 건가?'
하룬은 이미 굳게 세운 의지를 그냥 놔두고또 다른 의지를 세웠다. 비욘드를 통해 강해진 의지력외 범위는 또 다른 의지를 세울 정도로 그 범위가 확장된 상태였다.
'내게로 와! 세상 모든 것을 파괴시킬 수 있느 ㄴ사나움과 지쳐 버린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이리와! 나와 함께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자!'
넓게 하룬의 의지가 퍼져 나가자 순식간에 분출하는 용얌을 끌어 올릴 정도로 커진 자장 토네이도가 하룬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토네이도는 작은 꽃 크기로 성장한 불꽃과 함께 하룬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와 주었구나! 반가워! 난 하룬이라고 해! 넌 불의 정수에서 태어난 존재지? 그리고 넌 바람의 정수에서 태어난 거고?'
하론의 말을 알아듣깅라도 한 것일까? 불꽃은 토네이도의 뿌리와 함께 하룬의 몸 주변을 살피듯 돌기 시작했따.
'친구가 되고 싶어!'
하룬에게서 흘러나오는 수정과 지정의 향기를 맡은 것일까? 아니면 하룬이 마음에 든것일까? 빠르게 커지는 불꽃과 용암까지 머금고 있는 뜨거운 토네이도가 하룬의 몸에 자신을 밀착시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룬은 먼저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위아래로 훑어 대는 토네이도를 향해 의념을 보냈다.
-좋아! 넌 우이라고 부를게.
-......우, 우이? 그게 내 이름이야?
-응. 다른 세상에서도 너와 비슷한 친구가 있는데 이름이 위신느야. 내 몸속에 머물면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모두 같이해. 너도 그렇게 하지 않을래?
-조, 좋아! 재미있을 것 같아.
풍정은 수정이 그랬듯 하룬의 전신 피부를 통해 안으로 스며들었고 어느새 거대한 바위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토네이도는 사라지고 없었다.
-넌 파이라고 부르지. 마음에 들어?
-파이? 글쎄. 좋을 수도 있겠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었는데 잘 됐어. 나도 친구 하나쯤은 가지고 싶었으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나도 잘 부탁해.
-이렇게 다른 존재 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없는 것 같은데 기분이 이상해.
파이는 그렇게 말하며 하룬의 이마에 화인을 찍듯 내려앉더니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러고보니 파이가 가장 자의식이 발달한 걸까?'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니 종말 전쟁으로 인해 화산활동이 몇 십 배이상 늘어나 지각이 대변동을 일으켰고 오존층이 사라지면서 지구는 평균 온도가 10도 이상 올랐고 열기로 대표되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증가한 상태다.
네 존재는 비욘드의 네 정령처럼 이제 그와 하나가 되어 성장할 것이다. 현실에서도 이렇게 정령과 하나가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이들이 더 성장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울 수 있게 되면 현실도 비욘드의 세상만큼이나 살맛이 날 것 같았다.
파이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같이해서 그런지 이제 아무런 열기도 느낄 수 없는 하룬이다. 하까만 해도 내장이 익어 버릴 정도로 뜨거웠던 대기는 이제 냄새를 제외하고는 별 감흥이 나질 않았고 타 버릴 것 같았던 발바닥의 감각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벨이 기다리겠다!'
퍼뜩 벨과 일행의 존재를 떠올린 하룬은 힘을 주어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헉!"
당혹스러운 탄성과 함께 단순에 5미터 높이의 붉게 달아오른 바위 위로 올라선 하룬의 눈이 놀람과 기쁨으로 일렁였다. 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이가 그의 몸을 가볍게 해 준 것이다.
하룬은 네 친구를 얻어서 그런지 아니면 아까 나이와 라이가 전신 곳곳을 돌아다니며 뭔가를 한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 달리던 잠신의 몸 상태를 관조하던 하룬은 외계로 시선을 돌렸다.
"멋있다!"
그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바위위에서 바라보는 용암지대의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기를운용하지 않았으멩도 불구하고 비약적으로올라간 안력은 뚜거운 증기 속을 해치고 붉은 용암이 분출하는 것과 아리수 강 쪽으로 흘러내리다가 서서히 식어 가는 용암수의 흐름까지 볼 수 있었다.
무시코 용암지대 동쪽으로 시선을 돌린 하룬의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휴먼들?'
그랬다. 길게 늘어진 상태로 휴먼들이 강 ㅉ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두건을 쓴 것으로 보아 휴먼들이 분명했다. 오르그들은 얼굴을 가릴 두건은 쓰지 않으니까.
'무슨 일이지?'
이상한 일이다.아리수 가으이 북쪽평원에는 현재 거주하는 휴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하륜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행동도 이상했다. 그 유먼들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수천 명은 되어 보였는데 용암지대에서 좀 떨어진 황무지를 무질서하게 달리고 있었다.
"어? 쫓기고 있구나!"
휴먼들이 만들어 낸 먼지구름 뒤로 검붉은 상체를 드러낸 오르그들이 뒤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선두에는 모자를 쓴 전사장들이 라마두를 타고 있었고 또 다른 거대한 먼지구름을 만들 정도로 그 수효가 엄청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나저나 상황이 긴박했다. 휴먼들이 오르그들의 선두는 겨우 몇 백 미터로 좁아졌던 것이다.
"이런!"
휴먼들의 후미는 아이들과 여성들이었다. 중간에 남자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정신없이 도말을 치던 와중이라 약자를 제대로 챙길 수 없는 것이리라.
곤란하다.
적어도 수천은 넘어 보이는 오르그들이다. 오르그 수십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하룬이지만 저 정도 숫자로 포위되면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해도 결국은 도륙이 날 것이다.
'라이피만 있어도 어떻게 해 볼 텐데.'
라이피와 같이 있다면 지진을 일으며 일단 추적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라이피는업지만 라이는 있다. 그것도 자신의 중단전에 자리를 잡고 그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 지진을 일으킬 수 있겠니?
-지진이라면 땅을 요동치게 만드는 거 말이야?
-응. 되도록 강하게.
-할 수는 있는데 아직 내 힘이 강하지 않아서 그 범위가 얼마 되지 않아. 그것도 두세번밖에 일으킬 수 없고.
자신 없다는 라이의 말에 실망하던 하룬의 눈이 용암지대에서 막 생성되는 토네이도를 향했다.
-우이, 일정한 방향으로 토네이도를 일이키는 것이 가능할까?
-할 수 있을 것 같긴 해.
-그럼 용암지대의 열기를 품은 토네이도를 움직이는 건?
-잘 모르겠어. 그런데 왜 그러는 건데?
-응. 쫓기는 이들이 나와 같은 동족이거든. 뒤쫓는 녀석들은 오르그라고 부르는 종족이고.
-토네이도를 일으키는 건 어렵지 않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어.
-그럼 나와 함께 가자!
-알았어.
갑자기 파이가 끼어들었다. 녀석 역시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넷 중에서 각성 수준이 가장 높은 파이의 말에 우이는 쉽게 수긍했다.
-그런데 어떻게 하려고?
-우리 둘이 합치면 저들 사이를 쉽게 갈라놓을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는데?
-우리의 힘을 합하면 돼. 넌 그냥 나에게 맡기고 힘을 주면 돼.
-알았어.
우이의 양해를 받은 파이는 뭘 어떻게 했는지 하룬의 전신으로 가공할 열기를 가진 바람 한줄기가 흘러나왔다. 그 바람은 빠르게 회전을 하며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며 움직였고, 열기를 받아들이려는 듯 용암지대 쪽으로 향했다.
'더 늦으면 위험해!'
하룬은 금방이라도 라마두의 발굽에 밟힐 것같이 위험한 상황에 놓인 후미의 여성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날듯이 달려갔다.
휘이이잉!
한 번의 도약으로 거의 십여 미터씩 쭉쭉 날아가는 하룬의 외투가 미차 단추를 채우지 않아서 마치 날개처럼 펄럭였고 그 뒤로 열기를 가득 채운 토네이도가 따라왔다.
어떻게 길들인 건지 모르겠지만 라마두를 탄 오르그들의 선두는 어느새 휴먼들의 후미를 막 덮치려고 했다. 다른 존재를 절대 등 위에 태우지 않는다는 라마두를 타고도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는 오르그 전사장이 긴 자루를 가진 도를 높이 쳐들었다. 라마두의 몇 발짝 앞에 엄마와 맞잡은 손이 풀렸는지 내동이 쳐진 아이가 울지도 못한 채 공포에 젖은 눈으로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타앗!"
하룬은 강한 기합성을 토하며 비수를 날렸다. 아직도 거리가 꽤 많았던 것이다. 박살의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 대신 왼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커억!"
"크악!"
키히이잉!
갑자기 오르그들의 선두가 혼란에 빠졌다. 금방이라도 휴먼들을 덥칠 것 같았던 전사장들이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하는가 하면 라마두들은 공포에 질려 발악을 하면서 기수들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라마두의 발굽이 피워 울리 ㄴ먼지구름으로 인해 전방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무조건 달리고 있던 오르그들이 어느 순간 발을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가진 토네이도가 자신들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햇!"
"아아악!"
"멈처! 멈추라고!"
토네이도를 보고자리에 멈춘 많은 오르그들이 사정을 알아치리지 못하고 뒤에서 달려오던 동족들과 부짇혀 앞으로 넘어져 깔리기도 했지만 토네이도의 크기나 기세가 워낙에 위험했기에 금방 진군이 멈추었다.
토네이도는 연방 비수를 던지는 하룬을 따라 휴먼과 오르그 사이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으아악!"
"앗! 뜨거워!"
"도망치자!"
우이의 능력인지 아니면 파이의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토네이도가 품고 있는 가공할 열기는 오르그들을 향해 발산되었다. 때문에 오르드들은 완전히 전의를 잃고 허둥지둥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사이 먼지구름 속으로 들어간 하룬은 기를 주이한 비수와 박살로 수십의 오르드 전서장들을 격살할 수 있었다. 강인한 육체를 가진 오르그 전사장들이라도 달려오던 속도로 튕겨져 바닥으로 떨어졌으니 그 충격은 적지 않았고,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관자놀이나 미간을 뚫고 들어오는 비수나 박살의 날에 이승과 하직 인사를 하고 말았다.
'이 정도면 지휘자들은 어느 정도 제거한 거겠지?'
중간이나 후미에도 전사장들이 포진되어 있겠지만 가장 위험한 놈들은 없앤 셈이다.
먼지구름이 걷히자 한참 떨어진 곳까지 도망치는 소많은 오르그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새로운 지위관이 상황을 수습했는지 혼란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전열를 새롭게 세우는 것을 보니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하룬은 외투와 연결된 후드에서 지퍼를 열어 가죽으로 된 안면 가리개를 썼다.
-우이, 파이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니?
-스물을 셀 정도
-난 백을 셀 정도는 유지할 수 있어.
'시간이 없다!'
도망을 치던 휴먼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최소 수천에 달하는 오르그들이 포기를 하지 않으니 뭔가 특별한 퍼포먼스라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