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7화.우류슘 부족과의 만남 (238/278)

우류슘 부족과의 만남

세윰 일생을 따라 부지런히 걷던 하룬 일행의 양쪽으로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로에는 키가 크고 무성한 잎을 가진 이름 모르는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식재외어 있었는데 그 사이로 이상한 광경이 보였던 것이다.

높이 3미터 정도의 막대기를 줄지어 땅에 꽂은 후 그 위로 강가에 자라는 갈대와 비슷한 식물의 마른 잎을 얽어 길게 연결한 후, 지붕처럼 만든 구조물이 넓게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 구조물 안팎으로 치마와 같은 옷을 입은 오르그 몇이 보였다.

"저것은 뭡니까?"

"별거 아니오. 아, 잠시만 기다리시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눈빛 속에는 긴장이 어려 있다.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윰이 재빠르게 움직여 수하들에게 뭔가 귓속말을 했다.

가만히 서 있던 벨의 눈빛이 강해졌다. 벨의 이마 한가운데에세 강렬한 힘이 모이더니 구조물 쪽으로 빠르게 폭사되는 것이 감지되었다.

잠시 후 벨의 심어가 들려왔다.

-오빠, 저 구조물은 강렬한 햇빛을 일정량 막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그리고 저 안ㅉ고에 종류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그래?

벨이 자신도 모르는 이능력을 쓴 것에 놀란 하룬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그걸 궁금해할 때가 아니었다.

하룬이 기를 두 눈에 불어넣어 구조물 쪽을 향해 안력을 집중하니 어두컴컴한 내부가 제대로 보였다.

벨의 말대로 인공적으로 만든 그늘 아랠에느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제법 많은 오르그들이 그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그늘막 아래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이들이 신경 써더 재배하는 것 같아. 비록 바싹 마르긴 했지만 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수로가 저곳과 연결이 되어 있어. 막연히 작물을 재배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농사를 짓고 있었어.

벨의 추측에 하룬도 동의했다. 사실 척추 산맥을 제외한 나머지 땅들은 거의 황무지나 사막으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척추 산맥의 경우 무성한 수림으로 인해 정겅한 일사가 드는 협소한 몇몇 장소에서만 농사를 지을 수 있디, 물길을 대는 것이 어려워 대귬의 농사는 곤란했다.

-그런데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에서 뭘 재배하는 거지? 방사능에 오염된 토양이라면 그 작품 역시 오염이 될 텐데. 그리고 저 그늘막은 머무 허술해서 저정풍이 한번 불면 다 날아갈 거 같은데.

-잘 모르겠지만 뭔가 방법이 있겠지.

그렇게 대꾸하며 안력을 끌어 올리자 더 멀리 떨어진 재배지가 확대되어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안쪽의 재배지는 가까운 곳과는 약간 달랐다. 지지댜로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식재했는데 그 나무들은 자장풍을 막는 용도이거나 아니면 다른 특수한 용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오!'

기를 운용해서 안력을 높인 하룬은 작물 재배지의 면면을 세밀하게 살피고 내심 감탄했다.

벨의 말대로 자장풍에 직격되면 엉망이 되어 버릴 테지만 나름 방비는 하고 있었다.

아직은 키가 작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조밀하게 붙어 방풍림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무들이 재매지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라는 중이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나무들은 신기하게도 더 이상 위쪽으로 성장하지 않고 4~5미터 높이에서 옆으로마 ㄴ가지를 뻗고 있었다. 아직 다 자란 것이 아니라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 가지가 다 뻗어 나가면 그 잎들이 갈대 잎을 대신할 것 같았다.

이렇게 오르그들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면 돌풍 기지도 역시 가능할 것이다. 이들의 작물 재배 환경이나 기술은 조악하기는 해도 응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다른 곳에는 덩치가 크고 털이 길게 자란 가축을 방목시키고 있었다. 방목지 이곳저곳에 많은 오르그들이 있어 가축들을 돌보거나 놈들을 잡아 두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경사 때문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그 가축을 보자 이들이 입고 있는 치마 비슷한 모직물의 재료가 뭔지 알 수 있었다.

그사이 뭔가 일을 처리한 세윰이 돌아와 다시 길을 안내했다.

하룬 일행은 강변에서 20분 정도를 걸어 오르그들의 도시안으로 진입했다.

도시 외곽은 종류를 알 수 없는 천으로 만든 반원형의 천막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진흙 재질로 지은 커다른 반원형 건물들이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이주 형태에서 정착 혀애로 옮겨지는 과도기인 모양이다.

-형태로 보아 어지간한 자장풍이 아니라면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것 같아.

벨의 심어가 아니더라도 하룬 역시 감탄하고 있었다. 열등한 문명 수준을 지니 ㄴ오르그들이 지하나 배리어 안에 숨어 살고 있는 휴먼들과 달리 척박하고 오염된 환경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찾아낸 지혜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신기한 것은 그들이 이동하는 사이에 집으로 짐작되는 반원형 천막이나 건물에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텅 비어 있는 것처럼 황량하게 느껴졌다.

그런 하룬 일행의 의문은 더 안쪽으로 이동했을 때 풀렸다.

베르의 안쪽에는 진흙을 개어 지은 큰 반원형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비음이 많이 섞이고 억센 억양이긴 하지만 휴먼과 똑같은 언어가 건물들 속에서 들려왔다.

호기심 어린 눈길로 건물들을 쳐다보는 벨을 본 세윰이 입매를 실룩였다.

"저긴 어른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러 가는 낮 동안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오."

"학교인가요?"

"비슷하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나간 부모들이 집에 들어올 시간까지 돌봐준다는 것이오."

학교와 보육시설을 합한 개념이다. 종일 집을 비우는 부모들로서는 안심할 수 있어 좋고 아이들은 교육은 물론 같이 놀 친구들이 있어서 제대로 운영만 한다면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오르그가 무식하고 흉악한 변종 생물이라는 선입관이 깊이 박혀 있는 하룬으로서는 연속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휴먼이나 다를 바가 없군.'

현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제는 정말 오르그들이 휴먼과 비슷한 아인종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몇 개의 큰 건물들을 지나친 하룬 일행은 드디어 4미터 높이의 벽으로 둘러싸인 내성 안으로 진입했다.

내성은 밖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리로 반원형 건물이지만 4개의 도로를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어진 건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도로가 만나는 중심부에는 거대한 규모의 반원형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안쪽으로 향할수록 반원형의 건물들이 커지는 것으로 보아 이들에게도 신분이나 계층이 있는 것 같았다. 대신 시장이나 상점과 같은 곳은 보이지 않는것이 철저하게 공동생활을 하는 듯했다.

세윰은 하룬 일행의 감탄 어린 눈길이 이곳저곳으로 향하자 뿌듯한 얼굴로 베르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큰 건물로 안내했다.

"이곳은 우리 아야와 툴그리 들이 베르의 일을 처리하는 곳이오."

이를테면 시청과 비슷한 곳일 것이다.

안으로 들어간 하룬 일행은 그 내부가 거대한 통나무 재질의 기둥들을 중심으로 몇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이 정도의 건축 기술까지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세윰은 하룬 일행을 입구 쪽에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잠시 기다리게 해 놓고 안쪽으로 이동했다. 호기심 어린 벨의 눈이 실내를 둘러보았지만 대기실 용도의 공간이라서 그런지 별다른 인테리어가 되어 있지 않아 아주 소박했다.

"이상하군요."

배산 노인이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가요?"

"그, 그레 우리가 이곳에 잡혀 왔을 때는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무섭게 굴었습니다. 이곳까지는 고사하고 외곽의 허름한 천막에서 사흘을 보내야만 했었거든요."

배산 노인은 당한 것이 있어서 그런지 오르그들의 환대가 더 불안한 모양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들이 원하는 무건은 다 가지고 왔으니 별일은 없을 겁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태범이 불안해하는 배산 노인을 안정시켰다.

그사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타난 세윰은 파야가 기다리는 곳으로 하룬과 벨 그리고 태가사남매와 배산 노인을 이끌었다.

그들이 안내된 곳은 5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방이었다.

방 중앙에는 불을 피울 수 있는 자리인 듯 움푹 들어가서 시꺼멓게 보였다 바닥에는 짐승들의 가죽이 깔려 있고 벽에는 각종 무기들과 맹수들의 박제가 걸려 있었다.

"어서 오시오! 내가 우르슘 부족의 파야인 할알이오."

세윰에 비해 화려하게 염색한 거친 소재의 옷을 걸친 할알이 하룬 일행을 맞이했다. 보통 휴먼들보다 손바닥 길이 정도 키가 작은 오르그들과는 달리 민머리와 탄력 있는 피부 때문에 나이를 종잡기는 힘들었지만, 강렬한 눈빛과 묵직한 기도로 보아 최소한 30대는 훌쩍 넘긴 것 같았다.

할알의 옆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풍성한 천으로 몸을 감춘 오르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주름진 피부와 맑고 강한 눈으로 하룬을 바라보았다. 나이가 제법 느껴지는 이 오르그들은 지위가 꽤 높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할알의 양옆에는 대조가 되는 분위기의 오르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쪽에는 모자를 쓰지 않은 이마에 붉은색 염료로 몇 개의 점을 찍었으며 투박하지만 강인한 기운을 뿜어내는 오르그들이었고, 다른 한쪽은 위협적인 기세는 아니지만 딱딱하면서 조심스러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오르그들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 옆에 계신 분들은 우리 일족의 정신적 지주이신 퉁그리들이오. 그리고 이ㅉ고은 전사들의 우두머리인 가파라와 수석 전사장들이고 이쪽은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우수리들이오."

"반갑습니다. 동풍 용병대를 맡고 있는 하룬이라고 합니다.여기는 제 여동생인 벨이고 이 넷으 ㄴ수석 친위전사들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여러분들이 잠시 보호하고 있는 약초 마을 사람들의 대표이신 배산 노인입니다."

양쪽은 우호젹이 분위기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분위기는 하룬이 가지고 온 각종 물건들을 보여 주었을 때 최고조에 올랐다.

자신들이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본 오르그들은 직위에 상관없이 탄성을 지르며 크게 기뻐했던 것이다.

"여행에 지친 여러분의 일행을 잠시 보호해 준 대가를 제대로 가지고 왔소. 모두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이오. 고맙소!"

입꼬리가 올라간 할알의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에 배산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하룬 일행은 표정 관리를 했다.

어쨌건 지금은 약자의 입장이니 말이다. 오르그들이야 물건만 뺐고 사람들을 돌려주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다.

"피피로,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분들이 당장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라!"

할알의 명령이 떨어지자 문가에 서 있던 무장 오르그가 힘차게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행여나 이런 물건을 받고도 나 몰라라 할까 봐 긴장했던 배산 노인의 얼굴에도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오. 그런데 부탁이 더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이 물건들을 어떻게 구한 것이오? 이 하얀 소금은 바닷가에 정착한 부족도 만들지 못하는데....... 이정도의 물건들은 두더지들만이 만들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소만."

두더지라는 말에 내심 실소를 한 하룬이지만 잘하면 향후 미래를 휘한 기초적인 우호 관계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 돌풍 용병대는 상단을 겸하고 있습니다."

"상단이라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언제라도 구할 수 있다는 거요?"

하룬의 말에 할알은 물론이고 아직까지 물건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던 다른 오르그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유니온 밖으로 물건을 빼 오는 일이 쉬운 건 아니지만 조건만 맞으면 지속적으로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호오!"

오르그들은 눈을 빛냈다. 안정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정착 단계를 밟고 있는 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문명 자체가 뒤떨어지는 오르그들로서는 휴먼들이 만들어 낸 여러 가지 물품들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거대한 에너지 배리어 안에 거주하는 휴먼들은 자신들뿐 아니라 배리어 밖에 사는 같은 휴먼들에게까지 거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느 ㄴ범위를 축호하면서 한층 덩 강화된 배리어로 인해서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휴먼들의 물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약탈밖에 없었다. 하지만 약탈 대상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무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최근에 행해지는 약탈은 남성에 비해 현격하게 숫자가 부족한 여성 오르그 대용의 여성 휴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대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겠소?"

문제는 그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것들 중에 휴먼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어야 지속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살펴보면 뭔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험준한 척추산맥을 제외한 평지 대부분을 장악한 오르그들이다. 세류에게 듣기로는 상당한 숫자의 광산들까지 차지했다고 하니 하다못해 금속 원자재를 거래 물품으로 해도 된다. 기지 규모가 커지고 연구조와 생산조의 활동이 다변화 되고 활성화되자, 기지에서 필요로 하는 원자재의 양은 큰 폭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임 몇 가지는 염두에 두고 있다. 이름은 모르지만 가축도 있고 또 오르그들이 그늘막을 만들어 재배하는 작물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우호적인 관계만 형성하면 된다. 떡밥만 주고 기대를 하게 한 후 다음번에 방문했을 때 본격적으로 거래에 대한 것을 챙길 생각이다.

"혹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여루분에게 없더라도 거래는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오르그들과 거래할 필요 없이 여러분들이 중개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가운데서 중개를 하고 적당히 이득을 취한다?"

"그렇습니다. 굳이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부족까지 찾아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윤이 많이 남는 직거래를 생각했지만 중개를 매래로 해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부족을 하나쯤 만들어도 좋을 것 같기에 즉흥적으로 꺼낸 의견이었다.

"흐음. 아죽 좋은 생각이로군. 우리 부족이 중개를 한다면 그대들도 굳이 멀리까지 다니면서 하르크나 맹수 들 혹은 호전적인 부족들과 싸울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우리대로 중개로 이익을 취할 수 있으니 불만이 없을 테니. 파야, 즉시 받아들이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이제까지 별말 없이 툴그리들 사이에 끼어 있던 노구의 노르그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부족장이 확실한 할알에게 권고를 하고 그가 별 불만 없이 즉시 받아들이는 것을 보니 상당한 연향력을 가진 모양이다.

"손님들이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 테니 잠시 쉬고 저녁 식사를 같이하도록 하지."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입니다. 베로, 손님들에게 쉴 곳을 안내해 드리고 우리가 보호하던 일행들을 모시고 오도록 해!"

할알은 순순히 노구의 오르그의 말을 따랐다.

하룬 일행이 한 전사의 안내로 밖으로 나가는데 그 노구의 오르그가 하룬의 옷길을 슬며시 잡고 속삭였다.

"인간 퉁구리는 잠시 나를 좀 볼 수 있겠소? 조용히 할 말이 있는데"

"알겠습니다. 벨, 나 조금 이따가 들어갈 테니 먼저 가 있어."

벨은 하룬의 옆에 있었기에 오가는 말을 다 들은 터라 다른 일행과 함께 전사 뒤를 따라갔다.

노구의 오르그는 위층으로 하룬을 데리고 갔다. 위층에는 많은 방이 있었는데 그가 안내한 방의 공간은 아까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내부는 거의 유사했다.

바닥에는 가죽이 깔려 있었고 한쪽에는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화덕이 보였지만 그을음이 없는 것이 직접 조리를 하지는 않는 듯했다.

노구의 오르그는 하룬에게 바닥에 앉을 것을 권한 후 차로 추정되느 음료를 컵에 담아 내왔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투레차인데, 입에 맞을지 모르겠소."

"잘 마시겠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하룬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커져싸. 차는 모름지기 적당히 따듯한 물에 타는 것으로 알고 있던 하룬은, 차가운 물임에도 불구하고 향긋한 향기와 함께 씁쓸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독특한 풍미를 맛보았던 것이다.

"후후후! 투레의 새순은 굳이 정제하지 않아도 특유의 성분이 우러나오는데 머리를 맑게 해 줄 뿐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오."

"정말 좋은 차군요!"

아마 방사성물질이 함유되어 있겠지만 하룬은 특이한 자신의 체질을 믿고 권하는 대로 차를 마셨다.

"오오!"

비욘드의 세상에서 맛본 오미차만큼은 아니지만 투레차도 아주 뛰어난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압안을 청량하게 만들어줄 뿐 아니라 목으로 넘기고 나서 남는 깨끗한 느낌은 비욘드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오미차 덕분에 현실에서도 차를 즐기게 괸 하룬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정도의 맛과 풍미를 지닌 차는 마셔 보지 못했다.

"특정한 장소에서 1년에 한 번, 그것도 일주일 정도만 수확할 수 있기에 우리에게도 귀한 차지만 원한다면 거래 물품에 넣어 줄 수도 있소. 다만 그 수량이 부족해 많이는 안될 것 같지만."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의 향과 풍미를 가진 차라면 유니온에서도 좋은 가격으로 팔릴 것이다. 물론 소수만이 즐길 수 있을 테지만.

잠시 차를 음미하며 어색한 시간을 보낸 후 노구의 오르그가 입을 열었다.

"정식으로 소개를 하겠소. 난 우치라고 하며 우르슘 부족의 전대 파야이오."

"파야라면?"

우치는 잠시 오르그 사회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북방에서 내려온 오르그들은 보통 5만에서 10만 정도로 부족을 이루어 산다고 했다. 현재 우치가 알고 있느 ㄴ부족 수는 총 스물두 부족, 평균 7만으로 따져도 얼추 150만에 육박하는 광장한 숫자인데, 북쪽에느 그보다 수십 배 많은 오르그들이 있다고 했다.

우르슘 붖고은 오르그 최대 부족인 갈라스 부족에서 독립한 지 이제 겨우 4년밖에 되지 않는 소부족으로 정착할 곳을 찾아 가장 남쪽까지 내려왔다고 했다.

오르그들은 부족에 따라 수렵을 하거나 농경을 하는 등 고유한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데, 평지에 자리를 잡은 최근에는 많은 부족들이 농경에 힘을 들이고 있다.

오르그 사회의 상층부는 전사들의 우두머리와 관리들의 우두머리 그리고 주술사이자 지혜를 가진 퉁그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족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한 정책은 그 양쪽이 고루 들어가 타루라고 부르는 회의체에서 다수결로 이루어 진다고 했다.

타루라는 회의체의 수장은 파야라고 불리며 몇 년에 한 번 교체가 되는데 전대 파야는 죽을 때까지 타루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가진 경륜과 지혜를 일족을 휘해 사용하게 된다.

"휴먼들 중에 우리의 퉁그리들과 비슷한ㅇ 존재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소."

자꾸 툴그리라는 말을 하는데 정확하게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우호적인 태도에는 하룬이 퉁그리라고 믿는 것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너왔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오?"

우치가 기이한 눈빛으로 하룬을 보며 물었다. 할알도 언급하지 않았는데 우치가 아는 것을 보면 세윰이 따로 알린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그럼 물과 관련된 특별한 능력을 지닌 거로군."

"네."

하룬이 순순히 대답을 하자 우치의 얼굴이 밝아졌다.

"앞으로 우리 일족과 돌풍 용병대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요."

하룬은 그의 눈빛에 담겨 있는 기대의 의미를 몰라 답답했기에 그저 미소만을 보여 줄 뿐이다.

"하룬 대장, 우리의 부탁을 좀 들어주어야겠소."

"부탁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른 부족보다 신생 부족으로 가장 멀리 남하했소. 그래도 일족 모두가 힘든 이주 생활을 이겨 낸 덕분에 강과 가까운 평지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지만 문제가 생겼소. 이곳에 자리를 잡으려던 우리 일족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힘들게 이룬 기반을 버리고 떠날 위기에 처해 있었소. 그런데 우리 일족을 이끼시는 퉁께서 이렇게 높은 능력의 퉁그리를 보내 주셨소."

퉁이란 단어는 아마도 이들에게 신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위기라면 무슨 일입니까?"

"지난 우기에 비가 적게 내리더니 이곳에 베르를 만드는데 필수적이었던 지하 수로와 저수지는 물론 우물들도 마르고 있소. 우리 일족이 휴먼들보다 신체적으로 강하기는 하지만 강렬한 햇빛은 우리에게도 크게 부담을 주고 있소. 또한 우리가 기르는 부료는 물론이고 우리의 주식인 얌과 마야 그리고 채소와 과일을 기르기 위해서는 트혼 나무가 잘 자라야 하오."

부료는 아마도 긴 털을 가진 가축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트혼 나무라는 건 처음 들어본다.

"트혼 나무라면?"

"트혼은 우리가 북방에서 내려올 때 가지고 온 나무요. 지하 깊숙하게 뿌리르 ㄹ내리고 어느 정도 자라면 위쪽이 아니라 옆으로 길게 가지를 뻗는데, 잎이 무성해서 강렬한 햇빛을 가려 줄 뿐 아니라 공기와 땅속에 포한된 좋지 않은 성분을 걸러 주는 데 아주 뛰어난 역할을 하고 있소. 용감하고 튼튼한 우리 오르그들이지만 트혼 나무와 오래 떨어져 있다면 나쁜 성분이 들어 있는 공기 탓에 병이 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오."

"아!"

하룬은 이제야 트혼 나무가 어떤 것인지 아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트혼이라는 이름의 나무는 흙과 공기 중에 섞여 있는 방사성 물질을 정화시키는 특별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지만 진진한 우치의 태도로 보아 그 추측은 확실한 것 같다.

'대박이닷!'

하룬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치의 말이 사실이라면 트혼 나무는 이들뿐 아니라, 포화 상태를 향해 달라가고 있는 돌풍 기지를 지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줄 것이다.

"게다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트혼 나무의 단단한 가지와 무성한 잎이 만들어 준 그늘은 각종 작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게이 우리에게는 절대로 필요한 나무라오. 하지만 트혼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양분뿐 아니라 많은 물이 필요한데 우리가 자리를 잡은 대지가 함유하고 잇는 물이 부족해서 말라 죽고 있소. 우리가 기르는 가축과 작물 역시 물이 필요하고. 그래서 우리는 맣은 양의 물이 필요하오. 물이 부족하게 되면 트혼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을 것이고 우리는 새로운 곳을 찾아 다시 이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오."

무슨 일인지 이제야 대충 감이 왔다.

작년 우기에 내린 강수량이 적어 아리수 강과 연결된 작은 하천과 저수지가 마른 데다가, 토양 속에 함유된 수분이 적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들은 물과 관련된 특별한 능력을 지닌 하룬이 그들을 위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배산 노인이 말하길 이들 부족이 상당히 호전적이며 거칠었다고 했는데, 자신에게는 아주 호의적이으로대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던 하룬이다. 어쩌면 알할은 일부러 이일을 언급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우치의 말을 들은 하룬은 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너무 뜻밖의 부탁이었덨 것이다. 물줄기를 찾아야 한다니.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막막하기만 했다.

'이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이후로도 거래를 하자면 이 일을 해결해주는 것이 좋겠지만 이런 종류의 일을 해 본적이 없으니 어쩐다.'

어떻게 하든 물줄기를 찾아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잘못하여 이 우호적인 분위기가 삽시간에 살벌하게 바뀔 수도 있었다. 자신과 벨 그리고 친위대원들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면 2만에 달하느 ㄴ오르그들이라도 능히 포위를 뚫고 도망을 칠 수 있지만 그덯게 되면 약초 마을에서 온 아우터들이 문제가 된다.

'빌어먹을!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오르그들이 비록 그간 알려진 것과는 달리 휴먼과 비슷한 지능과 높은 문화 수준을 가졌다고는 하더라도 이들은 근본적으로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곤란하게 되었구나!'

곤혹스러웠다. 이제 거래를 하는 것은 뒷일이 되고 말았다. 이들과의 거래를 기반으로 선을 넓혀 오르그들을 데드벙커를 부수는 전투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하룬은 내심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물과 관련된 특별한 능력을 얻기는 했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는 상황이다. 조금도 아니고 무려 2만이나 되는 오르그들이 의지하는 트혼 나무나 농업용수로 사용할 정도의 막대한 물을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다.

"먼 길을 왔을 터이니 오늘은 푹 쉬고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오. 물 문제만 해결해 준다면 어떤 부탁이라도 다 들어주겠소."

"제 능력으로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일족과 가까운 부족의 뛰어난 퉁그라들도 실패한 일이니 설사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그대를 탓하지는 않겠소. 우리가 필요한 물건들을 예물로 가지고 왔으니 우리와 지속적인 거래를 하기로 약속했으니,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아무 일도 없을 거요. 하지만 만약 그대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대들이 전 부족을 상대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겠소."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 이들의 문명 수준을 생각하면 이게 정상일 것이다. 일단 마음이 놓이자 적극적으로 물을 찾아볼 생각이 들었다.

전체 오르그 부족과 거래를 할 수 있다면 이익은 엄청날 것이다. 아직 거래할 품목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배리어가 강화된 이후 아우터들은 물론이고 이너들도 이런저런 물건들이 부족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고맙소. 일단 저녁까지는 쉬고 식사를 하며 다시 이야기 합시다."

구미는 당기는데 이들이 원하는 걸 만족시킬 능력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하지만 하룬은 그걸 내색하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언제부터 대기하고 있었는지 안면을 익힌 세윰이 밖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큰 건물로 안내했다. 방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 거대란 공간만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외곽 지역에 억류되어 있던 약초 마을 사람들이 옮겨 왔다.

하룬이 자신을 반기는 벨에게 우치가 말한 내용을 전하고 그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려고 할 때 갑자기 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뒤쪽을 향했다. 돌아보니 1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오르그들의 안내를 받아 건물로 들어오고 있었다.

"촌장님!"

"할아버지!"

오랜만에 만난 마을 사람들은 촌장의 얼굴을 보고는그를 에워쌌다.

"다들 잘 있었는가?"

"흑흑!"

"다행히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끌어내서 죽일까봐 무척이나 불안했습니다."

처췌해진 마을 사람들의 얼굴리 그간의 고초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촌장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한가족이나 다름없는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보듬어 주고는 하룬 일행을 소개했다.

"우리가 살게 될 돌풍 기지의 주인이자 동풍 용병대의 대장이신 하룬 님이시네. 우리를 위해 오르그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마련해서 이곳까지 오셨네."

"하룬이라고 합니다. 그간 고생이 많았습니다. 곧 새로운 생활이 기다리는 우리 돌풍 기지로 가게 될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가는 돌풍 기지의 주인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서 직접 나섰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을을 이끌어 가던몇 명의 어른들이 나서서 감사 인사를 해 왔다.

"아닙니다. 우리 기지의 식구가 되려고 찾아오던 길이니 당연히 왔어야지요."

하룬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날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가자 마을 회의를 통해 돌풍 기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길을 나섰지만 사람들은 많이 불안했던 것이다. 그런 상활에서 오르그들에게 잡혀 언제 죽을지 몰라 불안해하던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그고스이 수장이 직접 나선 것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하룬에게 쏠렸지만 누구도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하룬의 무표정한 얼굴과 속을 뚫어 보는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이 대장이라는 신분과 함께 경외심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벨은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작은 힘을 느꼈다. 돌아보니 열 살이 채 안 된 작은 소녀가 그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유난히 큰 눈이 별처럼 반짝거리는 것이 꽤 영리해 보였다.

"언니도 돌풍 기지에서 왔어요?"

"후훗! 귀여운 아이네. 맞아! 난 벨이라고 해."

"전 애리라고 해요. 그런데 돌풍 기지는 어떤 곳이에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애리의 눈을 잠시 들여다본 벨은 돌풍 기지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자 어느새 약초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벨에게로 쏠렸다. 돌풍 용병대의 탄생과 영흥 마을 주민들이 합류하고 현재 돌풍의 체제라든지 시설 그리고 각종 프로그램이 벨의 입을 통해 하나 둘 나오자 사람들은 홀린 듯 벨을 둘러싸고 그 이야기에 집중했다.

하룬은 사람들의 주의가 벨에게 쏠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원래 남들의 관심을 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하룬이라 마음이 홀가분해졌던 것이다.

"난 잠시 밖에 나갔다 오지."

멀리 갈 것이 아니라 근처를 산책할 생각이었다.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지 고민스러웠다.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태룡은 당연하다는 듯 그를 따랐다.

잠시 만류했지만 태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긴 친위대가 하는 일이 하룬을 수행하며 호이하는 일이니 거부할 수도 없다. 일행이 배정받은 길쭉한 건물 주위로는 인적이 없었다. 지키는 이가 없다는 건 그만틈 신회한다는 뜻이리라.

'아즈만이나 쏘우 형님이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텐데. 뇌파 통신을 해 볼까?'

종말 시대의 지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아즈만이나 기계류나 과학 쪽에 독보적인 수준에 오른 쏘우라면 무슨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강에서 물ㅇ르 끌어들이면 어떨까?'

동력원을 써서 아리수 강물을 이곳까지 끌어올 생각을 해보지만 하룬은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무려 2만에 달하는 오르그들과 그들이 재배하는 많은 작물들이 필요로 하는 물이다. 설령 강물을 끌어 올리는 양수기가 있다고 하더라고 몇 대 가지고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이다.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해!'

이럴 때 비라도 내리게 하는 마법을 펼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능력은 아즈만은 물론이고 파이오니어 사도회가 신으로 간주하는 세 에인션트 컴퓨터가 본신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룬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건물 주위를 돌며 궁리를 했지만 좋은 생각은 해낼 수가 없었다.

애초에는 오르그들은 도발하여 데드 벙커를 공격하게 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들의 지능이 생각보다 높아 그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오르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데드 벙커를 공격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오르그들의 생활과 성향을 비롯하여 그들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무슨 방도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오르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려면 물을 찾아야 해!'

물을 찾는다.

당연히 지하수밖에 없다. 우기에 비가 많이 오지 ㅇ낳아 수량이 부족한 것이니 그것 말고느 ㄴ다른 방법이 없다. 이곳은 아리수 강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강으로 향하는 지하 수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될까?'

비록 물에 대한 친화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지하수를 찾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하룬은 천천히 걸으면서 중단전에 의식을 집중했다. 단단하게 뭉쳐진 순수한 물의 기운, 즉 수정이 느껴졌다. 수정은 하단전의 기와는 달리 생명체와 같은 친근하고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친 양면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물의 기운은 아이아의 그것과 비슷해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무척 친숙한 마음이 들었다. 비윤드와는 달리 정령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하단전에 자리를 잡은 기와는 달리 특정한 기운이 모여 생성된 수정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이봐, 내 말이 들리니?'

부르르.

장난처럼 건넨 의지였지만 수정이 반응을 보이자 하룬의 심장은 기대감으로 거칠게 뛰었다. 생명체처럼 느껴졌던 것이 잘못 느낀 게 아니다. 자아가 있는 존재임이 확실했다.

'저 정령이니? 이름이 뭐야?'

너무 기대가 컸을까 수정은 이어지는 하룬의 질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룬은 수정이 하단전의 기와는 달리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비욘드에서 나이아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밖에 있는 네 동료들을 찾아볼래?'

이번에는 확신을 가지고 의지를 부여했다.

파르르.

작은 떨림과 함께 수정이 작은 파동을 외계로 흘렸다. 그러자 일정한 방향에서 파동에 반응하는 강력한 맞울림이 느껴졌다. 파동이 같은 진동수를 가진 물체와 맞닥뜨렸을 때 발생하는 맞출림이 바로 공명이다.

'느껴진다!'

기쁜 나머지 집중이 흐트러질 뻔했지만 간신히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디지?'

공명이 일어난 곳을 본 하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 그 공명은 아리수 강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강이니 당연히 거대란 물의 기운이 발산하는 파동에 쉽게 공명했던 것이다.

'이건 아니고...... 지하수가 필요해!'

하룬은 방법을 생각하다가 결국 부츠를 벗고 맨발을 드러냈다. 한낮의 강렬한 햇볕으로 인해 맨발이 바닥에 닿자 피부가 벗겨질 것처럼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지만 조금 지나자 견딜 만해졌다.

하룬의 지느는 중단전과 자신의 발바닥으로 향했다.

'내려가!'

스르르.

하룬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중단전에 머물러 있던 수정의 한쪽 끝이 풀리며 혈도를 따라 발바닥 가운데까지 이어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외걔로 파동만 흘리던 것과는 달리 양 발바닥 가운데의 마나 스토리지에 자리를 잡고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중단전과 양발의 발바닥 중신의 마나 스토리지는 물의 기운으로 연결된 상태로 유지가 되었다.

'너와 비슷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찾아!'

하룬의 의지와 함께 발바닥의 마나 스토리지에 자리를 잡은 수정이 파동을 일으켰다. 그 파동은 땅을 매질로 아래쪽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수정이 발출한 파동은 흙을 통과해서 지하 깊숙한 곳까지 퍼저 나갔다.

'여긴 아니야!'

잠시 기다렸던 하룬은 자신이 서 있는 곳 근처의 지하에서는 공명을 느낄 수가 없었다. 파동의 번취는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지하로 퍼지면서 물결이 치듯 넓혀 갔지만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아니지만 파동의 강도를 통해 30~50 미터에 반경 10미터 정도까지는 느낄 수 있었다. 인지 범위는 나중에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하루은 천천히 걸으며 물의 기운에 의지를 부여해 파동을 일으키고 공명 여부를 확인했다. 하룬은 곧 병적인 집중 상태에 빠져 버렸다. 무의식적으로 건물이나 벽과 같은 방해무을 피해 갈 뿐 그의 의식은 발바닥의 마나 스토리지와 파동에 집중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하룬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드리어 지하애서 공명이 느껴진 것이다. 강하지는 않지만 확실히 공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문득 정신을 차린 하룬은 자신이 우물 근처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증발을 막기 위해 덮개로 덮은 우물을 자시헤가 살핀 하룬은 그 우물이 지하 수십 미터 깊이로 팠으면 제법 많은 물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찾을 수 있다!'

강 인근이니 만큼 강으로 향하는 지하 수로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추론이 맞았다.

어느 정도 깊이에 어느 정도 수량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하에 수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하룬은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무을 어떻게 찾을 것인지느 ㄴ알았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데 여긴 어디지?'

주위를 돌아본 하룬으 ㄴ자신이 여전히 내성안에 있으며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를 수행하고 있던 태룡이 길을 기억하고 있어 곧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오빠, 다들 한참 찾았잖아. 어딜 갔다 오는 거야?"

걱정을 하고 잇다가 겨우 얼굴을 푸는 벨이 잔소리를 했다.

"하하! 잠시 산책을 좀 했어."

"산책? 이런 상활에 무슨 산책이람. 난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벨은 골치가 아픈 듯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콩콩치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약초 마을 사람들은 불안했던 마음이 풀어져서 그런지 자리를 잡고 쉬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벨은 하륜이 말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후후! 아무튼 우리 벨이 최고다."

같이 고민해 주는 벨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걱정하지마. 다 잘 될거야."

"칫! 그렇게 자신할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벨의 손에는 'L'자 형태의 금속 막대로 만든 물건이 들려 있었다.

"뭐야?"

"엘로드라고 수맥을 찾는 도구야. 아즈만 언니랑 뇌파 통신으로 알게 되었는데 괴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종말 시대 말에도 이런 간단한 도구로 수맥을 찾았었대."

신기했다. 저런 간단한 도구로 물을 찾을 수 있다니 말이다. 벨이 하룬에게 수맥에 대한 종말 시대의 상식가ㅗ 엘로드를 이용해서 수맥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추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엘로드나 추에 주문을 걸어 깊이와 수량까지 알아냈다고 해. 미신 같지만 의외로 효과가 꽤 있었나 봐. 수맥이 인간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 많이 쓰였었대. 비록 간단한 도구지만 기감이 뛰어난 사람들은 이걸로 수맥은 물론 지하수로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니 신기해."

하룬은 엘로드를 들고 우물가까지 걸어갔다 벨이 알려 준대로 엄지손가락에 정면을 향하도록 가볍게 잡은 상태에서 엘로드가 정명능 향하도록 하고, 팔은 직각이 되게 하여 가슴에서 살짝 떨어지게 하고 몸을 자연스럽게 한 다음 보통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계속 아무러 ㄴ변화가 없던 엘로드는 신기하게도 우물가와 가까워지자 스르르 안쪽으로 움직여 'X'형태가 되었다. 신기한 마음에 몇 걸음 옆으로 이동하자 엘로드가 다시 펴졌다. 수맥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건 단순히 물의 존재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수맥의 존재를 알려 주는 거구나.'

"호호! 언니가 알려 준 방법이 효과가 있네."

벨 역시 신기한지 펄쩍거리며 좋아하다가 이내 시무록해졌다.

"물이 있는 곳까지의 깊이나 수량을 알려면 꽤 오랫동안 수련을 해야 한다는데......"

그러면서 벨은 아즈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이 있는 곳의 깊이를 알려면 팬듈럼이라고 부르는 탐색추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회전수나 회전의 세기로 깊이와 수량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경우 주문을 사용한다고 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수맥이 몇 미터 아래에 있는지 맞으면 움직여 주세요!'라고 추에게 주문하고 '1미터, 2미터, 3미터.....'하고 천천히 세어 가는 것이다.

기감이나 영력이 뛰어난 니들은 이런 원식적인 방법으로 물이 있는 곳의 깊이와 그 수량까지도 알 수 있었다고 하니 정말 대단했다. 이런 이들을 다우져아록 불렀는데 실제로 첨단 과학이 발달한 종말 시대 말에도 꽤 왕성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하룬과 벨은 아직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엘로드를 이용해서 수맥을 찾아보았다.

까닥!까닥!

얼마 지나지 않아 엘로드가 움직이자 신이 나서 수맥을 향해 이동한 벨과 하룬 앞에는 우물이 보였다. 그렇게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엘로드가 움직인 곳은 여지없이 우물이 있었다.

"효과는 있지만 이들이 원하는 수로를 찾는 건 이런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어렵겠어."

벨은 호기심에 한참 동안 엘로드와 씨름을 하더니 인상을 구기고 말았다. 이렇게 수맥을 찾는 방법은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걸릴지 얼마의 노력이 필요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벨이 투덜거리면서도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본 하룬은 아까처럼 물의 기운 일부를 발바닥의 마나 스토리지로 이동시켜 파동을 발생시키고 그 공명을 관찰했다.

'차이가 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우물마다 파동과 공명의 폭과 강도가 달랐다.

하룬은 네 번째 우물까지 갔을 때 파동과 공명을 통해 깊이와 수량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일단 돌아가자."

"히잉! 잘 안돼!"

하룬의 말에 아직도 엘로드와 팬듈럼(탐색추)를 가지고 씨름을 하던 벨이 얼굴을 찌푸린 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식사는 해야지."

"지금 밥 먹는게 문제야? 지하 수원을 찾아야 오르그들과 제대로 교류를 할 수 있잖아."

벨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배는 고픈지 내민 하룬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그사이 해가 지고 있었다.

마침 내성 벽 근처에 있던 하룬과 벨은 성벽에 올라 작업 지역과 외곽의 농장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거주 지역으로 돌아오는 오르그들을 볼 수 있었다.

"오빠, 휴먼들도 있어."

오르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휴먼들을 본 벨의 눈이 커졌다. 온몸에 털이 거의 없는 오르그들 사이에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휴먼드리 꽤 많이 끼어 있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오르그들이 상체를 드러내고 치부만을 겨우 가린 치마 형태의 천 조각을 걸치고 있는 데 반해, 휴먼들은 더럽고 낡기는 하지만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도 오르그들에 동화된 아우터들일 것이다.

내성 벽 가까이에 있는 주거 지역까지 온 오르그들은 하룬과 벨을 보며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기는 했지만 특별히 흥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휴먼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아마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 만큼 많은 휴먼을 근거리에서 봤을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오르그들의 얼굴에는 노동을 마친 피곤함과 일상의 고단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을 뿐이었다.

하룬의 시선이 오르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휴먼들에게 향했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과 눈빛은 오르그들과 함께 사는 이 생활이 고단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휴먼은 휴먼끼리 살아야 하는 법이지.'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오르그들 속에 끼어 사는 휴먼의 생활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인종이고 지능 수준도 높은 오르그들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숙소로 돌아온 하룬은 저녁 식사 초대가 최소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르그들이 준비해 준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래도 제법 풍성한 편이군.'

얌과 같은 구근류의 가루를 물과 반죽해서 화덕에 구운 것과 각종 채소류 그리고 작고 이상한 모양의 과일이 있었다. 고기류도 있었는데 매우면서도 좋은 향기를 가진 향료를 뿌렸는지 제법 먹을 만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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