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그를 찾아서
오랜만에 하룬이 참석한 회의는 확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아리가 하륜이 지시한 비밀 임무 때문에 불참하긴 했지만 나머지 수뇌부는 모두 참석했다.
각 부서의 업무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가 이어지고 돌출한 문제점에 대한 토론이 이어져 시간은 꽤 오래 걸렸지만, 누구도 힘들어하거나 지루헤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책림감과 함께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민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각종 물품 부족이 가장 문제였지만 그마저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원자재가 있기에 해결이 가능했다.
무력조와 연구조 그리고 생산조와 상인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유니온에서 데리고 온 휴먼들의 마약중독에 대한 문제였다.
"이번에 받아들인 식구들의 치료는 잘되고 있어요. 금단 증상이 심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약품 연구소에서 개발한 치료 캡슐을 이용해서 치료하고 있어요. 어른들의 경우 파괴된 뇌세포는 어쩔 수 없지만,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충분한 치료 과정을 거친다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여요."
혜린의 보고에 사람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어른들은 그렇다고 치지만 마약에 일찍부터 노출된 수많은 아이들의 건강을 다들 걱정하고 있었다.
"연구조는 물론이고 모든 기지 식구들이 열성적으로 일해준 덕분에 주거 시설은 완성되었고, 방 배정이나 부양 프로그램에 맞춘 정착 1단계 작업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도 시작되어 모두들 만족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라서 아이들 상당수가 마약의 부작용을 겪고 있지만 쾌적한 시설과 영양이 풍부한 식사 그리고 적절한 교육과 따듯한 관심만 지속된다면, 오래지 않아 기지 생활에 적응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주민의 기지 정착에 대한 총책임을 맡은 황박사의 총괄보고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하룬은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일일이 맞추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사람들이 있기에 돌풍 기지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약초 마을에서 이주해 오던 아우터들에 대한 건을 의논하고자 합니다."
벨은 이미 수뇌부들은 다 알고 있는 사항에 대해 간단하게 보고를 하고 의견을 구했다.
"당연히 구해야 합니다."
우암 소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물품을 주고 포로가 된 사람들을 구하느냐 아니면 무력으로 침투해서 구출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아까 보고 드린 대로 부단한 수련의 결과, 조원들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도한 오르그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가는 두고두고 이런 종류의 이링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번 참에 우리의 힘을 놈들뿐 아니라 오르그 전체에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무력조를 보내 주신다면 당장 구해오겠습니다."
로수는그간의 수련 결과에 고무된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벨은 의견이 달랐다.
"그렇게 해도 되겠죠. 무력조의 전력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믿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적진에서 무력을 사용하면 예상치 않은 인명 피해가 날 수도 있어요. 놈들이 요규하느 물건들이 다소 과하다지만 평화롭게 해결을 해야 합니다. 약초 마을의 촌장인 베산 노인의 마을 들으니 사람들을 억류하고 있는 오르그는 우르슘 부족으로 그 인원수가 2만에 달한다고 해요. 비록 그들이 우리보다 떨어진 문명 수준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가 부족한 만큼 이번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어야 할 것 같아요."
"난 벨 참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오르그들 중에도 부족별로 성향이나 생활상이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족으로는 그들이 가장 가까운 돗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일단은 탐색을 겸해 거래에 응해야 합니다."
상인조를 맡고 있는 보라의 말에 대다수는 동의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 건에 대해서는 충돌 없이 해결하는 것으로 결정하지요. 다만 이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네? 대장님이 직접 말입니까?"
"그건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하룬이 직접 자신이 가겠다는 의견을 꺼내자 당장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하지만 하룬의 태도는 완고했다.
"이번 출행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단수히 인질이 된 약초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휴먼들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오염된 환경에 훌륭하게 적응한 오르그들입니다. 언제까지 지하에서만 살 수 없는 만큼 우리도 지상에서 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기지의 인구가 지금처럼 늘어나게 된다면 머지않아 지금은 자급 자족이 가능한 많은 것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될 겁니다. 이번 출행에는 미래를 위해 오염된 환경에 적응한 동식물들의 샘플을 채집하는 것으 ㄴ물론, 오르그들과 접촉해서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미 북쪽 평야 지대르 ㄹ완전히 장악한 그들과의 관걔를 생각하면 제가 직접 가야 합니다."
"하, 하지만......."
사람들은 반대를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현재 수뇌부들 중에서 무력조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밖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하룬밖에 없었다. 그나마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우암 ㅅ정도 출행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그간 수련도 하지 않아 오염된 환경에 적응하는 건 힘들었다.
"그럼 저나 다른 조장이 가겠습니다."
로수가 방안을 찾았지만 그건 소용이 없었다.
"따로 말씀드릴 예정이었지만 말이 나왔으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무력조들은 각기 할 일이 있습니다. 언더시티와 용광로 마을 쪽 그리고 사이언스 마을 방향의 상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1개조는 기지를 방어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 건을 맡을 사람은 저 밖에 없습니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물건을 내주고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일이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여기 있는 분들은 아시는 사실이지만, 상당수의 오르그들이 우리에 비하면 좀 손색이 있어도 꽤 높은 문명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우려하는 안전 문제는 친위조를 동행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이 나온 김에 이번 상행 건을 꺼내자 자연스럽게 로수의 의견이 묻혔다. 원래는 상인조와 무력조를 따로 불러 의논하려고 했었지만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꺼낸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여러 방안이 나왔고, 차후의 관계를 고려하여 거래 품목과 수량이 정해졌다.
하룬은 토의를 거쳐 완성된 출행 건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기지의 상징은 하룬 대장인데 위험할 수도 있는 곳에 직접 가야 한다니. 대장,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우리 연구조에서 제대로 된 무기와 방어구를 곧 만들어 낼 테니."
"조금만 더 지나면 예비조들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제대로 굴리겠습니다.:
쏘우와 로수는 이렇게 기지의 규모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장이 이런 일에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스스럼없이 드러냈지만 현재 어쩔 수가 없었다. 기지 식구가 늘면서 예비 무력조가 6개나 만들어졌지만, 그들은 이제 겨우 기초 수련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니 벼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룬은 럼과 레이스의 결혼식을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회의를 마쳤다.
회의가 끝났지만 참석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지의 인구가 늘면서 할 일이 급증하는 바람에 기지 수뇌부들은 통화는 많이 했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해후를 즐겼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대장님, 잠시 제안을 해도 되겠습니까?"
황 박사였다.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일을 맡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맑고 활력이 넘쳤다.
"네, 날씀하십시오."
"우리 기지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작은 조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날이 곧 오게 될 겁니다."
맞는 말이다. 조 단위의 조직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굵직굵직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조직 체계의 확충이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비록 우리 기지는 작지만 기지에 현재와 미래를 걸고 있는 인원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아우터들이 우리 기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곳으로 찾아오고 있을 겁니다. 아직 시기상조인 감은 있지만 이제 우리 기지도 시티 단위로 조직 체계를 확충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씁니입니다. 자고로 사람이 모여 살게 되면 그 규모에 알맞츤 행정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됩니다."
황 박사의 말에 우암 소장이 맞장구를 쳤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찬성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두신 것이라도 있습니까?"
"그것에 관련해서 대장님에게 묻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황 박사는 입을 열기를 조금 주저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조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하룬을 쳐다보는 것을 보아 하룬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들끼리 논의가 된 것 같았다.
"그, 그게......."
"무슨 말인데 그렇게 조심스러워 하십니까?"
하룬이 온화한 눈빛으로 황 박사를 바라보자 마음이 놓인듯 그의 입이 열렸다.
"향후 우리 기지의 행정은 물론이고 지도 체계를 확정할 필요가 있어서 말입니다. 이 기지는 대장님의 소유이고 자김까지 대장님의 개인적인 자금과 역량으로 발전해 왔으니......."
황 박사의 말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배운 것이 많지 않고 관심도 없어 정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들은 향후 기지의 지도 체계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유니온의 경우 유니온의 생성에 막대한 공헌을 한 가문들이 원로원을 이루어 집단 지도체제로 권력을 잡고 있다.
돌풍 기지의 경우 하룬의 개인적인 역량과 자금으로 여기까지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를 어떻게 대우를 해야 할지 고민을 하는 것이리라.
"제가 이 동풍 기지를 발견하고 돌풍 용병대를 만드는 등 기초를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든 분들은 여기에 계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곳의 주인은 ㄱ지의 주민들이지요. 전 기지를 발견하고 자금을 토자했다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은 생각은 추후도 없습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보셨다시피 저는 기지를 원활하게 이끌어 나갈 지식이나 역량도 부족합니다. 당연히 리더십도 부족하구요. 하니 이걸 참고해서 기지의 앞날에 긍정적인 방향으로논의를 해 주십시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맞아요!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대장님 덕분입니다."
하룬의 말이 뜻박ㅇ이었는지 당장에 화의장이 시끄러워졌다.
그중 황 박사는 심각한 표저으로 하룬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진심일까?'
황 박사는 말년을 보내게 된 돌풍 기지를 정말 살맛이 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자식이나 가족도 없으니 후대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구상해 온 지도 체제는 종말 시대에도 존재했었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합한 정치체제였다.
물론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는 문제가 없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주인인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정치 참여에 등을 돌리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대를 이어 부를 축적해 온 자본가들이 경제력을 독점했을 뿐 아니라 정치까지 아우르느 ㄴ바람에 결국 종말을 부르는 전쟁으로 파괴된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체제. 능력과 노력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결정되는 세상이 황 박사가 꿈꾸는 세상이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그는 꿈꾸고 있었다.
그 때 하룬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한순간에 진정되었다.
"이곳에 정착한 주민들은 모두 소수의 가문이 대를 이어 권력과 경제력을 독점하고, 눈에 드러난 능력에 으해서 신분이 결정되는 것이 당연한 유니온의 신분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벗어나고자 이곳에 정착하신 분들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운이 좋아 이 기지를 발견했도 가진 자금이 부족하지 않아 기지의 태동에 일조를 했지만, 전 유니온의 원로원 가문처럼 권력을 쥐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첫 만남에서 밝혔듯이 제가 꿈꾸는 세상으 ㄴ신분이나 권력이 아니라 평등으 ㄹ기초로 하여, 약자를 배려하며 지속적인 능력개발과 노력이 인정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돌풍 기지는 그런 저의 바람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이 기지를 이렇게 만든 것은 여기 계신 여러분들과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온 주민들입니다. 물롬 제가 가진 것들이 토대가 되고 일조를 해 왔지만 대부분은 주민들이 만들어 온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 하지만 전 여러분들이 이제껏 봐 왔던 대로 권력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럴 만한 능력도 되지 않고요. 전 앞으로도 묵묵히 여러분들 모두가 꿈꾸는 세상에 일조를 하는 것에 만족할 생각입니다."
"......"
하룬이라고 돌풍 기지에 대한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민이 만여 명에 이르는 지금 돌풍 기지는 더 이상 그만의 장소가 아니다. 비록 자신의 가진 능력을 꽤 많이 발휘하긴 했지만, 지금의 돌풍 기지는 그 주민들 모두가 만들어 낸 장소인 것이다.
하룬은 스스로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단체라면 모르되 시티 정도의 규모를 이끌어 나가기에는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아니, 능력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에는 취미도 관심도 없다. 다른 이들이 능력이 없다면 모르지만 이제까지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운영해 오고 있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하룬에게는 남들에 비해 권력에 대해서 현저히 욕심이 없었다. 워낙 감정의 폭 자체가 좁은 하룬이다. 어릴 때 애정을 갈구하긴 했지만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던 경함을 가진 하룬은 욕심을 버렸다. 그 결과 평번한 이들이 의식주에 가지는 관심이나 욕심에 비해 하룬의 그것은 무척이나 적었다.
하룬이 재차 자신의 의지를 밝히자 사람들은 더 이상 소란을 떨지 않았다. 그의 진심을 확인했던 것이다.
"무력조와 상인조 일부가 출행하는 동안 남은 분들은 앞으로 돌풍 기지의 미래를 열심히 토론해 주시고 알맞은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 주십시오. 저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따를 작정입니다."
자신의 할 말을 마치고 회의장을 벗어나는 하룬이지만 그를 붙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는 하루느이 생각이 준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이다.
'오빠는 그럴 줄 알았어.'
다만 벨만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를 뿐이다. 하룬이 물욕이나 권력욕이 없다는 건 벨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회의장을 떠난 하룬은 이미 기지에 정착했다는 바란 남매를 만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기지에 없었다. 돌풍 기지의 실정을 확실하게 알게 된 바란 남매는 더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을 설득하기 위해 유니온으로 향했던 것이다.
벨의 마에 따르면 그들은 한동안 유니온의 진수네 집에 머무르며 공방을 비롯해서 다양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설득해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돌풍 기지에 늦게 합류했으니 그만큼 큰 공을 세워 제대로 인정도 받고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해란의 야심 때문이었지만 기술자들이 부족한 기지 상황을 고려하면 절대로 말릴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룬은 벨과 친위조를 대동하고 새벽에 기지를 나섰다.
오르그를 방문하는 일은 기지의 수뇌부들만 알고 있다. 아직도 오르그라고 하면 하르크와 함께 휴먼을 잡아먹는 흉악한 변종 생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걱정을 끼칠 수 있기에 은밀히 움직이는 것이다.
부르릉.
거친 엔진 소리와 먼지바람을 일으키느 바이크들이 육중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황무지를 달려간다.
라마두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하룬은 일부러 바이크를 선택했다. 이동 시간이 단축되고 쳔하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몇 번 타 보니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호쾌한 맛이 좋았던 것이다.
정찰 호크를 다섯 마리나 날린 덕에 곳곳을 돌아다니는 오르그들이나 맹수들을 만날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다만 굴곡이 많고 중간에 작은 모래사막들이 산재해 있는 탓에 바이크로도 반나절이 훨씬 넘게 걸린 후에야 아리수 강에 도착했다.
"와아! 멋있어, 오빠!"
강을 처음 본 벨이 탄성을 질렀다. 막 떠오른 태양을 품은 강물은 황홀한 광채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진흙으로 쌓아 올린 긴 벽이 보였다. 최근에 강변까지 영역을 확장한 우르슘 부족의 주거지와 농경지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일단 저 숲에서 잠시 쉬자!"
하룬 일행은 뿌리가 깊고 가지와 잎이 무성한 버들 숲으로 들어갔다. 버들은 족히 수백 년은 자랐는지 그 굵기가 어른 2명이 팔을 펼쳐 맞잡을 정도로 엄청났다. 높은 수치의 방사능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적응한 버들은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켜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뗏목을 준비할까요?"
태룡이 쉴 생각도 하지 않고 물어 왔다. 출발하기 전 이미 강을 건널 방도를 생각해 두었던 것이다.
하룬이 고개를 끄덕이자 친위조는 목만 축인 후 바로 바이크에서 도끼를 꺼내 버들 두 그루를 베기 시작했다.
하룬 일행이 보고 있는 아리수 강은 폭이 약 4킬로미터였지만 수심은 그리 깊지 않고 이 근처는 유속도 느려 파랑이 거의 없다고 했다.
동쪽으로 더 올라가면 가장 폭이 좁은 곳이 나오는데, 그 곳은 가운데 섬이 있어 앵쪽으로 채 1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코원 유니온과 가까운 곳이고 꽤 멀리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뗏목을 만들어 노를 저어 가기로 했다.
아리수 강에는 물고기뿐 아니라 방사능 때문에 심하게 변이가 되어 괴물로 변해 버린 수생생물들이 있었다. 그 수생생물들 중에는 코원 유니온이 뚫은 상하수도를 따라 유니온으로 들어와 가끔씩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그중 크로키라고 불리는 파충류는 악어가 변이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최고 1미터에 몸길이 4!5미터에 몸무게는 4톤이 넘게 나가는 놈으로 꼬리는 능히 수백 킬로의 파괴력을 가졌고, 뾰족하고 억센 이빨들은 철근을 부러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코캐이라는 물고기는 다 자라도 아이 손바닥 정도의 크기지만 날카로운 이빨과 맹목적인 공격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놈들은 강한 군집성을 가지고 있어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데, 크로키들도 잘못 걸리면 몇 분도 되지 않아 뼈도 남지 않을 정도였다.
서리치라는 물고기도 무섭다. 크기는 겨우 손톱 크기에 불과하지만 떼로 몰려다니며 날카로운 꼬리로 목표물의 살을 뚫고 알을 낳는데, 그 알이 부화하면 강한 독성을 내뿜어 대상물의 세포를 괴사시킨다.
"배산 노인 일행은 어떻게 이곳을 건넜습니까?"
하룬의 시선이 동행한 노인에게 향했다. 배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약초 마을의 촌장이었다. 강 건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 배산 노인의 노안에는 일가친척들인 마을 사람들의 걱정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이곳은 수심이 비교적 낮은 곳이라 변종 생물들이 거의 없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오르그들이 이곳 인긍에 자리를 잡은 거겠지요. 오르그들이 뗏목을 주었습니다. 긴 막대기로 바닥을 찔러 건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아리수 강을 건넌 것이다. 하긴 배란 물건은 글로벌넷의 사진이나 글로만 알았지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아마 지금 시대에 배는 더 이상 없을지 모른다. 큰 강과 바다는 육지보다 더 위함한 곳이기 때문이다. 육지의 변종 생물들은 그래도 많이 알려졌지만 수중의 변종 생물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벨은 태범을 데리고 버들 숲을 돌아다니며 각종 식물들을 수집했다. 오염된 환경에도 적응한 녀석들이니 잘만 연구하면 휴먼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으 ㄹ거라며, 오는 내내 각종 식물들을 흙과 함께 뿌리째 수집하고 있었다.
휴먼에 비해 최고 다섯 배 이상의 근력을 가지고 탄생한 생체형 사이보그 대원들은 30분도 걸리지 않아 거대한 뗏목 3개와 10미터에 달하느 긴 막대기를 만들어 냈다.
하룬 일행은 셋으로 나누어 뗏목을 타고 막대기로 바닥을 밀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이 부근으 ㅣ수위느 ㄴ5미터에서 7미터에 불과해서 어렵지 않게 일렬을 이룬 뗏목들은 강을 가로 질러 건너갔다.
첫 도강은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도강을 할 때 여태까지는 잔물결밖에 일지 않던 아리수 강이 갑자기 변덕을 일으켰다. 불특정적인 물결이 군데군데에서 일었던 것이다. 하룬 일행은 바싹 긴강했지만 다행하게도 별일은 없었다.
하룬과 벨 그리고 배산 노인과 태범이 탄 뗏목이 강의 중간에 왔을 때였다.
파앗!
갑자기 물보라와 함께 수면에서 검붉은 색의 거대한 물체가 튀어나와 일행이 탄 뗏목들을 뛰어 넘었다.
파앙!
괴 생명체가 수면에 떨어지면서 거센 파랑이 일어났다. 뗏목들은 금방이라도 뒤집힐 정도로 요동을 쳤고 사람들은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엇!"
무술을 익힌 이들은 용케 균형을 잡았지만 배산 노인은 누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푸!어푸!"
평생 산에서만 살았던 배산 노인이다. 헤엄을 칠 리가 없다. 순간적으로 물을 먹은 듯 허우적거리던 노인의 작고 왜소한 몸이 순간적으로 물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강을 건너라!"
하룬은 그 말과 함께 빠르게 외투와 방어구를 벗었다. 다행히 지퍼식이어서 벗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잘 가공했다고는 해도 가죽인 이상 물을 먹으면 행동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오빠, 어떻게 하려고?"
"구해와야지!"
"하지만......."
"저 노인이 없으면 오르그들과 대화하기 힘들어."
굳이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눈앞에서 기지 식구를 잃을 수는 없다. 벨도 그 사정을 알기에 발만 동동 구를 뿐 하룬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친위대원들이야 뼛속 깊이 충성심을 아로 새긴 이들이라 하룬의 말에 아무 반응 없이 따를 뿐이다.
속옷 차림이 된 하룬은 암기 벨트만 착용한 상태에서 박살을 빼 들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강도 육지처럼 오여밍 되었을 테지만 시계는 괜찮았다.
뽀르르!뽀르르!
저 아래에 공기방울을 흘리며 가라앉고 있는 배산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하룬은 기를 손발로 보내 몸을 빠르게 했다.
쑤욱!
무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룬의 몸은 쏜살같이 바닥으로 향했고 이내 배산 노인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제 손을 잡고 올라가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 이상한 마음에 배산 노인을 보자, 그가 급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다리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뭐야?'
노인의 발목에 감겨 있는 끈이 보였다. 검붉은 색의 가느다란 끈은 강력한 힘으로 더 아래쪽으로 노인의 몸을 당기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숨을 참고 있는 배산 노인의 등 뒤로 시선을 돌리자 10미터 정도 떨어진 바닥과 이어진 끈이 눈에 들어왔다.
파악!
박살에 검기를 생성시킨 하룬은 노인의 발목을 잡고 있는 끈을 잘라 버렸다.
피리리릿!
검붉은색의 끈은 고통을 느낀 듯 강하게 채찍질을 하며 물살을 흩뜨렸다.
'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까의 그 괴생물체의 촉수였었구나.'
하룬은 배산 노인의 몸을 잡고 발바닥을 통해 기를 모아 한 번에 표출시켰다.
파악!
제트 분사를 한 문어처럼 두 사람의 몸은 순식간에 수면 밖으로 뛰어올랐다. 하룬은 그 사이 5미터 가까이 움직인 뗏목을 향해 배산 노인을 던졌다. 태룡이라면 안전하게 받을 것이다.
노인을 던진 반작용으로 빠르게 강물에 빠졌던 하룬이 물 밖으로 나와 헤엄을 치려고 손발을 움직이려는 순간, 촉수의 끝에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생긴 것이 있었는데 마치 그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징그럽군.'
기분이 나빠진 하룬은 황급히 힘을 주어 촉수들을 끊으려고 했지만 아까 박살의 검기에 맥없이 잘렸던 것이 거짓처럼 느껴질 정도로 촉수에 담긴 힘은 엄청나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하압!'
기를 끌어 올렸지만 촉수의 조인이 조금 풀였을 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양팔로 모자라 상체를 꽁꽁 감은 새로운 촉수가 가세하지 하룬의 얼굴이 붉어져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우욱!'
방금 전 수면 밖으로 나갔을 때 호흡을 했어야 했는데 그걸 잊은 탓에 숨이 가빠 왔다. 아까 들이마신 공기는 이미 페부 깊숙한 곳으로 사라진 상태였다. 숨이 가쁜 탓에 점점 힘이 빠져 가는 그의 몸 상태를 알아차린 듯 미지의 존재들이 촉수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차라리 힘을 빼자!'
이제 참을 수 있는 한계는 1분 정도다. 하륜은 힘과 기를 풀고 당기는 촉수에 몸을 맡겼다.
바닥으로 빠르게 가라앉는 하룬의 몸은 어느 순간 브레이크를 잡은 바이크에 탄 것처럼 거칠게 멈추었다.
'한 놈이 아니야!'
하룬의 사지를 붙잡고 있던 촉수들은 서로 다른 객체들인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하룬의 몸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당기는 힘에 의해 멈춰진 것이다. 녀석들 역시 그 사실을 알았는지 진흙 바닥이 들썩이며 바닥을 부옇게 만들었다.
푸르르.
부옇게 변하고 있는 강바닥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검붉은색의 거대한 생명체였다.
'가오리?'
길고 날카로운 꼬리와 물결이 이는 듯 유연하게 몸을 흔들어 부상하는 납작한 괴 생명체의 몸음 마름모꼴이었는데 놈의 머리와 검붉은색 촉수는 연결되어 있었다. 놈의 생김새는 언젠가 봤던 종말 시대의 물고기들 중 가오리라고 불리는 것과 비슷했다.
'이놈은 바다에 사는 거 아니었나?'
하긴 방사능으로 인해 유전자 변형이 흔하게 일어났으니 바다에서 살던 놈이 민물에서 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상황을 파악하느라 주변을 둘러보는 하룬의 눈빛은 암담하게 변했다.
'빌어먹을!'
언뜻 봐도 지느러미를 다 펼친 몸의 한 변 길이가 10미터는 되어 보였다. 꼬리와 머리를 교대로 흔들어 흙탕물을 일으키며 검붉은 몸 아랫부분을 노출시킨 괴물의 입은 톱날처럼 날카로운 이빨들로 가득했다.
강바닥에 파고들어 모습을 감추었던 놈들이 이제는 자신을 혼자 먹기 위해 촉수들에 더욱 강한 힘을 주고있었다.
'흐윽!'
거의 90도 각도로 벌려진 두 다리와 양팔에 가해진 압력에 몸이 찢길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몸 안에는 한 점의 공기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상단전의 뇌력을 쓸까 했지만 성공 여부를 떠나 이런 물속에서 뇌전력을 사용하면 자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놈들의 견제로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익사할 판이다. 숨을 참느라 의식마저 혼몽한 가운데 하룬은 삶을 포기라도 한 듯 피부의 모공으로 물을 끌어당겼다. 수기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한 가닥 가능성이 떠오른 것이다.
샤아앗!
단지 공기가 다 빠져나갔을 뿐이지만 텅 빈 것처럼 느껴졌던 몸이 한순간에 곽 차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한 대로 물속인지라 수기는 엄청났고 순식간에 그 수기가 체내로 가득 들어온 것이다.
'심법을 운용하자!'
호흡하고는 관련이 없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하룬은 수기를 혈도로 빨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운기를 시작했다.
슈욱!
수기는 혈도를 벼락이 치듯 엄청난 속도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기는 대주천의 궤적하에 있는 혈도들을 달리며 체내로 들어온 수기들을 빨아들여 그 세력을 키웠다. 하룬의 의식은 오직 수기를 빨아들이고 운행하는 것에만 쏠려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호흡의 곤란이나 육체적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운기를 했을까? 하룬은 주먹만큼이나 커진 수기가 하단전이 아닌 중단전에 자리를 잡고 회전을 통해 밀도를 높이는 것을 인지했다.
'이건 뭐지?'
지혜의 파편에서도 이런 형상은 들은 적이 없었던 터라 적지 않게 당황했지만, 중단전에 자리를 튼 수기를 인지함과 동시에 더 이상 호흡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직도 싸우는 중이구나! 이 빌어먹을 물고기들을 어떻게 한다?'
변종 가오리로 추정되는 괴물 물고기들을 바라보는 하룬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럴 때 나이아가 있었다면 놈들의 저 넓은 몸통을 워터 에로우로 벌집을 만들었을 텐데. 중단던에 자리를 잡은 이 기운이 그렇게 할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이곳이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비욘드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 이럴때는 너무나 아쉬웠다.
그때였다.
하룬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몸은 여전히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중단전의 수기가 꿈틀하더니 일부가 안개처럼 변했다. 여전히 수기와 연결이 된 채 안개는 혈도가 아니라 바로 피부를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의 몸을 감싸더니 파동을 일으켰다.
그러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하룬이 보고 있던 변종 가오리의 전방 1미터 정도에 십여발의 워터 에로우가 생성되더니 엄청난 속도로 놈의 동체를 꿰뚫었다. 순간 놈의 넓은 지느러미에 구멍이 숭숭 생기더니 그곳에서 흐릿하지만 피가 흘러나왔다.
놈은 극심한 고통에 몸을 거칠게 흔들었지만 조금씩 그 몸짓은 약해졌고 왼쪽 발목을 몇 바퀴나 감았던 촉수가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수기의 변화부터 이런 결과까지 다시 떠오린 하룬의 눈이 흔들렸다.
'내가 한 걸까? 맞아! 내가 한 일이야! 그런데 어떻게 한 거지?'
하룬은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한 생각들ㅇ르 반추했고 믿을 수는 없지만 중단전의 수기가 이런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
하룬은 다른 변종 가오리를 바라보며 의지를 일으켰다.
'워터 에로우!'
의지가 이는 순간 몸을 엷게 감싸고 있던 수기가 파르르 떨더니 미세한 파동이 발생했고 열대여섯 발의 워터 에로우가 그의 눈앞에 생성되었다. 파르르 떨며 명령을 기다리는 워터 에로우의 모습에 하룬의 얼굴이 밝아졌다.
'가랏!'
파바밧!
의지와 함께 날아가는 워터 에로우들은 순식간에 다른 변종 가오리의 넓은 몸을 뚫어버렸다. 이번에는 그 숫자가 많아서인지 금방 놈의 힘이 빠지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입을 벌릴 수는 없지만 하룬의 입매는 길게 늘어졌다.
'정령은 소환할 수 없지만 중단전에 축적한 기운과 그 기운의 파동을 매개로 외계에 존재하는 같은 종류의 기운을 빌려 쓸 수 있어!'
이쩌면 이욘드 세상에만 존재하는 마법과 비슷한 원리였다. 심장 부근에 축적한 고리 형태으 마나에 의지를 부여하여 특정한 파동을 일으키고 외계의 마나를주문을 통해 공명시켜 마법을 발현시키는 것과 유사한 원리로 이 힘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상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노전력과 다른 점은 이 수기가 중단전에 축전된 자신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파동과 공명으 ㄹ통해 체외의 같은 기운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단 중단전의 수기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하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워터 스피어!'
'워터 커터!'
'워커 해머!'
산기하게도 생각한 대로 형상화된 물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형상보다 더한 위력을 보였다. 물속이라서 그런 것인지 저항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 빠르기와 파괴력도 엄청났다.
퍼억! 퍼억! 퍼억!
연속적으로 가해진 공격에 변종 가오리들은 걸레처럼 변했고 하룬의 상체와 팔 그리고 발목을 둘둘 감고 있던 촉수들은 하나씩 힘을 잃고 떨어져 나갔다.
'하하하!'
너무 신기하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내가 수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어.'
현실에서는 물론이고 비욘드에서도 이런 식으로 기나 마나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하룬은 또 하나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 너무나 기뼜다. 엄청난 전력을 가진 GG나 HG를 상대하려는 하룬은 내심 자신의 약한 능력에 대한 심한 불안과 더 큰 힘을 가져야 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ㅏㄷ.
'가자! 너무 오래 지체했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은 없지만 그래도 일행들, 특히 벨이 걱정을 할 정도의 시간이 이미 지났음을 인지한 하룬은 팔다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파악!
수면 위로 머리를 올린 하룬의 눈에 강 건너편에 도착한 뗏목과 허둥거리며 움직이는 대원들에게뭐라고 닦달을 하며 울고 있는 벨을 볼 수 있었다.
'후후! 녀석이 많이 놀랐구나!'
벨은 틀림없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 생각하고 우는 것이리라. 벨의 그 마음이 너무 따듯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하룬의 몸이 수면 위로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러자 막 그를 발견한 벨이 고함을 치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 오빠!"
하룬은 벨의 울음 섞인 소리에 가슴이 따듯해졌다.
'워터 플로어!'
수면에 닿은 하룬의 양발이 마치 땅바닥에 닿은 것처럼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기 수면을 걷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이 샹하느 ㄴ길의 물들이 강력한 압력을 받아 그의 몸무게를 감당하는 것이다.
천천히 물을 밟고 걸어가는 하룬의 미소가 짙어질수록 건너편에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귀신을 본 것처럼 얼어붙었다. 자연의 질서가 무너진 광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은 찢어질 듯 커져 있었다.
강가에 쌓은 흙벽 위로 무기를 들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오르그들이 보였다. 그들은 수면 위를 걷는 하룬을 보고 크게 놀라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퉁......그리! 퉁그리!"
하룬은 빨리 강을 건너가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이제 막 수기를 얻은 터라 활용하는 것이 서툴렀다. 집중을 해야 발이 닿는 부분의 수면이 그의 몸무게를 담당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벨을 보고 잠시 감정이 흔들렸을 때 발목까지 빠졌으니 집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수면 위를 걷고 있다 보니 흙벽 위레 오른 오르그들이 수백 이상으로 늘어났고, 새로 합류한 오르그들은 입을 쩍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어울리지 않게 모자를 쓴 부류도 있었다.
무사히 아리수 강을 건너자 벨이 달려왔다.
와락!
품에 안긴 벨의 얼굴은 흘린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앙! 죽은 줄 알았잖아! 앙앙!"
"후후! 죽긴 왜 죽어? 강 속 구경을 하고 나오는 길인데"
벨은 하룬이 몇 번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자 격정을 가라앉혔다.
"칫! 오빠란 사람이 만날 동생 걱정만 시키고! 못됐어!"
"하하! 미안, 처음 보는 신가한 생물이 날 공격하기에 처리를 하느라고 그랬어."
사실 벨은 걱정과 함게 한편으로는 오빠라면 어떻게든 살아서 이렇게 환한 웃음과 넓고 단단한 품으로 자신을 보듬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호호! 조금만 더 늦게 나오셨으면 우리 모두 강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어요."
태연의 말이 사실인듯 친위대원들은 모두 슈트를 벗었거나 벗다가 만 상태였다. 수영을 한 경험은 없지만 아즈만이 직접 주입해 준 지식과 육체에 새겨진 가경험이 있으니 그들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 대장님"
배산 노인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아직도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대장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자책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으시죠?"
"아......네!"
하룬이 벨이 건네주는 슈트와 외투를 입는 사이에 흙벽 위로 오른그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었다. 누간가 책임자가 오는 모양이다.
"모두 복장을 갖추어라!"
하룬의 명령에 대원들이 신속하게 슈트를 착용하는 사이 위에서 사다리가 내려오더니 오르그 몇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친위대원들은 그들이 계단처럼 보이는 폭이 넓고 긴 사다리를 다 내려왔을 때는 이미 엄정한 군기를 흘리며 경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랴로 내려온 오르그들은 열둘로 전사는 일고이었고, 나머지는 흙벽 위레 있는 오르그들이 치마 비슷한 것만 걸치고 민머리에 검붉은 상체를 드러낸 것에 비해, 마 재질로 보이는 헐렁한 옷을 갖춰 입은 채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하룬 일해으이 다섯 걸음 앞까지 다가온 후 걸음을 멈추었다. 모자를 쓴 오르그들 중 비교적 젊어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휴먼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조금은 어색하게 들렸지만 휴먼이 쓰는 언어와 다름없었다.
"환영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나는 돌풍 용병대의 대장 하룬입니다."
하룬이 인사를 하자 뒤에 있던 한 오르그가 앞으로 나왔다. 털이 거의 없는 다른 오르그들과 달리 턱수염이 있는 그 오르그는 붉고 노란색으로 물들인 모자를 쓰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전 우르슘 일족의 퉁그리 세윰이라고 합니다."
퉁그리라는 말과 세윰이라는 이름은 그들만의 언어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었지만 그렇게 들렸다. 퉁그리라는 용어는 직책을 의미하는 것 같았고 세윰은 이름으로 생각되었다.
"휴먼 퉁그리의 방문을 환영하오. 파르께서 기다리시니 함께 갑시다."
파르라는 말은 아마도 이들의 족장이나 수장을 의미하리라. 왜 자시을 퉁그리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눈빛에서 적의를 찾기 힘들었던 하룬은 주저없이 그들을 따랐다.
"이것들은 뭡니까?"
배산 노인이 지키고 있었던 엄청난 양의 물자를 바라본 세윰이 물어 왔다.
"당신들과의 만남을 축하하는 예물이오."
굳이 인질과 교환할 물건이라고 말을 하기가 난처했기에 무심코 꺼넨 말에 세움은 흡족한 얼굴이 되어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전사들로 하여금 옮기도록 하겠소."
"그러시오."
"귀한 분들은 나를 따라서 우리 베를로 갑시다."
자센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무척 우호적인 분위기여서 하룬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배산 노인의 얼굴도 많이 밝아졌다.
사다리를 타고 흙벽을 오르니 오르그들의 거주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치 공을 반으로 잘라 땅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긴 수많은 천막들과 역시 같은 형태지만 그 규모가 훨씬 더 큰 구조물들이 한데 뭉쳐 있는 것이 보였다.
"저곳이 우리 베르요."
베르는 자신들의 도시를 가리키는 말이리라. 그들의 베르를 바라보는 벨의 눈이 호기심과 관심으로 반짝이더니 하룬에게 뇌파 통신을 보냈다.
-오빠, 정찰 호크들이 보내온 영상을 보니 건물들이 가죽으로 두른 이동식 집들이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방사형을 이루고 있고 거주 지경과 생산 지역이 분리되어 있어. 비록 마르긴했지만 수원지로 보이는 저수지도 있어, 그곳과 연결된 수로나 각 지역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도로도 있고 상하수도도 어느 정도 완비된 것을 보니, 적어도 아우터들에 해당하는 문명을 지닌 것 같아.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처음 대하는오르그들의 거주지는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아리수 강으로 흐르는 작은 천을 중심으로 가운데는 진흙벽돌로 벽을 둘른 작은 성채가 있고 4개의 큰 도로를 중심으로 구획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갑시다!"
세윰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앞장서서 그들의 베르와 연결되는 대로를 걸어가며 하룬 일행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