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르 전단의 침공
돌풍 상단으로 돌아온 하룬은 급하게 그를 찾는 벨과 아리때문에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비상 상황인지 그녀들은 중앙 기지 대신 돌풍 기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급하게 돌풍 기지로 가니 소장실에서 그녀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지난번 사태를 계기로 지하 쪽에 진동파를 이용한 정찰을하고 있었는데 우리 기지를 향해 오는 자들이 감지되었어."
"아즈만이 파악한 걸로는 진동으로 파악한 무궤도 차량의 숫자는 모두 20대, 그 무게로 판단하건대 장비도 많은 것 같고 인원도 족히 1,000명은 되는 것 같다고 해요."
보고를 하는 벨과 아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GG인가?"
"아마도요."
"정말 귀찮은 놈들이군."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우리가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블러드 새도우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다시 공격군을 파견한 건지도 몰라요."
"그 이유가 뭐가 되었건 그냥 둘 수 없어, 오빠."
"이런 경우를 상정해서 세운 계획이 있었지?"
"응, 오빠. 몇 가지만 수정하면 될 것 같아."
벨은 아즈만과 아리와 함께 마련한 계획을 설명했다. 하룬은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이제 막 안정을 되찾고 있는 중이라 우려가 되었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돌풍 기지의 수뇌부는 금방 소장실로 모였다. 한창 활동할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모두 착석하자 성질 급한 쏘우가 물어 왔다.
"우리 기지를 목표로 하는 대규모의 이동이 탐지되었습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변했다. 불과 얼마 전에 끔찍한 일이 있었기에 긴장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정체가 GG의 무력 조직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말을 한 아리에게 향했다.
"현재 그들은 우리 기지의 북동쪽 25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와 있어요. 시간당 8킬로미터의 속도로 이동해 오고 있으며 유니온이 사용하는 서브 로드를 이용하고 있어요. 서브 로드는 우리 기지와 약 12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곳부터는 다른 통로를 뚫거나 혹은 지상을 통해 올 걸로 예상됩니다."
"그들이 우리를 목표로 오고 있다는 증거가 있나, 아리 참모?"
그렇게 묻는 황 박사의 말 속에는 더 이상 침략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그 충격의 여파는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진동파로 파악한 정보로 보면 이동 수단이 무궤도 차량이며 무게를 감안하면 차량당 40에서 50명이 타고 있어요. 참고로 무궤도 차량은 주로 HG나 GG의 무력 조직이 이용하고 있으며 최근 유니온의 특수군이나 방위군의 이동 상황에 특이상황은 없었어요."
아리의 보고에 몇 사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돌풍 기지에, 이제는 유니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위성 접속 장치처럼 첨단기기들이 있으며 정확한 정보 제공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 참모는 이들이 GG의 무력 단체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인원은 얼마나 되오?"
"최소 800명에서 최대 1,200명입니다."
아리의 말에 물은 소장과 사람들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들으신 대로 기지의 안전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황 박사님과 소장님은 이 상황을 기지에 알리고 당장 노약자들과 비전투 식구들을 지하 11층과 12층으로 이동시켜 주십시오. 혜련 참모는 전투가 끝난 후를 대비해서 약품을 준비하고 수술을 비롯한 의료 상황을 체크해 줘요. 서둘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장."
세 사람은 급하게 소장실을 나섰다.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연구 조장님은 폭약들을 만들어 주십시오."
"염려 마십시오. 이미 꽤 많은 양을 만들어 놓았고 재료도 충분하니 놈들이 올 때까지 쓸 만큼은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군장과 무기 상황은 어떻습니까?"
"방어구는 지난번에 노획한 슈트를 개조해서 100벌 이상을 마련했고 개량 파동건과 입자건의 경우 총 250정을 더 생산해 두었습니다."
역시 쏘우였다.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었다. 하룬의 얼굴에 떠오른 만족스러운 미소에 다크서클이 선명한 쏘우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좋습니다. 그럼 서둘러 주십시오. 폭약의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쏘우가 나가자 이제 소장실에는 5명의 전투조장들만이 남았다.
"조별 상황과 검기 사용자 현황은 어떻습니까?"
벨과 아리에게 들으니 블러드 새도우 사태를 계기로 상인조에서 전투조로 옮긴 식구들이 꽤 많았다고 했다. 전투조는 인원이 크게 늘어 이제 전투단으로 불러도 될 정돠.
"저희 1조는 수련대원 18명을 포함해서 총원 121명입니다. 검기 능력자는 모두 3명입니다."
"2조는 수련대원 15명을 포함해서 총원 120명입니다. 검기 능력자는 저 포함 3명입니다."
"3조 보고하겠습니다. 수련대원 17명 포함 123명입니다. 검기 능력자는 총 3명입니다."
"특수조인 4조 보고입니다. 수련대원 없이 총 84명입니다. 검기 능력자는 저를 포함 5명입니다."
"친위조는 총원 20명입니다. 검기 능력자는 3명입니다."
철웅, 로수, 대산, 사용에 이어 태룡이 보고를 했다. 특수조인 4조의 경우 지난번 사태 때 임시조장이었던 사용이 정식으로 조장이 되며 각 조에서 검술에 특화된 대원들을 선발했다.
"수련대원들은 이번 작전에서 배제시키겠습니다."
목숨이 달려 있으니 당연한 명령이다.
"수련대원들은 기지 내부 방어를 맡을 1조에 배속할 테니 철웅 대장은 그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철웅의 생각 같아서는 자신도 공격에 나서고 싶었지만 대장의 명령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1조는 혹시 모를 침투를 대비해서 기지 내부 방어와 요인 호위를 맡으십시오. 그리고 2조는 기지 입구 근처에 은신해있다가 접근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임무를 내리겠습니다. 입자포를 최대한 사용해서 적들의 예봉을 꺾으십시오."
"넷, 대장님!"
"맡겨 주십시오."
철웅과 로수가 힘차게 대답을 했다.
"3조와 4조는 친위조와 함께 나를 따라 작전을 나갉 겁니다."
대산을 비롯한 세 조장의 얼굴이 강렬한 흥분으로 인해 벌겋게 달아오르고는 눈빛이 강해졌다. 그들이 원하던 대로 가장 위험하지만 짜릿한 임무를 맡은 것이다. 3조는 태가사남매가 이끄는 20명의 사이보그 대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이보그 대원들이 모두 소속되어 있었다. 다른 조장들 역시 자신들이 선봉에 나서고 싶었지만 분화 과정에서 전투 기술을 학습하고 수련했던 사이보그 대원들을 최초의 돌풍 용병대원들로 알고 있었기에 크게 불만을 갖지는 않았다. 사이보그 대원들은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각 조의 자세한 임무는 차후에 다시 내리겠습니다. 일단 조장님들은 조원들을 챙겨 전투준비를 갖추십시오."
할 일이 많았다. 조원들을 집합시키고 군장을 갖추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전투조원들 중 절반 이상이 현재 비욘드에 접속한 상태였다. 오전이라 게임에서 전투 기술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대원들이 출동을 준비하러 나가자 소장실에는 하룬과 벨 그리고 아리만 남았다. 하룬의 시설이 벨에게 향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올까?"
"음! HG에서 구식이지만 드릴리언을 운용한다는 사실 때문에 변수가 있긴 하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을 걸로 예상되고, 진동으로 파악한 무궤도 차량의 무게로 보아서는 바이크로 이동할 거 같아."
하긴 유니온 밖의 황무지나 사막과 같은 지형을 고려하면 바이크 종류가 가장 알맞다. 무궤도 차량의 경우 방호력은 뛰어나지만 냉방 시스템의 가동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운용하기 힘들다.
"제 생각에도 저들이 바이크로 이동해 올 거 같아요, 오빠."
아리의 말을 들은 하룬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리를 보았다.
"아리, 혹시 지뢰 만드는 방법 알아?"
"지뢰요? 아! 그거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네요."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는데. 게다가 적들이 어떤 진형으로 올 지도 모르고."
벨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하룬은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정교한 지뢰라면 모르지만 급한 대로 일정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묻어 놓고 무선 리모콘으로 폭발시키는 식이라면 당장 제조할 수 있을 거예요."
아리는 하룬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쏘우 조장에게 가서 당장 최지급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 아니, 폭발물 제조 지식과 기술이 있는 사이보그 대원들을 모두 데려가서 만들라고 해."
"그럴게요."
"적들이 산개해서 쳐들어올 것이 분명한데 어쩌려고?"
벨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하룬은 자신이 있었다.
"놈들을 몰아야지."
"유인을 한단 말이야?"
"응. 한 방향으로 올 수밖에 없도록 작업을 해야 해."
하룬은 드릴리언을 활용해서 기지 인근의 지형을 통째로 바꿀 생각을 했다.
"놈들이 하나밖에 없는 진격로에 들어오면 지뢰로 그 숫자를 줄이고 입자포를 이용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거지."
"좋은 생각이에요. 그럼 거기에 추가해서, 도망을 치는 적들을 위한 선물로 지뢰 지역을 하나 더 늘리는 거예요."
아리가 좋은 생각을 해 냈다.
"로켓 입자포와 지뢰 그리고 30문의 대형 입자포라면 놈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다 녹여 버릴 수 있어. 적들은 우리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거든."
"하긴 지난번 공격을 한 자들 중 살아서 간 놈은 하나도 없으니까."
"네 역할이 중요해. 놈들은 숫자도 많고 여러 덩어리로 분산해서 쳐들어올 테니 틀림없이 무선 통신을 사용할 거야. 벨, 너는 아즈만과 함께 적절하게 자장풍을 불러일으키고 재망(통신 교란)을 해서 놈들을 교란시켜야 해. 놈들이라면 통신 위성을 이용할 수도 있으니 위성도 통제해야 하고."
"아! 그렇게 하려는 거구나!"
벨은 이제야 하룬의 작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극도의 혼란을 야기하여 맹수들을 정해진 덫으로 끌어들여 한 번에 녹여 버리려는 것이다. 글로리 가이아의 특수전단 중 서열 3위인 알코르 전투단은 목표물과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슈트를 포함해서 완전군장을 갖춘 알코르 전투단원들은 뙤약볕 아래에서도 용맹한 기세를 떨치고 있었다. 그들의 슈트는 항온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이런 열기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우리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놈들은 두더지처럼 땅속에 숨어 있다. 놈들이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고 밖으로 나와 응진할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이곳에서 5로(路)로 나누어 진군한다."
알코르 전투단장 제리코는 총 10개의 대를 5로로 재편성 했다. 정상적이라면 목표물을 다섯 방위에서 포위하고 안쪽으로 좁혀 들어가는 방식의 이동을 택했겠지만 그들이 가진 정보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목표물까지는 평탄한 지형이다. 숲이 몇 곳 있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았고 나머지는 황무지였다. 훤하게 시야가 열린 지형이라 매복의 효과도 없거니와, 그들의 숫자라면 매복을 하더라도 충분히 박살 낼 수 있다.
하여 각기 200명으로 구성된 각 로는 나란히 횡으로 퍼져 약 100미터의 간격을 두고 이동하기로 했다. 비록 드릴리언을 지원받지는 못했지만 사막이나 습지대를 가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바이크를 지원받을 수 있어 이동에 어려움은 없었다.
"앞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쓸어버려라!"
유니온들이 자랑으로 삼는 특수대에 견줄 수 있는 능력자들로 구성된 전투단원이 무려 1,000명이다. 소형 입자포를 비롯해서 첨단의 무기들을 갖춘 전투단원들 1,000명이면 빅유니온이 아닌 한 어지간한 소형 유니온은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불쌍한 놈들이군!"
"그러게. 어디서 운 좋게 휴먼 시대 초기의 기지를 하나 차지하고 앉은 모양인데 우리에게 완전히 박살 나게 생겼네."
"아무튼 빨리 처리하고 비욘드에 접속해야 하는데. 이 세상은 별로 재미가 없어서 말이야."
"그래. 요새 현실의 일은 시시해서 재미가 없어. 약의 공급도 끊기고 배리어의 축소와 함께 환락가까지 축소되는 바람에 즐길 만한 일도 별로 없지. 요새 비욘드가 낙이 되어 버렸잖아."
"흐흐흐! 너도 살인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구나."
"살의와 원념으로 가득한 싱싱하고 순수한 흑마력을 산채로 빨아들일 때의 그 감각은 마약보다 더 강렬하잖아."
작전이 하달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던 알코르 전투단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번 작전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길! 거주 인원이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기지 하나를 없애려고 우리 전투단 전체가 파견되다니. 위의 놈들이 할일도 어지간히 없는 모양이야.'
10명으로 이루어진 한 조만으로도 수백의 오르그 무리를 상대하던 알코르 전투단원들이다. 요즘에 새로 나타난 오르그들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이번 작전에 전투단 자체가 나선것은 전력의 낭비였다. 단장인 제리코를 위시해서 전 단원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번 작전을 맡은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각 로의 알코르 전투단원들은 검은 전신 슈트에 최신형 입자건과 파동건을 든 채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지로 접근했다.
"자장풍이다! 산개!"
배리어 밖에는 수시로 자장풍이 분다. 어떤 경우에는 수십 혹은 수백 개의 자장풍이 불어 토네이도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경우 에너지 배리어까지 충격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알코르 전단원들은 자세한 명령이 없어도 빠르게 바이크에서 내려 각자가 착용한 슈트의 허리 뒤춤에 꽂혀 있던 멀티 툴을 꺼냈다. 50센티미터의 길이의 멀티 툴에는 단검과 야전삽을 비롯한 몇 가지 공구가 한 틀 안에 들어가 있었다.
멀티 툴을 조절해 야전삽으로 만든 전단원들은 이미 몇 개의 토네이도로 변한 자장풍이 자신들을 덮치기 전에, 익숙하고 빠른 솜씨로 푸석한 황무지 바닥을 파서 바이크는 물론이고 자기 한 몸 들어갈 수 있는 비트를 만들었다. 아즈만이 정교한 조작을 통해 일으킨 자장풍 토네이도는 아쉽게도 알코르 전단원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토네이도가 일으킨 자욱한 먼지바람을 통해 이미 예정된 작업을 무사히 마친 하룬과 돌풍 대원들은 미리 정해둔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아리, 어떻게 됐어?
-거의 다 완성해 가요.
서서히 가라앉는 누런 먼지 사이로 아리가 조종하는 드릴리언의 상단 부분이 잠시 눈에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아리는 적들을 예정한 길로 몰기 위해서 약 500미터에 해당하는 구간만 남기고 양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정도의 땅을 드릴리언을 이용해서 깊이가 4~5미터에 폭이 10미터 정도되는 고랑을 불규칙적으로 만든 것이다. 바이크를 타고 이동해 오는 적들은 깊고 넓은 고랑을 피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아리가 정말 고생하는구나.
-호호! 고생은요. 태범이도 하는걸요.
하긴 재주가 많은 태범도 지난번에 얻은 드릴리언으로 같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적들이 4킬로미터 전방까지 접근해 왔을 때는 이미 깊고 불규칙한 고랑이 완성되었다. 토네이도로 인해 발생한 짙은 먼지가 그 위에 내려앉자 급조했다는 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고생했어! 이젠 기지로 돌아가서 전체 상황을 전해 줘.
-아니에요. 그건 아즈만이 하고 있으니까 전 폭발 지역에서 떨어진 지하에서 대기하고 있을게요.
아리는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룬은 더 이상 아리만 챙기고 있을 수가 없었다. 확인할것들이 널려 있었다.
-로수 조장, 시야는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입자포와 로켓 입자포를 운용하기로 한 로수가 통신기를 통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돌풍 기지가 보유한 대형 입자포는 총 30문이다. 비록 그수는 적지만 쏘우가 하룬의 양부 청일 박사의 연구 일지에나온 기술을 도입시켜 개량한 것으로 사정거리는 물론 분당 세 번을 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형 입자포 30문과 로켓 입자포들은 기지와 300미터 떨어진 곳에 전진 배치해 두었다. 입자포에 경험이 많은 화랑과 방조가 이미 그 포격 방위를 지정해 두었기 때문에, 발사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다.
-입자포 진지의 위장 상태는요?
-네. 말씀하신 대로 기지 식구들을 총동원해서 완성했습니다.
대형 입자포들의 포신과 몸체는, 근처에서 캐 온 관목들을 심어 가린 것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무성한 가지와 잎을 가진 마도 나무는, 입자포는 물론이고 기지 입구까지 제대로 감추어 주었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알코르 전단은 기자와 약 4킬로미터 떨이진 곳까지 진군을 했다. 그들은 넓은 범위에 불규칙하게 파여진 고랑으로 인해 예정된 진군을 할 수가 없었다. 전단원들이 로별로 휴식을 취하고 전단이 보유한 무인정찰기 다섯 기가 두 번째로 이륙하자 임시로 세워진 막사 안에는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사전 정보와는 지형이 많이 다르다."
첫 번째 무인정찰의 결과를 보는 전단장 제리코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돌풍 기지를 향하는 전방에는 약 20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지역에 거대한 뱀이 지나간 듯 깊고 넓은 고랑이 보였던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는 약 500미터의 폭을 가진 멀쩡한 지역도 있었다. 작적에 투입되기 직전에 받았던 자료에는 목표 근처에 이런 지형이 없었다.
"마치 저 길로만 오라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1로를 맡은 슈켄도 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이런 지형을 만들어 낼 수는 없6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얼마 전에 불었던 대형 토네이도가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3로를 맡은 세이치의 말에 수뇌부들의 고개가 흔들렸다. 그것 이외에는 특별히 개연성이 있는 이유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 근처는 지난번 블러드 새도우의 작전 개시일에도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강력한 자장풍이 불었습니다. 자장풍들이 이렇게 자주 부는 곳이라면 토네이도 역시 쉽게 형성될 겁니다. 근처에 호수도 있다는데 지질이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다면 강력한 토네이도에 의해 이런 지형이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5로를 맡은 마수는 이런 분석을 내놓으면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의 5로는 목표까지 가장 멀리 돌아가는 진격 코스를 맡았었다. 아무리 바이크로 움직이고 슈트에 항온 기능이 있다고 해도 일정 거리부터는 바이크를 버리고 도보로 움직여야 하는만큼 고생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한 구역만 멀쩡한 것이 마음에 걸려."
"그건 적들이 이동을 위해 그 구간에만 신경을 써서 관리를 했던 것은 아닐까요? 폭이 엄청나게 넓긴 하지만 마치 거대한 도로처럼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4로를 맡은 아구미의 말에 제리코를 비롯한 수뇌부의 얼굴에서 의심과 걱정의 빛이 많이 사라졌다. 모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저들도 생각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구역은 관리를 했을 것이다. 그때 밖에서 1명이 들어왔다. 알코르 전단이 보유한 다섯기의 무인정찰기를 운용하는 책임자였다.
"무인정찰기는 돌아왔나?"
"네, 전단장님. 하지만 얼마 전에 불었던 자장풍들의 여파때문인지 무선조종이 어렵고, 재밍이 너무 심합니다. 세 기는 이륙한 지 몇 분 만에 국지적인 자장풍으로 인해 추락했고 두 기만 간신히 목표물 주변을 비행하고 돌아왔지만 찍은 영상의 화질은 극히 좋지 않았습니다."
"젠장! 녀석들이 수비에 아주 용이한 장소에 자리를 잡았군."
이런 곳에 웅크리고 있었으니 그동안 녀석들이 노출되지 않았으리라. 유니온 밖이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인다지만 이곳 주변은 유난히 심했다. 특히 자장풍은 끔찍할 정도였다. 목표 기지의 규모로 보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놈들에게 자장 이상을 유발하는 시설물이나 자연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겠지.'
제리코는 그런 가능성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졌지만 부러 마음을 다잡았다.
"정찰 결과를 분석한 정보만 보고해라!"
"네, 단장님. 목표물까지의 거리는 약 4킬로미터입니다. 목표물 전방 300미터에는 관목으로 된 작은 숲이 있습니다. 폭 500미터 정도의 구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구역은 바이크나 도보로 움직일 수 없는 험악한 지형입니다. 폭이 7미터에서 10미터이며 깊이가 4미터 이상인 고량들은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때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재밍으로 인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목표물을 제외하고는 특이한 생명 신호나 금속 신호는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무인정찰 결과를 들은 제리코는 그를 내보내고 수뇌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생명 신호가 없다면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구미의 말에 다른 수뇌부들도 의심을 거두었다.
"정찰 결과가 그렇다면 그리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목표물 앞에 있는 숲까지는 쾌속으로 이동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제 진형을 바꾸고 정찰조를 운용한다. 1조의 특임조가 그 임무를 맡도록."
"네, 단장님."
"그리고 나머지는 본래대로 10개 대가 각기 30미터의 거리를 두고 4열 횡대로 이동하도록. 개인별 거리는 1미터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더 잴 것은 없다.
"목표물과 1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는 바이크로 이동한다."
제리코가 결정을 내리자 알코르 전단은 대열을 갖추어 빠르게 이동을 시작했다. 그 사실을 정찰 호크로 운용하고 있던 아즈만이 즉각 뇌파로 하룬에게 알려 왔다.
-마스터 적들이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어요.
-후후! 재밍이 성공했군.
-네. 무인정찰기 다섯 기가 떴지만 자장풍으로 인해 세 기가 부서졌고 두 기는 전파 교란과 방해로 제대로 된 정보를 감지할 수 없었을 거예요.
-오케이!
기지 밖으로 나온 하룬 일행은 전원 스텔스 도색을 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기지와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잠복하고 있던 하룬은 즉각 이 사실을 대원들에게 알렸다. 대원들은 미리 정해진 곳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해서 무선 리모컨을 빼 들었다.
부르르릉!
부아아앙!
먼저 열 대의 날렵한 바이크들이 천천히 달려오며 주변을 정찰했다. 원래는 이곳에 앞서 바이크 대신 도보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토네이도를 만나 지체되어서 그런지 정찰조는 여전히 기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들이 지나가고 얼마 안 되어 본대에 해당하는 육중한 바이크들이 거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기지를 향해 질주해 왔다. 바이크들의 보조 차량에는 알코르 전단원들이 탑승하고 있었고 그 뒤에 연결된 왜건에는 소형 입자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류가 실려 있었다.
바이크 한 대당 5명이 탑승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무려 이백 대나 되었고, 바이크들의 질주로 인해 엄청난 먼지가 일어나고 있어서 제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지만 하룬은 정찰 호크와 위성을 통한 정보를 아즈만으로부터 실시간으로 받고 있었다.
-선두가 목표 지점을 곧 통과합니다. 모든 대상이 목표 구간에 진입하는 것은 앞으로 14초 후입니다.
휴먼체는 아니지만 인격을 가져서일까 아즈만의 목소리가 딱딱해지면서 잔뜩 긴장한 듯했다.
'이제 됐어!'
정찰조가 입자포를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통신을 주고받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욱하게 피어난 먼지로 인해 시야도 기껏해야 7~10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하룬은 속으로 정확히 10을 센 후 리모콘의 단추를 눌렀다.
꽈앙!
미리 지뢰를 깔아 둔 구간의 앞부분부터 시작해서 폭음과 함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앙! 꽝! 꽈앙! 꽝!
"끄아악!"
"지뢰다!"
지하 1미터 지점에 넓게 매설된 고강도 폭약이 연이어 폭발하자 먼지구름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무려 1킬로미터에 해당하는 구간이 거의 동시에 폭발하자 땅이 거칠게 요동을 하며 울부짖었다. 거대한 바퀴를 가진 바이크들과 보조 차량들 그리고 왜건들이 먼지구름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고 슈트를 착용한 알코르 전단원들이 솟아올랐다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내렸다.
비록 슈트를 착용했지만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재수가 없는 자들은 육중한 바이크에 깔려 압사당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아수라장이 된 먼지 속에서 고함과 비명이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한참이 지나고 먼지가 걷히자 처참한 광경이 드러났다. 뛰어난 방호력을 가진 슈트 덕분에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부상자들이 꽤 많았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
제리코는 놈들의 기습 공격을 우려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징후가 없었다. 생명 신호도 감지하지 못했으니 아마 지뢰만 깔아 둔 모양이다.
"대열을 정리해라!"
경험이 많은 단원들은 소대장들의 독려에 부상자를 포함해서 금방 대열을 갖추었다. 비록 많은 수의 바이크들과 소형 입자포들은 사용할 수 없지만 사망자가 많지 않으니 이 수모는 금방 갚아 줄 수 있을 것이다.
"겁대가리 없이 우리를 도발한 놈들을 통째로 씹어 버리자! 10개 대가 각기 30미터의 거리를 두고 4열 횡대로 이동하도록, 개인별 거리는 1미터다."
알코르 전단은 금방 진형을 갖추고 이동을 시작했다. 장파열이나 골절상이 심한 100여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살기어린 눈으로 관목 숲 너머를 보며 이를 갈았다.
"선발대는 금속 탐지기를 운용하라!"
제리코는 더 이상 정찰대는 운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꼼꼼하게 상황을 주시하며 천천히 이동할 것이다. 화는 참을수록 커지는 법이니 놈들의 기지는 처참하게 박살 날 것이다.
'좋아! 제대로 걸렸어!'
입자포를 능숙하게 다루는 대원이 부족해서 포신은 고정된 상태다. 그래서 하룬은 적들이 행여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까 두려워 드릴리언으로 근처 지형을 엉망으로 헤쳐 놓은 것이다. 하룬은 로수에게 통신을 보냈다.
-로수 대장, 즉각 입자포들을 발사하세요!
-네, 대장님!
전리품이 아깝긴 하지만 적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해치워야만 한다. 로켓 입자포의 경우 유효사정거리가 500미터에 불과하지만 대형 입자포는 무려 1.5킬로미터나 된다. 그 안에 있는 목표물은 입자 분해되어 형체도 없이 스러질 것이다.
슈욱! 슈욱!
반경 3미터에 달하는 입자빔과 반경 1미터의 소형 입자빔이 먼지구름을 뚫렸다. 순식간에 폭이 500미터에 높이 4미터나 되는 거대한 먼지막에 수많은 구멍이 뚫렸다. 플라즈마 형태의 입자빔이 지나간 자리는 아무런 소음도없이 텅 비어 버렸다.
고오오!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발사한 쪽이나 목표가 된 쪽이나 아무런 소음도 내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장면에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던 것이다. 잠시 후 끔찍한 비명과 거친 아우성이 먼지 속에서 흘러나왔다.
"아악! 내 다리! 다리가 사라졌어!"
"적의 기습이다! 피햇!"
"입자포다!"
"생존자들은 당장 바닥을 파고 들어가라!"
"슈트 배리어를 가동시켜라!"
공황 상태에 빠진 알코르 전단원들 중에는 이성을 잃고 무작정 사방을 향해 입자건을 날리는 자들도 있었지만 경험이 많은 전투원들로 구성된 만큼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야전삽을 꺼내 바닥을 파거나 슈트에 부착된 모종의 기기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니 입자포가 지나간 궤적으로 이동해라!"
누군가의 명령에 살아남은 자들은 모든 것이 깨끗하게 사라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 자들 중에는 일렁이는 에너지 배리어를 전신에 두른 자들도 보였다. 그때 개인 로켓 입자포가 일제히 발사되었다.
슈육! 슈욱!
대기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플라즈마 입자빔이 막 혼란을 수습한 적들에게 날아갔다.
"크악!"
"속았다! 제자리에 머물러!"
개인화기였기에 그 사거리도 짧고 빔의 반경도 좁았지만 한 번에 무려 백여 기나 발사되었기에 사상자는 엄청났다. 구멍이 뚫린 먼지로 인해 입자빔의 궤적이 밝혀졌기에 그 자리로 이동했던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그곳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포에 사로잡혀 지르는 고함과 비명 사이로 혼란을 잠재우는 명령이 내려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전속으로 이동해서 적들을 해치워라!"
"으드득! 적들을 박살 내라!"
살아남은 알코르 단원들은 수많은 동료들이 먼지처럼 입자화되어 죽거나 팔다리가 날아간 것에 눈이 뒤집혀 있었다. 이미 입자포는 두 번이나 발사되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두 번에 걸친 입자포의 포격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작은 관목 숲에 자리를 잡은 적의 입자포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대형 입자포의 경우 최대 두 번을 발사할 수 있고 재가동을 위한 입자가속이 충분히 될 때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리니 그안에 입자포를 쏘는 자들을 해치워야만 한다.
"후후후! 그래, 그렇게 달려와라!"
시꺼먼 슈트를 입은 알코르 단원들이 달려오는 것을 본 로수가 하얗게 웃었다. 살아남은 수백의 적들이 300미터 앞까지 도착하는 순간 로수의 손에 들린 깃발이 올라갔다.
"발사!"
슈웅! 슈웅!
쏘우에 의해 개량이 되어 연속으로 세 발까지 발사할 수 있는 입자포에서 플라즈마 입자탄이 연속으로 발사되었다. 쏘우는 입자포의 위력은 줄이는 대신 가능한 포격 수를 2회에서 3회로 개량했던 것이다.
"으으으!"
"안 돼!"
상식을 벗어나는 포격 수에 입자포를 향해 달려가던 알코르 단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입자탄이 발사되는 순간 괴물 메뚜기처럼 산지사방으로 도망치던 알코르 단원들의 상당수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두 번에 걸친 입자포의 포격이 끝난 후 구멍이 뚫렸던 먼지구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하룬의 눈앞에 드러난 광격은 그야말로 처참 그 자체였다. 부서지고 일부가 사라진 바이크와 왜건의 잔해들 사이에 알코르 전단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닥에 배를 깔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났는데 그 숫자는 놀랍게도 거의 삼분의 일이나 되었다.
'어떻게 된 거지?'
비록 포신은 고정이 된 상태지만 개인 로켓 입자포까지 있기 때문에 탄망(彈網)은 꽤 조밀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적들의 상당수가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이 살아남았다니 놀라웠다. 그때 하룬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저건 뭐지?'
생존한 자들의 몸 주변에 일렁이는 것이 둘러져 있었다. 안력을 집중하자 투명도가 높은 일종의 막이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종 방어 무기로군.'
하룬은 그 막이 배리어와 비슷한 성질을 지닌 개인 방어무기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놈들이 GG에서 블러드 새도우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전투 조직이거나 이 방어 무기가 아주 최근에 개발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생각한 것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자 하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전단장인 제리코는 그 와중에도 살아남았다. 폭발의 충격으로 어깨가 빠져 왼팔이 덜렁거릴 뿐 다른 부상은 없었다. 이제까지 치러 온 무수한 전투를 통해 얻은 육감과 타고난 행운이 그를 살린 것이다.
"제1 캠프까지 신속하게 후퇴하라!"
제리코가 명령을 내리자 적들이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알아서 부상자들을 챙겨 지그재그로 이동을 하는 적들은 빠르게 몇 덩어리가 되었다. 더 이상의 포격이 없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이 입자포의 사정거리이자 폭발이 일어났던 지역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판단한 제리코가 무리르 모았다.
"흑흑! 단장님!"
살아남은 전단원들의 비통한 외침에 제리코의 눈에서 불길이 솟았다.
으드득!
"이 원한은 반드시 갚아 주겠다!"
한순간에 전력의 삼분의 이가 폭발과 입자포 공격에 먼지가 되어 버렸다. 이 정도의 피해라면 본부로 복귀한다고 해도 숙청될 것이 분명했다.
"부상자부터 챙겨라!"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조직은 패배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전력을 추슬러 예정대로 목표를 처리해야만 한다. 입자포는 더 이상 자신들을 위협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입자포가 몇 문이나 되는 거지?'
폭이 500미터나 되는 탄망과 포격 횟수를 생각하면 언뜻 생각해도 100문은 훨씬 넘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으로 왔던 제리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이런 전력을 가진 세력이 알려지지 않았단 말인가? 아무튼 다행하게도 적들의 작정한 기습에도 불구하고 삼분의 일은 남았다. 게다가 유효사거리도 충분히 벗어났다.
더구나 반경 1미터의 플라즈마 입자빔을 발사하는 소형 입자포의 경우라도 입자가속이 완료되기 위해서는 1시간이 넘는 짬이 필요하다. 대형 입자포는 말할 나위도 없다. 살아남은 350여 명의 단원들이 공황에서 벗어나 인원과 장비를 점검하는 동안 제리코는 할 수 있다면 눈빛만으로 돌풍 기지의 입자포 대원들을 다 죽일 것처럼 살기를 쏟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끓어오르던 피가 식자 이성이 돌아왔다.
'아니야! 뭔가 이상해! 아무래도 정보가 잘못됐어!'
그가 받은 정보에 의하면 돌풍 용병대라 자처하는 놈들의 인원수는 겨우 500명이 조금 넘는다고 했다. 게임에서나 볼수 있는 용병으로 자처하는 놈들이니 만큼 개인의 실력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정도의 입자포를 보유할 수는 없다.
'조직에서는 이들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있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놈들이 보유한 입자포는 100문이 훨씬 넘는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냐?'
소형이건 대형이건 입자포를 그 정도로 보유한 단체는 유니온과 GG 그리고 HG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그게 그가 이제껏 알고 있었던 상식이다. 거기에 더해 무려 폭 500미터에서 1킬로미터의 구간에 설치되었던 폭발물을 생각하면 절대로 약자가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제4의 세력이다!'
어쩌면 살 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특별히 지휘를 잘못한 것은 없다. 누구라도 택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걸은 것뿐이다. 이건 자신이나 단원들의 잘못이 아니라 조직에서 책임져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정보부서의 잡놈들이 책임질 일이구나!'
이런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한두 개 전단으로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전투가 아니라 전쟁의 규모가 되어야만, 적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과 알코르 전단은 잘못된 정보로 인해 허무하게 패한것에 불과하다. 제리코는 입자포의 포격 횟수와 폭발물의 양을 잘못 알고있다. 그것은 애초에 하룬이 의도하기도 했지만 제리코가 알고 있는 것을 기반으로 한 판단이기에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가만! 이 정도의 전력을 가진 놈들이 포격만 하고 말 리가 없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 해 봤다. 입자포만 100문 정도를 가지고 있는 강대한 조직이라면 침략자들을 그냥 보내 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르!
제리코는 오한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후퇴를 해야겠다!'
"단장님, 부상자들을 제외한 284명은 공격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이 중 개인 배리어를 가동시킬 수 있는 슈트 착용자는 245명입니다."
"특수 슈트 착용자들을 앞세우고 빠르게 기동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캠프에 남아 있는 소형 입자포 30문은 즉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동료들을 잃은 대장들과 단원들은 당장이라도 재진격을 원하는 것 같았지만 제리코는 후퇴를 결심했다.
"닥쳐! 지금은 공격을 할 때가 아니라 후퇴를 할 때다!"
"네에?"
혼란을 수습하고 그의 주변에 모인 대장들은 전단장이 보이는 뜻밖의 반응에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제리코는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급하게 통신 채널을 열었다.
츠츠츠르!
다행히 재밍이 풀렸다. 제리코는 전투 상황과 함께 그가 판단한 사실을 본부에 알렸다.
"....적들이 보유한 입자포의 수와 매설되었던 화약의 양으로 볼 때 돌풍 용병대의 전력은 알려진 것보다 최소 열 배는 더 강합니다. 하여 본 전단장은 후퇴를 하겠습니다. 이번작전은 명백하게 정보부서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실패하였음을 확신합니다."
옆에서 통신 내용을 듣던 대장들의 의아했던 표정들이 풀렸다. 허무하게 수하들을 잃은 탓에 간과했던 사실들을 제리코가 통신을 통해 모두에게 알려 준 것이다.
"그럼 소형 입자포는 어떻게 할까요?"
"빌어먹을! 바이크도 다 파손되었는데! 뭘 어떻해! 버리고 가야지."
제리코는 1대 대장의 물음에 욕설을 하며 답했다.
"서둘러서 후퇴한다."
"....하지만 놈들이 공격한다는 징후는 없습니다."
"미친놈! 너 같으면 아무 이유도 없이 공격을 당했는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만히 물러가도록 놔두겠냐? 도대체 대가리는 언제 쓰려고 달고 다니는 거냐? 쓸모없는 새끼!"
자신의 원색적인 책망에 슈켄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것을 보았지만 제리코는 사나운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한마디만 더 하면 아예 병신을 만들 참이다. 그런 기세를 느꼈는지 슈켄은 한 번 거칠게 떨더니 몸을 돌렸다. 노블 출신으로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1대장이 걸어오는 딴죽을 더 이상 봐 줄 수가 없었다. 아마 슈켄은 후퇴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라는 의미로 딴죽을 걸었을 것이다.
"빨리 단원들을 챙겨!"
제리코의 고함에 대장들이 황급히 자신들의 대원들을 챙기러 달려갔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사방이 훤히 드러난 개활지였기에 적들의 공격은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은 놈들이 공격을 하기 전에 빠르게 후퇴하는 것이 급했다.
"전속으로 후퇴하라!"
단원들은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가 뜻밖의 명령을 받자, 즉각 움직이지 못했다.
"뭐하나? 설마 놈들이 겨우 입자포만 쏘고 우리를 가만히 보내 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모두 다 이곳에서 죽고 싶은 건가?"
제리코의 고함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한 단원들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불안해!'
후퇴하는 단원들의 뒤를 보는 제리코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할 수 있다면 정찰대를 다시 운용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온 금속 탐지기나 생명 탐지기도 다 파괴되거나 사라졌고 지금은 그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그런 제리코의 예감은 무서울 정도로 잘 맞았다. 살아남은 자들이 정신없이 후퇴하다가 하룬과 돌풍 대원들이 매복하고 있던 구간을 지나는 순간, 매복했던 돌풍 용병대의 로켓 입자포에서 그들을 향해 입자탄을 난사했다.
퓨웅! 피잉!
"아악!"
"매복이다!"
10여 명씩 덩어리를 이루어 이동하던 적들은 예상하지 못한 매복 공격에 당황하며 제대로 응전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