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4화.마츠루트 요새로 (225/278)

마츠루트 요새로

-도대체 어떤 이들이기에 다크니스의 성을 세 개씩이나 차지한거죠?

-산악 부족들이랍니다. 수천 년 전부터 데빌 산맥에서 마수와 싸우면서 살아온 전사 부족으로 레벨이 짱짱하다는 소문입니다.

-돌풍 용병대가 가세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엠 길드가 성을 공략할 때도 돌풍이 도왔다고 합니다.

-우웅? 돌풍인가요? 듣기로는 숫자가 몇 명 안 된다던데요.

-아닙니다. 무려 100명도 넘는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일반 대원들도 마수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랍니다. 험준한 산악 지대에서는 기사들보다 낫다고 하더군요.

-정말 대단한 용병들이군요.

-그러게요. 아무튼 누가 그들을 밀착 취재해서 공성전의 전략을 밝혀 줬으면 좋겠네요.

-소문으로 는 각 게임 방송사의 기자들이 대거 그곳으로 향했다니 조만간 밝혀질지도 모르겠네요.

글로벌넷이 비욘드의 공성전으로 인해 뜨거워졌다. 대형 길드가 연합을 해도 실패한 공성전을 비욘드의 원주민, 그것도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산악 부족들이 성공했으니 그 관심이 뜨거운 것이다.

거기에 고요의 땅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돌풍 용병대가 가세했다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일반 게이머들이 알고 있기로는 다크니스의 성은 최소 5천이상이 주둔하고 있다고 했다. 심한 경우는 2만이 넘는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들 중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숫자가 익스퍼트 급의 흑기사들이나 4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들이다. 자금력이 얼마나 좋은지 다섯 개의 대형 길드가 쉴 새 없이 두드렸지만 끝내 포기할 정도로 마르지 않는 아이템도 보유하고 있어 게이머들의 감탄을 받았던 다크니스가 산악 부족들에게는 세 개의 성을 주었다는 사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코엠 길드에서 차지한 코엠 성의 경우는 이미 수뇌부가 길드원에게 비밀 엄수를 지시한 터라 공성전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각 게임 방송사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대형 길드 에서 파견한 이들이 아카 성으로 향했다. 산악 부족들이 다크니스의 성을 공략한 전략이나 팁을 얻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제발 좀 알려 주세요."

"돈은 얼마라도 드리겠습니다. 아니,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다 공급하겠습니다."

아레스와 럼 일행에 앞서 에인 성까지 도착한 방송사의 기자들은 에인 성에 머무르고 있는 돌풍 용병대원들만 만나면 읍소를 하고 있었다.

"난 모릅니다. 전체적인 것은 대장님만 아십니다."

대원들은 처음보는 사소한 질문에도 대답을 해 주는 등 친절을 보였지만 점점 더 집요해지는 질문에 손을 들어 버렸다. 모든 것을 하룬에게 떠넘긴 것이다.

상황은 산악 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수뇌부들 상당수가 제국 공용어를 능숙하게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아예 이해르 하지 못하는 시늉을 하며 그들의 관심을 돌풍 용병대로 돌려 버렸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도와주고 나서나 부탁할 것이지. 에잉!"

이미 정착 단계에 들어간 아카족과는 달리 최근에 성을 확보한 부르카족과 에인족은 거점 마을에 모인 부족민들을 호위해서 이주를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급하게 피난을 했고 지금은 이주를 하는 상황이라 식량부터 시작해서 의복이나 무기 등 부족한 것이 엄청났지만 하룬이 아공간을 열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비할 수 있었다. 세류에게서 구입한 엄청난 물량의 생필품들은 세 부족에게 골고루 분배가 되었던 것이다.

산악 부족들은 하룬에게 그동안 모은 마정석과 마수 가죽 그리고 희귀 약초를 비롯해서 마나석이나 정령석을 대가로 주었다. 그 물건들로 펠의 아공간이 가득 찰 정도였다.

하룬을 비롯한 용병대 수뇌부들이 지구라트를 비롯해서 에인 성 시설물과 각종 물품의 양이 적힌 보고 서류를 검토하는 사이에 비슈를 비롯한 대전사들과 포커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미루스가 일어나 그들을 반겼다.

"수고는요. 돌풍이 더 수고했지요."

바슈가 웃으며 미루스의 손을 잡았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혹시 벌써 돌아가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미루스는 정이 들었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에버그린으로 돌아가려는 것으로 해석했는지 벌써 아쉬운 얼굴로 물었다.

"그건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움직이면서 깨달은 것인데 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서 수련이나 연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실전을 포함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거야 당연한 말씀이지요. 뭐든지 여럿이 힘을 합치는 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런 이치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

바슈의 말에 하룬을 비롯한 용병대 수뇌부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뭔가 다른 용건이 있어 이렇게 모두 모여 찾아온것 같았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우리 세 부족은 오래도록 염원하던 소원 한 가지를 이루었습니다."

아카족 대전사이자 에버그린에서 온 이들 중 가장 연장자로 존경을 받고 있는 바슈가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하하! 이게 어디 우리 용병대만의 공이겠습니까. 이 모두가 세 부족이 합심해서 이룬 일입니다. 저희는 그저 여러분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드렸을 뿐입니다."

하룬은 뭔가 숙연해 보이는 분위기를 털어 내려고 너털웃음까지 지으며 바슈의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여러분의 놀라운 능력이나 적극적인 사고가 아니었다면 우리 세 부족은 여전히 마수나 다크니스를 상대로 소극적으로 은신하거나 도망을 치며 살았을 겁니다.

돌풍 용병대가 앞장을 서서 이끌어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게다가 그런 공을 세우고도 우리에게 뭘 바라기보다 얻은 것들을 우리에게 양보하는 돌풍 용병대의 넓은 마음에 우리는 크게 감탄하고 있습니다."

세 부족의 포머칸들 중에서 은연중에 가장 존경을 받고 있는 보론 역시 감사를 표시했다.

"껄껄!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더 감사합니다. 용병대의 주축이 되는 전사들을 우리를 믿고 맡겨 주었으니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가족이니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딜런의 말에 보론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우리 세 부족은 돌풍 용병대와 좀 더 가까운 가족이 되길 원합니다."

"그게......?"

뜬금없는 보론의 말에 하룬 일행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

"우리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도 용병대원으로 받아 주십시오."

보론을 위시한 사람들의 시선이 하룬에게 쏠렸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하룬의 눈이 커졌다.

"바슈 대전사의 말씀대로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면서 에버그린에서 적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혼자서 수련해 왔던 것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대전사들은 대장이나 딜런 경과의 대련과 토론에서, 포머칸들은 타니엘라 경과 미루스 경과의 토론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새로이 얻었습니다."

"얻은 것이 많다니 축하드릴 일입니다. 하지만 그거야 여러분들이 일족을 위해 애쓰다 보니 얻은 것일 겁니다. 저희가 한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겸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는 바슈 대전사의 말씀대로 은둔해서 혼자 수련을 하는 것보다는 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너무 뜻밖에 말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전투가 끝난 후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함께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일족들을 위해 몇 개의 성을 더 공격을한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서로 의견을 나누었고, 오래 의논을 할 것도 없이 모두들 에버그린행에 반대를 했지요.

사실 그곳은 수련이나 연구를 하기에는 좋은 곳이나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워지고 일족의 안전이 위험해진 상황에서 한가하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이다 마수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다크니스가 산맥의 주인 행세를 하는 판국이니 수련에 매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시 바슈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기예나 지혜를 익히고 발전시켜 후대에 전하는 대전사와 포머칸의 임무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여 오랫도록 의논을 한 결과 일족의 안전을 수호하면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

하룬은 이제야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딜런 경에게 들으니 돌풍 용병대는 우리 세 부족과 운명을 같이할 것이며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많은 험난한 의뢰를 수행할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역시 돌풍과 함께하며 그 위험을 직접 몸으로 겪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 나가고 싶습니다. 부디 대원으로 받아 주십시오."

"허어, 참!"

딜런이나 타니엘라 그리고 미루스도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티노는 조금 달랐다.

'지금이야말로 돌풍 용병대가 날개를 달 때다!'

22명의 대전사와 17명의 포머칸. 딜런과 비슷한 경지의 대전사가 4명이고 타니엘라와 미루스에 필적하는 포머칸이 6명이다. 나머지도 뛰어난 무력과 주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

티노는 처음으로 하룬에 앞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참으로 반가운 제안입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숨겨진 대원들이 더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실력자들을 영입할 수 있다면 우리 용병대는 제국 아니, 대륙 제일의 용병대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말을 하는 티노의 눈빛이 강렬해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하룬에게는 티노의 반응이 이들의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노예 출신으로 언제나 소심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티노가 언제 이렇게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까? 부대장으로서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티노의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하면서도 뿌듯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히든 대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 용병대 전력의 상당 부분은 아카족과 부르카족 그리고 에인족의 전사들이에요.

이분들이 함께한다면 우리 용병대의 전력이 급격히 높아질 뿐만 아니라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대원들에게 세 부족에 전승되어 오는 힘을 자연스럽게 전수할 수 있고 자긍심을 높여 줄 수 있을 거예요."

도네이스도 눈을 빛내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하룬은 잠시 고민했다. 이들을 받아들였을 때의 장점과 단점이 빠르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만약 받아들인다면 그 처우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도 대충 떠올랐다.

'좋아!'

어쩌면 고민할 이유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반 전사들이라면 모르지만 대전사들과 포머칸이라면 돌풍의 전력은 단숨에 몇십 배 증강되는 것이다.

"뜻밖의 말씀이라 잠시 생각을 좀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돌풍 용병대로 들어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각 부족의 동량들이 함께하고 있고 돌풍은 세 부족과 미래를 같이하기로 했으니까요."

하룬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흘러나오자 긴장했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의 굳었던 얼굴이 햇볕에 녹는 얼음처럼 스르르 풀렸다.

"제가 고민한 것은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대우를 해 드리고 어떤 신분으로 받아들여야 결례가 되지 않을지에 대한 것 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바라는 것이 있는 만큼 따로 대우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대전사 바슈의 말에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룬은 그들의 반응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뛰어난 인물들을 영입하는 건 좋은데 자금력이 걸렸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이참에 고문 자리를 확층해서 두 개의 고문단을 신설하겠습니다. 대전사분들은 딜런 경과 함께 전사 고문단을, 포머칸들은 타니엘라 경과 미루스 겨과 함께 마법 고문단을 이끌어 주십시오."

"하하하! 환영합니다."

"이제 원 없이 토론을 할 수 있겠군요, 보론 포머칸!"

"이거 나중에는 진짜 돌풍 마탑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군."

세 고문이 환영하자 대전사들과 포머칸들도 일제히 달려들어 포옹을 했다. 그동안에도 대련이나 토론을 통해 우애를 쌓아 왔지만 이제는 한 식구가 되었으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세 고문이 특히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의 연배가 그들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젊은 대원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많은 친구들이 대거 생겼다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돌풍 상단이 가져온 방어구는 여유가 있어 모두에게 한 벌씩 돌아갔다.

"후후! 어떤가?"

"나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멋진걸."

누구보다 마수 가죽에 대해 잘 아는 대전사들과 포머칸들 이지만 명장의 손에서 만들어진 방어구의 감촉과 그 기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말 돌풍 용병대원이 된 것 같군."

"나도 기분이 이상하네."

고문으로 위촉된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은 통일된 용병대전용 방어구를 입게 되자 그간 느꼈던 미묘한 부족 간, 신분간 차이를 더 이상은 느낄 수 없었다.

원래 유니폼이라는 것이 그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고문들이 얻은 것은 방어구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무기들이 선물로 주어졌던 것이다.

대전사 출신 고문들은 질 좋은 무기에 더없이 기뻐했다. 전사에게 있어 무기는 또 하나의 생명이랄 수 있었다.

"이 은혜는 꼭 보답하겠습니다. 대장님."

하나둘씩 찾아온 고문들이 눈을 붉히며 결의에 찬 다짐을 하고 돌아갔다. 사실 돈으로 따지면 큰 것은 아니지만 오지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몸을 지킬 방어구와 무기의 의미는 아주 큰 것이었다.

하룬으로서는 당연히 줄 것들이지만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문단을 확충한 돌풍 용병대는 각 부족에서 100명씩의 전사들을 더 받아들여 세 개의 대를 더 증강했다.

굳이 대원을 더 증강할 이유는 없었지만 세 부족에서 그렇게 원했던 것이다. 고문으로 용병대에 합류한 이들의 간절한 청원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룬이 요새로 갈 준비를 하는 사이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아레스와 럼 일행이 바로 그들이었다.

"대장님!"

"여기 계셨군요!"

아레스와 럼은 오랜 여행으로 지친 얼굴이었지만 감격한 표정으로 하룬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대장님 만나러왔지요. 어? 대장님이 좀 변했네."

아레스는 이전과는 달리 얼굴을 드러낸하룬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현실에서 본 하룬과 정말 많이 닮았던 것이다.

"원래 이랬어."

"그런가요? 항상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서 잘 몰랐어요. 이렇게 보니 대장님도 꽤 잘생겼는데요."

"하하하!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도네이스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누나! 헤니는 없나 봐요?"

붙임성 있는 아레스가 도네이스를 알아보고 넉살을 떨었다. 도네이스는 그런 아레스와 럼에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비록 이방인이긴 하지만 만날 때마다 티노와 도네이스를 위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겨 주는 이들이 반갑지 않을리가 없다.

"헤니는 일이 있어 한동안 이곳에 오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래요?"

이들은 아직 돌풍 기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모양이다. 헤니는 이제 한동안 게임을 접고 기지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황 박사를 비롯해서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들은 헤니는 인공수정체 형제들에 대한 일과 기지의 의료 부분을 책임지기로 한 것이다.

"그래, 이 먼 곳까지는 어쩐 일이야?"

하룬은 알면서도 의뭉스럽게 굴었다. 이미 다른 방송사에서 파견한 기자들과 신생 정보 길드에서 파견한 사람들이 찾아왔던 것이다.

"언제 봐도 돌풍 용병대는 대단한 거 같아요. 이방인들은 아직 한 곳도 공략하지 못했는데 돌풍은 벌써 네 곳이나 성공했으니."

"후후후! 공성전의 전략이라도 알고 싶은 건가?"

"헤헤! 아시면서."

"부탁드립니다, 대장님. 위에서 보통 닦달을 하는 게 아니에요."

하룬이 이미 자신들의 용건을 파악하고 있다는 눈치를 챈 두 사람은 솔직히 속내를 드러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 놈들의 성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넘겨줄 테니 알아서 이용해 봐. 한데 전략이 알려진다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닐텐데.

일반인들에게 알려진다면 다크니스 역시 알게 될 테고 그럼 소용이 없을 거야."

"으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크니스의 성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두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돌풍 용병대와 산악 부족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 알려진다고 해서 이방인 길드에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볼 수는 없었다. 다크니스가 바보가 아닌 이상 방송까지 탄 전략에 그대로 당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지요?"

아레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내일 마츠루트로 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로를 받을 생각이다."

"요새로요? 어떤 의로를?"

"혹시 이방인들의 의뢰를 받을 생각이신 겁니까?"

머리가 좋은 럼은 하룬의 의도를 금방 파악했다.

"우리와 동행한다면 좋은 영상을 담을 수 있을 거야. 생생한 영상을 확보한다면 큰 공을 세울 수 있겠지?"

"우와아! 최고예요!"

"감사합니다."

아레스와 럼은 하룬의 생각에 크게 환호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말이나 글로 아무리 공성전을 묘사해도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는 현격하게 질이 떨어진다.

생생한 공성전의 영상을 보면 다른 길드들 역시 그 속에서 뭔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적들의 약점이나 공성에 필수적인 것들만 추가시키면 그야말로 대박 정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까지는 너희들만 온 거야?"

"아뇨. 코엠 성까지는 어비스 용병단과 함께 왔어요."

"어비스와?"

엘저를 떠올린 하룬의 눈이 커졌다.

"네."

"그럼 그들은 어디 있어?"

"여기까지 같이 오려고 했는데 코엠 길드의 의뢰를 받고 그곳에 머무르기로 했어요."

아마 세류가 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고용한 모양이다. 그들이라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대장님을 만나면 단주님과 엘저 양이 그곳에 꼭 들르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알았다."

아마 오래지 않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새벽에 출발할 테니까 오늘은 푹 쉬어라."

"네, 대장님."

도네이스는 두 사람이 묵을 곳을 안내해 주었다. 안면이 있는 대원들을 찾아 인사를 하며 성의로 가지고 온 선무들을 모두 전해 준 아레스와 럼은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우갸갸! 이곳까지 오는데도 죽을 뻔했는데 또 어떻게 가지?"

"그러게. 그게 문제네."

오면서 마수를 만난 것이 열 번이 넘었다. 그중 두 번은 죽을 뻔하기도 했다. 운이 좋아 이곳에 안전하게 도착했지만 다시 갈 일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하룬은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부대장과 조장들은 물론이고 고문들이 참석한 회의였다.

이제는 그 위상에 맞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티노가 회의를 이끌었다.

"회의를 소집한 것은 향후 우리 용병대의 진로에 대해 의논하기 위함입니다. 당장 우리 용병대가 할 일에 대해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바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사탕가 봉 인근을 공략할 차례입니다."

"사탕가 봉이요?"

"네. 우리 세 부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다크니스의 성이 세 개나 모여 있습니다. 그곳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산맥 북동부는 우리 세 부족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바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슈가 미리 준비한 마수 가죽 내피에 그린 지도를 펼쳤다. 에인족에 대대로 내려오며 아카 성과 열흘 거리에 있는 느타 분지와 사탕가 봉우리 인근 지형이 세세하게 그러져 있었다.

"사탕가 봉을 둘러싼 느타 분지에는 세 개의 성이 있습니다. 이곳과 비슷하게 서로 사나흘 거리에 세워진 세 개의 성을 장악한다면 제국과 인접한 데빌 산맥 북동부는 모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세 부족은 모두 안정된 주거지를 가지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사탕가 봉의 중턱에 있는 마나석 광산을 확보한다면 앞으로 돌풍 용병대의 운영과 세 부족의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현재 그곳 주변에 세 부족 상황은 어떻습니까?"

하룬의 물음에 바슈는 조금 굳은 얼굴이 되었다.

"좀 위험합니다. 마수들의 숫자가 이곳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쪽에 있는 아카족의 거점 마을인 오룬디 마을에는 이미  삼천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었고 앞으로도 그 세 배는 더 모일 겁니다. 부르카 족과 에인족 사저도 비슷합니다."

"서둘러야 하겠군요."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거점 마을로 피난을 하는 도중에 피해가 많다고 합니다."

마슈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이들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사실 에버그린에 은거하고 있었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미처 사정을 듣기도 전에 마수들을 앞세운 다크니스들에 의해 많은 이들이 죽었던 것이다.

"연락을 맡은 부르카족의 에센들이 다크니스가 길들여 운용하는 아이콘라드들에 의해 많이 잡아먹혀 자세한 사정을 파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대전사 마스람이 침통한 얼굴로 보고를 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니 세 부족의 상황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돌풍 용병대의 도움을 받은 산맥 외곽에 비해 산맥 안쪽에 위치한 세 부족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수들의 위협도 그렇지만 특히 식량 문제가 절실했다. 이제 세 부족은 용병대와는 한 식구나 다름없었다. 의뢰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개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이다.

바슈의 말에 하룬은 고심을 했다. 사실 그는 마츠루트 요새로 갈 생각이었다. 처리할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형제나 다름없는 세 부족의 다른 무리가 위험에 빠졌다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쩐다. 마츠루트 요새에 볼일이 있는데...."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이제 막 용병대원이 되었으니 용병대의 입장을 먼저 따라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족이 위험에 처한 것을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곤혹스러웠던 것이다. 회의장은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고민 끝에 하룬은 한 가지 생각을 해 냈다.

"400명 정도가 빠르게 움직이면 오룬디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 모두가 상급 전사들이라면 엿새 정도면 갈 수 있을 겁니다."

에인족 출신 포머칸인 미브라가 대답을 했다. 그는 위험한길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바슈 고문께서는 이곳을 지킬 최소한의 인원을 빼고 400명을 선발해서 오룬디 마을로 떠나십시오."

"그럼 대장께서는?"

"저는 고문단 20명과 함께 마츠루트 요새에 들러 일을 처리하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네에?"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하룬을 바라보았다. 그중에는 기존 대원들도 있었다. 하룬은 그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 고문들과 돌풍 용병대 그리고 각 부족의 상급 전사가 포함된 400명에 그곳에 있는 전사들을 합치면 성을 공략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장은....."

바슈는 하룬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룬이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오룬디 마을에 도착하는 것에 맞추어 그곳으로 합류하겠습니다."

"네에? 어떻게?"

미루스까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본 용병대에는 히든 대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도 있지요.

히든 대원들을 활용하면 그 일이 가능합니다. 뭐 직접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하룬은 사람들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미노와 수니라면 가능하다. 걸어서는 열흘 이상 걸리는 거리라지만 녀석들의 도움을 받으면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어!'

한 번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을 활용하면 이동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일단 녀석들을 탈 수 있는 장치부터 만들어야 해.'

먼저 이야기를 할까도 싶었지만 행여 녀석들이 인간을 태우길 거부하면 허사가 되는지라 굳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대원들을 이끌고 지구라트 꼭대기로 올라온 하룬은 미노와 수니를 불렀다.

-미노, 수니, 어디 있어?

잠시 후에 녀석들의 대답이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친구, 우리는 큰 들에 있다. 어린 물소들을 사냥했다.

-이곳으로 좀 와야겠다.

-알겠다. 그곳으로 가겠다!

대답을 들은 지 십여 분이 흐른 후 미노와 수니는 구름을 뚫고 내려와 그 거대한 웅자를 드러냈다. 두 녀석이 내려앉자 지구라트의 꼭대기가 꽉 차는 것 같았다.

"마수다!"

"뭐야?"

그 모습에 놀란 사람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거나 주술을 펼치기 위해 수인을 맺은 자세로 긴장을 했다.

"괜찮습니다. 이 녀석들이 우리 돌풍 용병대의 대원들입니다. 미노와 수니라고 합니다."

하룬이 나서 소개를 하자 비로소 사람들이 긴장을 풀었다.

"오오오!"

"하늘의 제왕이라는 버처리비크가 아닌가?"

"마수들도 두려워하는 존재들이 돌풍의 대원들이라니."

버처리비크를 처음 본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은 경탄의 시선을 보내며 놀라워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기겁을 했지만 하룬의 말이 알려지며 이전보다 더 돌풍 용병대의 힘에 감복했다.

"지난번에 본 애들과는 다르네."

"그러게 그때 본 버처리비크들은 새끼였나 봐."

이전에 미노와 수니를 보았던 대원들도 이름이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달라진 녀석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만큼 녀석들은 엄청나게 달라졌던 것이다.

-잘 지냈어?

-응. 친구의 부탁대로 근처에 있는 맛없는 것들을 많이 잡아 죽였다.

-여기.

수니가 큰 고리를 열고 꾸르륵거리더니 엄청난 숫자의 마정석이 쏟아져 나왔다. 녀석은 마정석을 목 한쪽의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었다.

-가죽은 못 가지고 왔다.

미노가 미안한 듯 부리를 비비며 말했다. 하룬이 마수 가죽을 밝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둘 다 수고했어!

하룬이 마정석을 아공간에 넣으며 녀석들의 노고를 칭찬하고는 육포를 꺼내 주었다.

-끅! 끅! 맛있는 육포다!

그동안 굶은 것도 아닐 텐데 두 녀석은 환장을 하며 육포를 먹었다. 각성을 한 후 덩치가 몇 배는 커진 터라 육포도 이제 스무 자루는 꺼내야만 했다.

그것도 양껏 먹을 분량은 아니지만 부족한 듯한 것이 좋았다.

-정말 맛있다!

-최고야!

두 녀석들은 육포를 만드는 데 달인의 수준에 오른 산악 부족 아녀자들이 만든 특제 육포의 맛에 흠뻑 빠졌다. 이전에 먹던 육포도 맛있었지만 이번에 먹은 육포는 적당하게 훈제된 것은 물론 소금으로 한 간이나 향료가 적당하게 뿌려져 있어 맛과 풍미를 가지고 있었다.

-더 줘!

-나도! 나도!

녀석들은 순식간에 마지막 육포까지 먹어 치우며 더 달라고 졸랐다.

하룬은 아공간을 개방하려다가 마음을 돌렸다. 육표는 충분했지만 그전에 할 이야기가 있었다.

-더는 없어. 그리고 부탁이 있어.

-부탁?

하룬의 부탁이라는 말에 한창 육포를 찢어 삼키고 있는 미노와 수니의 노란 눈이 그를 향했다.

-빨리 가야 할 곳이 있어. 다른 인간들을 좀 태울 수 없을까?

그 말에 미노와 수니의 눈이 당장 차가워졌다.

-다른 인간을?

-응. 먼 곳까지 이동을 해야 하는데 너희들 말고는 방법이 없어.

-난 싫다!

수니는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을 했다. 하룬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등에 다른 인간을 태우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미노는 조금 더 들을 모양이다.

-내 친구들이다. 꼭 가야만 해.

간절한 하룬의 부탁에 미노의 눈동자가 고심을 하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친구의 부탁이니 들어주고 싶지만......

-지금 너희들이 먹은 육포를 만든 인간들이다. 너희들이 부탁을 들어주면 이 육포를 많이 만들어 주라고 할게.

-정말이냐?

육포 이야기에 미노와 수니의 태도가 달라졌다. 녀석들의 지능이 각성과 함게 많이 올라갔지만 타고난 식탐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금 먹은 육포는 녀석들이 태어나서 먹어 본 것들 중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것이었다.

-난 이거 두 배!

대뜸 수니가 외쳤다. 그러자 미노도 바로 뒤따랐다.

-나도.

둘의 반응에 하룬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라는 것이 통하지 않으면 순정석을 준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낼 참이었는데 다행히 육포에 넘으간 것이다.

-좀 먼 곳이야.

-상관없다.

하늘을 나는 일이야 일상적인 것이니 어려울 것이 없다.

-그리고 너희들의 몸에 인간이 안전하게 탈 수 있게 만든 물건을 장착해야 해. 귀찮겠지만 할 수 없어.

-칫!

-할 수 없지.

수니는 싫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미노는 육포를 먹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

-좋아. 준비가 되는 대로 부를 테니까 저기 보이는 건물위로 날아내려 와.

-알았다.

미노와 수니는 거대한 흙바람을 일으키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말 멋진 대원들이군요."

바슈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평생 마수와 싸우며 살아온 그는 마수들도 두려워하는 버처리비크의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에 푹 빠진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얼굴이었다.

"미노와 수니를 타고 가면 요새까지는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겠군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 험준한 데빌 산맥에서 빠르고 안전한 이동이 확보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큰 이점이다. 그 밤에 고문들은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하룬은 요새로 갈 인원으로 18명을 골랐다. 딜런을 비롯한 기존의 세 고문과 티노와 도네이스를 제외하고 13명의 고문이 선발되었다.

전투조들은 모두 바슈가 이끄는 일행에 포함되었다. 바슈와 고문들은 상급 전사들을 두 무리로 나누어 한쪽은 사탕가봉으로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세 성을 수비하도록 조치했다.

그들 대부분이 전대의 탄과 칸 들이었기에 전사들은 아무 동요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

요새로 떠나는 하룬 일행을 마중 나온 사람들은 기겁을 해야만 했다. 이전에 녀석들을 본 적이 있는 대원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밤에 본 것과는 환한 새벽에 보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세상에!"

머리끝에서 꼬리까지 20미터가 넘고 날개를 펴니 무려 15미터가 되는 엄청난 동체를 가진 버처리비크는 자신들이 하늘의 제왕이라는 것을 뽐내듯 당당한 모습으로 성의 상공을 몇 번이나 선회하고는 지구라트로 내려왔다.

그 압도적인 기세와 풍모에 사람들은 탄성을 지를 뿐이었다.

"정말 미치겠다!"

"대장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사람이야."

아레스와 럼은 고개를 저었다.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모를 하룬에게 감탄하다 못해 포기를 한 것이다.

"자, 어서 이동합시다."

아레스와 럼을 비롯한 돌풍 용병대원들은 각기 10명씩 미노와 수니를 타고 요새를 향해 출발했다. 마수의 뼈와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2열 5칸의 대형 안장을 녀석들의 몸에 장착한 덕분에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동하는 내내 고개도 들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상체를 들면 거센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안장에 앉지도 않은채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주변 경관을 즐기는 것 같은 하룬의 태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최고군요!"

"후읍! 후읍!"

엄청난 비행 속도에 하얗게 질린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탈 때는 두려운 얼굴을 했다가 땅에 내리자 신이 난 이들도 있었다. 가진 무력이나 주술로는 두려울 것이 거의 없는 고문들 중에서도 고소공포증을 가진 이들이 꽤 많아 기절을 할것처럼 질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대원들 대부분이 멀미를 한 터라 버처리비크가 요새 가까이에 착륙하자 그때야 비로소 창백했던 얼굴이 제 색깔로 돌아왔다.

하룬에게 받은 육포를 맛있게 먹은 후 하늘 높이 사라지는 미노와 수니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대전사 캐알이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네."

"흐흐흐! 그러는 자네는 어떻고? 그런 소리를 하려거든 자네가 토한 거나 잘 닦고 말하지."

"헙! 이런!"

이제까지 한 번도 상대에게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라 처음에는 얼굴을 들지도 못했지만 자신만 그런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동일한 모습을 보였기에 나중에는 껄껄거리며 크게 웃었다.

그러고 나니 이전보다 훨씬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상대의 약한 모습을 보고 나닌 왠지 마음이 푸근해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이 편안해졌다.

"도대체 버처리비크는 어떻게 길들인 겁니까? 버처리비크가 실재한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지만 길들였다는 소리는 더더욱 들은 적이 없는데요."

이제야 메슥거리는 속을 겨우 달랜 마스람이 날아가는 버처리비크를 보며 물었다.

"길들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 녀석들이 바로 우리 돌풍 용병대의 수호조인 셈이죠."

"아! 그랬군요. 역시 우리 돌풍 용병대는 대단합니다."

마스람을 비롯한 고문들은 새삼 자신들이 돌풍 용병대원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부르카족의 경우는 에센이라는 새를 길들여 수호조를 삼고 있었기에 그 자부심은 더욱 컸다.

부족의 수호조인 에센들은 버처리비크가 나타나자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꼬리를 쳐들고 부들거리며 땅에 머리를 박았다. 부족의 수호조가 보인 모습은 부끄러운 일이나 그 대상이 자신들이 속한 돌풍 용병대의 수호조라니 해량할 수 없는 자부심이 솟아올랐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들이 안내를 하지요."

이제 겨우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아레스와 럼이 하룬 일행을 요새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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