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 성으로
"어떻게 된 일인가?"
"그, 그게...."
메라크 전투단의 단주인 페론은 너무 황망한 소식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모종의 일을 처리하느라고 잠시 자리르 비운 사이에 일어난 사건은 항상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그를 패닉으로 몰았다.
"그게 사실이기는 한 겁니까?"
오히려 두브헤 전투단의 단주인 매빈츠에게 되물었을 정도였다.
"휴우! 그럼 정녕 화산이 폭발한 것인가?"
"화산이요?"
"그래, 자네가 본단에 복귀하고 얼마 후에 엄청난 폭발과 함께 포러스 대마법사는 물론 알리오츠 단원 모두가 사망했네. 성과 그 주변은 완전히 파괴되어 용암이 들끓는 용암지대로 변해 있었다."
"전원 사망이요?"
명석하기로 소문난 페론이 오늘 따라 멍청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내가 패밀리어로 부리는 아이콘라드가 그 지역을 비행해서 확인한 거야."
매빈츠의 말에 페론은 넋이 나간 얼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사고로 인해 사망한 단원들이 충격으로 인해 전원 뇌사 상태에 빠졌고 일부는 캡슐이 폭발해서 비밀기지가 상당한 피해를 봤다고 하네."
"......"
페론은 이해가 안 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다만 몇 명은 깨어나 대규모 폭발을 언급했기에 그나마 그 지역에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했네. 우리와 협력한 산악 부족의 원로들에 의하면 그 지역은 수시로 화맥이 폭발한다고 하네.
아무래도 뭔가 거대한 힘이 작용한 것 같은데....."
매빈츠의 말에 페론의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포러스 대마법사가 하룬을 대상으로 펼친 마법의 영향이었을까?'
자신 역시 다크문 마탑의 지식과 마왕의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흑마력을 이용해서 불완전하지만 6서클 대마법사의 경지게 오른 터라 포러스가 하룬을 대상으로 어떤 마법을 펼쳤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정혈을 흡수하려고 했겠지. 그래야 바디체인지를 이룰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상대가 저항했다면.....'
상대의 마나는 물론이고 육체를 이루는 모든 것을 흡수해서 제 것으로 만드는 정혈 흡수 마법은 상대방이 가진 힘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버티면 어떤 일이 생길지 알수가 없다. 그 마법은 고대 문명의 유산이기에 마법사만 있을 뿐이다.
'아니야. 이방인들은 이곳에서 아바타로 머무르느 존재. 이 세계의 주민들과는 달리 육체와 영혼이 쉽게 분리되는 존재들이다. 자신이 이방인이고 아바타는 접속할 때마다 생성할 수 있기에 굳이 버티려고 하지 않아.'
페론은 하룬이 8서클에 달하는 마법을 견디거나 대항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바타와 영혼의 접속 관계를 생각하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하룬 대장이 이방인이 아닐 수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입으로 자신이 이방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태도에 맞추느라 이방인인 척하면서 버텼을지도 모른다.
"혹시 현실 상황을 좀 알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인가?"
상석의 인물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멍청한 얼굴을 하다가 느닷없이 한 페론의 질문에 매빈츠가 가볍게 얼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제가 직접 만나 본 하룬 대장은 본부의 분석과는 달리 이방인으로 보기에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돌풍 기지라는 곳을 공격하기 작전 상황이 궁금합니다."
"그래?"
"만약 그가 이방인이라면 현실에 분명 그 모습을 드러냈을 겁니다."
"좋아. 일단 그쪽과 연락을 해 보지."
매빈츠가 테이블의 수정구에 손을 올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모두 8명이 착석한 회의실 분위기는 괴괴한 침묵 속에 무겁기만 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원형의 테이블 중앙에 있는 주먹크기의 수정구가 빛을 발했다.
"전단 사령관이오."
상석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제까지 아무 말도 없었던 각진외모의 위맹한 인상을 가진 중년인이 수정구를 향해 말했다. 그 속에 다른 이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위이잉.
미세한 소음과 함께 수정구가 주기적으로 발광을 하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총본부 감찰단 부단장 비츠라고 합니다.
전단 사령관이라고 말한 중년인의 굳어 있던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친하지는 않지만 같은 라인에 속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비츠 부단장이기군요. 퍼롤 헤이크입니다."
-반갑습니다. 예전에 밖에서 한번 뵌 적이 있습니다.
수정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반가움으로 보아 그 역시 퍼롤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 일로 부단장님이 직접 통신을 관장하시는겁니까?"
-비상 상황이라 제가 통신 쪽의 비선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퍼롤은 비상 상황이라는 말이 궁금했지만 일단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알리오츠 전단의 단원들 상황이 궁금했다.
"현실에 있는 알리오츠 기지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최악입니다. 단원들이 뇌사 상태에 빠지자 그들과 연결된 초자아 캡슐이 충격을 받아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폭발이요?"
-네. 아시다시피 비욘드 급 이상의 캡슐들은 초자아체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주인과 강한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영혼의 동조 현상이 심하지요.
높은 동화율이 그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이번처럼 그 주인이 급작스럽게 뇌사 상태가 되거나 사망을 하게 되면 그 충격으로 인해 캡슐들이 오작동을 하거나 5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자폭을 하게 됩니다.
"....그렇군요."
전에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서 문제가 된 것을 퍼롤 역시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일이 발생할 줄이야.
퍼롤과 전단 단장들은 굳은 얼굴로 비츠의 말을 들었다.
-전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경우 한 전단이 같은 기지에 모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캡슐 폭발로 인해 피해가 컸습니다. 거기에 그폭발로 인해 다른 멀쩡한 캡슐들까지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알리오츠 전단의 단원들이 있던 기지가 70퍼센트 이상 파괴된 상황입니다. 그 결과 대원로 회의에서 폭발을 우려해서 기지를 폐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소리에 퍼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나머지 6명의 얼굴도 돌처럼 딱딱해젔다.
"으으음!"
퍼롤의 입에서 급기야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폐기 처분이 의미하는 것은 완전한 소멸이나 마찬가지다. 빅 유니온과 마찬가지로 휴먼 시대 초기에 건설된 기지들은 지하 깊숙한 곳에 폐기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안에 어떤 시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듣기로 그 안에 던져진 것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만다고 했다.
"제길!"
운이 좋아 소수가 빠지긴 했지만 1천 명에 달하는 생목숨이 한 번에 끝장이 나고 만 것이다. 비록 마수들을 상대하거나 엘프의 결계 떄문에 죽은 자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뇌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되고 말았으니 이제 알리오츠 전투단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뇌사에 빠지기 전에 몇 명이 잠시 의식을 찾았었습니다.
"아, 그래요!"
퍼롤은 반색을 했다.
-그들이 말하길 페론 단장이 떠나고 얼마 후에 지구라트를 중심으로 육체뿐 아니라 심혼을 옥죄는 가공할 힘이 소용돌이치듯 작용했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성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 지역에 있다가 흡력에 빨려 들어가다가 죽은 자의 말에 따르면 숲 전체를 날려 버릴 정도의 대폭발이 성을 중심으로 일어났답니다.
"....."
퍼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다른 큰 사건이 생겨서 걱정입니다.
"네? 다른 큰 사건이라면?"
-코원 유니온에서 큰 건이 터졌습니다. 배리어 밖 거점들과 유니온 안의 거점들은 물론이고 군수 창고와 임페리얼 컴패니 공장까지 폭발했습니다.
이어진 비츠의 말에 회의장 분위기는 패닉 그 자체였다. 특히 코원 유니온에 존재하는 임페리얼 컴패니의 중요성은 여기 있는 인물들 모두 제대로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참혹한 일이? 대체 어디입니까? 휴먼 가드 쪽입니까? 아니면 GPC입니까?"
묵직했던 퍼롤의 음성이 절로 커졌다.
-아직 코원 유니온에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쪽 지부는 궤멸에 가까울 정도의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데드 벙커로 간 덕분에 화를 피한 상층부 조직원들이 조사를 위해 유니온으로 급히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보고서는 며칠이 지나야 나올 것 같습니다. 우리 감찰단은 두 경쟁 세력이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정확한 것은 아직 모르지요. 다만 그들 두 세력 역시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동기조차 업습니다.
그건 그렇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중요한 자신들의 힘까지 소진해 가면서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 세 세력은 오랫동안 겉으로는 적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밀월 관계를 유지해 온 사이가 아닌가.
"혹시 돌풍 용병대라고 자청하는 자들에 대한 코원 지부의 공격 결과를 알고 있습니까?"
-아뇨.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블러드 새도우가 그 일을 맡았다는데 아무래도 그 일이 걸립니다."
퍼롤의 말에 이번에는 비츠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야 그의 목소리가 수정구에서 흘러나왔다.
-최지급으로 그 일에 대해 조사하겠습니다. 아무튼 이번 일로 인해 대회의가 소집되었다고 합니다. 단주께서도 참석하셔야 할 겁니다. 향후 얼마간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그럼 대회의에서 뵙겠습니다."
-네. 현실에서 뵙지요.
비츠의 인사말과 함께 수정구의 빛이 사그라졌다.
퍼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홀든!"
"네, 총단주 각하!"
대답을 하며 일어서는 홀든은 30대 중반의 날카로운 인사을 가진 사내였다.
"두브헤 전단이 금번 사건의 조사를 맡는다. 정상적인 화산 폭발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사고인지를 가려라. 아무래도 찜찜하다."
"알겠습니다."
"페론은 두브헤 전단이 맡고 있던 다섯 개 성의 지원 임무를 대신 수행하라."
"알겠습니다, 각하!"
굳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페론의 눈빛이 깊어졌다.
"제라코!"
"네, 각하!"
"알코르 전단은 현실로 복귀하여 코원 지부로 가라."
"네에?"
알코르 전단장 제리코가 대답을 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뜻밖의 명령에 놀란 것이다.
"총본부에서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하룬 용병대장과 그 일행을 이방인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블러드 새도우 33대로 하여금 예상되는 거점을 공격하게 했다.
그 일이 있고서 바로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말은 안 되지만 내 생각으로는 블러드 새도우의 공격을 받은 돌풍 용병대가 의심스럽다."
다른 단장들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페론은 퍼롤 총단장의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뭔가 알 듯 말 듯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때 퍼롤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블러드 새도우가 실패한 것 같다. 명성이나 전력을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힘도 보여주지 못하고 화만 나게 만든 것 같다.
만약 현실에 존재한다는 돌풍 용병대의 전력이 이곳과 비슷하다면 그 정도의 일은 충분히 벌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쪽은 현재 데드 벙커 일로 인해서 상당한 무력이 빠져나간 상황이고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일을 경험하지 못해 경계 태세가 흐트러져 그런일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알코르 전단이 직접 가서 만약 살아 있다면 그들을 지워 줘야겠다."
"알겠습니다."
"단원 이동을 위해 각 유니온의 서브 레일 허가권을 신청해 놓겠다. 적어도 일주일 안에는 코원 지부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라"
"맡겨 주십시오. 숨긴 뒷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계의 용병대를 흉내 내는 자들 따위는 깡그리 지워 버리겠습니다."
호전적인 성향의 제리코는 벌써부터 흥분이 되는지 눈을 희번덕거렸다.
'설마 이방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럼 인공수정체도 아니란 이야기네. 그런데 왜 그에게 그런 친근함을 느낀거지?'
페론은 시선을 테이블 위에 고정한 채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룬과 만났을 때 마지막에는 그가 인공수정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정말로 이방인이 아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른 사도들보다 훨씬 더 친근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감정은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느끼지 못했었다.
'설마 살아 있지는 않았겠지?'
막강한 전력을 가진 알리오츠 전단과 성 전체가 날아가는 폭발이 있었다. 그 이유야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런 폭발 과정 중에 하룬이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섣불리 사도들 이야기를 한 건 아니겠지?'
페론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제 계획이 무리익고 있는데 이번 사건이 변수가 되면 곤란했다.
하룬은 보름이 넘게 걸린 거리를 단 몇 시간 만에 도착할수 있었다. 노을이 지는 하늘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나는 기분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지만 끝나지 않는잔치는 없었다.
하룬은 사람들이 놀랄까 두려워 아카 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 중턱에 미노를 착륙시켰다.
"수고했어, 미노!"
육포 두 자루를 꺼내 녀석들에게 준 하룬은 오가는 사람들로 활력이 느껴지는 아카 성을 내려다보았다.
-맛있어! 더 줘라, 친구.
"응?"
돌아보니 육포 두 자루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녀석들의 몸집이 커진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알았어. 더 줄게."
내친김에 육포 여섯 자루를 꺼냈다. 빠르게 이곳까지 데려다 준 녀석들의 공을 생각해서 육포를 일일이 하나씩 녀석들 입에 넣어주며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른 곳에 비하면 솜털 수준의 털이 나 있는 부드러운 목덜미를 쓰다듬자 녀석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기색이다.
녀석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화염 지대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녀석들은 육포를 받아먹느라고 바빠 아무 반응도 없었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한층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산의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잠시 녀석들과 노는 사이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카 성에도 횃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성을 내려다보는 사이에 미노와 수니는 다정하게 깃털을 비비며 놀고 있었다.
꾸르륵.
수니는 미노의 목에 부리를 대고 문지르면서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아마 각성을 한 후에 번식기를 맞은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보기가 좋았다.
"난 내려갈 테니 근방에서 지내고 있어."
-알았다, 친구.
-다음에는 육포를 더 주었으면 좋겠어.
"뭐라고?"
이제까지 별말이 없었던 수니였다.
-친구가 주는 육포가 맛있어. 다음에는 내가 친구들 태워줄 테니까 다음에닌 더 달라고.
"하하하! 알았어. 그러지."
암컷이라서 그럴까? 새침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수니의 태도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두 녀석 다 이제는 그를 친구로 받아들인 것 같아 뿌듯했다.
하룬은 소란을 떨기가 싫어 내리기 시작한 어둠을 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대원들이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지구라트 건물의 1층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그 앞에는 대원들이 딜런에게 검술 교정을 받고 있었다.
딜런은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하룬을 볼 수 있었다.
"대장님?"
"하하하! 다녀왔습니다."
이제야 하룬을 알아본 딜런이 단숨에 달려와 하룬의 손을 잡았다. 자신을 아끼는 딜런의 따듯한 마음이 손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제야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제 오신 겁니까?"
"막 도착하는 길입니다."
"좀 달라지신 것 같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딜런은 달랑 혼자 돌아온 하룬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를 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앞머리를 뒤로 올려 단정하게 묶은 하룬의 모습을 본 대원들의 얼굴은 반가움과 함께 생경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얼굴의 반 이상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었던 하룬이었다.
"다녀왔습니다."
"껄껄! 정말 우리 대장이시군."
미루스가 가정 먼저 하룬을 알아보았다. 달라진 모습에 티노를 비롯한 용병대 수뇌부들까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다.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이전에 비해 좀 더 젊어 보이는 외모였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나 그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많이 어려 보이는군요. 밖에서 만났으면 몰라볼 뻔했습니다."
딜런이 푸근한 웃음과 함께 달라진 외모를 간접적으로 언급하자 다른 대원들도 하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 겁니까?"
걱정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간 꽤 걱정을 한것 같았다.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은 딜런의 속내가 그 물음을 통해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다크니스랑 한바탕 하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하룬의 눈빛이 반가움을 드러내자 미루스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흐흐흐! 하긴 얼굴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으니 이런 멋진 모습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 거기에 머리를 묶어 제대로 얼굴을 드러내니 몰라볼 뻔했잖습니까. 난 또 바디체인지라도 겪은 줄 알았습니다.
"뭐,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자신들 역시 완전하지는 않지만 바디체인지를 경험한 딜런과 타니엘라 그리고 마루스는 하룬의 달라진 외모를 쉽게 받아들였다.
'바디체인지?'
경지가 낮은 이들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지만 세 고문의 반응이나 하룬 고유의 분위기와 목소리로 보아 자신들의 대장이 확실했다.
"대장!"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티노를 필두로 대원들이 하룬에게 모여들었다.
잠시 후 진정을 한 용병대 수뇌부는 하룬으로부터 화염 지대에서 일어난 일을 들을 수 있었다.
"겨루를 비롯한 이방인 대원들에게 화염 지대와 상급 마수들에 대해 듣고 많이 놀라고 걱정했었습니다."
"그래서 성을 공략하지 않고 화염 지대로 달려갈 작정이었어요."
티노 부부의 말에 하룬은 그들에게 말 대신 손을 꽉 잡아 고마움을 전했다.
"아무튼 여러분들이 걱정해 준 덕분에 갔던 일은 무사히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마왕의 눈을 찾은 겁니까?"
타니엘라와 미루스가 큰 관심을 보였다.
"네. 하지만 너무 위험한 물건이고 당장은 특별히 쓸 곳을 찾지 못해 은밀한 곳에 숨겨 두고 왔습니다."
자신에 몸속에 들어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룬의 말에 두 사람은 아쉬운 표정을 했지만 이내 털어버렸다.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보여주지 않을 하룬이 아닌 것이다.
"이제 대장이 왔으니 미뤄 놨던 공성전에 집중해야겠군요."
"딜런 경의 말씀이 맞습니다. 대장이 귀환했으니 부르카족과 에인족의 바람을 들어줘야지요."
딜런과 티노는 그동안의 일을 상세하게 풀어 놓았다.
세 부족이 성을 공격하기 위해 모였지만 에버그린에서 날린 에센이 가져온 전갈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고 했다. 에버그린에서 수련을 하던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출발했다는 말에 그들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일족의 희생을 줄여야 합니다."
"그분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목표한 두 개의 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
이곳에 모인 세 부족의 탄과 칸 들은 되도록 희생을 줄이고자 했고 돌풍 용병대 수뇌부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겨루를 비롯한 이방인 대원들이 부활을 했고 화염 지대의 상황을 알렸다 포머칸과 대전사 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화염 지대로 진입한 일미여 무시무시한 힘과 가공할 공격력을 가진 상급 마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대원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당장 가야 해요!"
"대장을 구해야 해요!"
도네이스와 헤니가 난리를 쳤다.
"진정해!"
딜런은 두 사람을 진정시키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이끌었다.
"우리가 당장 간다고 대장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름은 족히 걸리는 곳인데 지금 출발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것은 없어."
비정하게 느껴지는 타니엘라의 의견에 사람들은 이를 악물었다.
"대장을 믿어야 해! 우리가 움직이더라도 일단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오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은 안돼."
딜런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세 부족이 비록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한 사이도 아니다. 산악 부족은 자신의 부족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고 사안에 따라 적대하거나 연합하며 살아온 터라 잘못하면 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다.
당장 아카족이 차지한 아카 성을 놓고도 부르카족과 에인족은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혈기가 끓어오르는 전사들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수시로 다툼이 일어나고 잘못하면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돌풍용병대가 세 부족의 구심점이자 완충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점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세 부족은 서로 직접 대화를 하기보다는 돌풍 용병대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돌풍 용병대는 새로운 성의 공략을 늦추고 아카 성으로 되돌아왔다. 식량 문제도 그렇고 숙영하는 것도 불편했던 것이다. 전사들은 기껏해야 며칠 분에 해당하는 마른 음식만 가지고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아카 성으로 돌아온 후 부르카족과 에인족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한 성의 주인이 된 아카족들은 성을 정비하고 거점마을로부터 일족들을 불러들였다. 아카 성은 족히 1만 명은 수용할 수 있는 각종 시설이 있었고 다크니스 무리가 저장해 놓은 식량이 지하 창고마다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돌풍 용병대로 인해 안전한 주거지를 얻은 아카족들은 살판이 났다. 부지런한 아카족 부녀자들은 성 밖의 초지 일부를 개간하고 씨를 뿌리기 시작했고 전사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힘을 모아 외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외성이 완성되면 사냥이 아니라면 마수로 인한 피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부르카족과 에인족은 하루빨리 대전사들과 포커칸들이 도착하기만을 고대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어디까지 왔답니까?"
"내일 오전에는 도착할 것 같습니다."
티노의 말에 하룬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들이 가진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 기대가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빨리 마츠루트 요새로 가서 이벨린 황녀와 거래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마지막 지혜의 파편에 있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성을 얻는 것이 먼저야!'
부르카족과 에인족 전사들은 아카족 전사들과 함께 장차 돌풍 용병대의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 되어 줄 것이다. 그 대신 자신은 그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전해 주는 한편 돌풍 용병대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삶을 개척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무엇이든 고여 있으면 썩는다.'
산악 부족은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 선조들이 내린 유훈대로 마수를 사냥하며 고유한 문화를 지켜 왔다. 하지만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들을 미개한 원주민으로 취급하고 있고 실제 그들의 생활수준은 엄청나게 낙후되어 있는 상태였다.
영아 사망률은 물론이고, 평균수명은 마흔 살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대규모로 마수들이 발호하면 그 인구는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한때 마왕군과 대항해 세상을 구했다는 영광의 역사를 지닌 산악 부족이지만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기만 했다. 하룬은 이것이 세상이나 다른 부족과의 교류를 등한시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과 관계를 맺은 세 부족만은 이런 상황에서 구해 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들을 좌지우지하는 대전사들과 포머칸들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그들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산악 부족에게 새로운 삶의 지표를 열어 주고 싶었다.
유니온도 마찬가지다. 다른 유니온과의 교류를 중지한 이래 유니온들은 급속하게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황 박사가 꺼낸 말이지만 이제 하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권력과 금력을 장악한 세력이 도전을 아예 막아 버리면서 새로운 휴먼 시대를 열게 만든 수많은 지식들은 사장되고 이제 명맥마저 끊기고 있었다.
GG와 HG 그리고 GPC. 이 세 조직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가 대를 이어 권력과 금력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로 인해 사회는 폐쇄적인 신분 사회로 변모했고 신분 간의 이동은 철저하게 막혔다.
그래도 배리어가 없이 삶이 가능하게 만들려는 GPC가 그나마 나았다. GPC는 다른 두 조직에 비해 신분 이동이 비교적 쉬웠기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었고 가진 생각이 가장 진보적이다.
'내가 정말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뭔가 세상에 쓸모가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페론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지만 정말 그가 특별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일반주민을 위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제까지는 그저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강해지기 위해 피땀을 흘려 노력했고 그 결과 어느 정도 강해지긴 했다. 하지만 강해진다는 것은 끝이 없는 목표였다. 이제는 삶의 목적을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사랑하는 벨과 아리 그리고 좀 확장한다면 돌풍 기지 식구들과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이전까지 그가 바라던 꿈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아직 확실하게 떠올린 것은 없지만 최소한의 목표는 있었다.
'세상을 병들게 만들어 놓고도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GG와 HG는 어떻게든 처리하고 말겠어!'
언뜻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놈들도 약점은 있어!'
벨과 아리 그리고 아즈만이 찾은 놈들의 약점은 조직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심지어 조직원 간에도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모두가 상층부의 욕심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수하들을 부리기 위해 많은 조직을 분리한 채로 개별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점조직화되어 있으니 수뇌부들만 처리를 하면 그 밑은 시일이 흐르면서 자연히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각 유니온의 행정원의 느슨한 연합체인 GPC와는 다르다.
죽으을 생생하게 경험했던 하룬은 이렇게 새로운 목표를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특별한 격식 없이 수뇌부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진 하룬은 돌풍 용병대를 소집했다.
대원들은 하룬의 드러난 얼굴에 크게 관심을 보였지만 술잔이 돌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색했던 감정을 곧 잊어버렸다.
"대장님, 이제 그 잘생긴 얼굴을 머리카락 따위로 가리지마세요."
레미는 술 몇 잔이 들어가자 해롱거리며 하룬의 얼굴을 연방 만졌다. 술이 들어가니 평소의 조신했던 모습을 벗어버린 것이다. 하룬도 이때만큼은 그런 행동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내가 잘생겼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아닌데. 게다가 전 대장처럼 터프한 남자가 좋아요."
"헤헤! 레미도 나하고 똑같구나. 대장이 이렇게 근사한 줄 알았으면 저치랑 파혼하는 건데."
두르본은 농담을 해 가며 은근히 약혼자 치첸을 약 올렸다.
"솔직히 잘생긴 것은 아니지. 대장이야 눈을 빼고는 평범하잖아. 생긴 거야 내가 훨씬....."
약이 오른 치첸의 말에 티노가 녀석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겼다.
"대장이 너무보다는 훨씬 잘생겼거든."
"아쿠!"
엄살을 피우는 치첸의 모습에 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꽤 젊어진 모습을 보인 하룬은 곧 대원들에게 익숙해졌다. 세 고문에게서 흘러나온 말로 인해 모두들 그가 바디체인지를 이루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 역시 바디체인지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전사들이나 포머칸들 중에 그런이들이 적잖이 있었던 것이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달아오르자 예전처럼 춤판이 벌어졌다. 산악 부족들은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가진 춤이 전승되고 있었는데 전사 출신의 용병들이 추는 춤은 격력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것이었다.
술기운이 오른 대원들은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춤판에 끼어들어 그간의 수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털어 내기 시작했다. 티노 부부와 미루스도 어느 틈에 그 가운데에서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때 화염 지대로 같이 갔었던 대원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술잔을 내밀었다.
"살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겨루의 눈시울은 붉게 변해 있었다. 마음고생을 많이 한 것 같아 하룬이 오히려 뭉클해졌다.
"운이 좋았어."
술을 한 번에 털어 버린 하룬이 겨루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니켄과 에리피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에리피안은 죽었고 니켄은......"
하룬은 숨길까 하다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겨루와 방커 그리고 마리는 니켄의 이야기를 들으며 연방 뜨거운 숨을 내쉬며 분개했다.
"그런 놈을 형이라고 부르며 따랐다니!"
"나쁜 새끼!"
인공수정체로 태어나 힘겨운 삶을 살아온 세 사람은 정이 많았다. 그래서 나이켄의 정체와 하룬에게 가했던 행위에 더욱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발트랑은 어떻게 지내나?"
하룬이 문득 화제를 바꾸었다.
"어제 현실에서 연락을 했는데 무척 바쁜가 봅니다. 아무래도 유니온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하룬은 그 원인이 자신이 행한 복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네. 거처를F구역에서E구역으로 옮겨 준다는데 좀 이상합니다. 그리고 캡슐도 이제는 더 아래 등급으로 바꿔야 할것 같습니다."
"캡슐을?"
이상한 일이다. 그러자 방커가 겨루 대신 대답을 했다.
"저희가 캡슐을 쓰는 조건으로 발트랑을 돕기로 했었는데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녀석의 입장이 난처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들도 이런 상황이 불편하고요."
그러고 보니 이 세 친구가 쓰는 캡슐은 현재까지 나온 캡슐 중 스페셜 캡슐이었다. 인공지능을 가진 슈퍼컴이 내장된 캡슐로 발트랑이 GPC의 요인이었고 세 사람이 모두 특수군으로 복무하고 비욘드에서도 레벨이 높았기에 받은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마리가 잠시 주저하더니 돌풍 기지로 들어갈 수 없는지 물어 왔다.
"당연히 되지. 내가 연락을 놓을 테니까 그곳의 돌풍 대원들이 너희들을 데리러 올 때까지 당분간 이 세상에 들어오지 마라."
"감사합니다, 대장."
세 사람은 전신 혹은 반신 마비 상태가 된 쓸모없는 몸밖에 가진 것이 없는 터라 혹시 돌풍기지로 가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경험한 세상은 능력이 없으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냉정하고 차가운 곳이었다.
"내가 동생에게 들으니 그곳에는 뛰어난 의료 시설이 있다고 하더라. 이참에 너희들의 상태도 제대로 확인하고 할수 있다면 수술이나 재활 치료를 받아 보면 좋을 거야.
아직사람이 부족한 그곳이라면 너희들의 군복무 경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거야."
"......고마워요, 대장!"
마리는 복받치는 감정을 겨우 누르고 감사 인사를 했다. 겨루와 방커는 말도 못 하고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거기에 가면 너희들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많다니까 너희들도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거야. 가면 마음 편하게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돼"
세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세상에! 대장님, 다 큰 친구들을 울리면 어떡합니까?"
영문을 모르는 토르가 하룬에게 술을 권하러 왔다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술이나 따라."
"넵!"
토르는 타니엘라의 책망에 치켜뜬 눈을 제자리로 돌리며 세 사람을 흘끔거렸다.
그가 보기에도 책망을 들은 얼굴이 아니라 환희가 느껴지는 눈물을 흘리는 세 사람인지라 무릎을 꿇고 술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