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8화.벨의 구출 (219/278)

벨의 구출

위로 올라가면서 이전까지 했던 대로 무기를 나누어 주고 결국 지하 2층의 문 앞까지 도착한 하룬은 이곳에서 로수를 만날 수 있었다.

"대장!"

로수는 감격한 얼굴로 하룬을 불렀다. 뜻밖에도 이곳에 있는 조원들은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오랫만입니다. 상황은 어떻습니다?"

"아직 벨 참모는 무사합니다. 일부 조직원들이 소장실 진입을 시도했지만 놈들이 검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피해만 입고 물러난 상태입니다. 적들은 지하 2층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벨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상황을 알 만했다. 기지 식구들은 플랜 원에도 불구하고 벨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머지 조원들과 철웅의 1조는 어디에 있습니까?"

2조의 나머지 조원들과 당연히 보여야 할 철웅의 1조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 하룬은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비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조원들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지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입구?"

"네! 기지 밖의 적들 일부가 삼중 강철문을 폭약을 사용해서 부수고 있습니다. 곧 부서질 것 같습니다."

"무기는?"

"그게....."

무기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적들을 막기 위해 입구로 올라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전투 슈트는 착용한 상태지만 그것으로는 도검을 휴대한 블러드 새도우를 막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자장풍도 큰 도움이 안 된 거로군.'

하룬은 내심 혀를 찼다. 어쩌면 적들은 자장풍을 피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빨리 올라가서 조원들에게 무기를 지급하세요."

"하지만....."

"시간이 없어요!"

"알겠습니다!"

로수와 다섯 조원이 하룬이 내려놓은 도검들과 입자건이 담긴 상자를 들고 위로 올라가는 동안 하룬은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안으로 들어오면 이 계집의 목숨은 사라질 거라고 경고했는데도 들어오다니.

-아아악!

복도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음침한 말과 함께 벨의 비명이 들려왔다.

'제기랄!'

하룬은 황급히 물러나며 복도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소장실에서는 기지 전체에 깔려 있는 카메라 망을 통해 어떤 곳이든 다 볼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벨 걱정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즈만, 벨의 상황은 어때?

-죽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목에 깊은 상처가 났습니다. 이대로 두면 20분 후에는 출혈 과다로 사망할 겁니다.

하룬은 입술을 질겅거리며 씹었다. 그러던 하룬의 눈에서 한순간 뜨거운 광명이 터져 나왔다.

두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하나는 메신저 스킬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소장실을 지나치는 순간 개량 입자건을 쏘거나 비수를 날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동을 하면서 목표물을 맞히는 건 자신이 없다. 벨이 없다면 모르지만 그들 사이에 그녀가 있을 것을 고려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두 번째 방법은 상단전에 내재된 뇌전의 힘과 커브 피치 스킬로 비수를 던져 공격하는 것이다. 비수가 던져졌다는 것만 감출 수 있다면 가능하다.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여유가 없었지만 포러스와의 의식속 대결에서 살아난 후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의 능력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다.

하룬의 현재 감각으로 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소장실 안에 있는 적들의 기척을 확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될까?'

입구에서 소장실까지의 거리는 겨우 10미터에 불과하다. 방금 전 안쪽을 보았을 때 분명히 소장실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소장실은 정방형으로 한 변이 10미터이니 최대 15미터에 불과하다.

'커브 피치라면 될지도 몰라.'

현실에서는 써 본 적이 없지만 비욘드에서는 간간이 써 본 경험이 있다.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목표물을 공격하는 커브 피치 스킬을 쓰기 위해서는 손목과 비수의 각도 그리고 마나 아니, 현실에선 기의 세밀한 주입과 조종이 필요하다.

'아니지! 상단전의 뇌전력을 사용하면 커브 피치 스킬이 아니더라도 내 의지대로 비수를 조종할 수 있어'

게임에서는 블리츠 대거를 사용해서 써 본 적이 있다. 아까의 경험으로 게임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각종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블리츠 대거가 아니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하룬은 눈을 빛냈다.

-한 번만 더 난입을 시도하면 이년의 목숨을 끊어 버리고 말겠다!

경고 방송이 나오는 순간 하룬은 세 자루의 비수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다른 방도가 없다. 하룬은 상단전에 의식을 집중해서 뇌력을 끌어내어 비수에 연결했다.

지지직!

끈끈한 뇌전의 힘이 깃들자 비수들은 시퍼런 뇌전을 토했다. 곁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화랑과 방조의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느닷없이 시퍼런 뇌전이 비수에서 방전되는 것도 그렇고 그런 비수를 손에 쥐고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하룬도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가랏!'

세 자루의 비수가 느릿하게 하룬의 손을 떠났다. 두 눈을 반개한 상태에서 극도로 집중한 하룬의 의식은 비수와 함께 움직였다.

마치 비수에 하룬이 빙의된 것처럼 비수 주변의 정경이 눈으로 보는 듯 확연하게 들어왔다.

바닥과 벽 사이의 틈을 따라 느릿하게 날아간 비수들은 소장실의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부서진 유리조각들과 각종 파편으로 인해 놈들이 소장실 안에서 보는 화면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허!"

화랑이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탄성을 지르려는 것을 눈치가 빠른 방조가 황급히 자신의 손을 뻗어 그 입을 막았다. 하지만 방조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비수를 보며 입을 벌린 상태였다.

하룬은 소장실 앞쪽에 설치된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보인다!'

어제라도 목을 벨 수 있게 단검을 벨의 목에 댄 한놈과 세벽에 떠오른 영상들을 심각한 얼굴로 주시하는 두 놈의 모습이 들어왔다. 벨의 전신은 단검에 베인 상처가 그득했고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얼굴에도 상처가 있었다. 아마도 영상을 통해 기지 식구들을 겁박하려고 한 짓일 것이다.

분노한 하룬의 의지가 담긴 비수들은 깨진 창문을 통해 그 시퍼런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무, 뭐야?"

마침 벨의 목에 단검을 대고 있던 놈이 삐죽이 날을 드러내고 깨진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비수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다른 두 놈도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순간.

쌔액!

시퍼런 뇌전의 끈으로 연결된 비수들이 파공성과 함께 세놈을 향해 쇄도했다.

퍼억! 지지직!

"끄아악!"

벨을 위협하던 놈의 눈에 박힌 비수는 뇌전을 토했고 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벨의 목을 위협하던 단검은 어느 틈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우광쾅!

두 놈은 그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비수를 피해 몸을 굴렀다. 

어지간한 수련이 아니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기 힘들지만 그들은 블러드 새도우 요원들 중에서도 상위 실력자들이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위협 행위에 기절한 것으로 보였던 벨이 마지막 힘을 다해 문을 향해 돌진했다.

"자, 잡아!"

"이런 씨발!"

비수 공격을 피한 두 놈이 도망치는 벨을 잡으려고 움직이는 순간 바닥과 벽에 박혔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퍼런 뇌전의 비수들이 두 놈의 뒤통수로 파고들었다.

"컥!"

"으윽! 아아악!"

지지지직!

시퍼런 뇌전에 휩싸인 두 놈의 몸이 금방 새까맣게 타 버렸다.

꽈앙!

마치 몸으로 문을 부수듯 밖으로 튀어나온 벨의 작은 동체가 하룬을 향해 달려왔다.

'돌아와!'

의지를 부여하는 순간 비수에 연결되었던 뇌전은 순식간에 하룬의 상단전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옆에서 보고 있던 화랑과 방조는 물론이고 달려오는 벨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오빠!"

"벨!"

피투성이가 된 상태지만 벨은 용케 넘어지지 않고 하룬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고생했다. 이곳은 이제 내게 맡기렴."

"흐윽!"

벨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고통 속에서도 반드시 올 거라고, 자신을 구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하룬이다. 그 넓고 따듯한 품이 너무나 그리웠다.

벨은 긴장이 풀린 것인지 아니면 피를 너무 흘려서인지 눈물을 흘리던 상태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하룬은 벨의 경맥을 자극해서 지혈을 하고는 방조와 화랑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빨리 벨을 지하 12층으로 옮겨 줘."

"네, 대장."

어엿한 기지 수뇌부로 그 능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다들 내심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던 벨이 이지경이 된 것에 화랑과 방조는 분노와 함께 다급함을 느꼈다.

얼핏 보아도 상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대답과 함께 벨을 조심스럽게 들고 아래층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지하 1층으로 올라가니 입자건과 도검을 휴대한 전투조원들이 계단에 가득했다.

"대장님!"

모두 하룬을 보고 인사를 해 왔다. 하룬은 일일이 눈을 맞추며 길을 뚫고 지상과 연결되 삼중 강철문 쪽으로 갔다.

그를 본 로수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어 왔다.

"대장님, 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휴우! 다행이다."

하룬의 말에 조원들이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두들 벨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하룬의 차가운 눈빛이 조금 녹았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1층은 클리어했습니다. 끝까지 저항하는 적들은 모두 죽였습니다."

슬쩍 안으로 향하는 쪽을 보니 한쪽 구석에 쌓아 둔 사체 세 구가 눈에 들어왔는데 얼마나 집중 사격을 당했는지 방어구 밖으로 노출된 머리통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수고했습니다."

"이제 무기까지 있으니 아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는 로수의 눈에서는 화염이 솟구치고 있었다. 나중에 따로 보고를 받아 봐야 알겠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것은 이미 추측하고 있었다.

"그러죠.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지요."

-아즈만, 밖의 상황은 어때?

-자장풍 때문에 멀리 날아가 버린 3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입구 주변에 포진하고 있고, 그중 10명 정도는 기지 입구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있어요.

-자장풍이 생각보다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군.

-네. 본래 유니온 밖에서도 많이 활동하던 자들인지 자장풍이 생성되자마자 재빠르게 땅을 파고 들어갔어요.

블러드 새도우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니다. 예전에 벼리가 GG의 조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들은 적이 있었다.

최소 열 번 이상의 작전에 성공한 자들 중에서 출신 성분이 좋고 충성심이 강한 자들로 선발되는 특수한 전투 조직으로, 1대에 1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5대가 있다고 했다.

유니온 밖에서도 슈트와 무기만 있으면 몇 달이고 생존이 가능한 강인한 육체적 능력과 기를 다룰 수 있어 하르크가 아닌 변종 생물들이나 맹수들도 두려워하지 않는 특별한 존재들이라고 했다.

-밖의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 줄 수 있겠어?

-네. 가능해요. 이미 중앙 기지에서 날린 정찰 호크가 주변 상황을 감시하고 있으니까요.

-잘 했어, 아즈만.

역시 아즈만이다. 별다른 지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가진 아즈만은 필요한 것들을 착실하게 행하고 있었다.

곧 강철문 위로 정찰 호크들이 수집한 영상이 떠올랐다.

"헛! 저건!"

로수는 놀라는 조원들에게 정숙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흐음! 정말 입구를 폭발물로 폭파하려고 하는군."

어떻게 가지고 온 것인지는 몰라도 소형 입자포도 열 문이나 되었지만 발전기를 비롯한 지상 부위의 시설은 이미 지하로 내려앉은 상태라 입자포는 소용이 없었다.

때문에 블러드 새도우들은 지하로 통하는 30센티미터 두께의 삼중 강철문의 테두리와 중앙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들로부터 3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자세를 낮추고 있는 80여 명에 달하는 블러드 새도우들은 새까만 전투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허리와 등에 도검류를 휴대한 상태에서 개량된 것으로 보이는 입자건을 들고 있었따.

-아즈만, 내부는 정리됐어?

-네, 마스터.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정리가 되어 가고 있었는데 무기까지 쥐어 주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 전투조원들을 모두 위로 불러 올려 줘.

-네.

곧 기지 내에서 전투조원들을 소집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즈만이 비록 슈퍼컴퓨터이기는 해도 기계음이 아니라 특유한 음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 듣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호기심을 느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녀가 하룬의 명령이라고 하는 말을 따라 맡은 일을 수행했다.

곧 부상자를 제외한 전투조원들이 모두 지하 1층에 집결했다.

"모두 열악한 환경에서도 노력을 한 끝에 내부에 있는 적들은 다 처리했다. 이제 밖에 있는 적들을 처리할 차례다."

"......"

전투원들은 내부가 정리되었다는 말에 한시름 놓은 얼굴이지만 기지 내부로 침투하기 위해 준비하는 적들을 생각하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침략자들을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리의 안식처를 엉망으로 만든 놈들이다. 1명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 작전을 전달하겠다. 먼저 기지 입구를 중심으로 자장풍을 발생시킨다. 그럼 적들은 빅몰처럼 땅을 파고 들어갈 것이다. 자장풍이 사라지는 것에 맞추어 문을 개방하면, 적들은 입구를 중심을 중심으로 30미터 거리에서 네 방향에 포진하고 있으니 우리 역시 네 방향을 ㅗ나눈다.

휴대용 입자포 사수들은 위치를 확인해서 적들의 소형 입자포부터 부순다. 그리고 나머지는 적들이 땅에서 나오는 순간을 노려 사냥한다."

하룬은 각조에서 10명씩을 떼어 내서 만듬 임시조를 사용으로 하여금 이끌게 했다. 

"적들의 슈트도 우리의 슈트처럼 충돌 시에 받는 충격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원리가 작용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입자건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수련했던 검술이나 도법을 써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개량된 입자탄의 타격은 전혀 무용한 것이 아니다.

겉은 멀쩡해도 많이 맞으면 그만큼 내부는 충격을 받겠지. 그렇게 되면 일대일로는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나 우월하거나 비등한 전력이 될 것이다. 강자들은 세 조장과 내가 책임지겠다.

이참에 수련한 결과를 보여라. 적들이 비록 GG에서도 특별하게 여기는 뛰어난 무력 조직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숫자도 더 많고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 다해 수련해 왔으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룬의 말에 전투조원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쏘우가 한참 개발하고 있는 무기들까지 동원하면 굳이 검을 맞대지 않더라도 적의 상당수를 해치울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조원들이 전투 경험이 없으니 이참에 생생한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검기를 쓸 수 있는 조원들은 알맞은 목표를 정해 해치우고 다른 조원들을 도와라.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동료를 도울 필요는 없다. 실전 경험은 아무 때나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평소에도 숱하게 대련을 하지만 생사의 간극을 걷는 살벌한 전투에는 아직 해 본 적이 없는 조원들이다. 일부는 불안한 눈빛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굳은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 하룻강아지가 무서운 법이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런 전투 경험이 없지만 패기와 전의가 쌓인 조원들이다. 생사를 두고 벌이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어도 물러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과 기세다.

물론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동료들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

"자, 대기!"

하룬의 명이 떨어지자 네 조로 재정비된 조원들은 줄지어 늘어서서 달려 나갈 준비를 했다.

-아즈만, 자장풍을 생성시켜!

-네, 마스터.

아즈만이 대답을 하고 잠시 후 두터운 강철문이 흔딜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실내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듯 강력한 흡입력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잠시 후 강철문이 서서히 한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조원들은 고글을 내려 안면과 눈을 보호하고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을 들으며 대기했다. 마침내 삼중의 강철문이 모두 열렸다.

"지금이닷!"

하룬이 명령을 내리고 바닥을 박차고 위로 날아 올라가자 가장 앞에 대기하고 있던 12명의 휴대용 입자포 사수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30킬로그램은 족히 나가는 휴대용 입자포를 어깨에 올린 상태에서도 바람처럼 날아 올라갔다.

그 뒤로 조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들의 뒤로 대기하던 조원들이 줄지어 달리기 시작했지만 혼란은 전혀 없었다.

입구로 올라온 조원들은 이미 멀리까지 사라진 네 줄기의 토네이도를 볼 수 있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갈 기세인 토네이도는 갖가지 물건들을 빨아올리며 질주해 가고 있었따.

가장 먼저 올라온 휴대용 입자포 사수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상대의 입자포를 향해 차례대로 발사하고 있었다.

꽈앙! 꽈앙! 꽈앙!

굉음과 함께 입구에서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세워진 소형 입자포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조원들이 미리 들은 대로 땅속에서 은신한 적들의 전방 5미터 앞에 반원을 그리며 포진했다.

"사격 준비!"

이미 목표물들이 있었던 방향은 숙지한 상태다. 엎드린 자세를 취한 조원들은 자장풍을 피해 땅속에 은신한 적들이 있는 곳을 향해 사격을 준비했다.

풀썩!

입자포가 폭발하는 소리에 놀라 일제히 은신한 비트 위를 덮고 있던 갖가지 재질의 덮개를 열고 뛰어나온 블러드 새도우들은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홀연히 나타난 전투조원들의 일제사격을 받았다.

파바바밧!

미리 정해진 방향으로 사격을 가하는 돌풍 기지의 대원들은 입자탄이 적들의 슈트를 두드릴 때마다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소중한 식구들과 형제들을 상하게 하고, 평화로운 돌풍 기지를 피로 물들인 흉악한 적들이다. 한놈도 살려 둘 수 없다는 살기는 고글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개량된 입자건은 연속으로 12발을 발사할 수 있다. 입자가속을 위해서는 3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금방 사격이 멈추었지만 조원들이 가져온 입자건은 한 자루만이 아니다. 다들 욕심껏 챙겨 온 것이다.

파바바밧!

블러드 새도우의 응사가 막 시작되려는 시점에 다시 입자건이 불을 뿜었다.

"아악!"

두 번에 걸친 자장풍의 중심에 있었던 터라 안면부의 고글이 흙먼지로 더러워진 탓에 은신한 곳에서 벗어나자마자 고글을 위로 올렸던 10명 정도의 적들이 쏟아지는 입자건에 머리통이 곤죽이 되었다.

나머지 블러드 새도우들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변종 생물의 가죽 구조를 모방해서 만든 전투 슈트는 타격시의 충격을 전신으로 퍼지게 하는 원리가 적용되어 제작되었지만 전혀 충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입자탄을 맞으면 그 부위는 멍이 들 정도로 타격을 받는 것이다. 그러니 개인당 세 자루씩은 가져온 터라 최소 30발이상을 맞았으니 무사할 리가 없다. 더구나 살이나 근육이 많은 부위가 아니라 관절이나 뼈 부위는 충격의 강도가 엄청났다.

세 번에 걸친 사격이 끝났다.

"누, 누구냐?"

적들 중에 멍청한 자가 있었다. 이 지경에 누군지를 알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어쩌면 시간을 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감히 이곳을 쳐들어온 적들의 숨통을 모두 끊어라!"

하룬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미 입자건을 내려놓고 대신 도검을 들은 조원들이 적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은신한 구덩이를 벗어나자마자 입자탄 세례를 받은 블러드 새도우들은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영문도 모르고 수십 발이 넘는 입자탄을 맞은 그들의 상태는 몰매를 맞은 것처럼 뼈와 근육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것이다.

"적이다! 침착하게 대응해라!"

적들 중 지휘자가 소리를 지르자 전투로 단련된 블러드 새도우들은 본능적으로 입자건을 버리고 도검을 뽑아 들었다.

써걱!

각 조의 조장들과 일부 조원들은 이미 검기를 어느 정도 쓸 수 있었다. 하얗고 파랗게 빛나는 도검의 날은 걸리는 물체를 사정없이 베어 버렸다.

충격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방어구의 기능은 예리한 절삭력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놈들!"

곧 적들의 수뇌부가 노성(怒聲)을 지르며 돌풍대원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블러드 새도우 요원들은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까앙! 까앙!

날과 날이 부딪히는 끔찍한 금속성과 함께 거세게 타오르는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제길! 너무 센 놈들이 왔군.'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적을 밀어붙였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적들은모두 검기를 쓸 수 있는 실력과 다양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어 하나씩 비세(非勢)인 상황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의 공격으로 10명 정도를 해치운 후론 비등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적들 중 삼분의 일 가량이 조장급 실력을 가지고 있어 숫자의 이점을 이용해서 둘이나 셋이 차륜전을 벌이는 형태로 바뀌어 갔다.

'위험하다!'

하룬은 조원들의 실전 경험을 위해 웬만하면 관여하지 않으려던 마음을 버렸다. 이미 많은 조원들이 상처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적들은 협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경험이 일천한 돌풍대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룬은 비수 세 자루를 꺼냈다.

'부탁한다!'

처음으로 가지게 된 비수들이었다. 바란의 조부가 만든 비수들에 상단전에 웅크리고 있던 뇌전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비수들이 푸르게 빛나자 하룬의 어깨가 거세게 흔들렸다.

슈욱!

꼬리를 물고 날아가는 비수들은 언뜻 보면 한 자루의 검신처럼 보였다. 블러드 새도우 3조장인 암몬은 기를 주입한 검으로 막 적의 목을 내리치려는 순간 자신을 향해 쏜살처럼 날아오는 비수 한 자루를 보고 황급히 검의 궤적을 틀었다.

비록 속도는 빨랐지만 검술의 고수인 암몬에게 순간적으로 검의 궤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까앙!

너무나 당연히 비수가 튕겨 나갔다.

지직!

웬일인지 검을 타고 한 줄기 전류가 전신을 관통했다.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류의 흐름에 전신의 신경세포가 한순간 활동을 멈추었다.

부르르.

짜릿한 감각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던 암몬은 놀란 얼굴로 몸을 흔들며 주의를 다시 눈앞의 적에게 돌렸다.

방금 전 목이 날아갈 뻔했다는 것에 놀란 적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고 있었지만 폭발적인 속도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특수 부츠를 생각한 암몬은 살광을 뿜어냈다.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져야 할 비수가 그의 발목 부위로 파고들었다.

"죽.....커억!"

지지직!

순간적으로 전신을 관통하는 엄청난 전류는 그의 사고를 끊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마지막 눈길이 향한 곳에는 허공에 정지해 있는 비수가 있었다. 시퍼렇게 빛나는 비수였다.

'역시 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이렇게 상단전의 힘으로 뇌전의 힘이 실린 비수를 조종하는 것은 무척이나 효과적이다.

누구는 비겁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암기도 도검처럼 상대방을 살상하는 무기다. 무기는 각자 그 효용이 있으니 누가 뭐라 할 것인가?

비수들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며 위기에 빠진 대원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블러드 새도우 요원들은 개개인이 높은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번 튕겨 났던 비수가 처음의 두세 배 속도로 파고드는 것을 쉽사리 막을수 없었다.

사람의 사고방식은 의외로 경직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면 임기응변으로도 쉽게 반응할 수 없었다. 분명히 쳐 냈던 비수가 튕겨 나가다가 벼락처럼 날아오면 열 중 아홉은 냉정을 잃고 손발이 어지러웠다.

비록 상대에 비해 실력은 달리고 수련한 기간도 짧지만 돌풍대원들도 제대로 된 수련법과 무기술을 전수받아 그간 죽을힘을 다해 수련해 왔다. 뇌전의 힘이 담긴 비수로 인해 냉정을 잃은 적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룬이 의지로 조종하는 세 자루의 비수가 전투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났다. 처음에는 한 대상을 공격할 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3명을 동시에 공격했다. 정신력의 소모는 엄청났지만 하룬은 지치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대등했던 전투는 살아 움직이는 전격의 비수 세 자루로 인해 달라졌다. 굳이 급소나 요혈을 노리지 않아도 된다.

슈트의 방호력으로 는 막을 수 없는 비수는 일단 적의 몸에 날을 박으며 치사량이 넘는 전류를 흘려 상대의 뇌 기능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러곤 짧은 시간 동안 상대의 몸에서 소모된 것 이상의 전류를 흡수했다.

"가랏!"

비수들은 하룬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곳으로 날아가 혼자 혹은 셋이서 목표를 공격했고 뇌전의 힘으로 인해 상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설사 감전 상태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무기를 휘두르더라도 주의가 비수로 쏠린 상태에서 돌풍대원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 낼 수는 없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전투는 마무리되기 시작했다. 일곱 군데에서 이루어지는 치열한 전투를 빼고는 정리가 된 것이다.

이미 검기를 상당한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는 로수, 철웅, 대산, 사용, 포인, 하박, 강인이 비슷한 실력을 가진 자들과 전력을 기율여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룬은 비수에 실린 뇌전력을 끌어당겼다.

'아직은 미숙해!'

뇌전에 의지를 싣는 것은 어려웠다. 한 자루라면 모르지만 세 자루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하지만 이제 비수를 어떻게 쓰는지 알았어.'

비욘드와는 달리 정령이 없는 현실에서는 상단전의 뇌력에 의지를 실어 사용하면 된다.

의지를 나누는 것이 아직 서툴고 어렵기는 하지만 이번 전투로 인해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단순한 뇌전만이 아니라 내 의지가 함께 실린 뇌전이어야 해. 그럼 난 현실에서도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어.'

의지를 담은 기가 비수를 통해 외부에서도 마음대로 움직여진다는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다. 능숙해지면 마치 정령이 동화된 비수처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비수에 실린 기는 뇌력을 품었다. 금속성 무기를 쥔 자들은 충돌하는 순간 무기를 타고 내습하는 전류에 흔들린다.

하룬은 살벌한 전투 대신 세 자루의 비수에 상단전의 뇌기를 실어 조종하는 연습을 했다. 시퍼런 뇌전을 방사하는 비수 세 자루는 하룬의 주위를 엄청난 속도로 날아다니며 그의 의지에 반응했다.

와아아!

하룬은 한순간 터진 대원들의 함성에 비수들을 거둬들였다.

"다 죽었다!"

와아아아!

살벌한 전투를 벌이는 대원들 대신 비수를 조종하는 것에 정신을 팔았던 하룬은 이런 자신에 대한 황당함과 대원들에 대한 걱정을 하며 황급히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대지에 발을 붙이고 있는 이들은 모두 돌풍대원들이었다. 방어구가 걸레로 변했고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지만 그들은 당당한 승자였다.

"하하하!"

하룬의 입에서 기쁨과 벅찬 감동이 바닥에 깔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임시 조장인 사용까지 합세한 네 조장이 비틀거리면서도 용케 그의 앞에 도착해서 군례를 올리며 보고를 했다.

어느세 중상을 입은 대원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하룬을 향해 도열해서 자세를 바로 했다.

"모두 수고했다! 편히 쉬엇!"

"충!"

하룬은 비교적 상태가 좋아 보이는 대원 몇 명 에게 부상자들을 이송하고 치료할 기지 식구들을 데려오라고 지시하고는 털썩 주저앉은 조장들에게 향했다.

이번 전투에 최선을 다했던 만큼 그들은 제대로 앉지도 못할 만큼 지쳐 있었다.

"어땠습니까?"

하룬의 눈이 철웅에게 향했다.

"아직 정상 상태로 맞상대하기에는 어려웠지만 다음에 만나면 제대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

전투 슈트는 성한 곳이 거의 없었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인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철웅의 눈을 활활 불타고 있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 많은 것을 얻은 얼굴이었다.

"대장님, 그 비수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게요. 비수가 맞는 겁니까? 어떻게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거지요?"

"전기가 흐르는 것 같던데....."

로수와 대산 그리고 사용이 궁금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놈들이 자신들만 살아남았다는 사실과 대장의 비수 때문에 주의력이 분산되지 않았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뻔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철웅도 신기한 눈치였다.

"나인이와 레이스가 가진 이능과 비슷한 종류입니다."

"아!"

"대장도 이능력자군요!"

대원들이 탄성을 지렀다.

"그럼 정신력으로 비수를 조종하는 겁니까?"

"비슷합니다. 그 안에 담긴 힘은 좀 다르지만....."

기력이 다한 상태에서도 호기심에 눈을 빛내는 대원들의 모습에 내심 실소를 하던 하룬은 연락을 받은 기지 식구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돌풍 기지 만세!"

"만세!"

기지 식구들은 죽어 넘어진 블러드 새도우 요원들의 모습을 보며 감격한 얼굴로 만세를 불렀다.

비록 많은 사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무사히 집을 지켜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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