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5화.정신 마법 (216/278)

정신 마법 

"흐흐! 아주 맛있겟군!"

포러스는 입맛을 다셨다.

하룬의 몸 안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질의 마나가 잔뜩 들어있었는데 하룬이 혼절을 한 상태이다 보니 전신 모공을 통해서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점의 혼탁함도 없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희한한 놈이군. 어떻게 이질적인 마나들을 함께 가지고 있는 거지?"

말을 그렇게 했지만 그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흑마법사들의 시선에는 안타깝다는 감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특히 나이켄의 아쉬움이 가장 컸다.

'저놈의 마나만 흡수하면 단숨에 6서클을 마스터하고 7서클에 오를 수도 있을 텐데.'

다섯 마법사는 마치 뱀파이어처럼 입맛을 다셨지만 포러스는 자신들 다섯으로는 감히 어쩔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오랜 고문으로 인해 심신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하룬은 정신 제어 마법이 펼쳐지자 나이켄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털어놓고 말았다.

포러스는 하룬으로 하여금 마나 봉인구를 풀고 싸가지의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에리피안의 목걸이를 꺼내게 만들었다.

8서클 대마법사가 펼치는 정신 마법은 나이켄이 펼쳤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룬은 포러스가 원하는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원하는 것을 얻은 포러스는 잠시 고민했다. 놈의 마나를 흡수하려고 했지만 더 욕심이 났던 것이다.

'원래 이곳까지 온 것은 8서클을 마스터하기 위한 흑마력을 채우기 위함이지만 이놈의 육체도 욕심이 난다.'

비록 고문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포러스는 하룬의 육체가 이미 한 번의 바디체인지를 겪은 최상의 상태라는 것을 알아 보았다.

잠시 망설이던 포러스가 아쉬운 눈빛으로 하룬을 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너무 위험해'

새로운 육체에 영혼을 전이시키는 마법을 알고는 있지만 경험도 없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자칫 하다가9서클에 오르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9서클에 오르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른다.

포러스는 다크니스와 손을 잡은 이래 단기간에 4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를 대량으로 양성하는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마왕의 파편을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크기는 손가락 두 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엄청난 흑마력이 담겨있는 마왕의 파편은 이제 마계에서난 찾아볼 수 있는 순수한 마기만이 남은 상태였다.

포러스는 그 마기를 흡수할 참이었다. 다만 너무 순수한상태라서 바로 흡수를 하면 불순한 마나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마나 고리가 단번에 깨질 수 있기에 1차로 다른 대상이 흡수해서 성질이 변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재흡수하려는 것이다.

'정령력이 높은 대상이라야 이 마기를 받아들일 수 있지.'

오랜 연구 끝에 알아낸 사실이다. 놀랍게도 순수한 마기는 정령력과 쉽게 결합해서 가공할 정도의 정령력으로 변하는것이다.

그럼 그 정령력을 포러스가 흡수하면 된다. 어쩌면 이런 사실이 다크 엘프의 탄생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포러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마나 파일 마법진과 해스닝 마법을 준비해라!"

마왕의 파편을 하룬의 입에 물린 포러스의 명령에 나이켄과 네 마법사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흐흐흐! 이제 궁극의 경지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 건가?'

이미 9서클에 해당하는 몇 개의 마법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이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막대한 흑마력밖에 없다.

마나 파일 마법진(마나 집적진)은 다크니스가 흑마력을 키울때 숱하게 경험했던 마법진으로 그들이 단기간에 고레벨의 마법사가 된 비밀이었고, 해스닝 마법은 마법진으로 발동되는 것인데 제한된 공간의 마나를 극도로 활성화 시키는 마법이다.

그사이 하룬의 입에 물렸던 마왕의 파편은 스르르 녹아 목으로 넘어갔다.

화르륵!

마왕의 파편은 순수한 마기의 정수로 정력력과 접촉하자 급속하게 속성이 정령력으로 변해 갔다. 순식간에 하룬의 몸에서는 신비로운 성질의 정령력이 폭발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잘못하면 하룬의 내부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정령력과 이질적인 마나들이 폭발할 수도 있었다. 리치를 연상하게 만드는 포러스의 주름진 얼굴에는 금세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다섯 마법사는 이전의 마법진을 지우고 다시 각자의 방위와 코어의 자리를 정해 미스릴로 마법진의 문양을 그렸다.

마지막으로 보존 마법이 걸려 있는 주머니에 넣어 둔 상급 마수30마리 분량의 순수한 피를 꺼내 미스릴을 따라 뿌렸다.

"마법 발동!"

하룬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포러스를 향해 아쉬운 시선을 던졌던 나이켄은 수하들과 함께 마법진에 흑마력을 보내기 시작했다.

"스트렝스닝!"

포러스는 하룬의 몸을 대상으로 강화 마법을 펼쳤다. 자신이 의도한 목적이 다 이루어지기 전에 귀중한 그릇이 깨지면 안 된다.

뭉클뭉클.

한 변의 길이가 약 10미터에 달하는 흑마법진이 활성화되자 주변은 삽시간에 어두컴컴해졌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은 차단되었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흑마법진을 향해 음차원의 마나가 대지와 하늘을 포함한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포러스는 흑마법진 안에 진한 음차원의 마나가 가득 차 밀도가 높아지자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자연의 마나가 섞인 상태이긴 하지만 절반 이상은 음차원의 마나, 즉 마기로 여겨도 되는 기운이었다.

실력이 높은 흑마법사들이 직접 참여하기도 했지만 핵이되는 하룬의 신체가 품고 있는 마나의 질과 양이 뛰어나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마나 집적진이라도 단순히 마법진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마나가 몰려들지는 않는다.

"크크크!"

포러스는 낮은 음소(陰笑)를 터트렸다.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겔! 겔! 겔! 역시 좋은 그릇이야!"

정령 검사라기에 기대를 했었다. 마나량도 중요하지만 정령력처럼 순수한 마나를 가진 대상을 오랫동안 찾아왔다.

마나 집적진은 음차원의 마나를 마법진 안으로 끌어 들이는데, 그 양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포러스는 평생의 연구로 마나 집적진의 중심에 위치한 대상이 품고 있는 양차원의 마나량과 그 순수함에 음차원의 마나가 비례적으로 모여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마기의 정수인 마왕의 파편이 정령력을 변했고 거기에 해스닝 마법으로 그 반응을 촉진했으니 당연히 이렇게 가공할 정도의 마나가 모여든 것이다.

포러스는 여태껏 겪어 보지 못했던 엄청난 마나량과 그 순수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면 9서클에 오르는 것은 물론 단숨에 마스터할 수도 있다.'

엘프들이 고르고 골라 정착했었던 이 땅은 엄청난 농도의 자연의 마나를 품고 있는데 흑마법진까지 펼치자 그 향기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농도가 짙어졌다.

어느새 음차원의 마나는 마법진의 중앙에 누워 있는 하룬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흑마법진과 자신의 마력에 의해 모이는 마기의 양은 수십 명을 단번에 강제로 각성시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그 모든 것이 혼절한 하룬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걸레처럼 변한 하룬의 몸은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고있었다.

풍선같이 부풀어 오른 하룬의 몸은 금방이라도 터질것처럼 위태롭게 보였지만 더 이상은 부풀지 않고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더불어 거의 다 드러난 몸의 살결 역시 새까맣게 변했다.

음차원의 마나는 의식을 잃은 하룬의 몸으로 들어와 익숙한 마나 플로의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의지가 관여하지 않았지만 마나 플로의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의지가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나 오션에 자리를 잡은 어둠의 마나가 급격하게 유입되는 이질적인 마나에 자극을 받아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마나 로드를 거쳐 마나 오션으로 돌아온 마나는 어느새 어둠의 마나로 변해 있었다.

포러스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음차원의 마나와 온몸에 퍼진 상태의 정령력은 보다 더 순수하고 강력한 성질에 순응해서 합해진 것이다.

하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마나 플로가 계속해서 운행되고 있었다.

마나 로드를 모두 거치고 잔뜩 덩치를 키워서 돌아온 어둠의 마나로 인해 마나 오션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좁은 마나 오션으로 인해 마나가 이미 꽉꽉 찼지만 의지가 아니면 회전을 통해 밀도를 높일 수 없는 상황인지라 거듭해서 마나 로드를 거쳐 유입되는 어둠의 마나는 너무나 많았다.

마나 오션이 다 채워지자 어둠의 마나는 잠시 갈 곳을 잃고 방황을 하다가 이내 어퍼 오션과 센트럴 오션으로 향했다.

그곳은 아직 공간의 여유가 있긴 했지만 어둠의 마나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고아한 숙녀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기운만을 빨아들였던 것이다.

그래도 워낙 막대한 양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마나 오션은 가득 채워졌다.

더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한 마나가 몸 전체로 흩어지자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은 곳들이 광폭한 성질을 가진 어둠의 마나로 인해 찢기고 터지기 시작한것이다.

내장이 상하고 뼈가 부러졌다. 혈관은 사방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견디다 못해 터져 버리자 곳곳에서 출혈이 일어났다.

어느새 하룬의 오공으로부터 시커먼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닫혀 있던 108개의 마나 스토리지가 문을 열고 어둠의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나 스토리지는 하룬의 의지가 발현되지 않았음에도 마나 로드를 거친 어둠의 마나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던 하룬의 몸이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부풀었던 몸도 다시 수축하기 시작했고 마기에 변색되었던 새까만 살결도 조금씩 엷어지고 있었다.

포러스의 노안이 빛을 발했다. 그는 하룬의 몸이 무의신중에 정령력으로 변한 흑마력과 흑마법진으로 빨아들인 음차원의 마나를 제 것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굉장한 물건이야!'

무려 180년이 넘게 흑마법에 빠져 수많은 인간과 몬스터의 정혈을 흡수했지만 이런 대상물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몸 안에 이만큼의 마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은 단연코 없었다.

소드 마스터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포러스는 확신했다.

포러스는 평생 떠올려 본 적이 거의 없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상황을 주시했다.

십여 분이 흐르자 흑마법진 안으로 들어오는 마기의 유입이 현저하게 줄었다. 마도사 다섯과 자신의 마력으로 활성화한 흑마법진이 빨아들인 마기는 포러스가 예상한 것보다 몇십 배는 더 많았다.

'엘프 놈들이 살았다고 해서 청정한 곳인 줄 알았는데 음차원의 마나가 이렇게 많은 곳일 줄이야!'

이렇게 되면 평생 염원했던 아홉 번째 고리를 생성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9서클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시공간의 이론은 모두 깨우친 상태, 흑마력만 채우면 되는 일이었다.

흑마력 혹은 마기(魔氣)라고 표현하는 마나는 자연 상태보다는 살아 있는 생물체가 받아들인 상태가 더욱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흑마력은 자연의 마나와는 달리 정신과 영혼에 친화성이 강하고 영혼과 융합되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포러스는 하룬의 심장에 두 손을 대고 마지막 주문을 외웠다.

"바이탈러티 석션!(Vitality Suction)"

단순히 마나만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과 정혈까지 모두 흡수하는 사악한 흑마법이 펼쳐지자 그의 두 손이 순식간에 시꺼멓게 변색되었다.

하룬의 몸이 1차 순화시킨 어둠의 마나가 그의 의지대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기가 이렇게 안정되고 순후해질 수도 있는 건가? 카카카!'

강한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마음껏 소리 내어 웃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하지만 포러스는 자신이 흡수하고 있는 마나가 흑마력이 아니라 어둠의 마나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8서클 유저인 자신도 항상 불안정한 마기 때문에 조심을 한다.

마기는 자연의 비해 한 단계 이상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지만 그 흑마력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의지력과 집중이 필요했다.

흑마법사 중 8서클에 오른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마기가 워낙 불안정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기인했다.

떄문에 흑마법사들은 흑마력의 가공을 위해 생명체로 하여금 마기를 흡수하게 한 다음 때를 보아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제대로 가공된 흑마력을 흡수하기 위해 일부러 흑마법을 가르치는 포러스였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어둠의 마나가 포러스의 몸으로 흘러나가자 터질 듯 부풀었던 하룬의 몸은 급속하게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흐흐흐! 된다! 돼!'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하룬의 몸을 통해서 흡수되는 마기는 실로 엄청난 양이라 가늘었던 여덟 번째 고리를 단단하고 굵게 만들고도 모자라 그 외곽에 새로운 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만들어진 고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굵고 단단해져 갔다.

포러스는 구름에 떠 있는 듯 황홀한 감각까지 느꼈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깨우친 시공간에 대한 지식들이 부서졌다가 한데 모이며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태껏 거대합 벽으로 자리했던 의문들이 빠르게 풀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가을 하늘처럼 맑아지며 이미 알고 있었던 이론들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그 흐름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공간을 접어 한 걸음에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는 이론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나와 주문에 의지를 녹여 수천수만 배에 달하는 거대한 힘을 공명을 통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대로 9서클에 오르면 좌표가 없어도 공간 이동이 가능해질 것이고 우주에 떠다니는 유성을 소환할 수도 있을것이다.

단번에 수만 명을 학살할 수 있는 광범위 공격 마법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좋아했던 걸까? 아홉 번째 고리가 굵어지는 가운데서도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으응? 어느 놈이?'

마법진을 구성한 다섯 놈 중 어느 한 놈이 자신의 몸에서 방출되는 마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의 몸이 미처 흡수하지 못해 방출되는 여분의 마기지만 다른 마기와는 달리 순후한 마기인지라 저도 모르게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클! 클!'

자신이라도 이런 순후한 마기라면 욕심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것에 손을 댄 고약한 놈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비록 자신이 흡수하지 못하고 방출한 마기지만 그렇게 새어나간 기운 역시 다시 하룬이 흡수하고 있어 결국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포러스의 의식이 잠시 다른곳으로 향한 사이 하룬의 몸에도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여긴?'

의식의 깊은 곳으로 침잠했던 하룬의 자아가 깨어났다.

몸이 다시 의식의 지배하에 들어간 순간 하룬은 마치 터질것처럼 마나로 팽배한 자신의 상태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이건 뭐지?'

의식을 잃을 때까지의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막 눈을 뜨려는 순간.

'빨려 간다!'

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나가 급속하게 외계로 빨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룬은 금방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완느 다른 점이 있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마나를 자신이 품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마나오션은 물론이고 마나 로드 곳곳에도 엄청난 양의 마나가 순행을 하고 있었다.

'어둠지만 깨끗하다! 그러나 내것은 아니야.'

몸 안을 가득 채운 마나에 대한 하룬의 감상은 포러스와는 달랐다.

하룬이 지니고 있는 마나는 수십 수백 번의 마나 플로를 통해 순수해진 상태지만 지금의 마나는 자신의 의지가 스며든 것이 아니었다.

하룬은 마나에 의지를 부여해서 마나 플로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순수해질수록 자신의 의지에 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지금 마나가 빨려 나가는 것이 오히려 하룬에게는 득이었다. 자신의 의지가 실리지 않은 마나는 독이나 다름없었다.

기존의 마나는 의지를 세운 순간 마나 로드를 운행했다.

몸전체의 마나 포인트를 경유하는 빅 서클의 마나 플로였지만 그속도는 엄청나게 빨라 금방 마나 오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룬은 고속 회전을 통해 절반은 마나 오션에 쌓으며 나머지 절반은 다시 마나 플로에 돌렸다.

마나 로드 곳곳으로 유입되는 마나로 인해 금방 처음의 양만큼 늘어났던 것이다.

하룬은 마나 플로를 운행하는 동시에 마나 오션에 남은 마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켜 밀도를 높였다.

주먹만 했던 마나는 이내 깨알처럼 줄어들었는데 고속 회전을 하면서 원심 분리가 되었는지 그 성질대로 모인 터라 자연스럽게 태극 문양을 형성했다.

마나는 하룬의 의지에 길들어져 차곡차곡 마나 오션에 쌓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잔뜩 부풀었던 하룬의 몸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많던 마나는 절반은 포러스에게 흡수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하룬의 의지를 받아들여 마나 오션에 쌓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청난 흡력(吸力)에 마나 오션의 마나가 출렁거렸다.

포러스의 몸이 그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는것이다. 이미 아홉 번째 고리가 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포러스는 끝없이 마나를 탐하고 있었다.

'으윽! 안 돼!'

하룬은 의지를 칼날처럼 예리하게 세워 마나의 움직임을 잘랐다.

그러자 마치 몸 전체가 진공청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포러스 쪽으로 당겨졌다. 그 가공할 흡력에 마나 오션이 요동을 쳤지만 하룬은 정신을 분산시켜 세 마나 오션을 지켰다.

잠시의 실랑이 끝에 움직인 것은 마나 스토리지에 쌓였던 마나였다. 가공할 정도의 흡력을 견디지 못하고 마나 스토리지가 열렸던 것이다.

하룬이 다급하게 그것을 막으려 했지만 마나 스토리지는 아직 그의 의지대로 관장할 수 없었다.

슈아악!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마나는 엄청난 양이었다. 순식간에 심장과 가까운 부위에 있던 마나 스토리지 하나가 텅비어 버렸다.

'이리 와!'

하룬은 급격하게 활성화된 마나 스토리지의 마나들을 마나 로드 상으로 끌어당겨 운행하기 시작했다.

마치 야생마처럼 길들이지 않은 마나 스토리지의 마나들은 일부는 포러스를 향해 빨려 나갔고 또 일부는 마나 로드로 들어와 마나 플로를 통해 마나 오션으로 향했다.

그렇게 마나 스토리지에 쌓였던 모든 마나들이 사라지자 다시 공백이 찾아왔다.

빨아들이려는 포러스의 의지와 지키려는 하룬의 의지가 팽팽하게 맞섰다.

이번에 겪은 고행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한 하룬의 의지력은 8서클 대마법사인 포러스의 의지력에 당당하게 맞서 자신의 것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제 다 빨아들인 건가?'

포러스의 감각 촉수는 하룬의 몸을 세밀하게 훑으면서 이제 더 이상 빨아들일 것이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벌써 아홉 번째 고리가 굵고 단단하게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 또!'

한 놈이 시작을 하자 나머지 놈들도 마기에 탐욕을 부렸다. 6서클에 달한 마도사들인지라 지금 포러스의 몸에서 방출되는 마기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이놈들을 어떻게 한다?'

자신의 것을 훔쳐 가는 쥐새끼 같은 놈들에게 노화가 치밀었다.

그 노화는 이내 화염처럼 맹렬하게 그의 정신을 불태웠고 마법에 의해 증폭되었던 의지력은 대상을 달리했다.

자신이 흡수해야 할 귀중한 마기를 훔쳐 흡수하는 도둑놈들을 그냥 놔둘 포러스가 아니었다.

'아예 이참에 이놈들의 마기로 9서클을 마스터해야겠다!'

비록 자신이 직접 키운 놈들이지만 스승의 것에 욕심을 내는 놈은 필요가 없다. 다만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징그러운 이방인들은 죽어도 부활을 하는 존재이고 아직 같이해야 할 일이 많으니 가진 마나의 절반만 삼킬 참이었다.

포러스의 입술이 달싹였다.

'바이탈러티 석션!'

5명의 흑마법사의 몸이 태풍을 맞이한 나무처럼 격력하게 흔들렸다.

그들의 몸에서 마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오만상을 찌푸린 그들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카! 카! 카! 된다! 드디어 9서클을 마스터할 정도의 마나가 쌓이고 있어!'

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달싹거려 파동을 일으킨 것으로 5서클의 마법을 발현시킨 것이다.

물론 이미 펼치고 있는 상태에서 대상을 추가한 것이지만 중첩 마법을, 그것도 음파를 통해 마법을 발현시킨 것은 9서클을 마스터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룬이 가공시킨 마기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히 순화된 마기를 빨아먹는 포러스의 얼굴은 진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어쩌면......'

고대 문명기에만 존재했다는 10서클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러스는 전력을 다해 5명 흑마법사의 마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다크니스와 합류하기 이전에도 수십명에 달하는 제자들을 키워 그들의 정혈을 흡수한 전력이 있는 포러스는 이방인 놈들이 축적한 마기를 탐닉했다.

'젠장! 더 버틸 수가 없어!'

하룬은 절망했다. 아무리 애를 썼지만 마나는 조금씩 포러스 쪽으로 흘러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포러스의 몸은 블랙홀처럼 가공할 흡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때 어떻게 했더라?'

하룬은 금방이라도 터질 둑처럼 불안한 마나 오션의 상태를 느끼는 가운데서도 일전에 자신이 흑마법사의 마나를 흡수했을 때를 떠올렸다.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어느새 마나는 큰 줄기가 되어 포러스를 향해 빨려 나가고 있었다.

'문신! 문신이 활성화됐었어!'

하룬의 의식은 이제 터진 둑을 통해 거칠게 빠져나가는 마나를 떠나 전신으로 그 범위를 확장한 문신으로 향했다.

의식이 108개의 포인트를 가진 문신을 한 바퀴 돌았을 때 예기치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룬의 몸이 진공 상태가 된 듯 마나의 흐름이 역류해 버렸던 것이다. 호호탕탕하게 그의 몸을 빠져나가던 마나가 방향을 바꾸어 몸 안으로 다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룬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의식을 나누어 그 마나를 마나 로드 상으로 이끌어 마나 플로를 운행했다.

'헉! 이게 무슨?'

포러스는 기겁을 했다. 다섯 흑마법사들에게 흡수한 마나가 고리로 향하는 대신 하룬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단지 경유지에 불과했는데 갈수록 그속도가 빨라지고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캔슬레이션!'

마법을 취소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흐름은 더 빨라지고 있었다.

'캔슬레이션! 캔슬레이션!'

연속해서 마법을 취소시켰지만 상황은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

하룬의 몸은 마치 블랙홀로 변한 것처럼 다섯 흑마법사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헉 웬 안개가?"

흑마법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뜬 포러스는 흑마법진 주변을 잠식한 암흑과 함께 암흑 속에서 솟아난 붉은 안개를 볼 수 있었다.

"헉!"

포러스는 결국 경악성을 토하고 말았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는 볼 수 있었다. 다섯 흑마법사의 몸에서 검은 마나와 함께 붉은 안개가 흘러나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몸이 마치 미라처럼 변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에센스! 붉은 안개는 저들의 에센스야!'

비록 자신이 펼친 마법이 상대의 정혈을 흡수하는 마법이긴 하지만 말이 그렇지 단지 마나를 흡수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붉은 안개는 달랐다. 그 어느 마법으로도 빼내거나 정제할 수 없는 생명체의 정혈이 가장 순수한 상태로 변한것이 바로 붉은 안개였다.

어느새 다섯 흑마법사의 몸은 바람 빠진 공처럼 서서히 쭈그러들기 시작했다.

마나는 물론이고 그육신과 영혼을 구성하는 가장 순수한 기운인 정혈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정혈이 기체화된 것은 포러스도 처음 봤지만 이론상으로는 그 상태가 가장 순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붉은 안개는 자신을 지나 하룬의 몸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놈이 에센스를 빨아들이고 있어!'

포러스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하룬의 가슴에 붙인 두손바닥을 떼려고 했다. 자칫하다가는 막 9서클에 오른 자신의 정혈까지 빨릴 수 있었다.

'헉! 안돼!'

이제 흑마법사들의 마나와 정혈이 모두 빨아들였는지 하룬의 가슴의 붙은 손바닥을 통해 자신의 마나가 흘러 나가기 시작했다.

"바이탈러티 석션!"

서둘러 마법을 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순식간에 아홉 번째 고리를 형성했던 마나가 풀려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기세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의지를 끌어 올려 빨려 나가는 마나를 막으려는 포러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호호탕탕!

방죽(반죽아닌가?)이 터진 것처럼 마나는 빠른 속도로 하룬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 속도는 자신이 흡수했을 때와 비교해서 몇 배는 더 빨랐고 양도 엄청났다.

놈의 마나 로드는 소드 마스터의 그것처럼 넓고 잘 뚫려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가 안간힘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일곱 번째 마나 고리까지 풀려 나가기 시작했다.

실타래의 실이 풀려 나가듯 평생 동안 축적했던 마나가 먹잇감에 불과했던 놈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가지 고급 마법을 펼쳐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모든 마나와 정혈을 상대에게 흡수당하고 저 멍청한 놈들처럼 미라가 되고 말 것이다.

아니, 미라가 아니다. 뼈까지 가루로 변했으니 완전히 소멸할것이다.

포러스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 어차피 할 생각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보다 정신력이 강하지는 않겠지.'

기껏해야 서른 줄에 달하는 외모나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는 정보를 감안하면 정신력만큼은 평생 흑마법을 수련해 온 자신보다 높을 리가 없다.

'차라리 잘됐다. 나도 펼쳐 본 적이 없어 불안하기는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흑마법에는 상대의 정신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가지 마법이 있다.

그중 소울 세이저는  상대의 영혼을 장악하는 정신계 마법으로 잘못하면 자신의 영혼이 도리어 먹힐 수도 있지만 노쇠해진 자신의 육신을 버리고 새 육체에 영혼을 옮기는것이다.

전설로 내려오는 고대 시대의 '영혼 치환' 마법보다는 떨어지만 '영혼 장악' 마법은 이번에 다크니스와 연수를 하면서 얻은 라 제국의 고대 마법서에 실려 있었다.

포러스는 복잡한 수인을 맺으며 자신의 마나를 폭주시켜 공명을 일으켰다.

"소울 세이저!(영혼장악)"

포러스의 이마 한가운데가 쩍 벌어지며 검은 정신체가 꼬리를 달고 빠져나왔다. 신기한 듯 외계를 한 바퀴 돈 정신체는 하룬의 이마 속으로 파고들었다.

마치 난자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는 정자처럼 꼬리가 몇 번 흔들리더니 마침내 거짓말처럼 하룬의 이마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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