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아카 성 (207/278)

 <아카 성>

 티노는 용병대를 이끌고 사흘을 이동한 끝에 아카족들과 약속한 산 아래에 도착했다. 산과 산 사이에 형성된 넓은 분지에는 수령이 오래된 벤트라 나무숲이 있었는데 무성한 잎으로 인해 시야를 가릴 수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군요."

 "그러게 말이오."

 티노와 타니엘라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 부르카족의 수호조인 에센이 저 먼 곳에서부터 날아와 조련사인 파미르의 어깨 위로 날아내렸다.

 곧 파미르가 에센의 발에 매인 천을 풀어 가지고 뛰어왔다. 부조장인 치첸이 천을 풀어 내용을 보고했다.

 "탄툰 마을에서 출발한 전사들은 내일이면 도착한답니다."

 보고를 들은 티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총 3,000명이 넘는 전사들이 모일 것이다. 그걸 감안해서 각 조는 미리 숙영할 자리를 만들어라."

 각 부조장들이 조원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드문드문 서 있는 벤트라 나무는 무성한 가지와 잎에 비해 그 줄기는 비교적 가늘어서 야생에서 생활하는 데 능숙한 산악 부족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수영할 수 있었지만 할 일은 많았다.

 독초를 제거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마수들이나 맹수들 그리고 독충들을 잡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모든 조원들이 산악 부족 출신이니 이런 일에는 아주 익숙했다.

 "두 고문님들은 제자들과 함께 숲은 관통하는 계곡수의 수질을 좀 살펴 주십시오."

 "알겠네."

 타니엘라와 미루스는 다쿠를 위시한 주술사들을 이끌고 계곡을 살피러 갔다. 별다른 위험은 없어 보였지만 계곡수의 수질이 음용하기 적당한지 혹은 근처에 위험은 없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당신은 식사 준비를 좀 해 줘."

 도네으스는 이럴 것을 대비해서 5명의 여자 대원들을 보내지 않고 있었기에 당장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곳은 딜런 경이 좀 지켜 주십시오. 전 근처를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그러시게."

 딜런이 자리를 잡고 앉아 기감을 끌어 올리는 것을 확인한 티노는 메신저 스킬을 펼쳐 예정한 공격 목표를 살피러 산을올랐다.

 한 번 바닥을 박찰 때마다 산 위를 향해 쭉쭉 올라간 티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패스트 스킬은 몸을 앞으로 상당히 굽힌 상태에서 펼치는 것이라 산을 오를 때는 그 효과가 뛰어났다. 자세 자체가 안정되니 뛰어난 동체 시력을 이용해서 장애물을 피할 수 있으면 빠르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흐음!"

 그의 시야에는 장방형의 큰 분지가 들어왔다. 꽤 넓은 분지의 중앙에는 거대한 성태가 있었고 그 중앙에는 지구라트라고 불리는 다크니스 특유의 건물이 솟아 있었다.

 성의 외곽을 끼고 흐르는 수량이 꽤 많은 개울과 평탄한 지형을 보니 잘만 하면 이 분지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차지해야겠구나.'

 마수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산악 부족들이 저 성에 자리를 잡고 방어 시설만 제대로 갖춘다면 훌륭한 근거지가 될 것이다. 나머지 두 성의 입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반드시 공략해야 할 곳이다.

 성안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대개 흑전사로 보였지만 간간이 제대로 된 갑주를 걸친 흑기사들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정찰한 결과 성안에 머무르는 인원은 대충 1,500명에서 2,500명 사이로 추정했다. 낮이라서 그런지 마법사 특유의 검은색 로브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돌풍 용병대와 합류한 산악 부족은 아카족과 부르카족 그리고 에인족이었다. 이미 돌풍 용병대원이 된 전사들을 통해 이번 작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무려 3,000명에 가까운 대규모의 인원이었기에 돌풍 용병대원들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도 미리 각 부족이 숙영할 장소를 지정해 놓았고 식량을 비롯한 준비를 갖춘 터라 대규모의 인원이 모였음에도 큰 소란은 없었다. 모두 이곳에 모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것이다.

 모두 합류한 날 저녁에 임시 수뇌부 회의가 열렸다. 각부족의 칸들과 탄들 그리고 원로들이 모두 참석하니 40명이 넘는 인원이었다. 많은 인원이긴 하지만 인접한 지역에거주하는 관계로 대부분 안면이 있어 자리는 전혀 어색하지않았다.

 모일 사람이 모두 온 것을 확인한 티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부나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주의를 자신에게돌렸다.

 "여기까지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습니다. 돌풍 용병대 부대장 티노라고 합니다."

 티노의 인사에 모두 목례를 보내 반가움을 표시했다. 대장인 하룬이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는 다들 알고 계신 것처럼 산 너머의 분지에있는 다크니스의 성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이미 부르카족의 수호조인 에센을 통해 그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뜨거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미리 에센을 통해 알려 드린 대로 다크니스 무리는 사악한 흑마법사들과 흑기사들로 마수를 길들여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음모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에 이 산맥과 인접한 세 제국과 마탑 그리고 신전에서는 이들이 쌓은 성을 차지할 이들에게는 자치권과 조세권 등 많은 권리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티노가 말하는 것은 이미 이곳에 모인 이들이 아는 사실이었다. 에센과 해당 부족 출신 대원들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건이기에 이곳에 온 것이다.

 "먼저 도착한 분들은 이미 산에 올라가셔서 분지 상황을 확인하셨겠지만 저들이 쌓은 성은 5,000명에서 10,000명이 머물 수 있는 크기로, 성 밖 초지는 풍부한 수량의 물길이 흐르고 있어 산과 접한 곳에 외석 벽을 높이 두르고 오감을 가리는 결계를 친다면 세 부족이 능히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더구려. 우리 세 부족이 능히 몇 십 년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더이다."

 티노의 말에 탄툰 마을의 탄이 대표로 대답했다.

 "생각 같아서는 인접한 세 성을 모두 공략해서 각 부족들이 거주하면 좋겠지만 일단 이곳은 그 입지상 먼저 차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우리는 큰 욕심은 없소이다. 그저 부족민들이 굶주리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으면 됩니다."

 목책을 두른 것에 불과한 카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이다. 거기에 마수들과 몬스터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지만 외성을 쌓고 결계를 치면 세 부족은 한동안 굶주리지 않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세 부족을 이끌고 있는 탄과 칸 들이 바라는 것은 식량과 안전한 주거지였다.

 "먼저 의논할 것이 있습니다."

 미리 약속이 된 대로 탄툰 마을의 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버그린에 은거하고 있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이쪽으로 출발했답니다. 우리 측으로서는 엄청난 원군인데 그분들이 합류한 후에 공격을 할지 아니면 내일이라도 당장 공격을 할지부터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에센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고 삼삼오오 모여 그것에 대해 의논을 한 바가 있었다.

 "아무래도 전사들의 희생을 줄이자면 그들이 도착하고 나서 성을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부르카족의 원로 1명이 의견을 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러려먼 아직도 열흘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전사들의 사기도 높고 지금 모인 전력도 성을 도모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면 당장 공격하는 것이 나을것 같습니다.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합류하면 다른 두 개의 성을 연달아 공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에인족의 탄이 다른 의견을 냈다.

 다른 의견이 나오질 않아 한동안 두 가지 의견을 두고 토론을 하다가 결국 다수결로 결정하기로 했다. 결과는 압도적으로 당장 공격을 하자는 것이었다. 대대로 마수를 사냥하며 살아온 호전적인 산악 부족의 성향이 안전보다는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성을 공략할 방도를 본격적으로 의논해 보기로 하지요. 먼저 앞서 이루어진 공성전의 작전과 상황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티노는 코엠 길드와 함께한 공성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하룬과 버처리비크가 빠지긴 했지만 그때와 비슷하게 공략을 하면 될 것이다.

 티노가 자리를 마련하자 본격적으로 난상 토론이 시작되었다. 이런 대규모 공성전을 해 본 경험을 없지만 대대로 마수 사냥을 해 왔던 이들이라 다양한 방안들이 나왔고 밤이 깊어지면서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미명이 퍼지는 새벽녘.

 "쿠라타 아끄텟 마타구라……."

 전사 수십 명의 호위를 받으며 칸들은 어둠과 함께 음침하고 진득한 불쾌해지는 기운으로 가득찬 분지의 외곽에 자리를 잡고 약속된 시간에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칸의 수제자들은 옆에 자리를 잡고 마수의 뼈와 가죽으로 만든 타악기를 운율에 맞추어 쳤다.

 어둠 속에 가려 있었던 분지는 햇빛 대신 서서히 안개에 잠식되기 시작했고 뭔가 불안한 것을 감지한 듯 밤새 성 밖을 어슬렁거리던 테보크들이 위로 솟은 귀를 움직이며 으르렁거렸다. 테보크는 개처럼 생긴 외모지만 크기가 송아지만 한 데다가 강력한 턱과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발톱을 가진 놈들로 주로 평탄한 곳에 영역을 가지고 있는 마수들이었다.

 칸들의 주문이 악기의 연주와 함께 지속되자 어느 순간부터 마수들의 눈꺼풀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그 움직임이 현저히 둔화되기 시작했다. 수면 작용을 하는 주문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안개에 휩싸인 성안의 풍경도 비슷했다. 성벽에 있는 경계병들은 어느새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분지 외곽의 마수들이 혼곤한 잠에 빠지자 타니엘라와 미루스는 마법진의 코어를 찾기 시작했다. 흑마법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이미 하룬으로부터 받은 마법서를 통해 파악한 두 마법사는 마나 디텍트를 펼쳐 비정상적으로 마나가 뭉쳐 있는 곳을 파악하고 그중 핵이 되는 코어의 위치를 찾았다.

 두 사람이 위치를 지적하고 지나가면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빠르게 그 자리를 팠고 그 아래에서는 여지없이 마나석들이 나왔다. 타니엘라와 미루스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분지를 채우고 있던 음침한 기운을 사라져 갔다.

 다섯 개의 코어 중 세 개를 제거하자 어느새 분지의 상공위에 머물고 있던 검은 기운은 안개 속에서도 새벽하늘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옅어졌고 준비를 했던 에인족 전사 수백명은 자세를 낮추고 분지 안으로 들어갔다.

 에인족 전사들의 손에는 모두 긴 대롱이 쥐어져 있었는데. 예민한 오감을 가진 마수들이 혼몽에 빠져 있다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기척을 발견하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그 대롱이 전사들의 입에 물려 있었다.

 슉! 슉! 슉!

 주술의 힘은 마법처럼 강하지 않아 선잠이 들었던 마수들은 전사들이 가까워지자 그 기척을 알아채고는 깨어났지만 그때는 이미 강력한 독침이 놈들의 몸통에 박혀 들었다. 워낙 강력한 내독성을 가진 녀석들이라 강력한 독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마비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전사들에게는 충분했다.

 푸르르.

 마수들의 몸이 마비되자 에인족 전사들은 지니고 있던 단창으로 놈들의 목과 심장을 깊이 찔러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마수들의 생명력은 굉장히 끈질겨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동료에게 피해를 줄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마수들의 숨통을 끊으며 에인족 전사들이 성과 가까워지고 있을 때 급조한 사다리를 든 다른 전사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많은 전사들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개는 그들의 모습을 숨겨 주었고 마수 사냥에 이골이 난 전사들의 움직임은 작은 소음도 내지 않았다.

 마침내 마법진이 완전히 파괴되고 3,000명에 이르는 전사들이 성에 접근했을 때 성안에서는 요란한 종소리가 울리기시작했다.

 떙! 땡! 땡!

 "침입자다! 침입자다!"

 성 주변에 깔아 놓은 알람 마법이 발동했는데, 안개 때문에 앞서 가던 에인족 전사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잠에 빠졌던 경계병들은 물론이고 성내에 있던 무리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고요하던 분지가 떠들썩해졌다.

 이때 성 위쪽에 강한 폭발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터졌다. 어느새 흑마법진을 모두 제거한 미루스와 타니엘라가 날린 매직 미사일 두 개가 공중에서 충돌한 것이다.

 "각자 지정한 장소를 향해 화살을 날려라!"

 도네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부르카족 전사들은 일제히 자신이 맡은 성벽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적의 경계병과는 달리 부르카족 전사들은 안개 속을 어느 정도 뚫어볼 수 있도록 샤키의 눈을 활성화한 상태였다.

 슉! 슉! 슉!

 성의 사방에서 날아든 화살은 앞이 보이지 않아 공황 상태에 빠진 경계병들의 숨통을 여지없이 끊어 놓았다. 성벽의 경계병들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그 뒤에 대기하고 잇던 아카족 전사들이 급조한 사다리를 들고 성을 향해 뛰었다.

 부르카족 전사들은 이번에는 더 높이 활을 들어 올렸다. 역시 미리 지정한 장소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것이다. 아마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혼란에 빠진 다크니스의 무리들은 난데없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에 당황할 것이다.

 "인위적인 안개다! 빨리 걷어 내!"

 이곳저곳에서 마법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꽤 높은 경지의 흑마법사들이 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윈드 계열의 마법이 발현되며 안개들이 속속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미 산악 부족들이 사다리를 통해 성벽으로 오른 후였다.

 다시 샤키의 눈을 활성화한 부르카족 전사들은 마법으로 인해 드러난 성안의 마법사들과 흑기사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실드!"

 "다크 실드!"

 마법사들은 실드를 펼쳐 화살을 피했고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흑기사들은 무기에 마나들 주입해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냈지만 흑전사들은 화살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뛰쳐나왔던 건물 안으로 다시 도망치려고 했지만 1,000여 명에 달하는 부르카족 전사들의 화살은 각기 할당된 구력의 흑전사들의 목숨을 끊어 버렸다.

 그사이 100명의 부르카족 전사들은 10명이 한 조가 되어 철시로 목표를 정해 강탄성궁으로 철시를 날렸다. 비로 마나가 주입되지 않은 상태지만 그들 중에서도 궁술이 뛰어나 선방이 된 전사들이 강탄성궁으로 발사하는 철시들은 실드를 깨뜨리고 흑마법사들을 하나씩 죽여 갔다.

 도네이스가 날리는 철시는 마나로 인해 빛을 발하며 날아가 실드를 뚫고 흑마법사의 가슴과 머리에 박혀 들었다.

 "이놈들!"

 날아오는 화살을 무기로 부러뜨리던 흑기사들이 일제히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일부 화살이 그들의 몸을 맞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이 착용한 검은 플레이트는 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자!"

 누구의 외침과 함께 에인족 전사들과 아카족 전사들이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마나를 사용하는 흑기사들을 상대로 성벽에 의존하여 싸우는 것은 큰 이점이 되지 못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에 서두른 것이다.

 카앙! 캉!

 비록 오러가 깃든 검이나 검기를 발현시켰다고 하더라고 전력으로 부딪히지 않는 이상 상대의 무기를 베거나 부러뜨릴 수는 없었다. 아카족 전사들은 흑기사들의 빛나는 검을 정직하게 상대하는 대신 살짝 빗기거나 회피했고 검이나 도보다 긴 창이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수천 년간 마수들을 상대하면서 익혀 온 합격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익! 이 비겁한 놈들!"

 흑기사들은 마음 같아서는 상대의 무기와 몸통을 한 번에 베고 싶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마수의 힘을 사용하는 전사들의 움직임과 무기에 실린 힘이 만만치가 않았고 긴창들이 빈틈을 노리자 마음껏 검은 휘두를 수 없었던 것이다.

 "커억!"

 막 상대의 검을 부러뜨리고 머리통을 가르려는 순간 창 두자루가 옆구리와 허벅지에 깊이 박혔다.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주의가 분산된 결과는 실로 컸다. 방어구의 뛰어난 방호력에도 불구하고 창에 실린 힘이 엄청나서 그대로 뚫려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는 그만 가랏!"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와 날카로운 파공성이 함께 들려와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지만 옆구리와 허벅지에 박힌 창 때문에 주춤하는 사이 흑기사의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다른 조들을 돕자!"

 돌풍 용병대원들과는 달리 마수의 힘을 사용하는 시간에 제한을 받는 전사들은 그 힘이 다하기 전에 적을 하나라도 더 상대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어느 정도 안개가 걷힌 성안의 풍경은 끔찍했다. 수많은 흑전사들이 화살에 꼬치처럼 꿰여 죽어 있었고 흑마법사들 상당수도 철시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죽엇던 것이다. 흑기사들만이 맹령하기 움직이고 있었지만 협공을 하는 전사들과 함께 한 무더리고 변해 있었다.

 그 때문에 살아남은 흑마법사들은 함부로 마법을 날릴 수가 없었다. 대신 그들은 죽은 흑전사들을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숫자가 부족하다! 죽은 자들을 좀비로 만들어라!"

 누군가의 명령에 살아남은 흑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자 죽은 자들이 좀비가 되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수는 죽은 자들의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방인들은 시체를 남기지 않고 빛 모래로 변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좀비가 되어 버린 흑전사들이 하나둘 늘어나 산악부족 전사들을 상대하자 전황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좀비는 팔다리가 잘려도 계속해서 움직이며 전사들을 괴롭혔던 것이다. 시간이 없는 상태라 제대로 제련이 된 상태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들의 손톱과 이빨에 의해 새롭게 좀비가 될 전사들이 수두룩했다.

 주술로 분지에 짙은 안개가 감싸게 만들었던 칸들이 성벽을 올라와 자리를 잡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악기에 맞추어 울려 퍼지는 주술은 낮으면서도 묘한 힘을 전사들에게 전했다. 용기와 사기를 높이며 신체 능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전사의 주술이 바로 그것이었다.

 마수의 힘을 소진한 각 부족의 전사들은 주술을 통해 다시 잠재력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타니엘라와 미루스는 부르카족 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성안을 매섭게 관찰했다.

 "저기요, 사형!"

 마루스가 가리키는 곳에는 수십 명의 흑마법사들이 흑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연방 좀비를 만드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중에는 꽤 높은 경지의 흑마법사들이 셋이나 끼어 있었다.

 "플레임 밤!"

 "기가 선더 스피어!"

 두 사람의 전면에 거대한 불덩어리와 벼락 창이 생기더니 목표한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다크 실드!"

 "블링크!"

 경지가 높은 마법사들은 거대한 마나의 유동을 감지하고 화들짝 놀라 실드를 치거나 블링크로 자리를 피했지만 대부분의 흑기사들과 저서클의 마법사들은 화염 폭탄과 벼락 창에 직격당했다.

 꽈앙!

 화르르.

 지지지직!

 "크아악!"

 화염덩어리는 폭발과 함께 순식간에 10미터가 넘게 확장되었고 시퍼런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목표로 한 장소에 모여 있던 마법사 중 목숨을 건진 것은 겨우 다섯이었고 흑기사들은 둘밖에 남지 않았다.

 "으드득! 마도사들이라니."

 살아남은 흑마법사가 이를 갈았다. 이런 쓸모없는 곳에 마도사 급의 마법사가 출현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것이다.

 "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흑마법진은 이미 깨졌습니다."

 "저들 짓이겠군. 살려 둘 수 없는 놈들이야!"

 세 흑마법사는 타니엘라와 미루스에게 강렬한 살의殺意를 느꼈다. 그 살의는 단기간에 받아들인 마기를 활성화시켰고 세 흑마법사는 곧 이성을 잃어버렸다.

 "다크 핸드!"

 "다크 클라우드 킬!"

 "블랙 포이즌 레인!"

 흑마법사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같은 편의 생사를 도외시하는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피햇!"

 "실드!"

 눈이 뒤집혀 마법을 난사하는 흑마법사들 때문에 삽시간에 성안은 난장판이 되고 마랑ㅆ다. 거대한 손은 걸리는 것마다 강력한 힘으로 부숴 버렸고 독액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비처럼 내렸다.

 "마법사들이 폭주했다!"

 "그렇게 평정을 잃지 말라고 했건만."

 흑기사들은 동료인 흑마법사들이 어떤 상태인지 금방 알수 있었다. 속성으로 경지를 올린 부작용은 자신들도 두려워 하는 것이었다.

 "물러나랏!"

 누군가의 벼락같은 외침에 흑기사들이 슬금슬금 지구라트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악 부족 전사들은 피하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

 "죽어랏!"

 죽기라도 하면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쌓았던 C.P로 인해 본신의 능력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모두 떨어뜨려야 하는 흑기사들은 어떻게든 마법을 피하려고 하는 반면 주술로 인해 버서커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투기가 끓어오른 전사들은 놈들을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크윽! 이 버러지 같은 놈들에게 내가 당하다니."

 창과 검에 몸이 꿰뚫린 흑기사들의 입으로 붉고 뜨거운 피가 토해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실력을 가진 상대 열이 아니라 스물도 가볍게 상대했을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을 가진 기사는 자기 편이 펼친 마법 때문에 주의력이 흐트러진 사이에 전사들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와중에 딜런은 성주로 짐작되는 흑마법사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지나온 길은 놈을 호위하고 있던 수십 명이 넘는 흑기사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모두 익스퍼트 급의 기사들이었지만 번개 같은 움직임과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은 당할 수가 없었다.

 "매직 미사일!"

 무려 서른 개가 넘는 매직 미사일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것은 보았지만 딜런의 표정은 무심했다.

 파앗! 파바밧!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러 매직 미사일 공격을 해소시킨 딜런의 검에서 서서히 오러 블레이드가 사라졌다. 그걸 본 상대 마법사의 눈에 희열의 빛이 솟아났다.

 "웬 놈들이냐?"

 겨우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5서클의 마법을 연속해서 날린 흑마법사는 여전히 검첨을 자신을 향해 내밀고 있는 딜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물었다.

 "알면 뭐 할 거냐?"

 "하긴! 다 죽이면 그만이니까."

 비릿한 웃음과 함께 메모라이징 한 마법을 영창하는 흑마법사의 눈빛은 조금 전과는 달리 안정을 찾고 있엇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무척이나 불안한 상황이었다. 상대는 소드 마스터였다. 벌써 여섯 번이나 마법 공격을 해 봤지만 상대는 오러 블레이드로 그 모든 것을 막거나 파괴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마나가 고갈되었으니 이젠 어쩔수 없을걸.'

 이런 기회를 노리고 성의 최고위급 기사들로 하여금 소드 마스터를 상대하게 한 것이다. 상대는 이제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 없지만 자신은 두 번은 더 5서클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파이어 랜……."

 주문을 외우던 자의 눈이 퉁방울처럼 커졌다. 너무 놀라 주문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딜런의 검첨에서 작은 구슬이 만들어지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이마를 향해 발출되었던 것이다.

 '검……환?'

 생기가 사라지는 그의 눈은 믿지 못하겠다는 감정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왜 이런 강자가 거칠고 짐승 같은 원주민들과 함께 이곳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은 생기가 사라진 얼굴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직 검환의 경지를 능숙하게 펼칠 수준은 아니지만 빠른시간 내에 상대를 처리하기 위해 무리를 했던 딜런은 창백한 얼굴로 잠시 휘청거렸지만 이내 자세를 굳건히 하고 다음 상대를 찾았다. 자신은 타니엘라나 미루스와는 달리 근접 전투에 있어서는 이번 공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지구라트의 꼭대기로 10명에 달하는 흑기사들이 철통같이 호위를 하는 가운데 12명의 흑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곳이었다. 흑마법사들의 마법은 이제 거의 정리가 되어 가는 장내의 전투를 더 길게 끌고 있었다.

 '뭔가 있어!'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장이 저 첨탑은 반드시 파괴하라고 했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딜런은 하룬의 판단을 믿었다.

 지구라트 꼭대기에 있는 첨탑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접시와 같은 구조물이 마법사들의 마나에 공명하여 그 크기를 키우며 첨탑 전체에 푸른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위험해!'

 딜런은 뭔가 큰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식했다. 머리칼이 곤두서는 걸 보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발생할 것 같았다. 저들의 의도하는 일이니 자신들 쪽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어떻게든 저지를 해야만 했다.

 타니엘라 쪽을 보자 이제 힘이 다한 듯 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힘겹게 앉아 마지막 힘을 쥐어짜 주문을 외우는 것이보였다. 상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상태로 보아 마법이 제대로 발현될지 의문이었다. 그나마 도네이스가 아직 힘이 남았는지 철시를 간간이 날릴 뿐 제대로 놈들을 상대할 전력은 없어 보였다.

 성안 곳곳에는 아직도 많은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놈들 때문에 거의 완전히 넘어온 승기가 뒤집히려고 햇다. 벌써 수십 명이 넘는 전사들이 지구라트를 오르던 도중에 마법 공격에 제대로 된 사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터였다. 수십 발의 검은색 매직 미사일에 직격당한 전사들은 비명과 함께 뼈와 살점이 뭉그러져 죽고 말았다.

 딜런은 텅 빈 마나 오션으로부터 마나를 쥐어짰다. 하룬과는 달리 처음부터 마나 오션을 생성한 것이 아닌 터라 채 뚫지 못한 그의 미세 마나 로드 곳곳에는 마나들이 남아 있었다. 그 마나들은 그의 의지를 따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거쳐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고 있었다.

 딜런은 2미터에 달하는 푸른 오러 블레이드에 의지를 주입한 상태에서 검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오러 블레이드는 검을 떠나 형상을 휴지한 채 적들이 모인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제까지 한 번도 성공시킨 적이 없는 플라잉 오러 블레이드(탄강)이었다.

 꽈앙!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강력한 굉음이 들려왔다.

 '성공……인가?'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변하더니 시야가 깜깜해졌다.

 바닥으로 고꾸라진 그의 주변으로 엄청난 파편과 함께 먼지구름이 일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무려 스물이 넘는 흑기사들과 흑마법사들이 오러 블레이드의 폭발에 따른 파편의 비산으로 인해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죽어 버렸지만 그의 눈은 이미 감겨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타니엘라와 미루스가 마지막 힘을 다하여 이상한 징후를 드러내는 지구라트의 첨탑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파이어 랜스!"

 "기가 선더!"

 꽈아앙! 꽈꽝!

 폭음과 함께 푸른빛을 토해 내던 지구라트의 첨탑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 파편은 딜런의 플라잉 오러 블레이드 공격에 간신히 살아남은 다크니스의 잔당들의 숨통을 끊어 버렸다.

 "와아아!"

 "이겼다!"

 아직도 성안 곳곳에는 반항하는 무리들이 있기는 하지만 성 중앙에 위치한 지구라트에 있던 자들은 모두 해치웠다. 얼핏 봐도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대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이 남은 전사들은 아직도 전투가 끝나지 않은 곳으로 몰려갔다.

 이제 이곳은 세 산악 부족의 새로운 주거지로 변할 것이다. 성을 지킬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 하룬은 두 마법사에게 싸가지가 정화시킨 순정석을 대거 남기고 갔다. 이제 시간만 흐른다면 산악 부족들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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