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의 눈을 찾아서>
하룬은 그날 밤 수뇌부 회의를 소집했다.
부대장인 티노와 딜런을 포함한 세 고문, 참모인 헤니와 8명의 조장과 부조장들이 모두 모였다.
"어느 성부터 공격할 생각입니까, 대장?"
성급하게 물어 오는 미루스였지만 모두들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자리가 세 부족과 힘을 합쳐 성을 공격하는 방안을 세우기 위해 소집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은 아카족의 데튠 마을 인근에 있는 성부터 공격할생각입니다. 지도를 봐 주십시오."
하룬은 이미 헤니가 구상해 놓은 작전의 개요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조장들의 말에 의하면 아카족이 동원할 수 있는 전사가 3,000명 남짓이고 부르카족과 에인족의 전사들이 각기 2,500명 정도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합류할 수 있는 전사의 수가 늘어나겠지만 그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이니 일단 일정 인원이 되면 작전을 시행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 성에 있던 수비 병력이 총 5,000명 정도였던 것을 보면 전력이 너무 달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장."
미루스는 물론이고 다른 대원들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아무리 마수의 힘을 사용하는 산악 부족들이라지만 성을 공격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숫자가 너무 부족했다. 특히나 마법사 전력이 부족했다. 타니엘라와 미루스를 따라 용병이 된 이들의 숫자는 겨우 30명이 조금 넘었고 그중 가장 경지가 높은 셀로임은 4서클의 불과한 상황이다.
"그래서 전 이렇게 해 볼 생각입니다."
하룬은 헤니로부터 작전을 보고받으며 생각했던 바를 꺼냈다.
"각 부족의 전사들이 따로 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합류하여 한 성씩 공격하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지름길을 잘 아는 에인족 전사들이 있고 원활환 통신이 가능한 에센이 있습니다."
"흠! 그렇게 되면 우리 측 전사의 숫자가 8,000명 수준이되는군요. 그 정도라면 가능하겠는데요. 다만 걱정스러운것은 흑마법진입니다. 분명히 성 주변으로 펼쳐져 있을 흑마법진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 숫자로도 힘들 겁니다."
타니엘라의 말에 대원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흑마법진은 다크니스의 전력을 두 배 가까이 올려 주는 대신 자신들의 전력은 절반 가까이 줄여 놓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서도 방안이 있습니다."
하룬의 말에 대원들의 눈빛이 강해졌다.
"흐흐! 흑마법진만 제대로 해제할 수 있다면 성을 공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본래 민첩했던 동작을 자랑하던 에인족 대원들은 이미 람비의 발 문신을 통해 그 힘을 쓰던 와중에 하룬과 티노가 전수한 메신저 무빙을 익혀 지금은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 되었다. 그들이라면 정찰과 암살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것이다.
또한 원래부터 활 솜씨가 뛰어난 부르카족 대원들은 수련검식을 통해 마나 오션을 생성했고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도네이스와 마리로부터 집중적인 지도를 받아 상당수가 마나 궁술에 입문했다.
딜런과 티노로부터 집중적으로 지도받는 아카족 대원들 역시 전원이 마나 오션을 만들었고 지금은 마나 로드를 뚫고 확장시키는 단계에 올랐다. 경쟁심에 실전과 같은 대련이 더해져 기존과 신입의 차이를 날이 갈수록 좁히고 있는 상황이다.
"마법사 전력이 부족하긴 하지만 탄툰 마을의 라티카 칸처럼 실력 있는 주술사들이 합류하면 그 공백을 충분히 채울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전력에서 부족한 것은 없을 겁니다."
에센을 통해 전해 온 소식에는 탄툰 마을로 벌써 열 개 마을의 아카족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다른 부족들의 경우도 비슷했다. 안전을 위해서 마수들의 공격을 피해 거점 마을로 모여드는 상황이니 갈수록 그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그 덕분에 탄툰 마을은 식량과 거주지 부족 등의 문제가 발생하여 안전하고 넓은 주거지를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고 그 와중에 하룬의 제안이 도착하자 만장일치로 통과시킨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히 해 볼 만합니다."
"희생은 피할 수 없겠지만 새로운 주거지를 마련하는 일이니 다들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참에 주술의 위력을 볼 수 있겠군."
대원들은 이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일은 데빌 산맥에 우리 돌풍 용병대의 기반을 쌓는 것이기에 무척 중요합니다. 모두 최선을 다해 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 일만 잘되면 우리 용병대는 실력있는 대원 수급은 물론 마수 가죽과 희귀한 약초를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돌풍 용병대가 용병단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기회인데 누가 최선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하룬의 말에 타니엘라가 대원들을 대표해서 자신감과 각오를 피력했다. 하룬은 그 모습에 만족한 얼굴로 웃다가 정색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한 부탁을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부탁이라니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알아차린 티노가 물었다.
"아무래도 전 이 공성전에 참가할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네에?"
대원들의 눈에 강한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사실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하룬은 엘프인 에리피안에게 들은 마왕의 눈에 얽힌 이야기를 대원들에게 해 주었다. 하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 갔다. 의뢰를 통해 알게 된 사실과 함께 뭔가 구체적인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 다크니스가 마계를 다시 열기 위해 인세의 보물인 신성석과 차원석 그리고 마왕의 눈을 탈취하려고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놈들의 광역 흑마법진의 코어가 되는 성을 장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왕의 눈이 그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대장님 혼자만의 힘으로 어떻게 그들을 상대하시려고요?"
"복안이 있습니다. 산악 부족들은 그들이 오래전에 살던 땅으로 언젠가 돌아가기 위해서 대대로 실력이 뛰어난 전사들과 주술사들은 한곳에 모아 선대의 기예를 후대에 전승하고 있더군요. 그들은 그런 전사를 대전사라고 부르고 주술사들은 포머칸이라고 부르는데 에버그린이라는 땅 주변에 각 부족별로 거주하고 있답니다. 마침 마왕의 눈이 숨겨진 벨제라트 화산 지대로 가는 도중에 그곳이 있으니 그들의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생각은 좋은데 그들이 엘프나 대장을 위해 나서 주겠습니까?"
"나설 겁니다. 모든 부족은 힘들더라고 우리 대원들의 출신 부족인 아카족과 부르카족 그리고 에인족의 경우는 탄과 칸이 에센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 주기로 했습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은 조금 풀어졌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중 딜런이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무위는요?"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아카족의 경우는 2대에 걸친 대전사가 약 50명 정도이고 다른 부족들 역시 비슷하다고 합니다. 전대의 칸들인 포머칸 역시 그 정도의 숫자랍니다. 대전사 중에는 소드 마스터의 무위를 가진 이도 있으며 포머칸들중에는 7서클 대마법사에 비견되는 이들도 있어, 다크니스들도 두려워할 정도라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이긴 했지만 마수의 힘을 몸소 경험한 딜런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마수 따위는 어렵지 않게 처리 할 수 있을 텐데 왜……."
티노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로 말을 흐렸다.
"대전사와 포머칸은 일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지 않는한 에버그린이라는 곳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선대의 기예를 받아들이고 수련해서 더 나은 기예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하더군요."
이 상황이 그런 위기인지 아닌지는 그들 일족이 판단할 일이다. 어쨌건 지금까지 산악 부족들은 멸족의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하니 대원 몇 명은 데리고 가시지요?"
타니엘라의 말에 하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위험한 곳이니 겨루를 비롯한 이방인 대원들을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부활이 가능한 이방인이니 다른 대원들을 데리고 가는 것보다 부담이 훨씬 줄 겁니다."
"좋은 생각이군요. 하지만 마법사도 있어야 할 텐데……."
타니엘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장 활용할 마법사가 없었다. 그렇다고 타니엘라나 미루스 둘 중 1명과 동행하게 되면 이쪽의 전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 역시 정령 마법을 익히고 있으니 어떻게는 되지 않겠습니까?"
하룬의 말에 타니엘라와 미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한 마법으로는 하룬의 정령들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령들은 규격화되고 제한적인 마법에 비해 그 활용도가 무척이나 자유롭고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떠나기 전날 밤 하룬은 은밀하게 로그아웃을 했다. 한동안 현실에 신경을 씢 못할 테니 처리할 일들이 꽤 많았다.
캡슐은 나서자 벨이 그를 반겨 주었다. 벨은 여전히 호수중앙 기지에서 데드 벙커에 잠입한 벼루 쪽 사람들을 다중감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리 언니는 해가解家랑 거래하는 것과 타이탄 워커 때문에 정신이 없어. 지하 기지에서 사이보그 대원들과 함께 준비 상황을 체크하고 있어."
"그렇구나."
자신이 비욘드에 있는 사이 벨과 아리만 너무 바쁜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그래서 하룬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공선전은 어떻게 되고 있어?"
"완전히 난리도 아니지, 뭐. 대형 길드들은 물론이고 대형 용병단들까지 공성전을 신청하고 있어."
하긴 어느 정도의 세력을 이룬 무리라면 세 제국에서 내건조건에 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만 해도 욕심을 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직까지 다크니스에게 성을 빼앗은 길드는 세류의 코엠 길드를 제외하고는 없어."
"그래?"
그건 좀 의외였다. 다른 유저들과 별로 어울릴 기회가 없긴 했지만 대형 길드의 힘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하룬은 공성에 성공한 길드가 적어도 몇 개 정도는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가 있어."
"이유?"
"한 성에 주둔하고 있는 다크니스의 전력이 생각 이상으로 많아. 웬만한 성에는 흑마법사 1,000명, 흑기사 1,500명 그리고 흑전사가 3,000명에서 4,000명 정도 주둔하고 있거든."
놀랄 일이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무시무시한 인원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 숫자를 토대로 모든 성에 주둔한 숫자를 헤아릴 떄 최소 5,000명으로 잡아도 전체 인원수가 무려 35만에 달하는 것이다.
아니, 그건 아니다. 자신들이 공격한 성에는 기껏해야 2,000명 정도만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룬이 그 사실을 말해 주자 벨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개연성 있는 대답을 내놓았다.
"어쩌면 공격이 예상되는 성에 전력을 집중시켰을지도 몰라."
그건 말이 된다. 이방인들이 군침을 흘리는 성은 거의 광산을 끼고 있는 곳이다. 거기에 반해 코엠 길드가 공격한 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에 세워진 것이라 주둔한 인원수가 적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엄청나네."
어떻게 그 정도의 추종자를 단기간에 모집한 것일까? 아니, 어떻게 최소 익스퍼트 급에 이르는 흑기사들과 4서클 마법사에 해당하는 흑마법사들을 그렇게 많이 양성할 수 있단 말인가?
'글로리 가이아의 저력이 정녕 두렵구나!'
세계를 암중에서 지배하는 가장 강대한 세력 중 하나다운 능력에 하룬은 소름이 끼쳤다. 이런 자들과 적대하는 자신이 무모해 보일 정도였다.
"아무튼 다크니스는 자신들의 능력은 두 배로 상대의 전력은 절반으로 만들어 주는 흑마법진과 엄청난 전력을 가지고 있어. 공성전의 공식처럼 적어도 세 배 이상의 전력차이라야 효과적으로 성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성공한 길드가 나오지 않았어. 하지만 대형 길드 간에도 이 건으로 인해 서로 힘을 합치려는 시도가 있으니 시간이 좀 흐르면 사정이 달라지겠지."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설마 흑마법진의 코어를 찾아내고 파괴할 마도사 급이 아직 움직이지 않은 것일까? 대형 길드의 자금력이라면 솔직히 소드 마스터나 마도사 급은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룬은 현실에 단단한 기반을 가진 대형 길드라면 곧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부활이 가능하고 그동안 사냥터를 독점해서 쌓은 자금력을 가진 대형 길드들이니 무슨 수든 찾아내겠지."
"그러기야 하겠지. 그런데 오빠는 지금 어디서 플레이하는데?"
"난 마왕의 눈을 찾으러 산맥 깊숙한 곳에 있는 벨제라트 화산 지대로 가기로 했어."
하룬의 말에 벨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수십 개의 홀로그램창을 여닫으며 정보를 검색했지만 나오는 거라곤 지명밖에 없었다.
"여간 위험한 곳이 아닌가 봐. 탐험가들의 파티나 카페에도 정보가 아예 없네."
"그럴 거야. 데빌 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고 위험한 지형 떄문에 다크니스들도 아직 손길을 뻗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룬은 제발 그러길 바랐다. 그곳까지 다크니스의 마수가 뻗어 있다면 정말 곤란했다.
"조심해, 오빠. 예감이 별로 안 좋아.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희한한 일이었다. 벨 역시 자신처럼 불길한 느낌을 받고 있다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하룬은 혹시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돌풍 기지의 방어 시설을 점검할 것과 유사시에 방안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을당부했다.
"나도 인공수정체들이 몰려드는 것이 좀 불안하긴 했어.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조직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지. 아마도 우리는 이미 주시 대상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건 하룬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글로리 가이아가 카페를 통해 세력을 모집한 것을 다른 두 세력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어쩌면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르지.'
"오빠 말대로 은밀하게 방안을 강구할게. 적들이 여우라면 우리는 토끼와 같은 입장이니 적어도 도망칠 굴 몇 개 정도는 마련해 두어야겠지. 여차하면 지하 10층부터 20층까지 막아 버려도 돼. 그 아래도 얼마간 작업하면 위쪽과 똑같은 시설을 마련할 수 있으니까."
현재 돌풍 기지에 가장 위험한 존재들은 단연 글로리 가이아와 휴면 가드지만 새롭게 알게 된 GPC도 잠재적인 것이다. 만약 첩자가 침투했다면 돌풍 기지도 위험하게 되는 것이다. 헤니와 보라가 인공수정체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사람 속은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 더구나 헤니와 보라는 용병대 일과 상단 일로 인해 최근에는 그들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건 너와 아리에게 맡길게. 아리랑 아즈만과 의논해서 유사시에 대비한 각종 사항을 체크하고 미리 준비해 놔."
"알았어, 오빠. 그럼 데드 벙커의 일은 어떻게 하지? 우리 셋이 의논해서 세 가지 정도의 작전을 수립해 놓았는데."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좀 더 다듬어 봐. 셋이 결정한 것에 따를 테니까."
하룬은 머리를 쓰는 것은 셋에게 아예 맡겨 버렸다.
"아! 그리고 사이보그 대원은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니?"
"별로 필요가 없기도 하고 재료도 부족해서 만들지 않았는데, 왜?"
"만들 수는 있는 거야?"
"응. 그동안 꾸준히 반입한 재료들이 꽤 있어서 50기까지는 만들 수 있어."
"왜 그런지 기분이 이상해서 그래. 아리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전투형으로 생산해서 호위를 강화시켜. 그리고 이번에 GPC와 할 거래는 대원들을 총출동시켜. 아무래도 뭔가 불안해."
"으음!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렇게 예감이 안 좋다니 그렇게 할게. 빨리 타이탄 워커들을 찾아내거나 다시 제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너무 조바심내지 말고 천천히 해."
하룬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른 체하고 비욘드에 집중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셋이 자신의 곁에 있으니 정말 든든했다.
"그럼 난 다시 간다."
"어엉? 아리 언니도 안 보고?"
"보면 또 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너랑 있어도 가기 싫은데 아리까지 보면 더할 거 같아. 거기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오랫동안 같이 있는 게 낫잖아."
"헤헤!"
간다는 말에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잇던 벨은 이어진 하룬에 대답에 기분이 좋은 듯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아 참! 오빠!"
벨이 막 캡슐 안으로 들어가는 하룬을 불렀다.
"그동안 아즈만이 따로 청일 박사님의 일지를 연구해서 그곳 세상에 있는 오빠와 우리 셋이 뇌파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작업해 놓았어. 그러니까 집중해서 우리를 떠올리고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돼. 다만 굉장한 집중이 필요하니까 안전할 때만 해."
어째 순순히 보내 주나 싶었더니 이런 기막힌 수를 만들어내다니. 아리를 보지 못하고 가서 아쉬웠던 하룬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잘했어! 하하하! 역시 아즈만이 최고야!"
하룬의 찬사를 들은 아즈만이 뇌파로 의사를 전해 왔다.
-별말씀을요. 벨과 아리가 얼마나 채근을 하는지 하도 성가셔서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거든요.
같은 인공지능을 가졌으면서도 벨과 아리와는 달리 컴퓨터의 본분을 벗어나지 않던 아즈만도 이제 서서히 감정을 알아 가는 걸까? 농담조의 말까지 구사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벨과 아리를 잘 부탁해! 뭔가 예감이 좋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마스터! 이미 대역으로 쓸 사이보그까지 만들어 두었으니까요.
역시 아즈만이다.
-눈앞에 있다면 꼭 안아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너무 섭섭하네.
아즈만은 그 의사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부탁해.
하룬은 캡슐로 들어가 장치를 구동시켰다.
우우웅!
작은 구동음에 섞여 하룬이 미처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약한 아즈만의 의념이 전해졌다.
-저 역시 벨과 아리처럼 마스터의 따듯한 품에 안겼으면 좋겠네요. 어쩌면 빨리 그날이 올 수도 있을 거에요.
하룬 일행은 모두 7명이었다. 특별한 무력이 없는 헤니를 제외하고 겨루와 방커 그리고 마리가 합류했다. 그리고 마왕의 눈이 있다면 파인 홈을 알고 있는 에리피안과 강력하게 합류를 요청한 니켄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룬과 이방인 대원들 그리고 니켄과 에리피안은 에인족 출신으로 벨제라트 화산 지대까지 가 본 적이 있는 다누의 안내를 받아 빠르게 산맥 깊숙한 곳을 진입했다. 에버그린을 경유하기로 했기에 최종 목적지인 화산 지대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돌아서 가는 길이었다.
에인족 최고의 약초꾼인 부친의 손을 잡고 열 살 때부터 데빌 산맥을 돌아다녔다는 다누는 길눈이 밝을 뿐 아니라 마수나 몬스터 들의 기척을 귀신처럼 잘 알아차렸다.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군.'
하룬은 다누가 남들과는 달리 육감이 매우 발달해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정령을 소환하거나 자신이 기감을 넓게 퍼트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성인이 된 지 세 해가 겨우 지났을 뿐이지만 길잡이로는 최고의 인물이었다.
고양잇과 맹수처럼 기척을 죽이는 법은 본능적으로 체득한 다누는 메신저 무빙 스킬을 익힌 후로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는 중이었다. 다른 에인족들처럼 탄력 있고 강한 다리 근육을 가진 데 더해 수백 미터 범위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재빨리 알아차렸는데 그건 일종의 이능력이었다.
"정말 놀라워!"
"뭐가?"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오후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에리피안이 탄성을 지르자 곁에 앉은 마리가 물었다. 에리피안은 그사이 마리와의 대화를 통해 공용어에 꽤 능숙해져 있었다.
"저 다누라는 대원 말이야. 숲의 종족인 우리 엘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을 찾고 있어."
그녀의 눈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룬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누라는 대원에게 꽂혀 있었다.
"그래? 한 번 와 본 길이라 알아서 그런 거 아닐까?"
에리피안은 마리의 말에 고개를 가로져었다.
"아니. 이 데빌 산맥의 무서운 점 중에 하나는 수시로 길이 없어진다는 거지. 숲에는 길이 없어. 다만 방향만을 짐작할 뿐이지."
하긴 이 데빌 산맥은 기온이 연중 온화하고 강수량이 적절해서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이다. 더욱이 인적이 드무니 길이라는 것이 형성될 리가 없다. 있다면 몬스터들이나 동물들이 다니는 길밖에는 없다.
"지난 사흘 동안 몬스터나 마수를 본 적이 있어?"
"아니, 없었어."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요새에서 코엠 성까지 이동할 때는 워낙 숫자가 많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슴류를 비롯한 초식동물과 바고토라는 불리는 유인원류는 꽤 많이 마주쳤던 것이다. 놈들이 숫자에 겁을 먹고 도망을 쳤지만 말이다.
"바로 그거야. 데빌 산맥은 워낙 식생植生이 좋은 곳이라 마수들뿐 아니라 몬스터나 동물 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곳이야. 그런데 우리는 기껏해야 초식동물 몇 마리를 멀찍한 거리에서 봤을 뿐 기대(?)했던 놈들은 만난 적이 없잖아."
"그럼?"
에리피안의 말에 마리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 대원은 생명체의 기척은 물론 위험한 존재들을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있는게 틀림없어. 거기에 더해 초식동물들의 은밀하게 다니는 길을 찾아내는 뛰어난 눈과 집중력 그리고 판단력까지 갖추고 있어."
마리는 숲의 종족인 엘프에게 자신은 아니지만 후배 대원이 경탄의 대상이 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거기에 소리도 없이 저렇게 날 듯이 움직이는 것은 우리 엘프들도 따라할 수 없는 능력이야."
"그건 우리 대장과 부대장에게 배운 거야."
"정말?"
놀란 에리피안의 시선이 다누에서 하룬으로 옮겨진다.
"응. 우리 대장의 특기가 바로 그거거든. 소리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거. 부대장도 대장에게 그 비술을 배운 거고. 척후를 볼 때도 그렇지만 싸울 때 보면 마치 몇 명의 쌍둥이가 이곳저곳에 있는 것 같다니까."
"흐음!"
에리피안은 놀란 눈으로 하룬을 다시 보았다. 마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있었지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가 있지?'
"푸훗! 그런 눈 하지 마. 우리 대장이랑 같이 다니다 보면 그러려니 포기하게 되니까. 이성으로 이해가 안 되는 능력을 많이 쓰거든."
"그래? 또 무슨 능력이 있는데?"
언제 곁에 왔는지 니켄이 물주머니를 마개로 막으며 물었다. 둘의 대화를 들었던 모양이다. 그의 얼굴에도 진한 호기심이 드러나 있었다.
"비도술이 있어요. 꼭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대장의 비도술은 그야말로 최강이죠."
"소문은 나도 들었어. 정령사이면서 엄청난 비도술을 지녔다고 하더군. 그런데 얼마나 신묘한 비도술이기에 그런거지?"
"그건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직접 봐야 알게 될 거에요. 아무튼 비수가 생명과 자아를 가진 것처럼 상대를 요격한다는 것만 알아 둬요. 블리크 따위로는 막을 수가 없다는 것도."
말로는 연상이 되지 않는지 니켄은 그 미끈한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런데 대장이랑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그거 말이지. 호호호!"
마리는 에리피안과 니켄에게 대장을 처음 만났던 일을 비롯해서 같이 동행하며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풀어 놓았다.
어느새 겨루와 방커도 곁으로 와서 대화에 합류했다.
그동안은 함께할 시간이나 자리가 없어서 그저 그렇게 지냈지만 안전한 곳에서 맞이하는 깊은 산중의 밤은 무척이나 깊었다.
하룬은 명상을 통한 수련에 푹 빠졌고, 종일 뛰어다니며 집중 상태를 유지했던 다누는 피로로 인해 잠에 떨어졌다.
어린 시절에 마탑에 들어간 터라 사람들과 어울린 경험이 별로 없어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니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같은 이방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따로 수련을 하거나 할 일이 없는 까닭에 자연스럽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급속하게 친해졌다.
니켄은 잘생기고 기품이 우러나오는 분위기에 더해 배려심과 적당한 유머 감각까지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방인대원들에게 오빠와 형으로 불릴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결국 나중에는 유니온 밖 돌풍 기지의 존재까지도 말할 정도로 친해졌다.
"이야! 그런 곳이 있었단 말이야?"
니켄은 이방인 대원들의 말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후후! 놀랐죠? 돌풍 기지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에요."
"우리 대장도 그렇지만 너희들 세계에 있다는 하룬 대장도 대단하네. 그 나이에 그 정도의 무리를 아무 문제없이 거느릴 수 있다니."
"그렇죠?"
안 그래도 돌풍 기지로 거처를 옮길까 고민하고 있는 겨루와 방커는 마리의 말을 경청했다. 마리도 헤니에게 들은 것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들에게는 더없는 거처가 될 것 같았다.
"무슨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우리 대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니켄의 말에 마리가 화를 내면서 언성을 좀 높였다.
"그렇잖아. 아무런 목적도 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그렇게 내줄 리가 없잖아?"
마리는 니켄의 이어진 말에 금방 화를 억눌렀다. 보통의 경우에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그게 정상이죠. 현신의 하룬 대장이 좀 비정상이긴하지요."
마리가 하룬을 존경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 온 하룬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돌풍 기지를 운영하거나 인공수정체 친구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룬이 박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적어도 한번 받아들인 사람은 가족으로 대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방인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고 어울리는 니켄도 비정상적인 경우였다. 고서클의 마법사라서 그런지 니켄은 이방인들의 삶이나 체제를 너무나 쉽게 이해했다.
처음에는 마리나 다른 대원들고 그 부분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워낙 말이 잘 통하는 관계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기 있는 대장도 존경하는 분이지만 난 현실의 하룬 대장이 더 좋아요."
"현실의 하룬 대장은 어떤 사람인데?"
니켄의 질문에 겨루를 비롯한 셋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건 나도 잘 몰라요. 그분에 대해서는 헤니와 보라에게 들은 것이 전부거든요. 그 애들이 말한 것에 따르면 나이는 이곳의 하룬 대장보다 젊은데 좀 더 인간적이고 어수룩한 데가 있다고 해요."
"그래? 용모는 어떻데?"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보통 수준은 된다던데요."
"그가 어떻게 그런 기지를 만들었대?"
그 질문에 마리는 잠시 눈을 깜빡거렸지만 그것에 관한 말은 못 들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나도 헤니에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저 빙그레 웃고 말더라고요. 다만 저기 있는 하룬 대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은 확실해요."
"단순히 이름만 빌려 준 관계가 아니란 거군."
겨루의 말에 마리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루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놀랍고 기이한 일이지만 우리 대장이 현실의 하룬 대장을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거 같아요."
니켄은 하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방인 대원들도 마찬가지여서 밤이면 하룬과 돌풍 기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덕분에 겨루와 방커는 물론이고 니켄도 아직 가 본 적도 없는 돌풍 기지며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눈을 감고도 떠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에리피안은 한동안 같이 어울리더니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라며 자리를 피했다.
"안 그래도 대장이 권유했었는데 나도 이참에 그곳으로 옮길까?"
나중에는 겨루가 그런 소리까지 할 정도였다.
"중증 마비 상태라며? 캡슐은 어떡하고?"
"그러게, 그 생각을 못했네."
겨루와 방커 그리고 마리는 특수군 시절에 당한 사고로 인해 생긴 심각한 후유증으로 중증 마비 상태여서 아직도 발트랑이 사람들 시켜 주기적으로 돌봐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최상급 캡슐의 소유권이 발트랑에게 있기 때문에 겨루가 돌풍 기지로 가려면 반환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일이 끝나면 헤니가 현실의 하룬 대장에게 이야기를 해 본다고 했어. 우리들이 이곳에서 돌풍 용병대원이라는것과 인공수정체 출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그분이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 줄 거라고 했어. 돌풍 기지에 쏘우라는 오빠가 있는데 기계를 다루는 것도 귀신이지만 기계 제작 쪽에도 일가견이 있대. 어쩌면 우리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줄지도 몰라."
마리는 헤니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사실 그 말 때문에 캡슐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돌풍 기지로 거처를 옮길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 이번 일이 끝나면 그렇게 하자. 게임이 아무리 중요해도 현실은 현실이니까."
"나도 결심했어. 발트랑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까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캡슐 때문에 미련이 남긴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용병이 되어 마음껏 이 세상을 활보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도 가끔은 좁은 방 안을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헤니가 그랬어. 기회를 잘 봐서 우리 대장에게 말해 보라고. 현실의 대장은 이곳의 하룬 대장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고 하더라."
"그럴까?"
겨루와 방커 그리고 마리는 돌풍 기지와 같은 곳에서 산다면 지금처럼 가상현실에서 채울 수 없는 만족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거라고 믿었다. 유니온처럼 폐쇄적이지도 않으며 신분으로 인한 차별도 없고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저 정해 주는 대로 잘 끼워진 나사처럼 일만 해야 하는곳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발트랑이 우리를 돌봐 줄 수는 없을 거야. 비록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병신이지만 우리도 가치 있는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어!'
떠난 지 열흘이 지나 에버그린을 가려고 길을 꺽고 다시 이틀을 더 이동했을 때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에센을 통해 뜻밖의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에버그린에 머물고 있다는 세 부족의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이 이번 공성전에 참가하기 위해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룬은 난감하기만 했다. 혹시 에센이 다크니스의 촉수에 걸릴까 두려워 자세한 사정을 전하지 않고 다만 누군가 방문할 거라고만 한 것이 실수였다.
열 개 이상의 마을 전사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전투 소식에 대전사들과 포머칸들은 우려를 하며 길을 떠난 것이다.
"하필이면 지금 떠날 게 뭐람."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면 사흘 거리에 불과한 화산 지대까지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과연 우리 힘으로 가능할까요?"
그동안 무척 친해진 에리피안을 통해 화산 지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세하게 들은 일행의 얼굴은 걱정이 가득했다. 다들 돌아가서 공성전에 참가한 다음 전력을 강화해서 다시 오자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니켄은 투지를 불태웠다.
"그냥 가 보지요, 대장. 험하면 얼마나 험할 것이며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대장과 우리의 실력이라면 시도는 해 볼 수 있잖아요. 언제 또 갔다가 다시 옵니까?"
"그렇긴 하지."
최근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하룬이라 굳이 화산 지대로 직행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니켄이 불을 지르자 생각이 달라졌다.
"뭐가 걱정이야? 대장의 귀신같은 비도술과 정령술에 우리 실력도 만만치 않잖아. 설마 겁먹은 것은 아니겠지?"
"무……슨 소리를! 그저 신중하게 생각하자는 거지."
호승심이 강한 방커가 니켄의 말에 역정을 냈다.
"대장. 일단 가 보지요. 니켄 형님의 말대로 우리 실력이면 어디가도 꿀리지 않으니 한 번 도전이라도 해 보죠. 만약 우리 힘으로 곤란하다고 해도 어떤 위험들이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겨루도 생각이 달라진 듯했다. 하룬은 에리피안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도 그냥 갔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없어요."
그녀의 눈빛은 간절했다. 마음이 급한 것이다. 자신들의 성지가 훼손되었거나 마왕의 눈이 탈취되었을까 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래. 일단 가 보자. 겨루, 성을 공략하고 나서 여유가 되면 이쪽으로 오라고 연락을 해."
"알겠습니다, 대장."
추측하기로 익스퍼트 상급에서 최상급 혹은 그 이상의 실력을 가진 대전사들과 마도사 급의 포머칸들이 가세한다면 성 하나 정도 차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일단 성을 차지하고 나서 방어를 든든하게 한 다음에는 벨제라트 화산 지대로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