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2화.첫 공성전 (203/278)

첫 공성전

 "다 왔다!"

 요새를 떠난 지 십삼 일이 지난 후 하룬 일행은 목표했던 까마득하게 올려다보이는 작은 분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을 꿰고 있는 에인족 출신 대원들과 버처리비크의 정찰로 별다른 사고 없이 엄청나게 빨리 도착한 것이다.

 "꼭 악마가 살 것 같은 성이군."

 산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성의 모습은 도저히 사람이 쌓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저런 곳에 어떻게 성을 쌓은 거지?"

 비류가 고개를 흔들며 질린 눈을 했다. 하지만 효과적인 공략을 위해 산을 끼고 옆으로 돌자 전면과는 달리 평평하고 완만한 후면이 드러났다. 그쪽은 중턱부터 거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성을 쌓은 재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죠, 하룬?"

 세류는 험준한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은 단단한 성의 모습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일단 정찰부터 해야지."

 제일 먼저 할 일은 성 내부의 구조와 전력 배치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룬은 그 일을 위해서 위신느를 성으로 보냈다.

 -산 전체를 정찰해야 해, 위신느. 올라가는 길 주변에는 틀림없이 잠복한 적이나 마법이 펼쳐져 있을 거야. 그리고 성안에 들어가면 각별히 조심해야 해. 흑마법사들은 정령의 향기에 예민하니까.

 -헤헤헤! 걱정 말아요. 내 능력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보여 줄게요.

 위신느는 하룬의 몸을 한 바퀴 휘감으며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가 떼며 성으로 향했다.

 '아공간까지 만들 정도가 되었으니 괜찮겠지.'

 하룬은 걱정 어린 눈으로 산을 빠르게 휘감으며 올라가는 위신느를 쳐다보았다.

 "대장, 숙영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돌아보니 티노였다. 역시 부대장답게 하룬이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을 알아서 챙기는 티노가 정말 든든했다.

 "위에서는 무성한 나뭇잎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근처에 제법 큰 샘이 있고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어 천막 치기에도 좋은 곳입니다."

 하룬은 티노의 보고에 그곳에서 숙영하기로 하고 모든 사람들을 그쪽으로 이동시켰다.

 위신느가 돌아온 것은 대원들이 숙영 준비를 거의 마쳤을 때였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헤헤! 하마터면 까맣고 기분 나쁜 인간에게 걸릴 뻔했어요.

 아마 실력이 높은 흑마법사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4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정령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그래, 돌아본 결과는 어때?

 -강력한 결계가 성 주위에 펼쳐져 있어요.

 그건 아마 흑마법진의 영향일 것이다. 다크니스의 성을 공략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 흑마법진을 처리하는 일이다.

 -성안에는 인간들이 아주 많아요. 한 1,000명 정도. 마수들도 백마리 정도 있어요.

 위신느가 정찰해 온 결과는 심상치가 않았다.

 흑마법사 약 150명 정도였고 그중 위신느를 감지하거나 의심했떤 이들의 숫자는 10명이 넘는다고 했다. 흑기사들은 약 300명 정도 그 나머지는 흑전사들이라고 했다.

 '익스퍼트 급이 300명이라면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하나같이 실력자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흑마법사들의 전력은 확실히 모르지만 그 숫자로 보건대 상당한 위협 요인으로 파악되었다.

 매복도 있다고 했다. 중턱과 그 위쪽으로 총 여덟 개에 달하는 긴 호가 파여 있고 약 50명 정도의 흑전사들과 지휘관으로 추정되는 흑기사 그리고 흑마법가 정기적으로 호를 따라 정찰을 한다고 했다.

 -수고했어!

 -헤헤! 쪼옥!

 위신느는 하룬에게 뽀뽀를 하고 몸 안으로 들어갔다. 정령들은 아공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룬의 센트럴 오션에서 정령석을 흡수하며 지내고 있었다.

 '공격이 쉽지 않겠어.'

 이미 마츠루트 요새의 상황과 자신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룬은 이곳 산맥 안쪽이고 이방인들이 별로 탐할 것이 없어 경계가 느슨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룬 일행으로서는 세류의 코엠 길드를 돕는 일이지만 첫 공성전이라 어떤 결과를 얻어 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공성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단 작전 회의부터 해야겠군.'

 하룬은 그제야 숙영지로 향했다. 그런 하룬을 딜런과 방커가 말없이 따랐다.

 공성전을 위해 코엠 길드와 돌풍 용병대의 수뇌부들이 자리를 같이했다.

 하룬의 설명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그 정도로 방비를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들의 숫자와 대비가 그 정도라면 이 정도 인원으로 공격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코엠 길드의 부길마인 난도가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총 4,000명 남짓입니다. 그나마도 실력자들 중 절반 정도는 상단으로 빠져나갔기에 하이 랭커의 숫자가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익스퍼트 급이 부족합니다. 돌풍 용병대원이 모두 익스퍼트 급이라고 해도 저들의 숫자와 겨우 맞출 뿐입니다."

 "마법사들의 숫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게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돌풍의 두 고문님을 빼고는 4서클 마법사의 숫자는 겨우 12명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3서클에 오른 길드원이 300명 정도 되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석 전사장이 된 데스크라이와 수석 마법사인 미라스가 난도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데스크라이는 폭력 조직 생활을 여전히 하고는 있지만 그동안 분위기가 많이 변해 이제는 합리적인 판단도 할 정도였다.

 세류와 비류 역시 심각한 얼굴이었다.

 하룬은 대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을 제일 먼저 받은 티노가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대장님이 한다면 우리는 합니다."

 다른 이들 역시 티노와 마찬가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저 성을 함락해야 한다면 할 수밖에."

 "세류 길드장이 결정을 하시게. 일단 정해지는 우리는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

 딜런과 타니엘라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의뢰 수행이 아닌 점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대장의 이방인 친구들이 원한다면 할 생각이다. 그게 대장의 뜻이기도 하니까.

 "차라리 다른 성을 도모하는 건 어때, 언니?"

 비류는 연방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니 세류에게 눈을 맞추었다.

 "하룬, 어떻게 할까?"

 하룬에게 의견을 구하는 세류의 눈빛이 묘하게 대원들과 닮아 있었다. 그 맹목적인 믿음마저도 말이다. 하룬은 내심 실소를 했지만 외견상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이곳이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성들도 마찬가지겠지."

 하룬의 그 말에 이견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이곳이 이럴 정도면 다른 성들의 상황은 훨씬 더할 것이 분명했다.

 "난 이곳을 공격했으면 한다."

 하룬의 말에 돌풍 용병대원들은 굳은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하룬의 의견을 따를게."

 "길마, 이건 너무 위험……"

 부길마인 난도가 세류의 말에 제동을 걸려고 했지만 그녀의 강렬한 눈빛에 말을 멈추고 만다.

 "공격이 예견되는 상황이니 이곳보다 더 약한 전력을 가진 곳이 있을 거 같지는 않아. 하룬 말대로 이왕 공성전을 벌이려면 이곳이 최선이야."

 "……알겠습니다."

 세류의 굳은 얼굴을 대한 코엠 길드의 수뇌부들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길마와 길마가 굳게 신뢰하는 하룬의 말처럼 공성전을 안 한다면 모르겠지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다른 곳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하룬은 먼저 회의 참석자들에게 위신느가 정찰해 온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헤니, 예상되는 어려움을 짚어 봐."

 "네, 대장. 일단 산 아래 풀어 놓았을 마수들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예요. 다음으로는 산 중턱 위로 두 개의 호를 파고 경계를 하는 자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성안으로 침투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 과정에서 예견되는 어려움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언데들의 처리와 흑마법진을 해제하는 것, 그리고 막강한 전력을 상대하는 일이 있어요."

 "잘 들었겠지만 일단 각각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 논의를 하도록 하지요."

 세류의 주도로 회의는 점점 열기를 띠어 갔다. 평소 세류의 코엠 길드도 하룬의 돌풍 용병대와 비슷하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그 의견에 대한 문제점을 토의하고 다듬어서 최선의 방안을 도축하는 방식을 취하기에 회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하룬이 볼일을 보러 잠시 나갔다 온 사이에 몇 가지 문제는 금세 해결 방안이 나왔다.

 "호를 파고 경계를 하는 자들은 돌풍 용병대와 로그 계열의 우리 길드원들이 맡으면 될 것 같네요. 마수 역시 돌풍용병대가 해결해 주세요. 혹시 모를 언데드들 역시 경험히 풍부한 돌풍 대원들이 맡으면 될 것이고 흑마법진의 해체는 돌풍의 두 고문님들이 맡아 주기로 하셨어요."

 세류의 말에 하룬은 타니엘라와 미루스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역량으로 과연 흑마법진을 해제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미루스가 다가와 속삭였다.

 "니켄이 흑마법진 코어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위치를 찾고 강력한 힘으로 흑마법진을 흔들면 나머지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니켄과 세 주술사들과 함께 타니엘라와 미루스로 부터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정통 흑마법에 관심이 있는 미루스와 타니엘라에게 흑마법에 대해 알려 주고 자신은 두 사람이 익힌 마법진에 대한 것을 배우고 있었다.

 세류는 하룬에게 시선을 주고 있다가 그가 밝은 표정이 된 것을 확인하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제 성내에 다크니스의 전력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만 남았네요. 돌풍 용병대가 중요한 일들을 대부분 맡았으니 이 부분은 우리 길드가 전력을 기울이겟어요."

 어느새 절반 정도는 방안이 나왔다. 세부적인 작전은 그 일을 맡은 이들끼리 다시 논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이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요. 흑마법진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전체하에 적들이 알아차리고 대비하기 전에 5미터 높이의 성벽을 넘는 것이 이 공선전의 관건이 될 것 같아요."

 헤니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스크롤을 써서 성내 중요 건물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성벽에 대한 경계를 흔드는 것은 어떨까요?"

 난도의 의견에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룬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보유한 스크롤들은 집중해서 쓰는 것이 효과적이오. 성벽에서 경계하는 자들의 이목을 끄는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지."

 "대장이 그렇게만 해 준다면 흑마법사들과 흑기사들을 상대하는 것이 좀 쉬워지지요. 하지만 어떻게 하려고요?"

 "내 친구 둘이 아래쪽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반대편에서 서벽 위에 있는 병력의 이목을 끌겠소. 나머니 사람들은 그 사이에 성벽을 올라가면 될 거요."

 하룬은 의아해하는 세류에게 빙긋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세류는 친구라는 단어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남은 것은 난전이군요."

 그렇다. 일단 성안으로 난입하고 나면 순수한 힘과 힘의 격돌만이 남은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라이피로 하여금 지반을 흔들어 혼란 상황을 유발하고 싶지만 코엠 길드가 이곳에서 머물 것이니 되도록 잘 다듬어진 지반이며 건물은 파괴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괜찮군요. 이곳에 있는 분들이 성내에 있는 다크니스들의 수뇌부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다소 희생은 있겠지만 숫자에 있어서 압도적인 우리가 성을 점령할 수 있을 거예요."

 처음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회의를 하고 난 후 사람들의 표정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세류는 잠시 정회를 선언했다. 식사도 거르고 몇 시간이나 열띤 토론을 한 터라 다들 허기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역시 하룬 대장과 돌풍이 옆에 있으니 든든하군요."

 난도가 그래도 같은 이방인인 겨루와 방커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겨루는 자신의 용병대와 대장이 인정을 받고 있는 것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돌풍 용병대가 들어간 것은 자신에게는 최고의 행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산 중턱까지는 허벅지 위로 올라오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뿐 나무들은 보이지 않았다. 토질이 별로 좋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다크니스 무리가 성을 쌓으면서 경계를 위해 드문드문 서 있던 나무들을 다 베어 버린 것이다.

 하룬과 대원들은 네발짐승처럼 풀밭을 기어올라야 했지만 뱀처럼 영활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다크니스가 산 전체에 펼쳐 놓은 흑마법진의 영향으로 인해 달빛은 산 주변에 피어오른 어두운 안개를 쉬이 뚫지 못했는데 그것이 침투하는 용병대원들에게는 유리하게 적용했다.

 티노를 위시한 대원들은 하룬의 뒤를 따라 거의 똑같은 동작을 취하며 산을 올라갔다. 짙게 까린 암회색 안개로 가려진 풀밭을 뚫고 올라가는 대원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뱀이 동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아가는 것 같았지만 호에 들어가 머리만 겨우 내 놓은 상태로 경계를 서는 다크니스의 정찰조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20분 정도를 올라가자 드디어 손가락 높이의 풀들과 붉은 지반이 드러난 곳에 이르렀다. 풀마저도 경계에 방해가 될까봐 호에서 30미터 정도까지는 모두 베어 버린 것이다.

 대원들은 풀 사이로 눈만 내놓고 호를 주시했다.

 하룬은 샤키의 눈을 비롯한 오감과 관계된 마수의 힘을 끌어 올렸다.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약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역시 세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지겨워!"

 "그러게. 이곳에 올 놈들이 어디 있다고 이 난리야."

 "쉿! 조용히 해. 조장 새끼 들을라. 아까 교대하기 전에 성에서 들으니 서른 개가 넘는 성들이 공격받고 있대. 이곳도 올지 모르잖아."

 "미친! 그곳들이야 광산이나 비옥한 땅이라도 있지만 이 성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미친놈들이 이곳을 빼앗으려고 쳐들어오겟냐?"

 "그거야 조장 말대로 모르는 일이지. 우리와 같은 유저들은 몰라도 세 제국군들은 충분히 쳐들어올 수 있잖아."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대화가 끊겼지만 이내 다시 이어졌다. 

 "이쪽으로 오기만 하면 정말 대박일 텐데. 이 위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테이밍된 슬로크와 람비 백 마리가 날뛰면 어지간한 놈들은 모조리 아작 나고 말 거야."

 "그 흉포한 마수들이 아니라 성주와 그 친위대만 나서도 기사단 하나는 가볍게 박살 낼 수 있지. 명색이 소드 마스터 아니냐. 거기에 5서클 마법사인 슈이판과 그 휘하의 마법사들이 있으니 이곳으로 오는 놈들이 있으면 완전 똥 밟은 거지."

 "야! 그놈들 깨서 움직일 시간 됐다. 빨리 그 목걸이 착용해."

 "알았다고. 그나저나 이동할 시간이네. 뭔 30분이 이렇게 느리게 가냐?"

 세 사람은 두런거리며 이동할 준비를 했다.

 곧이어 정면 왼쪽에서 이동해 오는 세 사람의 기척이 잡혔다. 그들 역시 크게 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호의 위쪽으로 머리카락만 보이는 세 개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야! 왜 이렇게 빨리와?"

 "빠르긴 뭐가 빨라. 우리도 앞 조가 밀어내서 온 건대."

 "제길! 이제 시작인데 언제 끝나고 성으로 복귀하냐?"

 "비상이잖아. 마수들이 움직일 시간이니까 목걸이나 잘 착용하라고."

 이들은 3명으로 구성된 조로 밀어내기 식으로 경계망을 운용하고 있었다. 조 간 거리는 약 100미터로 30분마다 옆으로 이동하는 경계 방식을 확인한 하룬은 다크니스가 일반 길드 수준이 아니라 군대 수준으로 휘하 조직원들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전에 있던 자들이 다음 조를 밀어내는 것까지 확인한 하룬은 타니엘라에게 마법을 부탁했다.

 "타깃 레인지 설정! 사일런스!"

 비록 거리가 30미터나 떨어지긴 했지만 마도사는 그냥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듯 타니엘라는 연속으로 마법을 펼쳐 세 경계병을 중심으로 반경 5미터에 사일런스 마법을 걸었다.

 하룬은 비수 세 자루를 꺼냈다.

 -위신느, 나이아, 라이피, 처리해 줘!

 세 정령은 비수와 동화되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 비수들은 경계병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상공으로 올라간 상태로 그들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세 비수는 경계병들의 머리통을 뚫고 들어갔지만 마법으로 인해 아무런 비명도 내지 못했다.

 하룬은 돌아온 세 비수를 암기 벨트에 넣고 개활지로 빠져 나왔다.

 "갑시다."

 선두에 자리를 잡은 네 사람은 마치 도마뱀처럼 두 손 두 발을 사용해서 빠르게 호를 향해 올라갔다. 예상대로 호 안에 배치된 다크니스의 경계병들은 그들을 보지 못했다. 다른 대원들과 로그 계열의 코엠 길드원들이 빠르게 호 안으로 이동해 왔다.

 "타니엘라 경은 딜런경, 마리와 함께 코엠 길드원 절반을 이끌로 호를 따라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 적들을 처치하세요. 미루스 경은 코엠 길드원 반을 이끌고 티노 부대장, 도네이스와 함께 왼쪽으로 가세요. 나는 이 위쪽 호에 있을 마수들을 상대하겠습니다."

 목표 지점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타니엘라와 미루스, 화살 공격이 가능한 마리와 도네이스, 그리고 딜런과 발이 빠른 티노 그리고 로그 계열의 코엠 길드원이라면 움직이면서 적들을 차근차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룬은 양쪽으로 은밀하게 이동을 하는 대원들을 남겨 두고 호를 빠져나와 위쪽으로 향했다. 천천히 기어 이동을 하는 도중에 성배를 꺼낸 하룬은 성수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성수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아, 성수를 마셔.

 -네, 하룬. 그럼 워터 레인이나 워터 볼이 효과적이겠네요?

 성수를 마신 덕분에 푸르스름하게 변한 나이아가 전하는 의념에 하룬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몇 마리씩 모여 있을 거야. 소리가 나면 곤란하니까 그냥 덮어씌워 익사시키자. 성수의 기운이 놈들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테니까. 

 -알았어요. 이제 10미터 범위까지는 감쌀 수 있으니 가능할 거예요.

 기척을 죽이고 위쪽으로 100여 미터를 더 오른 하룬은 또 다른 호를 볼 수 있었는데 중턱의 호와는 달리 옆으로 이동 할 수 있도록 파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구덩이였다. 녀석들의 덩치를 감안하면 두 마리나 세 마리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아래에 있는 호에서 신호를 보내면 마수들이 뛰쳐나오도록 한다? 그거 나름 괜찮은 방법이군.'

 하룬은 마수들의 구덩이와 약 30미터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나이아를 위로 보냈다. 아래쪽의 호와는 달리 경계가 필요 없는 터라 구덩이까지 무성하게 자란 풀들이 이어져 있었다.

 나이아는 바닥의 풀 위로 넓게 퍼진 상태로 이동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푸르스름한 천이 바람을 타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딸랑! 딸랑!

 "대기 상태!"

 이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마수들은 좁은 구덩이 밖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흑마법사 1명이 놈들을 제어하고 있었다. 거친 호흡 소리를 들어 보니 구덩이 안에는 마법사 1명과 마수 세 마리가 들어 있었다.

 "엇!"

 구덩이 위쪽을 가린 푸른 천을 본 마법사가 낮은 경호성을 터트린 순간 나이아가 그와 세 마수를 덮어 버렸다.

 마법사와 마수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푸른 물이 전신을 감싸 버린 순간 힘이 쭉 빠지는 기이한 감각을 먼저 느꼈다. 

 "욱! 욱!"

 크르릉!크르릉!

 그들은 푸른 물 막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럴수록 푸른색 수막水膜은 그들의 몸으로 더욱 옥죄였고 빠르게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호흡도 할 수 없었다. 멋모르고 숨을 들이쉰 순간 몸 안으로 들어온 푸른색 물은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파르르.

 흑마법사와 세 마수는 삽시간에 경련을 일으키며 몸이 굳어 버렸다.

 -하룬, 다 됐어요. 심장박동이 멈췄어요.

 나이아의 의념에 현장에 도착한 하룬은 서서히 빛 모래로 변하는 사라지기 시작하는 흑마법사의 사체를 볼 수 있었다.

 -수고했어, 나이아. 성수의 힘은 아직 남았어?

 -네. 이런 식으로 열 번은 더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성수를 마시면 마실수록 제 능력이 올라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다행이네. 자, 이동하자. 처리할 마수들이 많아. 이리와 태워줄게.

 하룬은 나이아를 자신의 등에 올렸다. 각성을 한 나이아가 겨우 이런 일에 피곤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뭔가 해 주고 싶었다.

 -호호호! 재미있어요.

 하룬의 등에 엎드린 나이아는 네발짐승처럼 기어서 이동하는 하룬의 몸의 요동을 느끼며 즐거워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빠의 등을 타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순수한 기쁨을 전하고 있었다.

 하룬은 그렇게 나이라를 등에 태운 채 풀을 헤치며 기어서 이동했다. 약 70미터 정도 이동하자 또 다른 호가 나타났다.

 -나이아, 준비해.

 -네. 나 잘하고 오면 또 태워 줄 거죠?

 -그래. 못하고 와도 태워 줄게.

 -헤헤!

 나이아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떠올리고 몸을 천처럼 편 상태로 구덩이를 향해 이동했다.

 흑마법진 때문에 생긴 짙은 암회색 안개와 두 마도사의 사일런스 마법으로 인해 아래쪽 호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흑마법사들과 마수들은 신성력이 가득한 나이아의 수막에 갇혀 기능 둔화와 질식에 이은 심장마비로 죽어 갔다.

 산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자리로 온 하룬은 모든 마수를 다 처치했음을 확인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대원들은 어느새 호에 있던 경계병들을 다 처리하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타킴, 내려가서 세류에게 길드원들을 데리고 올라오라고 전해."

 "네, 대장."

 타킴은 짙은 안개 속을 날 듯 달려 내려갔다.

 "자, 우리도 올라가 봅시다."

 하룬은 다른 대원들을 끌고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안개를 뚫고 성이 시야에 드러난 순간 하룬의 손이 위로 올라가자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풀 사이로 엎드리거나 엄폐물을 찾아 모습을 감추었다.

 "부대장, 코엠 길드원들이 도착하면 사면으로 은밀하게 나누어 이동하라고 하세요. 우리 돌풍은 이곳에서 치고 올라가면 됩니다. 신호는 저 불이 꺼지는 순간으로 하지요."

 성벽 위에 피워진 모닥불을 흘낏 본 티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룬은 스캐러의 힘을 끌어 올려 성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는 거대한 바위 쪽으로 은밀하게 이동했다. 아직 원래 힘의 10분의 1도 쓸 수 없는 상태지만 그의 몸은 안개처럼 흩어져 바위 쪽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역시 대장이야. 스캐러의 힘까지 쓰다니!"

 안개처럼 흩어지는 하룬을 보고 감탄한 레미가 속삭이는 소리에 산악 부족 출신 대원들은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마을 원로들로부터 산맥 깊숙한 곳에 사는 중급 마수 스캐러가 그렇게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하룬은 그동안 부단히 마정석의 마나를 흡수한 결과 스캐러의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쉿! 조용히 해. 사일런스!"

 타니엘라가 급하게 마법을 펼쳐 소음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눈에는 대원들에 대한 책망 대신 놀라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마법보다 더 낫네. 정말 우리 대장은 불가사의 하다니까."

 순식간에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하룬을 보며 미루스가 혀를 내둘렀다.

 바위 틈 사이에 자리를 잡은 하룬은 버처리비크들에게 의념을 보냈다.

 -미노, 지금 어디냐?

 -성 위쪽의 구름 속에 들어와 있다.

 미노와 수니는 하룬이 부탁한 대로 이미 성이 내려다보이는 상공을 날고 있었다.

 -그럼 동화하자.

 -알었어. 들어와!

 하룬은 싸가지를 불러내어 녀석을 매개체로 의식을 미노에게 옮겼다.

 의식이 미노의 몸으로 들어오며 순간적으로 눈앞에 엷은 구름이 나타났다. 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흑마법진으로 인해 생성된 결계 때문에 이곳에서는 엷은 구름을 통해 흐릿한 성의 형체만이 보일 뿐이었다.

 -미노, 내려가 보자.

 -알았어, 친구.

 미노가 날개를 접으며 하강하자 수니도 그 뒤를 따랐다. 미노는 순식간에 구름 아래로 내려가 결계인 두터운 암회색 안개 층을 향해 돌진했다.

 투웅!

 이곳의 흑마법사가 하이 클래스인지 아니면 마법진을 이루는 재료가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안개 층은 미노의 거대한 동체를 부드럽게 밀어내었다

 꾸어억!

 잘 뚫리지 않는 결계에 성질이 난 미노가 피어를 발하며 신경질적인 발톱을 휘둘렀다. 수니 역시 가세했다.

 파악!

 결계가 반항이라도 하듯 거칠게 요동을 쳤지만 미노와 수니의 단단한 발톱은 결계를 쉽게 찢어 버렸다.

 꾸어어억! 꾸아아악!

 미노와 수니가 내지르는 피어는 결계 안의 대기를 진동시켰고 이내 성이 잘게 흔들렸다.

 "피해!"

 "거대 비행 몬스터다!"

 오각형을 이루고 있는 성벽에 있던 경계병들이 미노와 수니의 피어에 놀라거나 공포에 질려 바닥에 엎드리거나 아래로 뛰어내리는 등 난리가 났지만 곧 지구라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미노와 수니를 발견하고 놀라 우왕좌왕했지만 지구라트의 4층에서 나온, 등과 소매에 황금색 문양이 새겨진 플레이트와 검은 로브를 착용한 일단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혼란을 수습했다.

 "모두 진정해랏! 그래 봐야 마수일 뿐이다." 

 "궁수는 활을 쏠 준비를 하고 마법사들은 대공對空 마법을 준비해라!"

 성의 수뇌부들이 나타나 지시를 내리자 성내의 혼란은 금방 가라앉았고 빠르게 대응 자세를 갖추어 갔다.

 '그렇게는 안 되지!'

 니켄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흑마법진의 코어를 파괴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미노, 수니, 화살과 마법을 피해서 먼저 성벽에 있는 자들을 노려! 그리고 날개로 성벽 위에 피워진 모닥불들을 흩어놔!

 하룬은 미노와 수니에게 부탁을 하고는 동화를 끊었다.

 순간 눈에 거대한 바위들이 들어왔다. 하룬은 일단 몸 상태부터 점검했다.

 '휴우!'

 다행히 동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지난번처럼 지치지는 않았다.

 그때 미노와 수니의 의념이 전해졌다.

 -흐흐흐! 재미있겠다.

 -미노, 불장난 너무 많이 하면 안 돼!

 이들이 언제 불장난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하룬은 이해 할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걸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바위 사이로 성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미노의 거대한 동체가 보였다.

 그들을 향해 엄청난 숫자들의 화살이 날아갔지만 하강 속도가 너무 빨라 제대로 맞출 수 없을 뿐 아니라 맞아도 미노와 수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악! 살려 줘!"

 "크아악!"

 하이 랭커들과는 달리 이미 버처리비크들의 피어에 공포를 느끼고 있던 흑전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파악!

 미노의 단단한 발톱에 한 흑전사의 동체가 우그러지며 사방으로 핏물과 살이 터져 나갔다.

 휘익! 

 날개를 편 상태로 몸을 빠르게 돌리자 모닥불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불이 붙은 나무들은 사방으로 날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효과까지 생겼다. 성안의 목조건물 몇 채와 성벽 위에 세워진 목조 도구들이 타기 시작한 것이다.

 "파이어 애로우!"

 "다크 애로우!"

 "다크 스피어!"

 "아이스 스피어!"

 수많은 마법들이 미노와 수니에게 날아갔지만 녀석들이 날개를 흔들어 일으킨 바람으로 마법을 튕겨 내거나 소멸 시켜 버렸다.

 "보통 마수들이 아니다. 더 센 것으로 날려!"

 성주로 추측되는 자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파이어 플레임!"

 "다크 핸드!"

 "오브직트 커스!"

 "다크 파워 해머!"

 "체인 라이트닝!"

 파앙! 팡!

 마법이 미노와 수니의 동체에 부딪히는 소음과 함께 녀석들의 부리에서는 높고 날카로운 음파가 새어 나와 대기를 통해 퍼져 나갔다.

 꾸어어억!

 "으아악! 내 귀!"

 "크악!"

 미노와 수니의 피어에 수많은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마수의 피어다! 귀를 막아랏!"

 다급히 명령을 내렸지만 성벽 위의 흑전사들은 비명과 함께 오공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아직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그들로서는 마나를 흔드는 미노와 수니의 피어를 효과적으로 막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니켄과 주술사들의 임무가 성공했는지 성을 둘러싸고 있던 어두운 기운들이 사라지고 하늘의 환하게 들어왔다.

 흑마법진이 해제되었으니 이제 공격을 할 시점이다.

 와아아아!

 "다크니스를 모조리 없애라!"

 벌써 다른 성벽에는 코엠 길드의 공격이 시작되었는지 고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격!"

 우렁찬 티노의 명령이 터져 나온 순간 대원들은 성벽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타닥! 타다닥!

 달려가던 속도로 성벽을 두 번 걷어찬 티노의 몸이 어느새 성벽에 올라갔다. 티노는 미리 준비한 밧줄들을 성벽에 튀어 나온 탑에 걸고 성 밖으로 줄을 늘어뜨렸다.

 그런 티노를 향해 빛나는 재질의 흑색 플레이트를 착용한 기사 2명이 양쪽에서 검을 들고 달려왔다. 아마도 성벽의 수비군을 지휘하는 흑기사들인 것 같았다.

 "조심해!"

 쐐액!

 퍼억!

 조심해라는 소리가 미처 티노의 귀에 닿기도 전에 도네이스가 날린 화살이 흑기사의 투구를 뚫어 버렸다.

 화살에 머리통이 꿰뚫린 흑기사는 성 안쪽으로 떨어졌다.

 그사이 티노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당환한 적의 목에 검을 꽂는 데 성공했다.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빠르기로 가볍게 흑기사 1명을 처리한 티노는 열 개의 밧줄을 성벽 밖으로 늘어뜨렸고 대원들은 그 줄을 잡고 앞다투어 성벽 위로 올라갔다. 

 전투는 생각과는 달리 접전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진행되었다.

 미노와 수니의 난동에 이어 흑마법진이 해제된 것을 알아차린 적들이 혼란에 휩싸였던 것이다.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적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크하하핫!"

 "죽어랏!"

 이동하는 동안에도 살벌한 수련을 해 왔던 돌풍 용병대원들은 마음껏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주어지자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수의 힘은 물론 마나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그들은 마수보다 더 거친 기세로 상대방에게 달려들었고 기세에서부터 밀린 다크니스들은 하나둘 죽어 갔다.

 미노와 수니의 난동 때문에 지구라트 밖으로 뛰쳐나온 흑마법사들도 횡액을 당했다.

 "1조!"

 세류의 명령에 50명이 동시에 스크롤을 찢자 매직 미사일과 파이어 레인 그리고 파이어 볼트가 지구라트 전체를 감싸는 범위로 타격했다.

 "2조!"

 역시 50명이 동시에 스크롤을 찢자 파이어 윌과 파이어 플레임 등 화염 계열의 마법이 겨우로 실드로 1차 공격을 막은 흑마법사들을 덮쳤다.

 "3조!"

 마지막에 대기하고 있던 50명이 스크롤을 찢자 선더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 등의 전격 계열의 마법이 화염 마법을 겨우 막아 낸 흑마법사들을 덮쳤다.

 지지직!

 "크아악!"

 "블링……. 크윽!"

 4서클 이상의 흑마법사들이 다크 실드를 연속해서 펼치고 블링크로 피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 공격이 또 있었다.

 "매직 미사일!"

 "매직 애로우!"

 비록 전 서클의 마법이지만 유도 기능이 있는 것에 더해 6서클 마도사가 펼친 마법이라 그 숫자는 백 개가 넘었다.

 레올은 성내로 난입한 코엠 길드와 돌풍 용병대의 공격이 거세지고 패색이 짙어지자 최후의 수를 쓰기로 작정했다. 자신의 마법에 죽은 코엠 길드원이 사체가 빛 모래로 변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내린 결정이다.

 '우리처럼 이방인이라 이거지. 다른 성들과 마찬가지로 유저들이 쳐들어온 거군.'

 그가 생각을 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수하들은 비명과 함께 죽어 가고 있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숫자에서 당해 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적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족히 자신들의 서너 배가 넘는 것 같았다. 기사 전력도 달리고 마법사들의 마법도 상대의 대응 마법으로 무효화되거나 되돌아와 시전자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들도 꽤 많은 숫자의 적을 죽였지만 점점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상대를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자신들 쪽의 희생자가 더 많이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마법진은 어떻게 해체를 한 거지? 그리고 마수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을 쌓는 노역을 한 자들의 사체를 이용해서 스켈레톤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적들의 스크롤 공격에 다수의 흑마법사들이 사망하고 이제 개별 공격을 당하는 상황이라 그것들을 소환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이 정도 숫자면 소환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

 겨우 200구 정도의 스켈레톤으로는 태풍처럼 밀려드는 적들의 기세에 먼지처럼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으아아! 이 빌어먹을 놈들아!"

 성주가 악을 쓰며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고 있지만 그가 상대하는 인물은 놀랍게도 손바닥 길이의 검기를 발현시켜 오러 블레이드를 상대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부숴 버린다는 오러 블레이드가 비록 선명한 색에 두텁기는 하지만 검기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저놈도 필시 베타테스터에 슈퍼 캡슐 사용자이겠군. 흑마력으로 일시에 올린 성주의 실력으로는 저 검사를 상대할 수 없어.'

 성주와 자신처럼 스페셜 캡슐 사용자라야 저 정도 무위가 가능하다. 어차피 거대 세력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소드 마스터지만 현실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어느 길드 소속인지는 모르지만 검을 제대로 익힌 자로군.'

 딜런의 검기는 색도 선명할 뿐 아니라 그 움직임이 가볍고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기에 강제로 만들어진 소드 마스터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벌써 반 이상이 쓰러졌다. 기대를 했던 마법사들도 힘을 쓰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연방 쓰러지는 마법사들의 모습이 눈에 가득 담겼다.

 상대 마법사들이 아니더라도 이미 근접전이 된 터라 마법사들은 마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실드와 블링크로 몸을 보호하고 기사들의 뒤에서 파이어 볼과 같은 근접 마법 공겨밖에 쓰지 못하고 있었다.

 레올이 판단한 전황은 최악이었다. 도저히 전세를 돌릴 방법이 없었다. 믿었던 성주마저 익스퍼트 최상급으로 추정되는 적에게 잡혀 있을 뿐 아니라 갈수록 오러 블레이드의 길이와 두께가 줄어들고 있으니 필시 죽고 말 것이다.

 '쳐들어온 놈들이 모두 이방인이라면 방법은 있지.'

 자신들은 이곳을 부활지로 지정했지만 멀리서부터 원정을 왔을 것이 분명한 저들은 아닐 것이다. 길드들은 대부분 길드 본거지로 부활지로 선정한다.

 어차피 전세가 기운 마당이고 추가 세력이 없으니 함께 죽으면 이 성은 사슬 후에는 다시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다. 놈들은 다시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흑마법에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몇 명의 실력자들로는 자신들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포이즌 미스트!"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이 데빌 산맥에서 채집한 수많은 독을 성벽과 성내의 바닥 곳곳에 바르고 숨겨 두었다. 비록 5서클 흑마법이지만 성을 중심으로 펼쳐 놓은 흑마법진이 그 위력을 강하게 만들어 독 안개는 순식간에 성을 에워싸고 피어났다.

 "윽! 목이……."

 "독이다!"

 성 외곽에 포진하고 있던 코엠 길드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체는 금방 시퍼렇게 변하더니 이내 검게 물들어 갔다.

 독 안개는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고 괴물처럼 대상자를 삼키고 있었다.

 "미친!"

 "도망쳐!"

 "저놈부터 죽여!"

 어느새 전투는 그쳐 있었다. 적아를 막론하고 저마다 독안개를 피하려고 난리를 치고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흑마법진의 영향으로 공기의 흐름이 극도로 느려진 성을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기가 라이트닝 파워!"

 "선더 스피어!"

 레올은 독 안개를 태우며 자신을 향해 날라오는 시퍼런 뇌전과 벼락 창에 황급히 입을 열어 주문을 외웠다.

 "다크 실드! 다크 실드!"

 실드를 중첩해서 건 레올은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오픈!"

 안 그래도 마나가 거의 다 소진된 상황이라 5서클 마법을 막아 낼 수는 없다. 이왕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그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동화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바로 그 일이다. 스페셜 캡슐 사용자인 그는 최소 40% 이하로 낮추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넘으면 살아남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병신이 된 몸으로 조직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의 머리가 무섭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5서클 마법이 이런 곳에?'

 5서클 마법을 연달아 펼치는 것을 보면 6서클의 마도사임이 틀림없다. 설마 마탑에서 직접 나온 것일까? 마도사가 마츠루트 요새도 아니고 광신지대도 아닌 이런 척박한 곳에 세워진 성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상대 마법사들 중 마도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너무나 허무하게 흑마법진이 해제된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그 위치에 걸맞게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으리라.

 '빌어먹을!'

 이렇게 되면 자신이 동료들까지 죽여 가며 쓴 포이즌 미스트도 소용이 없게 된다. 6서클 마도사 2명에 소드 마스터의 전력이면 자신들이 다시 부활을 하더라도 이 성을 탈환할 수 없었다.

 '그럼 모두 이방인이 아니었단 말인가?'

 "동화율 재 설정! 38 아니 35퍼……. 크아악"

 치지직! 푸욱!

 중첩해서 펼친 다크 실드는 6서클 마법에 허무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마지막 두 음절만 더 냈으면 되는데 중간에 수정을 하는 바람에 그걸 끝내지 못했다. 두 줄기 뇌전이 그를 직격한 것이다.

 '죽……는 건가?'

 온몸이 시꺼멓게 타 버리는 순간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레올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 수간 아련하게 들려오는 소리들이 있었다.

 "싸가지, 흩어진 독을 흡수해!"

 '……독을 흡수한다고? 어떻게? 대체 어떤 놈들이 쳐들어온 거야?'

 "커억!"

 '성주마저?'

 독 안개가 퍼지는 순간부터 어떻게든 도망을 치려고 눈치를 보던 성주가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 든 순간 상대의 검에서 느닷없이 솟아나온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심장을 찔러 버린 것이다.

 그 순간 그의 몸은 새까많게 타 버리고 영혼은 소멸되었다.

 레올의 부릅뜬 동공에 허공에 떠오른 작고 검은 구슬이 독 안개를 강력한 흡수력으로 빨아드리는 모습이 맺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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