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對 다크니스 회의
헤르쉬가 제국 정보 길드를 이용해서 다섯 세력을 며칠간 오가자 결국 그들은 회합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다크니스를 상대하려면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적대적인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회의 장소는 보안 결계를 삼중으로 친 제국 정보 길드의 지부 사무실 지하로 정해졌다.
세 제국의 실세들은 앙금이 많아 서로 보기를 꺼렸지만 사안이 엄청난 만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1명만 동행하고 회의장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다른 수행원들은 결계 밖에서 대기를 해야만했다.
파이린 제국에서는 이벨린 황녀와 일룸이 참석했고 신 테론 제국에서는 란트렐 황사와 호튼 후작이, 미노 제국에서는 미노스 공작과 토틀란 후작이 참석했다. 마탑 연합에서는 파코추 마탑의 후버론과 일루젼 마탑의 마탑주 아인스트가, 신전 측에서는 빛의 신전과 라 신전의 성녀와 총교가 참석했다.
모두 어색함을 느낄 찰나 자리에서 일어난 헤르쉬가 어색한 정적을 깨뜨렸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잘 알고 계신 분들이니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 자리까지 오신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만큼 좋은 결과가 도출되기를 희망합니다."
헤르쉬가 중립적인 입장이니 당연히 회의를 주재했다.
"일단 현 상황에 대해 짧게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하룬대장!"
헤르쉬의 시선을 받은 하룬이 원탁 앞으로 나왔다.
"돌풍 용병대의 하룬입니다. 마탑과 파이실 황실의 의뢰를 받아 이 일에 깊숙히 관여하게 된 이유로 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영상과 함께 현재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하룬을 바라보는 참석자들의 시선은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다들 다크니스에 대한 정보를 하룬이 조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개 용병이지만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팟!
하룬이 마나를 주입하자 탁자 위의 수정 구슬이 빛을 발하더니 한쪽 면에 미리 쳐 둔 검은색 천 위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영상으로 쏠렸다.
"이곳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알고 계신 사실이지만 다시 한 번 현재 데빌 산맥에 현황을 짚어 보겠습니다. 지금 보시는 정지 화면은 데빌 산맥 인근을 축소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약 두 달 전에 본 용병대의 비밀 대원들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편집했습니다."
천 위로 비친 데빌 산맥의 영상은 축소된 상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데발 산맥은 북쪽은 높고 남쪽은 낮으며 동서로 길게 뻗은 지형에, 스무 개에 달하는 활화산이 아직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쪽은 후크란 산맥, 북쪽은 마츠 평원과 연결되어 있고 동쪽은 광활한 어둠의 숲과 이어져 있습니다. 또한 산맥을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는 협곡을 따라 흐르는 다르 강을 경계로 남서쪽은 신 테론 제국이, 남동쪽은 미노 제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룬은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보고를 이어 갔다.
"다음으로 눈여겨보실 것은 점으로 표시된 지점입니다. 그 점은 여러분들이 익히 아시는 성입니다. 총 숫자는 일흔 두개로 이렇게 보면 세 겹의 거대한 역오망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짐작하시듯 본 용병대의 마법부는 이 역오망성이 거대한 흑마법진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며 일흔 두개의 성은 마법진을 가동 시키는 코어포인트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참석자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익히 아는것과는 다른 보고에 절로 상체가 영상 쪽으로 쏠렸던 것이다.
"오! 이렇게 보니 확실히 역오망성의 흑마법진이 맞는군!"
후버룬이 무릎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입수해서 본 영상은 편집되긴했지만 이렇게 데빌 산맥 전체를 한 번에 볼 수 있게 축소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성의 존재에 의구심이 가졌지만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첩 흑마법진이라니!"
일루젼 마탑의 아인시트 마도사가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300년동안 흑마법사로 의심되는 자들은 제국과 마탑 그리고 우리 신전들이 나서 모조리 잡아 죽였는데!"
라 신전의 총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이방인들이 섞여 있다는 보고는 들었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이런 세력을 일으키지 못할 테고 분명히 우리 세계의 흑마법사들이 주축일 텐데 말이오."
"아마 각 마탑에도 숨어 암약을 하고 있었을 거요."
"뭐요? 우리 마탑들을 의심하는 거요?"
"예전에도 그러지 않았소?"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은 신전과 마탑 세력 간에 벌어진 언쟁으로 인해 잠시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헤르쉬의 중재로 참석자들은 이내 이성을 되찾고 다시 하룬에게 시선을 모았다.
"흑마법진의 코어 포인트로 짐작되는 성들은 그 중심부에 초고대 문명의 유산으로 알려진 에테메난키라는 특이한 건축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경험한 성의 전력은 상당했습니다. 마법 쪽으로는 6서클 흑마법사 1명과 4명의 5서클 마법사 그리고 그 이하 경지인 듯 보이는 30명 남짓의 흑마법사들이 있었고,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전사들이 10여명을 포함하여 익스퍼트가 50명 전후, 그리고 일반 전사들이 200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오면서 경험한 다른 성의 전력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성의 전력이 총 1,500명 정도로 증원되었고 그중 2할은 흑마법사였지만 6할이 오츠왈드 후작가의 마나 연공법과 검술을 익혀 익스퍼트가 된 흑기사와 소드 유저 급의 흑전사라고 불리는 이들이었습니다."
"후웁!"
신전 인물들은 경악했고, 이미 하룬에게 이 정보를 들은 사람들도 자신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력에 얼굴이 굳었다.
"또한 더 염두에 두어야 할 저들의 전력은, 언데들과 마수들입니다. 산맥 안에 거주하는 산악 부족들의 경우는 매장이 아니라 화장을 하기에 현재까지는 언데드를 보기 힘들지만 본격적으로 다크니스가 발호해서 수많은 사상자가 날 경우는 언데들까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겁니다. 우리는 흑마법사가 테이밍한 마수들은 물론이고 스켈레톤 마수들까지 경험했습니다. 다들 알고 계셨지만 이 데빌 산맥에 서식하는 하급 마수들이라도 4서클 마스터 경지의 마법사나 익스퍼트 초급 이상의 기사 들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하룬은 사람들의 얼굴을 질리게 만든 다음 제자리로 돌아갔다.
"휴우! 정말 상상이상이군."
"일반 병사들은 이곳에서는 거의 소용이 없겠군."
브리핑을 들은 사람들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지 않은 상황에 심각한 얼굴이었다.
잠시 동행한 이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 헤르쉬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어디에서 나타난 것이든, 그들의 목적이 데빌 산맥을 아우르는 거대한 흑마법진을 가동시키는 것이 목적임이 확실한 만큼 오늘의 회의는 그것에 대해 논의를 하는 자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헤르쉬가 그렇게 물꼬를 텄지만 참석자들은 한동안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다크니스가 왜 이런 거대한 흑마법진을 구동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후버론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후유! 평생을 마법을 연구한 이로서 이런 규모의 마법진을 구동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소. 확실한 것은 그들의 의도가 우리 모두에게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거란 사실이오. 타키닌의 흑마법을 익힌 흑마법사들과 오츠왈드 후작가의 사이한 검술을 익힌 흑기사들과 흑전사들의 출현으로 어떤 연유로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는 몰라도 이대로 방치한다면 땅을 치고 후회를 할 거란 사실은 확신할 수 있소."
"그렇습니다. 거대한 흑마법진이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대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거란 사실은 분명하지요. 결국 이해가 직접적으로 걸린 우리 다섯 세력은 전력을 다해 흑마법진의 코어 포인트인 성이 완성되지 못하게 하는 한편 그 주동 세력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란트렐의 말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뜨거운 눈빛으로 동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본 제국은 이곳으로 돌릴 전력이 그리 많지 않소."
미노 제국의 미노스 공직이 솔직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그건 우리 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막 건국한 터라 치안을 유지하는 것과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데빌 산맥과 인접한 영지군을 동원하는 것도 무리입니다. 이미 시도했지만 워낙 전력에서 차이가 커서 전혀 타격을 줄 수 없었습니다."
란트렐도 솔직하게 신 테론 제국의 현실을 시인했다. 숨길 필요 없이 세 제국의 사정은 모두 비슷했던 것이다. 세 제국 모두 막 건국을 한 시점이라 이제 겨우 민심을 다스리고 있는 상황이다.
마법사들도 그렇지만 영지군의 핵심 전력인 기사들의 경우 평지가 아닌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는 그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더해 데빌 산맥은 기사들도 상대하기 힘든 마수들이 들끓는 곳이다.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은 영지군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강제 징병은 민심을 이반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겨우 한두달의 훈련으로는 싸우는 것은 고사하고 데빌 산맥이라는 험준한 곳에 제대로 기동하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 돈을 모아 용병을 동원하면 어떨까요?"
내내 침묵을 지키던 이벨린이 의견을 냈지만 다른 두 제국의 참석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귀족제도를 없애는 것과 동시에 각 영주관을 강제로 장악하고 모든 보물들을 챙긴 파이린 제국은 자금이 풍부할지 몰라도, 귀족제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노예만 해방시킨 다른 두 신생 제국의 입장은 달랐다.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자금을 융통하는 것은 물론 제국이 가지고 있는 각종 관리까지 파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신전은 어때요?"
헤르쉬의 질문에 침묵을 지키던 성녀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마츠 평원에서 흑마법진과 그들이 소환한 언데드들을 상대한 적이 있습니다."
참석자들의 관심과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들은 성녀의 말을 통해 어쩌면 공동의 적으로 부상한 다크니스의 전력을 더 알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흑마법진은 대낮인데도 언데드들이 최적의 상태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흑마법진의 빠진 우리는 마치 물속에 빠진 상태로 적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언데드들은 신성력에 어느 정도 대항력을 가지고 있어 상대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또 흑마법진 안에서는 상처에 신성 치료를 해도 쉬이 회복되지 않았고 신성력이 빠르게 소진되었습니다."
성녀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언데들의 상극은 신성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라 신전의 총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막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하룬이 끼어들었다.
"사실입니다. 저희 돌풍 용병대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마탑과 황실에서 파견된 이들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하룬의 말에 이벨린과 후버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마법진이 펼쳐진 곳의 상공에는 먹구름이 떠 있었고 마치 저녁처럼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그 속으로 들어가니 이질적인 기운으로 가득해서 무거운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는 마법이 자동으로 캔슬되거나 해제되기도 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하룬 대장? 그런 보고는 없었는데……."
후버론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신성력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놀라운데 마법까지 제대로 펼칠 수 없다는 말에 기함을 한 것이다.
"마탑분들과 동행할 때는 그런 경우가 없어서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카르라고 불리는 산악 부족 중 한 부족의 마을이 마수들과 몬스터들의 접근을 피하기 위해 펼쳐 두었던 주술 결계가 그 외각에 흑마법진이 완성되자 해제되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그들 부족의 주술사 말이 마법도 주술과 마찬가리로 흑마법진 안에서는 그 위력이 약화되거나 강제로 해제되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룬의 말에 마법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어! 이거 정말 큰일이군. 그렇다는 이야기는 거대한 흑마법진이 완성되면 우리 마법사들 역시 그 안에서는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후버론의 말대로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회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미근한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은 심각한 상황임을 인지하자 서서히 속내를 드러내며 의견들을 제시하고 적극적으로 토의하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오후 늦게까지 토의를 했지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활용 가능한 방안을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 다시 만나서 토의를 하도록 하지요."
열띤 토의를 했지만 얻은 것이 없는 터라 사람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완연하게 드러났다. 이제 돌아가서 상부에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아야 했다. 참석자들은 진이 빠진 얼굴로 요새로 돌아갔다.
"뭔가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과연 있을까요, 대장?"
"그러게 말이오. 나 역시 오늘 나온 방안 의외에는 다른 것이 나올 것 같지 않은데……."
하룬 역시 헤르쉬와 같은 생각이었다. 한 번에 전 방위로 공격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소수 정예로 각개격파를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전략들이 쏟아졌지만 각 세력의 전력을 모두 동원할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그 효용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들이 돌아가서 상부에 보고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논의를 거쳐 어떤 지시가 내려오지 않겠습니까? 일단 내일을 기대해 봐야죠."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해 봤고 그나마 수업 시간도 적은 토론 강의는 수강한 적도 없는 하룬으로서는, 사안의 심각함을 알지만 온몸이 근질거릴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내일 또 이런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후후후! 대장의 얼굴의 보아하니 이런 자리가 무척 힘들었나 보네요?"
얼굴에 생긱이 드러난 것일까? 헤르쉬가 하룬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영 적응이 되지 않는군요. 바로 생각이 나지 않으면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편한 터라서……."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용병인데 나중에 그 결과를 보면 꼭 미리 생각해 놓고 행동한 것 같으니 수상하단 말이야."
헤르쉬의 말에 하룬은 손사래를 쳤다.
"아무튼 헤르쉬도 내일까지 좋은 생각이나 해 가지고 와요. 난 그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차나 마실 테니까."
"각각 구역을 정해서 다크니스를 상대하면 어떨까요?"
이튿날 다시 모였을 때 이벨린이 한 제안이었다.
"용병을 구하건 가용 가능한 전력을 동원하건 그건 각 세력의 자율에 자신들이 맡은 구역을 책임지는 거지요."
"으음!"
생각보다 괜찮은 의견이었다. 국적이나 색깔이 너무 상이하니 한데 뭉쳐서는 지휘권의 혼란은 물론 효과적인 전투 수행도 어려우니 그게 최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마탑의 경우 근접전을 벌일 무력이 너무 부족하오. 마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용병들이라 봐야 그 숫자가 빤한데 그들 모두와 계약을 한다고 하더라도 마법사들을 받쳐 줄 근접 전력이 너무 부족할 거 같소."
"저희 신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각 신전의 전투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모두 모은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부족할뿐더러 부족한 전력에 해당하는 용병들을 고용할 자금이 부족합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기부금이 급감한 터라……."
대부분의 신전들이 그 본전을 황도 인근에 둔 터라 주 신자층인 귀족계급이 사라지자 신전들은 극심한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씀씀이는 예전과 같은데 수입이 9할 이상 줄었으니 비축해 둔 자금으로는 버티기가 힘든 상황인 것이다.
용병 문제도 그랬다. 용병들은 믿을 수 있느냐는 원초적인 문제는 용병 길드가 출범하고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 와서 괜찮다고 하지만 협공으로 마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력을 가진 B급 이상의 이상의 용병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어딘가와 계약을 하고 의뢰를 수행 중일 것이다.
밤늦게까지 제국 수뇌부들과 원거리 통신을 통해 회의를 하면서 간신이 찾은 방법이었다. 당장 빼낼 전력이 부족한 파이린 제국 입장에서는 용병들을 고용할 생각이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따면 이 방안도 소용이 없어진다.
"휴우!"
누군가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밤새 이런저런 경로를 다 동원해서 찾아봤지만 모두들 뾰족한 방안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하룬이 운을 떼자 사람들의 눈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고요의 땅에서도 기발한 생각으로 의뢰를 처리했던 하룬이라면 쓸 만한 아이디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한 것이다.
"이방인들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방인들을요?"
당장에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들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들의 숫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일을 수행할 정도의 실력자는 드물어요. 대장도 그건 아실 텐데요."
이벨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개개인의 능력만 고려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부활이 가능한 존재들입니다. 거기에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자연스럽게 파티를 형성하고 역할 분담을 하여 강력한 적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왔습니다. 이방인들 중에는 5천에서 1만 이상의 길드원을 가진 길드들이 수십 개나 존재합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이벨린만큼 이방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없다. 과연 하룬의 말 그대로였다. 다양한 가상현실 게임을 경험한 이방인들은 이곳에서도 자연스럽게 길드를 형성해서 이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한다면 이방인들은 길드 단위, 혹은 개인 자격으로도 다크니스르르 상대하는 일에 나설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할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의견이었다. 용병들과 이방인들까지 가세한다면 당장 부족한 전력은 충분히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보상이라면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대장이 생각하는 것은 뭐죠?"
다른 이들의 타당성을 따지는 사이 이벨린은 하룬이 말한 이야기의 맥을 제대로 짚어 냈다.
"전 이 땅이 현재 실질적으로 어느 제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점은 생각했습니다."
"그 말은……?"
"성을 제대로 공략한 이방들에게 성의 소유권과 인근 땅에 대한 지배권을 주면 적절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사실 성을 다크니스에게 뺏거나 파괴한다고 해도 실종자들은 고향이나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문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그들로 하여금 그곳 주민으로 살아가게 하고 적절한 땅을 배분해 주거나 할 일을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입니다. 아시겠지만 신 테론 제국이나 미노 제국 쪽의 성들은 광산을 낀 지역이 많습니다. 또 파이린 제국 쪽의 성들은 마츠 평원처럼 기름진 옥토沃土를 가지고 있거나 희귀한 약초가 자생하는 곳이 많습니다. 마수들과 몬스터들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자기 땅이 없는 실종자들 입장에서는 고향에 돌아가는 것보다 이곳에 정착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던 참석자들의 눈이 하룬이 말이 이어질수록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더 조사를 해 봐야겠지만 이방인들이 욕심을 낼 만한 성의 경우는 이방인들에게 맡기고 나머지 성들만 공격하는 방안도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 세 제국에서 성주와 그 일정 영역의 자치권을 인정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파이린 제국은 성과 일정 영역을 지배권을 될 것이고 귀족제도가 남아 있는 미노 제국과 신 테론 제국은 성을 차지한 이방인들에게 귀족 작위와 함께 지배권을 인정하면 될 겁니다. 영구적이 어렵다면 30년 혹은 50년의 기한을 두어도 좋고요. 길드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세금으로 징수할 수 있따면 이방인들은 틀림없이 이곳으로 모여들 겁니다."
"난 좋소! 하룬 대장의 의견을 전제로 한번 상세한 부분까지 의논해 봅시다."
란트렐이 가장 먼저 찬성을 하고 나섰다.
"저 역시 찬성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방안이 아닌가 싶군요. 이방인에게 맡기기에 부담스럽거나 그들이 욕심내지 않는 성들만 우리가 맡으면 되니 최소한의 전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이벨린까지 하룬의 말에 찬동하자 나머지 사람들은 이제 더 상세한 부분까지 토의하기 시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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