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0화.데빌 산맥의 마수들 (191/278)

《데빌 산맥의 마수들》

 해가 중천에 떴을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술기운에서 깨어났다. 이제 부상을 입은 아카족 전사들을 카르로 옮겨야 하는데 사람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여 티탄이 직접 카르까지 가서 상카를 비롯한 전사들을 데리고 와야만 했다.

 “헉!”

 “세상에!”

 전투가 끝났으며 돌풍 용병대가 카르 주변을 횡행하던 마수들을 모두 죽였다는 말을 전해 듣고 놀라서 따라온 카르의 수뇌부들은 엄청난 숫자의 마수들이 처참하게 죽어 널브러져 있는 현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숲 안에도 서른 마리 정도가 더 있고 숲 양편으로도 그 정도 숫자의 마수가 죽어 있습니다. 돌풍 용병대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네요.”

 티탄의 말이 맞았다.

 숲 안엔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곳까지 오며 숲 밖에 군데군데 죽어 있는 마수들은 보았다. 거기에 이곳에 있는 마수들의 숫자는 언뜻 보아도 이백 마리가 넘으니 아마 그동안 카르를 봉쇄했던 마수들이 모두 다 죽은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역할을 하지 못하던 결계도 다시 발동한 것을 직접 확인했다.

 “으음!”

 “놀랍군. 정말 하루 만에 의뢰를 수행해썽.”

 바타와 두 원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심하게 다치긴 했지만 죽은 전사는 없군요.”

 상카의 말에 바타가 확실하다는 듯 말했다.

 “포션을 물 마시듯 한 모양이야.”

 “하긴, 치료 포션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니 체력 포션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겠지.”

 “어디 그것만 썼겠는가? 산산조각이 난 마수들의 육편이 꽤 넓게 퍼져 있는 것을 보니 마법 스크롤도 꽤 많이 사용한 모양이야.”

 치투족의 두 원로는 나름대로 추리를 했는데 상카나 다른 전사들이 보기에도 꽤 적절한 추리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되질 않으니 말이다. 그들이 아는 아카족 전사들은 카르의 전사들보다 확실히 강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수를 살육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우리 카르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한 이들이다. 조심스럽게 옮겨라!”

 아무리 포션과 스크롤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카르의 전사들은 경의의 눈빛으로 아카족 전사들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들것으로 옮겼다.

 환자들이 이동할 준비가 다 끝났을 때에야 근처로 정찰을 나갔던 하룬이 도착했다.

 “고생이 많았소, 하룬 대장.”

 하룬의 롱코트형 방어구도 다른 대원들처럼 엉망이었다. 찢기고 뜯어진 것은 물론 누구의 피인지 모르지만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오셨군요.”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소.”

 바타의 말에는 진정이 느껴졌다. 마수들로 인해 한 달이 넘게 봉쇄가 된 것은 물론이고 하마터면 카르가 쑥대밭이 될 뻔했으니 의뢰비가 아깝기는 해도 고마울 수밖에 없다.

 “마수들은 여기에 있는 놈들이 전부이고 흑마법사들은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룬은 미리 준비했던 검은 로브 세 벌을 보여 주었다.

 바타와 원로들은 하룬의 말에 아무 의심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포션과 스크롤을 썼더라도 이런 전과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소.”

 “…….”

 넘겨짚는 말에 하룬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금은 좀 더 넉넉하게 드리겠소. 포션과 스크롤 값만 해도 엄청났을 텐데.”

 “그래, 맞소.”

 “우리도 조금씩 내겠소.”

 하룬이 말이 없자 바타는 그것이 마수들을 상대하며 들어간 포션과 스크롤 때문에 마음이 아파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고 미안해했다. 두 원로 역시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허, 참! 황당하군.’

 바타나 두 원로는 자신들 기준으로 하룬의 생각을 넘겨짚은 것이다.

 ‘뭐, 상관은 없겠지.’

 바타나 두 원로는 차후를 대비해서 하룬과 돌풍 용병대와 좋은 인연을 맺어 두려는 것이다. 레미나 다른 대원들에게 듣기론 치투족이 어지간히 돈을 밝힌다고 했었다. 의뢰비도 아까워할 줄 알았더니 뜻밖이었다. 역시 자리가 사람의 생각을 어느 정도 만드는 모양이다.

 대원들이 어느 정도 회복을 한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성수와 포션의 조합은 상상 이상의 빠른 치료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치료사인 레미는 물론이고 카르의 치료사들마저 기적이라고 놀랄 정도였다.

 “헤헤!”

 디볼트는 분명히 어깨에서 통째로 뽑히는 것을 보았던 자신의 오른팔이 제자리에 달려 있는 것이 신기한지 의식을 차린 이래로 툭하면 자신의 팔을 보며 실없이 웃곤 했다.

 “그렇게 좋냐?”

 “형은 안 좋아?”

 디볼트의 눈이 그를 흘겨보는 바첸의 다리로 향했다. 자신보다 먼저 마수의 이빨에 다리 한 짝을 통째로 씹혀 잘리는 것을 보았는데 멀쩡했던 것이다.

 “자식이! 안 좋기는 왜 안 좋겠냐? 다만 네가 하는 짓이 우스워서 그렇지. 그렇게 바보같이 넋 놓고 있는 것이 한심해서 그런다. 그 많던 마수들 앞에서도 용맹하게 맞서 싸웠던 우리 당당한 돌풍 용병대원 체면을 네가 다 깎아 먹잖아.”

 “그런가? 히히!”

 바첸의 타박이 듣기 싫었지만 디볼트는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심심한데 밖에나 나가자.”

 “안 돼! 레미 누나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레미 누나가 시킨 대로 신경조직을 움직이는 수련이나 할래.”

 “자식이 뭘 몰라요. 요즘 밖에 우리를 한번 보겠다고 치투족 아가씨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고 있는데. 나가서 한번 멋있게 웃어주기라도 하면 다들 뒤로 넘어간다니까.”

 “정말요?”

 “그래, 이 답답한 녀석아. 그러니까 나가서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으면 이참에 구애를 하는 거야.”

 아카족의 연애는 자유롭다. 다만 한 번 결혼을 하면 다시는 다른 이성을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로 정조를 지킨다. 다른 산악 부족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카르는 더하다. 치투족이 다수이지만 산악에서 내려온 여러 부족이 섞여 사는 만큼 하룻밤 사랑은 누구도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다.

 “마수들에 맞서 용맹하게 싸웠던 우리 아카족 전사들이라면 어떤 아가씨도 거부하지 못할 테니까 이참에 하나 꿰차라고. 너처럼 답답하게 굴다간 짝도 찾지 못하고 결국 총각으로 늙어 버릴 수도 있단 말이야.”

 바첸은 타박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늘 말이 없는 디볼트를 챙겼다. 그는 디볼트의 성격이 워낙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오히려 모표정한 얼굴과 침묵으로 그것을 감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럴까?”

 모처럼 디볼트는 혹했다. 작년에 성년이 되었지만 아직 연애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인근 몇 마을이 모여서 여는 축제 때도 짝을 찾는 구애의 춤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흥! 그러기는 뭐가 그래!”

 레미의 앙칼진 소리가 두 사람의 뒤에서 들려왔다. 두 대원은 눈을 질근 감았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레미에게 걸렸으니 한 소리 들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하룻밤 즐기고 마는 연애를 무척이나 혐오했다.

 “휴우! 아니다. 나가 봐!”

 “…….”

 “나가 보라고. 치투족 아가씨들이 하도 치료소를 들락거려서 내가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다.”

 레미의 말에 두 사람은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카르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했지만 너무 큰 피해를 입은 하룬 일행은 열흘을 꼬박 치앙 카르에 머물러야만 했다.

 비록 성수와 상급 포션으로 치료를 했지만 워낙 심각한 부상을 당한 터라 금방 회복이 되지는 않았다.

 특히 떨어졌던 팔다리를 다시 붙인 경우는 연결된 신경조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회복이 더뎠다.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끊임없이 접합한 부위를 움직여 예전 감각을 찾는 데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노력을ㅇ 한 끝에 남의 팔다리인 듯 감각이 없던 사지에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사이 하룬은 결계를 치는 주술과 그 재료들 그리고 나머지 대금을 받았다.싸가지의 능력이 올라가면서 더욱 확장된 아공간은 엄청난 양의 마수 가죽을 꿀꺽 삼키고도 아직 여유가 많았다.

 레미가 대원들의 치료와 재활에 온 힘을 기울이는 동안 하룬은 거의 매일 카르 밖으로 나가 수련을 했다. 이번에 새로 얻은 익스플로젼 소드와 성수의 새로운 활용에 대해 시험하기 위해 마수들을 찾아나선 것이다.

 마침 광범위 흑마법진의 영향으로 본능적으로 이끌려 카르 주변으로 몰려든 마수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특히 성수의 효과는 대단했다. 성수를 맞은 마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일쑤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성수가 닿은 가죽 부분은 동전 크기로 녹아 있었다. 흑마법진 안이 아닌 상태에서 성수는 마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상극이었던 것이다.

 하룬은 그 와중에 나이아를 활용한 공격 방법을 창안해냈다.

 “덮쳐!”

 하룬의 명령에 성수를 머금은 나이아가 마수를 감싸면 그 마수들은 통째로 녹아 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워터 볼이나 워터 레인을 펼치면 타격을 받은 마수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에 큰 구멍이 뚫려 죽고 ㅁ라았다.

 항성력을 가진 마수들이라면 몰라도 일만 마수들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새로이 알게 된 것은 성배가 하루에 열 번밖에는 성수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나이아의 존재로 인해 성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 그나마 만족할 수 있었다.

 성질이 다른 두 마나로 펼치는 익스플로젼 소드의 위력은 갈수록 강해졌다.

 꽈앙!

 굉렬한 소리와 함께 하룬의 전망 10미터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바위며 아름드리나무들이 산산조각이 나고 만 것이다. 응축의 강도와 부딪히는 속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폭발의 효과는 더욱 강해졌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서너 번 이 검술을 펼치면 정체불명의 마나는 몰라도 자연의 마나는 완전히 소진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내 빠르게 온몸을 통해 흡수가 되지만 그사이에 정체불명의 마나를 사용할 때는 완전히 괴물의 모습이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대원들이 이동이 가능한 상태로 호전되자 하룬은 카르를 떠나기로 작정했다.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을 수도 없을뿐더러 식량을 구하러 이곳으로 온 부르카족이나 에인족 그리고 아카족의 사정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치투족과 카르에 정착한 다른 부족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하룬의 지시에 따라 이곳을 떠날 준비를 거의 마쳤다. 그 숫자가 무려 300명에 육박했다.

 비록 대원들의 상태가 최상은 아니었지만 부르카족과 에인족 전사들도 있고 거기에 어린아이와 노약자를 빼고는 모두 한가락 하는 전사들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뒤늦게 마티를 비롯한 카르의 수뇌부들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출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정말 떠나겠소?”

 “더 머무르고 싶어도 의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소.”

 바타는 그를 붙잡아 두고 싶은 모양이지만 하룬은 더 이상 카르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아카족 대원들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대원들이 절반이 넘는데도 가려는 것이다.

 “휴우! 할 수 없군. 그럼 나중에 꼭 들르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그러겠소.”

 바타는 아쉬운 모양이지만 이미 출발 준비를 다 한 상태이고 하룬이 단호하게 입장을 표명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갈수록 데빌 산맥의 상황이 안 좋아질 테니 결국은 근처 부족들은 우리 카르로 올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카르의 전력도 마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지겠지.’

 바타는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그대 역시 내내 건강하시길 바라오.”

 하룬 일행은 바타를 비롯한 카르 주민들의 아쉬움 속에 카르를 떠났다.

 카르의 목책 문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온 전사들의 숫자는 물경 100명을 헤아렸다.

 하룬은 선두를 디온과 타킴에게 맡기고 대원들과 같이 부상자들과 노약자들을 호위했다. 부르카족 전사들이 좌우 양측을, 에인족이 후미를 맡았다.

 환자들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한 레미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하룬의 곁으로 왔다.

 “환자들은 어때?”

 “다들 강인한 전사들의 후예라서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낙오할 정도는 아니에요. 심각한 환자는 더 이상 없으니까요.”

 성수와 포션 그리고 레미의 치료까지 받은 환자들은 상태가 급속하게 호전되어 이제 다들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행이군. 그런데 얼마나 걸릴 거 같아?”

 “티탄이 사는 마을까지는 약 일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하지만 아직 다 낫지 않은 환자들이 있으니 하루나 이틀 정도는 더 걸릴 것 같아요.”

 “그래. 되도록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일정을 조정해. 산맥에 들어갈 때까지는 몸이 준비되어야 하니까.”

 “네, 대장.”

 마음은 급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그저 그사이에 별일이 없기만 바랄 수밖에…….

 하룬의 그런 마음이 통했던 걸까? 나흘이 지나 데빌 산맥으로 들어갈 때까지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수가 떼거리로 나타나기 전까지 마츠 평원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 오크 무리를 세 번 정도 만났지만 놈들은 3백이나 되는 대인원에 감히 도발하거나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곳에 사는 블랙 오크들은 마수를 사냥하면서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인간들이 얼마나 강한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다.

 트랩을 잘 다루고 길눈이 밝은 에인족들은 잘 때가 되면 숙영지 근처에 덫이나 각종 함정을 잔뜩 설치해서 불침번을 보는 전사들을 제외하고는 편하게 푹 잘 수 있었다. 활을 잘 다루는 부르카족들은 끼니때가 되면 살이 토실토실하게 오른 물소나 사슴 종류를 몇 마리씩 사냥해 오곤 해서 일행은 영양가 높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카족 대원들은 이동이 멈추면 수련에 매진을 하면서 가끔은 일부러 사냥에 따라 나갔다. 대부분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터라 예전 감각을 찾기 위해서는 사냥과 수련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숙면과 질 좋은 식사, 무리하지 않을 정도의 이동속도 그리고 충분한 휴식으로 인해 데빌 산맥으로 진입했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산맥으로 진입했을 때 하룬은 이들이 얼마나 산을 잘 타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평지에서 이동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까지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역시 대대로 마수들을 사냥하며 살아온 강인한 부족들이군.’

 티탄이 사는 악스란트 마을이 가장 가까웠지만 그래도 허리에 구름이 걸린 높은 산을 세 개나 넘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몸이 산산조각이 날 정도의 험준한 산길과 수시로 출몰하는 마수의 습격이 데빌 산맥에 들어섰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산악 부족들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은 마치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하게 나 있었다. 언뜻 보면 길이라는 것도 알 수 없는 희미한 흔적이지만 산악 부족들은 마치 뻥 뚫린 대로를 걷듯 잘도 찾아내서 움직였다.

 간신히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소로들이 대부분이라 대열이 길어졌고 그 때문에 마수들이 습격을 해왔다.

 바위가 많은 소로 근처에는 2미터가 넘는 도마뱀의 동체에 날개가 달린 팔스콘이란 마수들의 영역이었다. 비늘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놈들의 가죽은 마치 쇠처럼 단단했고 날개라기보다는 두꺼운 피막에 가까운 날개로 은밀하게 접근해서 후려치는 꼬리의 위력은 바위를 부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환한 햇빛이 있는 곳은 놈들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그늘진 곳에서는 여지없이 습격을 받았다. 두 번째로 넘는 산이 특히 그런 길이 많았다.

 막 선두의 디온과 티탄이 그늘 속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온다!”

 그 뒤를 따르던 타킴이 갑자기 나타난 팔스콘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슈욱!

 선두의 티탄은 당황하지 않고 순식간에 잣니을 향해 날아오는 팔스콘을 향해 미리 재운 화살을 날렸다.

 끼르르!

 듣기 싫은 울음소리와 함께 팔스콘이 피막 날개 한쪽을 접으며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아쉽게 목을 노린 화살이 놈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 팔스콘의 꼬리가 몸의 회전력과 더해져 강력한 일격을 가해 왔다.

 “놈!”

 디온이 대검을 휘둘렀다. 이미 프로즐리의 힘을 끌어 올린 상태였기에 대검은 검풍을 일으키며 놈의 꼬리를 맞이했다.

 까앙!

 강렬한 금속성과 함께 튕겨지는 대검을 쥔 디온의 몸이 흔들렸다. 하지만 팔스콘 역시 꼬리에 강력한 타격을 받고 잠시 중심을 잃고 빙글 돌며 추락했다. 하지만 곧 날개를 흔들어 중심을 잡고 있었다.

 타앗!

 타킴의 뒤에 있던 포톤이 기합성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시꺼먼 무언가를 던졌다. 그는 에인족 전사였다.

 촤르르!

 그것은 반경 4~5미터를 덮을 수 있는 큰 그물이었다. 하지만 보통 그물과 다른 것은 그 재료였다. 가는 쇠사슬로 만들어진 것이다. 쇠사슬로 촘촘히 격자 문양으로 꼬아 만든 그물의 끝부분에는 둥근 쇠 구슬까지 달려 있어 펼쳐지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사슬 그물은 막 중심을 잡으려던 팔스콘의 몸을 순식간에 덮었고 포톤의 육중한 거구가 순간적으로 놈의 무게에 휘정거렸다. 뒤에 있던 다른 전사가 잡아주지 않았으면 절벽으로 추락했을 정도로 무거웠던 것이다.

 팔스콘은 몸이 강하게 구속되자 맹렬하게 꼬리를 흔들었지만 그럴수록 그물은 더욱 강하게 조여들었다. 쇠구슬로 만든 그물추들 간에는 마수의 힘줄을 꼬아 만든 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줄의끝은 손잡이와 연결되어 줄을 잡아당기자 그물이 조여들었던 것이다.

 “우와악!”

 포톤이 고함을 지르자 그의 근육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르며 그물에 걸린 팔스콘이 위로 끌려 올라왔다.

 파앗!

 그의 왼손에 들린 창이 번개처럼 그물에 걸린 팔스콘을 향해 떨어졌다. 통째로 쇠로 만든 그의 창은 보통 창에 비해 굵기는 절반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가벼워 빠른 움직임이 가능했다.

 끄아악!

 포톤의 창은 정확하게 팔스콘의 눈을 꿰뚫고 들어갔고 그의 손목이 움직이자 창대가 돌아가며 놈의 뇌를 헤집어 놓았다. 놈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동체를 발작적으로 움직이자 포튼의 몸이 다시 비틀거렸지만 용케 중심을 잡았다.

 결국 팔스콘의 몸이 몇 번 꿈틀거리더니 그 움직임이 멈추었다.

 포톤은 그물을 끌어 올려서 조였던 끈을 풀었다. 어지간히 무거웠던지 그물을 잡았던 오른손을 연방 쥐었다가 푸는 포톤 대신 뒤에 있던 전사가 예리하게 날이 선 단검을 꺼내 팔스콘의 주둥이 주변을 몇 번 쑤시더니 익숙한 솜씨로 가죽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긴 가죽이었지만 하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결이 있는 듯 곧 놈은 뽀얀 속살을 드러낸 상태로 도축이 되었다. 전사는 피막까지 정성스럽게 벗겨 냈다. 그러고는 주둥이를 벌려 단검을 쥔 손목을 입안으로 집어넣은 전사가 잠시 움직인 후에 마정석이 거짓말처럼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가라!”

 익숙한 솜씨로 도축을 마친 전사는 속살을 드러낸 팔스콘의 사체를 절벽으로 밀어 버렸다. 놈의 사체는 바닥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래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호오! 굉장하군!”

 대열의 중간에 있던 하룬은 그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탄성을 질렀다. 포튼의 무지막지한 힘과 전사들 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힘이 정말 세군!”

 하룬이 감탄하는 것을 듣고, 앞에 있던 레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들 역시 마수의 힘을 사용하거든요.”

 “그런가?”

 하긴 그렇지 않다면 아래로 떨어지려는 마수의 육중한 거구를 들어 올리기 힘들 것이다.

 “다만 우리처럼 문신의 형태가 아니라 마정석을 곱게 갈아 어릴 때부터 조금씩 섭취하는 방식으로 사용해요. 그래서 그 효율은 많이 떨어지지만 우리처럼 짧은 식나이 아니라 오랫동안 쓸 수가 있지요.”

 “그럼 부르카족도 마수의 힘을 쓰는 건가?”

 “그럼요. 산악 부족은 모두 마수의 힘을 써요. 부르카족의 경우는 우리처럼 문신을 새기는데 우리와 다른 것은 그들의 경우 오직 샤키의 눈과 프로즐리의 힘만 사용한다는 거지요. 활을 주로 사용하는 그들에게 다른 마수의 힘은 별로 효용가치가 없거든요. 우리 전사들이 그렇듯 마수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오랜 시간과 많은 경험이 필요하니까요.”

 하긴 오러가 아니면 마수들의 가죽을 어찌할 수가 없으니 타고난 힘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산악 부족들 모두가 방법이나 그 쓰는 숫자는 다르지만 마수의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선조는 아득한 옛날에 하나였을 것이다.

 대낮이었지만 산과 산 사이에 자연처럼 조성된 원시림 속은 햇빛이 그다지 많이 들지 않아 많은 마수들이 사냥을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다.

 체로키라는 놈은 숲에 사는 마수의 대표적인 예였다. 키가 인간보다 조금 작지만 팔의 길이는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긴 채로키의 외모는 길고 두터운 털이 온몸에 나 있어 꼭 유인원처럼 생겼다. 하지만 입 밖으로 빠져나온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들과 손가락 길이의 강철 같은 손톱 그리고 주먹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는 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중급 마수에 속했다.

 “이런 숲에 주로 사는 체로키는 아주 영악하고 상체 근력이 좋아서 던지는 힘이 아주 강력해요. 놈들은 걷는 것보다는 나무를 옳겨 다니는 것을 편하게 여길 정도로 나무를 잘 타며 보통은 스물에서 마흔 마리씩 무리 지어 나무 위에서 살아요. 놈들의 영역에 잘못 들어가면 샤벨 타이거는 물론 프로즐리까지 놈들의 먹이가 되지요. 나무 위에서 포위를 한 놈들이 단단한 틸러스 열매를 한꺼번에 던지면 어지간한 맹수들은 즉사하고 말 정도예요. 숲에서 죽는 사냥꾼들의 상당수가 나무 위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는 놈들에게 당하곤 하지요. 우리도 거의 잡지 못하는 마수예요.”

 레미의 설명대로라면 대단히 위험한 마수였다. 한 마리로도 이미 강력한 마수인데 무리까지 짓고 있다면 더욱 위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근처는 놈들의 영역이 아니에요. 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인 대형 사슴 종류인 브브카는 산맥 안쪽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분지 근처에 많이 살거든요.”

 그래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숲으로 들어갔다.

 “이 숲은 두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있어 식생이 아주 풍부해요. 그래서 맹수들과 마수들이 좋아하는 초식동물들이 많아 조심해야 해요. 몬스터들 역시 산 위쪽보다는 먹잇감들이 모여드는 이런 숲으로 사냥을 나오니까요.”

 훤하게 드러나는 곳은 그만큼 방비하기가 좋기 때문에 큰 피해가 나지 않지만 햇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나뭇잎과 덩굴식물들이 밀집한 원시림은 그만큼 위험했다.

 두 시간여를 긴장하며 이동을 한 사람들은 특별한 징후를 느낄 수 없자 슬슬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조금씩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보니 조금만 더 걸으면 숲과 연결된 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나올 것이다. 일단 오르막에 닿으면 마치 초저녁처럼 어두운 숲이 끝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씩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지만 하룬은 반대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엇다.

 ‘이 감각은 뭐지?’

 뭔가 스멀거리는 기분 나쁜 감각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오감과 연관된 마수의 힘을 모두 끌어 올렸지만 걸리는 것은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불쾌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레미가 한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장, 이 나무가 틸러스 나무예요.”

 어른 1명이 간신히 팔로 안을 정도의 두께를 가진 틸러스 나무는 지면으로부터 한참은 나뭇가지가 없었지만 5~6미터 정도의 높이부터 가지가 나 있었다. 나뭇잎은 우산으로 써도 될 정도로 크고 넓었는데 얼마나 무성한지 그 위쪽은 보이지도 않았다.

 “데빌 산맥의 분지에 많이 자라는 이 틸러스 나무의 열매는 아이 머리통만한 크기에 10미터 높이에서 바위에 떨어져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견고해요. 하지만 결을 따라 잘 깨뜨리면 새콤달콤한 속살과 달착지근한 과즙을 먹을 수 있어요. 우리 부족은 틸러스의 과즙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한답니다.”

 “흐흐! 벌써 마시고 싶은걸.”

 뒤에 있던 두르본이 입맛을 다셨다. 근처의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때였다.

 하룬은 근처 나무들 위에서 나뭇가지가 뭔가에 눌리며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었다.

 “피해!”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 하룬이 거의 본능적으로 박살을 빼들고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너무 급박하게 휘두른 터라 마나도 실리지 않은 박살에 뭔가가 연속해서 걸렸다.

 타앙! 탕! 탕!

 “체로키다!”

 누군가의 고함과 함께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하늘에서 타원형의 큰 열매가 비가 오듯 떨어지고 있었다.

 퍽! 딱!

 “아악!”

 “크윽!”

 몇 사람의 비명이 들렸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열매를 박살로 쳐 내던 할누의 시선이 비명을 따라 바닥으로 향했을 때 그의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

 ‘세상에……!’

 발목까지 오는 풀들이 있던 땅바닥에는 몇 명의 전사가 쓰러져 있었고 사방에는 아이 머리통만한 크기의 열매들이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이건 너무 위험하다!’

 사람들은 연방 움직이며 피하려고 했지만 퍼붓는 열매로 인해 제대로 위랄 쳐다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하나둘 열매에 맞아 쓰러지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쓰러진 전사는 어깨를 맞았는지 부러진 그의 어깨는 균형이 맞지 않을 정도로 쑥 꺼져 있었다.

 ‘이 정도라면 샤벨 타이거가 죽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겠는걸.’

 그사이에 부르카족 전사들 몇이 연방 몸을 움직이며 화살을 날려보지만 정확한 목표도 없이 날리는 화살이라 애꿎은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맞힐 뿐이었다.

 일단 놈들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룬은 지체하지 않고 정령들을 불러내며 비수를 던졌다. 평범한 비수로는 소용이 없었다. 황혼의 킨드잘과 화염의 비수 그리고 투명 비수와 어둠의 비수가 정령이 동화된 채 위로 날아갔다.

 비수들은 쏟아지는 열매들을 피해 마치 거꾸로 오르는 연어들처럼 날렵하게 위로 솟구쳤다. 네 정령이 조종을 하는 비수의 위력은 바로 나타났다.

 끼륵! 꺅! 끄르륵!

 기괴한 비명과 함께 하늘을 가린 나뭇잎들을 뚫고 시꺼먼 물체들이 연방 떨어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놈들의 숨통을끊어!”

 하룬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명령을 내리며 나무를 향해 뛰어올랐다. 점핑 스킬로 단번에 무성한 나뭇잎을 뚫고 날아오른 하룬은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해 쏟아지는 열매들을 피하거나 왼손으로 쳐 냈다.

 그 때문에 많이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의 나뭇가지에 멈춰 선 하룬은 지상에서 10미터 정도 높이의 굵은 나뭇가지에 흩어져 있는 기괴한 생김새의 마수를 볼 수 있었다.

 ‘저놈들이 그 체로키라는 마수로군.’

 지금 놈들은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각각 상이한 기운을 품은 비수들이 살아 움직이며 공격을 하자 일부는 긴 손톱으로 쳐 내려고 하고 일부는 피하느라 난리가 난 것이다.

 아래로부터 솟아오른 하룬을 알아차릴 정신을 가진 놈은 거의 없었다.

 ‘이때다!’

 하룬은 마나를 주입한 비수와 단검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시퍼런 오러 광이 흐르는 비수와 단검들은 긴 털들과 질긴 가죽들로 보호가 되는 몸이 아니라 주로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끅! 캐액! 끄륵! 끼륵!

 기괴한 생김새만큼이나 기괴한 비명을 흘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놈들의 이마나 눈에는 여지없이 비수와 단검들이 자루까지 깊이 박혀 있었다.

 이제야 하룬의 존재를 알아차렸지만 살아 움직이는 비수들을 피하느라 미처 어떻게 대처할 여유 없는 놈들은 하나둘씩 안면에 비수를 박은 채 떨어지고 있었다.

 황혼의 킨드잘과 투명 비수에 당한 놈들은 비명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지만 화염의 단검이나 어둠의 비수에 당한 놈들의 사체는 떨어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버렸다. 이미 그 내부까지 다 타버렸거나 모든 정혈이 빨려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깨르륵! 깨륵! 끽!

 우두머리인 듯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연속해서 짧고 높은 소리를 지르자 남은 체로키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을 쳤다. 워낙 무성한 나뭇잎 때문에 순식간에 놈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저놈은 가게 둘 수 없지.’

 하룬은 나뭇가지를 밟으며 더 위로 솟아올랐다. 근 20미터를 오른 끝에 마침내 인근 지역이 한눈에 보이는 꼭대기를 밟을 수 있었다. 그의 몸무게 때문에 휘청거리기는 했지만 하룬은 중심을 잡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우두머리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저기군!’

 하룬은 40미터 정도 떨어진 키 큰 나무의꼭대기 근처에 쑥 올라온 놈의 머리통이 보이는 순간 놈을 뒤쫓던 어둠의 비수에 동화된 위신느를떠올렸다. 그녀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놈의 머리통이 순식간에 위로 치솟았는데 그 턱 아래에는 어둠의 비수 자루가 보였다.

 깨액!

 예민한 그의 귀로 체로키의 비명이 들렸다.

 그러곤 가슴까지 위로 올랐던 놈의 몸이 다시 아래로 떨어지더니 뭔가에 걸렸는지 머리통만이 남았다.

 안면부를 제외한 놈의 털이 오그라들고 번들거리던 누런 피부가 급속하게 쭈그러들었다.

 ‘또 흡수를 하는 건가?’

 그 순간 위신느가 투덜거리는 것이 전해졌다.

 -이 징그러운 녀석. 또 이상한 짓을 하네. 우웩! 토 나올 것 같아.

 위신느의 예쁘고 귀여운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눈에 선했다. 자신도 찜찜하고 불쾌한데 순수한 기운을 가진 녀석으로는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하룬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비수들을 거둬들였다.

 -돌아와!

 비수들은 그의 명령에 돌아와 얌전히 암기 벨트의 제자리로 꽂혔고 정령들이 빠져나왔다.

 -히잉! 하룬, 나 정말 기분 나빠서 저 녀석하고는 동화 못 하겠어!

 위신느는 동화를 푼 즉시 하룬의 품에 안겨 앙탈을 부렸다.

 이미 어둠의 비수가 암기 벨트에 꽂힌 순간부터 녀석이 흡수한 이질적인 마나가 오른손 손등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스멀거리는 감각은 통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알았어. 다음에는 바꿔 줄게.

 -꼭이야, 꼭! 약속해!

 -알았어.

 위신느는 정말 싫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런 위신느를 꼭 안아준 하룬은 세 정령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모두 수고했어! 이젠 돌아가도 돼.

 -헤헤! 이것도 자꾸 하니까 재미있는걸.

 -나 역시. 또 불러줘.

 웃음기를 띠며 돌아가는 피닉스와 라이피는 불만이 없었다. 뭔가를 스스로의 의지로 조종하는 재미를 알았던 것이다.

 -나도 안아줘요, 하룬.

 샘이 났던 것일까? 나이아가 드물게 감정을 드러냈다. 약간 삐친 것 같으면서도 슬픈 나이아의 표정을 본 하룬은 두 팔을 벌렸다.

 -너무 오래간만이에요. 이 따듯하고 넓은 하룬의 품은…….

 위신느와 함께 그에게 안긴 나이아야말로 따듯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체로키들의 습격으로 인해 바짝 당겨졌던 긴장이 단숨에 누그러들었다. 나이아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동체는 그에게 한없는 자애로움의 상징인 엄마를 연상시켰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이아.

 -정말요?

 -그럼. 내가 얼마나 나이아를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를 보는 나이아의 그윽한 눈은 기쁨의 감정으로 가득 찼다.

 가만히 나이아의 눈과 얼굴을 보던 하룬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억제하기 힘든 충동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쳤던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나이아의 엷은 붉은색 입술으 눈에 확 들어왔던 것이다.

 ‘안 돼!’

 하룬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순간적으로 욕구를 필사적으로 눌렀다.

 -정령석을 흡수하는 건 어때?

 하룬은 당연히 물었어야 하지만 그동안 늘 잊고 있었던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조금만 더 흡수하면 우리 모두 한 단계 더 진화할 수 있어요. 하룬이 항상 우리를 소환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이 더욱 커졌어요.

 -맞아! 나도 조금만 더 있으면 내 아공간을 가지게 된다고. 호호! 그럼 하룬에게 반을 쓰게 해줄게.

 그러고 보니 나이아와 위신느의 외모는 큰 차이가 없었지만 표정은 많이 다양해졌다. 뇌파를 통해 전해지는 의사에서도 풍부한 감정이 느껴졌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

 -후훗! 우리 모두 그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기대해요, 하룬!

 -호호호! 내가 진화한 모습을 보면 아마 깜짝 놀랄걸. 하룬 맘에 쏙 들 거야. 헤헤.

 나이아와 위신느는 뭔가 기대하게 만드는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빨리 성장해라! 너희들이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아.’

 아래로 내려간 하룬은 사람들이 어느새 체로키의 가죽을 벗겨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표홀한 움직임으로 나무 아래로떨어져 내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어때?”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깨진 사람들이 13명이나 됩니다. 지금 레미가 치료하고 있는데 2명은 위험하답니다.”

 내려오자마자 묻는 질문에 옥세르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머리 부위가 피투성이가 되고 어깨나 팔의 뼈가 부러진 사람들이 레미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하룬은 즉시 그들에게 달려가 성배로 성수를 만들었다.

 -나이아, 부탁해!

 -걱정 말아요.

 성수를 흡수한 나이아의 몸이 엷은 푸른빛으로 일렁이며 환자들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차례대로 환자들의 몸속으로 들어가 성수의 치유력과 그녀 고유의 치료 진동을 하자 사람들의 얼굴이 어느새 편안하게 변했다.

 “대장의 정령 치료술은 언제 봐도 참 신기해요! 엘프들도 이렇게까지는 못할 텐데.”

 누구보다 나이아가 펼치는 치료술의 효과를 잘 아는 레미가 감탄을 했다. 다른 경우도 그렇지만 틸러스 열매를 맞아 함몰이 되었던 어깨뼈가 붙은 상태에서 제 모습을 찾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일단 숲을 벗어나 휴식을 하기로 한다.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즉시 들것을 만들고 주변을 경계하라!”

 여자아이와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한두 번 이상 다쳐본 적이 있기에 전사들은 빠르게 들것을 만ㄷ르어 환자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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