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위기와 새로운 힘 (188/278)

《위기와 새로운 힘》

 “다크 실드!”

 꽈앙!

 흑마법사가 실드를 펼쳤지만 버처리비크의 날갯짓 한 번에 그만 깨지고 말았다. 놀란 흑마법사들이 블링크를 펼쳐 미노와 수니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끄르륵!

 인간들을 놓치고 지면에 내려선 버처리비크들이 묘한 소리를 내며 슬로크들을 노려보았다.

 후루르르.

 흐르르르.

 놀랍게도 방금 전까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슬로크들은 버처리비크들의 쏘아보는 눈을 피했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공포에 질려 덜덜 떨더니 급기야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하지만 작은 종소리와 함께 바닥에 깔리는 듯 음산한 주문이 한 흑마법사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도망을 치던 슬로크들이 몸을 돌렸다. 버처리비크들을 노려보는 샛노란 눈동자 속에 흉포한 광기가 번득였다.

 끄르륵!

 버처리비크들은 그 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큰 날개를 흔들어 날아오르더니 어느새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슬로크들 속으로 떨어졌다.

 파악!

 미노의 강철 같은 발톱에 슬로크의 머리통이 걸렸다.

 빠지직!

 슬로크의 단단한 두개골이 한순간에 부서지며 뇌수와 뼈가 튀어나왔고 동체는 파들거리며 경련했다.

 후르르르.

 동료의 처참한 죽음에 테이밍 마법이 깨졌는지 슬로크들의 눈이 다시 공포의 빛으로 가득 채워졌고 나머지 놈들이 일제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처리비크들은 놈들을 그냥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간단하게 한 마리를 처리한 미노가 날개를 흔들어 날아올랐다. 단숨에 30여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른 미노는 다음 대상을 정하고 꼬리가 빠지게 도망치는 슬로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혔다.

 수니 역시 껑충 뛰는 것만으로 단숨이 10미터 정도를 날아 도망치는 슬로크를 발톱으로 움켜쥐었다.

 푹!

 깨앵!

 구슬픈 비명과 함께 슬로크의 등짝이 척추뼈와 함께 통째로 뜯겼다. 척추뼈와 붙은 근육들과 연방 거칠게 박동하는 심장까지 수니는 움켜쥐었다.

 블링크와 헤이스트 마법으로 버처리비크들과 제법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친 흑마법사들은 오러가 아니면 베이지도 않는 슬로크의 가죽이 이렇게 쉽게 뜯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놈들은 도대체 무슨 마수야?”

 “빨리 다시 테이밍해!”

 흑마법사들 중 1명이 품속에서 작은 종을 꺼내자 다른 흑마법사가 몇 가지 재료를 꺼냈다. 그사이 1명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외웠다.

 “레인지 오브직트 리스트레인(범위 내 대상들 제어)!”

 주문이 완성되자 돌연 도망을 치던 슬로크들과 학살을 벌이던 버처리비크들의 몸이 돌로 변한 듯 굳어 버렸다.

 “빨리해!”

 헤이스트를 걸어 빠르게 현장으로 이동한 흑마법사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버처리비크들을 안에 넣은 역오망성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듯 작은 기구로 바닥에 미스를 가루를 뿌리자 삽시간에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다들 자리를 잡아!”

 5명의 흑마법사가 각기 핵심 포인트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마력을 지팡이를 통해 외계로 발산하며 주문을 외웠다.

 “소울 컨트롤(정신 제어)!”

 5명이 동시에 마법을 발현시키자 마법진으로부터 음습한 안개가 일어나 슬로크들과 버처리비크들의 몸을 뒤덮었고 이내 대상물의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도미네이터 퍼셉션(지배자 인식)!”

 지배자 인식 마법이 펼쳐지자 슬로크들과 버처리비크들의 눈이 각기 가까운 흑마법사들을 향했다. 슬로크들의 눈에는 공포와 외경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버처리비크들의 눈은 멍하니 풀려 있었다.

 “먹힌다! 연속해서 정신 제어와 지배자 인식 마법을 펼쳐!”

 마법진 가까이 다가간 흑마법사의 외침에 마법진을 구성한 흑마법사들이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룬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5명의 흑마법사들이 회색 안개에 휩싸인 슬로크들과 버처리비크들 주위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본 하룬은 뭔가 위험한 일이 진행되고 있음ㅇ르 알 수 있었다.

 ‘이런!’

 하룬은 다급한 마음에 달려가면서 미노와 수니에게 의념을 전했다.

 -미노, 수니, 정신 차렷!

 하지만 마법진 때문인지 미노와 수니는 그의 의념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대신 음산한 흑마법사들이 주문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급하다.

 하룬은 앞뒤 가릴 틈도 없이 박살을 빼어들고 흑마법진 안으로 뛰어들었다.

 뭔가 강한 탄력을 가진 막과 같은 것이 그의 몸을 강하기 막아섰지만 박살에 마나를 주입해서 가르자 틈이 벌어졌다.

 ‘이놈들은 전에 만났던 놈들보다 경지가 높은 흑마법사들이군.’

 전에는 흑마법진을 아무렇지 않게 파고들었는데 오늘은 마법진이 그를 막아서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던 것이다.

 마법진을 통과한 하룬은 석상이 된 듯 꼼짝도 하지 않는 미노와 수니를 향해 달렸다.

 “마법진 중첩!”

 누군가의 주문과 함께 하룬의 몸놀림이 마치 젤리와 같은 것에 빠진 것처럼 급격하게 느려졌다.

 ‘뭐야? 마법진이 중첩되었다고?’

 자신을 둘러싼 대기가 마치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촉수를 가진 괴물처럼 변해 그의 몸을 붙잡고 몸 안으로 들어온다.

 마나를 끌어 올려 손발에  주입시켰지만 마치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움직일수록 점점 더 많은 촉수들이 그의 몸을 구속하고 일부는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흐흐흐! 진하고 익숙한 마나를 품고 있는 맛있는 먹이들이다. 테이밍도 필요 없으니 마나와 생명력을 흡수해라!”

 누군가의 말에 흑마법사들이 일제히 동일한 주문을 외웠다.

 “레인지 오브직트 석션(범위 내 대상물 흡수)!”

 “크흑!”

 하룬은 비명을 토했다. 주문이 완성된 순간 몸에 달라붙은 수많은 촉수들이 그의 몸 안에 축적된 마나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몸이 터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지?’

 이런 경우는 처음 당해봐서 당황스러웠다.

 ‘멈춰! 멈추란 말이야!’

 의념을 전해 밖으로 빨려 나가는 마나를 통제하려고 애를 써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어느새 검은 어둠에 싸인 마법진은 살아있는 생물이 숨을 들여 마시듯 안에 있는 하룬과 버처리비크 그리고 슬로크들의 마나와 정혈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하룬의 마나 오션에 가득 쌓였던 마나 중 자연의 마가 빨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애를 썼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은 다 빨려 나가고 말았다.

 ‘안 돼!’

 이제 차례는 정체불명의 마나. 하룬은 아무리 애를 써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나가 빨려 나가자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만 했다.

 절박한 그의 의념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정체불명의 마나가 빨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어두므이 비수에 당한 대상물들처럼 정혈이 빨린 상태로 뼈와 가죽만 남은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싸가지와 네 정령 역시 영영 소멸될 것이다.

 혼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도 잠시였다. 하룬은 눈에 핏발이 서고 아랫입술이 터지도록 심혼을 다해 이제는 텅 빈 마나 오션의 한 줄기 남은 마나에 의념을 실었다.

 ‘돌아왓!’

 하룬의 몸이 태풍 앞에 선 것처럼 심하게 떨렸다. 이마 한가운데와 명치가 순간적으로 빛을 뿜어냈다. 손등에 새겨진 문신이 순식간에 그의 몸 전체로 커졌다.

 화아악!

 갑자기 마나의 흐름이 역전되어 엄청난 마나가 하룬의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엇!”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하룬은 몸 안으로 들어오는 마나를 마나 플로로 운행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그냥 마나 오션에 축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넓게 뚫린 마나 로드들이 터질 것처럼 마나로 가득 찼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마나들은 흉포한 깆리을 가지고 있어 조금이라도 의식이 흐트러지면 마나 로드 밖으로 나가기에 사력을 다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 플로를 얼마나 운용한 것일까? 수백 아니, 수천 번은 가볍게 넘긴 것 같았다.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횟수를 세거나 기억하지조차 못했다.

 ‘이젠 포화 상태야!’

 하룬은 마나 플로를 계속 운용하며 이제 자신의 통제하에 놓인 순화된 마나들을 몸 안에 축적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마나 오션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마나 오션을 가득 채우고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마나들은 하룬이 인도하는 대로 어퍼 오션과 미들 오션을 채웠고, 그러고도 남아 마수의 문신을 채웠다.

 ‘더 이상은 무리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온몸으로 그 범위를 확장한 손등의 문신이 빛을 내며 자리를 잡았다. 하룬의 몸은 문신이 뿜어내는 빛으로 인해 성력을 뿜어내는 성녀의 모습처럼 보였다.

 모두 백팔 개의 포인트를 가진 새로운 문신이 그의 몸 전체에 나타나며 그 포인트에 마나가 쌓이기 시작했다. 포인트들은 마치 굶주린 아귀처럼 마나 플로를 거치지 않은 마나들을 직접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크악!”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내 마력이 빨려 나가!”

 “윽! 마법을 해제할 수 없어!”

 흑마법사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몸의 내부에 돌려진 하룬의 의식은 그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마나를 축적하는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하룬은 몸 안으로 들어오는 마나의 흐름이 약해진 것을 감지했다. 그가 집중을 풀자 희미한 의념이 전해져 왔다.

 -친구, 우리 것은 빨아먹으면 안 돼!

 -그만! 그만해!

 익숙하고 친근한 의념은 미노와 수니가 보내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 마나의 흐름을 끊은 하룬이 고개를 들어보니 미노와 수니가 쓰러진 상태로 죽어가고 있었다.

 “미노! 수니!”

 날개는 변색되었고 드러난 살결은 탄력을 잃고 주름이 잡혔으며 총기와 위엄이 넘치던 눈에는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안 돼!”

 하룬은 나란히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운 미노와 수니의 목을 양팔로 감았다.

 ‘이대로라면 이 녀석들은 죽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이 녀석들에게서 흡수한 마나를 돌려주면 돼.’

 어떻게 흡수한 마나를 돌려줄지는 알지 못한 상태지만 하룬은 몸 안으로 의식을 집중했다. 마나 오션에는 어느새 태극 문양으로 자리를 잡은 두 마나로 가득 채워졌지만 미노와 수니의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퍼 오션과 미들 오션은 물론이고 마수의 문신에도 미노와 수니의 마나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의식을 더 넓혀 전신을 확대한 하룬은 상당량의 마나가 저장된 백팔 곳을 발견했다.

 ‘아! 그랬지!’

 하룬은 손등에 있던 문신이 전신으로 범위를 확대했고 백팔 곳의 포인트가 드러난 것을 이제야 기억할 수 있었다.

 ‘이곳들은 도대체 뭐지? 어떻게 마나를 저장하는 거지?’

 지혜의 파편에도 마나 오션이 아닌 곳에도 마나를 쌓을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 백팔 곳은 마나 로드상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다.

 ‘뭐, 어쨌든 마나를 쌓을 수 있는 곳이니 내게는 좋겠지.’

 모르는 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룬은 이곳들을 마나 스토리지 플레이스, 줄여서 마나 스토리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거 백분의 일도 못 채웠네. 도대체 용량이 얼마나 큰 거야.’

 그렇게 많은 마나를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나 스토리지들은 겨우 바닥을 채운 상태였다.

 백팔 곳이나 되는 마나 스토리지를 일일이 조사해 본 하룬은 이곳에서 미노와 수니의 익숙한 마나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성질의 마나와 섞여 있는 상태였다.

 ‘분리하면 돼!’

 하룬은 버처리비크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마나에 의지를 심었다. 녀석들의 마나는 마나 플로를 거치지 않은 탓에 그의 의지에 쉽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나를 통째로 흡수당할 위기를 극복한 그의 정신력과 의지는 결국 버처리비크의 마나를 움직였다.

 ‘원래 있던 곳으로 가!’

 버처리비크의 마나는 하룬의 의지대로 조금씩 미노와 수니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백팔 곳으로 흩어진 녀석들의 마나를 모두 찾아내 원래대로 전해주자 미노와 수니가 힘을 되찾았다.

 -고마워, 친구!

 -아니, 내가 미안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버처리비크의 마나 중 절반 정도는 이미 하룬이 흡수했다. 마나 플로를 거쳐 순화된 녀석들의 마나는 이미 하룬의 것으로 변한 상태였다.

 -아니야! 이만큼이라도 돌려주지 않았으면 우리는 죽고 말았을 거야.

 -미노 말이 맞아! 친구가 우릴 살렸어. 저 못된 까만 놈들이 나쁜 거야.

 어느 정도 기운을 찾아 몸을 일으킨 미노와 수니의 눈이 어느  곳을 향했다. 하룬의 시선도 녀석들을 따라 이동했다.

 “헉!”

 잣니을 중심으로 반경 50미터 정도가 완전히 황무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풀과 나무도 보이지 않았고 드러난 흙은 생명력을 잃고 바람에 따라 날리고 있었다.

 ‘이게 내가 한 일이야?’

 가까이에 있는 슬로크 뼈가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의 가죽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마저 흡수해버린 것 같았다.

 ‘이젠 완전히 마왕이 된 기분이군.’

 씁쓸한 웃음과 함께 주변으로 시선을 돌린 하룬은 까만 로브 세 벌을 볼 수 있었다.

 하룬은 홀린 듯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이 얼마나 가볍고 빠르게 걷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풀썩!

 로브를 건드린 순간 로브가 먼지와 함께 땅바닥에 닿았다. 조심스럽게 로브를 들어보니 바닥에 회색 가루와 함께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설마 뼈까지?’

 절로 오싹해졌지만 그의 추측이 맞는 것 같다. 살은 물론 뼈까지 가루로 변하고 만 것이다. 다른 로브를 만지자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이방인이 아닌 흑마법사들이구나!’

 하룬은 로브 아래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들을 챙겼다. 죽은 흑마법사들은 꽤 신분이 높은 듯 윤기가 나는 검은색 팔찌와 마법 반지들, 그리고 각종 마법 재료들이 들어있는 마법 주머니 등 귀한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로브를 입었던 자가 진짜다!’

 하룬은 한눈에도 귀해 보이는 로브를 들추었다.

 ‘어! 왜 아무 것도 없지.’

 바닥에는 검은색 팔찌 하나 외에는 다른 아이템이 없었다. 하룬은 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검은 로브의 내피에는 제법 깊고 넓은 속주머니가 양쪽에 있었다. 기대를 하고 그 속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역시 이상한걸. 이방인인가?’

 뼛가루가 보이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다. 이번에는 외피의 주머니를 뒤졌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리가 없다.

 ‘혹시 거지 흑마법사?’

 실망을 한 하룬이 로브를 들어 털었을 때 뭔가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소매 안쪽에 금줄로 연결된 손바닥 크기의 주머니였다.

 ‘이건 마법 주머니다!’

 손바닥 크기의 주머니는 주둥이 부분이 끈으로 묶여 있었는데 양면에 새겨진 문양으로 봐서 분명히 마법 배낭을 사기 위해 마탑 상점에 들렀을 때 봤던 마법 주머니였다.

 하룬은 그때 들었던 설명대로 마법 주머니에의 주둥이를 묶은 끈을 풀고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러자 눈앞에 작은 물건 형상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하룬은 마나석 형상을 향해 손을 넣었다. 그러자 손에 차가운 질감의 돌이 만져졌다. 꺼내보니 역시 마나석이 맞았다. 그것도 중급과 상급의 마나석이었는데 숫자가 무려 오십 개가 넘었다.

 ‘이거 대단한 인물을 잡은 모양이네.’

 중급과 상급 마나석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다면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하룬은 계속해서 마법 주머니 안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포션이 등급별로 합해서 총 일흔네 개 그리고 미스릴 가루가 작은 자루로 여섯 개나 들어있었다.

 포션을 살펴보니 치료용이 아니라 마나 회복용이었다. 골드를 많이 가진 유저들이 흔히 쓰는 아이템이다.

 다음에 나온 것은 접힌 지도였는데, 그것을 펼쳐본 하룬의 눈이 커졌다.

 그 지도에는 이곳 일대의 좌표와 카르의 위치 그리고 몬스터들의 분포나 서식지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 정도로 상세하게 그린 지도가 있다는 것은 이곳에 대해 완전히 파악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온 책 형상을 한 아이템은 예상대로 마법서였다. 내지가 족히 천 장은 되어 보이는 두꺼운 책이었다. 하룬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마법서를 펼쳤다.

 ‘어! 내용이 남아 있다!’

 놀랍게도 책에는 내용이 남아 있었다.

 이방인들의 경우 마법서를 통해 마법을 배우는데 마탑에서 그들에게 팔거나 사냥이나 던전에서 얻은 마법서는 일회용이었다. 즉 해당자가 마법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자동으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만 마법서는 휴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마법서를 펼쳤을 때 익히겠냐고 물어보는 안내창이 뜨지 않았다. 원본은 아닌 듯 정성스럽게 필사한 흔적이 보였다. 즉 온전한 마법서가 맞았다.

 ‘어디!’

 하룬은 마법서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츠왈드 학파 마법 총람서?”

 분명히 어디선가 들었던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금방 생각이 나지는 않았다. 들여다본다고 알 것 같지 않아 마법서를 덮고 다른 제목을 가진 보통 두께의 책을 살폈다.

 “소울 컨트롤(정신 제어) 마법!”

 분명히 아까 이들이 썼던 마법이었다. 하룬은 다른 마법서가 더 있는지 확인했다. 역시 생각대로 세 권이 더 있었는데 그것들의 제목은 각각 ‘테이밍 스킬’, ‘정신 지배’ 그리고 ‘기초 마법진’이었다.

 ‘대박이다!’

 흑마법사들이 사용하던 마법이 기재된 책을 찾아낸 것이다. 이게 있으면 상대의 마법과 마법진을 제대로 상대할 수가 있다.

 ‘이런! 타니엘라와 미루스, 둘 중 1명은 동행할걸.’

 그들의 실력이라면 뭔가 쓸모 있는 조언을 해주었을 텐데 아쉬웠다.

 마법 주머니에는 그 외에도 갖가지 마법 시약과 기굳르 그리고 수천 골드의 현금도 들어 있었다.

 하룬은 돌아다니면서 이방인들로 추정되는 다른 흑마법사들이 남긴 아이템들을 챙겼다. 그들이 떨어뜨린 아이템은 종류별로 엄청나게 많았다. C.P.(Crime Point)가 높아서인지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을 다 떨어뜨린 모양이다.

 비록 상급은 없었지만 중급과 하급 마나석들이 백 개가 넘었고 포션들도 오백 개가 넘었다. 스크롤과 반지나 팔찌 형태의 아이템들은 거의 모두가 보유하고 있었다. 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방인들을 죽이고 빼앗은 것인지는 몰라도 그 양은 엄청났다.

 ‘헛수고는 하지 않았군.’

 특별히 귀한 것은 없었지만 아이템들은 대부분 매직과 레어 등급이어서 고생한 버처리비크들의 육포 값은 충분히 할 것 같았다. 그래도 그중 대박도 있었다.

 “호오! 이건 마법 배낭이군.”

 안을 열어본 하룬은 엄청난 양의 빵과 육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최상급은 아니라도 상급은 되니 마차 두세 대분은 족히 되는 양이다.

 아까 버처리비크는 분명 이들이 인간의 전부라고 했다. 곡물이나 가루가 아니라 빵과 육포를 준비한 것을 보면 분명히 이방인들을 위한 것인데 그 양이 너무 많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이들이 선발대였던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다크니스의 숫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 넓은 데빌 산맥에 수많은 성을 쌓고 있으니 인원이 부족할 수도 있었다. 거기에 흑마법사들만 있을 뿐 전사들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짭짤한 수익이군.”

 식량은 많을수록 좋았다. 음식을 탐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가출하고 한참 동안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터라 식량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슬로크들의 가죽을 벗겨낼까 생각했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슬로크들은 한 무더기의 가루로 변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일부러 머리를 부수지 않아도 마정석을 쉽게 건질 수 있었다.

 -우리 간다, 친구.

 이제 어느 정도 힘을 찾은 것 같은 미노였다.

 -이거 먹어!

 하룬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어 미노와 수니에게 순정석을 주었다.

 -이건 순정석이라는 건데 너희들이 잃은 기운을 되찾게 해줄 거야.

 -친구가 주는 선물이니 잘 먹을게.

 미노와 수니는 아무런 의심이나 주저 없이 순정석을 삼켰다. 비록 바로 효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들 역시 본능적으로 마나를 사용하는 능력이 있으니 곧 예전의 능력을 되찾을 것이다.

 -우린 좀 쉬어야겠어.

 -그래. 얼마간은 이곳에서 지낼 테니까 너희들도 푹 쉬어.

 하룬은 육포 네 자루를 꺼내 녀석들의 발 근처에 하나씩 놓아 주었다.

 -그럼 나중에 불러줘.

 -육포 잘 먹을게.

 미노와 수니는 육포 자루를 양발로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근처의 깊은 숲이었다.

 꼼꼼하게 전리품을 모두 다 챙긴 하룬은 비로소 대원들이 있는 카르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대장!”

 숲을 막 빠져나올 때 레미를 선두로 하는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범벅이 된 채로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카르 안에서 느꼈던 외로움이 어느새 얼음 녹듯 녹아 버렸다.

 “왜 여기까지 왔어?”

 “대장이 혼자 숲 쪽으로 뛰어가서…….”

 걱정이 되었나 보다. 대원들이 그의 무사 귀환을 반기는 얼굴을 본 하룬이 드물게 짓는 푸근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난 괜찮아.”

 “왜 숲 남쪽으로 간 거예요? 설마 흑마법사들을 상대하려고…….”

 “그러려고 했는데 혼자서는 위험한 것 같아서 그냥 다시 나오는 길이야.”

 하마터면 미라가 되어 죽을 뻔했다는 말을 하면 아마 잔소리깨나 들을 판이다. 하룬은 일부러 흑마법사들을 처치한 사실을 숨겼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기도 애매했던 것이다.

 “잘했어요!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레미나 대원들의 얼굴이나 행색을 보니 걱정을 많이 한 것 같았다. 대원들 대다수는 제대로 부상도 치료하지 못하고 자신과 마수의 피로 범벅이 된 상태에 무기도 질질 끌 정도로 지친 상태였다.

 “부상이나 치료하고 따라오지…….”

 공연히 가슴이 먹먹해진 하룬이 괜한 말을 하고 말았다.

 “말 나온 김에 여기서 치료하고 가자.”

 “알았어요. 모두 다 방어구를 벗고 다친 부위를 보여줘.”

 대원들은 레미의 말대로 피에 젖은 방어구를 힘들게 벗은 다음 환부를 드러냈다. 부상 정도에 차이만 있을 뿐 다치지 않은 대원은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레미와 타킴이 유일했다. 두 사람은 능숙한 솜씨로 상처 부위에 포션을 뿌려 소독과 치료를 한 다음 포션의 효과를 보조하는 가루약을 뿌린 다음 깨끗한 붕대로 잘 처치했다.

 하룬 역시 나이아를 소환해서 대원들의 내부를 부드럽게 진동시켜 내상을 가라앉혀 주었다. 나이아의 능력이 올라가면서 그녀가 대상자의 몸을 진동시키는 것만으로도 대상자는 이탈해 있던 장기가 제자리를 찾는 것은 물론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거기에 부수적으로 피가 맑아지고 피로물질과 같은 노폐물을 손쉽게 배출하여 치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들은 상당한 수준까지 회복이 되었다. 비록 여기저기 붕대를 감았지만 움직이는 데 큰 지장은 없어 보였다.

 곧 하룬 일행은 마수들의 사체가 널린 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미 카르의 정문을 공격하던 마수들은 숲으로 돌아간 상태여서 후 처리를 하는 것이 보였다.

 “이젠 대단한데!”

 하룬은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옥세르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흐흐흐! 정말이죠?”

 옥세르는 덩치완 어울리지 않게 처음 듣는 하룬의 칭찬에 입이 귀에 걸렸다.

 “이젠 프로즐리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겠어.”

 “크크크! 감사합니다, 대장!”

 순수한 성정을 가진 대원들은 부러운 눈길로 옥세르를 보았다.

 “디온과 두르본도 옥세르 못지않아. 아주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다른 대원들도 프로즐리랑 맞상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놈들을 혼자서 잡을 수 있을 거야. 여기서 흑마법진의 안쪽이라 그 영향을 받아 마수들이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해. 그런데도 이런 전과를 올리다니 모두들 대단해. 그동안 수련하느라고 정말 고생이 많았어. 오늘 기념으로 내가 쏜다. 카르로 돌아가 제대로 한잔 마시자!”

 “와아!”

 “마시자!”

 대원들은 술을 마신다는 소리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번에 마셨던 맥주 맛을 떠올린 대원들이 입을 다셨다.

 “자, 일단 전리품을 챙겨야지.”

 “당연하지요. 우리가 잡은 것들인데.”

 두르본이 앞장을 서서 마수들의 사체로 향했다. 가죽을 벗기고 마정석을 빼내려는 것이다. 죽어 널브러진 마수들의 숫자가 백 마리가 넘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도축을 해온 대원들의 손놀림은 빠르게 움직였다.

 “흐흐흐! 이게 다 우리가 잡아 죽인 것들이란 말이지?”

 “그래! 우리가 엄청나게 강해지긴 했나 봐.”

 “이제 가족들을 굶주리게 만들지 않고 부양할 수 있겠어.”

 “우린 대장만 따라다니면 돼! 먹을 것이든 입을 것이든 뭐든지 대장이 다 알아서 해줄 거야. 우린 그저 부단히 수련해서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용병대원이 되면 되는 거야.”

 마수의 가죽을 벗겨내는 대원들은 자신들이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만들어준 하룬 대장과 선배 대원들에 대한 존경심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모든 작업을 마치고 카르로 귀환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원래 뛰어내렸던 목책 아래에 도착한 하룬은 뜻밖의 인물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상카였다.

 “굉장하군요!”

 탄성을 토하는 상카의 주변으로는 치투족 전사들은 물론 낮에 보았던 카르의 수뇌부들까지 횃불로 주변을 밝히고 서 있었다.

 “별거 아니오. 전투나 구경하려고 나왔는데 우연히 놈들이 이쪽으로 오기에 처리한 거요.”

 “20명밖에 되지 않는 인원으로 마수들을 백 마리도 넘게 잡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지원을 하려고 이쪽으로 왔던 전사들이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저도 믿지 못했을 겁니다.”

 하룬은 피식 웃었다. 하룬이 정령들과 함께 프로즐리와 흑마법사들을 상대하는 장면을 봤다면 아마 까무러칠지도 몰랐다. 그들은 전투의 막바지에야 겨우 도착해서 대원들이 마무리하는 것만 봤을 뿐이다.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합시다.”

 “아! 그렇군요. 줄을 내려드릴까요?”

 상카는 말과 함께 중간 중간 굵은 매듭을 만든 줄을 내려주었다. 하지만 하룬은 줄을 잡고 올라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오!”

 하룬은 전사들의 허리를 잡고 가볍게 뛰어 목책 너머 흙벽으로 올라섰다.

 “헉!”

 도약을 위한 예비 동작도 없이 육중한 몸무게의 전사를 허리에 끼고 단숨에 5미터가 넘는 목책을 뛰어넘는 하룬의 모습에 치투족 사람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 움직임이 얼마나 가볍고 표홀한지 착지할 때 당연히 나야 할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하룬은 보는 눈이 성가셨지만 대원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일일이 대원들의 허리를 감아 안고 목책 위아래를 왕복했다.

 “대장, 난 그냥 줄을 잡고 올라가고 싶다……요.”

 옥세르는 전사의 체면이 떨어질까 두려운 얼굴로 몸을 뒤로 뺐지만 하룬은 강경했다.

 “됐어!”

 디온과 나이가 많은 대원 몇 명이 옥세르와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하룬은 들어주지 않았다. 줄을 잡고 힘을 쓰다 보면 레미가 애써 치료한 상처 부위가 다시 터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싫은 대원도 있었다. 바로 여자 대원인 두르본과 레미였다. 레미야 워낙 주술사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마을에 애인까지 있다는 두르본의 허리를 안는 것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넌 그냥 줄을 잡고 올라가!”

 “싫어……요! 나 지쳤단 말이에요. 브롤프를 여덟 마리나 잡았는데…….”

 언제 배운 건지 가볍게 앙탈을 하며 애교를 부리는 두르본이다. 도네이스와 한참 어울리더니 그녀가 티노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을 배운 모양이다.

 “알았어!”

 하룬은 마지막으로 남은 두르본과 레미를 양팔에 끼고 목책 위로 날아올랐다.

 “히야! 재미있다!”

 “후후후!”

 두르본과 레미는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긴장감 하나 없이 짧기는 하지만 잠시나마 공중을 나는 것을 즐겼다.

 “환자들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 가자!”

 하룬과 돌풍 용병대원들은 남은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빠르게 안쪽 목책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휴우~!”

 누군가 긴 한숨을 쉬었다.

 “상카, 대단한 자들을 데리고 왔구나. 역시 내 후계자답다!”

 카르의 탄인 바타가 멀어져 가는 하룬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듣던 두 원로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바타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소.”

 “그렇소. 그는 상카의 의뢰를 받고 왔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필요 없다고 말했소.”

 “그, 그건…….”

 바타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말을 더듬었다가 이내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들은 오늘 여기에 머물렀다. 내가 베푼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직접 부탁한 상카의 얼굴을 보아 마수를 처리한 것이니 상카의 공이다.”

 “헤엥! 상카의 공이 아니오. 부하들을 시켜 알아보니 저들은 같은 아카족 환자들을 치료하느라 남은 것에 불과하오. 아까 말한 대로 내일 일찍 이곳을 떠난다고 그들 대장이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소.”

 한 원로의 말에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정말이오? 그가 떠난다면 우리 카르는 끝장이오. 오늘도 간신히 막았는데 프로즐 리가 몇 마리만 더 합세해도 더 이상 막을 수 없단 말이오. 저들의 실력이라면 막는 게 문제가 아니라 토벌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들은 용병, 비록 아까는 내가 저들의 실력을 잘 몰라 실례를 했지만 내가 책임지고 저들을 고용하겠다. 걱정하지 마라!”

 바타가 자신 있다는 듯 큰소리를 쳤지만 상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룬 일행을 찾았지만 전사들로부터 그들이 아버지 바타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공회당으로 갔다는 말만 들었던 것이다.

 ‘제발 자존심보다는 돈을 더 좋아하기를.’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가 본 하룬 일행은 돈 따위에 현혹될 허접스러운 용병들이 아니었다. 오늘만 해도 백여 장에 달하는 마수 가죽을 자신들의 힘으로 얻지 않았던가.

 “만약 저들이 떠난다면 우리는 떠나겠소. 저들이라면 우리를 충분히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오.”

 거래를 위해 카르를 찾았다가 마수들 때문에 이곳에 머물게 된 부르카족 전사장 티탄의 말이었다.

 “우리 에인족도 같이 동행하겠소. 그들이 아니면 언제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소.”

 에인족 전사장 토르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고작 20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무려 백 마리가 넘는 마수들을 처리한 용병들과 동행할 수 있다면 이곳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에 치투족 수뇌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궁술에 능학 부르카족과 창술에 능한 에인족 전사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마수들을 막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떠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눈에 훤했다.

 ‘어떤 대가를 주더라도 저들을 고용해야 해! 이곳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면 우리도 그들의 보호를 받아 데빌 산맥으로 들어가야 해!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을 두다가는 결국 죽고 말 거야.’

 상카의 눈이 바타의 눈과 만났다. 부자의 눈빛은 같은 색깔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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