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마수들의 습격 (187/278)
  • 《마수들의 습격》

     뗑! 뗑! 뗑!

     급박한 종소리가 울렸다.

     “마수들의 공격이 시작된 모양이군요.”

     디온의 말에 하룬은 가까운 목책과 붙어 있는 지지대 위로 뛰어올랐다. 그들이 올라선 지지대에는 경계를 보는 전사들이 모두 문 쪽으로 이동한 상태여서 아무도 없었다.

     횃불로 환하게 밝힌 남쪽 목책 위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카르의 목책과 1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둔 숲에서 쏟아져 나온 수백 마리의 마수들이 보였다.

     라마비와 브롤프들이 주축이었지만 가장 뒤쪽에는 3미터에 달하는 키에 우람한 체구를 가진 프로즐리들이 네 발로 달려오고 있었다.

     “굉장히 많군요.”

     “새까맣군!”

     조금 늦게 위로 올라온 디온과 옥세르의 눈이 커졌다. 그들 역시 이렇게 많은 마수 무리는 처음 보는 것이다.

     “어떨 거 같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람비와 브롤프들만 있다면 모르지만 프로즐리까지 가세하면 이 정도 벽은 무너질 거 같은데요.”

     하룬도 두 사람과 같은 의견이었다. 자신이 직접 문신을 통해 경험하고 있는 프로즐리의 힘은 엄청나다. 집채만한 바위를 들어 던질 수 있을 정도니 비록 벽돌로 쌓아 올린 지지대로 목책을 받친다고 해도 오래 견딜 거 같지는 않았다.

     “쏴라!”

     누군가의 명령에 목책이 가슴에 오는 지지대에서 대기하던 카르의 전사들이 화살을 날렸다.

     “상카?”

     디온이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맞아. 언제 들어온 거지?”

     하긴 중간에 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땅굴을 통해 카르로 돌아올 시간은 되었다.

     “쯔쯔!”

     디온이 혀를 찼다. 카르의 전사들이 날린 화살들이 헛되이 땅에 박히거나 혹은 맞더라도 별다른 상처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마수들은 날렵한 동작으로 화살을 피하거나 혹은 앞발로 쳐서 떨어뜨렸다.

     “프로즐리의 힘으로 쏘지 않는 이상 놈들의 털가죽을 뚫을 수 없는데.”

     옥세르의 말이 맞다. 하지만 상카를 비롯한 카르의 수비군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다만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기 위함일 것이다.

     쿵! 쿵! 쿠웅!

     마수들은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목책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단번에 목책의 위까지 뛰어오른 놈들은 거의 없었다. 대신 놈들의 억센 발톱이 목책의 상단부에 박혔는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제법 떨어진 지지대 위에 서 있는 하룬의 몸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크아앙!

     뒤에서 달려오던 브롤프 한 마리가 포효를 하며 도약을 했다. 다 자란 황소 크기의 몸집을 가진 놈은 엄청난 도약력으로 5미터에 달하는 목책의 위까지 단번에 뛰어올랐다.

     “막아!”

     누군가의 명령에 그쪽에 있는 전사들이 일제히 자신의 무기를 휘둘렀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아가리를 들이대는 마수를 보고도 주저 없이 무기를 날리는 것을 보니 전사는 전사였다.

     까앙! 깡!

     “으악!”

     뒷발까지 목책 위에 걸친 브롤프는 앞발과 이빨로 전사들의 무기를 잡아채거나 후려쳤는데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몇 명의 전사가 비명과 함께 지지대 아래로 날아갔다.

     그래도 전사들의 희생 덕분에 놈이 완전히 지지대에 내려앉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놈은 뒷발을 날카롭게 깎은 목책의 꼭대기에 박은 상태로 아래 지지대로 내려올 태세였다.

     “이노옴!”

     디온만큼이나 거대한 덩치를 가진 전사 하나가 옆에서 달려와 브롤프를 향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까앙!

     브롤프의 앞 발톱과 부딪힌 도끼가 튕겨 나가며 전사의 몸이 휘청거렸지만 브롤프도 피해가 있었다. 중심이 흔들렸던 것이다.

     “우아악!”

     그런 브롤프를 향해 다른 방향에서 달려온 전사가 창을 던졌다. 몸놀림이 민첩하기로 소문난 마수였지만 도끼를 맞받아친 충격으로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상태였기에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에 창이 꽂혔다.

     쿠아아앙!

     고통에 포효하는 브롤프의 옆구리에는 창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꽂힌 창대가 덜렁거렸다. 도끼를 가진 전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풀 스윙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회전력과 힘이 모아진 도끼질이 브롤프의 대가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빠악!

     제대로 머리통을 가격당한 브롤프의 거대한 몸이 강력한 힘에 의해 휘청거렸다.

     “죽어랏!”

     창을 날렸던 전사가 다시 대도를 날렸다. 연겨푸 큰 충격을 받은 브롤프가 대도를 피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공격이었다.

     휘익!

     놀랍게도 옆구리에 창을 박은 채로 브롤프는 대도를 휘두르는 전사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그러곤 지지대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까앙! 깡!

     “으악!”

     “악!”

     흙벽 위에 서 있던 전사들이 놀라 무기를 휘둘렀지만 브롤프는 그 무기들을 쳐 내며 전사들을 공격했다. 놈의 발톱은 너무 날카롭고 강해서 전사들은 무기를 놓치고 비명과 함께 쓰러지거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삽시간에 난리가 났다.

     브롤프는 그런 상황을 이용해서 사람들 머리를 뛰어넘었다. 위험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사람들이 뜸한 곳으로 움직이려는 것이다. 전사들 역시 감히 놈과 맞상대를 할 생각을 버리고 피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쪽으로 옵니다!”

     디온의 외침에는 맹렬한 투기와 함께 기쁜 감정까지 들어 있었다.

     “처리해!”

     하룬의 말에 디온이 자신의 대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달려오는 브롤프를 향해 마주 뛰기 시작했다. 이미 람비의 발과 프로즐리의 힘을 활성화시킨 디온의 몸은 브롤프 못지않게 빨리 달렸다.

     마주 달리던 브롤프와 디온은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브롤프 역시 본능적으로 디온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죽엇!”

     디온의 대도가 순간 붉게 변했다. 기사들의 마나에 해당하는 마수의 힘이 대도에 주입된 것이다.

     까앙!

     브롤프의 발톱과 부딪힌 대도에서 불똥이 튀는가 싶더니 이내 대도가 브롤프의 머리통으로 떨어졌다.

     퍼억!

     풀썩!

     머리통에 대도가 박힌 브롤프와 디온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반쯤 박혔던 대도의 날이 브롤프의 머리통에서 빠져나왔다.

     크아앙!

     위험을 감지하고 위협적으로 포효를 질러보지만 디온의 대도는 놀라운 힘과 속도로 놈을 향해 날아갔다. 붉은빛에 휩싸인 대도가 본능적으로 들어 올리는 브롤프의 발톱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싸악! 푹!

     캐앵! 크르르!

     디온의 대도는 브롤프의 발톱은 물론 앞발을 모두 베어 버리고 다시 머리통을 찔렀다. 이번에는 브롤프의 머리통을 반 이상 가르고 박힌 대도가 손목의 회전에 의해 움직였다.

     그르르.

     브롤프의 붉은 눈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며 미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별 것도 아닌 놈이!”

     디온은 손목을 가볍게 움ㅈ기여 놈의 머리통에 ㅂ가힌 대도를 회수하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어느새 마수의 힘을 회수한 대도에서는 붉은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힘의 수발이 많이 자연스러워졌군.”

     “흐흐르! 원래 내가 아카족 최고의 사냥꾼이었다……습니다.”

     디온은 할 수 있으면 시원스럽게 소리를 내어 웃고 싶었다. 덩치나 그 움직임으로 보아서 브롤프 우두머리가 분명한 놈을 혼자의 힘으로 잡았으니 왜 안 그러고 싶겠는가. 이전이라면 적어도 전사 10명이 같이 상대를 해야 할 놈이다. 그러고도 두셋은 죽고 대부분 심각한 상처를 입고서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놈인 것이다.

     환하게 웃던 디온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죽은 브롤프의 사체를 보았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뭐가?”

     “덩치를 보면 오전에 상대했던 놈과 거의 같은 놈인데 그 힘이나 능력이 월등하게 높습니다.”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마법진 때문일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밖에 없었다.

     분명히 상카를 구할 때만 해도 디온은 이렇게까지 힘을 끌어 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마수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꾸워어!

     몸집이 커서 뒤늦게 목책 앞에 도착한 프로즐리들이 포효를 하자 대기가 공포에 질려 떨었다. 프로즐리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목책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앞발로 차기 시작했다.

     꽈앙! 꽈앙!

     목책과 함께 하룬 일행이 서 있는 지지대가 흔들렸다. 목책을 단단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쌓았던 지지대에는 금세 균열이 생겼다.

     “에이! 정말 무지막지한 놈들이라니까.”

     “얼마 못 견디겠는데.”

     목책과 지지대 사이에는 어느새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벌어져 있는 상태였고 아름드리 통나무들로 만든 목책이 심하게 흔들렸다.

     “화살을 쏴!”

     전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래를 향해 몸을 숙여 직사로 화살을 쏘았지만 람비나 브롤프의 가죽보다 더 두꺼운 놈들의 가죽을 뚫는 것은 무리였다. 놈들은 따끔하다는 정도의 반응밖에 보이질 않았던 것이다.

     “끓인 물을 부어!”

     상카의 지시에 전사들이 성벽 위에서 직접 끓이던 물을 솥 째로 아래를 향해 부었다.

     크와아앙!

     끓는 물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끓는 물을 뒤집어쓴 몇 놈이 질색을 하며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놈들의 흉성을 건드린 것인지 이내 이전보다 더한 기세로 목책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놈들의 강철 같은 앞 발톱에 목책이 푹푹 파여 나갔다.

     쩌억!

     공들여 건조시킨 통나무들이 결을 따라 갈라지거나 통째로 부러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목책 뒤의 지지대가 드러난 곳들도 있을 것이다.

     “비켜!”

     그때 누군가가 나섰다. 여느 전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에 터질 것 같은 근육질 몸을 가진 민머리의 전사가 자신의 키만큼이나 큰 활을 들고 있었다.

     “부르카족 전사군요.”

     옥세르가 전사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부르카족?”

     “활을 잘 쓰는 산악 부족이……입니다. 에센이라고 부르는 매를 잘 부리며 특이한 재료로 탄성을 강화시킨 활을 잘 씁니다.”

     “티탄이다! 악스란트 마을의 최고 전사야.”

     평소 사냥을 위해 가장 멀리 다녔던 디온이 그를 알아보았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티탄이 거대한 화살에 검은색 긴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활과 화살 모두 보통 사람들은 쓰지 못할 거대한 것들이었고 그 역시 근육이 파들거릴 정도로 힘을 쏟고 있었다.

     쐐액!

     강력한 파공성이 들렸을 때는 이미 화살이 목책을 앞발로 치고 있는 프로즐리의 어깨에 꽂힌 상태였다.

     “성공이닷!”

     누군가 기뻐 소리를 질렀다. 가죽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오거나 촉 정도만 꽂힌 다른 화살과는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화살이 프로즐리의 어깨를 뚫었던 것이다.

     “와아!”

     “드디어 하나 잡았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 아니야! 죽지는 않았어!”

     쿠워어어!

     어깨가 꿰뚫린 상태에서 프로즐리는 포효를 하며 어깨로 목책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제대로 흉성이 터진 모양이었다. 화살이 박힌 어깨에서는 금세 피가 철철 흘러나왔지만 놈은 이전보다 더한 힘으로 목책을 가격했다.

     얼굴이 붉어진 티탄이 다시 한 번 활시위를 당겼다. 활대와 시위가 거대한 원을 그릴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시위가 제자리로 향하며 거무튀튀한 화살이 상처를 입고 난폭하게 목책을 들이받는 프로즐리를 향해 날아갔다.

     꾸어어억!

     이번에는 제대로 맞았다. 화살이 놈의 머리통에 박힌 것이다. 프로즐리는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기 시작했지만 쉽게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결국 쓰러지고 말 것이다.

     와아아!

     사람들이 무기를 든 손을 들어 올리며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삽시간에 목책을 수비하는 사람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십여 명에 달하는 민머리의 전사들이 티탄처럼 거대한 활로 검고 긴 화살을 쏘아 마수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화살은 프로즐리를 뺀 람비와 브롤프의 목숨을 단번에 끊어 버렸다. 순식간에 마수 수십 마리가 화살에 숨통이 끊어졌다.

     그 기세에 압도당한 것일까?

     마수들이 일제히 뒤로 몸을 뺐다. 놈들은 패잔병처럼 물러나 1킬로미터 떨어진 오르막의 숲으로 다시 들어갔다.

     “엄청난 힘이군.”

     하룬은 부르카족 전사의 힘에 감탄했다.

     “하지만 저게 한계일 겁니다. 부르카족들도 저희 아카족과는 다르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마수의 힘을 쓰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은 사용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 저런 괴력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들의 활약으로 마수들이 물러나니 다행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야?”

     평소 마수들을 잘 아는 디온과 옥세르는 믿기지가 않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마수들은 한 줌의 생기가 남아 있어도 기어코 상대의 목을 물어뜯고야 말겠다고 달려드는 살벌한 야성을 가진 놈들이었다. 이렇게 쉽게 물러갈 리가 없는 것이다.

     ‘확실히 길들여진 것인가?’

     평소 아카족 대원들에게 마수들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들었던 하룬도 쉽게 믿기지 않았다.

     우흐흐어~ 흐로르르~ 흐르르르!

     단조롭지만 묘하게 불쾌감을 일으키는 음산한 소리와 둔탁하면서도 혼탁한 종소리가 숲으로부터 들려오는 순간 또 다시 마수들이 숲 밖으로 뛰쳐나왔다.

     ‘저 안에 흑마법사가 있군.’

     하룬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수들은 같은 종이라도 배가 고프면 서슴없이 상대를 잡아먹는 마성을 지닌 놈들이다. 그런 마수들이 세 종이 섞여 있으면서 별일이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지금 숲에서 들려오는 그 음산한 소리는 흑마법사들이 내는 소리일 것이다. 소리 자체에 묘한 힘이 스며 있는 것도 그렇지만 듣는 순간 하룬은 미약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부르르!

     옆을 보니 디온과 옥세르가 질린 눈으로 가늘게 떨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기이한 공포가 심혼을 제압한 것이다.

     어느새 하늘은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조금 전만 해도 두 달이 제법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는데 이젠 달빛마저 희미하게 사위를 비출 뿐이었다.

     ‘흑마법진의 효과로군.’

     마수의 힘은 강화시키고 상대의 힘은 약화시키는 것이 흑마법진의 기본적인 효과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흑마법사가 주입하는 흑마력이나 마나석의 등급이 좌우하는 것 같았다.

     우우어워!

     마수들이 일제히 포효를 지르며 다시 한 번 목책으로 달려들었다. 람비들은 목책에 발톱을 박고 기어올랐고 브롤프들은 그런 람비들의 등을 발판으로 뛰어올랐다. 프로즐리들은 뒤로 물러났다가 달려오는 기세를 이용해서 목책에 어깨를 부딪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까에 비해서 확연히 강해진 느낌이었다.

     디온의 말대로 부르카족 전사들은 더 이상 화살을 날리지 못했다. 티탄이라는 전사만이 힘이 남은 듯 간간이 화살을 쏘았지만 람비와 브롤프들만 화살에 꿰뚫릴 뿐 프로즐리의 가죽은 뚫지 못했다.

     “디온, 가서 대원들을 데리고 와!”

     갑자기 하룬이 급하게 소리쳤다.

     “네에?”

     “이쪽으로도 온다!”

     “흐업!”

     디온과 옥세르의 눈이 정면으로 향하는 순간 그들의 입에서 다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숲에서 나오긴 했지만 우회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람비와 브롤프들 수십 마리가 길게 자란 풀을 헤치며 은밀하게 접근해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빨리!”

     “넵!”

     디온이 황급히 지지대에서 뛰어내려 내부 목책을 향해 달려갔다.

     “옥세르, 마수의 힘을 최대로 끌어 올려 이곳을 못 넘도록 막아!”

     “염려 마라! 아니……!”

     하룬은 디온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목책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 그의 손에는 어느새 시퍼런 날이 솟아난 박살이 쥐여 있었고 암기 벨트는 외투 밖으로 나와 있었다.

     크앙!

     자신들의 종적이 발견된 것을 알아차린 람비와 브롤프들이 포효를 지르며 하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싸가지! 나이아! 라이피! 위신느! 피닉스!

     급한 상황임을 알아차린 정령들이 차례대로 하룬의 왼손을 떠나는 비수들과 동화를 했다.

     -최대한 힘을 발휘해!

     -흐흐흐! 나만 믿으라고, 주인! 내가 지켜 줄게!

     싸가지는 오랜만에 밖에 모습을 드러낸 투명 비수와 함께 가장 앞서 달려오는 브롤프를 향해 날아갔다. 투명 비수는 그 이름대로 형체도 없이 날아가 놈의 머리통을 뚫었다. 싸가지의 힘과 달려오던 기세로 인해 순식간에 머리를뚫고 들어가 엉덩이로 빠져나온 투명 비수는 싸가지의 의지대로 또 다른 먹이를 찾아 날아갔다.

     깨앵! 깨앵!

     생긴 것은 살벌한 브롤프였지만 비명은 꼭 들개와 비슷했다.

     정령들이 스며든 비수들은 각기 정령들의 힘을 받아 각기 다른 색으로 빛나며 마수들의 숨통을끊어 놓았다.

     하지만 워낙 빠른 마수들이라 벌써 십여 마리는 하룬이 지키는 목책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이놈!”

     하룬은 작정을 하고 메신저 검술을 펼치기로 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지만 이렇게 다수를 상대하는 데 무척 효용이 있는 검술이다.

     푸른 오러가 날을 생성한 박살이 검로를 따라 빠르고 가볍게 흘러갔다.

     싸악! 싹!

     깨앵!

     강철 같은 강도를 가진 람비와 브롤프의 이빨과 발톱은 박살의 날에 너무나 쉽게 잘려 나갔다. 마수들은 하룬을 포위하려고 했지만 발바닥을 통해 끊임없이 마나를 흡수하고 발출하는 하룬의 몸은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서 오히려 몇 명의 하룬이 마수들을 포위 공격하는 것 같았다.

     싸악!

     람비 한 마리의 목이 잘렸다. 비명도 없었다. 몇 명의 하룬이 수십 자루의 박살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십여 마리의 람비와 브롤프가 목이 베이고 심장이 찔려 쓰러졌다.

     “대장, 또 옵니다!”

     목책 위에서 옥세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람비 몇 마리가 목책을 타고 기어오리는 것을 그가 철시를 날려 떨어뜨리고 있었다.

     “저쪽이닷!”

     이제야 다른 곳에서도 이곳 상황을 알아차렸는지 옥세르를 향해 경계를 서던 전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숲에서 비슷한 숫자의 마수들이 이쪽을 향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프로즐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돌아와!

     비수들과 동화된 정령들도 어느새 나머지 마수들을 다 해치운 상태였다. 마수들의 움직임이 아무리 민첩하더라도 정령들이 깃든 비수를 당해내거나 피할 수는 없었다.

     전방의 풀들 사이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죽어 있는 마수의 사체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마수는 새까맣게 탔고 또 다른 마수는 뼈에 가죽만 씌워 놓은 것같이 처참했다.

     -모두 수고했어! 아직 안 끝났으니 조금 있다가 다시 부탁할게.

     -흐흐흐! 이 정도는 기본이지, 주인.

     -호호! 걱정 말아요, 하룬.

     -내 뽀뽀는 적립해 놓을게요.

     -이렇게 조그만 금속에 들어가는 건 싫어요. 내 힘을 모두 쓰게 해 줘요.

     -이렇게 이상한 비수에 들어가는 건 사양하고 싶어, 친구.

     피닉스는 답답했던 모양이고 라이피는 어둠의 비수가 가진 성질에 거부감을 느낀 모양이다. 정령답지 않게 그에게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나이아와 위신느는 그가 뭘 시키든 적극적으로 해준다.

     정령들을 돌려보낸 하룬은 가볍게 땅을 차서 목책을 넘어 지지대 위로 올라섰다.

     “오늘은 이쪽이 메인인 모양입니다.”

     “그러게.”

     몇 번에 걸친 공격에도 불구하고 큰 재미를 보지 못한 흑마법사가 오늘은 다른 전략을 세웠던 모양이다. 한 곳을 두들기는 사이 다른 곳을 공격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당연히 그 정도의 전략은 생각해냈을 것이다.

     “누구십니까?”

     이쪽 상황을 보고 달려온 전사들 중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이가 물었다.

     “우리는 돌풍 용병대요. 상카의 의뢰를 받고 왔지만 탄이 거절해서 오늘 밤을 여기서 지내고 내일 돌아갈 거요.”

     “아! 전사장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 바쿠라고 합니다. 대단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탄이 아무래도 판단을 잘못 내린 것 같습니다.”

     바쿠는 목책 앞에 죽어 나자빠진 마수들을 보면서 머리를 숙였다. 그를 비롯한 30명가량의 전사들의 눈에는 강한 놀람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둘이서 서른이 넘는 마수를, 그것도 자신들이 달려오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해치운 것이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

     “마수들이 또 옵니다!”

     이제야 목책 100미터 앞까지 달려오는 마수들을 본 모양이다. 치투족 전사들은 무기들을 힘주어 잡고 긴장했다. 하지만 옥세르는 뒤를 흘끗 보더니 오히려 잘됐다는 얼굴이었다.

     “크흐흐! 한데 놈들이 오늘 운이 좋지 않군요.”

     옥세르는 벌써 목책을 향해서 질풍처럼 달려오는 대원들을 보고 음침한 미소를 흘렸다. 이상하게 이전에 비해 힘이 강해진 놈들이지만 지금 대원들의 능력이라면 평범한 마수 몇 마리는 문제없이 해치울 자신이 있는 것이다. 프로즐 리가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그건 대장에게 맡기면 된다.

     “대장!”

     “빨리 올라와라!”

     대원들이 전부 목책과 붙어 있는 지지대 위로 올라왔다. 졸지에 주객이 전도가 된 상황이라 치투족 전사들은 주춤거리며 옆으로 물러났다.

     “우리가 왔으니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가 보셔도 돼요.”

     레미가 난처한 얼굴을 한 바쿠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 그게…….”

     바쿠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로 이곳을 맡기고 가도 되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 것이다.

     “레미도 온 거야?”

     하룬의 말에 레미가 눈을 치켜떴다.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네. 나도 싸울 수 있다고요.”

     하긴 그동안 레미가 싸움에 끼어들지 않아서 그렇지 마수의 힘이라면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지구력이 좀 떨어지지만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게다가 누구라도 다치면 어떡해요.”

     “레미가 있으니 목숨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군.”

     “하하하! 그렇지.”

     대원들은 목책을 향해 달려오는 마수들을 보면서도 한순간 긴장을 풀고 웃었다. 치료사가 자신들 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기는 충천했다.

     “아무래도 카르 주변에 흑마법진이 펼쳐진 것 같다. 마수들의 힘이 강해졌어. 그러니 레미는 이곳에서 주술을 펼쳐 대원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줘! 타킴이 레미를 호위하고 다른 대원들은 목책을 내려가서 상대한다.”

     어차피 한 놈이라도 놓치면 카르는 엉망으로 변할 것이다. 그렇다고 목책만 지키기에는 수가 모자란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려가서 상대하는 편이 낫다.

     호쾌한 성격을 가진 대원들은 하룬의 이런 결정에 좋아라하며 목책에서 뛰어내렸다.

     레미가 선 채로 대원들의 사기와 능력을 올려주는 주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타킴은 자신도 내려가고 싶다는 불만 섞인 얼굴이었지만 이내 외투형 방어구를 열어 비수가 잔뜩 채워진 암기 밸트를 개방했다.

     하룬은 다시 정령들을 소환했다.

     -최대한 많이 처리해 줘!

     의지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그의 왼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다섯 개의 비수가 어느새 가까워진 마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대원들 역시 마수의 힘을 활성화시키고 마수들을 향해 짓쳐 들었다.

     “타앗!”

     “죽어랏!”

     까앙! 깡!

     마수들의 발톱과 대원들의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ㄷ르으며 하룬은 뒤따라 달려오는 프로즐리를 향해 달렸다.

     크아앙!

     포효하는 마수들 사이를 달리는 하룬의 박살은 쉴 새 없이 시퍼런 검기의 궤적을 그렸다. 박살의 궤도에 걸리는 마수들의 사지는 너무나 쉽게 잘려 나갔다.

     그동안의 수련이 헛되지 않아 메신저 워킹 스킬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며 대지로부터 마나를 흡수해서 마나 오션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손으로 향했다. 그뿐이 아니라 정수리를 통해서도 마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제대로 된다!’

     흡수되는 마나는 마나 오션을 거치지 않고 바로 팔로 이동해서 박살을 통해 오러로 발현되었다. 그 양은 검날뿐 아니라 검첨에 손바닥 길이의 검기를 생성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끊임없이 마나를 흡수하여 그 마나를 사용하는 메신저 검술의 요체가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마나 오션에 축적한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는 마나를 곧바로 사용하는 것이라 이제 하룬은 마나의 고갈을 걱정하지 않고 검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새 수십 마리의 람비와 브롤프가 박살의 검기에 의해 난자된 상태로 쓰러졌지만 아직도 상대할 마수는 많았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메신저 검술을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하룬의 눈에 다른 놈들보다 배는 상대하기 힘든 강력한 마수가 접근하는 것이 보였다.

     강력한 힘을 가진 프로즐리였다.

     쿵! 쿵! 쿵!

     네 마리의 프로즐리들이 바닥을 박찰 때마다 육중한 몸으로 인해 바닥에는 깊은 흔적과 함께 지축이 울렸다.

     드디어 전권戰圈에 도착한 프로즐리들은 하룬이 휘두르는 박살에 의해 환영을 받았다.

     까앙!

     처음으로 박살이 뒤로 튕겼다. 박살을 통해 엄청난 반발력이 전해져 검을 잡은 아귀가 단숨에 찢어지고 말았다. 놈들의 발톱은 검기를 상대할 정도였던 것이다.

     ‘흐흠! 과연 프로즐리로군.’

     하룬은 이를 악물고 다시 박살을 휘둘렀다.

     까앙! 까앙!

     발은 느린 놈들이었지만 앞발의 놀림은 무섭도록 빨랐다. 이동할 때는 네 발로 움직이지만 공격을 할 때는 주로 서서 앞발로 공격을 한다. 눈으로도 보기 힘들 정도의 쾌속한 메신저 검술이었지만 놈들은 앞 발톱으로 다 막아내고 있었다. 달리 마수가 아니었다.

     ‘검기까지 받아낼 줄이야!’

     놀라운 일이지만 그 충격으로 인해 잠시 몸을 멈추었던 하룬은 하마터면 그를 향해 덮치는 두 마리의 프로즐리의 밑에 깔릴 뻔했다.

     파밧!

     박살이 그를 향해 덮쳐드는 프로즐리들의 가죽을 베었지만 놈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덮쳐왔던 것이다. 구역질 나는 놈들의 입 냄새를 맡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람비의 발까지 끌어올린 하룬이 가까스로 네 놈의 협공을 피할 수 있었다.

     놈들은 멀리서 지켜보는 흑마법사의 지시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하룬이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한 건지는 몰라도 네 마리가 모두 하룬을 에워쌌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뛰어난 동체 시력응ㄹ 가진 데다가 날렵한 앞발 놀림을 할 수 있는 놈들을 상대할 수 없다.

     ‘후퇴해야 하나?’

     하지만 여태까지 적을 앞에 두고 등을 보인 적은 없었기에 오기가 치밀었다. 흡수되는 마나에 더해 마나 오션의 마나까지 끌어 올린 하룬이 이전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메신저 검술을 구사했다.

     까앙! 깡! 까앙! 깡!

     메신저 검술을 펼치는 하룬의 몸이 수십 개의 잔영을 남기며 움직였지만 요혈을 노린 그의 주 공격은 여지없이 막혔다. 급소가 아닌 곳은 훤히 열려 있었지만 놈들의 질긴 털가죽을 벨 수 있을 뿐 급소는 공략할 수 없었다.

     잠시 시간이 더 흐르자 하룬은 기어코 프로즐리의 앞발에 옆구리를 얻어맞고 말았다.

     파앙!

     “크윽!”

     강력한 타격에 날아간 하룬의 갈비뼈가 어떻게 되었는지 격통과 함께 신음을 내고야 말았다. 타림이 만들어 준 방어구의 방어력도 프로즐리의 괴력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꽈앙! 꽝!

     고통을 느낄 사이도 없이 옆구리를 부여잡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프로즐리의 앞발 공격에 황급히 몸을 굴러 피한 하룬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하지만 이미 그는 포위가 된 상태라 일어나서 자세도 잡기 전에 어깨와 허벅지에 강력한 타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큭!”

     비명을 지르면서도 하룬은 용케 빈자리를 찾아 몸을 날렸다. 연거푸 당한 타격으로 인해 방어구와 약간의 살점이 뜯겨 나간 어깨는 감각이 없었고 오른쪽 다리는 질질 끌렸다.

     ‘혼자 프로즐리 네 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나?’

     이제야 조금 후회가 되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놈들은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면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하룬은 레미가 자신의 몸에 새긴 문신들을 모두 활성화시켰다. 처음 발휘해보는 것이지만 지금은 목숨이 오가는 위급한 상황이다.

     “크윽!”

     타격으로 인한 것과 또 다른 이유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타격을 입었던 왼쪽 상반신은 물론 허벅지까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고 온몸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미중유의 거력이 솟구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자신을 향해 앞발을 날려오는 프로즐리들의 공격이 아주 선명하고 느리게 보였다. 오감마저 최고조에 이르러 놈들의 움직임 속에 노출된 급소가 훤히 들어왔다.

     “가랏!”

     폭발적으로 뛰어오른 하룬이 프로즐리를 넘어가며 박살로 놈의 어깨를 노렸다. 아래를 향한 박살의 검첨에는 순간적으로 1미터에 달하는 두터운 검기가 쑥 빠져나와 미처 닿기도 전에 프로들리의 어깨를 꿰뚫었다.

     푸욱!

     손맛을 볼 수는 없었지만 너무나 통쾌한 파육음이 하룬의 귀에 들렸다.

     ‘찌르기다!’

     검기가 빠져나온 프로즐리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것을 본 순간 하룬은 프로즐리를 상대할 방법을 찾았다. 길고 질긴 털과 단단한 가죽은 베기는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찌르기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메신저 워킹 스킬을 쓸 때보다 두세 배는 빨라진 하룬의 몸은 이제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잔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빨라진 하룬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박살은 이제 프로즐리의 가죽과 몸을 꿰뚫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마리의 프로즐리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갔다.

     꾸워어!

     상처를 입은 프로즐리들은 어떻게든 하룬의 몸을 잡으려 했지만 앞발에 걸리는 것은 잔상에 불과했다.

     ‘이놈들의 생명력이 워낙 강인해서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지칠 수도 있어!’

     왼쪽 어깨의 상처를 통해 계속 피를 흘려서인지는 몰라도 폭발적으로 솟구치던 힘이 약화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프로즐리들은 몇 군데씩 박살에 찔렸지만 급소를 피한 놈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심장이 찔린 놈들조차 여전히 힘차게 앞발을 휘두르는 상황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검기를 폭발시킬 수 있다면?’

     프로즐리의 몸을 뚫는 순간 검기가 폭발한다면 그 내부는 엉망으로 변할 것이다. 그럼 제아무리 질긴 생명력을 가진 프로즐리라도 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의 폭발을 쵝느 지혜의 파편에서 관심 있게 보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미 그 묘리가 담긴 검술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마나를 응축시켰다가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디스펄션 소드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온전한 마나의 폭발은 아니지만 그걸로 가능성은 충분했다.

     마나는 합일될 수도 있지만 분리할 수도 있다. 분리한 마나를 강하게 응축시켜 충돌시키면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만약 그것이 몸 안에서 일어난다면 소드 마스터의 육체라도 견딜 수가 없다.

     다른 성질의 마나라면 그 폭발의 효과가 몇 배나 더 커질 테지만 같은 성질의 마나라도 폭발은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

     하룬은 수많은 검사와 마법사들이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한 지혜의 파편 내용을 믿었다.

     할누은 오른손에 더해 왼손까지 박살의 자루를 잡았다. 그리고 메신저 스킬을 펼쳤다. 대지와 정수리를 통해 마나가 흡수되어 자연스럽게 오른손으로 향했다.

     ‘왼손에는 마나 오션의 마나를!’

     마나 오션의 마나를 의도적으로 왼손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나를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박살의 검기도 더 이상 확장시키지 않고 검첨에 모아야 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검첨에 솟아났던 검기가 사라졌다. 대신 검첨에는 마나가 응축된 빛나는 구슬이 생기기 시작했다.

     움직이면서 의식을 분리해야 하는 극히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생사가 걸린 일이라서 오래 지나지 않아 의도한 대로 두 작업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흉성이 터진 프로즐리들의 앞발을 피해 거의 무의식중에 움직이던 하룬의 눈에 한 놈의 이마가 들어와싿. 너무나 자연스럽게 박살의 검첨이 놈의 이마에 닿았다.

     ‘지금!’

     하룬은 왼손 손바닥에 응축시킨 마나를 박살로 밀어 넣었다.

     슈악!

     강하게 응축된 마나가 역시 마찬가지로 응축된 마나와 충돌하는 순간 박살의 검첨에서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강렬한 빛과 폭발이 일어났다.

     퍼억!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하룬이 쳐다보았을 때는 그 프로즐리의 머리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폭발한 마나가 머리통을 통재로 부숴 버린 것이다.

     ‘됐다!’

     하룬의 얼굴에 좁체 보기 힘든 큰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프로즐리는 더 이상 상대하기 어려운 마수가 아니었다. 프로즐리들은 하나둘 하룬에 의해 심장 부위가 터져 나가고 머리통이 터져 나간 상태로 죽어갔다. 몇 번은 실패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모든 프로즐리를 죽이고 말았다.

     “후욱! 후욱!”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마수의 힘이 다 소진되어서일까?

     하룬은 금방이라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대원들 쪽을 쳐다보았다.

     ‘역시!’

     대원들은 그의 기대대로 차근차근 마수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두르본과 디온 그리고 옥세르는 혼자서 마수를 상대했고 나머지 대원들은 3명이 어깨를 맞대고 풍차처럼 돌아가며 마수들을 상대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대원들은 여전히 잘 싸우고 있었다. 이제 마수의 힘은 다 소진되었을 테지만 하룬이 준 순정석을 복용한 후 본신의 능력까지 올라간 대원들은 레미의 주술이 더해지자 마수들을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

     하룬의 눈은 이제 정령들이 동화한 비수들로 향했다. 비수들은 각기 동화된 정령들의 특성을 발휘하며 마수들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중 발군은 싸가지와 동화된 투명 비수였다. 투명 비수에 스치기만 해도 싸가지의 강력한 독으로 인해 마수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굉장하군!’

     더 이상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많은 수가 공격을 해 온 것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마수는 기껏해야 서른 마리를 넘지 않았다.

     -다들 돌아와!

     하룬이 의지를 전하자 비수들이 돌아와 그의 암기 벨트에 얌전히 꽂혔다.

     -주인의 정령력이 간당간당했어! 앞으로 신경 좀 쓰라고! 나 같은 고급 정령을 부리려면 그 정도의 능력은 갖추어야지.

     역시 싸가지다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녀석의 싸가지없는 말투도 듣기 좋았다.

     -헤헤! 나 오늘 잘했죠?

     위신느가 비수에서 빠져나와 그의 온몸을 휘감아 돌며 그를 안았다.

     -응, 아주 잘했어! 고마워!

     -헤헤! 그럼 나중에 나만 불러줘야 해요. 밀렸던 뽀뽀 다 할 거니까!

     -알았어. 나도 기대하지.

     위신느가 돌아간 후 나이아가 그윽한 눈으로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몸속으로 들어가 특유의 치료를 위한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크윽!”

     마수의 힘을 풀어버린 상태에서 잊고 있었던 격렬한 통증이 다시 엄습했다. 하지만 나이아가 부드럽게 진동을 하자 금방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타격을 당한 곳의 어혈을 풀어주고 죽어가는 세포에 활력을 준 덕이다.

     왼쪽 어깨의 상처는 어느새 지혈이 되어 있었고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상태가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고마워, 나이아!

     -다치지 말아요, 하룬!

     나이아는 하룬이 별도로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그를 치료한 것은 물론 몸과 방어구까지 말끔하게 세척해 주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 각별해서 그런지 나이아의 능력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었다.

     -나중에 따로 불러줄 거죠?

     나이아는 기대하는 얼굴로 속삭였다.

     -그럴게.

     그러고 보니 나이아와 따로 대화를 나눈 것이 아주 오래되었다.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정령인 데다가 정령답지 않게 자꾸 인간화되고 있어 이상한 감정까지 생기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 생물체였다가 스스로의 의지로 휴먼이 된 아리와 비슷했다. 자신을 많이 좋아하는 것까지 꼭 닮은꼴이었다.

     -피닉스도 수고 많았어. 힘들었지?

     -후후! 아니에요. 좁은 곳에 갇혀 있는 것은 갑갑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웬만큼 힘을 쓸 수 있어서 좋았어요. 꼭 다시 불러줘요.

     피닉스 역시 꽤 진화를 했는지 스스로의 의지로 나이아가 깨끗하게 만든 몸과 방어구를 말려주고 사라졌다.

     -라이피, 이번에도 기분이 불쾌했어?

     -응, 친구. 불쾌하고 어두운 마나를 마구 빨아들이는 녀석이라니. 근데 그거 비수가 맞아? 마치 그 안에 우리 같은 정령이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진짜야?

     -잘은 모르겠는데 그런 것 같아. 언제 시간 나면 한번 소환해 보라고. 내 생각엔 이제는 잊힌 존재 중 하나인 어둠의 정령 같은데 확실하진 않아.

     새로운 정령이라는 말에 하룬의 눈이 반짝였다.

     -알았어. 확인해 보지. 수고 많았어!

     -하하하! 언제라도 불러줘. 이제 조금만 더 정령석의 정령력을 흡수하면 우리 모두 스스로의 의지로 물질계에 현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각성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정령석이나 많이 구해 줘.

     -알았어. 너희들의 힘이 강해지면 나도 강해지는 일이니까.

     정령들이 모두 몸속으로 돌아간 후에야 하룬은 걸음을 옮겼다.

     내친 김에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 숲을 조사하고 싶었지만 몸 상태가 무척 안 좋았다. 나이아 덕분에 통증은 많이 줄었지만 프로즐리에게 얻어맞은 곳이 아직도 얼얼했다. 어깨에는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룬은 근처에 있을 버처리비크에게 의지를 보냈다.

     -미노, 수니, 근처에 있니?

     잠시 후에 미노와 수니의 의념이 전해져 왔다.

     -친구가 땅속으로 사라진 숲에 있다.

     -무슨 일이야?

     다행히도 멀리 가지 않았다. 그곳이라면 녀석들에게는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마수들이 나온 숲을 좀 살펴줘. 뭔가 변화가 있을 때 알려주면 돼.

     -알았다.

     미노의 대답을 끝으로 의념이 끊어졌다. 성질 급한 녀석이 벌써 날아오른 모양이다. 녀석들의 시력이라면 작은 움직임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마무리를 하는 대원들을 향해 가는 동안 하룬은 달빛 속에 미노와 수니가 하늘 높이 날아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걸 보고 멈춰선 하룬에게 수니의 의념이 전해졌다.

     -친구, 맛없는 것들을 탄 인간들이 숲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간다.

     회심의 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도망을 치는 모양이다. 그런데 마수를 타고 도망을 치다니 테이밍 수준이 꽤 높은 흑마법사들인 것 같았다.

     -몇이나 되지?

     -열이 넘는다.

     -그럼 놈들을 막아!

     -알았다.

     -인간들의 마법을 조심해!

     -걱정하지 마라.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신기한 것들은 무섭지 않으니까.

     수니는 자신을 했지만 하룬은 여전히 불안했다. 최소 5서클 이상으로 추측되는 흑마법사가 있을 텐데 이렇게 조심성 없이 덤벼들다가는 심각한 피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제길! 부상도 그렇고…… 힘을 찾을 시간이 필요한데.’

     마나는 바닥이고 정령력도 간당거리는 상황이다. 자신이 이제 쓸 수 있는 힘이라고는 어퍼 오션에 있는 뇌전의 힘이 고작인 것이다.

     대원들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몇 명은 완전히 탈진해서 피투성이로 쓰러졌고 다들 그 자리에서 눕고 싶은 얼굴이다.

     ‘힘! 힘이 필요해!’

     하룬이 강하게 염원하는 그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마치 거짓말처럼 갑자기 전신에서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전신 세포가 올올이 깨어나서 활동하는 것처럼 무력했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마나 로드에 정체불명의 마나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마나는 이내 텅 빈 마나 오션으로 흘러들어갔다. 기존에 있던 자연의 마나가 반발했지만 워낙 압도적인 기세와 양에 합해지더니 급속도로 마나 오션을 채우기 시작했다.

     ‘뭐야?’

     자신의 몸속에 숨어 있다가 자신이 보내는 의지에 화답해서 나타난, 연원淵源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마나는끊임없이 마나 오션으로 흘러들어 회전을 하며 응축하기 시작했다.

     하룬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이해할 수 없는 그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흘러들던 마나는 회전과 함께 응축하며 그 덩치를 급속하게 키웠다. 마나 오션이 좁게 느껴졌을까? 상상할 수 없는 밀도로 응축된 마나의 한쪽 끝이 풀리더니 익숙한 마나 로드로 향했다.

     뻥 뚫린 대로를 향해 마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마나는 남이 닦아 놓은 길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익숙하게 빠른 속도로 마나 로드를 질주했다.

     정수리를 지나 인중과 혀뿌리를 타고 명치를 거쳐 마나 오션으로 다시 돌아온 마나는 그 양이 절반으로 줄어 성질이 순수해진 상태지만 여전히 많은 마나들이 이곳저곳에서 유입되고 있었다.

     하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나 플로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하룬의 몸속에 정체 모를 어떤 존재가 숨어 있다가 마나 오션이 비자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난입한 것 같은 양상인데 신기하게도 새로운 마나는 발바닥과 정수리를 통해 유입되는 마나와 섞여 마나 로드를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정신을 차린 하룬은 마나 오션이 터질 듯 가득 채운 새로운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부상을 입은 부위는 멀쩡하게 회복되어 있었다. 살점이 떨어져나간 왼쪽 어깨에도 새로운 살이 돋아나 있었다.

     ‘무엇이든 부숴버릴 수 있을 거 같아!’

     이전이라면 상쾌함과 함께 강한 활력을 느꼈을 텐데 이제는 몸이 근질거리는 감각부터 시작해서 거치적거리는 것은 무엇이든 부숴 버리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들었다.

     ‘이건?’

     생각해 보니 자신이 가진 힘이 하나 더 있었다.

     하룬의 눈이 자연스럽게 오른손 손등에 있는 문신으로 향했다.

     ‘커졌다!’

     문신은 어느새 그 크기를 확장했다. 소매를 걷어 올린 하룬은 문신이 어느새 팔뚝까지 확장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제 온몸 곳곳에 숨어 있는 기이한 마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어떤 마나지?’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이 힘 역시 자신의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내가 힘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해!’

     하룬은 몸을 돌려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메신저 워킹 스킬을 펼친 하룬은 발바닥으로부터 흡수된 대지의 마나가 익숙한 경로를 타고 올라와 마나 오션으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반발은 없는걸.’

     자연에서 받아들인 마나는 자신들의 자리를 차지한 마나와 반발하지 않고 섞였다. 하지만 섞인다는 것일 뿐 하나로 융화된지는 않았다.

     ‘엄청난 속도야!’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자연의 마나는 급속하게 흡수되고 있었다. 마치 빼앗긴 자신의 집을 차지하기 위해서 응원군을 부르듯 삽시간에 마나 오션을 채우고 있었다. 숲을 통과해서 그 밖으로 다시 나가는 사이에 마나 오션에는 묘한 균형이 이루어져 있었다.

     ‘이건 태극 문양인데?’

     종말 시대에 코원 유니온 지역을 통치했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기 안에 새겨져 있던 문양과 비슷한 형상을 이루며 두 마나는 마나 오션을 채워 갔다.

     하룬은 숲을 끼고 달렸고, 곧 멀리 버처리비크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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