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4화.치앙 카르 (185/278)

《치앙 카르》

 땅굴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더 이상은 마수가 출몰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상카 일행을 습격한 브롤프들은 그들을 쫓아왔던 놈들이리라.

 그곳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더 높은 지역에 위치한 치앙 카르의 목책을 볼 수 있었다.

 “왜 결계 주술이 깨졌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보니 카르도 별로 견고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한번 다른 카르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보이지도 않는 길을 치투족 전사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거든요.”

 레미의 말에 하룬은 치투족의 결계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환상 마법과 비슷한 주술인가? 만약 예힘의 말대로 주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우리 세계에서도 펼칠 수 있다면 우리 기지 역시 결계를 쳐서 보호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일이 엄청나게 많은 벨과 아리지만 그녀들과 아즈만의 능력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다. 누군가 해낸 일이라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그 셋이 힘을 합해 당연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이곳에서 카르까지는 엄청나게 먼데…….”

 레미는 이런 땅굴을 판 치투족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 숲과 카르 간의 거리는 적어도 2킬로미터는 족히 되어 보였다.

 “일단 들어가자! 점심은 카르 안에서 먹도록 하자.”

 하룬은 발광석을 꺼내들고 시꺼멓게 입을 벌린 땅굴 속으로 몸을 날렸다.

 대충 눈어림으로 짐작하건대 지하 3미터 아래에 뚫린 땅굴은 생각보다 넓고 높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벽과 천장에는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꺼운 나무를 지지대로 받쳤지만 오래전에 건설한 듯 나무는 썩어 있었고 이미 곳곳이 무너져 내려 무척 위험한 상태였다.

 하룬은 상카의 의뢰를 생각하고는 아예 라이피를 소환했다. 나중에 다시 나오려면 이 땅굴을 보강해두는 것이 좋으리라.

 -라이피, 벽과 천장을 단단하게 다졌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라이피는 하룬이 원하는 대로 벽과 천장을 단단하게 다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단단하게 다져진 곳들이 많아 라이피가 나아가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하룬 일행은 라이피 덕분에 안전하게 땅굴을 통과해서 그 끝에 이르렀다. 그 끝은 단단한 철문으로 닫혀 있었는데 쇠로 만들어진 문고리가 달려 있었다.

 문고리로 철문을 두드리자 작은 틈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우리는 치앙 카르의 전사장인 상카의 의뢰를 받고 온 돌풍 용병대요.”

 하룬은 그 말과 함께 그 틈으로 상카가 준 목걸이를 넣어 주었다.

 “맞는군. 잠시 기다리시오.”

 잠시 후 신물을 확인한 상카족 전사 둘이 육중한 철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하룬 일행의 숫자를 보더니 무척 실망한 얼굴로 변했다.

 “겨우 이거요?”

 전사의 말에 대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하룬이 침묵을 지키자 나서는 이는 없었다.

 “탄에게 안내해 주시오.”

 탄은 카르를 다스리는 촌장의 명칭이다.

 “알겠소. 날 따라오시오.”

 치투족 전사는 실망한 얼굴을 감추지 않은 채 하룬 일행을 위쪽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올라온 하룬은 양옆에 있는 큰 건물 두 채를 볼 수 있었다. 그 사이의 좁은 골목에 땅굴의 통로가 있엇던 것이다.

 골목을 빠져나온 하룬 일행은 통나무로 기둥을 삼고 벽돌로 벽을 쌓아 올린 2층이나 3층 건물들을 따라 잠시 걸은 끝에 이곳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추정되는 4층 건물로 안내되었다.

 “이곳은 통제 망루요. 꼭대기에 탄과 원로들이 있으니 오라가시오.”

 그들을 안내한 전사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공화당으로 다시 돌아갔다.

 하룬은 벽돌을 이용해서 단단하게 쌓아 올린 건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물 중앙에 있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간 하룬은 사방의 벽들이 터진 2층과 3층 내부를 볼 수 있었다.

 3층에서는 두 개의 목책으로 보호받고 있는 카르의 전경은 물론 남쪽의 문 주위에 배치된 전사들까지 볼 수 있었다. 문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벽돌로 뭔가를 쌓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다.

 “누구냐?”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서 있는 두 전사가 그들에게 소리를 질러 물었다.

 “상카의 부탁을 받고 이 카르의 탄을 만나러 왔소. 우리는 돌풍 용병대요.”

 “용병? 탄을 만나겠다고?”

 목에 스카프처럼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진 끝을 맨 전사가 하룬 일행을 유심히 살폈다. 적의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연일 계속되는 마수들의 공격으로 인해 신경이 날카로워진 듯 쉬이 하룬 일행을 올려 보낼 기세가 아니었다.

 하룬은 짜증이 났지만 억지로 참고 다시 상카의 목걸이를 내밀었다.

 “상카 전사장의 신물이 맞는군. 그는 어디에 있나?”

 이쪽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하룬은 묘하게 짜증이 났다. 그런 기분을 알아차린 레미가 하룬의 곁에 서며 대답했다.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어요. 우리는 그의 의뢰를 받고 먼저 달려온 거고요.”

 “흐음.”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올라가시오. 단, 무기는 이곳에 모두 놓고 가시오.”

 “뭐요?”

 옥세르가 눈썹을 추켜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제 마수의 힘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진 터라 폭풍과 같은 거칠고 위험한 기세를 뿜어내는 옥세르였다.

 “이곳은 본 카르의 지배자인 탄과 원로들이 있는 곳이오. 당연히 외부인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만나러 가야 하오!”

 “허, 참! 카르가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서 다른 의뢰를 수행하는 중인데도 불구하고 의뢰를 받아들였더니 이런 대접이라니!”

 옥세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상카 전사장이 같이 있다고 해도 이 규칙은 지켜야 한다!”

 치투족 전사는 급기야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옥세르의 기세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뭐야? 지금 우리와 싸우자는 거냐?”

 성질이 폭발한 옥세르가 살벌한 눈길로 전사들을 쳐다보며 등에 멘 대도 손잡이를 잡았다.

 “옥세르, 그만해라! 우리가 상카에게 들은 것과 달리 이 카르는 위험한 상황이 아닌 모양이다. 이만 돌아간다!”

 결계 주술은 욕심이 났지만 이런 대접을 받으며 의뢰를 수행할 생각은 없었다. 하룬은 미련을 털어버리고 몸을 돌렸다.

 “참 답답한 분이네요. 우리가 비록 용병이지만 아카족이란 것은 알아보았을 텐데……. 거기에 상카의 신물까지 보였건만 우릴 믿지 못하다니. 용병에게 무기를 풀어 놓으란 말은 생명을 맡기라는 건데 그 사실은 알고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레미가 답답했던지 그 전사를 보며 빠르게 쏘아붙였다.

 “그, 그렇지만 규칙은 지켜야 한다!”

 “언제 그런 규칙이 생겼죠?난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데요. 치투족은 자신들이 초대한 손님도 두려워하는 겁쟁이들이었나요? 게다가 우리가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도 않다니……. 치투족은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나요? 기껏 도와주러 왔는데 이런 대접이라니 정말 우리 꼴이 우습게 되었군요.”

 언제나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레미도 어지간히 성질이 났는지 뾰족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전사를 힐난했다.

 “그건…….”

 그 전사는 레미의 말에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인가?”

 위쪽에서 이 마츠 평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재질의 튜닉을 걸친 넉넉한 풍채의 초로인이 모습을 보였다. 머리가 반백이 된 그의 얼굴은 잘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비법이 있는지 피부가 팽팽하고 붉었다.

 그의 뒤를 따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들 둘과 10여 명의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탄! 그게…… 상카 전사장으로부터 의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용병들인데 위로 올라가려고 해서 무기를 풀어 놓으라고 했더니 이 난리를 치는 겁니다.”

 치투족 전사는 억울하다는 듯 보고를 했다.

 “내 아들이 의뢰를 했다고?”

 탄의 눈길이 하룬 일행을 향하더니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하룬에게 고정되었다.

 “난 돌풍 용병대를 이끌고 있는 하룬이오.”

 묵직하면서도 차가운 기세가 흘러나오는 소개에 탄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잠시 심혼이 옥죄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탄은 그 느낌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어깨를 몇 번 움직이더니 입을 열었다.

 “난 치앙 카르를 다시리는 ‘탄’ 바타라고 하오. 내 아들 상카가 그대 용병대에 의뢰를 했다고 했소?”

 하룬의 기세에 눌린 것일까? 바타는 조금 전과는 달리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이곳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숲 입구에서 브롤프 스무 마리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귀 카르의 전사들을 구했소. 그중 상카라는 이름의 전사가 우리에게 의뢰를 했소. 카르의 미래인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호송해 달라는 의뢰였소.”

 하룬의 말에 바타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그가 웃음을 터트리자 하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전신으로부터 살벌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껏 참으며 용건을 말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황당하다는 웃음뿐이니 인내심이 바닥을 보인 것이다.

 그 기세에 순간 전사들을 비롯해서 탄과 원로들이 일제히 나직한 경호성을 지르며 주춤 뒤로 물러났다.

 “흐억!”

 “귀하의 아들이 귀하의 의지와 다른 의뢰를 한 모양이오. 아들이 한 의뢰를 무시하는 것은 좋은데 본 용병대를 모욕하지는 마시오!”

 얼음장 같은 하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던 탄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제야 자신이 실수를 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상대는 자신의 권위로 찍어 누를 만큼 약하지가 않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상대가 자신의 목덜미를 잡아챌 것 같은 위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시, 실례했소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너무 황당해서 그만…….”

 탄은 얼굴색이 변해 사과를 했지만 하룬의 태도는 여전히 살벌했다.

 “부자간에 서로 조율이 된 의뢰가 아닌 것 같으니 우리는 그렇게 알고 돌아가겠소.”

 아무래도 현 카르의 상황을 두고 두 부자가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의뢰를 고집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이제 카르 사람들이 죽고 사는 것은 자신의 손을 떠났다.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진 하룬이 기세를 풀었다.

 그러자 자신이 보인 실수가 마음에 걸렸던 탄이 황급히 말했다.

 “아, 아니, 그럴 수는 없소. 비록 내 아들 상카가 마수들로 인해 판단력이 흐트러져 잘못된 의뢰를 했지만 아들의 초대를 받고 왔는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소. 식사라도 하고 하루 푹 쉬다가 가시오. 내 아들 상카는 만나 보고 가셔야 할 거 아니오? 내 헛걸음한 것은 넉넉하게 쳐서 챙겨 드리겠소.”

 하룬은 다 필요 없다고 단박에 그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자신에게 눈짓을 하며 작게 도리질을 하는 레미를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휴우!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자주 흥분하는 거지? 진정하자!’

 하룬은 폭발하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어차피 이곳까지 들어왔으니 그렇게 하겠소.”

 “공화당이 비어 있으니 그곳에 묵으면 될 것이오. 그리고 식사는 내 따로 챙겨서 그곳으로 보내 드리리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귀한 손님들과 함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진귀한 요리들을 즐기고 싶지만 마수들 때문에 이렇게 대접하는 걸 용서하시오.”

 역시 일족을 이끄는 우두머리다운 녹록지 않은 처신이다. 하룬은 진심이 아니라도 이렇게 부드럽게 상황을 넘기는 탄의 말솜씨나 처신은 배워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하룬은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대원들과 함께 건물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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