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0화.현실로 (181/278)

《현실로》

 성의 주인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모두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주민들 대부분은 페일론처럼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누추한 옷차림이었지만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페일론을 비롯한 대표들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은 주민들은 돌풍 용병대원들을 비롯해 하룬 일행의 발에 일을 맞추며 최고의 감사를 보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나도."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아카족 대원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감사에 어떻게 행동항지 몰라 당황했다. 그러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 흐뭇한 얼굴로 각자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헤니와 레미는 신관들과 함께 임시 치료소를 열었다. 건강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정도로 주민들은 이런저런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장 흔한 증상이 영양실조와 만성피로였다. 정신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상태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린 주민들이기에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치료를 받기 위해 선 줄은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약재가 문제가 되었지만 다행이 흑마법사들이 실험을 위해 준비한 상당한 양의 포션과 각종 치료 약재를 창고에서 발견 할 수 있었다.

 영양실조는 당장 어쩔 수 없지만 가벼운 외상이나 각종 질병 들은 치료가 가능했다. 신관들의 신성 치료와 두 대원의 치료순은 충분한 약재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냈던 것이다. 나중에는 가벼운 증상의 경우는 성기사들이 그 치료를 맡기도 했다.

 도네이스와 헤니는 그런 주민들을 위해 식량 창고를 열어 실력 발휘를 했다. 식사 시간에 밖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니 대부분의 준민이 아침 식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는 것보다는 치료를 받는 것을 더 중요시했다. 치료를 받으려고 줄은 선 사람들은 음식이라는 말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타킴, 수프를 나눠 주어야 겠다."

 대원들이 급한 대로 배급소에 있는 그릇을 모두 꺼내 고깃가루와 각종 야채가 들어간 맛있고 영양가 높은 수프와 빵을 치료가 받기 위해 줄은 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그릇이 부족했지만 다행히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식기를 가져왔다.

 그렇게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하룬은 여전히 에테메난키의 5층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나서 버처리비크를 부르는 것이다.

-수고했다. 너희들이 큰일을 했어.

 하룬은 미노와 수니의 활약에 감사하며 육포 한 포대를 꺼내 주었다.

-그까짓 놈들은 한 발로도 다 죽일 수 있다.

 미노가 수컷답게 으스댔다.

-이건 정말 맛있다. 그놈들은 정말 맛이 없어. 심장도 그렇고 염통도 그렇고.

 수니는 맛있는 육포를 먹으면서도 마수들의 맛없는 고기를 생각하며 투덜댔다.

'자식! 안 먹으면 되는 것을 누가 먹으라고 했나.'

 하룬은 피식 웃으며 미노의 목에 걸었던 헤드 캠을 풀어 이제야 뒤늦게 영상을 확인했다. 빠르기를 조절해 가면서 영상을 확인하던 하룬의 얼굴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각해졌다. 

'심각하군. 회의를 해야겠어.'

-너희들은 마저 다 먹고 근처 숲에 가 있어. 난 볼일이 있어 내려가야겠다.

 미노와 수니는 통짜 육포의 맛에 정신이 빠져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각종 향신료로 조미가 된 육포는 잘 훈제가 되어 있어 생고기만 먹어 온 녀석들에게는 그야말로 별미 중에 별미였던 것이다.

 에테메난키에서 내려운 하룬은 1층 숙소 중 한 곳으로 들어가며 오가는 대원들을 통해 세르파와 일룸에게 만나기를 청했다.

"무슨 일입니까, 대장?"

 가장 먼저 달려온 세르파는 한창 마법진에 빠져 있다가 방해를 받은 것이 영 마땅치 않은 얼굴이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룬의 말과 심각한 얼굴에 세르파가 자세를 바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페일론을 비롯한 제국군 병사 출신의 주민들과 시간을 보내던 일룸이 들어오자 하룬이 직접 문을 닫았다.

 창살을 통해 햇빛이 들어오는 실내는 그렇게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심각한 얼굴의 하룬을 주시했다.

"두 분을 청한 것은 저희 대원들이 데빌 산맥과 그 인근을 조사하며 저장한 영상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영상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지요."

 버처리비크들은 성공적으로 정찰을 해 왔다. 약 일주일에 걸쳐 그들이 정찰해 온 결과는 영상 저장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과연 성공할지 우려했었지만 녀석들의 가슴에 고정시킨 영상 저장구에는 데빌 산맥 일대의 영상이 제대로 저장되어 있었다.

 하룬이 헤드 캠을 조작하자 햇빛이 닿지 않는 벽면에 영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원본이 아니라 이미 하룬이 서툰 솜씨로나마 편집해서 카피한 영상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자신이 새가 되어 날면서 아래를 보는 기분으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엄청나군! 얼마 전에 본 버처리비크를 탄 것은 아닐 텐데. 헛! 설마 대원 중에 전설로 전해지는 와이번 라이더라도 있는 겁니까?"

 분명히 어떤 물체를 타고 비행하며 찍은 영상이었기에 세르파는 깜짝 놀랐다.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기사에 대한 전설은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던 것이다.

'버처리비크도 부리는데 와이번이라고 부리지 못할 이유는 없지. 정말 그능력의 끝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용병대로군.'

 하룬이 대답 대신 짓는 작은 미소 한 조각을 보며 두 사람은 거의 동일한 생각을 했다. 

 첫 감상은 놀람이었다. 마츠 평원은 물론이고 데빌 산맥은 끝이 없을 것처럼 광대했다. 하능에 닿을 것처럼 높고 험준한 산들은 산허리부터 산고대기까지 흰 옷을 입은 것처럼 눈이 쌓여 있었고 수시로 구름을 두르며 감히 범접하기 힘든 위엄을 보였다.

 산허리 아래쪽은 수많은 계곡들과 능선들이 펼쳐졌는데 무성한 수림으로 인해 밀림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데, 처음 보는 기괴한 외형을 하고 있는 괴수들과 마수들이 몬스터들과 함께 삶을 위해 거칠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 저기도 성이 있네."

 일룸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영상에는 높은 성벽과 거의 완성되어 가는 에테메난키 특유의 첨탑이 있는 성은, 세개의 산자락이 모여드는 곳에 축조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직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다.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들은 하늘에 나타난 괴조怪鳥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숨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검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하늘을 향해 마법 공격을 퍼부었다.

 버처리비크들은 고도를 올리고 방향을 틀어 쉽게 그 마법 공격들을 피했다. 아래에선 난리가 났지만 녀석들은 빠르게 선회하며 성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냈다.

"흑마법사들이 맞는군. 게다가 다크 엘프들도 있고."

 버처리비크들을 향해 철시를 날리는 궁수들의 모습은 틀림없는 다크 엘프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쫓기 시작한 아이콘라드의 존재로 보아 놈들은 상당수의 마수를 종속시킨것이 틀림없었다.

 버처리비크들은 강철보다 더 강하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그리고 강력한 힘을 가진 날개로 기민하게 움직이며 열마리의 아이콘라드들을 난도질하고 유유히 그곳을 벗어났다.

 버처리바트들은 하룬의 부탁을 정확하게 이행했다. 하룬은 녀석들에게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데빌 산맥을 중심으로 넓게 타원을 이루며 정찰하되 범위를 좁혀 세 번 정도 비행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첫 번째로 데빌 산맥과 마츠 평원을 그 범위 안에 넣은 가장 넓은 타원의 궤도를 도는 데 무려 사흘이 넘게 걸렸다. 중간에 녀석들은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해야 했고, 때때로 비행 마수를 처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하룬이 여지없이 편집을 했기에 일룸과 세르파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사이 본 성만 해도 무려 서른개가 넘었다. 모두가 이곳처럼 미완성인 상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성을 축조하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배치된 인원이 1,000명인 것을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무려 삼 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버처리비크들은 세 번에 걸쳐 타원 궤도를 비행하며 정찰을 했다. 그사이에 버처리비크의 시야에 들어온 성의 숫자는 무려 칠십 개가 넘었다. 

 마침내 영상이 모두  끝났을 때 세 사람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을 직접 본 사람들의 충격은 쉽게 입을 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적막을 깨뜨린 것은 하룬이었다.

"난 이 영상으로 마탑과 황실의 의뢰를 어느 정도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하룬의 말에 세르파와 일룸이 궅은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이 영상은 저희에게 몇 가지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룬의 말에 주의를 집중했다.

"하나는 이 데빌 산맥 전역에 다크니스로 추정되는 미지의 세력이 성을 건설한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험준한 산과 광활한 평원을 가리지 않고 성을 건축하고 있는데 그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성을 쌓는 거지?"

 일룸의 말에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정말 수수께끼였던 것이다. 데빌 산맥에 본거지를 만들기 위해서일까?

"확실한 것은 실종자들이 파이란 제국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란 거지요."

 세르파의 말이 맞았다. 이곳 사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각각의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사람들은 개당 1,000명을 잡아도 엄청난 숫자였다.

'그렇다면 다른 제국들에서도 실종자가 발생한다는 말이 되는데.........'

 일이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밝혀진 것들도 적지 않다.

 일단 다크니스라는 조직은 이제 단순한 조직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세력이 커져 있었다.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흑마법사들과 다크 엘프들은 물론이고 그들이 부리는 언데드와 마수의 숫자를 생각하면 제국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마탑 조사대의 행방과 다크니스의 행방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겪은 경험으로 추론하건대 저희희 힘만으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될 겁니다. 일단은 이곳에서 쉬면서 이제까지 파악한 상황에 대해서 마탑과 황실에 중간보고를 하고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소."

 세르파는 하룬의 결정에 금방 동의했다. 일룸 역시 두 개의 의뢰 중 실종자의 행방에 대한 건이 일정 부분 밝혀졌기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나 역시 원칙적으로 대장의 결정에 찬성합니다. 다만 기사들이 좀 걱정입니다."

 일룸은 행여 이제까지 일행이 상대했던 다크 나이트가 그들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 말에 세르파 역시 마탑 조사대가 걱정되는 얼굴로 변했다. 

"저희가 상대했던 언데드들 중에는 파이린 제국군 특유의 복장을 하고 있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하룬의 말에도 불구하고 일룸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에 대해서는 저희 용병대가 끝까지 추적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흑마법사들은 인간을 도구로 보는 자들입니다. 마탑 조사대와 황실의 조사대는 물론이고 호위 기사들과 병사들은, 흑마법사들에게는 높은 가치를 지녔으니 쉽게 죽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럴까요?"

"실종자들이 살아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들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놈들의 실험체로 전략하거나 이지를 상실하고 놈들의 하수인이 되기 전에 그들을 구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룬의 말에 두 사람은 비로소 굳었던 얼굴을 펴면서 감복한 표정을 지었다.

"고맙소, 하룬 대장!"

"정말 고맙소."

"두 분은 중간보고를 하십시오. 아마 보고를 들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언질이 있을 겁니다. 세르파 경께서는 이 영상을 카피마법으로 복사하십시오. 통신을 통해 중요한 영상을 보이는 것은 가능하지요?"

"그럼요."

 세르파가 작은 수정구 두 개를 꺼내 영상을 카피해서 하나를 일룸에게 넘겼다.

"고맙습니다. 그럼 나는 일단 베른하트 경을 만나야겠습니다."

 일룸은 통신을 위해 바삐 방을 나섰다. 영상이 담긴 수정구를 갈무리한 세르파가 그 뒤를 급하게 나갔다.

 두사람이 보고를 위해서 방을 떠나자 하룬은 깊은 사색에 들어갔다.

 정신없던 하루가 지나가고 어느새 밤이 되었다.

 하룬은 대원들을 소집해서 아침에 세르파와 일룸에게 보여 준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것 역시 편집을 한 것이지만 쓸데없는 것만 뺀  것이라 그 분량은 일룸과 세르파에세 보여준 것보다는 두 배는 더 길었다.

"세상에!"

"이런 성이 하나가 아니라니!"

 숨을 죽이고 데빌 산맥 인근의 정찰 결과를 본 대원들은 영상이 사라지자 불난 집처럼 시끄러워졌다. 하룬이 손을 들자 그런 대원들은 그에게 집중하며 다시 조용해졌다.

"이미 영상에서 본 대로 다크니스라는 이름을 가진 세력은 이곳 데빌 산맥에서 모종의 음모를 진행하고 잇습니다. 납치한 사람들을 이용해서 성을 쌓는 것도 그중 하나닙니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이 비로소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의뢰에 대한 것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만 상황은 윕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흑마법사들에게 마법을 펼칠 여유를 주지 않았기에 그나마 손쉽게 해치울 수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흑마법사들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심해야만 합니다. 거기에 이 헤겐 성에는 기사들이 없었지만 페일론 말에 의하면 납치당할 당시에는 기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야 의뢰의 위험성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는 앞으로 여기에서 일주일 정도 충분히 쉬면서 실력을 올려야 합니다. 마탑과 황실에 이런 정보를 보고하도록 했으니 그쪽에서 어떤 얘기가 나올 겁니다. 우리는 거것에 맞추어 다시 움직이게 될 겁니다."

"이곳이 우리에게 떨어진 것을 알면 다크니스라는 세력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타니엘라가 급소를 짚어 주었다.

"다행이 이곳은 고요의 땅처럼 마나 유동이 심한 지역어서 워프가 되지 않습니다. 이곳과 가장 가까운 성의 거리는 약 3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버처리비크가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

 버러치비크의 공중 정찰 능력을 생각하면 습격을 당할 여지는 없었다.

"이곳 주민들이 문제군요. 이곳에 그냥 놔둘 수도 없는데."

 티노의 말대로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오늘 하루 치료를 하고 영양식을 먹였다고는 하나 먼 거리를 이동할 체력은 안 되니 안전한 곳으로 호송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던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데빌 산맥 곳곳에 다크니스가 그 마수를 뻗고 잇는 상황이라 탄툰 마을의 안전도 걱정스럽습니다."

 그 말에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흐르던 아카족 대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레미, 마을의 위치는 안전한가?"

 저공비행이라고는 하지만 데빌 산맥 자체가 워낙 험준하고높아서 버처리비크들은 상당한 고도를 유지한 상태로 정찰했기에 대출의 지형이나 숲이 아닌 고산지대의 마수들밖에는 볼 수 없었다.

"일단 우리 마을이 위치하고 잇는 지형으로 보아 별일은 없을 것 같아요. 원래 우리 아카족이나 다른 부족들의 경우, 마수의 접근이 어려운 곳에 마을을 건설했기에 저렇게 산과 산이 연결되거나 툭 터진 곳에 건설되는 성과는 많이 떨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단은 다행이다. 하지만 아카족 대원들의 걱정은 당연했다. 마수를 부리는 자들이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성을 쌓고 있으니 그들에게도 당연히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심하면 고립이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생필품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많이 기다리고 잇을거에요."

 그 말을 들으니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연히 고려했어야 하는데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 밖으로 마츠 평원으로 진입한 지 얼마 안 돼서 흑마법사들과 조우한 탓에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생각을 좀 해 보자."

 공연히 하루를 힘들게 보낸 사람들에게 걱정을 안겨 주는 셈이 되었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로부터 이런 정보를 듣게 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었다.

 “티노 부대장!”

 “네!”

 “난 정찰을 위해 한 이틀 정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을 부탁합니다.”

 “괜찮겠습니까?”

 하룬의 능력은 믿지만 데빌 산맥에 지어지고 있는 성들이 다크니스의 세력을 의미하는 것 같아 영 불안한 티노였다. 다른 대원들 역시 이런 곳에서 홀로 움직인다는 것에 무척이나 우려하는 얼굴이었다.

 “정보 때문에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겁니다.”

 하룬의 말에 고참 대원들의 눈에서 어느 정도 우려의 빛이 사라졌다. 하룬이 종종 극비 정보를 위해 이종족을 비롯한 신비의 존재들과 접촉한다는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아마 지금 구하려는 정보도 이번 의뢰를 무사히 수행하기 위한 것이리라.

 “알겠습니다. 그럼 이곳 일은 세 고문님들과 함께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할 일이 많은데 혼자 움직이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지만 잠시 현실에 다녀와야 했다. 이곳 상황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돌아가니 이렇게 잠시 짬이 날 때라도 로그아웃을 해야만 했다.

 벨과 아리도 보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도 기지 사정이나 새로 만든 돌풍 상단의 일도 궁금했다.

 “대원들은 걱정 마십시오.”

 “하하! 저희를 믿고 다녀오십시오, 대장.”

 “저희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딜런과 타니엘라 그리고 미루스가 나서 하룬을 안심시켰다. 하룬은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뢰의 미소였다. 그들 3명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대원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예기치 않은 사정이 생기면 알아서 판단해 움직이십시오. 상황이 되는 대로 통신을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룬은 다소 심란한 마음으로 성을 떠나 조금 멀리 떨어진 숲으로 가 로그아웃을 했다.

 “어! 웬일이야, 오빠?”

 호수 기지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벨이 캡슐을 열고 나오는 하룬을 반겼다.

 “하하! 우리 벨이 보고 싶어서 나왔지.”

 하룬은 달려드는 벨을 안고 그녀를 몇 차례 돌렸다가 내려 놓았다. 현실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심란했던 마음이 벨을 보자 싹 사라졌따.

 쪼옥!

 “우리 동생 잘 있었어?”

 하룬이 벨의 부드러운 볼에 뽀뽀를 하며 물었다.

 “치잇! 그게 궁금한 사람이 이제 나와!”

 삐친 것처럼 흘겨보지만 하룬의 목을 감은 벨의 손은 더 단단하게 감겼다.

 “사랑스러운 벨이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치잇! 거짓말인지 다 아네요. 연애를 하더니 번드르르한 말만 늘어가지고.”

 “아니야. 진짜 네가 보고 싶어서 나왔어.”

 하룬은 벨을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이제 귀여움에 더해 슬슬 성숙미가 풍기는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벨의 크고 싶은 눈이 하룬의 눈빛에 금세 감겨버리고 말았다. 그러곤 살며시 눈을 뜨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사춘기 소녀 특유의 감성이 그녀를 부끄럽게 만든 것이다.

 “칫! 안 하던 짓은 왜 하고 그래.”

 “우리 벨, 정말 많이 예뻐졌는걸.”

 “칫! 칫!”

 벨은 노골적인 하룬의 칭찬에 싫지 않은 듯 얼굴을 붉혔다.

 “신소리는 그만하세요, 오빠. 아리 언니가 보고 싶어서 나온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그야 당연히 아리도 보고 싶었지. 그런데 어디 갔어?”

 “그럴 줄 알았어. 말이라도 나만 보고 싶어서 나왔다면 어디가 덧나나. 칫! 아리 언니는 요즘 돌풍 기지에서 생활해. 난 벼리 오빠 때문에 이곳에 있는 거고.”

 “그렇구나.”

 하긴 둘 중 그래도 나이가 많은 아리가 기지의 일을 총괄해서 관리하는 것이 맞았다.

 “벼리는 어떻게 되었어?”

 “아직 데드 벙커에 머무르고 있어. 놈들의 본부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복귀 명령이 떨어지질 않고 있어.”

 “그래?”

 무슨 일일까? 혹시 비욘드에 관련된 일은 아닌지.

 “안전은 하겠지?”

 “응. 며칠 전에는 연구소 내부로 잠입하려는 것을 겨우 말렸어. 버그 형과 웜 형 사이보그들로 파악한 연구소의 방어 시설은 도저히 뚫을 수 없을 정도였거든. 생명체는 물론이고 비생명체들마저 반입 허가가 없으면 연구 시설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그래서 지금 웜 형 사이보그들의 프로그램을 바꿔 연구원의 신체에 투입하려고 해.”

 “그건 가능해?”

 “응. 그럴 거 같아. 크기가 0.1~3밀리미터 내외의 웜 형 사이보그들은 연구 시설의 모안 시스템에도 기생충으로 파악될 테니까.”

 “좋아. 연구 시설의 내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야.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실히 알아야 뭔가 대책을 강구할 수 있으니까. 그곳 말고는 다 알아낸 거지?”

 “응. 벼리와 버그 형 사이보그들로 이미 연구소의 방어 시설들의 위치 그리고 방어 병력의 숫자와 동선은 파악했어. 연구 시설 내부만 파악하면 돼.”

 “고생했다!”

 하룬은 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제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완전한 휴먼이 되었지만 자신과 아리를 제외하면 친구 하나도 없는 벨이 너무 측은했던 것이다. 현실과 비욘드에서 자꾸 일을 벌이는 자신 때문에 친구를 사귈 시간도 없는 벨이었다.

 “항상 너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이 기지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 법도 한데 벨은 여전히 그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오빠가 자꾸 그런 말을 하니까 이상하네. 당연히 들을 말이니까 싫지는 않은데, 기분이 좀 이상해. 나한테만 털어놔 봐! 정말 무슨 일이야?”

 벨은 그저 자신과 아리를 보기 위해서 나왔다는 것을 여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하룬은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벨에게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희들도 보고 싶었지만 다른 이유가 없지는 않아. 기지 사정도 궁금하고 무엇보다도 전투조 대원들의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찾았거든.”

 “뭔데?”

 하룬은 마정석과 수련 검식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일정한 검식을 호흡과 일치시켜 펼치는 것만으로 기를 축적하고 단전을 생성시키며 혈도를 넓혀 주는 수련 검식에 벨은 큰 호기심을 보였다.

 “나도 해 볼까?”

 “그래 해 봐!”

 벨이라면 금방 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벨은 자신의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분화했기 때문에 다른 모습의 하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교 대상이 없긴 하지만 하룬이 처음 유니온 밖으로 나와 기를 느끼고 마나 플로를 만들어낸 것을 생각하면 벨 역시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기지의 일부터 처리하고 나중에 너와 아리에게 알려 줄게. 내 동생이라면 금방 단전을 만들고 기를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육체적 능력이 남다른 벨과 아리라면 자신이 우연히 알아낸 마나 플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오르그들이나 위험 세력들과 상대할 나중을 위해서라도 둘에게는 이 세상에 농밀하게 존재하고 있는 기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계발시켜 주어야만 했다.

 “알았어.”

 쪼옥!

 벨은 내심 바라고 있었던 듯 기뻐하며 하룬의 이마에 뽀뽀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좋아?”

 “응. 말은 안 했지만 오빠의 몸속에 거대한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쌓이는 것을 보면서 언니와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몰라.”

 “이런! 말을 하지.”

 “오빠가 워낙 바쁘잖아. 우리도 할 일이 많고.”

 벨의 말을 들으니 녀석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벨이나 아리나 자신에게 너무 헌신적인 데 반해 잣니은 그녀들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누구보다 가까운 벨과 아리인데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뭐해? 빨리 건너가. 식사 시간이 다 끝나가니까 대원들 만나려면 서둘러. 요즘 전투조 대원들은 자고 먹는 시간 이외에는 아예 캡슐방과 수련실에서 산단 말이야.”

 “너는?”

 “난 가볍게 먹을 거야. 벼리 오빠의 활동이 많아져서 나도 덩달아 할 일이 많아. 웜 형 사이보그를 일일이 프로그래밍해야 해. 그리고 대상 연구원의 신체에 완전히 투입되는 것도 확인해야 한다고.”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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