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마츠 평원 (169/278)

<마츠 평원>

 워프를 통해 마츠 평원과 가장 가까운 테라스 시티 인근에 도착한 하룬 일행은 생각보다 인원이 꽤 많았다. 아카족 전사 스물과 마탑에서 파견한 네 마법사, 일룸을 비롯한 황궁의 인물이 넷이었다.

 수련에 앞서 행하는 몸 풀기를 통해 워프의 후유증인 멀미와 어지러움을 떨쳐 버린 일룸이 하룬에게 다가왔다.

 "하룬 대장, 마츠 평원까지는 어떻게 이동할 생각이오?"

 일룸의 태도는 지난 번 무력시위 이후 많이 변해 있었다. 태생이 기사인 그는 하룬과 돌풍 용병대의 무력을 인정했고, 그 결과 이전처럼 무례하게 굴지 않았던 것이다.

 "걸어서 가야지요."

 "그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겠소?"

 기동성이 떨어지는 점을 우려하는 일룸이지만 그는 하룬이 말을 타지 못한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저기 보이는 낮은 산만 넘으면 마츠 평원의 관문인 다르강입니다. 비록 산세가 험하지는 않지만 말을 타고 이동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가면서 살펴볼 것들이 있습니다."

 먼저 마탑의 의뢰를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다르 강을 따라 건설된 구대로였다.

 마츠 평원이 마수의 땅으로 변하고 나서도 파이린 제국에서 신 테론 제국에 유통되는 물류들은 여전히 다르 강과 하루나 이삼 일 거리를 두고 오래전에 건설된 구대로를 통해 유통되어 왔다.

 예상대로라면 삼 일째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먼저 조사를 한 다음 진행 방향을 잡아야한다. 어차피 이 일행의 수장이 하룬이고 할 일이 있다니, 일룸으로서는 내심 걸어가는 것에 좀 불만이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데모 시티에서 이미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마법사드은 서로 안면이 있거나 이름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어느새 한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룸을 비롯한 기사들만 따로 모여 무언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하룬은 사람들이 워프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하고 각자 역할을 나누어 주었다.

 "티노 부대장은 레미와 상의해서 길을 정하고 척후를 보도록 해요. 두르본이 선두, 디온이 후미를 맡아요. 바로 출발합시다."

 "네, 대장."

 세 사람은 즉시 대답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의뢰자인 마탑의 네 마법사와 황궁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진형의 중심에 두고 대원들과 전사들이 좌우를 두텁게 감쌌다. 만약의 상황에서라도 그들이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대장, 일단 북북서로 갑니다."

 이 근방의 지리를 꿰고 있는 레미가 길게 뻗어 있는 능선 중 아래로 쑥 꺼진 고개를 향해 출발했다.

 다다닷!

 티노의 작은 신형이 몇 번의 발 구름과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멀어져 갔다.

 "허어! 정말 빠르군."

 "그러게. 마치 다리에 헤이스트 마법을 건 것 같군."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들이 감탄했다. 한 번 땅을 박찰때마다 그의 신형이 쑥쑥 앞으로 나가는 모습은 마치 새처럼 빨랐던 것이다. 일룸을 비롯한 황실 사람들도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역시!'

 메신저 워킹 스킬을 전수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수십 년 이상을 그 하위스킬인 메신저 무빙 스킬을 수련해 왔던 티노인지라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이나 빨랐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에도 남들보다 훨씬 가볍고 빠른 움직임을 가졌던 티노였는데, 이제 마나까지 사용하게 되었으니 그 속도은 엄청났던 것이다.

 벌써 멀리 능선을 향한 티노의 뒷모습을 보던 하룬은 보지 않아도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그릴 수 있었다.

 발바닥을 통해 들어오는 마나가 다리와 허벅지를 거쳐 마나 오션으로 향하는 것을 그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마나를 압축해서 외부로 발출하는 순간 자신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지는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그랬으니 말이다.

 이제는 상급 단계를 마스터하기 직전인 메신저 워킹 스킬로 인해 발을 통해 대지가 품고 있는 진한 마나를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오늘 안으로 다르 강을 건너 마츠 평원으로 들어가야 해요."

 어느새 다가온 레미의 말에 하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 평원과의 경계를 이루는 긴 구릉지대 두세 군데를 제외하면 전체 고도가 그리 높지 않고 경사도 완만해서 하룬 안에 넘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어제 말해 준 장소는 기억하고 있어?"

 "네, 어딘지 알아요. 대상들이 쉬어 가는 쉼터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랬어?"

 "네. 다르 강과 연결된 수로를 관리하던 건물이 있던 곳 중 하나라서 알고 있어요."

 "수로?"

 "수백 년 전에 사용되던 수로 관리소지만 아직도 그 흔적은 남아 있어요."

 하긴 제국 전체를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던 평야였다면 수로는 필수였을 것이다.

 하룬은 레미와 마츠 평원의 대략적인 지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볍게 발을 놀렸다.

 이제 막 출발해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사건에 대한 설렘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법사들의 발에도 힘이 가득했다.

 두 시간에 한 번 짧은 휴식을 하는 패턴으로 이동을 했다. 마법사들에게는 약간 무리일 수 있는 행군이었지만 5서클이 넘는 마법사들인지라 적절히 마법을 사용하며 무리 없이 따라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두 시간을 꼬박 능선 사이로 난 고개를 오른 일행은 멀리 보이는 마츠 평원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오!"

 "대단하다!"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데빌 산맥의 웅장한 모습보다는 그 사이의 거대한 대지에 대한 찬탄이었다.

 성인 남자의 걸음으로 무려 보름이 걸린다는 평원이라서 그런지 아득하게 보이는 데빌 산맥이 마치 지평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저런땅이 저렇게 방치되고 있다니."

 "그게 다 마수들 때문이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룬 역시 안타까운 심정이 있다. 넓은 강폭과 많은 수량을 가진 다르 강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땅이 초목들이 무성한 땅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

 다만 이상한 것은 다르 강 너머의 마츠 평원은 음울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평원의 상공에는 비구름은 아닌 것 같은데도 짙은 색의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전체적으로 음침하고 어두워 보였다.

 '이상하네.'

 본시 구름이란 대기의 흐름에 따라 이동을 해야 하는데 마츠 평원의 상공에 머무르고 있는 구름은 그렇지가 않았다. 하룬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가 관찰한 것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별일 아닌가?'

 원래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니 이런 자연현상에 대해 묻기도 애매해서 그냥 넘기는 하룬이다.

 잠시 고갯마루에서 휴식을 취했던 사람들은 내려가는 길은 속도를 더 올렸다.

 해가 넘어가기 전까지 다르 강을 넘어야만 했던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그런지 오를 때는 반나절 가까이 걸렸지만 내려가 강가에 이른 것은 네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량이 많은 다르 강물은 폭이 넓어서 그런지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우기에는 수량이 훨씬 더 많은 듯 강둑은 강물에서 4미터 정도 더 높았다. 가끔 팔뜩만 한 고기들이 펄쩍 뛰어오르고 있는 다르 강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이 다르 강에도 수십 개의 다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 다리를 통해 마츠 평야에서 생산한 밀을 비롯한 작물들이 세상으로 퍼져 나갔을 테지만 지그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햇빛에 부서지는 강물의 은색 비늘에 눈이 부신듯 일행은 잠시 다르 강의 과거와 현재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대장, 어떻게 건너가지?"

 옥세르는 오십 미터나 되는 강폭과 그 아래 강물을 보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양쪽 강가에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꽤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들이 건너온 상류 쪽은 강폭이 오륙미터 밖에 안 되는 곳들이 있어 나무를 쓰러뜨려 넘어왔지만 이곳은 그런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강을 따라 이동하면 상류 쪽에 사람들이 다니는 다리가 있어요."

 레미의 말에 하룬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상인들이나 신 테론 제국으로 향하던 사람들 역시 구대로를 따라 움직여 폭이 좁은 상류 쪽에 통나무 다리를 놓아 움직였지만 이곳에서 상류까지 올라가려면 이틀은 족히 걸린다.

 사람들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오를 때 하룬은 배낭에서 줄을 꺼냈다.

 미리 이런 상황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 강을 건널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예전에 바람의 계곡을 건널 때 사용하던 것과 다를 것이 없는 방법이었다. 강 양쪽의 나무들을 줄로 연결해서 건너가는 방법이었다.

 하룬이 밧줄을 꺼내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 역시 어떤 방법으로 도강하려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말도 없고 부피나 무게가 많이 나가는 짐도 없는 상태이니 괜찮은 방법이었다.

 베른하트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대장, 플라이 마법으로 밧줄을 건너편까지 가져가는 건 무리요? 알다시피 이 거리라면 밧줄의 무게가 몸무게보다 더 많이 나갈 거란 말이오."

 베른하트의 말대로 어린아이 손목 굵기의 밧줄이 50미터가 넘는다면 그 무게는 엄청나다.

 5서클 마법인 플라이로 몸을 띄워 건너가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밧줄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말이 맞소. 플라이 마법의 한계가 시전 마법사의 몸무게라는 것이 정설이고 보면 그건 위험한 방법이오."

 파코추 마탑에서 파견된 세르파 역시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중력을 거스르고 몸을 공중에 띄우는 플라이 마법은 섬세한 조종이 필요한 마법이다. 공중에서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이 마법으로 인해 생성된 마력장이 대기의 흐름을 어느 정도 제어한다지만, 그래도 세찬 바람이 불 때는 방향 전환이 쉽지않을 정도로 지장을 받는 것이다.

 파견 인물들의 수장 격인 두 마도사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마법사들이야 어떻게든 건너갈 수 있겠지만 기사들이나 전사들은 헤엄이라도 쳐서 건너가야 하는데, 저 평화롭게만 보이는 강물 속에 어떤 몬스터들이 우글거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근데 저들은 왜 저렇게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세르파의 제자인 프로스트는 돌풍 용병대원들의 얼굴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이 이상했다. 걱정을 하는 것은 마탑에서 파견된 자신들과 황실에서 파견된 이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하룬은 티노에게 바닥이 넓적한 판자를 몇 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비교적 작은 나무 한 그루를 잘라 금방 판자를 만들어 냈다. 하룬은 자신의 허리에 밧줄을 단단히 묶은 다음 티노가 건넨 판자 열 개를 한 손에 잡았다.

 "뭘 어떻게 하려고.......?"

 "뛰어서 갈 겁니다."

 "에엑! 뛰어서요?"

 하룬의 말을 들은 세르파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10미터 정도 물러나 뛸 준비를 하는 하룬을 보는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을 넘어 황당함이 그들했다.

 "말도 안돼!"

 친위 기사 밀스레드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하룬이 달리기 시작했다. 말리고 말고 할 틈도 없이 일어난 일에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설마 이렇게 넓은 강을 한 번에 뛰어넘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천하의 돌풍 용병대를 이끄는 하룬이 그런 황당한 일을 저지를 거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말릴 틈도 없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세르파의 눈이 순간적으로 타니엘라와 미루스에게 향했다.

 '불안이나 걱정이 아니라 호기심? 뭐야?'

 그 둘의 눈에 기대한 감정 대신 강한 호기심의 빛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본 세르파의 마음은 더 황당했다. 이런 대원들이라니. 세르파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치 새처럼 날아가는 하룬의 몸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아!"

 누군가 탄성을 토했다. 마치 새처럼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리는 무려 20미터에 가까워 강폭의 3분의 1정도가 되어서야 포물선을 그린 그의 몸이 아래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도움닫기를 했다지만 이 정도로 멀리 날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때 하룬이 손에 쥔 판자를 앞쫄 강물을 향해 던졌다. 판자가 강물에 닿고 잠시 잠겼다가 떠오른 순간 하룬의 발이 판자를 밟고 다시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곤 다시 판자를 던지고 던진 판자를 밟고 앞으로 날아가는 하룬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던진 판자를 밟고 대여섯 번 움직인 하룬의 신형은 어느새 반대편 강가에 올라서고 있었다.

 "세상에!"

 "저게 가능한거야?"

 "사람이 아니라 새야, 새!"

 여기저기 탄성이 터져 나올 때 티노는 재빨리 밧줄을 잡아 나무에 단단히 그러매었다. 티노가 풀어지지 않게 제대로 매듭을 만들자, 건너편의 하룬도 몸에서 밧줄을 풀어 한 나무에 묶기 시작했다.

 그렇게 강 양쪽의 나무에 밧줄이 단단히 연결되자, 티노는 판자를 만들고 나서 만든 모종의 물건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것은 매끈하고 질긴 나무 속살로 만든 일종의 끈이었다. 다만 그 폭이 넓고 두껍기 때문에 단순한 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요?"

 "이렇게 손바닥 사이에 끼고 밧줄위에 걸면 됩니다."

 티노가 시범을 보였다. 그는 밧줄 위로 끈을 걸치고 그 위에 양손을 올린 다음 깍지를 꼈다.

 "호오! 그거 신기한데."

 옥세르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티노 대신 끈을 잡고 깍지를 꼈다. 나무와 강둑까지는 이삼 미터 간격이 있었는데 그는 깍지를 낀 채로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휘유!"

 억눌린 탄성과 함께 옥세르의 건장한 몸이 이쪽보다 낮은 건너편 강가를 향해 쏜살처럼 내려가기 시작했다.

 "와아아!"

 순식간에 강의 중간까지 간 옥세르는 흥분과 즐거움에 소리를 질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나는 기분이 정말 최고였던 것이다. 은색으로 빛나는 강물 위를 나는 것은 아주 특별하고 즐거웠다. 순식간에 강을 건넌 그의 몸은 하룬에 의해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었다.

 끈을 놓고 잠시 비틀거리다가 자세를 바로 한 옥세르가 이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 건너와! 기분 최고야!"

 옥세르의 말에 전사들이 앞다투어 티노의 손에서 나무 속껍질로 만든 끈을 뺏듯이 받아 들고 밧줄로 향했다.

 그러곤 다르 강을 마치 새처럼 가볍게 날아 건너기 시작했다. 도무지 겁이라곤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이들이다.

 "부대장, 이거 안전한 거요?"

 세르파가 급조한 끈을 보며 약간 불안한 눈빛을 했다.

 "걱정 마십시오. 한 번 건너가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나도 한번 해 보고 싶군."

 세르파는 플라이 마법을 펼쳐 강을 건널까 생각했지만 하룬과 전사들이 보여준 표정에 강한 유혹을 느낀 것 같았다. 하긴 그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봤을까. 도전 의식이 강한 마법사라서 그런지 약간의 망설임 후에 과감하게 도전을 하는 세르파였다.

 "우후우~."

 마법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은색으로 부서지는 강물 위를 날아가는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플라이 마법을 펼친 것과는 달리 정말 새가 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짜릿한 희열이 전신을 통해 퍼졌다.

 "이런! 벌써야?"

 순식간에 강을 건넌 세르파는 상기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하하하! 나름 재미가 있었나 봅니다."

 "허허! 이거 생각보다 짜릿한 맛이 있구려. 대장."

 하룬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흥분한 세르파의 얼굴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가식없는 이런 얼굴이 좋았던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씩 강을 건너왔다. 어떤 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도 했지만 강을 건너온 후로는 예외 없이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강물로 떨어질 것 같은 긴박감과 공기를 가르는 짜릿함에 매료된 것이다.

 "정말 기발했습니다. 도대체 대장을 이런 걸 어디서 배운거요?"

 평원 안쪽으로 출발을 할 때 타운트가 헤니에게 물었다. 마법사들과는 달리 한 번도 이런 높이의 상공을 날아 본 적이 없었던 그의 얼굴은 아직도 상기된 상태였다. 그 곁에 있는 밀스레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호호! 이건 우리 용병들이 가끔 사용하는 방법이랍니다."

 "대단했습니다. 사실 용병들에게 어느 정도 선입관이 있었지만 최소한 대장과 돌풍 용병대에게는 그런 생각을 버리겠습니다."

 타우트는 생각보다 용병의 생활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해준 헤니에게 감사했다.

 모두 짜릿하고 즐거운 유흥을 같이 경험해서일까 출발할 때와 달리 분위기는 한결 좋아진 것 같았다. 기발한 방법으로 강을 빨리 건넌 덕분에 예정한 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있었다.

 "여기예요."

 레미가 안내한 곳은 다르 강물이 마츠 평원으로 들어오는 한 수로의 가장자리였다. 수백 년 전의 영화를 보여주듯, 웅장했을 건물의 잔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특히 구운 벽돌은 오랜 세월에도 그 파편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수로는 관리를 하지 않아 거의 메워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가늘게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물을 끌어들이고 막는 관문은 그 흔적만 있을 뿐 사라지고 없었다.

 티노와 대원들은 전사들을 이끌고 숙영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데모 시티에서 장만한 다용도 삽을 꺼낸 티노는 익숙한 솜씨로 땅을 편평하게 고르고 배수로를 팠다. 아카족 전사들은 이런 일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티노의 지도를 받아 열심히 자신들 몫으로 배분된 다용도 삽을 놀렸다.

 그리고 타림 공방에서 방수 처리를 한 오크 가죽으로 만들어 준 천막을 치고 안에는 자투리 마수 가죽으로 만든 카펫을 깔자 아늑한 잠자리가 완성되었다.

 마수 가죽의 털은 보온효과가 높고 탄력이 있어 잠시 누워 본 마탑의 마법사들과 황실의 인사들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정도였다.

 식사는 도네이스와 마리가 맡았다. 스튜를 좋아하는 하룬의 영향을 받은 도네이스는 미리 구해놓은 고깃가루와 각종 채소, 그리고 양념을 사용해서 스튜를 끓이고 빵과 과일을 준비했다.

 "정말 맛있군요."

 "제대로 끓인 스튜로군요."

 이 스튜는 도네이스가 캘프란 마을의 이프란 부인에게 졸라 배운 비전 레시피로 끓인 것이다. 마탑의 마법사들이나 황궁의 기사들은 스튜 맛에 감탄하며 세 그릇씩이나 먹었다. 스튜의 매콤함과 진한 육수에 만족한 것은 아카족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니,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거야?"

 레미는 물론이고 요리에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이던 두르본까지 스튜 맛에 반했는지, 도네이스를 졸졸 따라다니며 레시피를 물었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오늘 아침 일찍 처음 만났던 사람들은 그렇게 즐거운 경험과 맛있는 음식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마음을 풀어놓고 있었다.

 마츠 평원으로 들어온 지 이틀 째 오후였다.

 "공기가 진득진득한 거 같아."

 "그러게. 공연히 기분이 나빠지는 곳이야."

 밀스레드와 타운트는 행렬의 중간에서 부지런히 걸으며 땀을 흘렸다. 그들이 경험하는 마츠 평원은 일부의 숲을 제외하고는 넓은 초원 지대였지만, 어쩐지 기분이 나쁜 곳이었다. 짙게 깔린 구름으로 인해 햇볕이 뜨겁지 않아서 좋긴 한데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원 지대라지만 강수량이 적어서 그런지 먼지가 꽤 많이 일었고 풀들을 바짝 말라 있었다. 게다가 토양이 좋지 않은 것인지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풀은 발목에 간신히 올 정도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듣던대로 정말 이상한 곳이네."

 "맞습니다. 이런 평원이라면 당연히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여긴 어쩐지 공기도 그렇고 대지나 초목의 기운도 어둡게 느껴지는 군요."

 마법사들은 하나로 뭉쳐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갈수록 자신들도 모르게 굳어가고 있었다. 평원 안쪽으로 향할수록 마치 수렁을 향해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가 있으니 다행인거지."

 세르파의 말에 마법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돌풍 용병대원들의 배려를 칭찬했다. 그들 때문에 노숙을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마도사들이 대거 참여한 여정이고 뛰어난 기능을 가진 야영 장비로 인해 제대로 휴식을 취하고 섭생을 한 덕분이었다.

 "저 부대장이라는 친구, 정말 대단하군."

 누군가의 감탄성에 사람들의 시선은 앞쪽 멀리에서 이는 먼지바람에 꽂혀있었다. 약 2킬로미터 전방에서 이는 그 먼지는 척후를 맡은 티노로 인해서 생긴 것이다. 티노의 척후 반경을 꽤 넓었다. 그는 일행이 움직일 방향을 중심으로 부채꼴로 90도의 각도를 모두 정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풍의 명성이 헛소리가 아니었군."

 "내 평생 저렇게 빨리 움직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도 티노의 빠르기에는 혀를 내둘렀다. 가히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던것이다. 세다가 시간이 갈수록 그는 지치기는 커녕 더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종일 저렇게 뛰어다니고도 숙영을 할 때 보면 전혀 지친 티가 나지 않으니 감탄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늦게 대원이 된 마리나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니, 우리 부대장님 괜찮을까?"

 "후훗! 괜찮아. 지금도 수련하는 중이거든. 대장이 뭔가 알려주었나봐. 봐! 펄펄 날잖아."

 마리의 걱정에 도네이스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남편 티노는 이제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익스퍼트가 되어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얼마 전 대장으로부터 뭔가를 배운 후로는 더둑더 기운이 넘쳤다.

 하루종일 달리고 또 달렸지만 그는 지치기는커녕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대장의 배려로 따로 부부만의 작은 천막을 친 그들은 밤늦도록 사랑을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저 멀리 먼지 속에서 움직이는 남편 티노와 선두에서 묵묵히 걷고 있는 대장을 바라보는 도네이스의 눈빛은 무척이나 따스하고 강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척후에 능한 아카족 출신 대원들이 있었지만 티노의 수련을 위해 일부러 척후를 보게 만든 것이다. 티노는 메신저 무빙을 마스터한 덕분인지 그의 메신저 워킹 스킬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만들어 낸 먼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티노의 모습이 먼지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 순간 하룬의 오른손이 높이 올라갔다.]

 "정지!"

 사람들은 제자리에 멈추었고 대원들과 전사들이 둥글게진형을 만들었다. 밖으로 나온 것은 하룬과 딜런 뿐이었고 나머지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수비에 용이한 진형을 만든 것이다.

 "딜런 경은 이곳을 맡아 주십시오. 저 언덕 아래쪽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딜런의 배웅을 받은 하룬의 몸이 뿌연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티노가 멈춘 곳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눈 속에서 하룬의 모습이 사라지자 세르파가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아니군."

 지난번 강을 건널 때도 놀라긴 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하룬의 빠르기는 정말 엄청났던 것이다.

 "헤이스트 마법을 건다고 해도 저렇게 빠르지는 않을 겁니다. 블링크 마법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그런게 그게 아니니까 더 엄청나지. 왜 아그레시아 전하께서 그렇게 하룬대장과 돌풍 용병대에 감탄을 했는지 조금을 알 것 같네."

 세르파의 말에 세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옆에 있던 황궁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저런 빠르기를 가진 인물은 상상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전장에서 저런 자를 만난 다면........ 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을 능가하는 하룬 대장과의 전투를 상상했던 밀스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몸을 떨었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대부분의 기사들은 무거운 갑주와 중병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서 저런 빠르기를 지닌 검사를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곤란했다.

 잠시 그렇게 대기를 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두 줄기 먼지바람을 볼 수 있었다. 그 먼지바람은 하룬과 티노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하룬의 눈에 기이한 광채가 일렁였다.

 "앞의 언덕 아래쪽에 많은 스켈레톤들이 일단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스켈레톤이라고요? 그럼?"

 "네, 아마도 흑마법사가 있는 모양입니다."

 스켈레톤이 잇다면 분명 흑마법사가 있을 것이다. 물론 태생적으로 음차원의 마나에 친화력이 강한 네크로맨서도 스켈레톤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네크로맨서는 이미 천 년 이상 그 모습을 나타낸적이 없었다.

 "그, 그럼 당장 갑시다."

 파코추 마탑에서 파견한 마법사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빨리 흑마법의 흔적을 찾을 것은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공격을 받고 있는 자들이 신관들과 성기사들로 보입니다."

 "신관요?"

 정말 뜬금없는 상황이었다. 왜 이곳에 신관과 성기사가 나타난단 말인가?

 "어떻게 하시겠습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투가 꽤 오래되었는지 신관들 쪽은 지친 것 같습니다."

 "그럼 돕도록 하지요."

 하룬은 스켈레톤 병사들을 암중에서 조종하는 흑마법사를 찾아내 공격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이렇게 환하게 뚫린 평지라면 그 쪽 역시 금방 자신들의 종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음을 최대한 줄이고 빠르게 이동하도록 합시다."

 일행은 하룬의 말대로 저마다 기척을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에서 멀리 보이는 언덕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세르파는 이동을 하면서 제자를 쳐다 보았다.

 "프로스트, 영상을 저장할 준비를 해라."

 "네, 스승님."

 이렇게 일찍 흑마법의 흔적을 찾아낼 줄은 몰랐다. 이번 여정은 생각보다 운이 좋은 것 같았다.

 마법사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4서클의 프로스트는 스승이 세르파의 말에 서둘러 마법무구를 꺼냈다. 그것은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수정구로 영상을 저장하고 보여주는 매개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