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1화.모인 대원들 (162/278)

모인 대원들

하룬은 아카족 전사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외모가 특이해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데모 시티 내에는 적당한 곳을 찾을 수가 없어 아예 성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조금 돌아다닌 끝에 적당한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하룬이 고른 여관은 오래되어서 건물도 낡았고 주변에 편의 시설이 없어 불편 했지만 아카족 전사들은 마음에 들어 했다.

푸근한 인상의 안주인의 음식 솜씨도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넓은 마당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여관의 뒤쪽으로는 작은 시내와 초지가 있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 까지 돌아다닌 하룬은 근처에 있는 낮은 산 중턱에 넓은 공터를 발견하고 만족했다.

조금만 손보면 사람이 많더라도 수련하기에는 알맞았던 것이다.

숙소를 정하고 얼마 안 되어 초지의 좌표로 워프한 대원들이 여관으로 찾아왔다.

"대장, 우리 왔어요!"

"하하하! 어서들 오세요!"

그리 오래 떨어져 있었던 것도 아닌데 하룬은 대원들이 무척 반가웠다.

헤니와 마리가 먼저 들어왔고 그 뒤로 티노와 도네이스 부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딜런과 두 마법사가 느긋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현실에서 몇 번 보았던 헤니는 기이한 눈빛으로 하룬을 대했다. 아마 현실의 하룬과 이곳의 하룬과의 동질감과 괴리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마리는 무덤덤했으며 티노 부부는 무척 반가워했다. 딜런과 타니엘라 그리고 미루스는 나란히 걸어오면서 뭔가 툭탁 거리고 있었다.

하룬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대원들의 시선은 수련을 멈추고 몰려든 탄툰 마을 전사들에게 향했다. 드러난 부위를 모두 문신으로 장식한 장대한 체격의 전사들을 보는 시선들에는 강렬한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전사들은 하룬이 가족처럼 지낸다는 대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한 것 같았다.

"자, 일단 인사부터 해요. 이쪽은 아카족의 전사들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돌풀 용병대 대원들입니다."

하룬이 소개를 해 주었지만 선뜻 나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전사들은 나름 호기심을 가지고 호감을 표현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물론 몸 곳곳에 새긴 문신과 장대한 체구, 그리고 야수처럼 거친 기운과 분위기 때문에 잠시 탐색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래도 하룬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신봉하는 티노가 먼저 나섰다.

"용병대 부대장 티노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카족 탄툰 마을 전사 두르본이다. 느낌이 좋다."

대뜸 반말을 하며 왜소한 체격의 티노를 번쩍 들어 서로의 가슴을 세 번 연속 부딪히는 두르본의 인사에 티노는 얼굴이 벌게졌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하고 다른 전사들이 그것에 따르자 겨우 눈에서 힘을 풀었다.

"흐흐흐! 저 처자의 가슴이 제일 좋군. 전사들은 땀 냄새가 나는데다가 단단해서 느낌이 별로였어."

"역시 사형도 나와 똑같이 느꼈군요. 이거 매일 이렇게 인사를 하면 좋을 텐데 말이오."

정말 오랜만에 젊은 여자의 체취와 그 감촉을 느낀 타니엘라와 미루스의 입이 귀까지 걸렸다. 두 사람은 아직도 그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구! 사내들은 젊으나 늙으나 똑같다니까."

아직도 벌건 얼굴로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티노의 순진한 반응을 째려보던 도네이스의 말에 두 마법사는 그녀를 외면했다.

"그래도 이렇게 직접 몸을 맞대고 인사를 하니 벌써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걸. 좋은 인사법 같소이다, 대장."

"그렇죠? 젊은 사람들은 좀 민망하지만 진정이 느껴지는 인사법인 것 같습니다."

하룬은 딜런의 말에 어쩌면 이런 인사법은 마음을 열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심장이 있는 부위를 상대의 심장 부위에 부딪힐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두르본은 같은 여성으로 자신들만큼이나 장대한 체구를 가진 도네이스와 마리에게 강한 호감을 보였고 그것은 체구 때문에 남들의 주의를 끌던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세 사람은 금방 친해졌고 헤니와 레미도 뭔가 이야기를 하면서 시시덕거리는 게 둘이 통하는 걸 찾아낸 것 같았다.

티노는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주눅 들기 일쑤였던 티노지만, 아카족 전사들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아마 사냥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전사들이 티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마치 노련한 사냥꾼이 후배에게 경험을 전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티노가 많이 변했군. 정말 보기 좋아.'

지난번에 스카우트들을 가르치면서 생긴 경험 때문인지, 티노는 전사들을 금방 휘어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조았다.

처음 보는 두 무리가 만났지만 양측 사람들은 금방 친해지고 만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순진한 아카족 전사들이 돌풍 용병대원들에게 금방 빠지고 만 것이다.

하룬에 대한 호감이 대원들에게도 이어진 것이다. 하룬이 그 모습을 흐뭇한 시선을 바라보자 그의 옆으로 딜런과 두 마법사가 다가왔다.

"이들에게 이상한 힘이 느껴지는데 대장들은 이들을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

"그러게. 마법은 아닌데 아주 흉포하고 거친 힘이 몸속에서 느껴지네."

역시 경지가 남다른 세 사람이라 전사들이 이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

"일단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죠."

나침 점심 식사 시간이어서 하룬은 사람들을 이끌고 식당으로 갔다.

식당 안에는 주인 부부가 딸과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여관이라 이 인원을 받는 것으로 숙소며 여섯 개의 테이블을 가진 식당이 꽉 차 버렸다.

짧은 시간에 친해진 대원들과 전사들은 다섯 테이블에 나누어 자리를 잡았고 하룬은 딜런과 타니엘라 사형제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타킴을 비롯한 전사들 중 어린 축에 드는 이들이 주인 부부가 내오는 것을 도와 금방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하룬은 식사를 하면서 그들과 만난 상황과 그들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후크란도 아니고 데빌 산맥에 사람이 사는 줄은 몰랐군. 대대로 마수를 사냥하며 사는 부족이라, 대단하네."

"나도 마수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하급 마수라고 해도 상급 몬스터와 견줄 수 있는 무서운 존재라고 들었는데 이들은 더하군."

딜런과 타니엘라가 혀를 찼다. 아카족에 대한 것은 그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마수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의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힘은 도대체 뭐요. 대장?"

미루스는 스튜를 먹으면서도 계속 그것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특별한 문신을 새기고 거기에 주술적인 힘을 가하여 마수들이 가진 특별한 힘을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어! 그러고 보니 대장의 얼굴에도 저들과 똑같은 문신이 있네."

미루스의 말에 딜런과 타니엘라가 하룬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식사를 하느라 앞머리를 옆으로 치운터라 미간 부위와 코 주위에 새긴 문신이 드러난 것이다.

하룬은 오늘 새벽에 다섯 번째 문신인 '미요의 코' 를 새겼다. 그 힘을 깨우자 그는 세상이 온 갖 냄새로 가득 찬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각각의 냄새로 가득 찬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각각의 냄새들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레이의 조언과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몇 가지는 분간할 수 있었다.

"시험 삼아 절들이 말하는 마수의 힘이라는 문신을 새긴 겁니다."

"그래, 어땠습니까?"

그렇게 묻는 딜런의 얼굴에는 강한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마수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들어서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상대해본 적은 없었다.

"제대로 활용만 할 수 있으면 아주 강력한 힘입니다. 다만 마나를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짧은 시간밖에 쓸 수 없는 것이 한계지요."

"흐음. 이따 한번 시험해 봐야겠군요."

"네 딜런 경의 실력이라면 전사들이 위험하지 않을 테니 대련을 해 보십시오. 전 위험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어 아직 이들과는 대련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죠."

딜런은 자못 기대가 된다는 얼굴로 스튜를 마저 먹었다.

"그런데 그 의뢰라는 게 뭐요. 대장?"

미루스가 궁금한지 물었다.

"그건 이따가 밤에 우리끼리 시간을 가지게 되면 말을 하지요."

하룬은 일단 식사에 집중했다. 호기심이 많은 타니엘라와 미루스도 처음 보는 아카족 전사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지 쉽게 넘어갔다.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을 가진 사람들은 하룬의 안내를 받아 낮은 산속의 공터로 향했다.

그 사이 딜런은 옥세르와 대련을 하기로 했다.

한눈에 딜런이 강자임을 알아본 옥세르가 대련은 요청했고, 딜런은 마수의 힘이라는 이질적인 힘에 관심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근력을 사용한 대련이었다.

마수의 힘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괴력을 가진 옥세르였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대검을 슬쩍 쳐서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거나 궤적을 빗나가게 만드는 딜런의 간결한 움직임에 모든 공세가 무용지물이었다.

돌풍 용병대원들은 무심한 모습이었지만 탄툰 마을 전사들은 눈을 부릅뜬 채 딜런의 검과 그 움직임을 살폈다.

이해가 가질 않았던 것이다.

저렇게 간결한 움직임으로 전사들 중 그 누구도 감히 맞받을 수 없는 옥세르의 공격과 강력한 검세를 헛되이 만드는 딜런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공방을 거듭하며 자신의 원래 힘으로 딜런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옥세르가 검을 내렸다. 

그의 눈에는 감탄과 경의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대는 위대한 검의 전사다. 나 옥세르는 당신의 검을 존경한다. 이제 마수의 힘을 쓰겠다."

무뚝뚝하지만 진심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말에 딜런의 눈이 살짝 웃었다.

옥세르는 정신을 집중해서 프로즐리의 힘을 깨웠다. 순간 옥세르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솟구치며 전신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우와아악!"

파앗!

프로즐리의 힘을 깨운 옥세르가 대검을 휘두르자 무시무시한 풍압이 발생하며 대기를 갈랐다.

"허억!"

타니엘라와 미루스가 질린 얼굴로 입을 떡 벌렸다.

딜런의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질 것 같았던 것이다.

그만큼 대검의 기세는 살벌하고 가공할 빠르기였다.

하지만 딜런의 눈빛은 큰 변화가 없었다.

타앙!

딜런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짓쳐 오던 대검의 옆면을 비스듬히 비껴 찼다. 순간 대검의 궤적이 미세하게 옆으로 이동하더니 그 폭이 커졌다.

옥세르의 눈이 불을 뿜었다.

힘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자신의 대검이 목표를 비겨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옥세르는 단순히 힘을 강화한 것으로는 딜런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끌어 올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손목에 있는 문신에 정신을 집중했다.

브롤프는 온몸의 관절을 자유자재로 꺾으면서도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마수다.

놈은 자유로는 관절의 힘으로 거침없는 공격을 하기에 십여 명의 전사들이 포위를 하고 상대해야 할 정도로 두려운 마수였다.

휘릭!

브롤프의 힘은 손목에 유연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주었다.

옥세르의 손목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이자 대검의 날이 딜런의 목을 향해 옆으로 날카롭게 꺾였다.

'흐읍!'

딜런은 깜짝 놀라 발을 굴러 뒤로 날아갔다.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는 구사할 수 없는 궤적의 변화에 놀란 것이다.

느긋하게 상대하던 딜런의 등줄기가 서늘했다.

옥세르의 대검이 딜런의 얼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검의 궤적을 따라가는 딜런의 눈빛이 파르르 흔들렸다.

'검의 궤적이 순간적으로 거의 직각으로 꺾이다니!'

원래 힘이란 것은 관성이 강해 중간에 그 방향을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담담했던 딜런의 눈빛이 강렬해지며 그의 검이 시퍼런 색의 오러로 번쩍였다.

"하압!"

기합성과 함께 검을 휘두르는 딜런의 딱딱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와 한동안 대련을 했던 하룬은 그 순간 딜런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상대를 진심으로 대할 생각을 한 것이다.

차앙! 창!

두 사람의 검은 빠르게 붙었다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소드 마스터에 올랐을 딜런의 검을 옥세르가 상대하는 것을 본 하룬의 가슴이 두근댔다.

'프로즐리의 힘은 대단하구나.'

단순한 힘의 증가뿐 아니라 빠르기까지 폭발적으로 늘려주는 프로즐리의 힘을 쓰는 옥세르의 검은 딜런을 상대하며 전혀 밀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직 소드 마스터 초급의 장기인 오러 소드는 쓰고 있지 않지만 오러를 주입해 검신을 강화시킨 상태인 딜런을 이 정도까지 상대한다는 것은 최소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위력을 보이는 것이다.

'호오! 그럼 내가 프로즐리의 힘을 쓴다면?'

어쩌면 딜런을 상대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딜런의 얼굴 경련이 커지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빠르고 강해! 게다가 순간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는 공격은 상당히 위협적이야.'

딜런은 자신이 힘과 빠르기에서 밀린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빠르기보다는 거의 불가능한 각도로 꺾이는 궤적 때문에 관성의 영향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에도 밀리는 것이다.

'좀 더 지나면 사수의 힘이라는 것이 사라진다고 했지?'

그럼 어디 최대로 힘을 써 볼까!'

딜런의 검이 순간적으로 파란 오러와 함께 또 다른 검신이 솟아올랐다.

검신과 동일한 폭과 두께를 가진 오러 소드의 길이는 50센티미터에 불과했지만 그 날카로운 예기는 주위 대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옥세르의 눈빛이 강해지며 얼굴 근육이 불룩거렸다.

강렬한 호승심을 느낀 것이다. 대검을 잡은 양팔의 근육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타앗!"

짧은 기합성과 함께 앞으로 도약한 옥세르의 대검이 딜런을 향해 폭포와 같은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대검이 딜런을 향해 폭포와 같은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대검은 대기를 가르며 옅은 진동파를 발생시켰다.

강력한 힘과 빠르기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딜런 역시 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꽈앙!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휘리릭!

딜런이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켜 안전하게 착지했다. 땅에 닿는가 싶었던 딜런의 몸이 어느새 다시 앞으로 날아갔다.

그이 검첨에 솟은 오러 소드의 길이는 조금 짧아졌지만 큰 변동은 없었다.

그의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옥세르는 땅에 큰 발자국을 남기며 연속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쿵! 쿵! 쿵!

큰 충격을 받았는지 문신이 새겨진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고 입과 코에서는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의 눈에서는 화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왁!"

괴성과 함께 날아오는 딜런의 검을 향해 대검을 휘두르는 옥세르의 양 손아귀는 피가 흘러나왔다.

꽈앙!

두 검이 충돌하는 순간 또다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커억!"

옥세르는 억눌린 신음을 흘려내며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충격의 여파로 인해 수 미터나 밀려난 그의 앞에는 발목이 묻힐 만한 깊이의 긴 고랑이 생겨나 있었다.

와락!

옥세르는 이를 악물고 대검을 움켜쥐었지만 마수의 힘이 사라지며 힘없이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바람 빠진 물통처럼 온몸의 힘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한 번에 두 가지 힘을 동시에 끌어낸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크윽! 퉤"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에 우럭 피를 뱉어 낸 옥세르는 자신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고 있는 딜런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앞으로 힘없이 엎어지고 말았다.

"옥세르!"

지켜보던 레미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땅바닥에 얼굴을 박은 옥세르의 육중한 몸을 옆으로 굴린 레미는 피를 게워내고 있는 그의 머리를 허벅지로 받혔다.

"이 바보! 두 가지를 한 번에 쓰면 어떡해! 죽으려고 작정했어?"

소리를 지르면서도 레미는 항상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가죽 주머니에서 약초를 꺼내 옥세르의 입을 벌려 넣어 주고 있었다.

"이걸 먹여!"

하룬은 중급 포션을 꺼내 레미에게 건네주었다.

내상이 심해 보였던 것이다.

"이건 중급 포션이네요. 고마워요."

레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병마개를 따서 급하게 옥세르의 입안에 흘려주었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포션을 삼키지 못하고 있으니 딜런이 다가와 옥세르의 목을 만지자 목울대가 움직이며 포션이 넘어갔다.

"어떻습니까?"

"내장이 진탕된 것이니 안정을 취하면 며칠 안에 나을 겁니다."

다행이었다. 레미의 말을 들으니 두 가지 힘을 한 번에 쓰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 같아 걱정했던 것이다.

하긴 어지간한 내상이나 외상이라면 중급 포션 정도라면 제대로 들을 것 이다.

"다음은 나다! 내 도전을 받아 줘라."

디온이었다. 옥세르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을 목도하고도 그의 투지는 전혀 꺾이지 않았다. 

그의 태도에 딜런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검을 다시 빼 들었다,

디온은 힘을 앞세운 옥세르와 달리 민첩한 몸놀림과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잠시 딜런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마수의 힘을 쓰지 않는 상태에서는 딜런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 마수의 힘을 끌어 올린 디온은 필사적으로 딜런을 공격했지만 다시 오러 소드를 끌어 올린 그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결국 디온 역시 두 개의 마수의 힘을 끌어 올리는 극약 처방을 했지만 옥세르와 마찬가지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카족 전사들의 투기는 전사들의 투기는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다.

"다음은 나다!"

도전자는 계속해서 나왔다.

결국 딜런은 모든 아카족 전사들을 상대하고서야 겨우 실수가 있었다.

"후읍! 헉! 헉!"

그렇게 강한 딜런마저 거친 숨을 내쉴 정도로 대련은 살벌하고 위험했다. 딜런이 그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위험할 수 있는 순간들도 꽤 많았다.

그만큼 대련 도중에 발현된 마수의 힘은 강력한 위력을 보였다.

공터에는 쓰러진 전사들로 가득 차 버렸다.

충격이 심했는지 포션까지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 했던 것이다.

덕분에 레미는 물론 헤니와 피노까지 전사들을 치료하는 데 매달려야만 했다.

딜런이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하룬은 전사들 쪽을 보면서 물었다.

"어떻습니까?"

"후욱! 괜찮은 실력입니다. 거칠지만 용맹하고 야수처럼 임기응변이 강해 마수의 힘을 사용할 때는 익스퍼트 중급에서 강급 정도는 되는 것 같군요. 그 힘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익스퍼트 초급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정식으로 검술이나 수련을 한 것도 아니고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굉장히 강하군요."

이 정도면 굉장한 칭찬이었다.

그의 칭찬이 가리키듯 티노가 무척이나 부러운 눈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아카족 전사들을 바로보고 있었다.

"뭐 저런 거친 작자들이 다 있어!"

"저런 성정에 실력까지 갖췄으니 그 위험한 데빌 산맥에서 대대로 마수를 사냥하며 살아왔겠지요. 사형."

타니엘라와 미루스는 완전히 뻗을 때까지 투지를 잃지 않고 딜런에게 덤벼들던 흉포하고 무식한 전사들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오후 수련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전사들은 비틀거리며 여관으로 돌아와 겨우 식사를 하고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하룬은 이런저런 일로 사람들이 잠에 빠져들 때 의식을 집중해 싸가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녀석의 의지가 바로 반응했다.

-불렀어, 주인!

-싸가지, 오염물질을 분해하는 것은 어떻게 되어 가?

-거의 다 됐어. 흐흐흐! 기대하라고. 그것만 마무리 되면 난 또 한번 각성 하게 될 테니까.

싸가지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았다. 그러고 보니 음충맞은 녀석의 웃음소리도 조금은 밝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그래. 빨리 각성해라. 어쩌면 무척 힘든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흐흐흐. 기대해. 내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왠지 으스대는 느낌이 드는 녀석의 말투에 또 비위가 상하려고 했다.

'하여간 이 녀석하고는 오래 말을 섞으면 안 된다니까.'

하룬은 소환 대기를 해제하려고 하다가 생각난 것이 있었다.

-아, 참. 네 동료를 만났어.

-그 찌질한 녀석 말이지? 포니라는 어린 녀석.

-알고 있었냐?

하긴 모를 리가 없다. 언제라도 제 맘이 동하면 하룬과 의식을 공유하는 녀석이니 말이다.

-난 어린 녀석에게는 취미 없어. 아직 한참은 더 마나를 모아야 하는 그런 어린 녀석과는 말도 안 통할걸. 게다가 그 녀석은 아직 성 분화도 안 됐단 말이야.

-성 분화? 설마 너도 성이 있는 거야?

-그럼. 당연하지 이제 각성을 하면 물리적인 육체까지 가 질 수 있는데

그런가? 하긴 나이아나 위신느의 경우를 보면 성을 구별하는 것 같긴 하다.

-넌 어느 쪽이냐?

-그야 당연히 남성이지. 내 성격에 여성이 가당키나 하냐, 주인?

-하긴, 너 같은 녀석이 여성이라면. 으으! 끔찍하다.

-체! 나도 꾸미면 제대로 꼴이 난다고 이거 열 받아서 여성으로 분화해 버릴까 보다

-아서라. 아서! 그건 비극이다.

-쳇! 만날 나만 가지고 그래.

싸가지가 삐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때 그동안 고민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참. 너 오염물질을 어떻게 분리하는 거냐?

-그건 왜?

-이번에 마정석을 얻었잖아. 그런데 이 마정석이 품고 있는 마나의 성질이 무척 불안정해서 말이야.

-아, 그거 마나가 불안정하게 쌓여서 그래. 마나를 축척할 때는 마나가 풍부하고 방해받지 않는 안정된 곳에서 아무 감정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해야 하거든. 그런데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마나를 축척하면 감정의 영향을 받아 마나가 불완전하게 축적돼. 그래서 그래.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았다. 마수들은 그 성정이 잔혹하고 살기가 짙다. 또한 녀석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마나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체질적으로 시간이 흐르며 체내에 마나를 축적한 것이기에 축적한 마나의 성질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지?

마나 플로도 모르는 녀석에게 할 질문은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에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야 간단하지

싸가지의 무심한 대답에 하룬의 눈빛이 강해졌다.

-뭔데?

-불안정한 상태를 끌어 다시 제대로 쌓게 만들면 되잖아.

'빌어먹을! 누가 그걸 모르냐? 하여간 이 녀석은 도움이 안 돼요!'

눈앞에 있었다면 머리를 쥐어박았을 것이다.

기대를 자신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다시 제대로 쌓느냐는 이거지.

-그야......

녀석은 대답이 궁한지 말을 멈추더니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금 지나서 자신 없는 투로 대답했다.

-아공간에 있는 것들 중 불안전한 흐름을 가진 돌덩어리가 마정석이 맞지?

-응

-좀 살펴볼게

흥미를 느낀 것일까? 싸가지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그러곤 잠시 녀석의 말운 들려오지 않았다.

하룬은 지루했지만 기다렸다.

어쩌면 티노를 비롯한 대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잇을 것이다.

-으음. 이런 거구나!

다시 싸가지의 말이 전해졌다.

-뭔데?

-살펴보니 단순히 마나를 축적된 것이 아니네. 강한 생명력에 마나가 반응해서 한 덩어리로 축적된 거야.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이지

-생명력이 촉매 역할을 하는 건가 봐. 그렇다면 내 힘으로 마나를 흩뜨렸다가 다시 안정된 상태로 한데 모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물론 그러면 이질적인 것들은 다 오염 물질로 떨어져 나가 원래의 마나의 10분의1정도만 남을 거야.

'예에! 바로 그거야!'

-그럼 한번 시험해 봐.

하룬이 은근한 어조로 권하자 녀석의 말투가 금세 달라진다.

-에이 귀찮아! 나 수련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그래라. 뭐 바쁘면 할 수 없고.

사실 마음이 어떻게든 녀석에게 부탁을 하고 싶었지만 유독 이 녀석에게만 유치한 면모를 보이는 하룬은 금세 포기를 해버렸다.

'까짓! 안 되면 마는 거지. 게다가 10분의 1이라면...."

싸가지는 하룬이 진짜로 더 이상 부탁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의사를 전해왔다.

-아, 아니야! 해! 한다고! 하게 해 줘.

-왜 마음이 변했냐?

-그, 그게....말이야. 방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어쩌면 마정석의 이질적인 마나들은 개게도 도움이 될 거 같거든. 생명력이 섞인 것이라 오염 물질들을 축적하는 촉매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아

'호오! 그렇단 말이자. 그럼 일부러 튕겼단 말이네. 이 녀석을 어떻게 손봐야 할까?'

자기도 필요하면서 그런 것은 숨기고 주인인 자신이 매달리는 꼴을 보려고 했다는 생각에 싸가지가 괘씸해지는 하룬이다.

-아공간에 들어 있는 마정석들을 모두 순수한 상태로 바꾸는 데 얼마나 걸리겠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며칠 걸리지 않을까?

-좋아. 그럼 하루 만에 끝내. 그럴 수 있으면 하고 자신 없으면 그만둬. 팔아 버리게

-그, 그건 불가능해. 내가 완전히 순수해진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주인.

-할 거야. 말 거야?

하루 안에 마정석을 순수한 상태로 가공하려면 아마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하룬은 녀석을 어떻게든 골탕 먹이고 싶었다.

'에이, 난 왜 이 녀석과 관련되면 이렇게 쫀쫀해지지?'

하지만 녀석이 힘겨워하거나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면 유쾌해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해! 한다고! 칫! 주인은 나만 미워해. 정령계의 이단 정령들은 그렇게 예뻐하면서.

-뭘 미워한다고 그래. 잘 생각해봐. 내가 왜 널 이렇게 대하는지. 아마 지금 너도 찔리는 것이 있을걸.

-무,뭐? 나,나 찔리는 거 없다고!

애써 강변하는 녀석이지만 말이 끊기는 것은 어찌 변명할 것인가.

-그럼 수고해!

-칫!칫!쳇!

연방 투덜거리는 싸가지를 보며 하룬은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엇다.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하지만 녀석을 괴롭히는 것이 왜 이리 즐거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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