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정리 (147/278)

《정리》

 하룬 일행은 더 이상 헤븐 컴패니 내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을 포기하고 돌산의 반대편으로 재빨리 이동했다. 그들의 위치에서는 원래 입구와 마찬가지 거리였다.

 “서둘러! 놓치면 안 돼!”

 비록 유니온의 그 불쌍한 많은 이들을 구할 광대한 목표 따위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소지하고 있는 마약들은 어떻게든 없애 버려야 했다. 마약 1톤이 어느 정도인지는 감이 없었지만 그것이 없으면 당분간을 글로리 가이아라는 조직의 돈줄이 막히는 것과 동시에 마약에 길들여져 원하지 않는 불행한 삶을 사는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속도를 높여서일까. 벨과 나인이 자꾸 뒤처지고 있었다. 특히 나인은 몸이 좋지 않은 듯 얼굴을 두른 천이 이미 땀에 푹 젖어 있었다.

 “태력아, 나인을 업어. 그리고 벨은 오빠에게 업혀!”

 나인은 망설이지 않고 태력에게 업혔다. 지금은 망설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벨! 빨리!”

 잠시 쭈뼛거리던 벨이 등을 보이고 앉아 눈빛으로 재촉하는 하룬에 못 이겨 그의 목을 감았다. 예전 같으면 말이 떨어지자마자 업혔을 텐데 확실히 성장하긴 했나 보다.

 “후후! 우리 벨, 이젠 꽤 무거워졌네.”

 “히잉! 싫어, 그런 말.”

 부끄러운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얼굴을 등에 부비는 벨은 이제 꽤 무게도 나갈 뿐 아니라 등에 닿는 감촉도 성장한 것을 알려주듯 부드럽고 뭉클했다. 자신이 주장하듯 열여섯 살의 소녀가 맞았다.

 “그래도 오빠에게 넌 너무 가벼워.”

 그 말이 있고서야 겨우 진정한 녀석의 얼굴이 닿은 등을 통해 따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사랑과는 다르지만 그것이 결코 줄 수 없는 따듯함과 편안함 그리고 믿음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좋은 감흥을 주었다.

 하룬은 그 감흥이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믿을 수 있는 가족만이 줄 수 있는 감정에서 나온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각한 대로 하룬은 감정의 폭이 극히 좁았다. 다른 이들의 감정 폭이 0에서 100까지의 범위라면 그는 최대가 30 정도랄까.

 하지만 유일하게 100까지 확장되는 감정이 바로 벨이 여동생으로 느껴질 때였다. 이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하던 감장이지만 이젠 시간이 갈수록 그 감정의 폭은 확장되고, 그 감정이 하룬이 느끼는 행복감의 주된 근원이다.

 메신저 패스트 스킬을 펼치는 하룬과 육체적 능력을 극한까지 발전시킨 태가사남매는 무서운 속도로 산기슭을 돌아 반대편이 보이는 곳까지 달렸다. 수림이 무성한 산 반대편이 완전히 눈에 들어오고 그 거리가 1킬로미터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태범이 소리쳤다.

 “대장! 아까 그들입니다.”

 눈을 들어 살펴보니 수림 사이로 거대한 바위들이 보였다. 그 거대한 바위들은 마치 벽처럼 나란히 줄지어 서서 제법 폭이 넓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길을 통해 스물 정도의 휴먼들이 짐이 가득 실린 사이드카를 달고 있는 바이크를 몰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엇! 오르그들이야!”

 벨이 놀라 소리쳤다. 오르그들이 거대한 바위들 옆에서 나오며 휴먼들의 걸음을 막고 있었다. 언제부터 대기한 것인지는 몰라도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는 오르그들의 숫자는 족히 150은 넘어 보였다.

 ‘적어도 세 조는 되겠구나. 이놈들이 언제 여기까지 잠복하고 있었을까?’

 하룬은 이곳에 온 오르그들에게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꽤 오랫동안 수집해 왔음이 틀림없었다.

 “이미 출구가 또 하나 더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군요.”

 나인 역시 감탄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녀가 그동안 듣고 보아 왔던 보통 오르그들이 아니었다. 강력한 육체적 능력은 물론 휴먼들에 못지않은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궁지로 몰아 포위를 할 정도의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런 오르그들을 대부분의 휴먼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힘만 센 단순하고 위험한 동물 정도로만 알고 있다니.

 ‘설마 이런 사실까지 유니온의 수뇌부들이 차단한 것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을 했지만 혹시 모른다. 하룬이 전에 경험했던 종족들과 그 체형이나 행동 면에서 워낙 차이가 나니 말이다. 그래도 모른다. 노블로 대표되는 유니온의 지배 세력은 그저 기득권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무리이니 말이다.

 막 바이크를 타고 나오던 휴먼들은 길을 막고 늘어선 오르그들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돌파를 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엄폐물을 찾아 움직인 하룬 일행은 모두의 몸을 가릴 정도의 거대한 바위 뒤에 자리를 잡았다. 다만 그 높이가 가슴 정도에 불과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굴을 내놓고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룬은 벨을 등에서 내렸다.

 “벨, 저들 속에 잠입한 로우취가 있으면 영상을 수신해 봐.”

 “알았어, 오빠.”

 벨의 익숙한 손길에 의해 홀로그램 영상이 바위 면 위에 떠올랐다. 하지만 로우취는 어딘가 막힌 곳에 있는지 영상은 수신되지 않고 음향만이 수신되었다.

 “어떻게 하죠?”

 “빌어먹을! 오르그들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이런 준비를 한 거야? 도대체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기에 이런 황당한 상황까지 벌어진 거야?”

 처음 듣는 여자의 음성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부터 하대와 명령을 내리는 데 익숙한 신분이라는 것은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신경질적이면서 상대를 겁박하는 그 목소리에 하룬은 순간 눈썹을 꿈틀했다.

 “아마도 수송조들이 놈들을 끌고 온 것 같습니다만…….”

 “쓸 데 없는 새끼들! 감히…….”

 아까 실내에서 들었던 음성이었다. 해루라고 했던가? 벼리라는 장대한 체구의 청년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깔보던 청년의 얼굴이 금방 떠올랐다. 아까와 지금 하는 대화를 듣건대 해루라는 청년과 이 중 가장 직위가 높은 여인은 벼리라는 청년에 대해 뭔가 공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벼리는 어떻게 되었나?”

 “지금쯤이면 예정대로 폭발 장치를 가동시키고 입구 쪽에 도착했을 겁니다.”

 “야! 쓰레기! 그래, 너 말이야. 네 동료들과 함께 입구로 돌아가 벼리에게 전해. 포대로 가서 입자포를 날리라고.”

 누구에게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 상대는 대답도 없었다.

 “허어! 이젠 대답도 없어? 천하고 더러운 새끼들! 저런 놈들은 진작 데드 벙커로 보내 버리지 왜 살려두는 거야. 한 팀장은 길이 뚫리면 전속력으로 날 호위해서 약을 가지고 데저트 스팟 투로 향해요.”

 “알겠습니다.”

 “저들은 어떻게 합니까?”

 꽈앙! 쿠르르.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산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하룬들이 있는 곳까지 땅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이 정도면 헤븐 컴패니 안에 들어간 오르그들은 다 죽었겠네.”

 “그러게. 꽤 중요한 곳 같은데 미련 없이 폭파를 시키네.”

 벨과 나인은 강력한 폭발음과 여진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한동안 산은 요동을 쳤다. 지반이 약한 곳에는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고 오르그들과 휴먼들도 숨을 죽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음향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벼리. 너와 네 조는 입자포로 길을 연 후 진지마저 폭파시켜라. 그리고 혹시 우리를 추적하는 돼지들이 있다면 그 뒤를 ㅁ가아라!”

 그 사이 헤븐 컴패니를 폭파시키고 따라붙은 벼리가 그들 일행과 합류한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만약 돼지들에게 살아남는다면 데드 벙커로 가!”

 “데, 데드 벙커 말입니까?”

 묘하게도 벼리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을 거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은 실험실이 있는 곳 아닙니까?”

 “그러니까 가라고! 감히 실험체 주제에 항명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네놈들이 아무리 해손 원로의 비호를 받더라도 이제는 더 봐줄 수가 없다. 가서 이번 사태를 야기한 잘못을 반성하면서 본부의 명령을 기다려라!”

 실험체라는 말에 하룬의 눈에서는 닿는 것은 모두 태워버릴 것 같은 강렬한 화염이 솟구쳤다.

 ‘호오! 인공 수정체인 거로군. 자신이 실험체라는 것도 알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왜 이 조직의 하수인으로 지내는 거지?’

 “……알겠습니다. 꼭 살아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벼리는 잠시 생각을 했는지 텀을 두더니 어둠이 연상될 만큼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묘하게도 그 목소리는 많은 감정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만들었다.

 분함, 억울함 그리고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아찔한 위험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걸 팀장이라는 여자도 느꼈는지 해루에게 주의를 돌렸다.

 “휴우! 해루, 네 조에게 날 호위하는 것과 약을 책임지는 임무를 주겠다.”

 “영광입니다, 마늘 님!”

 벼리의 목소리를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통신은 꺼지고 말았다. 대답조차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끊은 것이다.

 “혹시 모르니까 저 천한 놈들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는지 살펴보고 와라. 그 후에 돌아와 날 지켜주렴.”

 “알겠습니다.”

 “호호호! 어젯밤처럼 날 황홀하게 해준다면 넌 책임지고 키워주마.”

 여인은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은근하게 속삭였다. 그것까지 들리는 것을 보면 로우취는 그녀 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영광입니다.”

 “호홋! 꽤 쓸 만한 몸이었어. 귀환하면 내 애인이랑 셋이 같이 즐겨 보자.”

 “비욘드 팀의 도리 팀장과 말입니까?”

 “그래. 걔도 내 취향과 비슷하거든. 암시장 피현 상점에 메조를 위한 가죽 제품 세트를 주문했으니 기대해!”

 “기대하겠습니다.”

 거기까지 들리던 음성이 갑자기 끊겼다.

 “뭐야, 벨?”

 “로우취더러 벼리라는 자에게 이동하라고 명령을 내렸어.”

 “왜?”

 “이…… 바보 오빠, 저 여자가 하는 말은 오빠와 같은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거라고.”

 “그게 왜?”

 벨은 붉어진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도 이해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하룬이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옆을 보니 나인의 얼굴도 터질 듯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나…… 말이야? 글쎄…….”

 벨의 질문에 화들짝 놀란 나인은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하룬이 답답한 마음에 벨이 그렇게 말한 이유를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다시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로우취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영상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음성만 들려왔다.

 “조장! 캡슐들은요”

 “놔둬라! 오늘은 우리가 죽기 십상인 날이다. 개처럼 살다가 그래도 잠시나마 사람 구실을 하게 해준 캡슐마저 부서지면 조직에 미안한 일이다.”

 “……조직요?”

 “아니, 정정하지. 해손 님에게 미안한 일이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해손이라는 이름은 기억해 두었다. 그들 조직에서 인공 수정체들을 비호하는 인물인 것 같다. 그때 아까 끊겼던 해루라는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감독할 테니 제대로 해, 벼리.”

 뭐가 좋은지 가벼운 목소리였지만 비아냥거리는 것은 여전했다.

 “이런 씨발!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할 일은 할 테니까.”

 “네놈들을 못 믿어서 그러잖아. 언제 배신 때릴지 누가 알겠어. 이번에는 오르그들에게 전향해서 뒷구멍이라도 대줄지 누가 알겠어?”

 “길을 열어 준다고 하잖아! 대신 죽어 준다고!”

 벼리라는 청년이 벼락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호크가 보내오는 영상이 홀로그램에 떴다. 호크의 눈은 벼리와 해루가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벼리의 노호성과 기세에 놀랐는지 해루는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르그들은 항복을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상황을 지켜보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길을 막고만 있었다.

 잠시 말없이 벼리를 쳐다보던 해루의 얼굴 근육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기세에 눌린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천한 인공수정체 놈이 감히 어디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흐흐흐! 천하다? 나보다 실력도 레벨도 떨어지는 새끼가 무슨! 좋은 유전자는 다 물려받았다는 집안에서 태어난 새끼가 네 입으로 천하다고 욕하는 나보다 능력도 떨어지는 건 어떻게 말할 셈이지? 엉?”

 “이……익!”

 “왜? 더 말해보지? 본부에 박혀 있던 너와 달리 지난 몇 개월은 물론이고 너보다 열 배는 더 많이 임무를 수행하느라 게임 시간도 너보다 한참이나 부족한데, 넌 왜 날 추월하지 못하고 그렇게 질투하고 있는 걸까? 넌 태생이 고귀한 놈이라며, 왜 나보다도 레벨이 떨어지는데? 그래 가지고 조ㅈ기에서 제대로 책임 있는 임무를 맡을 수 있을까? 하긴,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노블이나 방귀깨나 뀌는 집안 출신들이 장악한 조직이니 성공할 수도 있겠지. 부하들의 능력을 남몰래 질투하며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제거하려고 안달을 하는 상사가 되겠지.”

 쌓아 두었던 것이 폭발하듯 벼리라는 청년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만해! 안 그럼 당장 발포하겠다!”

 멀리 헬멧을 착용한 긴 머리 여인의 손데 파동 건이 들린 것이 보였다. 둘 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싸웠기에 그 내용이 다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벼리의 뒤에 있던 여덟 명도 파동 건을 마주 든 상태였다.

 생사의 위기를 앞두고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씨발! 쏴! 어디 쏴 봐! 우리 다 죽으면 너와 네가 총애하는 저 새끼들은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그동안 팀장이라고 능력도 없는 싸가지 없는 것이 거들먹거리는 것도 간신히 참았는데, 노블이라는 것만 빼면 남자들 등골이나 빼먹기 바쁜 화냥년이 그동안 지켜준 것도 모르고 어디서 위협이야!”

 “크크크! 우리 인공수정체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강제로 조직에 끌려와 개처럼 사육되는 것도 모자라 왜 너희들의 실험체가 되어야 하는 거지? 대답해 봐!”

 “이, 이런 배은망덕한 놈들! 부모도 없이 죽어가는 것들을 먹여주고 재워준 것도 모자라 원하는 대로 게임도 시켜주고 영광스러운 가이아 님의 은혜를 받도록 해주었더니!”

 여인은 치를 떨고 있었다.

 “지랄! 네놈들이 우리를 이용해서 비욘드에서 뭔가를 획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알아? 저 캡슐 역시 뭔가 있어. 그렇지 않고서는 조직에서 우리 일거수일투족을 그렇게 잘 알 리가 없지.”

 “조용! 어찌 되었건 우리에게 기회를 준 조직이다. 죽음으로 한 번 그 은혜를 갚는다.”

 벼리의 말에 폭발하던 조원들의 분노가 대번에 가라앉는 듯 욕설이 멈추었다.

 이런 상황은 전혀 예기하지 못했던지 팀장이라는 여자는 물론 해루의 조원들도 조용해졌다.

 “팀장이 어떻게 생각하든 난 우리 때문에 이 공장이 오르그들에게 노출되지는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약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을 오가는 수송조들에게 있을 겁니다. 나중이라도 그쪽을 조사해 보시오. 어차피 저 괴물들의 숫자를 보니 바이크도 타지 못한 우리 조가 살기는 불가능한 것 같으니 뭐, 상부에 어떻게 보고를 하든지 이제는 상관없지만. 다만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면 조직은 우리 인공수정체들을 홀대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될 거요. 우리 중 살아남은 자가 꼭 그렇게 해주겠소! 우리가 길을 열겠소!”

 “…….”

 “다낭과 화랑은 입자포 진지로 이동해라!”

 벼리의 명령에 두 조원이 언뜻 보이는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그사이에 팀장이 있는 쪽에서는 뭔가 한 마디 할 만도 한데 바이크의 액셀러레이터를 돌리는지 굉음이 터져나왔다.

 부릉부릉! 부르릉!

 “입자포 개방! 포신 조준!”

 “개방 완료! 포신 정조준!”

 로우취가 진지로 향한 한 조원의 몸에 붙었는지 바위틈으로 사라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입자포란 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언뜻 보면 그저 바위 중 일부로 보이는 것이 서서히 자신들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포신이었다.

 “괜찮을까요, 대장?”

 태범의 걱정 어린 말에 살펴보니 포신은 자신들 쪽을 향해 멈춘 상태였다. 거리는 꽤 있었지만 입자포에 대해서 잘 모르는 터라 벨을 쳐다보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향이 달라. 유효 사거리도 아니고. 여기 있으면 안전해.”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긴장을 풀었다.

 “전자 가속 시작! 체크!”

 “0, 1, 2…… 99, 100! 광속 도달! 발사 준비 완료!”

 “산개한 상태니까 범위를 넓혀야겠지. 확산 모드로 수정!”

 “확산 모드로 수정 완료!”

 “갈겨!”

 슈욱!

 포탄이 아니기에 그 실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입자포로부터 앞으로 쏘아지는 대기의 강력한 움직임은 무척이나 빨라 공간 전체가 일그러지는 것 같았다.

 “쿼억!”

 “크아악!”

 몇 마디의 비명과 함께 하룬 일행의 시선 앞에는 폭 4미터 정도의 공간이 순식간에 뻥 뚫린 상태로 드러났다. 언젠가 아리가 말하길 광속으로 가속된 전자 하나가 1톤의 파괴력을 지녔다더니 정말 두려울 정도의 위력을 지닌 입자포였다.

 순식간에 한 조에 해당하는 오르그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산산이 분쇄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파장이 다른 두 개의 레이저를 수소 가스에 발사해서 생겨나는 강력한 전자기력을 이용해 초전도 초가속기와 맞먹는 위력으로, 전자를 20조 전자볼트로 가속시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과 이동과 유지 그리고 가동의 어려움 때문에 방어용으로 쓰이는 입자포로 인해 오르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지금이닷!”

 바이크들은 굉음과 함께 하룬이 있는 곳을 향해 달라오기 시작했다.

 “쫓아라!”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졌던 오르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바이크를 쫓으려고 했다.

 꽈앙!

 돌연 굉음과 함께 입자포가 폭발을 일으켰다. 누군가 오르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우려해서 조작을 한 것이다.

 “다 죽여 버려라!”

 조직에서도 버림을 받은 인공수정체 여섯 명이 각자 검과 도를 꺼내 오르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를 따라 입자포를 가동시켰던 두 명의 조원이 날 듯이 일행과 합류하기 위해 달렸다.

 ‘괜찮은 자들이군!’

 하룬은 인공수정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들이 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굳이 도망쳐도 되는 상황에서까지 의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서 깊은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오르그들이 그들의 도주를 지켜볼 리가 만무하지만, 그래서 바보 같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이런 행동은 자신을 사육하고 쓸모가 없어지자 버린 비정한 자들에 대한 절규로 들렸다.

 “오빠! 어떻게 해?”

 “가능하면 우두머리를 잡자. 저 정도 인물이라면 아는 것도 많겠지. 정보 파악하는 건 가능하니?”

 “아리 언니의 능력이라면 가능할 거야.”

 “좋아. 일단 사로잡는 걸 목표로 하고 최악의 경우라도 마약은 처리해야 해!”

 로우취가 그들의 근거지로 침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그들의 기지만 해도 어떤 존재라도 감지해 내기 때문이다. 그들 정도의 대조직이라면 지엽적인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본거지까지 침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이참에 포로로 잡을 생각이었다.

 “태범, 바이크와 사이드카의 연결 부분을 맞출 수 있겠어?”

 “오는 방향이 이쪽이라 100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가능합니다. 다만 속도는 상관없는데 먼지 때문에 시야가 흐릿합니다. 잘못하면 바이크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상관없어!”

 그깟 놈들이 문제가 아니다. 사이드카에 실린 마약들만 없애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가 무사하게 그들의 근거지로 가야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래도 약이 우선이다.

 “태범, 준비해! 나머지는 벨과 함께 약을 처리해!”

 태범이 바위 뒤에서 몸을 드러내 쏘우가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개량한 파동 건을 발사할 준비를 취하는 사이 벨은 통을 꺼내 셋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통들은 아리가 제작한 무기들 중 하나로 강력한 고열 방사 기능이 있었다. 오르그와 하르크 같은 변종 생물들이 고열에 취약하다는 것을 고려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이렇게 약을 태우는 용도로 쓸 줄은 몰랐다.

 정신없이 바이크를 몰고 달려오던 이들은 몸을 드러낸 태범의 존재로 인해 황급히 방향을 돌리려고 시도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약간 경사지였고 사이드카에 실린 약의 무게와 달려오던 가속도 때문에 피하기는 힘들었다.

 슉! 슉! 슉! 슉!

 약 3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 파동탄을 발사한 태범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바이크들을 피해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아악!”

 비명과 함께 바이크 하나가 통째로 뒤집혔다. 다른 세 대의 바이크 역시 파동탄의 충격으로 다른 방향으로 튕기듯 날아갔고, 분리된 사이드카들은 연결 부위가 부서지며 전복되어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냈다.

 “태력은 나와 함께 가자! 나머지는 저들을 처리하고 합류해! 나인아, 네가 벨과 함께 지원해줘.”

 “걱정하지 마, 오빠!”

 나인과 벨도 어느새 파동 건을 꺼내 들었다. 쏘우가 최근에 개조한 것으로 근거리라면 상대가 오르그라도 처리하는 것은 물론 그녀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태연과 태범 그리고 태룡은 전복된 바이크를 하나씩 맡아 달려갔다.

 “올라가자!”

 하룬은 먼저 바위 위로 몸을 날렸다. 태력도 바위의 홈을 잡고 올라왔다. 그러자 시야가 훨씬 더 좋아졌다. 벼리 조원들을 상대하기 위해 남은 놈들 말고 바이크를 뒤쫓던 오르그들의 숫자는 50이 넘었다. 일단 숫자를 좀 줄일 필요가 있었다.

 “태력, 파열탄을 쓰자!”

 “네, 대장!”

 하룬과 태력은 배낭에서 파열탄을 두 개씩 꺼냈다. 쏘우가 만든 것으로 1인당 두 개씩 가져왔던 것이다.

 종말 시대의 무기인 수류탄을 개량시킨 파열탄은 원래 포탄의 일종으로 목표물의 상공에서 터지면서 무수한 파편을 비산시키는 것이지만, 쏘우는 그것을 투척용으로 개조시켰다. 대신 그 크기는 손바닥 정도였고 무게도 꽤 무거워서 여간한 힘이 아니면 던지기도 힘든 단점이 있었지만, 힘이라면 빠지지 않는 태력과 하룬은 어렵지 않게 파열탄을 사용할 수 있었다.

 둘은 오르그들이 20미터 앞까지 다가오자 눈빛을 교환하며 길쭉한 손잡이를 힘껏 던졌다.

 꽈앙! 꽈앙!

 귀청이 떨어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파열탄이 터진 곳 주위는 볼 수가 없었지만 오르그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는 먼지를 뚫고 새어 나왔다. 어느새 10미터 앞까지 달려왔던 오르그들이 굉음에 놀라 바닥으로 엎어졌다가 머리를 들고 있었다.

 “하나 더!”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뒤쪽을 목표로 잡았다. 지금은 폭발로 인한 먼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바이크를 뒤쫓던 놈들은 거의 50여 미터를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룬과 태력은 있는 힘껏 파열탄을 멀리 던졌다. 아까보다 거의 두 배는 멀리 나갔을 것이다.

 꽈앙! 꽈앙!

 그들이 서 있는 바위가 들썩거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력을 보인 파열탄으로 인해 아까의 먼지 뒤쪽으로 먼지가 피어올랐다.

 슉! 슈욱! 슉! 슈욱!

 “캬악!”

 뒤에서는 대원들이 쏘는 파동탄 소리가 들렸고 구슬픈 비명 소리도 같이 들렸다.

 “가자!”

 하룬은 태력의 어깨를 툭 치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박살을 꺼내 든 하룬은 기를 주입하고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막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르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태력은 바닥에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내렸다가 전투 도끼를 손에 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우와악!”

 선두에서 바이크를 쫓던 바람에 파열탄에 비산된파편의 범위를 벗어났기에 이상이 없었던 오르그들은 달려오는 하룬과 태력을 향해 위협적인 소리를 지르며 마주 달렸지만 어느새 투기는 사라져 있었다.

 막 오르그들 앞에 도착한 하룬의 박살에는 어느새 시퍼런 검날이 생성되어 있었고, 벼락처럼 휘두른 박살은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굼뜬 오르그들의 목을 베고 있었다. 본래의 투기와 반응 속도를 잃은 오르그들에게 박살의 검기는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이놈들!”

 하룬의 상체만큼이나 큰 도끼를 젓가락 돌리듯 가볍게 휘두르는 태력의 돌진에 하룬을 피해 달아나던 오르그들의 목이 쩍 벌어졌다. 비록 검기로 된 날을 가진 박살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힘을 바탕으로 한 태력의 도끼질은 오르그들의 무기를 부수고 노출된 목 부위를 철저하게 노렸다.

 열여섯 정도의 오르그들을 처리하고 나니 먼지가 걷히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많은 오르그들이 파열탄의 날카로운 파편을 몸에 박은 채 간신히 일어나거나 기고 있었다. 머리 부위에 파편이 집중적으로 꽂힌 몇 놈은 이미 죽었는지 미동도 없었다.

 그나마 공격이 가능한 것은 20 정도. 파열탄 네 발에 30이 넘는 오르그들이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다.

 하룬과 태력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오르그들의 숨통을 끊는 데 주력했다. 파열탄의 파편을 용케 피한 녀석들은 검기를 발현시킨 하룬의 박살을 대해야 했고, 부상을 입은 오르그들은 투기가 폭발한 태력이 인정사정없이 휘두르는 거대한 도끼날에 목뼈가 부러지거나 베여 죽어갔다.

 어느새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이전처럼 주위를 완전히 잊을 정도로 전투에 몰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시 광분했던 하룬은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욱! 후욱!”

 태력 역시 힘이 들었는지 숨을 몰아쉬며 도끼를 의지하고 겨우 서 있었다. 더 이상 처리할 오르그가 없다는 생각에 순간 힘이 빠졌던 것이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져 오르그들을 상대했던 것이다.

 “괜찮아?”

 언제 다가왔는지 태범과 태룡이 태력에게 물었다. 태력이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됐어?”

 “마늘 팀장이라는 여자와 둘은 살렸지만 부상 정도가 심합니다. 다만 다른 자들은 저항이 심해 모두 처리했습니다.”

 “일단 응급처치를 해줘. 우리에게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포로니까 기지로 돌아갈 때까지 악화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 줘. 아! 그리고 검기를 사용하던 자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바이크와 함께 전복되어 깔렸기에 쉽게 머리통에 파동탄을 날려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바이크가 전복되는 사이 몸에 날려 바닥에 착지를 했지만 벨 참모의 의견대로 우리 셋이 한꺼번에 파동탄을 집중시켜 처리했습니다.”

 하긴 가죽의 구조가 특수한 오르그들이나 파동탄을 견딜 뿐 피륙에 불과한 휴먼의 육체로는 익스퍼트라고 해도 그 위력이 현저하게 올라간 개조 파동 건의 파동탄을 견딜 수 없다. 상대는 뛰어난 방호력 가죽을 가진 오르그나 하르크가 아니다. 검기를 발현시켰다 해도 두렵지 않은데 충격으로 검기도 쓸 수 없는 상대를 파동 건으로 해치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벨과 나인은 뭐 하는데?”

 태연이 근접 호위를 하겠지만 걱정이 되었다.

 “약들을 소각하고 있습니다.”

 그쪽은 완벽하게 처리를 한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여덟 명 인공수정체들의 상황이다.

 벼리는 눈앞이 붉게 보였다. 오르그들의 피인지 아니면 자기의 것인지는 몰라도 이미 얼굴응ㄹ 포함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어느새 기계적으로 휘두르는 검에서 검기가 사라진 것은 물론 힘도 빠지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죽는구나!’

 차라리 돌산을 타고 도망을 칠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상대방은 콧등으로도 상대하지 않을 치기 어린 의리를 지키겠다고 호기를 부린 것 때문에 많은 시간 동안 고난을 함께해 온 친구들이자 조원들에게 미안했던 것이다.

 말이 좋아 검기지, 지금 그의 경지로는 채 10분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나마 전력으로 검기를 발출한 상태에서는 몇 분이 고작이다.

 ‘그 괴물 같은 놈!’

 이마에 노란 문신을 한 놈이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지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두머리로 짐작되는 이 노란 문신의 오르그는 바로 그전에 상대했던 붉은 문신의 오르그와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 몇 놈을 짚단처럼 벤 후 붉은 문신의 오르그가 달려들었다. 놈은 놀랍게도 자신의 검기를 받아내었다. 기를 사용한 것이다.

 휴먼의 몇 배에 해당하는 괴력과 기를 사용하는 능력이 결합되자 검기를 쓰는 자신도 쉽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빠른 발과 정교한 검술로 간신히 그 놈을 죽였지만 그 와중에 자신도 몇 군데나 상처를 입고 말았다. 다른 놈들이 합공을 했다면 벌써 죽었을지도 몰랐다.

 전에 상대하던 키 작은 놈들과는 달리 키도 자신만 한 오르그들은 전투력도 훨씬 뛰어났다.

 검기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같은 검기뿐이다. 조직의 공방 책임자는 특수 합금이라면서 검기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벼리는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았다.

 그렇게 붉은 문신을 새긴 놈을 힘겹게 상대한 벼리는 곧 노란 문신을 이마에 새긴 오르그를 눈앞에 두었다.

 “헛!”

 검기가 실린 검이 상대의 도끼 면에 부딪히며 헛되이 흐르고 말았다.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을 노리고 대뜸 도끼를 휘둘러 온 오르그가 무기에 기를 실을 정도인지는 몰랐다.

 비욘드에서 배운 검술로검기를 발출하고 쓰게 되면서 그 어떤 상대도 해치울 것 같았고 지금까지는 그것을 실감했던 벼리지만, 그 오르그는 검기를 기가 실린 도끼 면으로 흘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 괴물들은 오르그이긴 한 건가?’

 오르그가 기를 사용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벼리는 자신이 이미 지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괴물 같은 놈이 아니더라도 이전에 상대했던 놈들 중에 서넛은 타고난 근력에다 기가 실린 무기를 휘두르는 놈들이었다. 혼자 상대하는 것은 검기를 쓰는 자신이라도 힘겨웠던 것이다.

 “우와악!”

 꽈앙! 꽝!

 쾌검의 그것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도끼를 할 수 없이 정면으로 받아내는 순간 벼리는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자신이 지친 것을 파악하고 정면 승부를 해오는 것이다.

 ‘너무 빨라!’

 이게 오르그가 맞기는 한 건가? 비욘드에서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했던 벼리는 이놈의 움직임이 유령마의 그것처럼 엄청나게 빠른 것에 혼이 나갈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저 거대한 도끼를 마치 나무젓가락 휘두르듯 가볍게 휘두르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휘융!

 간신히 몸을 굴려 피했지만 가공할 풍압에 얼굴이 따가울 정도였다. 빠르기와 힘, 임기응변에서 모두 현저히 떨어지는데다가 선기까지 놓치고 만 벼리는 그때부터 정신없이 바닥을 구르며 괴물 오르그에게서 도망 다녔다.

 하지만 놈은 집요했다. 자신이 우두머리라는 것을 아는 듯 놈의 도끼는 그의 혼백을 쏙 뺄 정도로 그를 노렸다.

 “이노옴!”

 “가, 조장!”

 “벼리야! 꼭 살아라!”

 어린 나이에 같이 수련소에 들어온 다움이와 세 조원이 노란 문신을 한 오르그에게 정신없이 밀리던 자신을 대신해서 자리를 바꾸어 주었지만 이미 그의 힘과 기력은 바닥에 붙은 양초처럼 그 끝을 보이고 있었다.

 “하악! 하악!”

 잠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 시야가 붉게 변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 치며 뜨거운 피를 전신으로 돌렸지만 한번 떨어진 기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오르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네 조원이 자신 대신 괴물 오르그를 상대하는 틈을 타 온 몸의 힘과 기를 폭주시킨 벼리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오르그들을 상대했지만 하나씩 들려오는 조원들의 처참한 비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네 번째의 비명을 드른 후에는 아무 감각도 느낄 수 없었던 벼리였다.

 ‘뭐지?’

 갑자기 공격이 멈추었다.

 붉게 변한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긴 외투를 걸친 네 휴먼이 오르그들을 마치 짚단처럼 베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 한 사내의 손에는 시퍼런 기광이 번뜩이는 검이 마치 파도를 일으키듯 움직이며 오르그들의 숨통을 끊고 있었다.

 근처에 더 이상 오르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무렵, 조원들이 벼리를 대신해 상대했던 그 괴물 오르그가 결국 그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꽈앙! 꽝!

 기를 머금은 무기들은 굉음을 내며 몇 번이나 충돌했다. 사내는 힘에서도 기량에서도 자신의 경우처럼 밀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한 괴물 오르그의 공격에 그 사내는 겨우 맞받아치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크크! 이제 막 익스퍼트 상급에 입문한 나도 상대하지 못한 놈인걸.’

 자신과 그렇게 싸우고도 지치기는커녕 괴물 오르그가 휘두르는 거대한 도끼에 어린 기광은 더욱 또렷해지고 있었다. 버서커 상태에 진입이라도 한 것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오르그의 공격에 사내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지경까지 몰렸다.

 자신이 완벽한 상태라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변화무쌍하면서도 위력이 뛰어난 검술에 검기까지 쓸 능력자이긴 하지만 괴물 오르그를 상대하기에는 미흡했다. 공연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저런 괴물에게 죽으면 안 될 아까운 인물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의 외투는 강력한 방호력을 가진 슈트의 일종인 듯 몸에는 특별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노출된 얼굴과 목, 그리고 손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머리카락도 튄 피로 인해 떡이 져 있었다.

 ‘헛!’

 벼리는 눈을 부릅떴다.

 괴물 오르그의 도끼 일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고꾸라지던 사내의 손에서 비수 한 자루가 지척의 오르그에게 날아갔던 것이다.

 그게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그 비수와 사내의 왼손 사이에 마치 줄처럼 보이는 시퍼런 전류가 흘렀던 것이다.

 “쿠워어억!”

 비수로는 도저히 뚫거나 벨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오르그의 두터운 목 가죽에 비수가 ㅂ가히고 시퍼런 전류가 보이는 순간, 괴물 오르그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격렬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꿈을 꾸나?’

 안 그래도 아득하던 시야 때문에 보고 있는 광경이 진짜인지 의심이 되었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사내의 움직임. 마치 몽둥이처럼 보이던 사내의 무기가 양날 부분에 검기가 솟아나오더니 괴물 오르그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파앗!

 자신에게는 난공불락이었던 놈의 머리통이 마치 과일처럼 반쪽으로 베어져 날아가고 뒤늦게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광경은 꿈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현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리라.

 피식!

 벼리는 이젠 너무 지쳐 눈을 뜨고 보는 상상을 털어 버리려는 듯 웃으며 눈을 돌려 친구들을 찾았다.

 다행하게도 익숙한 체형의 둘이 눈에 들어왔다.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것은 친구들이었다. 다행히 그들 주변에는 더 이상 오르그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에 보는 것도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어 보이는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저건 방조와 애미, 그러면 나머지는 다 죽은 건가?’

 하나가 더 눈에 들어왔다. 입자포를 쏘고 뒤늦게 합류한 화랑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녀석의 긴 머리칼이 피에 젖어 마치 찢어진 천처럼 흔들거리자 여태껏 눈물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벼리의 눈시울이 금방 축축해졌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 마른 입술을 적시고 입안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아 남은 친구들을 찾았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친구이면서 자신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었던 수하들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터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들의 웃음과 눈물을 더 이상 볼 수 없고, 자신에게 힘을 주던 말들을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전하고 시렸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조직의 훈련소에 들어와 온갖 것을 다 경험하면서 무뎌지고 말라 버려 쩍쩍 갈라졌던 가슴이 슬픔과 미안함, 아쉬움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과 눈물로 금세 가득 채워졌다.

 “끅! 끅끅끅!”

 이제는 잊었던 울음이 항상 악다물었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어떻게 우는지도 잊었는지 잔뜩 억눌린 기이한 소리를 내던 벼리는 눈마저 질끈 감고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이름이나 조장이 아니라 SS4호로 불릴 때가 더 많았던 벼리는 자신이 그동안 조직에 의해 사육당하면서 잊거나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한꺼번에 느껴며 힘겹게 그 감정들을 조금씩 표출하고 있었다.

 “이봐, 친구! 상황은 다 끝났으니까 눈 좀 떠보지.”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힘겹게 눈을 뜬 순간 붉게 변했던 세상 중 일부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긴 머리칼을 가진 강인한 인상의 청년이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벼리는 애써 쥐고 있었던 긴장의 끈을 자신도 모르게 놓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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