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오르그의 습격 (146/278)

《오르그의 습격》

 오르그들은 하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리했다.

 “오빠! 일어나!”

 하룬은 벨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눈을 떴다. 겨우 뜬 눈에 막사 안에 띄워 놓은 홀로그램 창이 들어왔다.

 “뭐야?”

 “오르그들이 전격적으로 공격을 감행했어.”

 “공격을? 이 시간에?”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5시 반이다. 해가 뜨기 얼마 전으로 어둠이 아직 남아있는 시간이다. 하룬은 정신을 차리고 두 개로 나누어진 홀로그램 창을 주시했다. 하나는 오르그들의 숙영지가, 다른 하나는 입구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르그들의 숙영지는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예전의 몸이라면 수면 따위는 필요 없었을 텐데. 내가 잠깐 잠이 든 사이에 오르그들이 전격적으로 기동했어.”

 벨은 투덜거리며 텅 빈 오르그들의 숙영지 영상을 꺼 버리고 입구 쪽 영상으로 풀 사이즈로 확대했다.

 헤븐 컴패니의 문 앞쪽은 유혈이 낭자했다. 오르그들과 휴먼들의 사체가 이리저리 널려 있었고 성한 것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경비 병력의 주의력이 가장 떨어지는 새벽 시간에 감행된 습격이지만 오르그들의 사체가 무수한 것으로 보아 전력 면에서는 오르그들이 열세였지만, 놈들은 숫자로 밀어붙인 것 같았다.

 그래도 입자포를 가동하지 못한 듯 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시꺼멓게 탄 사체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플레임 방사기가 효율적으로 사용된 것 같았다. 그래 봐야 숫자 때문에 온몸이 난자된 상태로 죽고 말았지만.

 돌문은 어느새 반쯤 벌어져 있었다. 오르그들은 떼로 문에 달라붙어 무식하게 힘으로 문을 열고 있었다. 안에서 빗발이 치듯 파동탄이 날아왔지만 놈들은 머리통이 날아가거나 사지가 떨어져 나간 동료들을 그 틈새에 끼우고 용을 썼다.

 “로우취들은?”

 “이미 문 주변으로 이동시켰어. 아! 두 마리가 들어갔어. 다른 두 마리도. 이제 로우취가 수집하는 영상으로 변환시킬게.”

 하룬은 어지간히 피곤한지 낮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나인을 힐긋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 친 막사는 태가사남매의 것으로 두 막사의 중간에 앉은 채로 번처를 서던 태연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다.

 “대장!”

 “비상 상황이야. 모두 깨워서 이동할 준비를 해.”

 태연은 하룬의 말에 지체 없이 막사로 뛰어 들어갔다. 깨우는 건지 아니면 마구 밟아대는 것인지는 몰라도 비명이 들리는 막사를 잠깐 본 하룬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외투를 걸쳤다.

 “아악!”

 “우어억!”

 갑자기 홀로그램 스크린으로부터 비명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요?”

 “싸우는 거겠지.”

 벨의 동그란 눈 속에 놀람이 그득한 것을 보니 무척 귀여웠다. 동굴 안은 마약을 제조하는 곳이니 당연히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입구에 경계병까지 있고 그 무기를 보면 상당한 수준의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전날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짐 속에 숨어 있던 로우취들이 내부 곳곳으로 퍼져, 저마다 눈을 통해 보낸 영상이 창으로 나누어져 음향과 함께 내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입구 쪽을 풀 사이즈로 확대해봐.”

 벨의 빠른 손놀림에 문 안쪽의 영상이 확대되었다.

 스크린에는 수백 제곱미터의 넓은 공간이 나왔는데 아마 이곳에서 원료를 받아들이고 생산한 제품을 반출하는 것 같았다. 수송용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퀴를 가진 바이크들이 한쪽에 세워져 있고, 여기저기에 마약의 재료로 보이는 물질들이 포대 째로 쌓여 있거나 앰플과 알약, 혹은 담배의 형태로 만들어진 마약들이 포장을 하다가 만 상태로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르그들이 난입하자 당황한 휴먼들이 파동 건을 난사하고 있었다. 역시 개조를 한 파동 건인지 오르그들은 입고 있는 방어구에도 불구하고 맞는 순간 몇 미터씩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오르그들의 전면을 맡은 전투조들은 덩치가 워낙 크고 슈트까지 갖추어 입은 터라 큰 피해를 본 것 같지 않았다.

 놈들이 입고 있는 슈트는 일전에 자신을 습격했던 자들, 즉 이들과 같은 동료들이 입고 있었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아마도 자신의 경우처럼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 같았다. 그렇게 보면 오르그들은 이들에 대해서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파동 건에 맞은 놈들은 날아가는 즉시 몸을 일으켜 다시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파동 건을 든 휴먼들은 약 스무 명 정도였고, 그들 중 절반은 슈트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작업부인 것 같았다.

 워낙 목표물이 가까이 있어 조준이 필요 없어 그들의 파동건에서는 쉴 새 없이 파동탄이 날아갔다. 처음에 들어왔던 오르그들이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동료들 때문에 머리통이 날아가고 온몸이 기괴하게 뒤틀리거나 부서진 상태였지만 그들은 동료들의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저돌적인 오르그들은 넓게 퍼지기 시작했고, 그 수가 백을 넘어가자 휴먼들 중에도 하나둘씩 희생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르그들은 처참하게 죽어 간 동료들의 사체를 방패로 삼거나 던져 휴먼들의 진형을 뒤로 물리거나 흩어 놓고는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게다가 선발대의 뒤를 이어 들어온 일부 오르그들이 파동 건을 쏘기 시작하자 방어진을 친 휴먼들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명은 흉성이 터진 오르그들에 의해 사지가 뽑히고 뼈가 으스러진 상태로 죽어가고 있었다.

 “후퇴! 후퇴하라! 대응 사격을 하면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가장 안쪽에 있던 한 중년인이 소리를 치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자 다른 휴먼들도 파동 건을 난사하는 상태로 뒤로 움직였다. 그들의 뒤쪽에는 비상구가 열려 있는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것 같았다.

 하룬이 1층 상황을 보는 사이에 벨은 다른 홀로그램 영상을 띄워 놓고 곳곳으로 침투한 로우취들의 시야를 통해 내부 구조와 그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구조는 어때?”

 “지상은 1층, 그리고 지하로 6층까지 있어. 지상층은 물건들의 반입과 출고를 위한 공간으로 보여. 지하 쪽으로 보면 1층은 사무실과 포장을 위한 공간이고 2층과 3층은 생산 시설이, 4층은 주거 시설, 5층은 원료와 완제품 창고, 그리고 마지막 6층은 발전 시설과 각종 제어 시설이 모여있는 것 같아.”

 벨의 말을 들으니 내부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부에 있는 인원은?”

 “1층을 제외하고도 약 100명 정도가 되는 것 같아. 지하 1층에 20명 정도, 5층에 약 30명 정도가 있고, 나머지는 각 층의 계단이 있는 비상구 입구에 열대여섯 정도씩 나누어 포진하고 있어. 그 나머지는 모두 지하 6층에 모여 있어.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추었고, 계단이 있는 건물 양편에 있는 비상구는 잠겨 있어.”

 “대응하는 게 무척 빠르네.”

 “응. 절반 정도는 슈트도 입지 않은 상태지만 나머지 절반은 슈트는 물론 검이나 도를 든 것으로 보아 전문적인 전투 요원인 것 같아.”

 로우취 사이보그들은 진짜 바퀴벌레와는 달리 저소음의 빠른 비행을 통해 혼란의 와중에 이미 각층으로 잠입을 한 상태였다. 전자 기기들로 감시되는 이런 곳이라면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지만 비상 상황이라 그 움직임이 그들의 촉각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일단 우리는 로우취들을 통해 내부 상황만 지켜보자. 두 마리는 지하 5층과 6층을 감시시켜. 어쩐지 그곳이 중요한 것 같으니까.”

 “응, 오빠.”

 하룬의 지시에 벨과 어느새 들어온 태가사남매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로우취들이 보내오는 영상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 강행군에 지친 나인은 여전히 잠에 빠진 상태였다.

 오르그들은 이제 지상층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수백의 오르그들은 중간 중간에 보이는 지휘관들의 명령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 쪽에 밀집하고 있었다. 나머지 오르그들은 마약의 재료들과 포장되지 않은 완제품들을 바깥으로 나르고 있었다.

 “휴먼들이 쓰던 무기를 가져와!”

 다른 오르그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지휘관이 명령을 내리자 수십의 오르그들이 지체 없이 이미 난자되어 고깃덩어리로 변한 휴먼들과 동료들의 시신 사이에 떨어져 있던 파동 건 한 정을 가져왔다. 보통 한 손에 잡을 수 있는 작은 규격품이 아니라 총신만 팔 길이에 달하는 개량 파동 건으로 멀쩡한 것은 이것이 유일했다.

 비릿한 웃음과 함께 수하로부터 그것을 받은 지휘관은 익숙한 솜씨로 계단으로 향하는 비상구 문의 손잡이 부분과 벽 사이를 향해 발사했다.

 슈슈슈슉!

 퍼억!

 한 곳에 집중된 파동탄의 위력은 강력해서 잠시 후 철문은 금속 손잡이 부분까지 한순간에 터져 나갔다.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지휘관의 말에 오르그들 중에 섞여 있던 이마에 붉은 문신을 한 오르그들이 차례대로 외쳤다.

 “우마 조, 사망 20. 중상 14!”

 “차마 조, 사망 8, 중상 7!”

 “다마 조, 입구에서 생긴 사망 34, 중상 18 외에 추가 피해 없음!”

 “카마 조, 입구에서 생긴 사망 18, 중상 22 외에 추가 피해 없음!”

 “해마 조, 피해 없음!”

 “개마 조, 피해 없음!”

 우마 조와 차마 조는 아마도 이곳으로 진입할 때 선봉에 선 오르그들일 것이다. 그리고 다마 조와 카마 조는 입구를 습격했을 것이다.

 “우마 조는 밖에 대기하고 도마 조에게 물건을 넘겨주고 그곳에서 대기하라! 토마번은 소마, 오마, 그리고 초마 조가 제대로 이동했는지 확인하라. 휴먼들은 이곳을 포기하고 반드시 그리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게 해야 한다. 자, 이번에는 차마 조가 선봉이다. 해마 조와 개마 조 그리고 다마 조와 카마 조는 나와 함께 아래층으로 간다!”

 그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아까 공장 안으로 먼저 난입했던 일단의 오륵드르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특수한 구조를 가진 가죽을 가졌고 방호력이 뛰어난 슈트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근거리에서 위력을 업그레이드시킨  파동탄을 수십 수백 발이나 맞은 오르그들의 몸은 대부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 뒤를 따라 특이하게도 호리호리한 몸집을 가진 한 오르그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아마 토마번이라는 이름, 혹은 직위를 가진 오르그일 것이다.

 “흐음. 우마니 차마니 하는 말들은 모르겠지만 한 조에 오십 명으로 구성된 것 같군.”

 그렇다면 이곳을 공격한 오르그들의 숫자는 대략 300으로 추정할 수 있다. 거기에 약 150에서 200 정도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니 총수는 대략 500 정도가 온 것 같았따.

 “응. 조장은 이마에 붉은 문신을 한 오르그들이고, 열 명 단위를 지휘하는 또 다른 중간 지휘관이 있어. 저기 보이는 파란 문신을 한 놈들이야. 일반 오르그 전사들은 이마에 아무 표식이 없어.”

 벨의 말을 듣고 스크린 한쪽에 떠 있는 지상층의 영상을 자세히 보니 놈들의 조직을 알 것 같았다.

 가장 상급자는 이마에 노란 문신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외모가 휴먼들과 거의 유사했다. 코뼈가 심하게 주저앉은 것 같은 얼굴과 붉은 눈만 아니라면 잘 정련된 군인을 보는 것 같았다.

 “저놈은 바쿠가 아닌데?”

 어제 지휘 막사에 있던 놈은 분명 아니었다. 어제 정탐한 것을 보면 바쿠라는 놈이 우두머리인 것 같았는데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우두머리가 둘일 수도 있었다.

 시퍼런 예기를 발하는 검과 도 그리고 도끼로 무장한 오르그들은 문을 통해 차례로 안으로 들어갔다. 지상층의 한 벽면에 붙어 있던 로우취가 벨의 명령을 받고 천장을 타고 움직여 그 뒤를 따랐다.

 “막아!”

 “죽여라!”

 오르그들이 들어가고 있는 계단 쪽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무기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우취들은 다들 실내에 잠입한 상태이기에 계단의 상황이 궁금했지만 대충 들리는 소리로 상황은 알 수 있었다.

 “다마, 카마 조는 아래로 내려가라! 반드시 천사장이 말씀하신 물건들 모두를 확보해라!”

 “윗!”

 오르그들은 억눌린 신음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꽈앙! 꽈앙!

 계단을 타고 지하 건물 전체로 굉렬한 폭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파동 건은 이미 그 에너지가 다했는지 오르그들은 도끼를 이용해서 손잡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격하고 있었다.

 로우취가 벽면 위쪽을 타고 지하 1층이 보이는 곳까지 이동했을 때는 이미 문짝은 엉망이 된 상태로 휘어진 채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동탄들이 비 오듯 오르그들을 향해 날아오고 이미 머리 부위가 날아간 오르그 두셋의 사체가 다른 오르그들에게 들려 그것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깨 근육을 부풀린 몇 명의 오르그들이 일정한 소리와 함께 문을 향해 자신의 몸을 밀고 있었다.

 “카! 다! 우!”

 어쩌면 숫자일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휴먼들이 쓰는 공용어를 쓰지만 이런 종류의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꽈앙!

 마침내 휴먼들이 기를 쓰고 막아내던 문짝이 가공할 오르그들의 근력으로 인해 안쪽으로 활짝 밀려들어 갔다.

 “죽여! 못 들어오게 막으란 말이야!”

 안쪽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룬 일행의 눈은 바쁘게 지하 1층의 전경을 쓸어보고 있는 로우취의 눈을 통해 보내오는 영상으로 향했다.

 지하 1층에는 약 20명의 휴먼이 대기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문을 막던 몇 명이 문과 벽에 끼어 압사를 당해 입구 쪽 바닥은 피로 흥건했지만 다행히 문 때문에 처참한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슈슈슈슉!

 파동 건으로부터 파동탄이 쉴 새 없이 날아갔다. 안쪽으로 들어오던 오르그 몇이 뒤로 밀리며 머리통 부위가 날아갔지만 그것은 오르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유용한 방어 수단이 되어 버렸다.

 방어구를 착용한 오르그 사체들은 다른 전사들의 손에 들려 파동탄을 막아 냈고, 그 충격은 줄지어 앞 전사의 등에 손을 뻗은 뒤의 전사들이 감당했다.

 “아아앗! 죽으란 말이야!”

 이런 전투 상황이 처음이라 놀란 탓인지 아니면 공포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동자가 위로 돌아간 몇 명의 휴먼들이 파동 건의 총구를 엉망으로 휘두르며 발악적으로 파동탄을 난사했다. 그런 분위기는 그대로 전염이 되어 곧 파동탄의 목표가 분산되기 시작했다.

 “진정해! 드러난 부분만 노리란 말이야!”

 서둘러 뒤쪽에 있는 한 중년 사내가 지시를 내렸지만 사체를 방패로 조금씩 안으로 들어온 오르그들은 민첩하게 굴러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뭉쳐 있는 휴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악!”

 가장 앞에 서서 파동 건을 쏘던 젊은 친구가 오르그가 던진 도끼에 머리가 부서지며 첫 희생자가 되었다.

 “죽어랏!”

 눈에 핏발이 선 휴먼들이 파동탄을 난사했지만 오르그 전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온 수십의 오르그들은 앞장선 동료들을 방패 삼아 민첩하게 움직이며 도끼를 던졌고, 열 명가량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이놈들!”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지휘를 하던 휴먼 하나가 시퍼렇게 발광하는 광선검을 빼들어 오르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싸악!

 “우억! 쿼억!”

 도끼를 투척한 다음 등에 맨 대검을 뽑으려던 오르그 하나의 목이 반쯤 베어졌다.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쓰러졌다.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휴먼들 중 넷이  파동건을 버리고 광선검을 뽑아 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미 살기를 포기한 듯 강렬한 눈빛으로 오르그들을 향해 광선검을 휘두르는 휴먼들 중 일부는 검은색 슈트를 착용하고 있어 전투 요원으로 보였다.

 나머지 휴먼들은 제대로 된 슈트도 착용하지 못한 채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둥글게 서로의 등을 맞대고 파동 건을 쏘거나 혹은 죽은 동료의 시신에서 광선검의 손잡이 부분을 떼어 내서 어떻게든 작동시키려고 했다.

 “여긴 끝난 것 같은데.”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층의 영상으로 향했다. 다른 곳 역시 지하 1층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강력한 도끼질로 철문을 부수고 난입하여 동료의 사체를 방패로 삼아 휴먼들을 상대하는 오르그들의 전술은 무식하지만 효과적이어서 기세와 인원수에 눌린 휴먼들은 무자비하게 죽어가고 있었다.

 “어! 저기요, 대장!”

 태범의 놀란 소리를 듣고 그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가장 하단에 있는 지하 5층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어.”

 태연의 말대로 그곳에는 다른 층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하 5층에는 서른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반 정도는 파동 건을, 나머지 반은 도검을 소지하고 있었다. 문 쪽을 향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 파동 건을 쏘는 그들의 복색으로 보아 작업 요원으로 보였다.

 5층으로 난입한 오르그들의 숫자는 스물 정도로 다른 층과 마찬가지로 무식하게 자신의 몸을 방패로 사용하며 실내로 들어섰다. 위층을 정리한 또 다른 오르그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쏴!”

 검은색 슈트에 횃불이 새겨진 헬멧을 쓴 휴먼이 명령을 내렸다. 파동 건을 든 이들이 일제히 파동탄을 쏘자 오르그들의 단단한 동체가 주르르 뒤로 밀렸지만 뒤를 받친 동료들로 인해 이내 앞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머리만 노려!”

 당장에 앞장선 오르그들의 머리통이 날아갔지만 뒤의 오르그들은 선두의 오르그 사체를 방패로 삼아 안으로 들어왔다.

 “산개해서 쏴!”

 새로운 명령에 급하게 거리를 벌린 사수들이 파동 건을 쏘았지만 이미 오르그들은 모두가 안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놈들은 투척용으로 허리에 매달고 있던 두 개의 도끼들을 던졌고 이내 휴먼들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에 있는 자들은 자신의 무기를 휘둘로 도끼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강력한 근력으로 날린 도끼를 쳐낼 정도의 빠른 눈과 강한 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생산 시설을 담당하는 작업 요원이 아니라 전투 요원이 분명했다.

 금방 난전이 벌어졌다. 오르그들은 나머지 휴먼들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슈트를 착용한 휴먼들 역시 피하지 않았다.

 까앙! 깡!

 무기와 무기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실내를 가득 채울 때 중간에서 오르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세 명의 검사가 오르그들과의 전투를 이끌고 있었는데 그들의 검에서는 하룬의 그것보다 더 길고 두꺼운 시퍼런 검기가 솟아올라 있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얼굴의 검사와 장대한 체구의 검사의 검기는 손바닥 길이 정도는 되었고 지체가 긴 잘생긴 검사는 길이는 좀 짧지만 색도 선명하고 두께는 굵었다.

 거기에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검신에 기를 주입할 수 있는 정도의 검사도 열이 넘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광선검의 위력을 빌려 오르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호오!”

 “익스퍼트가 확실해요.”

 벨과 태연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현실에서 이런 정도의 검기를 뽑아내고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하룬 역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보다 윗줄이다!’

 검술은 어떨지 몰라도 자신은 몸과 발이 빠른 강점을 가지고 있기에 싸운다면 저들에 밀리지는 않겠지만, 검기의 길이나 두께는 그들의 것이 월등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현실에서는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을 휴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 하룬은 큰 충격에 빠졌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시퍼런 선을 그려내는 그들의 검기는 광선검에도 깊이 베이지 않던 오르그들의 가죽은 물론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이 베고 있었다.

 “힘을 내라!”

 우두머리로 생각되는 젊은 검사의 외침에 휴먼들의 몸이 빨라졌다. 수가 많을 때는 오직 힘을 기반으로 한 오르그들의 강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내야 했지만 세 검사의 활약으로 인해 절반 정도가 난도질당하자 휴먼들은 여유를 찾았다.

 빠르게 움직이며 무식하고 정직한 무기의 궤적을 파고든 휴먼들의 무기는 오르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어설픈 방어구 사이를 어김없이 베었다.

 “꾸워억!”

 이제 휴먼들 대신 오르그들의 비명과 신음 소리로 꽉 찬 실내지만 오르그들은 휴먼들을 향해 눈에서 끔찍한 흉광을 토해내며 달려들었다.

 “죽여라!”

 이제 휴먼들의 숫자가 더 많아지자 세 검사의 검에서는 거짓말처럼 검기가 사라졌다.

 이제 오르그들은 두셋의 합공을 받아 죽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오르그들은 악착같이 휴먼들에게 무기를 휘둘렀지만 기를 머금은 날은 그들의 방어구를 베어 내고 그들의 살과 뼈를 갈랐다.

 “다른 곳 상황은 어때, 타밀?”

 문득 날카로운 눈매의 젊은 검사가 한쪽 벽을 향해 소리쳤다. 세 검사 중 가장 나이가 많아 서른 정도로 보이는 그는 냉랭한 얼굴과 어울리는 차가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멸 직전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다른 층에 있던 오르그들이 그리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벽 한쪽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젊은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탈출구는 어떻게 됐나?”

 “산 건너편까지 뚫린 지하 통로에 마그네틱 카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물건은?”

 “시간이 없어 완제품 1톤만 챙겼습니다.”

 “놈들의 목표는?”

 “완전한 새미롱으로 추정됩니다. 놈들의 지휘부가 내린 명령으로 판단되며 오르그들의 수뇌부 중 제사장으로 추측되는 오르그가 새미롱을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오르그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좋아. 다급한 상황이니 본부와의 연락은 이곳을 벗어나고 하기로 하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다들 모여!”

 이미 지하 5층으로 난입한 오르그들을 완전히 해치운 휴먼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누가 마지만 처리를 맡을 테냐?”

 그의 물음에 스물 정도로 보이는 젊은 검사 둘은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중 매끈한 얼굴에 긴 팔다리를 가진 마른 체형의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팀장님, 우리 조가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조가 하겠습니다.”

 태력처럼 장대한 몸집을 가진 청년도 바로 그 뒤를 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남겠다고 나섰지만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파토 조와 마림 조 그리고 경비조는 물론 작업부들까지 모두 장렬하게 산화한 마당이니 더 이상은 공을 다툴 필요가 없다. 벼리와 해루! 난 먼저 내려가 마늘 팀장을 챙길 테니 둘이 빨리 결정해서 신속하게 행동해라.”

 한 팀장이라는 휴먼은 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차가운 지시를 내리고 바닥 중앙에 있는 구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작업 요원으로 보이는 열 명 정도가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다른 곳의 영상을 내리고 지하 5층의 영상을 풀 스크린으로 채운 터라 줌을 통해 그들의 얼굴이 자세하게 보였다.

 ‘같은 조직원인 것이 확실한데 서로를 쳐다보는 표정이나 눈빛을 보니 전혀 아니네.’

 서로에게 먼저 가기를 양보하는 둘의 시선에는 뜨거운 불길이 솟았는데 벼리에게서는 창피함과 분노가, 그리고 해루에게서는 비웃음이 진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벼리와 해루는 하룬과 엇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도대체 저 나이에 저 정도의 검술 실력을 어디에서 익힌 걸까?’

 정말 궁금했다. 지금까지 막연하지만 현실에서 검술 실력으로는 적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하룬이기에 충격도 컸다. 검기로 보건대 자신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두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다.

 “오빠, 저 둘이 경쟁자 같은데.”

 벨도 하룬이 느낀 것을 동일하게 느꼈나보다. 하룬이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해루라는 청년이 입을 열었다.

 “흐흐흐! 좋아! 우리 조가 먼저 가도록 하지. 우리 조야 공을 세워 상쇄할 과오가 없으니까. 하지만 한 팀장이나 마늘 팀장이 이것을 공적으로 쳐 줄지 모르겠군. 어쨌든 이곳에 대한 흔적을 오르그들에게 남긴 것은 너희들 수송조가 했을 테니까.”

 해루라는 청년은 적의를 온몸으로 드러내며 상대를 비웃었다.

 “으드득! 잘 알고 있으니까 입 닥쳐!”

 “흐흐흐! 죽지 말고 잘 버텨. 네놈의 천한 목숨은 내가 언제고 잘라줄 테니까.”

 해루는 비릿한 웃음과 함께 아까 팀장이 사라진 바닥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바닥 한 곳에 손잡이가 있었는데 그것을 들어 올리자 아래로 내려가는 데 이용할 긴 봉이 드러났다. 그는 그 봉을 타고 아래로 사라졌다.

 해루와 그 수하로 짐작되는 다섯이 봉을 잡고 아래로 사라지자 벼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참았던 분노가 새삼스레 치밀어 오른 듯했다.

 “개새끼!”

 당장이라도 사라진 해루를 통째로 씹어 먹을 것 같은 기세로 욕설을 내뱉은 벼리는 시선을 수하들에게 돌렸다.

 “너희들도 가! 관리조 애들과 함께 새미롱 완제품과 내 캡슐을 제대로 실어 놔라! 난 여기서 오르그들을 적당히 상대하다가 내려가마. 5분이면 되니 서둘러!”

 “알겠습니다, 조장! 자장을 활성화시켜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벼리는 생각해 놓은 것이 있었던 듯 사람들을 다 내려보내고 계단 쪽 벽을 더듬어 어딘가를 누르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쿠웅!

 굉음과 함께 두꺼운 벽이 천장으로부터 내려왔다. 벽은 순식간에 부서진 출입문을 대신했다.

 “이건 몰랐을 거다.”

 역시 생각한 것이 있어 자신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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