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조직 정비 (142/278)

《조직 정비》

 그날 저녁을 먹겠다고 식당을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워낙 푸짐하게 먹었거니와 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안주인들은 짐 정리를 하느라 바빴고, 완전히 긴장을 푼 아이들과 노인들은 벌써 곯아떨어지기도 했다.

 그 시각 하룬은 쏘우와 따로 시간을 가졌다.

 “난 앞으로 여기서 무슨 일을 하면 될까?”

 대충 기지를 둘러본 쏘우는 마음껏 연구를 하고 만들고 싶은 기계들을 만들 수 있는 작업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아마도 하룬이 자신을 부른 것은 뭔가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형님이 코원 유니온 과학국의 실세인 소가家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놀라지 않았다.

 “흐음, 그떄 들은 건가? 하긴 그 영감 목소리가 여간 컸어야지.”

 이미 하룬이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는 쏘우였다.

 “네, 황 박사님과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론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미안하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주게. 나 때문이 아니라 가문이나 나랑 연관된 사람들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말이지.”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룬이 자신의 비밀을 안다는 것을 알게 된 쏘우는 하는 말과는 달리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뭐, 이곳에서야 그리 큰 비밀은 아닐 수도 있네. 이 기지에 있는 이들 중에 유니온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행여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내 가문으로서는 곤란을 겪을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그건 꼭 지켜 드리지요. 그런데 알고 싶은것이 있습니다.”

 “뭔가?”

 이제 돌풍 용병대의 일원이 되었으니 대장인 하룬이 궁금해 하는 것이 있으면 웬만하면 다 알려 줄 생각이었다. 더구나 돌풍 용병대의 본거지인 이 기지는 자신이 죽음을 위장해서 가문과 과학국을 벗어나 처음 대하는 최고 시설을 갖춘 곳이다.

 “그때 언뜻 들은 바로는 형님이 무슨 연구로 인해 위험한 세력과 척을 지게 된 것 같은데, 맞나요?”

 “음, 그것까지 들었던가? 맞네. 새로운 개념의 캡슐 제작 때문이었네.”

 “그들의 정체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걸 대장이 왜?”

 쏘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그간 지켜본 것으로는 하룬은 유니온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유니온의 그 어떤 세력과도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혹시 들이 GG, 즉 글로리 가이아라고 부르는 조직입니까?”

 “허억! 그, 그걸 대장이 어떻게?”

 쏘우는 대경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룬이 어떻게 그 조직을 아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빅 유니온들을 암중에서 조종하는 두 개의 세력이 있으며 그 한 축이 글로리 가이아라는 조직이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

 쏘우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룬을 향해 의혹에 가득 찬 시선을 던지고만 있었다.

 “아마 코원 유니온 과학국의 실세인 소가家는 HG라고 불리는 조직에 속해 있거나 혹은 손을 잡고 있겠지요? 혹시 형님도 HG의 일원인 겁니까?”

 “그…… 허어, 참! 미치겠군! 어떻게 대장이 그런 극비의 정보를 알고 있는 거야?”

 쏘우는 대답 대신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얼굴로 외려 하룬에게 물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제 양부는 청일 박사입니다.”

 “흐음.”

 하룬의 말에 쏘우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리더니 잠시 후 안정을 되찾았다. 청일 박사 역시 한때는 천재로 불리던 과학자였던 것이다. 그는 두 조직이 힘겨루기를 한창 하던 임페리얼 컴패니의 수석 연구원 이기도 했다.

 “그래. 청일 박사의 아들이라면 알 수도 있겠군. 두 단체는 경쟁적으로 뛰어난 과학자들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하니까. 맞아! 우리 가문은 대대로 휴먼 가드라고 불리는 조직과 손을 잡아 왔네. 휴먼 가드에서는 실전된 과학 지식들과 기술들을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우리 가문에 제공해 주었지. 대신 우리 가문은 휴먼 가드가 원하는 일에 영향력을 발휘해 주었고.”

 쏘우는 하룬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입을 열었다.

 “휴먼 가드와 글로리 가이아라는 단체의 실체와 추구하는 바를 혹시 아십니까?”

 “내가 알기론 두 단체 모두 전 지구적인 영향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들의 영향력이 유니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과 그 구성원들이 점조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암중에서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는 것 정도뿐이네.”

 “그렇군요.”

 예상과는 달리 쏘우가 아는 사실이 그렇게 많지 않아 좀 실망이었다.

 “형님이 왜 죽은 것으로 위장해야 했는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 황 박사와의 대화를 들어 보니 두 단체의 행사와 밀적합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물어본 것이다. 그 질문에 쏘우는 잠시 얼굴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왜 그게 궁금한가? 혹시 내가 가문에 돌풍 용병대와 이 기지에 대한 비밀을 알릴까 두려운 것인가?”

 “그건 아닙니다. 형님도 이제 돌풍 용병대원이 되었는데 설마 그렇게까지 하려고요. 게다가 우리 용병대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 어차피 조금씩 알려질 텐데요. 게다가 형님은 이미 죽은 분으로 되어 있고, 가문에서도 죽은 걸로 된 분이잖습니까. 전 단지 그 일이 두 단체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궁금한 것뿐입니다.”

 쏘우는 잠시 고민을 한 뒤 하룬을 향해 형형한 분빛을 던졌다.

 “좋아, 대장이 궁금해 하니 말을 해 주지.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

 하룬의 말에 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대장을 믿고 말을 하지. 대장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한때는 코원 과학국에서 촉망받는 연구원이었네.”

 쏘우는 민망했는지 자신이 천재로 불렸던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코원 유니온 산하 기관인 과학국은 지금의 유니온 체제글 가능하게 만들어 준 각종 시설물들과 정밀 기기들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연구하는 일종의 연구소라네. 혹시 대장이 모를까 싶어 말하지만, 지금의 유니온들은 노블들이 권력을 추구하는 사이에 세 에이션트 컴퓨터들이 휴먼들에게 전한 수많은 과학 지식들과 기술들을 잃어버렸네. 거기에 더해 유니온 간의 제한적 직접 교류를 제외한 다양한 교류가 끊어지면서 폐쇄적으로 지내는 사이 유니온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지식과 기술의 실전 현상은 심해지고, 심지어는 권력 다툼과 국지전으로 인해 세 에이션트 컴퓨터들까지 그 능력의 태반을 잃어버리고 말았네.”

 그 정도까지는 하룬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몰랐던 것도 있었다.

 “직접 교류요?”

 “그래. 방대한 영토를 지닌 것도 아닌 터라 유니온 정부 차원의 최소한의 교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 휴먼력 초기에 에이션트 컴퓨터들이 만든 타이탄 워커들이 건설한 지하 도로는 아직도 건재하거든. 그 도로를 통해 각 유니온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물물교환 형태로 주고받아 온 거지. 그런 교류가 없다면 그 어떤 유니온도 지금과 같이 유지해 올 수 없었을 거야.”

 그런 사실은 몰랐다. 하룬은 유니온에서 공표한 대로 유니온 간에는 어떤 교류도 없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런 제한된 교류마저 없다면 유니온의 많은 부분은 정삭적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모르고 있었군. 하긴 이게 다 유니온을 장악한 원로원이 다른 유니온으로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정보를 통제한 탓이지. 나도 한때는 대장처럼 알고 있었네.”

 쏘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세습 체제가 굳어진 신분제와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인해 주민들 대부분이 희망을 잃고 사는데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노블들의 우치는 불안정해지겠지. 또한 유니온 체제 역시 불안해질 테고, 현재 살고 있는 유니온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제를 갖춘 곳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고 교류가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파급력은 무척 클 테니까 통제를 한거지.”

 그랬다. 하다못해 비욘드으 ㅣ세상에서조차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한 곳이 있다면 밤을 도와서라도 영지를 탈출해서 그곳으로 가려고 하니 말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행동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서 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누군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유니온에서 살기를 마다하겠는가.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 내 이야기를 해 주지. 난 가문의 후광과 나름 명석한 머리로 인해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제공되지 않는 지식들과 기술들을 가문의 수많은 도서륻과 어른들을 통해 어릴 때부터 배워 왔네. 노블가家의 영재교육을 받은 터라 우민화愚民化의 일환으로 그 수준이 바닥까지 내려간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무척 우스웠지. 그래서 언제나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가문에서는 후계자였기에 내게 낯 뜨거운 찬사들을 했지. 하지만 난 우리 가문의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정치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에이션트 컴퓨터들이 초창기 휴먼들에게 전했다가 실전된 수많은 지식들과 기술들을 복원하는 것이었지. 그중에서도 무기류와 캡슐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 친구나 대화 상대가 없던 내가 가상현실 게임은 그나마 무척 좋아해 왔거든. 가문의 모든 역량이 더해졌기에 난 나름 꽤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 과학국과 우리 가문의 위상 역시 올라갔고. 하지만 내게도 불행한 일이 다가왔어.”

 목이 마른지 곁에 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신 쏘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특정한 분야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타입이었네. 실전된 과학 지식들과 기술들을 복원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당연할 수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 가상현실 게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네. 물론 전혀 그 이론적 기반을 알 수 없는 프로그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게임 속 세상을 현실처럼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캡슐 쪽에 관심을 가졌지. 난 게임을 하면서 뇌파만이 아닌 현실의 육체도 게임 속 아바타와 동일한 자극과 반응을 경험하면 어떻게 될지 관심을 가졌어.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현실의 육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게임은 단순히 게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나 건가 유지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연구였네.”

 그 동기에 있어서는 양부인 청일 박사의 경우도 동일했다.

 “캡슐 연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페리얼 컴패니의 연구소를 들락거리게 되었고, 그곳 연구원들과도 교류를 하게 되었네. 거기서 대장의 양부 청일 박사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캡슐을 만들려면 몇 가지 핵심적인 기술이 필요했어. 현실의 육체가 게임과 동일한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전신 신경조직을 아바타와 일체화 시키는 기술이었지. 그곳 연구소에는 그것에 관한 극비 자료가 있었네. 욕심이 앞선 나는 그 기밀 자료를 빼돌리려고 했고 그게 문제가 된 거지.”

 자신이 꿈꾸던 기술을 발견한 쏘우가 자신과 가문의 힘을 동원해 그것들 뺴돌리려고 했고 그게 연구소 측에 발각된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어. 우리 가문의 힘이라면 사과와 연구소의 출입금지 정도로 끝날 줄 알았는데, 그 회사를 놓고 대립을 하던 글로리 가이아가 내 문제를 기화로 가문의 배경인 휴먼 가드를 압박했네. 일이 커져 과학국을 장악한 우리 가문까지 미치게 되자 난 가문의 어른들이 의논한 대로 사고사事故死를 가장하기로 한 거지. 비록 그때까지 가문에 공헌한 것도 없었고 가문에 대한 애착도 없었지만, 나 때문에 가문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어른들의 권유를 거부 할 수가 없었던 거지. 그 와중에 글로리 가이아와 휴먼 가드의 존재와 그 힘에 대해 알게 되었어.”

 “그랬군요.”

 “놈들은 사 원로 가문이 장악한 군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영역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네. 자신이 그들의 하수인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들에게 조종당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 들었네. 물론 휴먼 가드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지. 가문의 어른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들의 힘이 너무 엄청나 양쪽에 몸을 담지 않으면 노블의 신분을 유지할 수 ㅇ벗을 정도라고 했네. 작은 유니온들과는 달리 빅 유니온들이 이렇게 고립되어 폐쇄적인 신분 사회를 유지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들의 영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네.”

 하룬은 쏘우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어야 전지구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행사에 관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적으로 생각하는 조직이 그런 엄청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니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대장이 왜 내 사연을 물었는지, 그 두 조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중하게 판단해서 행동하길 바라네. 가문에서 나온 후 목표를 잃고 방황하다 겨우 따듯한 가족들을 가지게 된 나와 마찬가지로 힘들게 살오다가 따듯한 집과 동료들을 가지게 된 이들을 생각해 주게.”

 쏘우의 우려가 가득한 눈길에 하룬은 따듯한 미소로 받았다.

 “걱정 마세요, 형님. 우리 돌풍 용병대가 이 험한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먼저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 과연 대장일세. 모름지기 단체의 수장이라면 여러가지 변수를 모두 알고 있어야지. 그런 사실을 대장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난 자네가 대장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부디 신중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 주게. 이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대장을 도와 이곳을 살맛 나는 곳으로 만들어 볼 셈이니까.”

 “고맙습니다, 형님.”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겠네.”

 “그러세요. 푹 쉬시고 내일부터는 대원들과 주민들을 위해 형님의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나. 이젠 이곳이 내 집이고 이곳의 사람들이 내 가족인걸. 살아오며 뭔가 만들고 연구하는 것이 아닌 대상에 이렇게 마음이 뛰기는 처음이야.”

 활짝 웃으며 방을 나가는 쏘우의 말과 태도에서는 진심이 여실하게 묻어 나왔다. 그의 말과 태도에 하룬은 자긍심과 함께 자신이 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옳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대원들 역시 조금씩 이유는 다르겠지만 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곘단ㄴ 생각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시작은 불순한 의도로 점철이 되었지만 어쩄건 지금의 자신은 이전의 그 나약하고 자폐적 성향을 가진 하룬이 아니다. 빅 유니온들을 암중에서 조종하는 거대한 조직이 두 개나 되고 그 속에 얼마나 많은 강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힘을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불합리한 것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복수를 할 수는 있을까?’

 그 생각을 하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막연하게 강력한 조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유니온을 장악한 노블 가문에서까지 두려워 할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냥 당하고 마냥 참을 수는 없었다. 자신에게 힘이 생겨서가 아니다. 부모도 모르고 태어나 대부분 제대로 된 사랑도 받지 못하고 성장해서 바닥 인생이 되기 십상이었던 인공 수정체들을 실험체로 여기는 무리다. 최소한 실험체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실수인지를 알게는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먼 가드라는 조직을 알아봐야 하는 걸까?’

 그들과 힘을 합치면 어떨까?

 하룬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비록 자신에게 이제 많은 동료들이 생겼고 든든한 집과 뛰어난 지능을 가진 벨과 아리가 있다지만 그런 대조직과 뭔가를 해 보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와 목적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과 조직체계에 대해서는 알아야 해.’

 그래야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벨에게 준 양부의 태블릿 PC에는 어느 정도 답이 있을 것이다.

 ‘해 보자! 태어난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날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실험체로 이용한 놈들을 가만둘 수는 없지.’

 하룬은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다음 날, 벨과 아리를 대동한 하룬은 아침 일찍 대원들과 영흥 마을의 원로 다섯 명을 소회의실로 모이게 했다.

 “잘들 쉬셨습니까?”

 “허허! 아주 푹 잤습니다. 술까지 먹은 터라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소.”

 “잘 쉬었습니다. 대장도 잘 쉬었나요?”

 하룬의 인사에 대원들이 기분 좋은 얼굴로 받았다.

 “오늘은 우리 용병대의 조직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룬의 말에 잠시 흐트러졌던 분위기가 다시 숙연해졌다. 이제 돌풍 용병대라는 이름에 속하게 된모두에게 무척 중요한 이야기인 것이다.

 “벨, 조직도를 설명해 줘.”

 “네, 오빠!”

 벨은 벽에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우고 조직도를 올렸다.

 “돌풍 용병대는 상행 호위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의뢰를 수행하고 기지의 주민은 그 뒤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곳 기지는 우암 촌장님이 맡게 되며 직위는 소장으로 호칭하면 됩니다.”

 “아니! 그런 중책은 맡을 수가 없소. 그리고 이제는 마으도 없는데 무슨 촌장이오.”

 당장 촌장이 손사래를 쳤지만 벨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이에요, 어르신. 지금은 임시 상황이라 그걸 맡으셔야 합니다. 나중에 적당한 분이 나오면 그분에게 넘기시면 되니 그동안은 촌장님이 수고를 해 주셔야 합니다.”

 귀엽게만 보이던 벨이지만 눈에 힘을 주고 말을 하니 쉡게 대할 수 없는 포스가 흘러나왔다. 임시 직함이라는 소리에 촌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쩄거나 이주한 주민의 대표인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리라는 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단지 로수가 그것을 맡기를 바랐을 뿐이다.

 “돌풍 용병대의 경우 지휘부가 잇어 저와 아리 언니, 혜련 언니와 황 박사님은 주민들 중 적당한 사람들을 뽑아 대장의 업무를 보좌하게 됩니다. 태룡을 비롯한 사남매는 대장의 친위조로서 호위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와는 별도로 세 개의 무력조와 한 개의 연구조로 재편성됩니다. 로수 대원과 철웅 대원 그리고 대산 대원이 각 열다섯에서 스무 명 사이로 구성된 무력조들의 조장으로 전투와 의뢰를 직접적으로 수행하게 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일단 손재주가 뛰어나고 창의력과 이해력이 좋은 열 명 전후의 대원들로 구성될 연구조는 쏘우 대원이 조장으로, 우리 용병단이 필요로 하는 각종 물품이나 무기 등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등의 일을 하게됩니다.”

 벨은 각 대의 대장과 대원들을 일일이 호명했다, 화합을 위해 출신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섞었다. 누가 들어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인선이었다.

 “돌풍 기지의 소장께서는 세 분에게 다섯 분 사이로 집행부를 만드시고, 그 집행부가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은 주민들이 빨리 이 기지 행활에 정착하게 ㅏㄴ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교육을 비롯해서 자급자족에 필효한 각종 일에 정당한 주민을 배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다섯 가족에 한 명씩 대표를 뽑아 제안할 것이나 필요한 물품에 대한 사항을 지휘부에 올리고 지휘부의 지시나 안내 사항을 전달하게 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 사항에 대해서는 오늘 안에 그 결정과 인선이 나와야 합니다.”

 “알겠소.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이름을 부르시면 됩니다, 소장님.”

 “아니지. 그래도 조직이라면 그 직위에 따르느 ㄴ책임이 있기 마련인데 이름으로 불러서는 위계질서가 잡히질 않아요. 아무리 나이가 어리더라도 호칭과 함께 예의를 지켜야 조직이 단단해지는 거라오. 아! 그래, 참모라고 호칭하면 되겠군. 벨 참모!”

 벨이나 아리는 참모라는 이름과 그 의미가 마음에 드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벨 참모, 왜 내 이름은 빠진 거죠?”

 손을 들고 말을 한 대원은 레이스였다. 그녀를 따라 나인도 엉거주춤 손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조직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두 분은 지금은 정식으로 출범할 수 없는 특수조에 들어 있습니다. 차후 비슷한 능력을 가진 분들을 영입하게 되면 특수조를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특수조는 당분간 지휘부에 포합되며 대장님이 직접 지휘를 하게 될 겁니다.”

 그녀들이 특히안 이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들 익히 알고 있었다.

 “흠, 좋은 생각이군.”

 황 박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특수 능력자들을 활용하면 전투력이 배가 될 거라는 것을 그 역시 동의하고 있었다. 

 그떄 하룬이 입을 열었다.

 “당분간 우리는 의뢰를 맡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은 기지를 안정시키고 대원들이 가진 기량을 높일 생각입니다. 참모들은 기지에 비치된 식량과 각종 물품의 재고를 조사하고 필요한 물품의 리스트를 작성해 주십시오. 빠른 시간 내에 유니온에 들러 필요할 물건들을 구해 올 생각입니다. 무력조들은 조장과 함께 검술을 비롯해서 자신에게 맞는 무술을 익혀 전투력을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연구조는 각 조장들과 지휘부 그리고 기지 집행부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제작해서 보급해 주십시오. 기지 집행부는 주민들이 빠른 시간 내에 기지 생활에 적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각자 해야 할 일이 정해지자 대원들의 눈빛이 강해졌다. 이제야 조직에 들어온 실감이 나는 것이다.

 “언제까지 활동을 멈출 생각입니까, 대장?”

 참모인 황 박사가 이제는 존대를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세 조장이 검기를 쓰기 시작하고 대원들이 단독으로 오르그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까지 입니다.”

 “흐음, 그럼 우리 무력조들이 애를 많이 써야겠군.”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무력조의 조장으로 임명된 로수와 철움은 살기 위해서 어차피 할 수련인데 돈을 받고 하는 것이니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용병대의 활동이 자신들의 수련 정도에 따라 결정되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력조 대원들은 저마다 주먹을 힘껏 쥐며 수련 의지를 불태웠다.

 “나 역시 시간이 나면 무력조의 수련을 돕겠습니다.”

 하룬의 말에 철웅과 로수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제 막 벽을 깨뜨리고 있는 두 사람에게 검기를 이미 사용하는 하룬의 존재는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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