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하르크 (135/278)

《하르크》

 용광로 마을에서의 이틀은 모두에게 큰 의미를 주었다.

 하룬과 태가사남매는 수련에 푹 빠졌다. 비록 만 하루 정도에 불과한 수련 시간이지만 그 성과는 적지 않았다.

 하룬은 이제 검술만 가지고 하르크와 단독으로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박살에 기를 주입해 검날을 만들고도 30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기를 다루는 데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태가사남매 역시 하루에 불과한 수련이지만 실전을 겪은 터라 그 이해도가 높아졌고, 정교한 무기술이 가능해졌다.

 황 박사는 촌장을 비롯한 원로들과 교분을 나누며 용광로 시설을 돌아보기에 여념이 없었고, 쏘우는 용광로 마을 특산인 열연 강판과 압연 강판 등 각종 강판과 특수 금속을 사용한 합금 판들을 구경하고 다녔다.

 로수와 철웅은 이번에 하르크를 상대한 후 급속하게 친해졌다. 그 때문에 양측이 매우 우호적으로 변했고, 같이 이세 초대를 즐겼기 때문에 더욱 친해졌다.

 헤니와 레이스 그리고 나인은 일부러 상대하기 어려운 인상의 보련을 찾아가 안면을 텄고, 그녀들은 이내 수다를 떨며 휴식을 즐겼다.

 용광로 마을이 오랜만에 열었다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하룬 일행의 합류였다. 로수와 철웅을 비롯한 외부인들로 인해 축제에 나온 아가씨들은 눈을 빛냈고 강인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위한 이세 초대는 하룻밤에 두세 번이나 이어질 정도로 성황을 거두었다.

 “꼭 다시 오게.”

 “알겠습니다. 이 주파수가 저희 돌풍 용병대 전용 주파수이니 언제라도 연란 주십시오.”

 이가섭 원로는 주파수가 쓰인 종이를 들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마을 안으로 들인 손님들이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활력에 차서 그들과 어울렸고, 이세 초대로 인해 마을 전체가 새로운 힘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축제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다시금 하나로 합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와! 이건 마을로 가져간 것보다 훨씬 더 많은데.”

 사용은 라나두마다 양껏 실은 선물들을 보며 놀라워했다. 선물은 개인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선사한 것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서 준 것들이 더욱 많았다.

 돌풍 용병대의 자재와 무기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마을 주민들이 생각한 쏘우의 호기심 때문에 받은 선물들이 꽤 많았다. 각종 후판과 박판들이 크기별로 분류되어 라나두 두 마리를 연결해서 그 위에 기판을 대고 실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암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아 아즈만이 부탁한 것들을 구하지 못하던 하룬은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왔던 것이다.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지기 힘들 정도여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사이언스 마을로 가는 여정은 이전과 다름없었다. 하루 열 시간의 빠른 행군과 하룬의 정확한 정찰로 인해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용광로 마을을 떠난 지 나흘째가 되던 날 드디어 일이 생겼다.

 일행에 앞서 정찰을 핑계로 메신저 스킬을 수련하던 하룬은 매일 몇 번씩이나 통신을 하는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오빠!

 바로 벨이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나자마자 아리가 추진하던 사이보그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물론 매일 통신을 하긴 하지만 이 시간에는 한 적이 없어 하루는 반가우면서도 의아해했다.

 “벨, 무슨 일이야?”

 -위성 정찰 결과를 알려주려고.

 “무슨 위험 요소라도 있는 거야?”

 정찰 사이보그의 눈으로 본 전방에는 위험 요소가 없었다.

 ‘혹시?’

 이 근처에서 빈번하게 생기는 자기 돌풍이 조금 걱정되어 호크의 정찰 반경을 전방 3킬로미터로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꽤 먼 거리에 위험한 요소가 잠복해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빠가 가는 노정에 하르크들이 있어. 원래 오르그 한 무리를 추적하던 놈들인데 그대로 가면 반드시 만나게 될 거야.

 “우회할 길은 있어?”

 -오빠도 알다시피 하르크는 3킬로미터 밖에서도 휴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더구나 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먼과 라나두들이 몰려 있으니 그보다 더 멀리에서도 그 흔적을 알 수 있을 거야. 우회하는 길은 동쪽의 늪지를 통과하는 것과 서쪽으로 멀리 산을 끼고 도는 방법인데 이동속도로 보면 사흘은 돌아가야 할 거야.

 벨의 말에 하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늪지는 아직 나도 경험을 못 해봤고, 사흘이나 돌아가야 한다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왕 나왔으니 가는 길이지만 사실 하룬은 한시라도 빨리 기지로 돌아가고 싶었다. 새로이 탄생한 벨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지난번 자신을 습격한 자들이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비밀을 캐보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나 떨어져 있는데?”

 -지금 오빠의 위치에서 약 4킬로미터 정도야. 사이언스 마을과는 약 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점이야.

 “몇 마리나 되는데?”

 -네 마리. 암수컷으로 구성된 한 쌍과 크고 작은 새끼들로 이루어진 일가족이야.

 하룬은 고심했다.

 ‘하필이면 네 마리나 되냐. 그냥 지난번처럼 처리를 할까?’

 하룬은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한 마리를 가지고도 그렇게 많은 부상자가 나왔는데 네 마리라면 절대 그렇게 부딪쳐서는 안 된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잘 들어맞아 의도대로 성공했지만 변수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른다.

 ‘네 마리는 좀 무리인 것 같은데.’

 지난번에 상대한 놈은 무려 이틀이나 자신들을 추적했기에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이 앞에 있는 녀석들은 제대로 배를 채우고 푹 휴식을 취한 상태이니 그때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 근처에 영역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면 사이언스 마을의 원수가 틀림없는데. 좋아! 양부의 유지는 지켜야 하니 어떻게든 상대를 하자.’

 하룬은 어떻게든 상대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고마워, 벨. 네가 아니었으면 곤란할 뻔했다.”

 -헤헤!

 벨은 칭찬받은 것이 좋은 듯 밝게 웃었다.

 -참, 그리고 오빠. 알려줄 게 더 있어. 우리 기지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휴먼 한 무리가 있어.

 “휴먼들이? 확실한 거야?”

 하르크들의 존재에도 변하지 않았던 하룬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응. 아즈만의 분석으로는 90%의 가능성이 있대. 파동건과 광선검으로 무장을 한 열 명의 휴먼이 유니온에서 우리 기지를 향해 곧바로 직진해 오고 있어.

 ‘그놈들이다!’

 벨의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었다.

 “벨, 지난번에 내가 습격받은 것 기억나?”

 -응.

 “오빠 생각에는 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들 같다.”

 -그럴 수도 있겠네. 어쩌지?

 벨이 맞장구를 치는 순간 하룬의 머릿속이 환해졌다. 순간적으로 확신에 가까운 일련의 생각들이 퍼즐처럼 맞아 들어갔던 것이다.

 ‘나인은 분명히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아빠의 전자 다이어리에서 갑자기 기지의 존재를 발견했다고 했지? 그럼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음모?’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 조직은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게임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인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패키지로 이사하게 만든 것도 그들일 것이다.

 ‘분명히 그 미트라라는 여자가 한 말 중에 캡슐이 소멸되었다는 대목이 있었어. 그렇다면 소멸이 아니라 각인이 사라진 것을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렇다는 이야기는 벨이 자신도 모르게 뭔가 신호나 정보를 주기적으로 그들에게 보냈다는 이야기인데…….’

 하지만 아직 의심에 불과하니 벨에게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두어 번 머리를 흔든 하룬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벨, 지금 기지 주변 상황은 어때?”

 -아직 사이보그들을 생산하지 못해 그대로야. 집의 외부는 벼락에 맞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발전기는 이상 없이 가동된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핵심 부품이나 기능에는 이상이 없어. 외관만 벼락으로 인해 시꺼멓게 탔을 뿐이지. 왜, 오빠?

 “그들이 기지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고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룬의 말에 벨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도 아즈만과 상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다시 들려온 벨의 목소리는 하룬에게 희망을 주었다.

 -가능하대. 현재 우리가 쓰는 기지는 외부 기지로, 폐쇄하더라도 상관이 없대.

 “그게 무슨 소리야?”

 하룬이 물어본 것과는 관계없는 대답이었다.

 “외부 기지라니? 그럼 내부 기지도 있다는 거야?”

 -응. 호수 중앙에 있는 섬에 내부 기지가 있대. 그동안은 가동률이 낮아 접근할 수 없는 정보였지만 나 때문에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획득한 정보래. 그 정보에 의하면 이곳 외부 기지는 모종의 이유로 보여주기 위해 건설한 것이고, 사실 진짜 중요한 시설들은 그곳에 다 있다고 해. 안 그래도 오빠에게 알리려고 했대.

 놀라운 사실이었다.

 호수의 중앙에 꽤 큰 섬이 있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다. 그 섬이 진짜 기지였다니.

 ‘흠. 그래서 그렇게 텅 비어 있던 층이 많았던 거구나.’

 사실 기지라고는 했지만 이상한 점들도 있었다. 자장 로드가 막혀 있지 않았다는 것도 그렇고 지하 10층 이하부터는 아무런 시설물도 없이 그저 텅 비어 있었던 것도 이상했다. 그리고 그 정도 규모라면 당연히 더 많은 주거 시설이나 식량 재배 시설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과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 거지?”

 -이틀 반 정도.

 “사이보그 생산은 언제까지 가능한 거야?”

 -오늘 안에 4기, 내일까지는 6기가 더 생산 완료될 거야.

 “좋아. 그럼 이주해. 그리고 기지 전체를 벼락에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

 -그건 가능해. 벼락 대신에 강력한 전류를 사용하면 되니까.

 “아즈만은 어떻게 하지?”

 아즈만은 단순한 슈퍼컴퓨터가 아니었다. 기지 전체에 촉수가 뻗어 있는 일체형 컴퓨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건 내가 할 수 있어. 내부 기지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아즈만의 말대로라면 그곳에는 다양한 재료들과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니까 인공두뇌 부분만 옮겨서 그곳에 이식하면 가능할 거야. 그렇게 하면 두 기지를 모두 관할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다행이네. 그럼 그렇게 해. 어쨌건 그들이 상세하게 관찰을 해도 기지가 완전히 그 기능을 잃은 것처럼 결론을 내리게 만들어야 해.”

 -알았어, 오빠. 걱정하지 마.

 당장 어디로 이주할 수 없으니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라도 해야 했다. 더불어 할 일이 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즈만과 상의해 볼게.

 “좋아. 난 빨리 일을 마치고 돌아갈 테니 부탁해.”

 -몸조심해, 오빠.

 벨의 걱정 어린 당부를 들으니 힘이 솟구쳤다.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벨이 깨어나지 못했을 때 이런 사태가 생겼으면 멀리 떨어진 그로서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새삼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통신을 끊은 하룬은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아직 쉬려면 좀 남았는데?”

 일찍 돌아온 하룬에게 황 박사가 이상한 시선을 던졌다.

 “회의를 좀 해야겠습니다.”

 황 박사는 하룬의 묵직한 목소리에 이상 사태를 눈치 채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약 4킬로미터 전방에 하르크 네 마리로 이루어진 일가족이 있습니다. 우회하는 길은 있지만 놈들은 이미 우리의 체취를 맡은 모양인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중입니다. 어떻게 놈들을 상대할지 허심탄회하게 말들을 해보세요.”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은 대번에 심각하게 굳었지만 안 그런 이들도 있었다. 하룬 덕분에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용이었다.

 “대장, 저번처럼 그렇게 해치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나인이 이능력을 발휘해 하르크의 동작을 멈추었을 때 대장이 숨통을 끊으면 되잖습니까?”

 사용은 그 광경이 무척 인상 깊었는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하지만 하룬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사용이 입을 다물었다.

 “전과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놈은 우리를 이틀 동안이나 추격을 하면서 중간에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무척 지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상대하려고 하는 놈들은 한창 번식기에 있는 성체 두 마리에 크고 작은 새끼들까지 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하룬이 아니었다면 전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그 하르크가 사실은 그리 강한 놈이 아니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것이다.

 “하긴, 전에 상대했던 하르크와 이전번에 상대했던 하르크는 힘 차이가 꽤 났소. 놈이 휘두른 통나무를 맞받아친 우리 전사 여섯 중 셋은 크게 다치지 않았을 정도니까.”

 로수의 증언까지 이어지자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아직 다른 하르크를 상대해 본 적이 없는 해무검관 식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은 비교 대상이 없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하룬은 놈들을 상대할 방안을 의논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는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긴장과 두려움을 고조시킨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 실력으로는 한두 마리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요. 자, 일단 나를 믿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

 하룬은 창백해진 얼굴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인은 로수와 전사들을 지원하고, 레이스는 총사범 쪽을 맡아서 지원해 줘요. 쏘우 아저씨는 나인을 비롯한 사람들을 지키다가 급하다 싶으면 태범과 함께 하르크의 움직임을 파동건으로 둔화시켜 줘요.”

 대답을 들을 시간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린 하룬은 태력으로 하여금 물주머니의 물을 주변에 쏟아붓게 했다. 괴력을 가진 태력이 20킬로그램들이 물주머니 열 개를 주변에 뿌리자 금방 주변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로수 형님과 총사범님은 성체 한 놈씩을 맡아 적당히 상대하다가 상황이 위험해지면 지체하지 말고 물러나 여기로 놈들을 끌어들이세요. 그럼 내가 직접 상대하겠습니다.”

 하룬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물기로 축축하게 젖은 땅이었다. 로수와 철웅은 그 연유를 알지 못했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사들과 사범들을 끌고 앞쪽으로 나갔다.

 그렇게 일련의 준비가 다 끝났을 때 하르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룬이 돌아와 잠시 회의를 하고 짧은 준비를 하는 사이에 4킬로미터를 주파한 것이다. 그 이동속도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이런 한낮에는 거의 움직이는 법이 없는 하르크지만 단단히 배가 고팠는지 한 가족이 몽땅 몰려온 것이다. 다 자란 수컷과 암컷 한 쌍에 덜 자란 수컷 한 마리와 오르그의 몸집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놈이 있었다.

 “허업!”

 키가 5미터에 달하는 다 자란 하르크들의 위용은 보는 것만으로 질렸다. 더구나 그 육중한 몸에도 불구하고 달려오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붉은 눈에는 연방 흉광이 터져 나왔고, 입에서 흐르는 걸쭉한 침과 햇빛에 빛나는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공포감을 주었다.

 성체 두 마리는 거침없이 일행을 향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고, 새끼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타앗!”

 로수는 달려오는 수컷 하르크를 향해 마주 달리며 몸을 날렸다. 그의 대검이 파르스름한 빛에 잠시 휩싸였다. 그 뒤로 전사 여덟이 조립을 해서 만든 대도와 대검을 들고 달려 나갔다.

 싸악!

 크와아앙!

 멈춰 선 하르크가 대지를 뒤흔드는 피어를 질렀다. 로수가 대검을 들고 달려드는 것을 보았지만 무시하고 라나두들이 구성한 원진을 향해 달려들던 하르크의 허벅지 위쪽이 로수의 대검에 베여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단단히 화가 났는지 놈이 지른 피어에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노오옴!”

 드디어 자신의 무기로 하르크의 그 단단한 가죽을 베어 낸 것에 자신감을 얻은 로수가 전사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피어에 대항해 마주 소리를 질렀다.

 로수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전사들이 하르크를 에워쌌다. 무기를 잡은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투기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선대 전사들의 원수를 마주 대한 젊은 전사들의 가슴에는 투지와 독기로 가득 차있었다.

 하르크가 통나무를 반으로 분지른 것 같은 거대한 몽둥이를 빠르게 휘둘렀지만 이미 하르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전사들은 민첩하게 피하며 틈을 노리고 접근했다.

 싸악!

 어느새 놈의 뒤로 돌아간 로수의 검이 놈의 등판에 긴 상처를 만들었다.

 쿠아와앙!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눈에 일렁이는 화염을 담고 있는 하르크가 다시 피어를 내지르며 전사들의 투지를 눌렀지만, 로수는 거기에 주눅 들지 않았다. 빠른 발로 하르크의 주변을 옮겨 다니며 틈을 노렸다.

 피유웅!

 가공할 풍압과 함께 통나무를  휘두르는 하르크의 두 발을 향해 두 전사가 몸을 뒹굴어 접근했다. 힘의 열세가 확연한 마당이니 놈의 공격을 마주하면 손해라는 것을 전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수련을 했는지 그들의 발은 빠르게 움직이며 하르크의 단순한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틈을 노렸다.

 찌직! 찌익!

 두 전사가 가한 회심의 발목 공격은 실패했지만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놈의 단단한 가죽을 예리하게 간 무기의 날로 벨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죽을 상단부분 찢으며 고통을 느끼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대신 하르크의 공격은 피할 수가 없었다. 발목을 공격한 두 전사가 미처 전권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기민한 놈의 공격이 그 둘을 노렸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통나무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자 두 전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공포감에 주춤거리며 물러날 뿐 이전의 그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피햇!”

 전사 여섯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팟!

 하르크가 휘두른 통나무와 여섯 전사의 무기가 묘한 소리와 함께 부딪쳤다. 다행하게도 하르크의 통나무는 두 전사에게까지 닿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어 버렸지만 대신 통가무를 무기로 받은 여섯 전사는 격돌의 충격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놓치고 뒤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노옴!”

 그 순간 로수의 신형이 3미터가 넘게 도약해 하르크의 오른 어깨를 대검으로 베었다. 기가 깃든 검은 어깨 근육을 절반 이상 베어 버렸고 하르크는 그 고통과 분노에 통나무를 놓으며 울부짖었다.

 “정신 차렷!”

 로수는 놈의 어깨를 베며 등을 발로 차 공중에서 두 번 회전을 해서 바닥에 착지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두 전사가 빠르게 몸을 날려 하르크의 전권에서 빠져나갔다. 하르크의 통나무 일격을 받아 내고 날아간 전사들 중 셋이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셋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두 번에 걸친 공격에 전력을 다했던 로수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다행히 몸에 축적한 기를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신 몸은 너무 무거웠다.

 “목표까지 후퇴!”

 명령을 내린 로수는 다시 한 번 전력을 향해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하르크는 이제 누가 위협이 되는지를 알아차렸는지 쓰러진 전사들에게서 눈을 떼고 이글거리는 붉은 눈으로 로수를 노려보았다.

 부웅! 부웅!

 왼손으로 통나무를 휘두르는 것이 조금 어색하지 몇 번 연습을 한 하르크가 로수의 머리를 향해 통나무를 사선으로 휘둘렀다. 비록 지쳤다지만 그 정도의 허술하고 큰 공격에 맞을 로수가 아니었다.

 데구루루!

 잽싸게 몸울 구른 로수의 검이 단단히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하르크의 통나무 같은 발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크아와앙!

 발목의 절반이 베인 하르크는 대지를 뒤흔드는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로수를 찾기 위해 눈알을 돌렸다.

 로수는 목표한 발목 공격이 성공하자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원진을 향해 도망치고 있는 전사들의 뒤를 쫓아 달렸다. 하룬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흥건하게 젖은 곳을 통과해 원진 안으로 들어가자 진력이 빠진 탓에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철웅 역시 사람들의 뒤를 막으며 막 원진을 향해 도망치고 있었다. 왼팔은 덜렁거리는 것이 탈골이 되었거나 어깨뼈가 상한 것 같았고 옆구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를 부축하는 사용과 보련도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르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전사들과는 달리 그들은 하르크를 처음 상대했기에 그 피해도 컸다. 두 사람의 검은 아예 부러져 반도 남아있지 않았고 입가에는 토하다가 만 피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태가사남매가 없었다면 그들은 벌써 죽었을 것이다.

 꽈앙!

 굉음과 함께 암컷 하르크의 통나무와 태력의 몽둥이가 부딪친 순간 태연의 날렵한 몸이 태룡의 깍지 낀 손에 의해 날아갔다. 5미터를 가볍게 날아간 태연은 암컷 하르크의 어깨에 가볍게 앉는가 싶더니 손에 쥔 한 뼙가량의 꼬챙이를 놈의 귀에 그대로 박아버리고 다시 뒤로 몸을 날렸다.

크아아악!

 하르크가 비명과 함께 통나무를 놓고 귀에 박힌 꼬챙이를 손으로 잡아 뽑았다.

 분수처럼 분출되는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명을 지르던 하르크는 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태연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막 물에 젖은 땅을 벗어나 원진 안으로 들어가는 철웅 일행의 후미까지 도망친 후였다.

 우와아아앙!

 세상이 떠나가라 피어를 지른 암컷 하르크가 원진을 향해 달렸다. 이제까지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두 새끼도 피어를 지르며 달렸다. 하르크 일가족 넷은 흉흉한 눈으로 라나두가 구성한 원진 안으로 도망치고 있는 휴먼들을 향해 거구의 몸을 날렸다.

 “나인, 레이스! 지금이얏!”

 하룬의 명령에 나인과 레이스가 본인들의 이능력을 발휘했다.

 “멈춰워엇!”

 “방防!”

 둘의 외침에 물에 젖어 축축한 땅을 푹푹 밟으며 원진을 향해 뛰어오던 하르크 두 마리는 순간적으로 멈추거나 몇 걸음 뒤로 튕겨 나갔다. 바로 뒤를 따르던 새끼들 역시 뒤로 튕겨 나갔다.

 크르르!

 하르크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이를 드러내며 사람들을 향해 흉광을 폭사했다. 하지만 놀라기는 했는지 바로 달려들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해요?”

 나인을 비롯한 일행은 두려움에 떨었다. 상처를 입은 변종 생물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실제로 경험한 영흥 마을 전사들이나 아직 경험하지 못했어도 지금 흉성을 터트리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생생하게 느끼는 다른 사람들이나 똑같이 알 수 있었다.

 하룬 역시 가슴이 서늘했다. 단순히 동작을 멈추는 나인의 이능력뿐이었다면 놈들은 물에 젖은 땅을 벗어나 라나두들에게 쇄도했을 것이다. 레이스의 이능력 때문에 녀석들의 말이 아직 물기에 젖은 구역에 있는 것이다.

 역시 계획이라는 것은 이렇게 늘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레이스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하르크 일가족이 물에 젖은 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본 순간 하룬은 외투에서 비수 한 자루를 꺼냈다. 사람들의 의혹에 찬 시선이 잠시 비수에게 머물다가 이내 하룬에게 향했다.

 “대장, 도대체 이게 뭐하는…….”

 쏘우가 창백한 얼굴로 물으려고 할 때 하룬의 손에 들린 비수가 갑자기 폭발하듯 빛을 발하며 시퍼런 뇌전에 휩싸였다.

 ‘된다!’

 하룬은 상단전의 뇌기가 포함된 기를 비수에 주입한 것이다.

 ‘역시 끈끈하군.’

 비수를 눈에 가득 담은 하룬의 의지가 꿈틀거렸다.

 ‘올라랏!’

 팔이나 손을 전혀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렬하는 뇌전에 휩싸인 비수가 둥실 허공으로 들려 올라갔다.

 “저, 저게 도대체 뭐야?”

 사람들은 찢어질 듯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비수가 생명체인 것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가랏!”

 하룬의 명령과 함께 허공에 멈추었던 비수가 원진을 향해 달려오는 하르크 일가에게 날아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흐릿한 잔상을 보았을 때는 이미 비수가 수컷 하르크의 발등 한쪽에 꽂혀 있었다.

 비명을 기대한 사람들은 이내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강력한 전류가 흘려내는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치지직! 지지지직!

 물에 흠뻑 젖은 바닥을 타고 비수에서 흘러나온 뇌전이 주변으로 확 퍼져 나간다. 일순간 그 일대가 시퍼런 전광電光에 휩싸일 정도로 강력한 전류였다.

 “흐업!”

 “헉!”

 놀라는 사람들의 눈에는 강력한 전류에 감전되어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바르르 떠는 하르크 일가족의 모습이 들어왔다. 얼마나 강력한 전류이기에 저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돌아와!”

 하룬의 입에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건네는 듯한 말이 나왔을 때 비수는 느릿느릿하게 하룬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런 비수의 모습은 마치 힘이 다 빠졌다고 말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비수의 자루를 향해 바닥에 남아 있는 뇌전이 연결되어 마치 끈처럼 보이는 것까지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결국 비수가 하룬의 손으로 날아드는 동안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새까맣게 변색된 비수의 모습이지만, 그 주변에는 아직도 시퍼런 뇌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뭐지? 초능력인가?’

 비수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일 때부터 열렸던 사람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특히 황 박사의 놀람은 컸다. 그는 오랫동안 정신력을 근간으로 한 새로운 종류의 힘에 심취되어 있었던 것이다.

 ‘염력의 일종인 것은 확실해. 그런데 절대 휴먼의 몸으로 담거나 사용할 수 없는 뇌전의 힘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같은 능력은 아니지만 나름 효과적이고 놀라운 이능異能을 쓸 수 있는 나인과 레이스 역시 강한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녀들과는 너무 다른 힘이다. 너무 강력해서 자신들의 힘과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머릿속은 백지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어느새 전류가 다 방전되었는지 하르크 일가족의 몸에서는 약한 뇌전광만이 남아 버렸을 때, 하룬의 몸이 사라지며 그 뒤에 한 줄기 음성이 남았다. 놀랍게도 그의 몸이 한 번의 도약으로 원진을 구성한 라나두들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대원들은 이곳을 방어해. 밖은 내가 마무리를 한다!”

 땅에 착지한 하룬의 손에는 이미 박살이 들려 있었다.

 철웅은 눈을 부릅뜨고 하룬을 주시했다. 이전의 조우로 인해 그의 무위가 놀랍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강력한 전류의 힘을 담은 비수를 마치 생명체 다루듯 하는 것이나 아무 예비 동작 없이 한 번의 도약으로 5~6미터를 훌쩍 뛰어넘어 가는 하룬의 능력은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경지였던 것이다.

 “허억! 기氣! 검기劍氣다! 그것도 완전한 검기야!”

 사용이 놀라 외치지 않았더라도 철웅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마치 납작한 몽둥이 같았던 것이 시퍼런 양날을 가진 검으로 변하는 과정이며, 그 날이 몽둥이 속으로 주입된 기가 발현되어 나타난 것이란 사실도 말이다.

 ‘저렇게 기로 검날을 형성시킬 정도면 축적한 기는 도대체 얼마나 되며, 기를 다루는 능력은 어느 정도인 거야?’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는 의문을 속에 담은 채 철웅은 힘겹게 몸을 움직이고 있는 하르크를 향해 가차 없이 박살을 휘두르는 하룬을 지켜봤다.

 “저게 하르크야? 저게?”

 누군가의 물음이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싸악! 싹!

 너무나 쉽게 잘리는 머리통!

 세상 최강이라는 변종 생물의 제왕, 하르크가 전격의 후유증으로 인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목이 잘리는 모습은 너무 현실감이 없어 마치 만화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숱한 휴먼들과 무수한 다른 변종 생물들을 잡아먹으며 제왕으로 군림하던 하르크 일가의 목이 다 잘린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사이 하룬은 다시 흩어지는 라나두들 사이를 거쳐 하르크들의 사체로 다가갔다.

 “또 뭘 하려는 걸까요, 우리 대장은?”

 피범벅이 된 것도 모자라 엉망으로 구겨진 슈트를 강제로 잘라내자 갈비뼈 몇 개가 나갔는지 옆구리가 움푹 들어간 사용이 옆에 누운 철웅에게 소곤거렸다.

 “글쎄!”

 비명을 지르다가 이가 상할 것이 염려되어 천을 감은 나무토막을 물고 잇는 부상자들은 비수 한 자루를 꺼내 들고 하르크들의 사체로 접근하는 하룬에게 눈을 고정했다. 하룬은 망설임 없이 사체에 비수를 갖다 댔다.

 “설마 가죽을 벗기려는 건 아니겠지?”

 누군가의 물음에 하룬의 손에 들린 비수의 끝으로 삐져나온 푸른 실이 대답을 했다.

 “허억! 저건 검기?”

 막 소독약으로 상처 부위를 드레싱하고 있던 헤니가 놀라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박살의 날이 검기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모종의 장치를 통해 날이 안으로 들어가 있다가 나온 것으로 생각했다.

 “저건 검기의 일종으로 검사라고 하지.”

 철웅의 말에 로수의 부리부리한 눈이 강렬해졌다. 이제 겨우 기를 무기에 담는, 그것도 두세 번이 한계인 그로서는 도무지 요원한 경지를 이룬 하룬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염원하던 경지를 직접 본 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일행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룬은 하르크 네 마리의 가죽을 익숙한 솜씨로 벗겨냈다. 이럴 때는 게임에서 익힌 도축 스킬이 큰 도움이 되었다. 더구나 전에도 한 번 하르크의 가죽을 벗겨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저게 가능한 거였어?”

 쏘우는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 눈치였다. 그는 하르크의 가죽은 근육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어 벗길 수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친구였군. 내 눈이 썩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옆에 자리한 황 박사가 질렸다는 투로 말했지만 쏘우의 관심은 이제 하르크의 힘줄과 뼈들을 적출해내는 하룬에게 쏠려 있었다. 그의 자연스럽고 빠른 손놀림은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태력, 보관 용기를 가져와!”

 “네, 대장.”

 태력은 자신이 메고 있던 긴 관처럼 생긴 물건을 내려놓았다.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궁금했는데 속이 텅 빈 보관 용기였던 것이다.

 아즈만으로부터 변종 생물의 가죽을 비롯한 부산물들이 제각기 쓸모가 많다는 것을 들은 하룬은 혹시 몰라 태력에게 빈 용기를 들고 오게 했던 것이다.

 “아예 작정을 한 걸 보면 하르크를 한두 번 잡은 것이 아니란 말이군. 하르크의 부산물까지 챙기는 것을 보면 다른 이들은 모르는 용처까지 알고 있다는 소리고. 세상에! 하르크 네 마리를 혼자서 잡아 죽인다? 왜 이런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지?”

 쏘우의 혼잣말을 들은 황 박사의 머릿속도 혼란스럽게 변했다. 성이 있을 만큼 유니온에서도 인정을 받은 그였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으로 인해 유니온에서는 나름 인맥이 넓다고 자신하는 그이기에 무수한 비밀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이런 존재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 그가 하는 일들을 보면 배리어 밖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어. 내가 아는 한 저 하룬 대장보다 더 강한 휴먼은 없어. 특수군이 아니라 특수군이 떼거리로 와도 저 정도는 아니야. 뇌전의 힘을 쓰는 이능력자에다 기로 이루어진 검까지 쓰는 능력이라니. 도대체 하룬 대장의 정체는 뭐야?’

 황 박사는 쏘우와 함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빠! 그건 어떤 종류의 힘이에요?”

 “무슨……?”

 “그거 있잖아요. 미지의 힘으로 하르크들을 태워버린 것 말이에요.”

 어느새 일행은 모두 하룬과 나인의 대화에 주의를 쏟고 있어 무거운 라나두의 발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아! 그거. 전격電擊의 힘이야. 우연히 얻게 된 힘이지. 네 능력과 비슷하면서도 몸 안에 뇌전력을 축적해야 쓸 수 있는 힘이야.”

 “역시 그냥 전기력은 아니었군요. 그 전격의 힘은 그렇게 감전만 시키는 건가요? 다르게 쓸 수도 있는 건가요?”

 하룬은 나인의 호기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능력의 개발에 얼마나 노심초사를 하고 있는지 여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지. 물론 그 경우가 더 강한 위력일 거야. 하지만 이번엔 하르크의 가죽이나 부산물을 얻어야 할 필요도 있었고, 머리통을 온전하게 남기려고 사용하진 않았어.”

 “아!”

 나인은 뭔가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자연 상태의 벼락과 비슷한 힘이다. 감전을 시킬 수도 있고, 강력한 폭발력으로 충격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난 쓸 수 없는 건가요?”

 뭔가 간절하게 느껴지는 나인의 말에 하룬이 씁쓸하게 웃었다.

 “안 될걸. 그 힘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고 뇌전을 몸 안으로 끌어들여 축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온몸이 지져지는 고통은 고사하고 천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냥 타죽기 십상이야. 너야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것을 왜 찾아?”

 “멋있어서요. 끝내주잖아요. 내가 가진 능력은 고작해야 반경 5미터 내외 대상물들의 움직임을 몇 초 정도 멈추게 하는 것에 불과한걸요.”

 나인의 말에 하룬이 거세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건 굉장히 유용한 힘이야. 네가 조금 노력해서 그 대상을 좁힐 수 있다면 힘은 훨씬 더 적게 들면서도 전투에 큰 전기를 마련해줄 수 있어.”

 “대상을 좁히라고요.”

 “응. 어차피 네 힘이나 내가 가진 이능은 정신력과 의지로 발휘하는 힘이야. 집중력과 의지로 얼마든지 그 능력을 확장시킬 수 있어.”

 “나, 난 그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대상물에 미치는 시간을 늘리는 것만 생각했거든요. 기껏해야 두 번 펼칠 수밖에 없고, 한 번 그렇게 능력을 쓰고 나면 일주일은 앓고 난 것처럼 맥을 못 추니. 더구나 뭘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도 몰라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펼쳐보는 것이 전부였어요.”

 하긴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전투를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니니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런 이능으로 인해 어릴 때는 따돌림까지 당했으니 발전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는 수련 방향을 그렇게 정하고 노력해봐. 그럼 그 능력을 세미랗게 쓸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오빠. 역시 물어보길 잘했네. 난 나 이외에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못 만나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도 잡지 못했거든요.”

 “후훗! 네 능력, 그거 굉장한 거야. 전사들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쓸 수 있다면 전사들은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상대를 쉽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요는 그 능력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느냐가 관건이야.”

 하룬의 말에 나인은 물론이고 로수와 영흥 마을 전사들의 얼굴도 확연하게 밝아졌다. 구체적으로 그 힘이 쓰일 수 있는 경우가 보이자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내 능력은요?”

 “아, 레이스.”

 레이스는 묵묵히 하룬과 나인의 바로 뒤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호기심을 누를 수 없는지 하룬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레이스의 능력은 자신의 몸 밖으로 일종의 에너지 파를 발산하는 거지요?”

 레이스의 능력은 미트라라는 암살자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

 “그래요. 나름대로 알아보니 뇌파와는 다르지만 물리적인 힘을 가진 일종의 파동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하룬의 물음에 막 입을 열던 레이스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거야…… 막상 말하려니 잘 모르겠네요. 다급한 상황에서 발휘되던 것을 최근에야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 역시 특수군이나 연구 기관으로 끌려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일부러 남들에게 보인 적도 없고 따로 수련을 한 적도 없는데, 우연하게 발휘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역시 이능은 타고나는 것이었다. 능력자는 일부러 수련하지 않아도 그 능력을 쓸 수 있지만 타고난 능력이 없다면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이런 종류의 힘이었다. 물론 하룬의 경우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레이스의 경우도 나인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사방으로 에너지 파를 발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에요. 일단 에너지 파를 한 방향, 혹은 한 대상으로 한정해서 발출하는 것을 먼저 수련해야 해요. 그 힘 역시 정신력과 의지력으로 쓸 수 있는 이능이니 그렇게 수련하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거예요. 그럼 나인이의 경우와는 달리 에너지 파로 직접 상대방을 공격할 수도 있고, 보조자와 합공을 하면 더 효과적일 거예요. 예를 들어 상대방을 밀어내거나 에너지파의 밀도를 증가시켰다가 폭발을 시킬 수도 있겠지요. 아무튼 상대방의 시야에 보이지 않는 힘이기에 당황한 틈을 파고들면 몇 수 위의 고수라고 해도 제대로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아!”

 레이스는 하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탄성을 질렀다.

 지난번 오르그들을 상대할 때 하룬이 말한 것처럼 능력을 사용했다면 검사들을 도와 좀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발휘한 이능은 힘에 비해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 나인처럼 남즐에게 숨기기만 급급한 능력이라서 어떻게 수련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하룬 대장.”

 “별말씀을.”

 나인과 레이스의 능력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묘하게 나인의 경우는 수비적이면서 보조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레이스의 경우에는 공격적이면서 합공에 유리한 속성이 강했다. 제대로 된 검사들이 보조한다면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한 조의 힘으로도 하르크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에 잠긴 나인과 레이스의 공백을 뚫고 헤니의 말이 등 뒤에서 들렸다.

 “대장도 비욘드의 하룬 대장처럼 정말 신비로운 분이군요.”

 “무슨……?”

 “그렇다고요. 두 사람은 나이와 외모 등 몇 가지 차이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게 느껴져서요.”

 헤니는 정말 기묘한 기분이었다. 분명 동일인은 아닌데 묘하게 동일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능력의 한계를 쉬이 짐작할 수 없는 것도 그렇지만 그 기질이 묘하게 닮았다. 외강내유라고나 할까?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실상 마음을 준 사람들에게는 다정한 사내였다.

 ‘휴우!’

 헤니는 비욘드에서 하룬에게 느낀 야릇한 감정이 되살아나 얼굴을 붉혔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인정되어 유니온 정부에 의해 사육되듯 자란 그녀는 누군가에게 연정을 느끼거나 그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성인이 되기 전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의 타이틀이나 수수한 외모가 한몫을 했던 것이다.

 ‘비욘드의 하룬 대장이 그림이라면 이 사람은 제대로 된 현실이야.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지?’

 헤니는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자꾸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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