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현실의 돌풍 용병대 탄생 (132/278)

《현실의 돌풍 용병대 탄생》

 나인과 영흥 마을 전사들이 모두 모였다. 통신으로 하룬이 의외의 제의를 해온 것이다. 그 일 때문에 전사 회의가 소집되어 모두가 모인 것이다.

 “나인이의 생각은 어때?”

 로수 본인은 그 제의에 당장 응하고 싶었지만 일단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해 봐야 했다. 로수의 물음에 나인은 잠시 망설인 후 입을 열었다.

 “난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다른 전사 집단이나 호위대들도 모두 두더지처럼 숨어있는데.”

 배리어 밖까지 이어지는 상행을 보호하는 이들이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그중 몇몇은 하르크도 물리칠 정도의 대규모 인원과 강력한 무기를 가진 곳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있는 상황이었다.

 “난 하룬 오빠를 믿고 싶어요. 내가 직접 본 오빠와 그 수하들의 능력이라면 오르그 백 정도는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인의 말에 로수와 다른 전사들도 지난번 자신을 도와 오르그들을 해치웠던 하룬과 그 수하들의 신위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만 있었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오르그들은 한 무리가 아니다. 현재 배리어 주변에는 적어도 스물 이상의 무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두세 무리만 합쳐도 어려워질 거야.”

 비록 자신의 피는 뜨겁게 달구어졌지만 아직 전사들의 수련이 미진한 상태라 로수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난 하룬 오빠를 믿고 싶어요. 얼마 전 우리를 구할 때가 아니더라도 전에 하르크를 혼자 상대한 실력이 있는 분이에요. 비록 과정은 못 봤지만 홀로 하르크를 추적해서 해치운 실력자니, 일을 아예 안 한다면 모르되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할 거라면 그분과 같은 보호자를 찾기는 어려울 거예요.”

 “흐음.”

 로수는 괜히 나인에게 차기 촌장 자리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결정하는 것은 타고난 전사 체질의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강제로 껴입은 듯 불편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인이가 저리도 좋아하니.’

 지난번 일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온 후 마을 원로들이 회의를 했다. 안건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점증하고 있는 오르그들의 위협에 따른 마을의 이전 문제였고, 다른 한 가지는 차기 촌장에 대한 것이었다.

 예전이라면 별문제 없이 나인이 촌장 자리를 승계했겠지만 지금은 강력한 적인 오르그들의 위협이 거세지는 상황이라 지혜보다는 강력한 무력을 가진 지도자를 원했기 때문에 벌어진 회의였다.

 “로수 전사장이라면 안심이에요.”

 그 자리에서 과감하게 촌장 후계자의 자리를 내치고 자신을 천거한 나인 때문에 지금 이렇게 고심을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거추장스럽고 골치만 아프게 만드는 자리를 내던지고 싶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하고 자유롭게 보이는 나인의 얼굴 때문에 차마 그러지도 못하는 로수였다.

 “하룬 오빠의 제의 내용은 우리에게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어차피 이번 일은 서로의 능력을 확인하는 성격을 띠고 있으니 성공을 한다면 전에 없는 높은 보수를 받아 곧 이주할 마을의 재정에 보탬이 될 것이고, 설사 실패를 한다고 해도 돌풍 용병대라는 이름으로 실패하는 것이니 우리 전사들의 명예는 지켜질 거예요. 그리고 이번 기회에 돌풍 용병대의 힘과 그 기량을 확인해서 하룬 오빠의 제안대로 정식 대원이 되면 여러모로 마을이나 전사들에게도 좋을 것 같아요.”

 나인의 의견은 극히 타당했다. 로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인이 하룬을 믿듯 그 역시 하룬의 능력을 믿고 있었다. 아마 전사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전사장이었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휴우! 어서 내 검에 빛을 안정적으로 담아야 하는데.’

 그랬다면 조금은 편하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전대 전사장이던 나인의 아버지가 성취한 경지에만 이르렀다면 하르크라면 몰라도 오르그 따위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좋아! 하자. 다만 하룬 대장의 의견대로 전사는 나와 나인이에 1조 열 명만 간다. 2조 열은 마을의 이주 준비를 돕고, 2조 열은 비욘드에 접속해서 마저 검술을 익힌다.”

 일단 모든 전사들의 의견을 다 들은 상태에서 장고 끝에 결정이 내려졌으니 다른 말이 있을 까닭이 없다. 전사들답게 내려진 결정에 대해 빠르게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인아, 돌풍 용병대 소문을 게임에서 듣긴 했는데 현실의 돌풍도 그럴까?”

 “그건 저도 확신할 수 없네요. 워낙 비욘드에 퍼진 돌풍 용병대의 소문이 화려해서요.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경우는 없고, 우리 눈으로 직접 본 하룬 오빠와 그 수하들의 능력이라면 믿어도 되지 않을까요?”

 “하긴. 우리는 터번으로 얼굴을 두르고 긴 천으로 온몸을 둘둘 감아도 강렬한 햇빛과 오염된 공기를 견디기 힘든데 그들은 얼굴도 다 드러내고 가벼운 차림으로도 괜찮은 것 같더라. 그것만 봐도 우리랑은 차원이 다른 자들이겠지.”

 로수는 아직도 그때 위험에 빠진 기사들을 돕기 위해 나타난 하룬과 네 남녀의 전투 장면을 떠올리면 뜨거운 피가 절절 끓어올랐다.

 하룬의 경우는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무시무시한 방호력을 지닌 오르그의 가죽을 뚫고 비수를 자루까지 박아 버리는 비도술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마치 거대한 파도를 연상하게 만드는 위력적인 검술까지 구사했다.

 하룬을 마스터라고 부르는 네 남녀의 능력 역시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태룡이라는 사내는 자신처럼 무거운 검술을 사용했지만 더 빠르고 강력한 검술을 보였으며, 태범이라는 사내는 파동건으로 전체적인 전투를 유리하게 보조했다. 태력이라는 사내는 타고난 신력으로 오르그들을 해치웠고, 태연이라는 여자는 잔상을 일으킬 정도로 민활하고 가벼운 몸놀림과 강력한 살상력을 지닌 무기술을 보여주었다.

 “이왕 결정했으니 우리도 빨리 움직이도록 하지.”

 이틀 후 새벽까지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로수의 명령에 나인과 서른의 전사들 중 가장 출중한 기량과 실력을 가진 전사 열은 각기 맡은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게 우리 마을에 복이 될지 아니면 화가 될지 모르겠군. 아무튼 미약하지만 예지력이 있는 나인이가 적극적으로 원하니 나쁜 일은 없겠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로수도 짐으 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마을과 하루 반나절, 유니온과 반나절 거리에 있는 영흥 마을 전사들의 은신처는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일단 한번 같이 일을 해봅시다.”

 아침 일찍 찾아온 하룬의 제의에 하룻밤 동안 기대를 하던 다섯 명의 얼굴이 환해졌다.

 멀찌감치 떨어진 자리에서 쏘우가 잔뜩 심통이 난 얼굴을 했지만 하룬은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른 시간인데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 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언변으로 이곳에 빌붙었는지 그것은 좀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정말이오?”

 “네. 일단 같이 일을 해보고 여러분을 돌풍 용병대원으로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번 일을 통해 정말 우리 용병대에 들어올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섣불리 결정하는 것보다는 좋을 겁니다.”

 하룬의 말을 들은 철웅의 무뚝뚝한 얼굴에 일그러지듯 미소가 떠올랐다.

 ‘웃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군.’

 차라리 무표정한 얼굴이 보기는 더 좋았다. 하지만 철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아하고 있었다.

 사실 기대하며 말을 했지만 기대는 그리 많이 못 했던 것이다. 이미 다져진 조직에 들어가려면 초창기 멤버에 비해 이것저것 테스트도 받아야 하는 등 통과의례로 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또한 신분이 확실치 않은 것도 이런 우려를 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이번 일을 같이하면서 서로 상대방이 동료가 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요. 한번 같이 다녀 보면 이후로도 쭉 같이할 수 있는 상대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하룬의 말은 철웅 일행이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정말 우리를 많이 배려하는군.’

 철웅은 내심 감탄했다. 자신들이야 막막한 F구역의 삶을 더 이상 이기지 모샇고 내린 즉흥적인 결정이지만, 하룬의 말이 내포하는 바는 한번 같이 일을 하면서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자는 말이었다.

 사실 철웅은 너무 즉흥적으로 돌풍 용병대의 입대를 부탁한 것은 아닌가 하고 후회를 했다. 아무리 자신이 믿는 레이스가 먼저 나서 분위기를 잡았다지만, 자신이 들어가려고 하는 단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게임 속 돌풍 용병대의 위명과 달랑 그 대장의 실력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렸다가 차후에 다른 문제들이 생기면 자신은 몰라도 의동생들과 레이스가 곤란해질 수 있었다.

 “정말?”

 누구보다 좋아한 것은 럼이었다. 살기가 막막한 상황이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너무 불안했던 것이다. 비록 한번 같이해보자는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잘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돌풍 용병대원이 되고 싶었다.

 “호호호! 이제 이 레이스가 드디어 용병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네.”

 위험한 일이 앞으로 진진하게 기다릴 텐데 뭐가 그리 좋은 일이라고 레이스는 노래라도 부를 것처럼 들떠 버렸다.

 “그럼 이제 자격이 있으니 말을 해 줘요. 무슨 일이고 일정은 어떻게 되며 결정적으로 이번 의뢰의 수당은 얼마나 줄 거지요?”

 사람들은 특히 수당을 언급할 때 유난히 반짝거리는 레이스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자신들 역시 궁금했기에 하룬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목적지는 용광로 마을. 운송할 물건의 무게는 600킬로그램. 돌아오는 길에 사이언스 마을과 영흥 마을에 들르는 일정으로 기간은 왕복으로 최대 보름입니다.”

 “흠, 그 정도라면 괜찮군.”

 사실 아우터 출신인 철웅으로서는 별로 어렵지 않은 화물과 노정이었다.

 “보수는 철웅 총사범님은 300, 럼과 레이스는 100, 나머지는 200만 원이야.”

 “휘유우!”

 하룬의 입에서 나온 보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검관 사형제는 서로의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검관 사형제는 이전에도 호위 일을 가끔 한 적이 있었는데 100만 원 이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묶어서 받았기에 사용이나 보련의 경우는 훨씬 더 적은 보수를 받았던 것이다.

 “정말 끝내주는 액수네. 드디어 이 레이스가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벌게 되었구나. 호호! 이참에 돌풍에 제대로 짱박혀야지.”

 레이스는 무엇보다도 보수가 마음에 드는지 활짝 웃었다.

 “정말 나 같은 초짜에게도 그 정도까지 줄 수 있는 거야?”

 럼은 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응. 조금만 더 검술을 닦고 경험을 쌓으면 못 할 일도 아니야. 제대로 검을 수련한 지 두 달도 안 되었는데 그 정도 실력이면 넌 검술에 재능이 있어.”

 “그래? 좋아! 앞으로 열심히 해볼게.”

 럼은 그제야 용기가 나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비록 게임 속에서 우연히 단 한 번 마주친 사이지만 묘하게 서로에게 이끌린 하룬과 럼은 마주 보며 웃었따.

 “나는?”

 잠자코 대화를 듣던 쏘우가 나섰다.

 ‘이 양반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이유를 들어 이곳에 달라붙었는지 모르겠지만 경계해야 할 인물임은 틀림없었다.

 “돌풍 용병대에는 아쉽게도 아저씨가 필요 없네요.”

 사실 쏘우가 가진 기술이나 지식은 상당한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하룬은 그것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며칠 있으면 깨어날 벨도 있고, 아리와 아즈만도 있었던 것이다.

 쏘우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실망했는지 더 이상 달라붙지 않고 풀이 죽어 한쪽으로 찌그러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제대로 달아올랐다. 비록 임시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껄껄! 이거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한잔해야겠는걸.”

 “그래요, 총사범님.”

 차가운 인상의 보련도 들떴는지 얼굴이 좀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도장에서 수련하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할 겁니까?”

 “걱정 마세요, 형님. 우리 말고도 사범을 할 수 있는 사형제가 둘이나 더 있으니까요. 묘미 누나야 워낙 게임에 푹 빠져 있지만 나머지는 모린 사형이 다 맡을 수 있어요. 어차피 수련생도 모두 합해야 스무 명도 안 되는데요, 뭐.”

 사용은 럼과 말을 트고 지내는 것으로 봐서는 하룬과 같거나 비슷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첫 만남 이후로 계속 형님으로 부르고 있었다.

 역시 이들이 돌풍 용병대에 들어올 생각을 한 에는 이유가 있었다. 생각보다 수련생 숫자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도장 운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하룬도 이 정도 인원의 수련생으로는 도장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곳에 다니는 아이들은 육체적 능력 면에서 가점을 많이 받게 하기 위해 그래도 여유가 있거나 지각이 있는 부모들이 보내는 것이다. 이 F구역에 그런 부모들이 많이 있을 리가 없다.

 혹시 수련생의 숫자에 하룬이 이상하게 여길까 봐 보련이 평소의 차가움 대신 답답함과 실망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른 구역이라면 몰라도 이 구역에서는 먼 훗날의 능력 판정을 위해 미리 체력을 단련시킬 목적으로 이런 곳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여유 있는 집이 별로 없어요.”

 씁쓸함이 느껴지는 보련의 말에 잠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실력은 최고인데 말이지. 묘미라도 적극적으로 도장 일에 나서면 좋을 텐데.”

 레이스가 안타깝게 말을 거들었지만 가라앉은 분위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묘미? 어쩐지 익숙한 느낌의 이름인데.’

 하룬은 잠시 익숙하게 들리는 이름을 떠올렸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었다. 하긴 그가 F구역에 살 때도 직장과 집을 제외하고는 별로 돌아다닌 기억이 없으니 아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하룬은 대신 럼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래, 어제는 여기서 잔 거야?”

 행색으로 보아 어제 역시 이곳에서 잔 것 같았기에 물어보는 말이었다.

 “응. 여기 도장에서 먹고 자.”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럼을 보며 하룬은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대학에 갈 정도로 머리가 우수한 럼인데도 특별한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독립을 하자마자 이 끔찍한 구역에 쫓겨 나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아하니 철웅 사범을 비롯해서 레이스를 제외한 이들 모두가 이곳에서 먹고 자는 모양이었다. 주거용이 아닌 가건물이니 주거 환경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는 안전해서 좋아. 내가 배정받은 그 낡은 비하우스는 폭력 조직워들이 무시로 드나드는 곳인 데다가 요즘은 수시로 배리어도 구멍이 뚫리는 곳이니 이곳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어.”

 ‘최악이었겠군.’

 하룬은 럼이 말하는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다. 어제 암시장에서 나와 지나쳤던 거리 어딘가의 원룸이 유니온 복지국에서 배정한 곳이었던 것 같았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휴먼들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도 잡히지 않는 우범지대이니 특별한 능력이 없는 럼이 지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틀림없이 안전 때문에 이곳을 택한 모양이다. 독립 초기라서 유니온에서 지급하는 돈과 양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 분명한 럼이 괜히 이곳에서 살 리가 없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철웅 사범님! 혹시 이곳에서 모두가지내는 겁니까?”

 “그렇소.”

 역시 그의 추측이 맞았다. 철웅은 대답을 하면서도조금 계면쩍은 얼굴이었다.

 “당장 거처를 옮기세요. D구역에 내 명의로 된 집이 있는데 창고를 개조한 곳이라 방이 꽤 많습니다. 그곳이라면 당분간 지내기는 괜찮을 겁니다.”

 “정말……이오?”

 철웅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인해 확 달아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주거가 불편해 무척 고역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인 보련의 경우가 특히 심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일이 있어 가끔 사용하는 곳입니다. 이곳보다는 편할 겁니다.”

 “고, 고맙네. 고마워!”

 일을 준 것도 고마운데 거주할 곳까지 마련해 주니 이거야말로 대박의 인물을 만난 것이다. 어느새 하룬을 대하는 말투도 편하게 바뀌었다.

 “대신 주기적으로 청소나 좀 해주시고, 부정기적으로 윌 용병대 물건이 들어오니 그것들을 잘 관리해주면 됩니다.”

 “하룬아, 정말 고맙다!”

 럼은 입이 귀까지 걸렸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하룬이 검관 식구들에게까지 이런 과도한 친절을 베풀 이유가 없으니 이제까지 나름 눈칫밥을 먹던 자신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그 증거로 당장 사용이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친한 척을 하고 있었다.

 “럼, 네 덕분에 우리까지 제대로 된 집에서 살게 됐다. 그래도 네가 막내니까 책임지고 집을 관리해!”

 “오케이! 내게 맡겨 줘!”

 하룬을 만난 것만으로 숙식할 곳과 할 일이 생겼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흐흐흐!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때 만났을 때부터 하룬을 만나면 뭔가 내게도 희망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지.’

 사실 이유도 잘 모르고 하룬을 찾아 헤맸다. 처음에는 정말 사귀어 볼 만한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어 버렸다.

 “잘됐어. 안 그래도 겨울이면 따듯한 물도 나오지 않는 이 가건물에서 추위에 떨고, 여름에는 뙤약볕에 고생하는 것이 늘 마음이 아팠는데.”

 레이스는 감동을 받았는지 슬쩍 소매를 눈가로 훔쳐냈다. 그녀 역시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썼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 새삼 호감이 일었다.

 “근데……?”

 갑자기 사용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웃다가 울 듯한 표정이 되니 얼굴이 아주 기괴했다.

 “뭔데?”

 “그게……말이야. 우리는 주민 칩도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D구역까지 가지?”

 그 말에 좋아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그 상태로 굳어 버렸다. 늘 바라고 바랐던 집 문제가 해결된 기쁨에 정작 가장 중요한 그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젠장!”

 “빌어먹을!”

 좋다가 만 꼴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진한 그늘이 떠올랐다. 하룬은 그들의 반응에 입맛이 썼다.

 ‘이거, 내가 F구역으로 이사를 와야 하나?’

 물론 F구역도 휴먼이 사는 곳이라 나름 살 만한 지역은 있었다. 어느 곳이건 재력이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치들이 있기에 잘 찾아보면 괜찮은 집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하룬은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있는 것을 나눠 줄 호의는 있지만 일부로 찾아 도와줄 정도는 아니다. 물론 럼이야 조금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때 전혀 뜻밖의 인물이 의외의 제안을 해왔다. 이제까지 마치 도장의 가구인 양 입을 다물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쏘우였다.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 나도 자네 집에 입주할 수 있을까?”

 너무 의외의 말에 사람들의 눈이 커졌지만 하룬의 눈은 그를 만난 이래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집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요?”

 “물론 있네. 하지만 곧 쫓겨날 신세지. 그렇지 않더라도 더 좋은 주거 환경을 가지고 싶은 것은 휴먼의 기본적인 욕구라네.”

 보아하니 그 역시 F구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원룸 비하우스에서 거주하고 있는 듯했다. 하룬은 애초에 쏘우는 새롭게 창설하는 돌풍 용병대원에서 배제를 했지만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그가 비욘드를 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세상은 어디건 정석대로만 살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쏘우와 같은 사람들도 쓸모가 많을 것이다.

 “좋습니다. 방법은요?”

 “주민국 관리 컴퓨터를 해킹해서 가공의 인물을 등록하고 정보 칩을 만들면 되는 간단한 일이네.”

 여유롭게 대답을 하는 쏘우의 태도에 하룬은 그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가능합니까?”

 “두 시간 정도면 모든 작업이 끝날 걸세.”

 “좋습니다. 방은 많으니 아무 곳이나 차지하면 될 겁니다.”

 결국 하룬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른 조건, 아니 부탁이 하나 더 있네.”

 “말해 보십시오.”

 “나도 이번 일에 동행해 보고 싶네. 그래서 내 가치를 증명해서 자네 용병대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받고 싶네.”

 “우리 용병대를요?”

 “그래. 문득 이번 일을 겪으며 나도 같이할 동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네.”

 왠지 쓸쓸하고 외로움이 묻어나는 왜소한 그의 어깨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능력도 없고 문제만 일으켜 세상에 홀로 내쳐진 자신과는 달리 자의로 혼자만의 삶을 택했을 것이 분명한 그의 부탁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 아저씨는? 그렇게 가라고 해도 갈 데가 없다고 난리를 쳐서 하룻밤 재워줬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레이스가 대뜸 눈살을 찌푸리며 도끼눈을 떴지만 그는 최대한 애절한 표정으로 하룬을 보았다.

 “사실 요즘 내 사정이 최악이 되어버렸네. 이게 다 오르그들 때문이지. 내가 만든 물건들은 대개 암시장을 통해 아우터들에게 팔리는데 오르그들이 유니온 주위에 출몰하고 나서부터는 아예 벌이가 없어졌네. 원래 내 천성이 나중을 위해 저축을 하고 사는 편이 아니네. 더구나 내가 관심을 가진 분야가 워낙 다양한지라 돈을 버는 족족 연구 재료를 사는 데 다시 투자하다 보니 지금 내 사정이 좀 딱하게 되었네. 벌써 두 달 동안 임대료를 못 내 일주일 안에 쫓겨나게 생겼다고. 얼마간이라도 날 좀 재워주게. 보답은 꼭 하겠네.”

 추레한 행색의 중년 남자가 하는 말에 다들 콧방귀를 뀌었다. 물론 오르그들에게 쓴 폭탄을 생각하면 재주는 좀 있는 것 같지만 꼭 시궁창의 쥐를 닮은 못생긴 외모와 작은 키에 굽은 등 그리고 마른 몸매와 합쳐진 그의 인상은 마치 사기꾼이나 협잡꾼을 연상케 했던 것이다.

 “꼭 보답은 하겠네. 내가 이래봬도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네. 날 제대로 쓰면 유니온의 숨겨진 정보는 물론 전지구위원회의 고급 정보까지 다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내게 제대로 된 슈퍼컴과 같은 재료만 공급해 주면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찾아주겠네.”

 쏘우는 입을 다물고 있는 하룬에게 다시 간곡하게 매달렸다.

 “신경 쓰지 마, 하룬. 아무래도 상습적으로 뻥을 치는 사기꾼 같아. 하룬이랑 거래를 오래 했다는 말도다 거짓이었잖아.”

 레이스는 그가 한 거짓말 때문에 단단히 삐친 것 같았다. 하룬과 인연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다 불쌍해서 재워 주기까지 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하니 분이 치미는 듯 그에 대한 평가는 차가웠다.

 “하룬 대장, 자네의 호의는 마음만 받겠네. 굳이 우리 때문에 나중에 골치 아플 사람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네. 이곳 F구역에서 오래 살다 보니 휴먼들 중엔 인심을 베풀면 그 인정에 기대어 계속 받아먹으려는 작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네. 또 우리도 주민 칩을 위조하는 기술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자처럼 주민국에 직접 회피 접속해서 새롭게 등록응ㄹ 한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보네.”

 레이스의 말에도 하룬이 고민하는 눈치이자 철웅도 나서서 말렸다.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하는 말 대부분이 과장한 것으로 생각되고, 인상까지 안 좋은 터라 이제 자신의 밥줄이 될지도 모르는 하룬에게 충고한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있다. 그것도 아주 많다. 최소한의 생존 환경에 목마른 이 끔찍한 구역에서는 말이다.

 ‘그래도 눈빛은 선해 보여.’

 하룬은 쏘우의 탁한 눈 속 깊이 자리한 맑은 빛을 느꼈다. 정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집착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지하실에 들어갔을 때 연구에 빠져 자신의 존재도 내내 알아차리지 못하던 양부 청일의 눈을 통해 보았던 익숙한 것이었다.

 “방은 많으니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하룬의 허락이 떨어지자 쏘우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만세를 불렀다. 그 자신도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대신 실험은 안 됩니다. 나중에 아저씨의 능력이 확인되면 실험실 정도는 지원해 드리지요.”

 “절대, 절대로 지킬게. 내가 한다면 하는 놈이라고.”

 철웅을 비롯한 사람들은 우려를 했지만 하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힘겨운 삶을 살아오면서 사람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자평하는 하룬이다. 또한 자신의 판단이 틀리더라도 갈 곳 없는 사람을 잠시 머물게 해주는 것일 뿐이니 별로 걱정이 되지도 않는다.

 “쏘우 아저씨가 날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일에는 무관심한 편입니다. 하지만 일단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면, 믿는 이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주지만 아니라고 판단할 경우는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내 성격의 본질을 알고 싶으면 시험을 해도 좋습니다.”

 하룬은 담담하게 말했지만 쏘우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알았네. 알아서 하지.”

 “일단 두 시간 안에 말씀한 대로 새로 등록한 주민 칩을 구해 오세요. 난 먼저 가서 준비를 좀 하겠습니다.”

 “알았네. 그 정도는 내겐 일도 아니네. 자, 모두 날 따라와야 하네. 자네들의 유전자를 비롯한 각종 정보를 등록하려면 같이 가야 하네. 물론 내 짐도 좀 나눠 들어야 하고 말이지.”

 사람들은 의심을 버릴 수 없어 불안한 얼굴이지만 쏘우의 자신만만한 말에 주춤거리며 결국 그를 따랐다.

 하룬은 결국 혼자 D구역으로 향했다. 어쨌건 많은 사람들이 지내게 되었으니 식료품을 비롯한 것들을 챙겨 놔야 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마트는 낮보다 훨씬 혼잡했다. 대부분 퇴근 후에 장을 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암시장이 거의 폐쇄 상태라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이참에 필요한 식료품을 돈 되는 대로 다 구입해 놓자.’

 지금 유니온 뱅크 개인 계정에 들어있는 돈은 큰 의미가 없었다.

 굳이 황금이 아니더라도 비욘드에 접속해서 아공간에 쌓아두기만 한 아이템들을 정리해서 팔기만 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큰 성을 들를 기회가 없어 정리를 못 했을 뿐이다.

 하룬은 개인 계정에 들어있는 돈만큼 식료품들을 구입했다. 자신의 새로운 캡슐에 넣을 것까지 고려해서 구입한 식료품은 거의 200킬로그램이 넘었지만 그 정도의 무게는 이제 크게 무리하지 않고서도 들고 갈 수 있었다.

 엄청난 부피의 짐을 들고 걸어가는 하룬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주민들이 있었지만 생활이 그렇듯 남에게 오래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집에 들어온 시간은 거의 한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일단 기지에 다녀오자.”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이 무료한지라 하룬은 당장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지로 옮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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