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검관 (131/278)

《검관》

 하룬과 럼은 제일 먼저 옷과 몸을 소독했다. 배리어 밖에서 들어온 오르그들은 오염 물질을 잔뜩 묻혀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 다음에 자잘한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것으로 치료를 끝낸 하룬과 럼은 상처를 돌보거나 오염 물질을 씻는 나머지 사람들을 기다리며 둘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너도 이 검관에 다니는 거야?”

 “응. 나 이 도장에 다녀.”

 럼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좀 뜻밖이긴 했다. 요즘 세태는 현실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럼은 하룬과는 달리 전형적인 유니온 젊은이였다.

 “언제부터?”

 “너랑 헤어지고 얼마 후부터. 레이스 누나가 추천해 줬어.”

 그러니 실력이 없는 게 당연하다. 뭐, 그래도 제대로 진검도 다루지 못하는 그가 그 많은 오르그들을 상대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용했다. 이 격리된 세상에서 살아온 젊은이들 중에 럼과 같은 용기를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검을 다루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이지.’

 하룬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오르그를 상대하기 위해 나선 럼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능력도 없이 나선 것은 책망 받아야 하겠지만 그 용기만큼은 높이 사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왜 이런 시간에 이 험악한 F구역에 있었던 건지 의아했다.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대학생이 아닌가?

 “아직 대학은 다니는 거지?”

 “아니. 그만뒀어. 하급 무능력자로 최종 판정이 났거든.”

 설마 하는 생각에 물어봤더니 놀라운 대답을 했다.

 하급 무능력자라면 단순노동이나 서비스업까지는 할 수 있지만 낮은 등급이었다. 대학을 마쳤다면 적어도 중하급까지는 판정받을 수 있는데 왜 그만두었는지 궁금했다.

 “왜 미리 판정이 난 거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능력 판정이 연기되잖아?”

 “그게…….”

 럼은 잠시 주저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너랑 헤어지고 나서 다솜이랑 정식으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봤어.”

 “그런데?”

 “다솜이는 날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더라고. 난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한참 고민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가벼운 생각으로는 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다솜이는 노블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유니온 수비군 부대장급 인사에 A구역 주민이잖아. 설사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그 집에서 반대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거랑 네가 능력  판정을 일찍 받게 된 거랑은 무슨 상관인데?”

 그 말에 럼의 얼굴에 더 짙은 그늘이 졌다.

 “치기인 줄은 알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남자라는 것을 다솜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신청을 했어. 그런데 뜻밖에도 하급 판정을 받은 거야. 뭐,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 대학을 갓 입학한 상태이니 그쪽으로 가점도 주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다만 학습 능력과 적극성과 사교성 등 인성 항목의 점수가 꽤 높게 나와 그래도 그나마 하급 판정을 받은 거야.”

 럼의 말에 하룬은 자신의 판정 결과를 떠올렸다.

 완전 무능력보다는 낫지만 거기서 거기인 일반 무능력자.

 육체적 정신적 능력은 물론 사교성, 적극성, 통제성 등 전 인성 항목에서 최하 판정을 받았다. 하룬의 판정 결과는 많은 F구역의 무능력자들 중에서도 가장 나쁜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야말로 유니온에서는 쓰레기라는 판정이었으니 말이다.

 “부모님은 힘들더라도 대학은 졸업하고 다시 능력 판정을 받으라고 하셨지만 그만두기로 결정했어. 어차피 하급이나 조금 노력해서 받을 수 있는 중하급이나 E구역 이상은 무리잖아. 부모님도 나이가 있으신데 그분들도 노후 자금도 마련해 두어야 하고.”

 어떻게 보면 잘한 결정이었다.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결과가 보이는 일에 더 투자를 하는 것은 헛수고에 그칠 확률이 높았다. 대학 등록금이 어디 장난인가.

 “그래서 지금은 어디서 지내는 거야?”

 일단 능력 판정을 받으면 가족에게서 독립을 해서 유니온이 능력에 맞게 지정해 준 구역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유니온 거주 법칙이다. 어쨌건 판정이 내려진 후 첫 두 해까지는 유니온에서 거주지의 월세를 받지 않는다. 그 안에 직업을 구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쉽지 않아 수많은 젊은이가 거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아직 직업을 얻지 못한 상태라 F-4-4구역에 작은 원룸을 배정받았어.”

 “이곳 학습비와 생활비는?”

 능력 판정이 나면 정착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적은 돈이 2년 동안 정기적으로 나오지만 그것으로는 이곳에 다닐 학습비나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묻는 것이다.

 “유니온에서 받은 독립 자원금도 있고, 부모님이 직업을 찾을 때까지는 도와주기로 하셨어.”

 “다행이다.”

 좋은 양부모님을 만난 럼이 정말 부러웠다. 독립을 하고 난 후까지도 보살펴 주는 것은 양부모, 아니 친부모도 잘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만큼 먹고사는 기본적인 것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유니온 생활이다.

 “그래도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 물론 조만간 일을 찾아야 하겠지만.”

 “부러운 놈.”

 하룬의 말에 럼이 피식 웃었다.

 “응. 좋은 분들이야. 이제 나이가 드셔서 내가 잘 모셔야 할 텐데.”

 럼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자라서 그런지 생각하는 것도 반듯한 녀석이다. 조금만 능력이 있엇다면 좋았을 텐데. 하룬은 자신이 괜히 안타까웠다.

 “그런데 여기 사범들, 혹시 특수군과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냐?”

 하룬 본인도 굳이 특수군이 출동한 마당에 더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들 역시 자랑스러운 일을 해 놓고 자신을 따라 튄 것이 마음에 걸려 묻는 것이다. 하지만 럼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우리 사범님들은 유니온 주민으로 등록이 안 돼서 그래요.”

 어느새 가까이 온 레이스가 그 대답을 해주었다.

 “흠, 그렇군요.”

 그렇다면 사범과 그 동료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F구역에는 유니온 주민으로 등록되지 않은 무등록자들이 꽤 많다. 불법적으로 유니온에 들어온 아우터들도 있고 유니온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자녀를 일부러 등록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도 아니면 범죄 조직과 관련이 있다.

 “원래 아우터 출신이오. 척추 산맥의 남쪽 청류 마을에서 왔소.”

 레이스를 따라 모습을 드러난 철웅은 몇 군데 붕대를 감은 모습이었다. 가장 뛰어난 검술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동료들을 의식한 결과였다.

 “원래 아우터 출신들이 만든 호위대에 들어가 상단 호위를 했는데 중간에 큰 전투가 벌어져 동료들을 잃었소. 그때 레이스가 아니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요.”

 철웅의 말에 레이스가 겸연쩍은 얼굴이 되었다.

 “처음 상행을 따라나선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사범님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레이스 집안의 재력은 상당한 수준인 것 같았다.

 하룬 역시 바란 남매들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아우터 마을들과의 교역은 유니온 정부의 비호하에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재력과 연줄이 없으면 감히 시도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행히 난 목숨을 건졌지만 호위대의 동료들 대부분이 죽거나 심한 부상을 입어 결국 호위대는 해체되고 말았소. 갈 곳도 딱히 없고 먹고살기가 힘들어 레이스의 권유로 이곳에 정착하게 됐소. 나 때문에 마을 동생들도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정도 실력이라면 유니온 밖에서도 충분히 통할 텐데요.”

 그는 하룬의 검술 실력에 놀란 눈치지만 그의 검술 실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잠시지만 무기에 기를 실을 수 있는 실력이면 대단한 것이다.

 “최근에야 겨우 이룩한 경지요. 그나마 무의식중에나 검에 빛을 담을 수 있을 정도밖에 안 되오.”

 그는 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이 되었다.

 “아니에요. 사범님의 검술 실력은 유니온에서 가장 뛰어날 거예요.”

 레이스가 조금 소리를 높였다. 물론 그의 말대로 검신에 기가 주입되었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하긴 하지만 그 정도 실력이라면 대단한 것이다. 만약 특수군의 무기인 광선검을 사용한다면 엄청난 위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니야. 내 실력은 이 친구에 비하면 어림도 없는 조잡한 것에 불과해!”

 사범의 말에 레이스와 럼은 반사적으로 하룬을 주시했다. 사실 그들도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빠르고 현란한 몸놀림과 검술을 보여준 하룬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룬이 오르그들을 짚단을 베듯 한 것은 상당 부분 그가 지닌 특이한 검에 기인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찬입니다.”

 하룬이 겸손하게 말하는 찰나 쏘우가 나머지 두 명과 함께 가까이 오며 말했다.

 “아니, 하룬 자네의 검술 실력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정도로 뛰어나. 상급의 신체 능력을 가진 자들 중에서도 가려 뽑은 특수군 중에서도 자네의 검술을 따라갈 자는 없을 거야.”

 하룬은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검술을 익힌 것은 비욘드 게임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현실로 보면 채 6개월도 안 된 것이다.

 “정말 멋졌어요! 시퍼런 날이 오르그들의 허점을 파고들어 베는 모습이 마치 거친 파도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용의 눈이 반짝거렸다. 럼과 하룬 또래의 나이로 보이는 사용의 눈에는 묘한 열기와 강자에 대한 강한 동경심이 가득했다. 그래도 빌로우 검술의 요체를 알아보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검에 대한 실력은 있어 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룬 님의 검술은 부드럽게 이어지면서도 파도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가졌더군요. 기회가 되면 꼭 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술을 제대로 수련한 이들에게는 그가 펼친 빌로우 검술이 정확하게 보였나 보다. 차가운 인상의 여검사 보련도 감탄한 눈빛으로 하룬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룬 님이 그 하룬이 맞아요?”

 그렇게 묻는 레이스의 얼굴에는 강한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역시 럼과 같은 맥락에서 묻는 말이다.

 “아마 맞을 겁니다.”

 하룬은 잠시 진실을 밝힐까 고민했지만 구구절절하게 말하기가 싫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현실에도 돌풍 용병대가 있겠네요?”

 그 질문에 하룬의 눈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현실의 용병대라고? 호오! 그거 괜찮은 생각 같은데.’

 레이스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는 그저 비욘드라는 게임을 통해 강해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그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되자 현실에서 어떻게 살지에 대해 고민하던 하룬이었다.

 ‘그런 길도 있구나.’

 변종 생물들에게 고통 받는 아우터들을 위해 헌신한다든가 아니면 유니온의 불평등한 정책에 맞서 세력을 일으켜 봉기를 해서 새로운 유니온을 건설한다든가 하는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그저 세상에 나왔기에 살았고, 허약하고 무능력했기에 이 F구역까지 밀려 아무 희망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왔다. 비록 이제 약간의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자신은 영웅도 아니고 박애주의자도 아니며 거창한 인생 목표를 정해 매진하는 지사志士도 아니다.

 그저 막연하게 답답한 유니온이 아니라 배리어 밖에서 살기로 작정한 하룬에게 레이스의 말은 강한 영감을 준 것이다.

 “그럴 수도.”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인을 하기에는 순간적으로 용병대라는 말이 가슴 깊숙이 박힌 상태였다. 물론 같은 맥락의 뜻을 지닌 호위대는 영흥 마을 전사들이나 철웅 사범이 방금 전에 한 말을 통해서도 현실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용병대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다.

 “멋져요! 하룬 님의 그런 능력이라면 배리어 밖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거예요.”

 레이스가 마치 꿈꾸는 사춘기 소녀처럼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대원은 몇 명이나 돼요? 현실에서는 어떤 의뢰를 주로 하죠? 어느 정도 의뢰까지 해 본 거예요? 대원들의 실력은 어때요?”

 레이스는 쉴 새 없이 하룬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처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니 평소 용병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나도 게임 속의 직업이라면 용병대에 가입하고 싶은데, 히잉! 어쩌지? 너무 멋있어! 배리어 밖을 돌아다니며 변종 생물들을 처리하고 의뢰를 완수하는 돌풍 용병대!”

 겉보기에는 꽤 진지하고 조신한 레이스지만 일단 흥분을 하자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정도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룬!”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럼의 얼굴은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왜?”

 “혹시 나도 돌풍 용병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 검술 실력도 그렇고 다른 능력도 없는 무능력자지만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네 용병대에 들어가고 싶어. 지금은 비록 능력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수련해서 부끄럽지 않은 대원이 될게. 네 백으로 어떻게 안 될까?”

 하룬은 럼의 간절한 표정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없는 실체까지 만들어 내는 걸까. 자신이 애매하게 대답하긴 했지만 순식간에 현실 세계에 돌풍 용병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대답해 줘. 지금은 능력이 없지만 언제까지나 하급에 머물진 않을 거야. 죽을 만큼 노력할 테니 좀 받아주라.”

 “럼!”

 하룬은 더 이상 두고 보다가는 진짜 이상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급하게 끼어드는 쏘우 때문에 그 말을 미뤄야만 했다.

 “크험! 하룬 대장, 지금까지는 단순 거래자였지만 나도 어떻게 받아주면 안 될까? 당분간만이라도 말이야. 요즘 내가 돈벌이가 없어서 무척 힘든 상황이야. 내가 만든 무기들이나 기계들은 암시장에서 아우터들에게 주로 팔리는데, 요즘 유니온 주변에 출몰하는 오르그와 하르크 때문에 그쪽 판로가 아예 막혀 버렸거든. 요즘은 연구비는커녕 먹고 죽을 돈도 안 들어와.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전자 기기와 기계류는 꽉 잡지 않았나. 코원 유니온에서 각종 기계 다루는 것은 내가 최고라는 걸 자네도 알잖아. 연봉으로 5,000만 주게. 내가 이제껏 연구한 거 전부 풀겠네.”

 그렇게 말하는 쏘우의 눈은 지금까지의 흐릿하고 풀어진 것이 아니었다. 강렬한 의지와 열정이 담겨 있는 뜨거운 안광은 쏘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이 아저씨가 지금 뭐라는 거야? 눈을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언제 봤다고 내게 이러는 거지?’

 하룬은 하도 황당해서 뭐라 대꾸도 하지 못했다. 몇 시간 전에 처음 본 쏘우가 마치 전부터 자기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부인하는 것도 귀찮고 느껴지는 그 성정이 찰거머리 같아 보여 모른 체했는데,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젠 작정하고 엉겨붙고 있었다.

 “난 연봉 따위는 필요 없어.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된다고.”

 쏘우의 말에 다급해졌는지 럼이 하룬의 손을 붙잡고 사정을 했다. 물론 현재 그의 사정을 잘 아는 하룬으로서는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할 사람도 있었다. 바로 레이스였다.

 “헤엥. 그럼 난 미약한 수준이지만 초능력도 가지고 있고 대학에서 배운 캡슐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한 5,000 정도는 받아야겠네. 아니지! 알려진 바로는 돌풍 용병대의 초년 연봉이 6,000이라고 했으니 난 그 정도는 받아야지.”

 하룬 자신은 잘 모르지만 비욘드 게임을 아는 사람들은 최근 화제의 중심에 있는 돌풍 용병대에 관한 일반적인 사실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연봉 규모까지 알려진 것이다.

 “돌풍 용병대의 이야기는 우리도 들어 알고 있소. 우리도 비욘드를 즐기는 유저들이오. 안 그래도 검관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어 다른 직업을 찾던 중인데 난 어떻소?”

 결국 총사범 철웅까지 그 소란에 끼어들었다.

 “사형! 치사하게 혼자만 돌풍에 들어가려고 그래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어딜 혼자 튀려고 해요. 우리는 자랑스러운 해무검관의 문하생이니 어딜 가입하려면 같이 들어가야지. 저, 형님! 아니, 하룬 대장님! 우리 셋을 묶어서 받아 주쇼.”

 보련과 사용의 이어지는 말에 하룬은 어지러움까지 느꼈다. 이야기만 듣는데도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저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려고 했다가 우연찮게 게임에서 사귄 친구를 만난 것이 이렇게 연결될 줄이야. 정말 머리가 지끈거렸다.

 “계약하지. 어차피 용병대라면 나같이 제대로 기계류와 무기류를 만들거나 다룰 수 있는 인재가 필수일 테니 이렇게 좋은 기회에 저렴한 연봉으로 잡게.”

 “흥! 돌풍 용병대라면 그대 같은 분은 벌써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나처럼 초능력과 최고의 효용 가치를 지닌 캡슐 기술을 가진 미녀 대원은 없을 거예요.”

 “우리 사형제는 성실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소. 대장의 선택을 기다리겠소.”

 “하룬아! 어떻게 좀 안 되겠니? 우린 친구잖아.”

 하룬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해무검관 식구들은 물론이고 레이스까지 집에 가는 것을 말렸지만 그들의 성화에 골치가 아파진 하룬은 다음 날 다시 들를 것을 약속하고야 겨우 검관을 나올 수 있었다. 해무검관을 나온 하룬은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마트에 들러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여러모로 일도 많고 지쳤지만 유니온의 집이 아니라 기지로 돌아온 하룬이 막 벨과 아리를 보러 가려고 할 때, 거실의 입체 영상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누구지? 해란인가? 아니면 나인?’

 그에게 이 늦은 시간에 통신을 보낼 사람은 그들밖에는 없었다. 리모컨으로 수신 신호를 누르자 왠지 익숙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그를 찾았다.

 “여보세요? 거기 혹시 하룬 씨 계십니까?”

 그를 찾는 목소리는 분명히 뫼비우스였다. 막 대답을 하려던 순간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이 있었다.

 ‘아! 여긴 비욘드가 아니지.’

 “누구십니까?”

 평소보다 굵은 저음의 대답에 상대방은 잠시 텀을 두었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하룬 씨 폰 아닙니까?”

 젠장! 목소리마저 미끈하게 빠졌다. 매력적인 저음이랄까? 맑으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는 강한 호감을 준다.

 “하룬은 내 비욘드 아이디입니다만. 누구십니까? 혹시 비욘드의 하룬 대장과 관계가 있습니까?”

 “아!”

 뫼비우스는 작은 탄성을 터트린다. 사정을 알아차린 것이다.

 “난 해우, 아니 뫼비우스라고 합니다. 하룬 대장이 필요하면 현실에서 동명同名의 하룬…… 씨를 만나 부탁을 하라고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요? 무슨 일입니까?”

 부탁할 일을 마랗기 전에 대단히 실례지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현실에도 돌풍 용병대가 있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삭한 녀석이다. 필요하면 만나 보라고 한 말만으로 그런 추측을 해내다니.

 ‘참 이상하네. 어떻게 하루에 두 번이나 이런 소리를 듣지?’

 그렇게 생각하니 돌풍 용병대는 자신에게는 현실이나 비욘드나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건 극비 사항입니다만.”

 “하아! 그렇군요.”

 녀석의 목소리가 대뜸 활력에 차올랐다. 극비라고 했지만 사실 존재한다고 대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하룬도 뒤늦게 깨달았다.

 “괜찮은 의뢰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용광로 마을까지 모종의 물건을 호송하는 일인데 호위가 가능할까요?”

 “그런 일이라면 아우터들이 주축이 된 호위대가 주로 합니다. 암시장 쪽에 가서 그들을 수소문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테니 그들 중에 찾아보세요.”

 하룬은 자신이 말은 꺼냈지만 그건 그 당시 마음에서 즉흥적으로 한 말이고, 사실 현실에서 뫼비우스를 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어쩐지 녀석을 현실에서 보면 질투를 느낄 것 같았다. 전처럼 여자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모르되 이젠 자신보다 잘생기고 여자들을 잘 다루는 뫼비우스를 보면 평상심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은 저도 이미 찾아봤지만 요샌 출몰하는 오르그들 때문에 쟁쟁한 호위대들도 다들 휴업 상태더군요. 아는 사람 중에 용광로 마을로 화물을 급히 보내야 하는 분이 있는데 사정이 딱합니다. 다행히 하룬 대장이 언급해 주셔서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거니 사정 좀 봐주십시오.”

 “글쎄요.”

 아직 용병대를 운영할지에 대해 결정도 내리지 못했는데 주변 상황은 아예 용병대를 만들라고 재촉을 하고 있었다.

 ‘태가사남매야 나처럼 편하게 배리어 밖을 다닐 수 있고, 해무검관 식구들이라면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적응할 수 있을 거야.아, 차라리 영흥 마을 전사들을 용병대로 끌어들일까?’

 그들이라면 지금 일감이 끊기게 생긴 어려운 상황이니 거절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사들의 실력은 아직 부족하지만 로수는 게임으로 치면 익스퍼트에 근접한 근접한 실력자에, 특히 나인의 초능력이면 전투력에도 상당한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럼 레이스 누나까지 합하면 제법 강력한 전력이 될 것 같다. 거기에 쏘우 아저씨의 무기 제작술과 지식이라면 해볼 만해.’

 하룬의 침묵이 길어지자 뫼비우스는 긴장이 되는 듯했다.

 “1억입니다. 600킬로그램의 화물만 전달하면 되는 일입니다. 돌풍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룬은 들뜨고 흥분한 뫼비우스의 목소리를 통해 녀석이 적지 않은 중개료를 챙기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거기에 정찰 사이보그인 호크의 정보력과 얼마 후에 깨어나면 인공위성을 이용할 수 있는 벨의 능력이라면 별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뫼비우스 때문에 용병대 창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들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세워지고 있었다. 사실 하룬이 현재 가진 모든 힘이라면 벨과 태가사남매만 있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자 하룬은 강한 흥미를 느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막막하던 현실에서의 삶에서 중요한 기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첫 거래이니 내 중개료를 포기하지요. 1억 2천 모두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중개가 제 사업의 첫 거래입니다. 비욘드의 하룬 대장을 봐서라도 꼭 좀 부탁합니다.”

 뫼비우스는 결국 자신의 중개료까지 포기하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너도 장사꾼이 되긴 글렀다. 이렇게 협상을 못 해서야.’

 하룬은 현실에서 녀석과 얼굴을 맞대는 것은 불편했지만 그래도 이 세계에서 자신의 기반을 어떻게든 마련하려는 뫼비우스가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만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어디서 볼까요?”

 “B구역이면 좋겠는데 혹시 올 수 있겠습니까?”

 유니온의 구역 간에는 룰이 있다. S구역이있는 코어 쪽으로는 상위나 차상위 두 구역까지만 갈 수 있고, F구역이 있는 변경 쪽으로는 마음대로 갈 수 있다. 물론 특별한 출입증이 있으면 최상위 구역이라도 갈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직장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장소를 말해 보시지요.”

 “B-4구역의 알파 플렉스 몰 45층에 있는 과일 전문점에서 보면 어떻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당연히 갈 수 있다는 하룬의 말에 뫼비우스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 운송 건은 게임에서 만난 유저들 중 인맥이 넓어 보이는 자들을 영입해서 만든 현실의 정보 길드가 추진한 첫 거래였다.

 ‘좋아! 이제 시작이야!’

 비록 자신이 추구하는 정보 거래가 아니라 거래의 중개에 해당하는 일이지만, 의뢰자가 암시장의 상점 몇 개를 포함해서 꽤 큰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라 이번만 제대로 성공해서 신뢰를 쌓으면 앞으로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다.

 ‘역시 구역은 어디든 상관없다 이거지. 하긴 이곳의 돌풍이 비욘드의 돌풍 용병대의 반의반만이라도 된다면 그 정도 능력은 당연한 일이겠지.’

 게임 안의 돌풍과 달리 이름뿐인 허접스러운 곳이나 그가 잠시 우려한 대로 어둠의 조직이라면 당연히 F구역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가 아는 대부분의 호위대들은 그 근거지가 F구역이었다.

 그런 그들은 유니온 중상층 주민이 사는 B구역에는 당연히 출입할 수 없다. 적어도 하룬 본인 역시 최소한 D구역에 거주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돌풍 용병대 역시 그저 그런 정도의 호위대와는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하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어린 시절 B구역에서 산 적이 있었다.

 각 구역에 방위별로 네 개가 있는 플렉스 몰은 리얼 시네마와 놀이 시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모인 복합 공간으로 주민들의 유동이 가장 많은 곳이다. 물론 식당가도 있는데 유니온에서 제대로 생산이 되지 않는 과일 전문점은 보통 주민이라면 그 비싼 가격 때문에 B구역 거주자라 해도 여간해서는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다.

 “좋습니다.”

 하룬은 뫼비우스와 다음 날 저녁 6시에 약속을 정했다. 아직 아침이지만 혹시라도 그 일을 맡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사람들을 수배해야만 했다.

 ‘그래! 이참에 아예 현실에서 용병대를 만들어 보자. 까짓 못 할 것도 없지.’

 어차피 게임은 게임일 뿐 자신이 살아야 할 곳은 현실이다. 보더러로 평생 F구역에서 희망 없이 살다가 이제 무엇을 할 만한 힘과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뭔가 잘할 수 있는 일로 삶의 기반을 만들고 싶었다.

 뫼비우스의 전화가 현실에서 돌풍 용병대가 태어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허업!”

 뫼비우스는 하룬을 보는 순간 기겁을 했다.

 ‘설마 이렇게 비슷할 줄이야!’

 그간 게임에서 그가 보아 온 하룬의 얼굴과 너무 비슷했다. 방송사에서 추측하고 있는 대로 아이디만 빌렸거니 하고 생각하던 그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약간 다르긴 하군.’

 긴 머리를 천 끈으로 뒤로 질끈 묶어 가지런하게 정리한 얼굴은 거칠고 날카롭던 게임 속의 하룬 대장과는 차이가 있었다.

 좀 앳되다고나 할까. 자신처럼 미끈한 얼굴은 아니지만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다만 깊은 눈과 강렬한 눈빛에서 야기되는 거칠고 강렬한 느낌은 영락없는 비욘드의 하룬이었다.

 “하룬이라고 합니다.”

 “뫼비우스라고 불러주세요.”

 악수를 하고 자리에 앉은 뫼비우스는 첫 만남의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비욘드의 하룬 대장과 너무 비슷해서 순간적으로 착각을 할 뻔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전 그다지 닮았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아마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영락없이 형제라고 했을 겁니다. 처음에 멀리서 봤을 때는 동일인이나 쌍둥이가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나이 차이는 나 보이는군요.”

 하룬은 대답 대신 고소를 지었다. 게임 속 아바타와 자신의 차이는 얼굴색과 잘 다듬은 머리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이다. 뭐, 걸친 옷도 한몫했을 것이다. 옷이 날개라니까.

 “형이랑 관계가 있다고요?”

 게임 속 아바타를 뭐라고 호칭할까 고민하던 하룬은 이왕지사 뫼비우스가 나이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편승해서 그냥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자신을 형으로 지칭하는 정말 골 때리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네, 대장이 절 많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하하!”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는 외모를 가진 뫼비우스가 웃자 서빙을 하던 아가씨가 공연히 마음이 설레는지 얼굴을 붉히며 몽롱한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형과 잘 아는 분이라 나왔습니다만 현실의 돌풍 용병대는 그곳처럼 활동이 공개적이지 못합니다.”

 “그 점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유니온이 워낙 폐쇄된 세상이라서 그런 줄은 알고 있지요. 하하하! 정말 놀랐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보긴 했지만 정말로 현실에 돌풍 용병대가 있을 줄이야. 그것도 비욘드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돌풍 용병대가 말이죠. 생각해 보니 군부에 강철이나 합금류의 무기를 납품하는 암시장의 유명한 박살 대장간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것 아닙니까?”

 뫼비우스 딴에는 자신이 돌풍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점을 피력하려고 한 것이지만 하룬은 박살 대장간과 연관되는 것이 마음에 좀 걸려 본론으로 넘어갔다.

 “의뢰하고자 하는 일을 듣고 싶습니다.”

 “네. 사실 이번에 제가 아는 분이 용광로 마을에 물건을 납품해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최근 유니온 주변에 오르그들이 몰려들어 출몰하다 보니 운송을 할 사람들을 구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럴 것이다. 화물 운송은 아니지만 주로 호위를 맡아 일을 하는 나인과 영흥 마을 전사들도 당분간 일을 포기하고 수련에 매진하겠다고 할 정도로 유니온 밖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간 아우터 마을과 이너 상인들 간의 교류에 한몫을 했던 운송 전문 단체나 호위 단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화물은 어떤 종류입니까?”

 “밖에서 구할 수 없는 의약품들과 캡슐 부품, 희귀한 식재료 그리고 옷 종류들입니다.”

 “부피가 좀 있겠군요.”

 “그, 그렇죠.”

 사실 부피가 좀 컸다. 총무게야 600킬로그램에 불과하지만 부피 때문에 이 물건을 전하기 위해서는 짐꾼 열다섯 명에 호송 인원까지 최소 스물다섯 명은 필요했다. 더구나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호송 인원은 평소보다 훨씬 더 늘어나야만 했다.

 요즘 출몰하는 오르그들은 최소 오십에서 백 단위인 상황이라 최소 백 명은 맞추어야 물건을 제대로 호송할 수 있으니 누구도 그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다들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보수는 제 몫까지 합해 총 1억 2천이며 시한은 열흘 안에 배달을 완수하는 조건입니다.”

 “열흘 안에 물건을 운송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보수는 좀 그렇군요.”

 사실 정확한 시세를 모르고 있기에 이것이 적정한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게임 속에서의 경험이 있기에 해본 소리였다. 한데 그 소리에 당장 뫼비우스의 얼굴이 곤혹스러워지고 있었다.

 “그, 그게…….”

 뫼비우스도 처음에는 이 제의를 받고 웬 떡이냐 싶어 책임지고 중개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배리어 밖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진 줄은 몰랐다. 게임을 통해 맺은 인맥을 총동원해서 알아봤지만 지금은 돈을 아무리 주어도 할 사람이 없었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내 볼일을 보기 위해 사이언스 마을도 들를 생각이니까. 그 길에 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이번에는 형의 얼굴을 보아서 처리를 해주지요. 혹시 다음에도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때는 제대로 받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뫼비우스는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첫 의뢰에 자신만만하게 승낙은 해 놓고 하겠다고 나서는 호위대를 찾지 못해 골치를 썩이던 뫼비우스로서는 선선하게 의뢰를 수락한 하룬이 정말 고마웠다.

 ‘아무튼 하룬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은 내게는 놓치지 말아야 할 대상들이야. 의리도 있고 능력도 있으니 내게는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나 다름없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신과 나이도 비슷하게 보이는 하룬과 어떻게든 친구 관계를 맺고 싶었던 뫼비우스는 그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이젠 친구가 아니라 제대로 대접을 해야 하는 거래선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물건을 반출할 암도는 어딥니까?”

 바란과 나인에게 들은 바로 유니온 밖으로 통하는 암도의 숫자는 꽤 많았다. 그 모두가 상인들이 높은 이윤이 보장되는 아우터 마을과의 교역을 추구한 결과였다.

 “암시장 지하 3층에 있는 상점 창고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뫼비우스는 자세한 상점의 이름과 위치 그리고 운송할 화물의 목록이 적혀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럼 사흘 후 새벽까지 그곳으로 가도록 하지요.”

 “그럼 그렇게 알고 준비하겠습니다.”

 뫼비우스는 용건을 끝내고 서둘러 일어나는 하룬을 잡지 못했다. 게임 속 하룬 대장이 그렇듯 행동에 절제가 있으면서도 단호해서 뭐라 끼어들거나 간섭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제길! 친구 먹으려 했는데. 하긴 그래도 이게 어디냐? 내가 그 유명한 돌풍 용병대와 현실과 게임 속에서 이렇게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이 더 중요하지. 앗싸아!’

 뫼비우스는 과일 전문점을 나서는 하룬의 뒷모습을 보면서 주먹에게 힘을 주었다.

 ‘헤니에게나 들러야 되겠다. 흐흐흐! 가서 자랑해야지. 걔도 현실에 돌풍 용병대가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내가 직접 만났다고 하면 깜짝 놀라겠지.’

 이젠 제법 친해진 백사회 친구들을 볼 생각에 뫼비우스는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생과일주스를 단숨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들른 백사회 사무실은 무척이나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젠 여기도 좁은걸.’

 뫼비우스는 수십 명이 넘는 인공수정체 친구들에게 일일이 알은체를 하며 만나고자 하는 얼굴을 찾았다. 여자애들이 자신을 보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야 어디 가도 마찬가지지만 자신과 같은 운명체라는 생각 때문인지 여기만 오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머! 뫼비 아니니?”

 “하하! 헤니구나.”

 뫼비우스는 자신을 알아보는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다가 눈이 커졌다. 헤니를 따라 한방에서 나온 익숙한 얼굴들을 봤던 것이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은근한 적의를 품은 채 아레스가 물었다. 이제껏 제대로 여자 한번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아레스는 뫼비우스를 은근히 싫어했다. 거기에 얼마 전 원고 건으로 인해 둘 사이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하! 헤니 보러 왔지.”

 “쳇!”

 “오랜만이야, 뫼비우스!”

 코웃음을 치는 아레스의 옆에 서 있던 매그럼이 그에게 알은척을 해왔다.

 “넌 오늘은 안 바쁜가 보네.”

 “응. 오늘은 비번이거든.”

 “그렇구나.”

 사실 매그럼은 너무 모범생이라 그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지만 게임 속에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눠 본 후론 그런 선입관을 버렸다. 비록 자신과는 달리 좋은 양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녀석 역시 자신이 인공 수정체라는 자각 때문에 꽤 아픈 성장통을 겪었고, 좋은 방향으로 노력해서 나름 성공한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래, 무슨 일이기에 이곳까지 왕림을 하셨나? 한창 미녀들과 놀고 있을 줄 알았는데.”

 헤니가 살짝 이죽거리며 물었지만 뫼비우스는 전하고 싶은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가 바람둥이라는 것은 알 만한 인공수정체 형제들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사실은 하룬 대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다.”

 “응?”

 헤니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캘프란 마을을 어떻게 알고?”

 세 사람은 뫼비우스의 말에 각기 다른 의미의 놀람을 드러냈다. 뫼비우스는 정보를 쥐고 있는 자의 뿌듯한 감정을 잠시 만끽했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혼자, 혹은 먼저 안다는 것은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든 자긍심과 함께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이 맛에 내가 정보 길드를 만들려고 하는 거지.’

 “비욘드에 있는 하룬 대장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돌풍 용병대를 이끄는 하룬 대장 말이야!”

 뫼비우스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세 사람의 눈은 그야말로 찢어질 듯 커져버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세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뭐, 뭐라고?”

 “정말이야? 현실에도 돌풍 용병대가 있어? 하룬이라는 대장도 있고? 그게 사실이야?”

 아레스와 매그럼이 겨우 숨을 내쉬며 소리를 지를 때 헤니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잠깐 이리 와 봐!”

 뫼비우스는 너무나 박력 있게 자신을 끌고 방금 나온 방으로 들어가는 헤니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말해 봐! 그게 무슨 소리야? 현실에도 돌풍 용병대가 존재한단 말이야?”

 테이블 하나에 의자 몇 개가 있는 회의실 용도의 방에 들어온 헤니가 강한 눈빛으로 뫼비우스를 노려보았다. 매그럼과 아레스는 물론 언제 따라왔는지 황 박사까지 들어와서 그의 입을 주시했다.

 “사실 고요의 평원에서 헤어질 때, 내가 현실과 비욘드를 아우르는 정보 조직을 만들겠다고 하니까 대장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현실의 박살 대장간을 통해 하룬을 찾으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 코원 유니온에도 하룬이라는 휴먼이 존재한다 이거야?”

 “응!”

 담담한 뫼비우스의 말에 네 사람은 강한 충격에 빠졌다. 그래도 헤니가 가장 빨리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럼 방송사 기자들의 추측이 사실이었단 말이네. 좋아,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현실의 돌풍 용병대라는 건 뭐야?”

 “응. 이번에 아는 사람을 통해 배리어 밖 용광로 마을까지 물건을 운송하는 일을 중개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거든. 사실 난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덥석 받았는데 그게 쥐약이었어. 너희들도 알다시피 요즘 오르그들이 난리도 아니잖아.”

 그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새벽에 한 무리의 오르그들이 난입해서 여자 수십 명을 납치하려다가 특수군에 소탕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던 것이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목표물이 여자인 데다가 이전에 출몰하던 오르그들과는 달리 꽤나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아무리 이 일을 맡을 사람들을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한다는 데를 못 찾았어. 그러다가 하룬 대장이 한 말이 생각나 박살 대장간에 들렀지. 거기서 하룬이라는 이름을 듣고 연락처를 받았어.”

 “으음.”

 네 사람은 뫼비우스의 말에 침음성을 토해냈다. 하룬이라는 유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들은 그저 하룬 대장이 그 아이디만 빌린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말은 단순히 이름을 빌리고 빌려 준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만났지.”

 “만났어?”

 “응. 만나 보니 하룬 대장과 정말 많이 닮았더라.”

 “아!”

 뫼비우스의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때 황 박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동일 인물은 분명 아니었나?”

 “네. 처음에 본 순간 그 외모와 풍기는 이미지가 너무 비슷해서 동일인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더군요. 일단 외견상으로 봐도 나이가 더 어리고 얼굴색이나 목소리도 다르더군요.”

 “비욘드의 하룬 대장이 이방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어요. 겨루와 방커가 분명하 목욜을 같이하면서 성기, 아니 그 증거를 확실히 봤대요. 그래서?”

 헤니는 황 박사에게 두 하룬이 동일인이 아님을 설명해주고 뫼비우스를 재촉했다.

 “하룬 대장 이야기를 하면서 부탁을 하니까 잠시 고민을 하더니 운송 건을 수락하더라고. 원래 이런 시시한 일은 하지 않는데 비욘드의 하룬 대장의 얼굴을 봐서 이 건을 처리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실력은 어때 보여?”

 아레스였다. 아무래도 그는 믿기가 힘든 얼굴이었다.

 “그야 모르지. 아무튼 요즘 배리어 밖 상황을 잘 아는 것 같았어. 그런데도 전혀 불안한 표정이 아니었어. 마치 하룬 대장의 그 포커페이스처럼 담담하더라고. 자세한 생김새나 나이는 차이가 있지만 그 기질이나 분위기는 나란히 있었다면 누가 보더라도 형제라고 생각할 정도로 비슷했어.”

 “으음, 이건 정말 사건이네.”

 아레스는 눈매를 좁히고 이마에 세 줄기 주름살을 만들었다.

 “그러게 .현실에도 돌풍 용병대가 존재한다니 정말 놀라워. 하지만 어쩐지 멋있는걸.”

 매그럼은 뭔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지 눈이 몽롱해졌다.

 “왜 대장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헤니는 현실에 돌풍 용병대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는 이제 왜 하룬이 자신에게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 고민이 되는 얼굴이었다.

 “허허허! 그건 간단하지. 아마 비밀을 유지하려고 했을 거야. 이 유니온 내에서 그들의 능력이 필요할 일은 없으니 그들은 주로 배리어 밖에서 활동을 했겠지. 위험이 상존하는 그곳이라면 의뢰할 이들은 넘칠 테니까. 유니온 정부나 대기업들은 물론 상인들까지 말이야. 그러니 굳이 자네에게까지 알릴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하룬이라는 인물이 동일인이 아닌 이상 연관은 있겠지만 그 업무까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할 테니 말이야. 그나저나 현실의 하룬과 비욘드의 하룬이라는 인물들도 대단하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지? 비욘드야 출시한 지 이제 겨우 1년도 안 됐는데 말이야.”

 황 박사의 말에 헤니는 뭔가 이해하는 눈치였다.

 ‘그래. 박살 대장간의 해란이 현실과 게임 속의 하룬과 관계가 있는 거였어. 아마 일종의 중개 역할을 했을 거야.’

 헤니는 당장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하룬이라는 현실의 인물을 만나고 싶었다. 다른 확인 대상인 게임 속의 하룬 대장은 모종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홀로 길을 떠났으니 현실의 하룬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어디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건 왜?”

 “한번 만나 보고 싶어서 그러지. 나야말로 그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잖아. 이미 게임 속 돌풍 용병대의 대원이라고. 너보다야 훨씬 가까운 사이니까.”

 헤니의 말에 뫼비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헤니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녀가 굳이 하룬을 만날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흘 뒤 새벽에 운송할 물건이 있는 암시장의 한 창고에서 보기로 했어.”

 “좋아. 너도 갈 거지?”

 “그럼. 나야 중개자니 당연히 가야지.”

 “그럼 나도 간다. 어차피 이곳 일은 보라와 다른 친구들이 처리할 수 있으니 나도 이번 여행에 동행해야겠어.”

 헤니의 말에 뫼비우스가 펄쩍 뛰었다.

 “흡! 그게 무슨 소리야? 너무 위험해! 하룬 대장이 허락할 리가 없어.”

 “아니야. 내가 명색이 비욘드에서 돌풍 용병대원이야. 게임 속 직업만 치료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치료술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두 사람이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면 현실의 하룬 대장도 날 쉽게 내칠 수는 없을 거야.”

 “도대체 왜 그를 따라가려는 건데? 위험하다고. 지금 유니온 밖 상황이 얼마나 흉험한 줄 알아?”

 이번에는 매그럼이 나서서 헤니를 말렸다. 군부에 근무하는 양아버지를 통해 바깥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야. 이번이 어쩌면 우리 백사회가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다들 강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유니온에서 인정하는 능력자는 얼마 되지 않잖아. 하지만 밖이라면 다를 수도 있어. 특히 돌풍 용병대가 게임 속과 비슷하다면 우리 백사회 형제들도 돌풍 용병대에 어떻게든 들어가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헤니의 말에 네 사람은 충격으로 인해 말을 잊었다. 헤니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백사회의 취지가 바로 인공수정체들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유니온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능력자들이 대다수지만 밖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

 ‘하룬이라는 임루이 게임 속 대장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도와준다면 우리 인공수정체들은 보다 더 밝고 안정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거야.’

 아직 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넥컴월에서 퇴사하고 합류한 황 박사가 그동안 연구한 바에 따르면, 자신을 포함한 인공수정체들은 뭔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로운 가능성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룬이라는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꾸 희망적인 생각이 들어!’

 헤니는 자신도 모르게 하룬이라는 이름을 되뇌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허허! 그럼 나도 가도록 하지. 어쩌면 유니온 밖에 자네들 인공수정체들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소문으로 들은 몇 가지 사실을 보면 배리어 밖의 환경과 인공수정체들과는 묘한 관계가 있거든.”

 황 박사의말에 헤니는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녀 역시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갈래. 어차피 당분간 비욘드에는 흥미로운 기삿거리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아레스까지 나섰다. 기자인 그로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돌풍 용병대에 강렬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가만! 재미있겠는걸. 배리어 밖이라. 어떤 곳일까? 젠장, 나도 따라가고 싶네. 현실의 돌풍 용병대가 비욘드의 절반 실력만 되어도 내 안전은 보장될 테니 별 위험은 없을지 몰라. 어릴 때야 세뇌 교육에 배리어 밖이 두려웠지만 알 거 다 아는 지금은 배리어 밖이 어떤 모습인지 진짜 보고 싶어.’

 뫼비우스는 문득 배리어 밖 세상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조직망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 언젠가는 나도 이 좁은 세상을 벗어날 기회가 있겠지.’

 짧은 순간 갈등에서 벗어난 뫼비우스는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회사에 매인 매그럼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유니온 최고의 직장이라는 넥컴월의 정식 GM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그는 가고 싶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위험할 거야!”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니! 우리가 아는 하룬 대장이 믿는 휴먼이라면 능력이 약할 리가 없어. 더구나 돌풍 용병대의 이름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돌풍 용병대원인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하는 헤니의 말에 매그럼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이 사람들을 하룬 대장이 받아 줄 리가 없겠지.’

 하지만 그것은 생각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휴가를 내서라도 따라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가만! 지난번에 언제라도 휴가를 쓰라고 했지?’

 매그럼의 마음이 바빠졌다. 당장 회사로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현실에 돌풍 용병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꽤 가치 있는 정보 같은데. 게임과 관련이 없다고 뭐라고 하려나?’

 매그럼은 서둘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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