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그린 엘프 일족 (105/278)

《그린 엘프 일족》

 하룬은 비수의 진동음이 강해지는 통로로 방향을 정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동의 정도를 감지하는 것은 여간 주의력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이동이 느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거의 하루를 꼬박 걸은 하룬은 휴식을 취했다. 밤낮이 없는 곳이지만 각성한 육체적 능력 때문에 본능적으로 밤낮은 구분할 수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몸 상태를 최적으로 유지하는 데 가장 좋다는 것을 하룬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그 다음 날도 하염없이 통로를 걸어야 했다. 내심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던 볼카웜과의 조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하를 종횡으로 관통하고 있는 통로의 숫자를 보면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이렇게 눈이 띄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오감을 모두 끌어 올린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하룬은 결국 제법 넓은 공동에 도착하자 좀 이르기는 하지만 쉬기로 했다. 비수가 발하는 진동폭을 감지하며 움직이는 것이 볼카웜과 싸우는 것보다 더 고역이었다.

 막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한 후 휴식을 하려던 하룬은 갑자기 몸을 멈칫거렸다. 계속 오감을 끌어 올렸던 터라 예민해진 그의 감각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걸려들었다.

 ‘뭐지? 호흡 소리인가?’

 미약하지만 생명체가 감지되었다. 하룬은 혹시 몰라 본 소드를 꺼내 들고 공동을 살폈다. 반경 30미터 정도 크기의 공동 한쪽에 통로가 아닌 동굴이 발견되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니 통로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 안에서 미약한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동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 하룬은 안쪽 깊은 곳에서 시체처럼 이곳저곳에 쓰러져있는 일단의 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엘프들은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미약한 호흡을 할 뿐 의식도 없는 상태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엘프들이 이 깊은 지하에 왜 왔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이런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지 궁금했다. 하룬은 비교적 호흡이 길고 강한 한 엘프를 골랐다. 생김새로 보아 여자인 것 같았지만 확신은 못 하겠다. 가슴이 완전 절벽이었던 것이다.

 하룬은 그 엘프의 입을 열어 체력 포션을 조금씩 흘렸다. 엘프는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도 입안에 포션이 고이는 순간 꿀꺽 그것을 삼켰다. 마지막까지 체력 포션을 모두 먹이고 나서 조금 시간이 흐르자 엘프가 정신을 차렸다.

 “으으으. 물…… 물!”

 물을 찾는 것을 보니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았다. 하룬은 급하게 마법 배낭에서 물주머니를 꺼내 조금씩 물을 흘려 주었다. 목이 많이 말랐는지 계속 물을 마신 엘프가 잠시 후 눈을 떴다.

 “누, 누구?”

 “하룬이라고 합니다.”

 엘프는 하룬을 보려고 눈을 몇 번이나 감았다 떴지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나던 길에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무슨 일을 당한 겁니까?”

 “지나던 길이라고요?”

 엘프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하룬이 물은 것에 대답을 했다.

 “그게…… 길을 잃고 먹을 것이 떨어져서…….”

 안 그래도 엘프의 배가 신호를 보냈다. 말라붙었던 창자에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잠시 기다려요. 먹을 것을 요리할 테니까.”

 “고마워요.”

 하룬은 마법 배낭에서 곡물 가루와 야채 가루 그리고 버섯 가루를 꺼내 물에 풀었다. 하룬은 엘프의 머리를 받치고 자세를 잡은 다음 걸쭉하지 않게 잘 섞은 가루들을 엘프의 입에 조금씩 흘려 넣었다. 엘프는 무척이나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그걸 먹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니 조금 있다가 먹어요.”

 “쩝! 쩝! 아, 알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이제 보니 여자였다. 말하는 태도도 그렇게 발그레해진 얼굴을 보니 확실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색이 좀 이상했다. 일전에 만났던 엘프들과는 달리 얼굴에 푸른빛이 살짝 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이 뭡니까?”

 “다이리스예요. 그린 일족이죠. 댁은 어느 일족이세요?”

 “아, 난 엘프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용병이지요.”

 “네에?”

 다이리스라는 엘프가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내 다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 모습에 하룬이 급하게 그 엘프의 상체를 밑에서 받쳤다.

 “미안하지만 근처에 발광석이 있으니 좀 찾아 주시겠어요?”

 자신을 구한 존재가 인간이라니 궁금했던 모양이다.

 “알았습니다.”

 하룬은 동굴 구석을 뒤지다가 한 엘프의 몸 아래에서 발광석을 찾을 수 있었다. 발광석을 움푹 들어간 벽 중간에 올려두자 동굴 안에 빛이 퍼졌다.

 다이리스는 잠시 물끄러미 하룬을 보았는데 인간을 처음 보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고마움이 섞여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린 일족이라면 다른 일족도 있습니까?”

 “네. 이 잃어버린 대지에는 모두 여섯 종족의 엘프들이 살고 있어요.”

 “아! 그럼 혹시 피부색으로 구분합니까?”

 “네.”

 “그럼 그들은 다크 엘프들이었구나.”

 하룬의 말에 다이리스의 눈이 커졌다.

 “그들……. 그들을 만났나요?”

 “네. 그들의 로드를 만났습니다.”

 “정말요?”

 다이리스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러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대로 놔두었다. 얼마 후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제 동료들은 어때요?”

 다이리스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곳저곳에 쓰러져 있는 엘프들 모습을 보고 혹시 죽었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상태가 안 좋기는 하지만 죽진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차례대로 물을 먹일 생각이었습니다.”

 하룬은 하급 체력 포션을 꺼내 주변을 돌며 엘프들에게 먹였다. 생기가 거의 꺼져 가는 엘프는 포션을 삼키지도 못해 입을 마주대고 바람을 불어 강제로 넘어가게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체력 포션을 마신 엘프들은 하나둘씩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고, 모두가 기갈을 호소했다.

 ‘이건 완전히 보모가 된 기분이네.’

 물까지 차례대로 먹인 하룬은 이제 조금 기력을 찾은 다이리스의 도움을 받아 물에 탄 곡물 가루를 그들에게 먹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에야 엘프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사이 다이리스는 식욕을 회복하고는 남은 것을 모두 마셔 치웠다.

 의식을 되찾은 엘프들은 처음 보는 인간족이 자신들을 구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가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물론 인간의 말을 자신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건 하룬은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엘프들이 불편해할까 봐 동굴 밖으로 나간 하룬은 잠을 청하는 대신 마나 플로를 돌렸다.

 ‘목숨을 구해 주었으니 나쁜 의도를 가지지는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암습을 몇 번 받은 후에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하룬은 서서히 의식을 자신의 내부로 옮겼다. 다만 한 가닥 의식을 남겨 바깥 상황을 계속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엘프들은 어느 정도 기력을 되찾긴 했지만 워낙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곧 다시 조용해졌다. 하룬이 그들을 다시 본 것은 몇 번이나 마나 플로를 돌리고 난 후였다.

 “난 그린 일족의 원로인 바리아라고 합니다.”

 중년으로 보이고 잘생기고 호감이 가는 엘프였다. 그가 여기 있는 엘프들의 대표로 보였다.

 “반갑습니다. 난 돌풍 용병대의 대장 하룬이라고 합니다.”

 “역시! 정말 기이한 일이군요. 어떻게 다른 언어를 말하면서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는 건지. 이런 일은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아마도 미리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언어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도 아는 것이 없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하룬이 말할 의사가 없는 것을 눈치 챈 바리아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았다.

 “하룬 대장을 조금만 더 늦게 만났다면 우리는 아마 굶어죽고 말았을 겁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서로 돕고 살아야지요. 안 그래도 볼카웜 때문에 불안한 곳이니 말입니다.”

 “볼카웜도 아십니까? 어떻게 이 지하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어쩌면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인간이 지상도 아닌 지하에 나타나 죽어 가는 자신들을 구했으니 말이다. 400년이 넘도록 바리아는 인간을 만나 제대로 이야기조차 나눈 적이 없었다.

 하룬은 자신이 지하로 내려온 이유에 대해서 짧게 설명했다.

 어느새 하룬의 주위로 엘프들이 모여들어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들의 눈빛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차 강해졌다.

 그의 말이 끝나자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차례로 깨어난 엘프들이 언젠가부터 하룬과 바리아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와아! 볼카웜을 잡다니!”

 “인간들도 대단하네.”

 일단 감탄의 대상이 된 것은 인간들이 볼카웜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던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볼카웜을 잡았다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 반응으로 보아 볼카웜이 이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하긴 대단한 놈이긴 했지.’

 그 많은 강자들이 그놈 하나 때문에 죽어 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엘프들을 둘러보던 하룬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된 바리아 원로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뭐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으음!”

 바리아는 대답하는 대신 강한 침음을 터트렸다. 그의 반응에 하룬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볼카웜은 한 마리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왜 갑자기 그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한 마리가 아니라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 볼카웜도 생명체인데 당연히 한 마리일 리는 없는 것이다.

 “볼카웜은 복수심이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입니다. 평소에는 먹을 만큼만 먹이 활동을 하지만 그들 일족이 피해를 당하면 달라집니다.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살아있는 생물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살육을 벌이는 놈입니다.”

 “그럼 그 말은?”

 하룬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크 엘프들이 일부러 이런 상황을 유도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마 지금쯤 트레저 분지에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볼카웜들이 처참한 살육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인간들이 대지를 딛고 있는 한 아무 징조도 없이 일정한 범위의 지반을 한순간에 빨아들이는 볼카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각 진영의 최강자들이 모두 던전에 들어가고 난 상황이라면 볼카웜을 상대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게다가 검증의 관은 원하는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엘프들은 그곳의 안전을 수호할 뿐 들어가는 것을 막거나 조건을 달아 선택할 권한이 없습니다.”

 “검증의 관요? 난 황제의 계단이라고 들었는데.”

 “아닙니다. 검증의 관이 맞는 이름입니다. 다크 엘프의 로드가 왜 그렇게 이름을 바꾸어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고대로부터 검증의 관으로 불려 왔습니다.”

 뭔가 음모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설마 엘프 로드가 이름을 속였을 줄은 몰랐다.

 ‘혹시 골든 배틀을 치르는 황자들을 노리고 이름을 유혹적인 것으로 바꾼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1황자와 1황녀의 눈에서 빛이 났으니 말이다. 그들이 바라던 것을 안겨 준 것처럼 기뻐했던 것이다.

 “혹시 우리보다 먼저 이곳을 찾은 인간들이 있었습니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뜬금없이 검증의 관이 발견된 것도 그렇고, 다크 엘프 로드가 그 이름을 속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뭔가 인간들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있었다는 사실은 들었지만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레이브 시티에 있는 우리 일족의 로드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찾아온 것은 맞았다. 그 인간 혹은 그 세력이 검증의 관으로 밝혀진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린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제국 정보 길드와도 관계가 있는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곳에서 이렇게……?”

 그 말에 바리아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말했다.

 “새로 선출된 다크 일족 출신의 통합 로드가 전 종족에 전사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인간들과 손을 잡고 이 잃어버린 대지를 떠나 풍요로운 땅에서 우리 엘프들의 천년 왕국을 세우겠다고 말입니다.”

 마음이 급해졌다. 분명히 뭔가 검증의 관을 둘러싸고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린 일족은 통합 로드 선출 건으로 인해 다크 일족과 심각하게 대립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차례 유혈 사태가 있은 후 세력에서 밀린 탓에 불가피하게 우리 일족의 상당수가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블루와 그린 일족이 사이좋게 섞여 사는 우리 마을도 통합 로드의 명령을 받았습니다만 우리는 그 명령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거부하면 배신자로 몰려 척살되기 때문에 제가 마을의 전사들을 인솔해서 일족의 비상 주거지인 그레이브 시티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들은 것과는 달리 지하 암도가 너무 복잡해서 볼카웜을 피해 몇 번 길을 잃은 후엔 방향감각을 상실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리 준비한 식량도 다 떨어져 버렸고요.”

 바리아는 그것이 자신의책임이라는 듯 심각하게 자책하는 얼굴이었다.

 “이미 종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고요?”

 “네. 다크 일족이 다른 일족들을 힘과 폭력으로 강제로 지배하려고 하니까요. 안타까운 것은 다크 일족과 맞대응할 수 있는 그린 일족이 졌다는 사실입니다.”

 사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더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다크 일족이 내린 전사 총동원령을 거부하고 그린 일족이 중심이 되는 저항 세력에 동참하기 위해 그레이브 시티를 찾아 지하로 내려온 것이다.

 “어쨌든 먼저 기운을 차리십시오. 일단 대충이라도 식사를 해야겠습니다. 비록 조리를 할 수는 없지만 식량은 충분히 가져왔습니다.”

 하룬은 곡물과 야채 그리고 버섯 가루를 물에 잘 풀어 빵과 함께 식사 거리를 준비했다. 엘프들은 오랫동안 굶주렸던 만큼 그의 권유에 기다렸다는 듯 식사를 시작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곡기를 섭취한 엘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완연하게 기운을 되찾은 바리아가 감사 인사를 했다.

 “괜찮습니다. 이런 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서로 돕고 사는 거지요. 전 곧 출발할 겁니다. 제가 가진 식량을 좀 나누어 드리죠.”

 하룬은 마법 배낭에서 꽤 많은 양의 식량을 꺼냈다. 도네이스가 다카린 용병단 보급품에서 엄청나게 빼내 온 것들을 챙긴 것이다. 엘프들은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기에 육포 같은 육류는 피했다.

 그리고 혹시 몰라 하급 체력 포션도 몇 병 챙겼다. 또 양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도 여섯 개나 꺼냈다. 물이야 나이아가 있으니 자신은 크게 필요하지는 않아 두 개만 남겨 두었다.

 하룬이 식량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던 엘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곧 동굴 안은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그런 변화를 감지한 바리아가 몇 번이나 망설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하룬 대장은 어디로 가십니까?”

 처음부터 궁금했을 텐데 지금까지 묻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정해 놓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아주 특별한 물건을 찾아야 합니다. 저와 인연이 있는 분이 오래전에 남긴 비수인데 그 신호가 이곳 지하에서 감지되었습니다. 신호를 따라 가보려고요.”

 그 말에 바리아의 표정이 약간은 풀렸다.

 “혹시 이 지하 통로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아니요. 붉은 모루 부족의 드워프들이 만들어 준 지도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 위쪽만 조사해서 만든 것이라 이 아래쪽은 잘 모릅니다.”

 바리아는 뭘 기대했는지 그의 말에 약간 실망한 얼굴이었다. 묵묵히 떠날 준비를 하는 하룬을 지켜보던 그는 결심한 듯 입술을 한번 질근 물더니 입을 열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여행이 오래되어 그런지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지금의 제 능력으로는 우리 일족이 거주하는 그레이브 시티를 찾아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좀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용병이라면 의뢰를 받아 해결해주고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들었는데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게 이야기하는 것은 하룬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찾는 방법은 아십니까?”

 “네, 대충은. 근처에 열천이 솟아오르는 공동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좋습니다. 의뢰라는 형식을 빌리면 서로 마음의 부담이 없겠죠.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실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어 가능하다면 그린 일족의 로드께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말하지 못한 것들은 우리 로드에게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바리아가 꽤 긴 대화로 지친 것 같았기에 하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프들 대부분이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아직 기운을 되찾으려면 족히 하루 이틀은 있어야 했다.

 “이삼일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미리 준비할 것도 있고 확인할 것이 있습니다. 식량은 두고 가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바리아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흘 동안이나 뭘 찾으러 다닌다는 것에 다이리스는 궁금증이 인 모양이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하룬은 엘프들이 머무는 데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로그아웃을 했다. 기지 사정이나 벨과 아즈만의 상태도 궁금했지만 할 일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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