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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볼카웜의 최후 (100/278)

《볼카웜의 최후》

 하룬은 아레스의 부탁으로 투구에 헤드 캠을 착용한 상태로 지하 통로로 나갔다. 하지만 놈은 그동안의 포식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손쉬운 먹잇감이 던전 주변에 널려서 그런 것인지 그 종적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벌써 마스론 후작과 함께 놈을 유인하기로 한 지 이틀이 지났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하 통로들이 얽혀 제법 큰 공간을 만들어 낸 곳에서 대기하는 중이다.

 언제라도 자신에게 마법 공격을 펼칠 능력이나 적대감을 가진 인물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스론 후작도 마찬가지인 듯 이틀이 지난 지금은 다소 집중이 풀려 있었다.

 “이놈아, 언제 그 괴물을 찾아낼 거냐?”

 이젠 대놓고 이놈 저놈 찾으며 막말을 하는 마스론이다. 하지만 그게 점잔을 빼며 뒤통수를 칠 때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물론 한 성질 하는 하룬인지라 그의 입에서 나가는 말 역시 곱지는 않았다.

 “좀 진득하니 기다리시죠. 대마도사라는 양반이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합니까?”

 “뭐라? 이놈이 감히 어디서…….”

 “쉿!”

 하룬은 막 욕을 하려는 마스론을 보며 손가락을 입에 댔다.

 “볼카웜이 이쪽으로 옵니다.”

 “뭐? 어디?”

 본다고 어둠에 가려진 통로 저편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탐지 마법을 펼친 모양인지 놈의 기척을 느낀 마스론 후작의 마른 몸이 살짝 떨렸다.

 “120미터, 110, 100, 90, 80……. 날려요! 뭐해요?”

 하룬의 채근에 마스론은 준비하고 있던 전격 마법을 통로 저편으로 날렸다.

 “매직 기가 선더!”

 넓은 통로에는 순식간에 하얀 벼락이 대기를 타고 혹은 벽과 바닥을 타고 앞쪽으로 흘러갔다.

 끄어억!

 놈의 비명이 들려왔다. 그동안의 전투로 놈에게는 전격 마법이 그나마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흔한 화염계 마법이나 윈드 계열 같은 원소계 마법은 별 피해를 줄 수 없었다.

 “갑시다!”

 놈이 자신들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는 즉시 하룬은 바닥을 박차고 메신저 워킹 스킬을 펼쳤다. 즉시 2단계 패스트 워킹으로 바뀐 스킬로 그의 몸은 앞으로 심하게 넘어진 상태로 바람처럼 날았다.

 “웨이트 디클라인! 헤이스트!”

 연속해서 두 개의 마법을 자신의 몸에 건 마스론 후작도 하룬의 뒤를 따라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하지만 몇십 미터는 한 호흡 만에 움직이는 볼카웜의 속도는 금세 두 사람에게 살이 썩어가는 지독한 놈의 냄새를 맡게 해 주었다.

 “헤이스트! 헤이스트!”

 달리는 상태에서도 연속으로 자신의 몸에 마법을 중첩해서 펼치는 것을 보면 7서클 마도사란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몸은 하룬의 곁을 지나 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하지만 빠르다고 능사는 아니다.

 “오른쪽!”

 순간 막 통로 하나를 지나치던 마스론의 몸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그 순간 하룬은 오른쪽 통로로 들어갔고 간발의 차이로 마스론 역시 오른쪽 통로에 몸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가공할 빠르기로 두 사람을 쫓던 볼카웜의 거대한 동체는 멈출 수가 없어 마스론의 모자를 날려버렸다.

 -위신느, 도와줘.

 하룬도 결국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놈의 이동속도는 마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신느의 도움을 받고서도 놈의 추격을 뿌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놈의 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지독한 악취를 맡는 순간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섰다. 다행히 통로를 머릿속에 완전하게 암기한 하룬의 방향 전환이 적절해서 요행히 그 순간을 간발의 차이로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볼카웜에게 잡힐 위기를 겪은 두 사람은 15분을 달려서야 겨우 약속한 장소까지 놈을 유인할 수 있었다.

 “후아! 후욱!”

 “하악! 학!”

 두 사람은 사방이 50미터 정도 되는 공간까지 놈을 유인하고는 다른 통로의 입구에 쓰러져 버렸다. 도망칠 때는 가슴이 터지기 직전인데도 놈이 발하는 살기와 지독한 냄새 때문에 그런 몸 상태를 몰랐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평소 메신저 스킬을 수련하느라 달리는 것을 좋아하던 하룬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 마스론은 얼마나 헤이스트 마법을 연속해서 펼쳤는지 얼굴이 노랗게 떠 있었다.

 두 사람 덕분에 드디어 볼카웜은 함정에 걸렸다. 미리 놈의 체액인지 타액인지 알 수 없는 물질로 흙을 이겨 단단해진 천장과 벽을 파고 사람들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놈의 배설물로 일으킨 불이 작은 공동에 수십 군데나 피워져 있고, 마법사들은 라이트 구를 수십 개나 띄웠다.

 “역시 놈의 활동이 느려진다!”

 알랭 후작은 놈의 몸이 반 이상 광장 안으로 나왔다가 이내 뒤로 돌아가려는 몸짓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것이 맞았음을 알았다. 놈은 비록 눈은 퇴화되었지만 빛에 취약했던 것이다. 놈의 촉수가 대기를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해 미친 듯 움직이고 있었다.

 “공격!”

 그의 말과 함께 아인델프와 딜런이 놈의 동체를 노리고 몸을 날렸다. 그들의 검에는 어느새 50센티가 넘는 오러 소드가 솟아 나와 있었다.

 파악!

 푸욱!

 기분 좋은 파육음이 들렸다.

 쿠워어!

 놈의 동체가 요동을 쳤다. 순식간에 세 명의 기사가 놈의 이빨에 걸려 어육처럼 찢어져 버렸다.

 “아악! 내 눈!”

 “크윽!”

 놈의 동체를 찌르고 벤 아인델프와 딜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얀 체액이 검과 함께 분출했는데 그것이 무시무시한 산성이었던 것이다. 특히 놈의 동체를 찌른 탓에 놈과 가까이 붙었던 아인델프는 왼쪽 눈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났다.

 “퓨리파이!”

 “큐어!”

 대기하고 있던 마법사 둘이 빠르게 달려들어 아인델프의 눈에 치료 마법을 펼쳤지만 눈알이 타는 고통에 그는 혼절 직전이었다.

 딜런 역시 손등에 놈의 체액이 튀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지만 누구도 그를 치료하는 마법사는 없었다. 대신 남은 마법사들은 놈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매직 미사일!”

 “매직 애로우!”

 “매직 스피어!”

 원소 계열 마법이 큰 효과가 없다는 것과 놈의 동체 가죽이 그나마 약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마법 공격을 펼치는 것은 물론 알랭 후작을 비롯한 기사들이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체액을 조심해라!”

 알랭 후작의 주의가 없더라도 이미 아인델프와 딜런이 당하는 것을 본 기사들은 찌르는 것 대신 마나를 주입한 검으로 놈의 동체를 베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하룬이 득달같이 딜런에게 달려갔다.

 “나이아, 나와!”

 -잠시 기다려요, 친구.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나이아는 소환되자마자 딜런의 상처에 투명한 손을 대었다. 그러자 마치 스튜처럼 끓어오르던 딜런의 손등과 목의 환부가 가라앉았다. 대신 바닥으로 볼카웜의 체액이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큰 고통에 하얗게 뒤집혔던 딜런의 눈이 겨우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환부를 붙잡고 그 상태를 확인하는 하룬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고맙네, 대장!”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손등도 그렇지만 특히 어깨와 목은 위험했다. 어깨에는 가장 많은 체액이 튀어 그 질긴 럼프 오크 방어구가 녹아내렸고, 뼈까지 드러난 상태였다. 목은 더욱 위험했다. 비록 양은 적었지만 대동맥 바로 옆에 체액이 튀었던 것이다.

 하룬은 바람처럼 그를 안아 공간의 끝까지 물러났다.

 그렇게 두 사람이 심한 부상을 입는 바람에 알랭 후작은 볼카웜을 제대로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몸에 여러 군데 상처를 입은 볼카웜의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마치 탄력 있는 용수철처럼 몸을 반원형으로 마구 흔들어 수축시켰다가 팽창시키며 발광하는 볼카웜의 이빨에 벌써 열 명이 넘게 난도질당했다. 그중에는 마법사도 세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통이 통로 입구까지 들어가도록 몸을 수축시켰던 볼카웜이 벼락처럼 알랭 후작에게 뻗어 나갔다. 놈은 그가 이중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마침 아인델프와 딜런의 상태를 곁눈질하던 알랭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놈의 공격 반경을 한참 벗어나 있었던 터라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5미터 정도 되었던 볼카웜의 동체가 순식간에 10미터로 늘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창졸간에 볼카웜의 이빨 여덟 개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까앙! 깡! 깡!

 미처 마나를 끌어 올릴 여유가 없어 검으로 내리쳤지만 유니크 등급의 보검인데도 쇠를 치는 소리가 나며 강력한 반탄력이 검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래도 통증은 상당했던지 몸통을 몇 번 수축했다가 이완시킨 볼카웜의 몸통이 뒤로 쑥 빠져나왔다.

 “흡!”

 알랭은 마나를 끌어 올리다 말고 경악성을 토했다.

 가까이서 본 볼카웜의 얼굴은 정말 기괴했다. 눈은 퇴화된 듯 보이지 않았고, 대신 네 개의 긴 더듬이가 공기를 통해 주위 상황을 감지하고 있었다. 코 역시 눈처럼 보이지 않았고 주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정말 기괴하다.

 이중으로 된 입을 가진 볼카웜의 외부 주둥이에는 검처럼 날카로운 이빨들이 여덟 개 나 있었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달랐다. 네 개는 마치 꼬챙이처럼 끝이 뾰족하게 생겼고, 두 개는 삽처럼 넓은 선단을 가졌으며, 나머지 두 개는 괭이처럼 끝이 구부러져 있었다.

 그 이빨들에 입술이라고 볼 수 있는 거대한 원형의 두터운 살점에 나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원형의 판이 좌우로 회전한다는 것이었다.

 샤르르!

 네 개의 각기 다른 길이와 형태를 가진 긴 더듬이가 움직였다.

 이미 놈을 상대할 기사나 마법사는 없었다. 모두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당한 것이다. 알랭은 작은 바위 하나를 집어 던져 놈의 촉수를 다른 곳으로 돌린 다음 소리를 내지 않고 몸을 날렸다.

 놈의 바로 위에 있는 통로 입구로 올라간 알랭은 놈이 머리 부분을 드러낼 때 이미 숨을 멈추고 기척을 감추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소드 마스터인 그가 숨을 멈추고 미동조차 하지 않으니 볼카웜도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위를 향해 움직이던 촉수를 아래로 내렸다. 메신저 점핑 스킬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통로의 입구에 서 있는 하룬의 기척 역시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알랭은 서서히 검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아직 어느 곳이 약한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동물이든 머리 쪽이 약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검에서는 딜런이나 아인델프가 생성시킨 얇고 가는 오러 소드가 아니라 검신이 늘어난 듯 제대로 형체를 가진 오러 소드가 솟아 나왔다. 비록 소드 마스터라고는 해도 이런 오러 소드는 채 몇 분을 유지하지 못하니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파앗!

 강한 파공성과 함께 그의 검이 몸과 함께 놈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마나는 물론이고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오러가 피어난 검의 위력은 강철도 자를 수 있다. 알랭은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슈르릇!

 볼카웜의 더듬이인 촉수 네 개가 대기를 가르는 그의 검을 감지한 동시에 주둥이에 해당하는 원판 보양의 살덩이가 빠르게 회전했다.

 까가강! 까앙!

 “크윽!”

 알랭은 억눌린 신음과 함께 옆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손아귀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지만 다행히 검은 놓치지 않았다. 동굴 벽에 모질게 부딪친 왼쪽 다리가 부러졌는지 덜렁거렸다. 알랭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볼카웜의 이빨들이 그의 오러가 담긴 검을 쳐낸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한 곳이 한 곳도 없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검의 형상을 갖춘 오러 소드로도 자르거나 부러뜨릴 수 없는 이빨이라니 말도 안 되었다.

 꾸우웅!

 동굴 전체가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기괴한 음성이지만 분명히 분노한 것만은 알아차릴 수 있는 소리였다. 비록 외관은 말짱하지만 어느 정도 타격은 있는 것 같았다.

 꼬리 쪽에서도 공격은 이어지고 있었다.

 융크란 백작이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놈의 꼬리 부분을 공격하고 있었다. 더듬이 촉수가 후미에는 없는 덕분에 마음 놓고 공격할 수 있었다.

 다만 놈의 꼬리 부분은 항문으로 여겨졌는데 마구 요동치는 그곳에서 연방 강한 산성 체액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아악!”

 강한 산성 체액을 뒤집어쓴 몇 명이 비명과 함께 살과 뼈가 녹아버렸다. 그중에는 묘는 물론 아레스와 난도도 있었다. 엘저는 은밀하게 접근해서 놈의 동체를 노렸다가 꼬리 부분에 맞고 날아가 버렸다.

 티노는 볼카웜의 꼬리를 맞고 엉망으로 기절한 엘저와 보푸란 그리고 마나를 소진해서 기력을 잃은 푸린 마법사를 자신이 따로 파 놓은 통로의 한쪽 구멍에 눕혔다.

 마치 용수철처럼 빠른데다가 수시로 방향마저 변하는 놈의 요동은 티노의 빠른 움직임으로도 피하기 힘들 정도여서 자신은 제대로 놈을 공략할 수 없기에 부상자를 옮기는 일을 도맡은 티노였다.

 이제 후미에는 융크란 백작과 열둘의 기사, 다프를 비롯한 다섯 명의 마법사 그리고 유일한 이방인인 겨루밖에 남질 않았다.

 “체인 라이트닝!”

 “윈드 커터!”

 화염 마법에 강한 내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몇 번의 시도 끝에 알게 된 마법사들은 전격 마법과 풍계 마법으로 볼카웜을 공격했다.

 기사들은 오러 소드를 끌어 올린 상태에서 고속으로 이동하며, 연방 요동치고 수축했다 뻗는 것은 물론 강산성 체액을 토해 내는 놈의 항문 부위를 베기 위해 검을 날렸다.

 슈르릇!

 공격이 소강상태에 들어간 놈의 머리 부분.

 놈의 더듬이는 정확히 알랭 후작이 쓰러진 곳을 향해 하늘거리며 뻗어가고 있었다. 알랭은 그 움직임에 놀라 몸을 일으켰지만 신음과 함께 비틀거렸다. 어깨가 반 이상 부서지고 왼팔은 힘없이 흔들거렸다.

 “으윽!”

 동굴의 벽과 부딪치면서 강렬한 충격을 받은 등짝이 마치 부서지는 것 같았다. 반탄력이 얼마나 센지 있는 힘껏 던진 것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위이잉!

 볼칼웜의 주둥이가 돌기 시작했다. 여덟 개의 이빨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엄청난 빠르기였다.

 ‘이제 알겠군. 저 이빨들을 이용해서 바위들까지 뚫은 거군.’

 이 지하는 흙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통로들 중에는 바위를 통째로 뚫은 것들도 상당수 있었다.

 오러가 담긴 검과 맞부딪치고도 멀쩡할 정도의 강도를 가진 이빨이 선풍을 일으킬 만큼 빠른 회전과 결합한다면 바위를 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소드 마스터의 검이 가진 위력과 하등 가를 것이 없었다.

 그런 막강한 위력을 가진 놈의 이빨이 자신을 노린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가 몸을 잠식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놈의 주둥이가 뒤로 쑤욱 빠졌다.

 후퇴가 아니라 지렁이 같은 몸을 가진 놈이 앞으로 튀어나오려고 몸을 수축하는 것이다. 등뼈와 왼쪽 다리는 완전히 부서졌는지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데도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알랭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어 마나를 끌어올렸다.

 “끼야앗!”

 기합성이 들렸다.

 알랭은 저도 모르게 위를 향해 눈을 치켜떴다. 하룬이었다. 하얗게 빛나는 검을 양손으로 쥔 그가 엄청난 속도로 덜어져 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자신을 향해 튕기듯 날아오던 놈의 머리통이 움찔했다.

 파앗!

 꾸워어!

 끔찍한 비명과 함께 하얀 액체가 알랭의 발치까지 튀었다. 하룬의 공격이 성공한 것이다. 그 거대한 몸 때문인지 아니면 머리 쪽만 따로 움직이기 힘들었는지 놈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춘 순간 하룬의 검이 머리통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놈의 더듬이 네 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하룬의 몸을 향해 날아가 그를 두드렸다.

 퍼억! 퍽! 퍽! 퍽!

 마치 몽둥이에라도 맞은 것처럼 하룬의 몸이 검과 함께 튕겨 나갔다. 또 다른 동굴 입구까지 날아간 하룬은 금방 일어나긴 했지만 충격이 심했는지 고개를 흔들며 오만상을 썼다.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알랭은 상처 입은 머리통을 몸통 속으로 집어넣은 볼카웜의 모습에 놀랐다. 몸통 안으로 말려 들어간 놈의 머리 부위는 하얀 액체로 가득했는데 그것이 피인 것 같았다.

 쓰읏! 쓱.

 기이한 소성과 함께 놈의 몸이 꼬리 쪽 방향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그렇게나 거대한 동체를 가진 녀석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극고의 빠른 움직임이라 극통을 느끼는 알랭이나 제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하룬은 놈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설마 뒤로도 저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괜찮습니까, 후작 각하?”

 충격에서 벗어난 하룬이 알랭에게 달려갔다.

 “괘, 괜찮소, 대장. 어서 쫓아가시오. 난 포션으로 치료를 하고 뒤쫓겠소.”

 일단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했으니 끝장을 봐야 한다. 섣불리 놈의 성미나 돋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럼.”

 하룬은 목례하고는 놈이 사라진 동굴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런!”

 놈이 빠져나간 통로에는 더욱 끔찍한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몇 명인지도 모를 인간들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후진하는 놈의 동체에 눌려 완전히 어육으로 변해 바닥은 온통 피바다였다.

 “대장님!”

 하룬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통로의 벽에 판 구멍 속에 티노가 있었다.

 “오! 티노, 무사했군요.”

 “네. 운이 좋았습니다. 부상자를 옮기느라 여기 구멍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놈이 도망쳤습니다. 융크란 백작을 비롯해 열 명이 놈의 몸에 눌려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통로의 양쪽 벽에 파인 구덩이를 보니 그 안에는 엘저와 푸린 그리고 몇 명의 기사와 마법사가 누워 있었다.

 “안에 들어가 보면 딜런 경이 누워 있을 겁니다. 정신을 차리는 즉시 지상으로 올라가세요. 이런 부상을 입고서는 놈을 상대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난 놈을 쫓아가 끝장을 내겠습니다.”

 티노는 하룬과 같이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부상자들이 널렸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볼카웜이라도 만나면 죽는 길밖에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는 대로 위로 올라가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걱정 마세요, 부대장. 결혼 축하주를 먹기 위해서라도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요.”

 “꼭 제가 드리는 축하주를 마셔 주십시오.”

 티노의 무표정하고 딱딱한 얼굴이 마치 불에 녹은 진흙처럼 풀어졌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굵은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의 눈물을 보는 것은 왠지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하룬은 작별 인사를 하고 놈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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