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착》
던전 가까운 한 숙영지.
어제 늦게 친위 기사단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트레저 분지에 입성한 1황자 아르렐리우스 폰 테론은 좌우로 길게 배석한 기사들과 신하들을 바라보며 노성을 터트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에서 이러고 있을 겁니까!”
그의 격노에 가신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신들과 손을 잡은 이방인 길드 ‘천공’이 던전을 찾는 개가를 올린 것이 벌써 한 달 전이다. 그리고 외숙부인 라인트 공작이 휘하에 있는 기사단들을 모두 끌고 이곳에 도착한 것이 일주일 전이다.
그 어느 기사단보다 강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용맹한 기사단을 다섯이나 동원했는데도 일은 지지부진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휘하에는 7서클 마스터를 비롯한 마법사 자원들도 많았다.
“전하, 엘프들의 숫자나 그 실력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도착한 1황녀 측도 거듭해서 실패한 상황입니다. 더구나 적들이 이렇게 모여든 상황에서는 함부로 저들을 공격할 수도 없으니 화를 푸십시오.”
외숙부인 라인트 공작이 직접 보고하자 아르렐리우스는 화를 누그러뜨렸다. 외숙부는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도대체 그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 거요.”
아르렐리우스의 말은 물음의 의미보다는 질책의 의미가 더 강했다. 도대체 이종족에 불과한 엘프들이 점거한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는 것을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령사가 최소 오천에서 최대 일만, 전사는 최소 삼만에서 최대 칠만으로 추정됩니다.”
보고한 것은 천공 길드의 길드장 여천철이었다. 아이언스카이라는 이름으로 비욘드에서 활동하는 그는 이번 던전 건으로 1황자 진영의 핵심 전력으로 편입되어 이렇게 수뇌부 회의까지 참석하고 있었다.
“호오! 정령사라면 마법사와 비교하면 어떻고, 황사?”
1황자의 황사를 역임한 7서클 마도사 란트렐은 황자의 눈길을 받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들의 경우 정령사를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으로 나누지만 엘프들은 그런 분류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사용하는 정령 마법의 수준과 그 위력을 보았을 때 굳이 비교하면 평균 5서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황자의 눈이 커졌다. 공작을 비롯해 회의에 참석한 고위 귀족들과 기사단장 그리고 무력 단체장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끄응.”
황자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찡그렸다.
‘5서클 마법사가 최대 일만이라면……. 정말 곤란하군.’
라인트 공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의 실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는 1황자였다. 그래서 파죽지세로 골든 배틀에서 승리한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그로서는 이번 던전의 보물이 너무 중요한 것이어서 다른 황자들처럼 직접 이곳까지 왔다.
자신이 거느린 전력이라면 비록 병사들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제국은 몰라도 어지간한 왕국 정도는 가볍게 정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한낱 이종족에게 발목이 잡힌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엘프 전사들의 경우 실력 차이는 있지만 보통 소드 유저 상급이나 익스퍼트 초급에 해당하는 정도의 실력이라고 판단됩니다.”
란트렐의 말은 실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간 엘프들을 직접 상대해 왔던 천공 길드의 아이언스카이나 선발대로 이곳에 와서 엘프들과 몇 번 부딪쳤던 실버 와이번 기사단장은 그 소리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펼 수 있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 적들과 상대해 왔는지 이제 다른 이들도 알게 되었으니 따가운 눈총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5서클 마법사가 최소 오천에, 소드 유저 상급의 전사 삼만이라. 최대가 아니라 최소한으로 잡아도 두려울 정도의 전력이군. 그것참.”
이 정도면 제국의 변경을 지키는 4대 군단이나 중앙의 수도 군단이 아니면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전력이다. 더구나 엘프들은 원거리 공격인 궁술은 필수적으로 익힌 종족이다.
란트렐의 분석을 들은 황자는 아직까지 던전을 차지하지 못한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들이 왜 그렇게 악을 써가며 그곳을 지키는 거요?”
아르렐리우스의 이번 물음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것은 미스터리였다. 엘프들은 던전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던전을 포함한 일정 지역을 점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한 아이언스카이도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신이 생각하기에는 몇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곳을 발견할 당시 이방인들이 엘프족을 무차별하게 살해한 것과 메스 기사단이 엘프 여성들을 강간, 폭행, 살해한 것 때문에 화가 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원로원의 개들이 문제로군.”
아르렐리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다른 모든 황자들처럼 그도 원로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곳이 엘프족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제국 정보 길드에서 구한 정보를 보면 이 고요의 땅에 거주하는 엘프족의 수는 이십만에서 삼십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최대 팔만에 가까운 전사들이 이곳에 집결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무력을 총동원했다는 뜻인데, 일족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런 전력을 동원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그렇다는 것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이곳에 그들이 중요시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란트렐의 추론은 지극히 타당했다.
이 던전이 포함된 지역이 엘프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비록 그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좌중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들어갈 생각도 없으면서 엘프들이 던전을 수호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했지만 전혀 가닥이 잡히질 않았다.
한참이 지난 후 황자가 공작을 돌아보며 물었다.
“숙부님, 향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전하께서 오셨으니 이제부터 계획을 생각해야지요. 마법 결계를 친 상태로 숨어들어 갈 수도 없는 상황이니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황사의 말대로 저들의 전력이 두터우니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라인트 공작의 눈빛이 묘하게 번뜩였다.
“다른 형제들과 손을 잡자는 말씀입니까?”
“필요하다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현재까지 이곳에 집결한 모든 인원이 다 달려들어도 엘프들을 물리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니 손을 잡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다만 손을 잡을 상대는 선택해야 할 겁니다.”
“선택이라?”
어차피 형제라고 해도 태어날 때부터 골든 배틀을 의식하며 자란 터라 남보다도 더 정이 없는 사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모친이 같거나 또는 심정적으로 정이 가는 형제는 있기 마련이고, 힘을 합하는 것도 늘 일어나는 일이다.
“어차피 물건은 다섯 개나 됩니다. 기왕에 우리 전력이 압도적이니 그중 하나만 차지해도 될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아예 아무도 차지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공작의 말에 1황자의 눈빛이 묘하게 일렁였다.
금번 골든 배틀의 상황은 후크란 산맥에서 발견되었다는 보석 광산 때문에 변화가 좀 있었다. 4강 7중 8약 1최약의 상황이었는데 세가 약한 네 황자가 후크란에서 핵심 전력을 잃어버리고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아쉬운 것은 제국 정보 길드의 수작을 웬만한 세력들은 눈치 채고 있었기에 선두권은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제국 정보 길드는 골든 배틀이 시작되면 거의 예외 없이 이런 건을 터트려 힘이 필요한 세력들로부터 정보료로 거액을 챙기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황사가 좀 나서 주세요. 다들 지금의 형세를 알고 있으니 의견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일단 나와 합류하기로 결정한 보라스와 레우스피레스 측의 의향부터 확인하세요. 나중에 공국을 만드는 조건이라면 언제든 힘을 합할 것입니다.”
다른 황자들 모르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에게 합류할 동복동생 둘과 함께 미리 협상 건에 대해 의견을 조율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현재 이곳에 많은 용병들이 와 있는 것은 아시지요?”
“압니다. 숫자가 꽤 많더군요.”
오는 길에 외곽에 넓게 자리를 잡은 이방인들과 용병들을 보긴 했지만 황자와 공작은 황사 란트렐이 무슨 소리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어 그를 주시했다.
“그들 대부분은 2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용병들입니다. 그 정도 실력이 아니라면 아이리드 산맥을 넘어 이곳까지 안내할 수 없을 테니까요.”
란트렐은 침을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제국 10대 용병단을 비롯해서 평소에는 만나 보기 힘든 특급 용병들이 안내를 위해서나 던전을 위해서 이미 왔거나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잘 정제된 우리 기사들의 실력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사실 정규 전투가 아니라 난전이나 협소한 장소에서 상급 용병들의 실력은 기사들에 버금간다고 들었습니다.”
란트렐은 그렇게 말하며 기사단장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평생 기사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며 살아온 다섯 기사단장들과 그 뒤에 시립한 부단장들의 얼굴이 굳었다. 인정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황자의 눈길까지 가세하고서야 골드라이언 기사단의 단장이며 단장들 중 가장 연장자인 리베로스 백작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사의 말씀이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대부분의 용병들은 거칠고 무례하며 거짓말이나 일삼는 쓰레기지만 2급 이상은 다양한 실전 경험과 임기응변에 능한 작자들입니다. 기사에 준할 바는 아니지만 쓸 만한 실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기사로서의 자존심을 최대한 고려했다는 것은 말하는 이나 듣는 이들 모두 잘 알 수 있었다.
“그래! 몇 개 기사단이 전멸한 악마의 땅 후크란 산맥에 이방인 길드를 무사히 안내한 용병대도 있었지? 던전의 존재를 밝혀 제국 정보 길드에서 이를 가는 그 뭐라더라? 태풍, 아니 폭풍인가?”
“돌풍입니다, 전하. 어젯밤에 제국 정보 길드의 산하 용병단인 제라츠 용병단이 돌풍 용병대에 싸움을 걸었다가 참패를 면치 못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그래요? 자세하게 말해 보시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돌풍 용병대라는 말에 크게 동요하는 눈빛이었던 것이다.
“제라츠 용병단은 제국 10대 용병단 중 하나로, 주로 원로원이나 황실의 일들 중 더러운 일을 맡아 하는 쓰레기 같은 용병단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놈들이 돼지 같은 제국 정보 길드으 ㅣ하수인이라는 것도 알지.”
1황자는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어제 제라츠 용병단이 돌풍 용병대에 시비를 걸었습니다. 시비의 원인이야 알 필요도 없지만 직접 목격한 이들의 말을 들으니 무려 400 대 5의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돌풍이 이겼답니다. 사백 명 중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합니다.”
“호오! 그들 중 소드 마스터라도 있었단 말이오?”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익스퍼트 최상급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 곧 소드 마스터를 바라보는 강자라고 했습니다.”
“용병단도 아니고 일개 용병대에 그런 강자가 있다니. 대단한 용병대로군. 그래, 제라츠 용병단이 허접스러운 인물들을 보낸 모양이군.”
황자의 생각은 당연했다. 아무리 익스퍼트 최상급이라고 해도 일반 병사라면 모르되 소드 유저 상급 이상이 무려 사백 명인데 혼자 처리할 수는 없다. 정상이라면 제국 10대 용병단 중 하나인 만큼 셋 이상이면 최상급을 상대할 수 있는 익스퍼트 상급도 있었을 것이다.
“신기에 가까운 궁술을 가진 궁사와 바람처럼 움직이며 독침을 사용하는 자에다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진 정령사가 있다고 합니다.”
정령사란 말에 모두의 이목이 황사에게 향했다. 그들이 대충 들은 이야기로는 마법사라고 들었던 것이다.
“분명 정령사요? 난 마법사로 보고받았는데?”
라인트 공작 역시 궁금한 얼굴이었다. 어차피 좁은 분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그에게까지 보고된 모양인데 그는 고위 마법사가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각별한 관심이 있어 따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마침 돌풍 용병대 사정을 잘 아는 이방인을 만나 내막을 확인했습니다. 정령사가 맞습니다. 그것도 무려 중급 이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정령사가 날린 윈드 커터의 숫자가 무려 스무 개가 넘었다고 합니다.”
“호오!”
1황자와 공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현 상황에서 그들이 엘프들을 어찌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령 마법 때문이었다. 그 정령사들의 숫자도 문제지만 정령 마법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해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워터 스파이크라는 정령 마법까지 사용했는데 이는 상급 정령술로, 최소 두 속성의 중급 정령을 부린다는 이야깁니다.”
“대단하군. 일개 용병대의 전력이 그 정도로 무섭다니. 그 정도면 검사와 비교했을 때 어떤 수준인가, 바르토 경?”
1황자의 수신 호위인 기사 바르토는 익스퍼트 최상급의 강자였다.
“아마 저와 비슷할 겁니다. 정령 마법은 일반 마법과는 달리 정령력이 다할 때까지 아무런 주문이나 예비 동작도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령이란 실체가 없기에 막기가 까다롭습니다. 듣기로는 실드까지 뚫을 수 있는 암기 실력을 가졌다니 가벼이 볼 수 없는 상대입니다.”
“이런! 경이 그렇게 평가할 정도면 정말 굉장한 작자겠군. 그렇다면 돌풍 용병대에는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가 최소 두 명은 존재한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들도 대단하지만 궁사 역시 대단했습니다. 그녀가 활 세 개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날린 화살 공격에 방어 마법이 새겨진 갑옷이 뚫렸습니다. 익스퍼트 초급 경지의 검사들이 휘두른 검이 화살에 꿰뚫리거나 부러지고 마법사들은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화살에 꿰뚫려 죽어 버렸답니다.”
란트렐의 대답에 황자는 무릎을 치며 웃었다.
“하하하! 내 속이 다 시원하군. 돌풍 용병대라고 했지요. 어떻게든 돈을 받아 처먹으려고 환장했던 제국 정보 길드의 그 쥐새끼들을 엿 먹인 그 용병대는 한번 만나보고 싶군. 대장이 꽤 젊다면서요?”
“네, 이십 대 중반으로 알려졌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정령사가 바로 대장입니다. 실제 대장인지 아니면 그 뒤에 배후가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던전의 존재와 위치를 자체적으로 알아낼 정도의 정보력과 폭 넓은 인맥을 가진 것으로 사려되는 인물입니다.”
“그래, 내 그 보고는 받아 보았소. 그 쥐새끼들이 챙겼을 수천만 골드를 허공으로 멋지게 날려 보낸 그런 용병들이라면 용맹하고 충직한 내 기사들에 비할 바야 못 되겠지만 같이 술 한잔할 자격은 되겠지.”
황자는 원로원과 손을 잡고 골든 배틀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제국 정보 길드에 굉장한 불쾌감과 적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과 늘 거래하는 귀족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정보란 것은 내가 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불안한 법이다.
“하나 그놈들 때문에 이런 사태가 생겼습니다, 전하.”
돌풍에 이를 가는 아이언스카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순간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들이 일제히 아이언스카이에게 살벌한 시선을 던졌다.
아무리 예의가 부족한 이방인이고 이번 던전 건에서 공이 적지 않다고는 하나 황자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끼어드는 것은 당장 끌어내 목을 칠 중죄였던 것이다.
여천철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자신에게 쏟아진 살기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하하하! 괜찮소. 이방인들이 무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그 정도로 해두시오. 이봐, 아이언스카이라고 했나?”
“네, 전하.”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1황자의 말에 아이언스카이는 군기가 잔뜩 들어 대답했다.
“자네는 순발력이나 정보력은 좋은데 머리가 좀 떨어지는 것 같군. 방금 엘프들의 전력을 들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 돌풍인가 하는 용병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터트려 이렇게 실력자들이 모여들지 않았다면 누가 엘프들을 뚫고 던전을 차지할 수 있을까? 아이리드 산맥은 잘 정제된 정규군도 제대로 넘을 수 없는 험지 중의 험지다. 일반 병사들이 올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몇 개 기사단이나 자네가 거느린 이방인들의 실력으로는 엘프들과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낼 수 없네.”
그건 사실이다. 여천철, 즉 아이언스카이가 지난번처럼 다른 길드들과 연합해서 백날 공격해 봐야 그때처럼 전멸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막강한 실력을 가진 엘프들이다. 지금처럼 계속 강한 실력을 보유한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모여드는 상황에서도 일개 세력의 힘으로는 난공불락인 상황이다.
“난 그 용병들이 마음에 드네. 우리에게 손잡을 동료들을 보내주었으니 말일세. 제국 정보 길드의 쥐새끼들은 아마도 자네를 비롯한 이방인들에게 이 던전에 대한 정보를 팔아먹으면서 이런 상황까지도 예상했을 거야. 다른 형제들에게 차례로 접근해서 던전에 대한 정보를 팔아먹고, 나중에는 손을 잡게 중간에서 협상하도록 암중 작업을 하겠지. 그 와중에도 챙길 건 다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그놈들의 수작은 안 봐도 훤하다니까. 조금씩 상황을 진전시키면서 해결책을 빌미로 상대가 가진 모든 재물을 쓸어 담는 것이 그놈들이 늘 쓰는 개수작이지.”
황자는 돌풍 용병대가 한 일에 기분이 좋아진 듯 여천철에게 길게 설명했다.
“제가 머리가 둔하여 전하의 혜안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 자네가 이방인이라 우리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그런 것일 테니 마음 쓰지 말게. 어쨌건 자네는 거금을 들여 정보를 사고 이 던전을 먼저 발견하지 않았는가? 덕분에 우리 세력은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 큰 공을 세운 거야.”
황제의 인정에 여천철은 고마움을 느꼈다. 이방인이라는 것을 따지지 않고 공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곤란한 상황까지 직접 나서 넘겨주니 과연 황제의 그릇이다 싶었다.
미리 파악한 대로 1황자는 성정이 좀 다혈질이긴 했지만 흉금이 넓고 격식을 잘 따지지 않는 성품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하긴 내게 20만 골드나 받고 던전에 대한 정보를 넘겼으면서도 다른 놈들에게까지 더 팔아먹은 것을 생각하면 돈에 환장한 개새끼들이라는 건 확실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돌풍 용병대가 그놈들에게 확실하게 엿 먹인 것은 맞지.’
여천철은 1황자와의 대화를 통해 돌풍 용병대를 보는 시각을 달리 가질 수 있었다.
“황사, 그런데 그 돌풍 용병대 이야기는 왜 꺼낸 거요?”
라인트 공작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질문을 받은 란트렐이 공작을 향해 은근한 태도로 대답했다.
“다른 세력에서 아직 생각하지 못할 때 그들을 잡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주력인 기사들이 좀 껄끄러워할 일이긴 하지만 엘프들과 상대하거나 던전을 탐사할 때도 그들의 힘을 빌리면 한결 손쉬워질 겁니다.”
그 이야기에 기사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1황자와 공작은 강한 흥미를 보였다.
“물론 다른 세력에 이미 포섭된 용병들도 있겠지만 용병들이라면 질색하는 우리 기사들의 반응을 보건대 다른 곳에서도 현재까지는 아예 엄두도 내지 않고 있을 겁니다. 실전 경험과 임기응변에 강한 특급 용병들을 다수 고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래요. 황사의 제안은 생각해 볼 여지가 충분하군요. 어떻습니까, 전하?”
라인트 공작은 이미 마음이 움직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합시다. 어렵고 힘든 일에 공연히 내 귀한 사람들을 쓸 필요는 없겠지. 기사들은 내가 믿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니 보잘것없고 힘든 일은 용병들을 쓰는 걸로 합시다. 그럼 그들과의 계약을 황사께서 직접 맡아 주시겠소?”
1황자는 부드럽게 기사들의 불만을 어루만져 주었다. 확실히 그런 이유라면 기사들이 용병들과의 계약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험한 곳에 오느라 고귀한 신분의 기사들이 직접 막사를 치고 요리를 하는 등 그 수고로움이 엄청난 상황이다.
“힐튼 자작이라면 능히 그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황사 렌트렐이 조카 힐튼의 이름을 언급했다. 비록 작위를 가지고는 있지만 본시 셋째 아들이라 영지가 없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란트렐의 눈에 조카 힐튼은 협상과 외교의 귀재였다.
“오, 그래! 힐튼 자작이 있엇지. 누가 가서 자작을 불러오너라.”
황자 역시 힐튼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힐튼이 황도의 제국 아카데미를 수석 졸업할 때 그가 직접 졸업장과 부상을 수여한 기억이 있었다.
“넵!”
황자의 뒤에 시립한 수행 기사가 서둘러 막사를 빠져나갔다.
“자, 그럼 이곳에 온 황자들과 고위 귀족들을 사흘 후에 초청해 다과나 즐겨 볼까요.”
황자는 라인트 공작을 쳐다보았다.
“엘프들과 상대할 대연합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허허허! 이런 일을 준비하려면 역시 용병들이 있어야겠군요. 황사의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아이리드 산맥이 워낙 고산지대이고, 고요의 땅 인근은 마나의 유동이 심하고 불안정해서 워프나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할 수 없는 관계로 이곳에 올 수 있는 인원은 최소 소드 유저 상급의 무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동안 그들의 식사며 허드렛일을 한 사람들은 수련 기사들과 길 안내를 맡은 용병들이었다. 특히 용병들은 못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기사의 자존심이 심하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 다과회를 빙자한 대규모 회의를 하려면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연히 손이 많이 필요한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용병들이 제격이다. 기사들더러 그 일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공작의 말에 황사가 미소 지었지만 기사들 역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왜 용병들이 필요한지 확실하게 이해한 것이다. 물론 무력 부분은 인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고요의 땅에는 거의 매일 오천에 달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분지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숫자는 벌써 십만이 넘었고, 이제는 산기슭에까지 막사가 들어서고 있었다. 물론 속속 합류하는 인원의 대부분은 유저들이다. 비욘드의 NPC들은 이미 상당수가 이곳에 도착한 상태였다.
하룬은 용병들로 북적대는 숙영지를 벗어나 은밀한 곳에서 정령술을 수련했다. 제라츠 용병단과의 싸움을 통해 정령술에 새롭게 눈을 뜬 것이다.
그때는 비록 모든 마나와 정령력을 다 소진해 가며 무리하게 정령술을 썼었다. 만약 은밀하게 전투를 지켜보았던 암중의 주재자가 추가로 증원했다면 무척 위험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넷 모두 헤니의 발 빠른 치료가 아니었다면 쉽게 정상을 찾지 못했을 정도로 무리를 한 상태였다고 한다. 폭주를 했던 딜런은 그 후 꼬박 이틀이나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하하핫! 그래도 화끈하게 싸우고 나니까 속은 시원하네.”
이틀 만에 정신을 차린 딜런은 그 소리를 했다가 내내 마음 졸이며 간호했던 헤니에게 몇 번이나 꼬집히고 말았다.
분노에 폭주했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많은 싸움이었다. 물론 헤니만 제외하고 말이다.
하룬도 얻은 것이 많았다. 레벨이 7이나 올랐고, 집중과 의지 스텟이 각기 2씩 올라갔다. 자질구레한 아이템도 수십 개를 얻었으며 무엇보다 정령들과 심령을 일치시켜 그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하는 효율적인 정령술을 깨달았다.
일주일 동안 자신만의 수련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숙영지는 조용했다. 분지의 밤은 꽤 추워 용병들은 여간해서는 밤에는 움직이질 않았다.
다카린 용병단도 있고, 어비스 용병대도 붙어 있지만 걱정이 전혀 안 된 것은 아니었는데 다행히 용병대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제대로 맛을 보여 준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제국 정보 길드는 그의 예상대로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오랜만이라 그간의 상황이 많이 궁금했는데 마침 밖에 나갔던 대원들이 모두 돌아와 저녁 식사를 앞두고 있었다. 헤니는 그를 보자마자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아레스 일행이 합류했어요. 뫼비우스도 그들과 같이 지내기로 했답니다. 혹시 몰라 어비스 용병대 숙영지 안에 자리를 잡게 했고요.”
“잘했어, 헤니.”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동안 동행했던 터라 서로 의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합류했으니 반가운 것이다.
요즘 엘저와 짝짜꿍이 맞아 자매처럼 붙어 다니는 헤니지만 그래도 강한 공통분모가 있는 같은 유저들이니 반가웠을 것이다.
“그래, 상황은 어때요?”
하룬은 도네이스가 건네주는 수프와 빵을 잡으며 먼저 티노에게 물어보았다. 티노는 하룬이 무엇을 물어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
“1황자가 다른 황자들과 자리를 가졌습니다.”
“호오, 그래요?”
경쟁자들과 자리를 가지다니 1황자는 배포가 꽤 크거나 아니면 효웅인 모양이다.
“선의의 경쟁을 하자느니, 힘을 합쳐 엘프를 상대하자느니 하는 말이 나왔나 본데 유야무야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1황자라고 그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 테고 뭔가 달리 의도한 것이 있을 것이다.
“용병들 상황은 어때요, 도네이스?”
도네이스는 차분한 얼굴로 보고했다.
“황자들이 용병들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병들의 몸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인원수가 부족한 상황이고 자존심 강한 귀족들이나 기사들 일색이라 궂은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용병들을 고용할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길드가 나서기로 하지 않았나요?”
피엘에게 그렇게 들은 것 같다. 용병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단체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이다.
“그게…… 워낙 의견이 다양해서 길드 본부는 단체 행동을 하기로 했던 것을 포기했답니다. 그 결정이 있기 전에 이미 1황자 진영이 세 용병단과 계약을 해 버리는 바람에 그건 뒤늦은 헛일이 되고 만 상태고, 남은 용병들을 놓고 다른 세력들이 경쟁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라츠와의 일전을 치른 다음 날 피엘을 만나고 대충 예측은 했었다.
당시 그의 어비스 용병대 역시 1황자 측이 극비리에 계약을 제의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아마 실력 있는 용병들 상당수가 발 빠르게 나선 1황자 측과 계약했을 것이다.
일반 병사들이 올 수 없는 이 험지에서 용병들은 대단히 귀중한 보충 전력이 될 수 있다. 식사나 세탁 같은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것까지 용병들의 쓰임새는 다양했다.
“도네이스, 다카린은 어떻게 하기로 했나요?”
“다카린은 아직 입장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 주 무대가 제국 북부 지역이고 이곳은 중립 성향이 강한 군부의 기반 지역이라 황자들과 계약을 하기가 꺼려지는 모양입니다.”
도네이스 대신 티노가 대답한 것으로,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제국의 북동부 국경을 수비하는 북부군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해 온 다카린 용병단의 경우 그 성향이 중립이라 이제껏 골든 배틀에도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남동부에 거점을 가진 타루와 메이슨 용병단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고, 황도에 거점을 둔 알리슨도 일단 관망하는 상황입니다.”
타루와 메이슨 용병단은 남부군과 관계가 있고, 알리슨은 원로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0대 용병단 중 다섯 개가 관망하는 상황이니 1황자 측이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큰 전력을 가지게 된 것이지 잘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뛰어난 군사라도 있는가 보군.’
내일 아침 일찍 어비스 용병대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황자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었다.
“이방인들 상황은 어때, 헤니?”
“아, 그거요? 잠깐만요.”
헤니는 우물거리던 빵 조각을 마저 삼키고는 보고를 했다.
“일단 이곳에 도착한 유저, 아니 이방인들은 세 진영으로 갈라져 있어요. 한 무리는 대형 길드들로, 이미 정한 황자 진영과 합류했고, 다른 한 무리는 중소 길드들이 유니온별로 연합해서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개별적으로 이곳에 온 이방인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신이 들어갈 무리를 고르고 있어요.”
“인원은 얼마나 되지?”
“이 트레저 분지에 모인 인원이 얼추 십만 명 정도인데 이방인들은 약 육만 정도에요. 그중 대형 길드에 속한 이방인들 숫자는 약 삼만이고, 중소형 길드에 소속된 숫자는 약 이만 내외, 나머지는 아직 소속을 갖지 않은 솔로들이죠.”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일찍이 한 곳에 이런 대규모의 실력자들이 결집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중립을 이유로 움직이지 않던 원로원과 최고 귀족 회의 진영에서도 기사단과 마법사들을 속속 파견하고 있었다.
이방인 기준 레벨 60 이상, 즉 소드 유저 상급에 막 진입한 정도의 실력자들이 모두 십만이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최소 이십만은 더 올 것이다.
그 엄청난 인원이 던전을 보고 이곳에 왔으니 상황에 따라서는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끝없이 타오르는 욕화慾火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내던진 인간들이 상잔하며 뜨거운 피를 흘리고 사지가 잘린 채 대지에 누울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하군.’
던전의 정보를 최대한 부풀려 실력자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룬은 단지 유니온의 하층민들처럼 불쌍한 비욘드의 평민들과 노예들이 더 이상 골든 배틀이라는 기형적인 제도 때문에 죽음의 길로 내몰리는 것이 보기 싫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뿐이다.
만약 제국 정보 길드였다면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이 던전의 정보를 넘기며 엄청난 돈을 챙김과 동시에 자신들 입맛대로 골든 배틀을 끌고 갔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오로지 실력 대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골든 배틀의 당사자들인 황자들은 보유한 무력과 자금력, 외교력과 협상력을 통해 자신이 황제 위에 가장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원로원과 최고 귀족 회의는 참관을 이유로 이곳에 온 만큼 중립을 표명하되 던전의 보물을 차지할 꿍꿍이를 위해 은밀하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스토리 퀘스트를 받은 유저들은 골든 배틀을 통해 이 세계에서 최고의 아이템과 작위 혹은 뛰어난 스킬을 얻기 위해 자신이 미는 황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일부는 던전의 보물을 욕심내고 있을 것이다.
가슴이 뛴다. 이미 고요의 땅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황도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제국의 상층 1%는 거의 예외 없이 이곳에 집결하고 있었다.
이제 일찍이 인류의 역사에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일이 이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것이 지옥도이든 아니면 차대 황제가 될 골든 배틀의 승자가 탄생하든 말이다.
“우리는 어떤 입장인가, 대장?”
수프를 다 마시고 빵 조각을 씹던 딜런이 물었다. 그의 질문과 함께 다른 대원들의 시선이 하룬에게 향했다. 이제 더 이상은 말을 돌릴 필요가 없다.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해야 했다.
“일단 우리의 목표는 던전의 보물입니다. 골든 배틀에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하니 돌아가는 상황을 계속 주시해야 합니다. 분명히 던전으로 진입할 기회가 올 겁니다.”
하룬의 말에 사람들의 눈빛이 밝아졌다. 이제 확실하게 목표물이 정해진 것이다. 단 다섯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힘은 여타 용병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그렇게 자신하고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