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뫼비우스의 합류 (71/278)

《뫼비우스의 합류》

 “뫼비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그러게.”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청소리 길드원은 이제야 긴장의 끈을 풀 수 있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돌산 지대가 끝난 것이다. 벌써 게임 속 세상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직업이 로그이지라 뫼비우스는 하룬 일행의 흔적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앞서 간 하룬 일행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더구나 반나절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이동한 탓에 와이번들이나 돌산에 서식하는 독사들의 공격도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뫼비우스는 하룬 일행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이동한 것이지만 청소리 길드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질 못했다. 돌산 지대는 조금만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라도 한면 단번에 추락할 정도로 위험했던 것이다. 그런 산에서 뫼비우스는 잘도 길을 찾아냈고, 몇 번인가는 독사들까지 처리해주었다.

 물론 그러지 않았더라도 동행한 청소리 길드원들의 레벨이 모두 60대 이상이라 특별한 사고는 없었겠지만 뱀과 같은 파충류를 극도로 싫어하는 여자들의 성향상 그의 행동이 각별하게 보였던 것이다.

 청소리 길드원들이 바람의 계곡으로 올라가는 능선 끝에서 숙영을 준비할 때 뫼비우스는 은밀하게 하룬 일행을 찾았다. 유난히 깊게 파인 발자국들이 몇 개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체력이 부실한 동행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숙영할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 맞았다.

 그의 몸이 알람 마법이 펼쳐진 지대로 들어가자 당장 반응이 왔다. 거대한 바위틈이었다.

 “누구냐?”

 “후웁!”

 뫼비우스는 누군가 묻는 소리를 들은 직후 자신의 목에 칼날이 닿은 것을 느끼고는 혼비백산했다.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20~30미터 떨어진 바위틈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봤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눌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역시 대단한 놈들이군. 이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적어도 레벨 100은 넘겠다.’

 정보 길드에 있을 때 어쌔신들의 움직임을 보았지만 이 정도로 빠르지는 않았다. 아주 특수한 수련을 쌓은 인물일 것이다.

 “난 뫼비우스라는 이방인입니다. 돌풍 용병대, 맞습니까?”

 티노는 대답 대신 뫼비우스의 면상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는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더구나 그가 아는 이방인은 아직 없었다.

 ‘대장과 인연을 맺은 이방인인가?’

 그럴 수도 있다. 잠시 헤어져 있던 사이 아레스를 비롯한 이방인들과 인연을 맺은 대장이니 이 희멀건 얼굴의 이방인과도 인연을 맺었을 것이다.

 “잠시 기다려라.”

 티노는 마치 빨려 가듯 몸도 돌리지 않은 상태로 다시 바위틈으로 사라졌다. 그것을 본 뫼비우스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마치 그 모습이 유령 같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무슨 용병들이 이렇게 센 거야. 하룬인가 하는 대장 놈만 그런 줄 알았는데.’

 뫼비우스가 여전히 놀람 속에 빠져 있는 사이 바위틈에서 하룬이 걸어 나왔다. 그를 보는 하룬의 시선이 무표정한 것이 뫼비우스는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한 짓이 있으니 찔끔했던 것이다.

 “하하하! 하룬 대장, 오랜만입니다. 저 알죠? 뫼비우스입니다.”

 “오랜만이긴 하군. 그래, 어쩐 일인가?”

 예전과는 달리 반말이었지만 뫼비우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는 어떻게는 하룬과 동행하는 것만이 목표였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의뢰를 하려고 왔습니다.”

 “의뢰?”

 상당히 뻔뻔한 놈이다. 뻔히 자신의 비행을 알고 있을 하룬에게 의뢰 운운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녀석의 대답은 당당했다.

 “네, 의뢰요.”

 뫼비우스를 바라보는 하룬의 눈이 몇 번 바뀌었다. 사실 하룬은 그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그가 세류의 길드를 상대로 벌인 일은 비겁하고 나쁜 짓이지만 하룬은 그가 나름 나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 보지.”

 “고맙습니다. 제 일행이 고요의 땅으로 가고자 합니다. 대장이라면 안전하고 빠르게 그곳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격만 맞는다면 몇 명이 더 늘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일단 이 작자에 대한 것은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했다.

 “자신에 대해서 말해 봐.”

 “네?”

 한 번 하룬의 기세에 굴복한 뫼비우스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용병대와 동행을 하려면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뢰가 있어야 해. 일단 당신은 그 부분에서 많이 부족하지. 난 뒤통수나 치는 인간하고는 절대 거래할 생각이 없어.”

 뫼비우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룬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들은 것이다. 사실 자신 역시 어느 정도 신뢰가 없으면 같이 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한데 이미 세류 일행에게 한 짓을 알고 있으니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당신이 이방인이라는 건 알아. 어느 유니온 출신인가?”

 하룬의 말에 뫼비우스는 눈을 크게 떴다. 이방인들의 세계에 대해 NPC가 그 정도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코원 유니온 출신입니다. 고아이며 나이는 열아홉 살이고, 이런 외계 세상을 여행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럼 다크 게이머인가?”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요? 대단한 분이군요. 네, 맞습니다. 이계를 여행하며 얻은 고가의 아이템이나 정보를 다른 이방인들에게 팔아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작업장에서 일하나?”

 “네.”

 뫼비우스는 꼭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룬이 이방인들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 의구심이 가득 차자 하룬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군. 내 일행 중에는 당신 유니온에서 방송사 기자를 하는 친구도 있다.

 “아, 그렇군요.”

 뫼비우스는 그제야 모든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이방인들의 세계에 대해서 자세히 들었으리라. 거기에 더해 그 기자를 통해 정보까지 거래했을 것이다. 정보 길드에서 파악한 대로 이번 던전에 대한 정보 역시 돌풍 용병대가 게임 방송사 기자를 매개로 거래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무슨 게임이 이래? 이건 완전히 판타지 세상이나 다름없잖아.’

 다른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단순한 안내자나 액세서리에 불과한 NPC가 이 비욘드에서는 유저와 동일한, 아니 현재는 아주 우월한 존재들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용병대장만 해도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서 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세류에게서는 어떻게 벗어났나? 내가 떠날 때 보니 그냥 둘 기세는 아니던데.”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뫼비우스지만 당장은 복수심을 떠올릴 상황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룬과 동행해서 던전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두 번 척살당했습니다. 숱한 고문과 현실에서까지 이어지는 폭행과 협박에 그동안 벌어 두었던 돈을 모두 다 주고서야 해결했습니다.”

 애써 누르려고 했던 원망이 묻어나오는 그의 말에 하룬이 피식 웃었다.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자신이었다면 이를 갈고 복수하려고 했을 텐데 그 마음을 억누르는 것을 보니 인간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석도 있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하류 인생의 전형을 보는 기분이 들어 좀 씁쓸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살지 못했던 다른 방식의 인생을 사는 뫼비우스에게 얼마간의 호기심이 일었다.

 “원망은 하지 마라. 애초에 표지석을 발견한 길드원들이 몇 차례나 세류에게 보고한 상황이라 그녀 역시 너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멍청한 다른 노블들이라 생각하고 미남계로 비류를 녹이려고만 했던 네 실수였다. 비류를 유혹할 작정이었다면 차라리 암중에 거래한 놈들을 엿 먹이는 편이 더 나았을 거야. 동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세류 정도의 힘이라면 그들의 도발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내 말이! 나도 후회하고 있다고.’

 뫼비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질겅대며 씹었다. 뫼비우스도 자신이 뭘 실수했는지 잘 알고 잇었다. 다만 애초에 비류처럼 머릿속에 돌만 차 있는 여자 따위를 유혹학 생각이 없었던 것이 실수의 단초였다.

 양쪽에서 돈만 받고 튈 생각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비류에게 빠져 경각심을 잃었다. 나중에는 표지석을 위해 숙영지에서 벗어났다가 돌아올 때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류만 어떻게 하면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망하지 않습니다. 대장의 말대로 제 실수니까요. 아니, 암중으로 거래한 것 자체가 실수였습니다.”

 뫼비우스는 톡 까놓고 자신의 잘못을 밝혔다.

 “뭐, 그렇다면야. 나에게는 그런 마음 품지 마라. 난 그런 쪽은 무척 잔인한 편이니까.”

 하룬의 말은 담담했으나 뫼비우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솜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코앞에서 입을 떡 벌리고 으르렁대는 맹수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위험한 자다. 빌어먹을! 하지만 언젠가는 꼭 제대로 엿 먹이고 말겠어.’

 움츠러들었던 뫼비우스의 몸이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 하룬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강단이 있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자신처럼 무조건 세상을 피하거나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비겁하더라도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런 태도가 부러웠다.

 “좋아, 의뢰는 접수하지. 그런데 우리 돌풍의 의뢰비는 좀 비싼 편인데.”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잡은 물주는 돈이 꽤 많습니다.”

 한번 자신을 까발린 후에는 화끈하게 터놓는 뫼비우스였다. 그런 태도의 이면에는하룬이 자신의 그런 행동에 별다른 악감정을 품은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쁜가?”

 그 질문은 사사로운 것이었다. 동생과 마찬가지인 벨에게 처음으로 이성과의 육체적 반응을 경험했고, 홀을 통해 첫사랑의 달콤함과 쓰라림을 경험한 후 급증한 호기심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네, 일단은. 포장을 걷어 봐야 알겠지만 저 정도면 괜찮은 편입니다. 마법사인 것만 보아도 꼴통은 아닙니다. 평생 데리고 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란 모름지기 어느 정도 머리는 있어야지요.”

 “후후후, 재미있군. 잘해 봐.”

 그와는 너무나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흥미가 이는 뫼비우스였다.

 “그런데 대장,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

 “의뢰비는 제가 최대한 받아 내겠습니다. 다만 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해 주시면…….” “알았어. 그러지.”

 틀림없이 자기와 잘 안다고 뻥을 쳤을 것이다. 그 정도야 어려울 것이 없다. 노골적으로 친한 척하는 것도 아니고 친분 정도라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리고 선물을 좀 가져왔습니다.”

 “선물?”

 “네. 원래는 거절당하면 조건으로 쓰려고 했는데.”

 뫼비우스는 극비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것은 현재까지도 세 길드가 엘프들이 점거한 던전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번 던전의 정보를 최초로 알아낸 제국 정보 길드와 던전을 처음으로 발견한 세 길드에서 그에 대한 척살령이 떨어졌으며, 일부 세력은 이미 습격을 위한 척살 조를 파견했다는 정보였다.

 ‘후후, 결국 적을 만들고 말았군.’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던전에 대한 정보를 소수의 귀족들과 이방인들에게 팔아먹으려던 제국 정보 길드와 길드를 발견하고도 아직 제대로 공략을 못하고 있는 세 길드 입장에서야 그는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존재일 것이다.

 방송이 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것이 노출된 것이 아쉬웠지만 그들의 정보력이라면 그 정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디 한번 겪어 볼까?’

 하룬은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척살 조가 몇 팀이나 파견되었다는 정보에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기대가 될 정도였다. 일전 요른 백작성 인근에서 마치 환각 상태처럼 대규모 PK를 했을 때의 경험이 영향을 미친 것인지 도전과 전투를 즐기는 성향으로 바뀌고 있었다.

 “좋은 정보군. 수고했어.”

 하룬에게 감사의 인사까지 받은 뫼비우스는 입이 귀까지 걸려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하룬이 자신에게 그리 악감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의뢰까지 성공시켰으니 큰소리를 뻥뻥 친 것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뫼비우스는 생각지도 않았던 거금과 더불어 귀중한 정보를 선물로 들고 왔다. 슈미르의 청소리 길드원 세 명에 2만 골드의 의뢰비를 받아 온 것이다.

 ‘녀석!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괜찮군.’

 어차피 믿지 않으면 될 일이다. 녀석이 전처럼 암중으로 다른 술수를 부려 다른 이들에게 돈을 챙기거나 이득을 취하는 것은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룬은 일행 중 티노만 유일하게 믿을 뿐이었다.

 새로운 일행이 합류했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양쪽 다 극도로 지친 상태라 인사만 간신히 하고 잠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다만 뫼비우스가 워낙 미남이도 행동거지에서 매력이 묻어나 젊은 아가씨들의 관심을 잠시 끌었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을 서둘렀지만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식사가 늦어져 출발 자체가 늦어졌다.

 유저들은 모두 최상급 캡슐 사용자들이었지만 동화율이 낮아 캐릭터의 피로 상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나마 헤니가 조제한 피로 회복제를 먹고서야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쌓인 피로를 푸는 데는 포션도 소용이 없었다.

 바람의 계곡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힘이 풀려 있었다. 일단 계곡 양쪽의 절벽에 난 길의 고도가 1,000미터가 넘으니 그곳까지 올라가는 데만 꼬박 하루가 넘게 걸릴 판이다. 하염없이 오르는 길이라 사람들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하지만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중에 합류한 뫼비우스 때문이었다. 기존 일행의 면면을 살피던 뫼비우스는 만만해 보이는 매그럼에게 이야기를 걸었고, 금방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뭐야, 그럼 너도 인공수정체야?”

 “응. 그럼 너희들도?”

 “맞아.”

 “야아, 정말 신기하다. 현실에서도 잘 만날 수 없는 형제를 어떻게 여기서는 연속적으로 만나냐? 거기다 셋이 다 같은 유니온이라니. 정말 끝내주지 않냐?”

 “그러게. 일부러 이러려고 해도 안 될 텐데 말이야.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 모양이다.”

 일행의 맨 끝으로 처진 매그럼과 뫼비우스 그리고 아레스는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형제를 만난 것처럼 신이 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한 피를 나누어 가진 것처럼 묘하게 잘 통하는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헤니의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지만 잠시의 망설임 끝에 다시 거리를 두었다.

 바람의 계곡으로 오르는 도중에 하룬은 티노 대신 척후를 맡았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적인 일로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내가 척후를 섭니다.”

 하룬은 인원 배치를 하고 앞으로 나섰다. 뫼비우스가 정보 길드에서 빼온 정보에 따르면 이 바람의 계곡에서도 한 팀이 그를 암살하기 위해 잠복하고 잇을 거라고 했다. 그들 역시 하룬이 움직일 동선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하룬의 몸이 나는 것처럼 급경사를 올라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새처럼 가볍게 바닥을 박차는 그의 몸이 순식간에 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발을 한 번 구를 때마다 몸이 위로 쑥쑥 올라갔다.

 “와아! 저게 사람이야?”

 사예가 탄성을 터트렸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티노와 후크란에서 그의 무위를 경험했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물론 한 번 보았다고 온전히 적응된 것도 아니어서 그들마저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저러니까 와이번도 간단하게 해치웠지.”

 아레스가 호들갑을 떨자 뫼비우스가 궁금한지 물었다.

 “그랬냐? 어디서?”

 “어디긴 후크란에서지. 아 참, 넌 모르겠구나. 멋모르고 후크란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했는데 대장이 짜잔 하고 나타나서 구해줬거든. 그때 대장이 와이번 세 마리를 암기술로 가볍게 처리하는 것을 봤지.”

 “검술도 만만치 않아. 일전에 후크란에서 나와 동행했을 때는 검으로만 블랙 오크 여섯 마리를 간단하게 해치우더라니까.”

 점심을 먹으면서 하도 수다를 떨어 초른에게 수다 3인방이라는 별명을 얻은 세 명은 내심 하룬과 누가 더 가까운지를 뽐내기라도 하듯 이야기를 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딜런의 눈에는 진한 호승심이 떠올랐고, 헤니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번졌다.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일행과 하룬의 엄청난 몸놀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후미에 위치한 티노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오, 당신과 비슷한 구석이 있네.”

 도네이스였다. 아마 첫 만남에서 작정하고 보였던 메신저 무빙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대장도 데브론 님에게 스킬을 전수받았으니 나와는 동문이나 마찬가지지. 물론 나야 저런 움직임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지만.’

 제국 10대 용병단의 부단주인 도네이스가 대장에게 감탄하는 것을 보니 티노 자신이 칭찬을 받은 듯 뿌듯해진다.

 “그런데 당신네 대빵의 진짜 실력은 어느 정도야? 아직까지 암기로 와이번을 상대하는 강자가 나타났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성질이 꽤 더럽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일행과 합류한 이래 도네이스는 얌전하게 지내고 있었다. 어쩌면 돌산 지대에 진입한 첫날 하룬이 와이번을 암기로 상대하는 것을 보고 쫄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알아서 생각해.”

 “남자가 뭘 쩨쩨하게 그런 걸 숨기고 그래? 다른 용병들은 거짓부렁이라도 저희들 대장의 실력을 올리는 판인데.”

 사실이 그랬다. 뻥치는 것이 대표적인 습성 중 하나일 정도로 용병들은 뻥이 심했다. 용병 세계는 실력이 있어야 대접받는 곳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술을 좋아하는 인간들치고 뻥치지 않는 자를 본 적이 없었다.

 “나도 잘 몰라서 그래. 이 정도가 끝인가 하면 어느새 또 다른 경지를 보여 주니 알 수가 있어야지. 내가 본 최고의 실력은 럼프 오크 여섯 마리를 연속으로 잡은 거야. 비수로만.”

 “러, 럼프 오크를 비수로만 잡았다고? 여섯 마리씩이나?”

 후크란 산맥과 제국 북부 오지에만 서식하는 럼프 오크들을 용병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놈들이 악마 오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제국 북부를 무대로 활동하는 용병들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왜, 거짓말 같아?”

 “아, 아니. 그건 아닌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쉽게 믿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네가 입은 그 방어구도 럼프 오크의 가죽으로 만든 건데. 그게 다 대장이 직접 잡은 거야.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거 보라고.”

 티노의 말에 도네이스가 입을 벌리며 자신이 입은 방어구를 새삼 훑어보았다. 아주 좋은 방어구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가죽이 럼프 오크의 그것이라는 사실은 몰랐던 도네이스는 한참 말을 못 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후후후!’

 럼프 오크가 볼일을 볼 때 정령의 힘이 담긴 비수로 항문을 향해 날렸던 것을 생각하니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예전 재수 4인방들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진저리를 치는 것과 함께 깔깔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시린느는 도축을 하며 내장 깊숙이 박힌 비수를 꺼내느라 꽤 고생을 했었다.

 “아악!”

 채앵! 챙!

 갑자기 위쪽에서 비명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습격이다. 정보 길드가 대장을 습격했어.”

 상황을 짐작한 뫼비우스가 소리를 질렀다. 하룬을 대신해서 전위를 맡은 딜런이 검을 빼 들고는 커다란 바위로 가려진 위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흥분한 사람들이 다들 그 뒤를 따르려고 했지만 후미에 있던 티노가 소리쳤다.

 “멈춰. 일단 딜런 님만 가고 나머지는 진형을 이루어 이동해야 해. 상황을 모르니 침착하라고.”

 후위를 도네이스에게 맡긴 티노는 딜런이 빠진 전위를 맡았다. 이런 좁은 오르막길에서는 여러 사람이 전투를 벌일 수 없으니 몸이 가벼운 하룬에게 불리할 것이 없다. 거기다 일부러 척후를 자청한 것이나 거리를 벌린 것을 생각하면 미리 어느 정도 짐작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하거나 떨리지 않았다. 어느새 하룬을 많이 믿게 된 티노였다.

 티노가 이끄는 일행은 빠르게 흥분 상태에서 벗어나 각자 전투준비를 하고 쾌속하게 위쪽으로 올라갔다.

 거대한 바위 옆을 오르자 꽤 넓은 공간이 나왔다. 이곳을 지나는 대상들이 쉬어 가는 장소인 듯 곳곳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는 공터에는 싸움이 한창이었다. 하룬에게 네 명, 딜런에게는 무려 여섯 명이나 합공을 하고 있엇다.

 상대는 복면을 착용한 열 명의 어쌔신들이었다. 바닥에는 이미 네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모두 목에 단검이 꽂혀 있었다. 하룬의 암기술에 당한 것이다.

 초른과 아레스가전투를 준비하며 마법 주문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크악!”

 오른손으로 본 소드를 쥐고 센스 소드를 펼쳐 상대방의 품으로 달려들던 하룬의 왼손이 쾌속하게 움직이나 어쌔신 하나가 목을 움켜쥐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까앙!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는 검이었지만 맞받는 상대의 충격은 큰지 어쌔신들은 가급적 충돌을 피하거나 뒤로 물러나려고 했지만 워낙 빠른 발놀림을 가진 하룬 때문에 전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딜런 쪽 상황은 더했다. 이미 마나를 끌어 올린 딜런의 검에서는 시퍼런 오러가 솟구처 검의 궤적을 따라 날아가고 있었다. 검기까지 날리는 것을 보면 딜런이 단단히 작심을 한 것 같았다. 언제 난 것인지 몰라도 그의 발목은 시뻘게진 상태였다.

 어쌔신들은 지원 세력이 나타나자 당황한 듯 암기를 꺼내 던지며 견제했다.

 “실드!”

 “실드!”

 타니엘라가 연속해서 실드를 치자 일행을 모두 방어할 정도의 큰 막이 생성되어 암기를 막았다.

 하지만 어쌔신들은 한눈판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만 했다. 집중 상태가 풀린 그들의 협공은 용병 아카데미에서 경험했던 목각 인형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하룬의 몸이 마치 연기처러 검과 검 사이를 파고 들었다.

 싸악!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하룬은 본 소드로 한 어쌔신의 목을 날리는 동시에 바닥을 구르며 검을 휘둘렀다. 다섯의 협공도 무리 없이 막아 냈던 하룬에게 셋의 협공은 틈이 너무 많았다. 구르는 순간 그들의 발목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카악!”

 “큭!”

 비명과 함께 균형이 무너져 비틀거리던 두 어쌔신의 머리통이 예리한 본 소드에 잘려 나갔다. 그들의 두 눈은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는 기괴한 모습의 몸통을 담고 있었다.

 “퇴각! 퇴각하라!”

 하룬 쪽 상황을 알아차린 어쌔신들은 딜런에게 자신의 검을 던지며 일제히 뒤를 향해 몸을 날렸다. 딜런은 평소의 온화하고 장중한 얼굴 대신 야차와 같은 얼굴로 검에 순간적으로 마나를 폭증시켰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처럼 검신 전체로 삐져나온 오러가 날카로운 검날 형상으로 변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디스펄스飛散!”

 딜런은 어쌔신들을 향해 두 손으로 단단히 그러쥔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도망치려는 듯 전권에서 이탈하던 여섯 명의 어쌔신은 부챗살 방향으로 날아간 수십 개의 검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익스퍼트 최상급이 아니면 보일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의 검기가 한꺼번에 그들에게 날아간 것이다. 이미 몇 차례 검기를 힘들여 막거나 피했던 어쌔신들이지만 이번에는 막을 수가 없었다.

 어쌔신들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완전히 어육이 되고 말았다. 딜런이 각고의 수련 끝에 완성해 낸 특수한 성질의 검기를 맞은 육신이 마치 폭발한 것처럼 산산조각 나 버린 것이다.

 도네이스를 제외한 여자들은 너무나 참혹한 모습에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둠의 길을 선택한 너희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해라.”

 참혹한 장면을 연출해 낸 당사자답지 않게 쓸쓸하게 느껴지는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딜런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지만 하룬은 아니었다. 그는 소리 없이 몸을 날려 세 번이나 바닥을 강하게 박찼다. 사람들은 그의 행동에 의문이 품었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발이 닿았던 바닥에서 붉은 피가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땅속에 은신해서 긴장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마지막 어쌔신들이었다.

 ‘귀신이 따로 없군. 저기에 숨은 것은 언제 안 걸까?’

 뫼비우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티노를 도와 빠른 손길로 어쌔신들의 사체를 벼랑 아래로 던졌다. 하룬도 묵묵히 자신이 해치운 어쌔신들을 처리했다. 암묵적인 동의하에 빠르게 전장을 정리한 사람들은 위쪽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성정이 좀 변한 걸까?’

 상대를 해치우는 과정에서 기묘한 희열까지 느낄 수 있었던 하룬은 아주 과감하게 살수를 쓴 자신을 떠올리며 그 변화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이내 지워 버리고 말았다.

 아까 어쌔신들을 모두 처치했을 때 레벨 업과 아이템 획득을 알리는 안내음이 들렸지만 지금 이 기분으로는 확인할 수 없엇다. 꼭 무슨 살인자가 된 기분이었다. 살인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다는 점에서 하룬은 얼마간 자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레벨 업 안내음을 꺼 놓기로 했다. 거기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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